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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2013년 3월 3일, 사순절 3주 예배준비 노트

어느덧 사순절 3주입니다.

한 주간 성서일과 독경과 묵상을 하면서, 두 개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시 63:3)

“무화과나무 심은 뜻은”

 

먼저 성서일과 4본문을 올립니다.

 

[성서일과 4본문]

 

(사 55:1-9)

1. 너희 모든 목마른 사람들아, 어서 물로 나오너라. 돈이 없는 사람도 오너라. 너희는 와서 사서 먹되,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와 젖을 사거라.

2. 어찌하여 너희는 양식을 얻지도 못하면서 돈을 지불하며, 배부르게 하여 주지도 못하는데, 그것 때문에 수고하느냐? "들어라,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으며, 기름진 것으로 너희 마음이 즐거울 것이다.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와서 들어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살 것이다. 내가 너희와 영원한 언약을 맺겠으니, 이것은 곧 다윗에게 베푼 나의 확실한 은혜다.

4. 내가 그를 많은 민족 앞에 증인으로 세웠고, 많은 민족들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다."

5.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너에게 달려올 것이니, 이는 주 너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너를 영화롭게 하시기 때문이다.

6. 너희는, 만날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너희는, 가까이 계실 때에 주님을 불러라.

7. 악한 자는 그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실 것이다.

8.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너희의 길은 나의 길과 다르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9. "하늘이 땅보다 높듯이, 나의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

 

(시 63:1-8)

1. 하나님, 주님은 나의 하나님입니다. 내가 주님을 애타게 찾습니다. 물기 없는 땅, 메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목이 마르고, 이 몸도 주님을 애타게 그리워합니다.

2. 내가 성소에서 주님을 뵙고 주님의 권능과 주님의 영광을 봅니다.

3.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생명보다 더 소중하기에, 내 입술로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4. 이 생명 다하도록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내가 손을 들어서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렵니다.

5. 기름지고 맛깔진 음식을 배불리 먹은 듯이 내 영혼이 만족하니, 내가 기쁨에 가득 찬 입술로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6. 잠자리에 들어서도 주님만을 기억하고 밤을 새우면서도 주님만을 생각합니다.

7. 주님께서 나를 도우셨기에 나 이제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즐거이 노래하렵니다.

8. 이 몸이 주님께 매달리니, 주님의 오른손이 나를 꼭 붙잡아 주십니다.

(고전 10:1-13)

1.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사실을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의 보호 아래 있었고, 바다 가운데를 지나갔습니다.

2. 이렇게 그들은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를 받아 모세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3. 그들은 모두 똑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고,

4. 모두 똑같은 신령한 물을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과 동행하는 신령한 바위에서 물을 마신 것입니다. 그 바위는 그리스도였습니다.

5. 그러나 그들의 대다수를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6. 이런 일들은, 우리 조상들이 악을 좋아한 것과 같이 우리가 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7. 그들 가운데 얼마는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백성들이 앉아서 먹고 마셨으며, 일어서서 춤을 추었다"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들과 같이 우상 숭배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8. 간음하지 맙시다. 그들 가운데 얼마가 간음을 하였고,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나 쓰러져 죽었습니다.

9. 그리스도를 시험하지 맙시다. 그들 가운데 얼마는 그리스도를 시험하였고, 뱀에게 물려서 죽었습니다.

10. 그들 가운데 얼마가 불평한 것과 같이 불평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파멸시키는 이에게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11. 이런 일들이 그들에게 일어난 것은 본보기가 되게 하려는 것이며, 그것들이 기록된 것은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경고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13. 여러분은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밖에 다른 시련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주십니다.

 

(눅 13:1-9)

1. 바로 그 때에 몇몇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해서 그 피를 그들이 바치려던 희생제물에 섞었다는 사실을 예수께 일러드렸다.

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런 변을 당했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3.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4. 또 실로암에 있는 탑이 무너져서 치여 죽은 열여덟 사람은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5.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6. 예수께서는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다가 무화과나무를 한 그루 심었는데, 그 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하고 왔으나, 찾지 못하였다.

7. 그래서 그는 포도원지기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내가 세 해나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하고 왔으나, 열매를 본 적이 없다. 찍어 버려라. 무엇 때문에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 그러자 포도원지기가 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올해만 그냥 두십시오. 그 동안에 내가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9. 그렇게 하면, 다음 철에 열매를 맺을지도 모릅니다. 그 때에 가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어 버리십시오.'"

 

 

[구약과 시편을 통하는 끈]

(1) 목마른 내 영혼

사 55:1 ‘너희 모든 목마른 사람들아’

시 63:1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목이 마르고’

 

(2)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 즐거운 내 영혼

사 55:2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으며 기름진 것으로 너희 마음이 즐거울 것이다.’

시 63:5 ‘기름지고 맛깔진 음식을 배불리 먹은 듯이 내 영혼이 만족하니.’

 

왜 그리 목말랐었고, 어떻게 해서, 좋은 음식으로 행복해지게 되는 것인가?

* 사울을 피해 유대광야를 떠돌던 다윗이 노래합니다.

* 오랜 타향살이 바벨론 포로들에게 이사야가 노래합니다.

 

** 이스라엘의 건기(乾期)의 고통은, 물 좋은 대한민국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그런 척박한 환경이 하늘을 한 번 더 바라보게 하고, 하늘 은혜를 사모하는 간절함을 배가시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바짝 말랐을 때 작은 물기조차 귀하고 순식간에 빨아들이듯이, 광야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더 민감합니다.

그러고 보면, 사순절 광야 길은 척박한 만큼 더 역동적이고 결사적인 은혜의 때입니다.

⇒ 사 55:6 ‘너희는 만날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너희는 가까이 계실 때에 주님을 불러라.’

 

*** 시편은 영혼의 목마름과 몸의 애탐을 더불어(더불로) 강조합니다.(1c)

그 까닭은 주님찾기, 주님 그리움이라 합니다.(1절)

다윗이 그리 목마르게, 애타게 그리워한 것은 주님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입니다.(3절)

 

**** 이사야는 목마름의 근원을 알지 못해서 헛고생하는(2a) 유대백성들을 일깨웁니다.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아서 계속 헛수고만 하고 있는 것이라고 깨우쳐줍니다.

이제 헛수고 그만하고 지금 가는 길 돌이켜 주님께 돌아와라. 그럼 된다! (7절)

⇒ 회개를 촉구합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를 통하는 끈]

신령한 것과 가까운 이들이 망한 사건들입니다.

 

* 고전 10:1-4절에는, 출애굽 시절,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서 신령한 음식과 신령한 물을 마신( ‘세례와 성찬’의 느낌이 들 정도로 거룩한 환경에서 살던) 이들이 멸망한 것입니다.(5절)

그 까닭은 7∼10절에 걸쳐 자세히 나옵니다.

 

** 눅 13:1-5절 역시 거룩해지려고 제사를 준비하던 이들과, (아마도 병이 낫기 위해 하늘의 은총을 기다리던, 실로암 못가에서 물이 동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실로암 근처 사람들이 몰살당한 것입니다.

⇒ 오늘 교회에서 예배와 선교를 일삼고 사는 우리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언뜻 보면, 회개할 기회도 없이 죽어버린 것 같아 참담한 생각도 듭니다.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고전 10:12)

 

 

[4본문 전체의 결론]

본문 가운데서 주제어를 하나 고르라면, 시 63:3절을 택하겠습니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

⇒ 그 사랑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는 아직 회개할 기회가 있습니다.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은 듯이 내 영혼이 만족할 수 있습니다. 기쁨에 가득 찬 입술로 주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사 55:7 악한 자는 그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실 것이다.

 

고전 10:13 여러분은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밖에 다른 시련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주십니다.

 

눅 13:6-9에서는, 끝내 한 번 더 회개의 열매를 기다리시는 주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나머지]

* 구약 본문은, 바벨론 포로지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막바지 말씀으로서, 다급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나오너라∼오너라∼사거라∼들어라∼들어라∼들어라∼찾아라∼불러라∼돌아오너라∼돌아오너라∼”

1절에, 너희는 와서 사서 먹되,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와 젖을 사거라에서 돈 내지 말라시면서 왜 “사서 먹되”라고 하셨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2절에 나오는 헛된 것에 돈을 내는 것과 비교하며 강조하는 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에서는, (값싼 은총이 아니라)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의 은총이 느껴진다고 주원남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 시편 본문 끝에, 7절은 엄마, 8절은 아빠에게 매달리는 딱 그 느낌입니다.

7. 주님께서 나를 도우셨기에 나 이제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즐거이 노래하렵니다.

8. 이 몸이 주님께 매달리니, 주님의 오른손이 나를 꼭 붙잡아 주십니다.

(7절은 지난 주 복음서 본문이 연상되어 더 그렇습니다. 눅 13:34b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를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 누가복음 13:1 "... 몇몇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 사실을 예수께 일러드렸다." 여기서 엉뚱한 생각이 듭니다.

⇒ 지난주 복음서 본문(눅 13:31)의 트라우마?... ‘여우 헤롯’의 기억 + 빌라도의 악행[희생제물 바치려는 사람을 죽여 그 피를 희생제물에 섞는 엽기행위] =⇒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시하는 듯한, 또 하나의 느낌!

 

**** 누가복음 13장, 3절과 5절이 쌍둥이 같이 똑같습니다. 마치 노래의 후렴구 같은 느낌도 듭니다.

원문에는 끝부분 딱 한 단어가 다를 뿐인데, 그 조차 같은 뜻의 단어입니다.

(ὁμοίως / ὡσαυτως = in the same way, likewisw)

혹시 뒤엣것이 좀 더 강조한 것은 아닌지 희랍어 전문가에게 물어봐야겠습니다.

영어성경들이나 한글성경들은 3절과 5절을 똑같게 번역했습니다.

 

***** 무화과나무 한그루 심은 뜻은 무엇인가?

수많은 포도나무들 사이에 한 그루 무화과나무를 보면서... 에덴동산의 생명나무가 떠오르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떠오릅니다.

(이하, 임봉대. ‘임봉대목사의 성경의 식물들 이야기, 무화과(FIG)' 『성실문화 53호』2007년. 193∼195쪽 참조)

성경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식물이름이 바로 무화과입니다. (창 3:7)

그러자 두 사람의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서, 몸을 가렸다

성경시대나 지금이나 그 지역에서 흔한 나무이며 소중한 나무입니다.

꽃은 작아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무화과 열매를 3차례 거둡니다. (5∼6월 이른 무화과, 8∼9월 여름무화과, 10∼11월 겨울무화과)

무화과나무는 예수님과 매우 관계 깊은 나무입니다. 사건들도 많았고, 예화도 많습니다.

 

 

[말씀 동화] 벽오동 심은 뜻은

 

“깽∼깽∼ 깽∼깨개갱”

오늘도 은동(恩童)이는 깽깽거리네요. 이렇게 자진모리장단으로 깨갱 깨갱하는 건 배가 되게 고프다는 신호죠. 저 녀석이 온 뒤로 우리 수도원이 아주 시끄러워졌어요. 수도원은 말씀과 기도, 노동과 침묵을 빼면 앙꼬 없는 찐빵인데, 왜 은동이는 아직도 침묵이 뭔지 모르는 걸까?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그렇다면 삼년은 지나야 침묵이 뭔지 알게 될까?

 

은동이의 깨갱 소리가 귀에 거슬릴만도 한데, 오늘도 우리 수사님들은 굳세게 침묵중이세요. 그래도 침묵수행은 나만큼은 못하시죠. 침묵, 하면 나거든요, 헤헤... 난, 우리 수도원의 침묵 골든벨, 침묵의 달인이랍니다. 내가 누구냐고요? 난, 나안∼ 오동나무예요. 우리 ‘거룩한 말씀의 수도회’ 현관문 앞 바위틈에 우뚝 선 오동나무죠. 나는 10년 전 바람결에 날아왔답니다. 마치 엄마처럼,, 따스한 흙은, 처음 본 나를 꼬옥 품어주었어요. 엄마뱃속처럼 따스했죠. 그리고 하느님이 내려주시는 이른 비와 늦은 비, 그리고 새벽이슬을 먹으면서 나는 마침내 땅 위로 싹이 나고 무럭무럭 자라났어요. 어느덧 여름철 땡볕을 가려주는 커다란 이파리 덕분에, 나는 우리 수사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고 있답니다. 누구보다도 가장 나를 아껴주시는 분은 바로 프란치스코 수사님이죠.

 

“오동나무야. 난 네가 참 부럽다. 이렇게 든든한 반석 위에 뿌리내리고 오직 하늘을 향해 굳세게 자라고 있는 너를 볼 때마다, 세상 욕망으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는 언제나 부끄럽단다. 언제나 자기 자리를 지킬 줄 아는 너는, 아무리 힘들 때도 침묵할 줄 아는 너는, 누구보다 성실한 수사로구나! 우리 믿음직한 오동수사(修士)!”

 

오늘도 프란치스코 수사님은 나를 사랑스럽게 어루만지시더니 드디어 독경을 시작하십니다.

너희 모든 목마른 사람들아, 어서 물로 나오너라. 돈이 없는 사람도 오너라. 너희는 와서 사서 먹되,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와 젖을 사거라. (이사야 55:1)

하나님, 주님은 나의 하나님입니다. 내가 주님을 애타게 찾습니다. 물기 없는 땅, 메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목이 마르고, 이 몸도 주님을 애타게 그리워합니다. (시편 63:1)

 

이번 주 내내 이 말씀을 들으면서 드는 생각이지만, 이번 주 말씀은 1절부터 왠지 목이 말라요. 사순절 3째 주일 말씀이라서 그런가? 나는 이번겨울 눈이 많이 온 덕분에 넉넉히 목을 축였는데, 오늘 구약과 시편은 너무 목마르네요. 오늘 성경말씀이 왜 이리 목이 마른지 저는 조금 알아요. 어제 프란치스코 수사님이 나와 은동이에게 말씀을 풀어주셨거든요.

그건 바로 하나님 말씀 듣지 못해서 그런 거래요. 말씀 듣고도 순종하지 못해서 그런 거였대요. 모든 게 욕심 때문이었대요. 제 욕심만 쫓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이 맘에 안 들고, 귀에 안 차고, 눈에 안 차는 법이래요. 반대로, 제 욕심보다 하나님 말씀이 먼저인 사람은 목마를 까닭이 없다고 하셨어요. 나한테는 좀 어려운 말이지만, 수사님 속에서도 욕망과 말씀이 늘 싸우고 있대요.

그런데 오늘 서신서 말씀은 더 이상해요. 물을 많이 마셨는데, 아주 좋은 물, 신령한 물을 마셨는데도 목이 말라요. 아니 아예 망해버렸대요.

 

3. 그들은 모두 똑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고, 4. 모두 똑같은 신령한 물을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과 동행하는 신령한 바위에서 물을 마신 것입니다. 그 바위는 그리스도였습니다. 5. 그러나 그들의 대다수를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고린도전서 10장)

 

수사님이 그러셨어요. 제 아무리 물을 많이 마셔도, 사람은 목마르게 되어 있대요. 제 아무리 신령한 성찬의 잔을 마셔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순간부터 우린 목이 타오르게 되어 있대요. 마시면 마실수록 더 목마르게 되는 바닷물을 들이키듯, 욕심을 들이키기 때문이래요.

 

그런데 이번 주 내내 가장 흥미로운 말씀은 바로 복음서 말씀이에요. 왜냐하면요... 등장인물 가운데 바로 내 이웃사촌이 등장하거든요. 바로 나처럼 늠름하게 어디서나 쑥쑥 잘 자라는 무화과나무예요. 그런데 무화과나무는 나보다 훨씬 좋은 장점이 하나 있답니다. 그게 뭔 줄 아세요? 그건 바로 열매예요. 열매가 아주 맛있거든요. 말리면 곶감처럼 달콤하고 영양가도 만점이래요. 그뿐 아니에요. 무화과나무는 우리 수도원 식구인 자두나무나 살구나무처럼 심고 나서 3-4년은 지나야 열매를 맺는 게 아니라, 심고 나서 1년만 지나도 열매를 맺을 만큼 쑥쑥 아무대서나 잘 자라고요, 또 그뿐 아니에요. 무화과나무 열매는 석 달 내내 열매가 열리는 듬직한 나무래요. 수사님이 그러는 대요, 이스라엘에서는 무화과 열매를 3차례나 거둔다네요? 무화과 과수원에서는 5∼6월에는 이른 무화과, 8∼9월에는 여름무화과, 10∼11월에는 겨울무화과를 거둔대요. 정말 대단하죠? 이스라엘에서 가장 흔한 과일나무고, 과수원뿐 아니라 어느 동네에 가도 다 있는 나무래요. 이렇게 흔해서 그런가? 무화과나무는 우리 예수님과 사연도 많고, 예수님 비유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유명한 나무예요. 그리고 뭐라더라? 무화과나무는 성경책에서 가장 먼저 이름이 등장하는 식물이라던데, 여러분 그거 알고 있었어요? 성경 어디서 처음 무화과나무 이름이 나오는지 아세요?

내가 좀 흥분했나? 말이 너무 많았네요. 난 우리 수도원 침묵대장인데, 오늘은 좀, 말이 많네..

아무튼, 일단 우리 수사님 독경하시는 예수님 말씀부터 들어볼까요?

 

6. 예수께서는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다가 무화과나무를 한 그루 심었는데, 그 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하고 왔으나, 찾지 못하였다. 7. 그래서 그는 포도원지기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내가 세 해나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하고 왔으나, 열매를 본 적이 없다. 찍어 버려라. 무엇 때문에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 그러자 포도원지기가 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올해만 그냥 두십시오. 그 동안에 내가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9. 그렇게 하면, 다음 철에 열매를 맺을지도 모릅니다. 그 때에 가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어 버리십시오.'" (누가복음 13장)

 

나는요, 이 말씀 처음 들을 때는, 좀 오싹했어요. 우린 찍어버리는 거 되게 싫어하거든요. 그건 죽음이니까! 사람들이 말하는 종말, 그거거든요. 그런데 말이죠. 이 말씀을 자꾸 듣다보니까,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오싹 소름이 돋는 게 아니라, 왠지 점점 마음이 따뜻해지는 거 있죠? 왜냐고요? 그건 바로... 하나님의 진짜 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생각해보세요. 일 년이면 열리는 무화과나무 열매가 삼년이 되도록 안 열리니... 그렇게 오래 기다리시는 하나님 마음... 수사님이 나를 어루만지시면서 그러셨어요.

 

“오동 수사. 이 말씀을 너는 잘 알겠지? 너는 나무니까 나보다 더 잘 알겠지? 에덴동산에 있는 수많은 과일나무 가운데서 가장 돋보이는 나무가 생명나무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듯이, 오늘 예수님 말씀의 주인공은 수많은 포도나무들 가운데 유일한, 한 그루 무화과나무였단다. 주인이 왜 포도원에 무화과나무 한그루를 심으셨는지 너는 아느냐? 포도원은 이스라엘이고 수많은 포도나무들은 유대백성들이란다. 그리고 무화과나무는, 뭐랄까... 저들의 양심나무랄까? 회개나무랄까? 좀 지나친 비유지만, 저들의 말씀나무랄까? 예수님께서 3년 동안 그렇게 복음말씀을 가르쳐주셨는데도 아무런 회개의 열매가, 변화의 열매가 없는 거야. 오늘 복음말씀의 주제가 바로 이거거든.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3, 5절)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주인이, 하나님께서 계속 기다리신다는 거야. 한 번 더 기다리신다는 거야. 이건 마치, 감옥에 갖혀서 처형될 날만 기다리던 사형수에게 한 번 더 살 기회를 주는 것과 같은 거야! 회개하기만 하면, 회개한 사람답게 세상에 나가서 살기만 하면 된다는, 참으로 어마어마한 일이지! 그래서 오늘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했어. 3.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생명보다 더 소중하기에, 내 입술로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4. 이 생명 다하도록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내가 손을 들어서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렵니다.(시 63)

 

아! 우리 프란치스코 수사님이 눈물을 글썽이시네요. 이번 주 시편 독송하실 때마다 이 구절에서 목소리가 떨리셨는데, 오늘은 마침내 눈물을 흘리시네요.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생명보다 더 소중하기에...” 맞아요. 우리 주님의 사랑은 변함없는 사랑이세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그 사랑!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할까요? 사실 이번 주 내내 예수님 비유말씀 들으면서, 속으로 오싹오싹하다가도 한편으론 으쓱으쓱한 마음이 들었었는데요. 오늘 예수님 말씀과 연관해서 내가 좀 으쓱거릴만한 입장이라서요. 무슨 뜬금없는 말이냐고요? 음... 혹시 봉황새라고 들어보셨나요?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요. 우리 프란치스코 수사님이 이번 주 복음말씀 독경하시면서 감동하셨는지, 아주 깊이 숨겨두셨던 옛날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예수님의 무화과나무 비유말씀을 독경하고 나서는, ‘무화과나무 심은 뜻은...’ 하시다가, ‘벽오동 심은 뜻은...’ 이러시는거예요. 그러고는 이상한 옛날 노래를 읊조리시겠죠?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려터니

내 심은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 오고

밤중에 일편명월만 빈가지에 걸렸에라

 

이 노래를 부르시고는 또 나를 어루만지시며 아주 흐믓한 미소를 띠며 말씀하셨죠.

 

“벽오동 수사, 이 노래 참 멋지지? 내가 너를 심은 뜻을 너는 아느냐?”

 

그리고는 또 씩 웃으시더니 이야기보따리를 슬금슬금 풀어내셨죠. 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으려면, 먼저 봉황이라는 새를 알아야 한답니다. 백제금동대향로라는 게 있어요. 그 꼭대기에 의젓하게 우뚝 서있는 새가 바로 봉황이에요. 머리는 닭을 닮았고, 턱은 제비를, 목은 뱀, 다리는 학, 꼬리는 물고기, 깃털은 원앙, 등은 거북, 발톱은 매를 닮은 전설의 새에요. 오색찬란한 몸에 다섯 가지 신비로운 소리로 우는데, 바로 이 봉황이 깃드는 유일한 나무가 바로 오동나무라는 사실이죠. 바로 그것 때문에 프란치스코 수사님은 나를 심었다는 거예요. 그건 바로 봉황새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인거죠. 어? 봉황은 전설의 새인데? 이게 무슨 뜻이지? 대단한 뜻이 담긴 상징인 것 같은데? 수사님의 이야기는 계속되었어요. 비밀은 이 동네 이름에도 담겨 있었죠.

 

“오동 수사! 우리가 양평의 수많은 동네 가운데서 왜 이 동네를 찾아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아느냐? 그건 바로 동네 이름이 봉성리이기 때문이야. 봉황의 마을이란 뜻이지. 원래 이름은 봉골이었단다. 바로 앞에 시원한 개울물이 흐르고 오동나무가 있으니, 이제 대나무만 있으면 완벽한 봉황의 마을이 되는 거야. 왜 대나무가 필요하냐하면, 봉황은 오동나무에만 깃들고 죽실(竹實)만 먹는 신비로운 새거든. 대나무 열매를 죽실이라고 부른단다. 그래서 난 전라북도 익산에서 대나무를 구해다가 심었지. 화분에서는 여러 해 잘 자라던 대나무가 산에 심자 곧 죽고 말았단다. 아마 너무 추웠나봐. 그런데, 뜻밖에도, 대나무가 죽은 바로 옆에서 산죽이 자라기 시작한 거야. 그리고 지금은 매우 무성해졌지. 이건 그야말로 꿩대신 닭이랄까? 아니아니 이게 바로 꿩대신 봉황이라는거야! 아무렴, 그렇지, 봉황이지!

그런데 오동 수사. 너 그거 아느냐? 대나무는 평생 딱 한 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는 죽는단다. 정말 신기하지 않니? 그래서 나는 대나무를 보면 꼭 우리 예수님을 뵌 것 같구나. 대쪽같이 곧은 선비 예수님이랄까? 좀 어려운 말이지만, 케노시스라는 말이 있단다. 신약성경 빌립보서 2장 7절에 나오는 말씀인데, 예수님을 가리키는 표현이야. 우리말로는, ‘자기 비움’이라는 뜻이지. 하늘 임금님이 모든 걸 버리고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 곁에 오신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자기비움’아니니? 그리고 공생애 3년간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얼마나 철저한 자기비움을 실천하셨는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지. 그래서 대나무는 딱 예수님을 닮은 거야. 자라면 자랄수록 속이 텅 비어가는 대나무! 케노시스의 상징 대나무! 더구나 대나무는 평생 단 한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죽는다는! 십자가에서 빨간 피를 흘리며 죽어 가신 예수님이 느껴지지 않느냐?

그리고 이건 매우 소중한 우리 역사인데, 1894년 동학혁명 때의 일이야. 어수선한 시절, 때마침 보리흉년으로 전라도 사람들이 굶주려 죽기직전까지 갔을 때였지. 7, 8월, 평생 한 번 보기 어렵다는 그 신비로운 대나무 꽃이 피어오른 거야. 그것도 한 두 송이가 아니라 남북 온 지리산 굽이굽이마다 산죽꽃이 피어오르고 열매가 맺히는데, 그 열매 수만 포대를 추수해서 밥을 지어먹고 모두 살아나게 되었다는 역사! 물론 그러고 나서 산죽들은 다 죽고 말았지. 그건 마치 동학혁명군들이 죽어가는 것 같은, 그건 마치 오병이어를 이어 십자가 죽음 이후 지금도 계속되는 성찬과 같은... 많은 느낌이 담긴 역사란다.

봉황은 바로 이 산죽의 죽실, 즉 대나무 열매만 먹고 산다는 새야. 그래서 우리는 봉성리에 수도원을 세우고 벽오동과 대나무를 심으려 했던 거지.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서 우리 산죽에 죽실이 열리기만을 고대하고 있단다. 그래야 봉황이 날아와서 바로 너, 우리 오동수사 어깨위에 깃들일 테니까! 그런데 우리가 왜 그렇게 애타게 봉황을 기다리는지 아느냐? 이게 가장 중요한 알맹인데, 그건 바로, 봉황이 나타나면 성군(聖君), 즉 성스러운 임금님이 오시고 태평성대가 시작된다는 전설 때문이란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을 상징하는 문양에 봉황그림이 들어있는 거야. 그럼 지금 우리 대통령이 성군인가? 아니지, 지금이 어떤 시댄데, 대통령보고 성군이라고 하겠어? 우린 바로 예수님을 기다리는 거야. 거룩하신 임금님, 평화의 임금님 예수! 다시 오실 우리 예수님! 한결같은 사랑덩어리 우리 예수님 어서 오시길 비는 마음으로, 마치 처음에 예수님 오실 길을 미리 닦았던 세례요한처럼, 다시 오실 예수님 길을 닦는 것 같은 봉황을 기다리는 것이고, 그 봉황이 어서 오도록 대나무 열매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란다. 어때 좀 복잡하지만 이제 좀 정리가 되느냐?

그런데 오늘 성서일과에 따른 본문말씀들이 모두 ‘회개’를 가르치시는 걸보니, 우리 주인께서 포도원에 무화과나무 한그루 심으신 뜻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보려하심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니, 봉성리에 벽오동 심은 뜻은, 봉성리에 산죽을 심은 뜻은, 그건 바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보려한 것이로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구나.

벽오동 수사! 하나님께서 너를 여기 심으신 뜻을 이제 알았다. 우리가 가던 길 돌이켜, 내 욕망의 길 돌이켜 주님 말씀을 향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 아직도 그거 하나만을 기다리신다는 사실, 그 때문에 우리 예수님 다시 오실 때를 아직도 조금 더 미루시며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너를 볼 때마다 그 사실 꼭 기억하라고, 그래서 너를 심어주신 것이로구나!”

 

얘들아! 나는 오동나무야. 성은 벽, 이름은 오동! 비록 푸른색은 아니지만, 벽오동이야! 하나님께서 무화과나무 한그루 심으신 그 뜻을 오늘도 기억나게 하는 벽오동이야! 나를 볼 때마다 봉황새가 날아왔는지 잘 살펴보렴. 그런데 봉황은 다른 곳이 아니라 너희 마음 안에서 찾아야 하는 거 알지? 벽오동과 대나무는 바로 너희 마음 안에서 지금 자라고 있단다.

[이정훈 지음, 2013년 3월 2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