[성서일과 4본문]
(신 26:1-11)
1.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유산으로 주시는 그 땅에 당신들이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고 살 때에,
2.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주시는 땅에서 거둔 모든 농산물의 첫 열매를 광주리에 담아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곳으로 가지고 가십시오.
3. 거기에서 당신들은 직무를 맡고 있는 제사장에게 가서 '주님께서 우리 조상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대로, 내가 이 땅에 들어오게 되었음을, 제사장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께 오늘 아룁니다' 하고 보고를 하십시오.
4. 제사장이 당신들의 손에서 그 광주리를 받아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제단 앞에 놓으면,
5.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서 다음과 같이 아뢰십시오. '내 조상은 떠돌아다니면서 사는 아람 사람으로서 몇 안 되는 사람을 거느리고 이집트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몸붙여 살면서, 거기에서 번성하여, 크고 강대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6. 그러자 이집트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괴롭게 하며, 우리에게 강제노동을 시켰습니다.
7. 그래서 우리가 주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부르짖었더니, 주님께서 우리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우리가 비참하게 사는 것과 고역에 시달리는 것과 억압에 짓눌려 있는 것을 보시고,
8.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9. 주님께서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셔서,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10. 주님, 주님께서 내게 주신 땅의 첫 열매를 내가 여기에 가져 왔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그것을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 놓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께 경배드리고,
11. 레위 사람과, 당신들 가운데서 사는 외국 사람과 함께,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과 당신들의 집안에 주신 온갖 좋은 것들을 누리십시오.
(시 91:1-2, 9-16)
1. 가장 높으신 분의 보호를 받으면서 사는 너는, 전능하신 분의 그늘 아래 머무를 것이다.
2. 나는 주님께 “주님은 나의 피난처, 나의 요새, 내가 의지할 하나님”이라고 말하겠다.
3. 정녕, 주님은 너를, 사냥꾼의 덫에서 빼내 주시고, 죽을 병에서 너를 건져 주실 것이다. 4. 주님이 그의 깃으로 너를 덮어 주시고 너도 그의 날개 아래로 피할 것이니, 주님의 진실하심이 너를 지켜 주는 방패와 갑옷이 될 것이다. 5. 그러므로 너는 밤에 찾아드는 공포를 두려워하지 않고, 낮에 날아드는 화살을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다. 6. 흑암을 틈타서 퍼지는 염병과 백주에 덮치는 재앙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7. 네 왼쪽에서 천 명이 넘어지고, 네 오른쪽에서 만 명이 쓰러져도, 네게는 재앙이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다. 8. 오직 너는 너의 눈으로 자세히 볼 것이니, 악인들이 보응을 받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9. 네가 주님을 네 피난처로 삼았으니, 가장 높으신 분을 너의 거처로 삼았으니,
10. 네게는 어떤 불행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네 장막에는, 어떤 재앙도 가까이하지 못할 것이다.
11. 그가 천사들에게 명하셔서 네가 가는 길마다 너를 지키게 하실 것이니,
12. 너의 발이 돌부리에 부딪히지 않게 천사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줄 것이다.
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짓밟고 다니며, 사자 새끼와 살모사를 짓이기고 다닐 것이다.
14.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그가 나를 간절히 사랑하니, 내가 그를 건져 주겠다. 그가 나의 이름을 알고 있으니, 내가 그를 높여 주겠다.
15. 그가 나를 부를 때에, 내가 응답하고, 그가 고난을 받을 때에, 내가 그와 함께 있겠다. 내가 그를 건져 주고, 그를 영화롭게 하겠다.
16. 내가 그를 만족할 만큼 오래 살도록 하고 내 구원을 그에게 보여 주겠다.”
(롬 10:8b-13)
8. (그러면 그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네게 가까이 있다.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9. 당신이 만일 예수는 주님이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10.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11. 성경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합니다.
12.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13.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눅 4:1-13)
1. 예수께서 성령으로 가득하여 요단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그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2.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그 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서, 그 기간이 다하였을 때에는 시장하셨다.
3. 악마가 예수께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4. 예수께서 악마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은 빵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 하였다.”
5. 그랬더니 악마는 예수를 높은 데로 이끌고 가서, 순식간에 세계 모든 나라를 그에게 보여 주었다.
6. 그리고 나서 악마는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 이것은 나에게 넘어온 것이니, 내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준다.
7. 그러므로 네가 내 앞에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
8. 예수께서 악마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하였다.”
9. 그래서 악마는 예수를 예루살렘으로 이끌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10.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해서, 너를 지키게 하실 것이다’ 하였고
11.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서,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다’ 하였다.”
12. 예수께서 악마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라' 하였다.”
13. 악마는 모든 시험을 끝마치고 물러가서, 어느 때가 되기까지 예수에게서 떠나 있었다.
[사순절 첫 주일 4본문 묵상]
금년 사순절 첫 주일 4본문을 묵상하면서 드는 가장 큰 느낌은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이것을 한글자로 쓴다면, ‘신(申)’입니다.
구약 본문이 ‘신명기(申命記)’인 것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한문성경 사경(寫經)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막연히 ‘신명기(神命記)’인줄 알았습니다. 신명기의 신(申)은 ‘거듭 신’입니다. 즉, 신명기(申命記)란 ‘되풀이한 계명의 기록’이라 할 것입니다.(『독일성서공회판 성경전서』 참조) 신명기는, 출애굽 한 뒤 50일째 되는 날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계명을 넘어, 광야생활 마무리하면서, 즉 모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산 위에서 거듭 명한 하나님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유달리 ‘당신들’이라는 말이 19번이나 반복됩니다. 독경하기 좀 불편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반복해서 읊조릴수록 장단에 박진감을 더해주는 장점이 느껴집니다. 거듭 반복되는 ‘당신들’은 무언가 단단히 기억해야 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오늘 복음서 말씀은 신명기 말씀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금식을 마무리하면서 악마의 유혹을 세 차례 거듭 물리치시는 대목입니다. 거듭해서 말씀으로 물리치십니다. 더구나 그 세 말씀 모두 신명기 말씀이었습니다.(신 8:3, 6:13, 6:16)
(신명기 8장)1. "당신들은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잘 지키십시오. 그러면 당신들이 살아서 번성할 것이며, 주님께서 당신들 조상에게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 것입니다. 2. 당신들이 광야를 지나온 사십 년 동안,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기억하십시오. 그렇게 오랫동안 당신들을 광야에 머물게 하신 것은, 당신들을 단련시키고 시험하셔서, 당신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당신들의 마음속을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3. 주님께서 당신들을 낮추시고 굶기시다가, 당신들도 알지 못하고 당신들의 조상도 알지 못하는 만나를 먹이셨는데, 이것은, 사람이 먹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당신들에게 알려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신명기 6장) 10.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당신들에게 주기로 약속하신 그 땅에, 당신들을 이끌어들이실 것입니다. 거기에는 당신들이 세우지 않은 크고 아름다운 성읍들이 있고, 11. 당신들이 채우지 않았지만 온갖 좋은 것으로 가득 찬 집이 있고, 당신들이 파지 않았지만 이미 파놓은 우물이 있고, 당신들이 심지 않았지만 이미 가꾸어 놓은 포도원과 올리브 밭이 있으니, 당신들은 거기에서 마음껏 먹게 될 것입니다. 12. 당신들이 그렇게 될 때에, 당신들은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당신들을 이끌어 내신 주님을 잊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13.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만 맹세하십시오. 14. 당신들은, 당신들 가까이에 있는 백성이 섬기는 신들 가운데에, 그 어떤 신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15. 당신들 가운데 계시는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분노하시면, 당신들을 땅 위에서 멸하실 것입니다. 16. 당신들이 맛사에서 시험한 것처럼,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시험하면 안 됩니다. 17.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명령과 그가 명한 훈령과 규례를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되풀이한 계명의 기록’을 거듭해서 인용하신 것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즉 인용하신 신명기 8장과 6장 말씀의 배경이 광야 40년 생활을 마무리하고 곧이어 약속의 땅에 들어갈 백성들에게 주시는 당부의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먹고 살만하게 되면 즉시 나태하고 타락하고 말 백성들을 위해 거듭 되풀이하여 명하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광야 40일 금식을 마무리하면서 당하시는 저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함직한, 막강하게 함직한 저 악마의 유혹은, 심지어 성경말씀을 인용해가며 거듭되는 악마의 유혹을, 둘째 아담 예수님께서 물리치십니다. 거듭 거듭 말씀으로 물리치십니다.
악마는 5절과 6절에서 ‘모든 나라’를 보여주며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가지고 흥정합니다. 이 독한 악마의 유혹조차 예수님께서는 매우 아름답고 거룩하게 변화시키십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마 6:13)
악마의 손에서는 악(惡)이요 독(毒)이었던 것이, 우리 주님의 손에서는 거룩한 생명으로 변화합니다.
오늘 시편은 공교롭게도 악마가 인용한 시편 91편입니다. 이 시편을 읽다보면 악마가 ‘말씀’을 남용하고 오용하는 패턴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시편 91:11-12절 말씀을 얼마나 자극적으로 부풀리는지가 보입니다. 제멋대로 선정적이고 말초적인 상황을 설정해놓고 비슷한 성경구절을 찾아서 갖다 붙입니다. 이게 악마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매우 짧고 간결합니다. 내 욕심을 합리화하기 위해 말씀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욕심의 정체를 가장 먼저 말씀거울에 비추어 보는 것입니다. 이게 예수님의 방식입니다. 겉치레는 버리고 말씀의 알맹이만 짚으십니다. 말씀의 알맹이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뿌리를 아시기 때문에 악마유혹의 정곡을 찌르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세상 유혹을 이길 수 있으려면, 우리가 말씀을 남용하고 오용하려는 유혹을 이길 수 있으려면, 말씀에 뿌리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 내가 뿌리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뿌리없이 살다가 약속의 땅에 들어간 백성들이 그 땅에 뿌리내림으로써 마침내 첫 열매를 바칠 수 있었듯이, 하나님 약속의 말씀 안에, 말씀의 알맹이 속에 뿌리를 내려야 말씀의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시편 11, 12절을 인용한 악마가 어떻게 바로 그 다음 13절을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3절은 악마의 등골이 서늘해질 말씀입니다. 15절은 또 어떻습니까? “그가 고난을 받을 때에 내가 그와 함께 있겠다” 이 얼마나 마음 든든한 말씀입니까? 악마에게는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씀이겠습니까?
오늘 서신서 말씀 역시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우연의 일치라기보다 말씀의 일치입니다.
(신명기 30장) 10. 당신들이 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이 율법책에 기록된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당신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그런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11.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내리는 이 명령은, 당신들이 실천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당신들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12. 이 명령은 하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당신들은 '누가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받아다가, 우리가 그것을 듣고 지키도록 말하여 주랴?' 할 것도 아닙니다. 13. 또한 이 명령은 바다 건너에 있는 것도 아니니 '누가 바다를 건너가서 명령을 받아다가, 우리가 그것을 듣고 지키도록 말하여 주랴?' 할 것도 아닙니다. 14. 그 명령은 당신들에게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당신들의 입에 있고 당신들의 마음에 있으니, 당신들이 그것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신명기 30:14절을 오늘 서신서 본문인 로마서 10:8절이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서의 예수님께서 바로 이 말씀의 모범을 보이십니다. 악마의 모든 유혹을 물리칠 때마다, 초지일관하게, 수미일관하게, 시종일관하게, 철두철미하게 이렇게 외치십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의 말씀은 악마의 유혹처럼 황당하고 무례하지 않습니다. 우리 입에 있고 마음에 있습니다. 지극히 가깝고 지극히 상식적입니다. 스스로 속일 수 없을 정도로 심장에 새겨있습니다. 이 사실을 직시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말씀의 열매를 온 몸으로 거둡니다. 마침내 그 말씀 심장에, 심비에 새긴 그리스도의 편지가 됩니다.(고후 3:3)
사순절 첫 주일 말씀은 이렇게 신명기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히브리 백성들이 40년 광야생활 마무를 때 주신 그 말씀으로, 예수님은 40일 광야생활 마무르실 때 바로 그 말씀으로 악마와 싸워 이기십니다. 2013년 다시 시작하는 사순절 40일 광야생활 첫머리에 이 말씀을 주신 뜻이 오묘합니다. 이미 이긴 싸움입니다. 물욕(物慾), 권력욕, 명예욕, 내 안의 온갖 탐욕들을 씻어내는, 특히 성경구절로 그 탐욕들을 합리화하려는 유혹과 정면승부하는 거룩한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말씀동화] 싯딤나무 사랑걸렸네(예수씨 동행 유대광야 취재기)
나는 나무야, 유대광야에 사는 싯딤나무야. 한국 사람들은 나를 조각목이라고도 부르고 아카시아나무라고도 부르지. 난 키가 사람보다 크단다. 아무리 못자라도 2미터는 되고, 크게 자라면 6미터까지 자랄 정도야! 내가 비록 가시도 많고 구불구불 못생겼지만, 물 한 방울 없을 것 같은 유대광야에 나만큼 키 큰 나무가 있다는 건, 정말 하나님의 은혜지, 암! 그렇고말고! 새들의 지친 날개를 쉴 수 있게 해주고, 벌레들도 뜨거운 햇볕을 피할 수 있게 해 준단다. 아주 먼 옛날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켜 언약궤를 지으실 때, 다른 나무 말고 바로 나 싯딤나무로 언약궤를 만들게 하신 것은, 광야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나무이기도 하지만, 바로 이 ‘은혜’를 기억나게 하시려던 것이 분명해! 광야에서도 죽지 않게 먹이시고 이렇게까지 자라게 하신 그 은혜를 기억하라시는!
그런데 사실 난 외로운 나무야. 사방을 둘러보아도 나무는커녕 풀 한포기 보이지 않는 황량한 광야에 사는 외로운 싯딤나무! 그래도 가끔씩 날아오는 새들이 있고, 사람들 눈엔 안보이지만 늘 나를 간질간질하게 하는 꼬물꼬물 벌레들이 있어서 그나마 위로가 된단다. 참! 종종 불어오는 바람도 나를 흔들흔들 춤추게 하는 좋은 벗이지. / 그런데 말이야, 얼마 전에 외로운 나에게 정말 멋진 친구가 찾아왔단다. 갈릴리 나사렛에 사는 예수라는 청년이었어. 그가 왜 나를 찾아왔는지는 나도 몰라. 그날도 나는 심심해서 쿨쿨 낮잠을 자고 있었지. 그런데 누군가 내 배를 가볍게 툭툭 치며 슬슬 어루만지는 바람에 난 번쩍 잠을 깨고 말았어. 건강하게 생긴 청년 한 사람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그에게서는 내 꽃향기보다 더 달콤한 향내가 났고 그의 얼굴에서는 아주 귀한 기운이 흘러넘치고 있었단다.
그는 내 그늘 아래 앉았어. 잠시 그렇게 앉아 있다가 조용히 일어서더니 나를 빙글빙글 돌며 한참을 걷기 시작하네? 그냥 조용히 걷던 그의 입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지. 가만히 들어보니 무슨 노래 같았어. 작은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내 귀에까지 들릴 정도로 아주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거야.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중간 질문; 어린이 여러분! 누구 이 노래 아는 사람?)
이 노래를 반복해서 부르는 거야. 나도 괜히 신나고 재미있고 그랬어. 그런데 들어보니 좀 이상하지 않니? 여긴 광야인데, 푸른 풀밭이 어디 있고, 쉴만한 물가가 어디 있다는 거지? 아무튼 그렇게 하루가 갔어. 그리고 이튿날이 밝았지. 그는 여전히 내 그늘 아래 앉아 있다가 일어서서 나를 빙글빙글 돌며 노래 부르기를 반복했단다. 그러다가 갑자기 저만치 열두 걸음정도 걸어가더니 나를 향해 돌아서서 자리에 앉더구나. 그리고 그는 한참동안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어. 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아주 찬찬히 어루만지듯이 인자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거였어. 나는 그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단다. 난생 처음 보는 멋진 청년이 저렇게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니.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거든! 그리고 그는 다시 내게 다가와 나를 빙글빙글 돌며 어루만지기 시작했어. 그리고 이렇게 중얼거렸지.
“아버지 고맙습니다. 저를 여기까지 데려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황량한 광야의 싯딤나무 곁에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40년 광야 생활동안 백성들의 애지중지 그 언약궤를 짓게 하신 바로 그 싯딤나무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담뿍 담긴 언약의 돌판을 담은 싯딤나무 언약궤입니다. 제가 1500년 전 광야 40년을 기억하며 이제 40일 동안 이 광야에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싯딤나무를 바라볼 때마다 아버지의 그 사랑을, 그 사랑의 맹세를 기억하겠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 이렇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버지라는 분과 대화를 했어. 대화를 하다가 이렇게 반복해서 중얼거리기도 했단다. 그건 무슨 주문 같기도 하고... 그래 가만 보니 이건 어떤 특별한 기도문 같았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며,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 그 뜻을 하늘에서 이루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시고,,, ”
그런데 기도문 짓기가 쉽지 않은지, 여기서 계속 끊어지고 다시 반복하고 그러는 거야.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시고...?” 어라? 가만 보니까 이 청년은 여기 올 때부터 빵을 안 가져왔어. 물병도 없었어. 그러고 보니,,, 아니 이걸 어떡하지? 그는 지금 이틀째 쫄쫄 굶고 있는 거잖아? 세상에 이렇게 대책 없는 경우가 있나? 나야 새벽이슬도 받아먹고 저 깊은 땅속에 있는 밥을 내 뿌리가 찾아 먹을 수 있지만, 도대체 이 청년은 뭐지?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40일을 견딘다는 거야? 그러고 보니 이 청년 정말 대책이 없네? 그리고 밤에 무섭지도 않나? 혼자서? 바로 그 때였어. 그는 또 일어서더니 나를 빙글빙글 돌면서 아주 기쁨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노래하는 거야.
가장 높으신 분의 보호를 받으면서 사는 너는, 전능하신 분의 그늘 아래 머무를 것이다. 나는 주님께 “주님은 나의 피난처, 나의 요새, 내가 의지할 하나님”이라고 말하겠다... 그가 나를 부를 때에, 내가 응답하고, 그가 고난을 받을 때에, 내가 그와 함께 있겠다. 내가 그를 건져 주고, 그를 영화롭게 하겠다.(시 91)
아하! 이제 알겠다! 그는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노래를 부르고, 또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느라 심심할 틈도 없고, 무서울 틈도 없었던 게야. 어쩌면 배고플 틈도 없었는지도 몰라. 그리고 그는 매일매일 아주 멋지고 힘찬 말씀을 한도 끝도 없이 중얼중얼 읊조리곤 했단다. 그건 바로 광야 40년을 마무리하면서 모세 할아버지가 백성들에게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는 하나님 언약의 말씀이었지. 사람들은 그 말씀을 ‘신명기’라고 한다나봐. 예수씨는 그 말씀을 줄줄 외우면서 읊조리는데, 점점 아주 노래를 부르듯이 목소리 높여 읊조리곤 했단다. 왜 이렇게 신명기 말씀을 신명나게 읊조리는 것이었을까? 난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지금 이 광야에서 밥도 안 먹는 MT를 40일 동안이나 하는 까닭은, 바로 1500년 전 그 광야 40년을 기억하고 그 하나님 사랑의 언약을 되새기려는 것이라고, 왜 아까 첫날 아버지랑 대화할 때 얘기했었잖아, 기억나지?
그런데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어느덧 40일이 거의 다 되었을 무렵 어느 날이었어. 그날도 우리 예수씨는 아버지와 사랑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그 정성이 가득 담긴 기도문도 거의 다 지어가고 있었지. 그러나 예수씨는 처음보다 훨씬 수척해져 있었어. 얼굴도 아주 반쪽이 되고 입술도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단다. 걸어다니며 노래하는 시간보다 이젠 내 그늘 아래 앉거나 누워있을 때가 더 많았어. 그날도 나는 그런 예수씨를 한참동안 안쓰러운 마음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단다. 바로 그때였어. 갑자기 내 몸이 근질근질하고 왠지 섬뜩하고 징그러운 느낌이 드는 거야. 가만 보니 내 나뭇가지 중간에 언제 날아왔는지 어떤 녀석이 매달려서 저 아래 예수씨를 노려보고 있는 거였어. 아주 기분 나쁘고 징글징글하게 생긴 녀석이었지. 그 순간 그놈이 연기처럼 사라지는가 했더니 아름다운 아줌마 모습으로 변장하고 예수씨 곁에 다가가고 있는 거였어. 그리고 이렇게 말했어.
“예수야 왜 이렇게 배고프게 생고생을 하니? 어서 뭘 좀 먹어야겠구나. 그래야 힘을 내서 일을 하지. 이 엄마가 빵 만들어줄게. 조금만 기다리렴. 아니 참 너 하나님 아들이잖아, 맞지? 그럼 네가 여기 이 돌들에게 빵이 되어라 하고 말해보렴. 그게 더 빠르겠다. 어서!”
가만 보니까 저 못된 놈이 예수씨의 엄마로 변장한 거야. 저런 흉측하고 교활한 놈 같으니라고! 지칠대로 지친, 너무너무 허기진 예수씨는 순간 군침을 꿀꺽 삼켰단다. 그리고 눈을 번쩍 떴지. 온 몸이 수척했지만, 눈빛만큼은 아주 맑고 밝았어. 그리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은 빵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 하였다.”
짧지만 아주 힘찬 한 마디! 바로 그 신명기 말씀이었어. 우리 예수씨가 신명나게 읊조리던 그 신명기 말씀! 광야에서 일용할 만나를 먹이신 하나님의 뜻이 가득담긴 그 말씀이지. 하나님의 사랑의 언약, 그 약속의 말씀을 먹고사는 게 하나님의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라는, 그게 바로 광야의 정신이라는...! 아! 이건 정말이지 광야의 신비, 광야의 극치, 광야의 한방 아니니? 아! 나 지금 너무 흥분하고 있는 거 맞지? 엄마 흉내 내다가 정체가 들통 난 그 흉측한 녀석은 연기처럼 사라지더니, 징그럽게도 다시 내 나뭇가지 위로 올라왔단다. 그리고 한참 동안 예수씨를 쏘아보며 이리저리 궁리하더니, 또다시 펑! 하고 연기처럼 사라지는 거야 이번엔 인자한 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변신하고 예수씨에게 다가가네?
“예수야, 그동안 잘 있었느냐? 우리 예수 아빠 안보는 동안 많이 컸구나. 참 대단하다. 그래 이젠 되었다. 네가 할 일은 다 이루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나는 너와 네 엄마 곁을 떠나 하나님께 가서 이 모든 세상 나라의 권세와 영광을 다 받은 울트라 슈퍼파워가 되어 돌아왔단다. 자, 어때,, 보이느냐? 순식간에 세상 모든 나라를 구경할 수 있는 맛이 어때? 정말 군침이 돌지 않느냐? 자 이제 이 아비 요셉에게 큰 절 한 번 해보렴. 그럼 내가 이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너에게 주마. 난 너처럼 의지가 강한 싸나이가 좋아. 너 정말 내 맘에 쏙 든다. 자, 절 한 번이면 돼. 자 어서 어서!”
잠시 어리둥절했던 예수씨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어. 생각해봐. 순식간에 온 세상 나라들, 그 나라 왕들의 권세권력을 다 둘러본다는 게 얼마나 신비롭고 대단한 일이었겠어? 더구나 절 한번만 하면 그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다 준다잖아? 더군다나 오래전 돌아가셨던 아빠 요셉을 만나다니? 그러나 우리 예수씨는 끝내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어. 아빠처럼 변장한 저 악한 놈의 정체를 단번에 간파하신거야. 체력은 바닥이었지만, 영력은 배가 되었지. 오히려 아까보다 더 결기 넘치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셨어.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하였다.”
역시 신명기 말씀이야. 광야 40년 고달픈 생활 마치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 살게 되었을 때, 그 안락한 일상과 풍요에 젖어, 돈맛에 젖어, 그 힘든 시절 나를 먹여주시고 입혀주고 길러주신 엄마 같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더 부자되게 해준다는 우상, 더 큰 권력 갖게 해준다는 잡귀잡신 섬겨서는 안 된다는 단호한 말씀이야. 이 말씀 역시 사람이 먹는 것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말씀 먹고 사는 존재라는 바로 그 말씀, 그 뜻이야! 그리고 또 이렇게 외치셨지.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십시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마태 6:13)
그리고 모처럼 빙그레 웃으셨어. 그동안 마무리하지 못하던 그 기도문을 마침내 마무리하게 된 거였거든! 자, 두 번씩이나 정체가 들통 난 저 악한 녀석 좀 봐. 악마는 아주 자존심이 상했나봐. 또 연기처럼 뿅∼ 하고 사라지더니 다시 내 나뭇가지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한참을 고심하더군. 그리고 이번엔 우리 예수씨 또래의 청년으로 변신하더니 다시 예수씨 곁으로 다가가는 거야.
“어이 예수 안녕? 나야 나, 나사렛 죽마고우 철수, 철수야! ‘예수와 철수’ 우린 단짝이었잖아? 정말 반갑다, 찬구야. 우리 오랜만에 예전 개구쟁이 시절처럼 저 나무타기 놀이 해보지 않을래? 우리 예전에 이정도 나무쯤은 다람쥐처럼 올라가서 뛰어내리기 내기도 하고 그랬잖아? 네가 우리 동네에서 제일 용감했는데, 지금도 용감하지? 그렇지? 아니 잠깐 여기보다 더 멋진 곳이 있어. 잠깐만 눈 감아볼래? 내가 멋진 거 하나 보여줄게. 자 눈 감아봐. 자, 잘 들어. fp드∼ 썬! 자,, 여긴 지금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야... 그런데 예수야... 누가 그러던데,,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던데,, 맞는 거냐? 난 좀 믿기 어려운데? 어때?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면 여기서 뛰어내려 보렴.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해서, 너를 지키게 하실 것이다...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서,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다.’ 하였잖아?”
눈을 감고 있던 예수씨의 표정이 좀 이상했어. 눈 감고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올라가서 그런가? 갑자기 높은 곳에서 혈압이 오른 것처럼 얼굴이 상기되더니, 철수로 변장한 저 교활한 악마가 예수씨 흉내내며 “성경에 기록하기를∼” 어쩌구저쩌구 할 때는 빙그레 미소를 짓는 거였어. 왜 웃었는지 알아? 난 알아! 바로 우리 예수씨가 40일 동안 내내 읊조리던 바로 그 노랫말이었거든(시편 91)! 광야에서도 밤이고 낮이고 나를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바로 그 노랫말! 더구나 그 노래가사를 아주 교묘하게 뻥튀기 한 것도 훤히 알고 있었거든. 거기 번지점프 하라는 구절이 어디 있어? 한마디로 가소로우셨던 거지. 더구나 바로 그 다음구절 가사가 뭔지 알아? 바로 이거야.
“네가 사자와 독사를 짓밟고 다니며, 사자 새끼와 살모사를 짓이기고 다닐 것이다.”
저 악마는 성경을 알아도, 통째로 아는 것 같아도, 아주 잘못 알고 있는 게 분명해. 말씀을 모든 죄인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순종할 말씀으로 아는 게 아니라, 자기 욕심, 자기 명예, 자기 권력을 위해 이리저리 뻥튀기고 왜곡시켜 쌈싸먹는 ‘말쌈’으로 아는 게 분명하다고! 못난 놈 같으니라고!
두 눈 감고 빙그레 웃으시던 우리 예수씨, 순간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어. 드디어 눈을 번쩍 뜨더니 큰소리로 호통을 치셨지. 눈에서는 레이져 광선이 뿜어 나왔어.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라' 하였다.”
마침내 악마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우리 예수씨의 주변이 변하기 시작했어. 그 옛날, 에덴의 첫 사람들이 뱀 같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기 전 모습이랄까? 우리 예수씨의 주변에 동물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 일 년에 한번 보기도 어려운 들짐승들은 물론, 내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예쁜 새와 동물들까지 예수씨 곁에 다가왔단다. 마치 동방박사들이 찾아오듯이 예수씨께 찾아와 경배를 했단다. 그래, 난 이제부터 우리 예수씨를 예수님이라고 부를거야. 그리고 난 더 이상 외로워하지 않기로 다짐했어. 우리 예수님 덕분에, 광야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풍성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 맞아맞아, 광야는 정말 대단한 이야기보따리야! 그리고 내가 누구야? 바로 싯딤나무잖아! 하나님의 사랑말씀 듬뿍 담긴 언약궤를 담았던 바로 그 나무! 세상 어떤 악마의 유혹도 바로 그 한 마디로 물리칠 수 있는 사랑말씀 담은 언약궤를 만든 싯딤나무가 바로 나야 나! 그리고 그 사랑말씀을 그토록 사랑하는 우리 예수님! 밥보다 더 사랑하신 바로 그 말씀!
얘들아. 난 나무야. 유대광야 싯딤나무야. 한국사람들은 나를 조각목이라고도 하고 아카시아 나무라고도 부르지. 그런데 앞으론 나를 이렇게 불러주면 어떨까? 우리 예수님이 어루만지셨던 말씀나무, 광야의 사랑나무라고! 싯딤나무 사랑걸렸네! 얼쑤!
[* ‘신명기를 신명나게...’는 말놀이입니다. 신명기는 신명기(神明記)가 아니고, 신명기(神命記)도 아니고, 신명기(申命記)입니다. 말씀을 거듭해서 기록한다는 뜻이죠. 신(申)은 ‘거듭할 신’, ‘되풀이할 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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