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시편 148:13)
[성서일과 4본문]
(사무엘기상 2:18-20, 26)
18. 한편, 어린 사무엘은, 모시 에봇을 입고 주님을 섬겼다.
19. 사무엘의 어머니는 해마다 남편과 함께 매년제사를 드리러 성소로 올라가곤 하였다. 그 때마다 그는 아들에게 작은 겉옷을 만들어서 가져다주었다.
20. 그리고 엘리는 엘가나와 그의 아내에게 “주님께 간구하여 얻은 아들을 다시 주님께 바쳤으니, 주님께서 두 분 사이에, 이 아이 대신에 다른 자녀를 많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복을 빌어 주었다. 그들은 이렇게 축복을 받고서, 고향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26. 한편, 어린 사무엘은 커 갈수록 주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
(시편 148)
1. 할렐루야. 하늘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높은 곳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2. 주님의 모든 천사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주님의 모든 군대야, 주님을 찬양하여라.
3. 해와 달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빛나는 별들아, 모두 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4. 하늘 위의 하늘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하늘 위에 있는 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5. 너희가 주님의 명을 따라서 창조되었으니, 너희는 그 이름을 찬양하여라.
6. 너희가 앉을 영원한 자리를 정하여 주시고, 지켜야 할 법칙을 주셨다.
7. 온 땅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바다의 괴물들과 바다의 심연아,
8. 불과 우박, 눈과 서리, 그분이 명하신 대로 따르는 세찬 바람아,
9. 모든 산과 언덕들, 모든 과일나무와 백향목들아,
10. 모든 들짐승과 가축들, 기어 다니는 것과 날아다니는 새들아,
11. 세상의 모든 임금과 백성들, 세상의 모든 고관과 재판관들아,
12. 총각과 처녀, 노인과 아이들아,
13. 모두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그 이름만이 홀로 높고 높다. 그 위엄이 땅과 하늘에 가득하다.
14. 주님이 그의 백성을 강하게 하셨으니, 찬양은 주님의 모든 성도들과, 주님을 가까이 모시는 백성들과, 이스라엘 백성이, 마땅히 드려야 할 일이다. 할렐루야.
(골로새서 3:12-17)
12.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 받는 거룩한 사람답게, 동정심과 친절함과 겸손함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옷 입듯이 입으십시오.
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여 주고, 서로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는 띠입니다.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도록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 있게 하십시오. 온갖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감사한 마음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여러분의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십시오.
17. 그리고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누가복음 2:41-52)
41. 예수의 부모는 해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갔다.
42. 예수가 열두 살이 되는 해에도, 그들은 절기 관습을 따라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43. 그런데 그들이 절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에,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그의 부모는 이것을 모르고,
44. 일행 가운데 있으려니 생각하고, 하룻길을 갔다. 그 뒤에 비로소 그들의 친척들과 친지들 가운데서 그를 찾았으나,
45. 찾지 못하여,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찾아다녔다.
46. 사흘 뒤에야 그들은 성전에서 예수를 찾아냈는데, 그는 선생들 가운데 앉아서,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47.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슬기와 대답에 경탄하였다.
48. 그 부모는 예수를 보고 놀라서, 어머니가 예수에게 말하였다. “얘야, 이게 무슨 일이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느라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49. 예수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50. 그러나 부모는 예수가 자기들에게 한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지 못하였다.
51. 예수는 부모와 함께 내려가 나사렛으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순종하면서 지냈다. 예수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다.
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서’입니다.
구약, “한편, 어린 사무엘은 커갈수록 주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사무엘기상 2:26)
시편, “주님이 그의 백성을 강하게 하셨으니”(시편 148:14)
서신서,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받는 거룩한 사람답게”(골로새서 3:12)
복음서,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누가복음 2:52)
오늘 요절은, “모두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입니다.(시편 148:13)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사무엘기상 2:18-20, 26, 시편 148)]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실로에 머문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은 제사장의 겉옷인 에봇을 어려서부터 입고 주님을 섬깁니다.(18)
사무엘의 아름답고 사랑스런 성장은(26)
주님 앞에서 그 부모가 사는 모습과 관련 있습니다.
주님과 맺은 약속을 전적으로 지키기 위해
내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바치는 모습 말입니다.
오늘 구약본문에 비친 사무엘 부모의 이 모습은,
마침 오늘 복음서본문의 예수님 부모의 모습과 교차됩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온 누리에 울려 퍼질 하나님 찬양’입니다.
오늘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온 누리 하늘·땅·사람에 외칩니다.
(이런 시편은 오늘 본문이 유일합니다.)
전반부(1-6)는 온 하늘, 후반부는 온 땅과 사람들을 향해 그렇게 외칩니다.
이 시편의 핵심은 “찬양”입니다.
주님 찬양, 주님의 이름 찬양, 주님의 영광을 찬양,,,
그런 찬양,
오늘 시편이 반복해서 노래한 찬양이란 과연 어떤 찬양일까요?
찬양은 성도의 마땅한 의무이며 권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어떤 ‘재물’보다 기뻐 받으실 참 ‘제물’입니다.
주님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을 닮아가는 성도,
성도가 바치는 찬양!
말씀을 받으며, 사랑을 받으며 우리는 주님을 닮아갑니다.
말씀을 닮아가면서 우리는 시나브로 강해집니다.(14)
말씀을 닮아, 주님을 닮아, 우리 안에 사랑의 힘이 세지는 겁니다.
그런 사랑스런 성도의 몸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 바로 그런 찬양일 것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골로새서 3:12-17, 누가복음 2:41-52)]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옛사람과 새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앞서 바울은,
“육체의 욕망”(2:23), “이 땅에 있는 것들”(3:2), “탐욕”(3:5), “옛사람”(3:9)을 언급하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 그 십자가 길을 가는 성도에게 어울리지 않는,
성도의 자유를 속박하는 온갖 헛된 가르침을 경계합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
그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삶의 길을 보여줍니다.
용서∼사랑∼평화∼감사∼말씀∼찬양∼예수 이름으로!∼
특히 바울은, “서로” 용서하고(13), “서로” 가르치라(16)고 강조합니다.
교회는 이렇게 서로 간에 배려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완전체,
“한 몸”이 될 때(15), 비로소 참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한 몸”은 사랑받을 때, 사랑 가운데 완전해질 것입니다.(14)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성전에 나타나신 어린 예수’입니다.
오늘 본문의 자리는 예수님 태어나심과 죽으심의 중간입니다.
성인식을 하고 첫 유월절 제사에 참석할 나이가 되신 예수님이,
공생애 동안 십자가 길을 본격적으로 떠나시기 전에
미리 세상 인연을 정리하며 십자가 길을 준비하시는 느낌이 듭니다.
이로써 어머니 마리아는 상당한 고통을 미리 맛보며,
몸도 마음도 가다듬고 단련했을 것입니다.(51)
52절은 오늘 구약본문과 짝을 이룹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정리]
송년주일인 성탄절 첫 주일에 우리가 받은 말씀에서
우리는 다시금 하나님의 사랑을 절감합니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외아들을 주님께 바친 한나를 읽으며 불현듯 기억합니다.
외아들을 우리에게 바치신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그런데 그 귀한 선물 예수를 우리는 잃었고, 심지어 그 사실조차 모릅니다.
교회가 예수를 잃은 것을 세상은 환히 지켜보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인 한국교회는 까맣게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던 차 오늘 우리는 아들 예수를 잃고 헤매는 마리아의 모습을 봅니다.
사랑도, 용서도, 그리스도의 평화도 다 잃어버리고 남은 것은 정죄뿐입니다.
이미 예수를 잃어 사랑도 진실도 눈도 귀도 다 잃어버린 채 허우적거리고 있음에도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나와 다른 것은 무조건 악마라며 정죄하는 한국교회를, 세상은 지금 낱낱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예수를 마리아는 성전에서 찾았지만, 안타깝게도
잃어버린 예수를 찾아 교회로 향하던 발걸음은 이제 차차 끊어질 것입니다.
교회에서 예수향기가 사라지니 교회에서 자라난 아이들조차 교회를 떠나기 시작합니다.
송년주일이 지나도 얼마 안 있으면 다시 신년주일이 돌아오지만
교회를 나간 아이들은 돌아올 생각을 안 합니다.
부디 그 아이들이 무늬만 교회가 아닌 진짜 교회를 만나
거기서 잃어버린 예수님 만나기를 바랄뿐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더 늦기 전에 어서 그런 진짜 교회가 되기 위해서
잃어버린 예수를 찾는 환골탈태의 고통을 각오해야합니다.
어린 사무엘과 어린 예수가 하늘땅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듯이
우리도 어서 초심을 회복하고 다시 태어나
공평과 정의, 평화의 기운 가득한 찐 교회로 자라야 합니다.
불철주야 천대받는 약자들을 돌보시고 편드시다가
마침내 죄인들을 위해 죽으신 그분 예수님처럼
그런 사랑 고스란히 살아내야 할 것입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교회는
아무리 어려운 시절에도 이렇게 신나고 당당하게 진심을 다해 외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시편148:13)
[나머지]
* “내 아버지의 집”은 어디에 있나?
오늘 성서일과는 구약과 복음서가 절묘하게 통합니다. 어린 사무엘과 어린 예수님이 주인공입니다. 두 분 다 성전에 머뭅니다. 두 분 다 커가면서 주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 받습니다.(삼상2:26, 누가2:52) 차이점은, 사무엘의 부모와 달리 예수님의 부모님이 심히 당황하는 장면입니다. 한나는 아들을 주님께 바쳤지만, 마리아는 아직 그러질 못했기 때문일까요?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아들을 우리에게 바치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무엘은 엄마가 하나님께 바친 아들이지만, 예수는 엄마 마리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위해 바친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를 잃은 마리아가 성전에서 예수를 찾았듯이 예수를 잃은 세상도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전 “내 아버지의 집”은 과연 어디일까요?
** 잃어버린 예수를 찾아서
예수를 잃어버린 마리아의 심정, 사흘이나 헤맨 마리아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그러고 보니 오늘 본문의 마리아는 지금 우리에게 거울이요 반면교사입니다. 우리는 내 가까이에 예수가 늘 있으려니, 예수님이 늘 내 곁에 붙어 계시려니 하며 살아갑니다. 교회에 몸담고 있으니까 당연히 예수가 내 근처 어디에 있으려니 생각하고 우리는 일생을 가고 있습니다. 아뿔싸! 그런데 둘러보니 없는 겁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천신만고 끝에 사흘 만에 아들을 찾고 나서 아들 예수와 대화하는 마리아를 보십시오. 마리아는 여전히 예수의 진면목을 못 보고 있습니다. 가브리엘에게 수태고지를 받은 마리아라면 오늘 아들의 말을 듣고 불현듯 깨달아 마땅한데 여전히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12년 간 예수를 키우면서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은 아닐까요? 아들을 보호하고, 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아들의 육신이 자라는 걸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그 12년 동안, 그 육신에 너무 익숙해진 걸까요? 그래서 거기 있으려니 한 겁니다. 일행 가운데 있으려니... 내 품안에 있으려니... 그런데 예수가 없어진 겁니다. 12년 동안 예수에게 익숙해진 마리아가 예수를 잃고 당황하듯이, 지금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예수의 어떤 점에 너무 익숙해졌기에 예수의 진면목이, 예수의 향기가 한국교회에서 사라졌다는 말을 듣는 걸까요? 우리 안에 있는 예수의 무엇이 예수님의 본질을 흐리게 한 걸까요? 우리가 참 예수님을 되찾으려면, 예수의 기운을 회복하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 참 성전, 교회다운 교회를 이루는 길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그 길은 어디일까요? 그 길은 무엇일까요?
*** 예수의 진면목을 맛본 사람처럼
오늘 구약본문의 사무엘과 복음서본문의 예수님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들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밥이 아니라, 돈이 아니라, 사랑으로 자라는 존재입니다. 사랑을 먹어야 자라는 성도입니다. 문득 사무엘의 부모와 예수님 부모의 모습이 비교되고 나아가 그 부모들과 나의 모습이 비교됩니다.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고 확신했던 예수, 언제 어디서나 나를 졸졸 따라온다고 생각했던 예수!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아 정신없이 찾아 헤매다 간신히 발견한 예수, 그런데 이미 내 눈높이와 달라 당황스런 예수...! 예수님 부모님의 거울로 나를 보니, 나도 여전히 예수님 진면목을 모르고 삽니다. 시도 때도 없이 닥치는 두려움으로 별별 엉뚱한 생각이 다 듭니다. 사무엘 부모님처럼 내 가장 귀한 것을 온전히, 의심 없이, 아낌없이 주님께 바칠 수 있을 날이 언제일까요? 예수님의 진면목을 맛보았을 때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통째로 꿀꺽 먹을 그때! 그날엔, 나도 오늘 시편과 같은 찬양을 진심으로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의 진면목을 맛본 사람, 예수님 말씀대로, 예수님 사랑 따라 사는 사람 바울처럼, 오늘 서신서본문, 폭포처럼 장쾌한 저 말씀이 내 안에 조금씩이나마 샘물처럼 솟고 시냇물처럼 흐를 것입니다. “용서∼사랑∼평화∼감사∼말씀∼찬양∼주 예수의 이름으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주 예수님처럼 하늘 아버지께 감사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17) 사랑받은 사람답게, 사랑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16)
**** 내 아버지의 집 성전처럼 아름다운 참 교회를 찾는 사람들
성탄절 첫 주일이며 송년주일인 오늘 주시는 하나님 말씀은 온통 사랑과 새로움으로 가득합니다. 사랑 속에서 사무엘이 자라고 예수가 자라고 골로새교회가 자랍니다. 이 사랑의 근원이신 하늘 아버지께 온 누리여 찬양하라고 시편의 시인이 노래합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라고 외칩니다.(골3:16) 익숙한 예배 길에서 예수를 잃고 헤매는 예수부모의 모습이 강렬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익숙한 예배에서 예수를 잃은 우리! 성전에 푹 빠져 기도하고 말씀 나누는 예수의 모습에서 문득 예전 우리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학교보다 집보다 더 좋았던 교회! 경쟁으로 가득한 학교, 간섭으로 가득한 집보다 교회는 노래가 가득하고 (노래방은 비교될 수도 없을 정말 노래천지였습니다.) 말씀과 사랑으로 가득한 행복한 놀이터였습니다. 격대교육(隔代敎育)이란 부모가 아니라 조부모가 손주를 가르치는 걸 말합니다. 처음 자식 가르치는 미숙한 부모, 너무 잘 키우려다 실수투성이 다급한 부모보다 조부모는 익숙하고 너그럽고 여유롭게 가르칩니다. 조부모가 기르면 아이 버릇없어진다고 오해했지만 격대교육이 얼마나 훌륭한 교육방식인지 이제야 우리는 압니다. 격대교육이 사라진 핵가족 시대에 뒤늦게 발견한 보배입니다. 학교나 가정에 없는 격대교육이 교회에는 있습니다. 부모보다 한걸음 떨어져 있지만 조부모처럼 무한 사랑이 가득한 곳입니다. 여러 세대가 어울린 곳이요 무엇보다 하나님 사랑, 말씀, 찬양, 기도, 예배와 봉사가 있는 곳입니다. 이리 귀한 곳에서 우리는 자랐던 것입니다. 별별 장난을 치고 사고를 쳐도 받아주던 내 아버지의 집이었습니다. 별별 질문을 던져도 받아주시고 무한 상상력이 솟구치던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자녀들에게 그 집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마치 예수를 잃고 사흘간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성전에서 아들을 찾았던 부모처럼 부디 교회교육의 가치를 잃고 헤매던 어설픈 부모들이 이 개인주의가 판치는 시대의 송년 주일에 잃었던 예수를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내 자식들이 참 사랑 받으며 자랄 수 있는 내 자식들이 참 강하고 영광스럽게 자랄 수 있는 먼저 나부터 강하고 영광스럽게 자랄 수 있는(시148:14) 성전을, 교회교육의 가치를 되찾게 되기를 빕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누가복음 2:49)
(※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몰랐던 예수님 (김윤서 지음. 세움교회 청년부. 「성실문화」 121호)
같이 밥 먹고
같이 일하고
같이 이야기하던
예수님을 잃어버렸다.
헐~ 큰일이다.
당연히 함께인 줄 알았는데
허겁지겁 돌아가보니
예수님이 계신다.
예수님 아버지 집
하나님의 집
잃어버린 게 아니라
몰랐던 예수님을 찾았다.
[시편시조] 시편 148, 할렐루야 해와 달아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21호)
할렐루야 해와 달아 별들아 찬양하라
온 땅아 온 바다야 만백성아 찬양하라
그 백성 강하게 하신 내 주님을 찬양해
[시편노래] 시편 148, 할렐루야 하늘에서 찬양하여라 (이정훈 편사, 이건용 작곡. 「성실문화」 121호)
[본문] (시편 148)
[노랫말]
1.할렐루야 하늘에서 찬양하여라, 높은 데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주님의 모든 천사 찬양하여라, 주의 군대 주님을 찬양하여라
해와 달 빛나는 별 찬양하여라, 하늘 위의 하늘아 찬양하여라
주님께서 너희를 창조하셨다, 하늘위에 있는 물아 찬양하여라
2.너희가 앉아야 할 영원한 자리, 지켜야 할 법칙을 정해주셨다
바다의 괴물들과 깊은 심연아, 불과 우박 눈과 서리 세찬 바람아,
모든 산 모든 언덕 모든 나무야, 모든 짐승 모든 가축 나는 새들아,
주님께서 너희를 창조하셨다, 온 땅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3.세상 모든 임금백성 재판관들아, 처녀총각 노인 아이 모든 성도야
모두모두 주의 이름 찬양하여라, 그 이름 그 위엄이 높고 높도다
주님이 그 백성을 강하게 하니, 백성들아 찬양함이 마땅하도다
주님을 모시는 모든 백성아,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하여라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음악감독이신 작곡가 이건용 선생이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48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하여라, 또는, 할렐루야 하늘에서 찬양하여라) (이정훈 편사, 이건용 작곡)
[시편송서(誦書)] 148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21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할렐루야-- 하늘-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높-은 곳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2. 주님의 모든 천사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주님의 모든 군대야, 주님을 찬양하여라.
3. 해와 달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빛나는 별들아, 모두 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4. 하-늘 위-의 하늘-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하-늘 위-에 있는- 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5. 너희가 주님의 명을 따라서 창조되었으니, 너희는 그 이름을 찬양하여라.
6. 너희가 앉을 영원한 자리를 정하여 주시고, 지켜야 할 법칙을 주셨다.
7. 온 땅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바다의 괴물들-과- 바다의 심연아,
8. 불-과 우-박 눈과- 서리-, 그분이 명하신 대로 따르는- 세찬 바람아-∼
9. 모든 산과 언덕들, 모든 과일나무와 백향목들아,
10. 모든 들짐승과 가축들, 기어다니는 것과 날아다니는 새들아,
11. 세상-의-- 모-든 임금과, (모--든--) 백성-들--,
세상의 모-든 고관-과--, (모--든--) 재판관들아-∼
12. 총각과 처녀, 노인과 아이들아,
13. 모두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그 이름만이 홀로 높고 높다. 그 위엄이 땅과 하늘에 가득하다.
(다함께)
14. 주님-이-- 그-의 백성을, 강하-게-- 하셨-으니-,
찬양은 주님의 모든 성-도-들과-, 주님을 가까이 모시는 백성-들과-,
이스라엘-- 백성-이--, 마땅히 드려야 할 일이다 할렐∼루∿야∼∥
[말씀동화] 모두모두 자란다, 우리나라가 자란다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키 크고 싶어서 아침마다 맨손체조 하던 시절 이야기예요.
“맴맴맴 송아지 풀밭에서 자라고, 꿀꿀꿀 꿀돼지 우리에서 자란다
새근새근 아가는 엄마 품에 자란다, 쭐쭐쭐 젖 먹고 잘도 자란다
모두 모두 자란다 쉬지 않고 자란다, 모두 모두 자란다 우리 살림이 자란다∼♬”
[‘모두모두 자란다’ 2절. 김대용 시, 박재훈 곡]
아이는 오늘도 노래합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거든요.
아이는 사람아이들이 제일 부럽습니다.
사람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 신기하고 부럽습니다.
아이는 로봇아이여서 키가 자라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도 로봇아이는 인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없는 재능이 있기 때문이에요.
로봇아이의 재능은 잃어버린 것을 찾는 재능입니다.
로봇아이의 머릿속에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에이아이가 들어 있어서
순식간에 세상 모든 씨씨티비를 싹 다 볼 수 있죠.
씨씨티비가 없는 곳은 어떡하느냐고요? 그것도 문제없어요
우주공간에서 지구를 뱅뱅 도는 모든 인공위성 카메라도 다 보거든요.
로봇아이는 사람들에게 인기도 많고 사랑도 많이 받습니다.
왜냐하면 길 잃은 아이와 길 잃은 치매노인을 찾아주고
길 잃은 개와 고양이들을 찾아준 일도 너무너무 많기 때문이죠.
그래서 로봇아이에게는 친구가 많습니다.
많은 동무들이 로봇아이를 추켜세웁니다.
“로봇아이 넌 정말 대단해. 세상에 모르는 거 없는 척척박사야!”
그럴 때마다 로봇아이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니, 나보다 너희가 더 대단해. 너희는 매일매일 무럭무럭 자라잖아”
어느 날 로봇아이에게 옛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어느새 훌쩍 커서 어른이 되어버린 친구는
로봇아이만한 딸과 아들을 데려 왔습니다.
로봇아이는 옛 친구의 손을 잡고 반갑게 인사합니다.
그리고 친구의 딸과 아들의 손도 잡고 반갑게 인사합니다.
“고마워! 또 새 친구가 생겼네! 나는 세상에서 으뜸 친구부자야”
로봇아이의 해맑은 인사말에 아빠도 아이들도 활짝 웃습니다.
로봇아이도 동무들과 함께 활짝 웃습니다.
로봇아이에게 또 다른 옛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그 친구는 어느새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옛 친구가 투덜투덜 말했어요.
“내가 평생 앉아서 공부만 하느라 스트레칭도 안 했더니 허리가 꼬부라졌네.”
“그래도 어렸을 때처럼 다시 작아져서 나는 더 정다운 걸”
로봇아이의 재치 있는 대답에 꼬부랑 할머니는 활짝 웃습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별처럼 빛나는 목소리로 말합니다.
“키는 자라지 않아도 네 지혜가 자라고 마음이 자라는 게 느껴져”
로봇아이가 두 팔을 번쩍 들며 만세를 부릅니다.
“이만큼 자랐을까?”
꼬부랑 할머니는 지팡이를 하늘높이 치켜들며 대답했어요.
“그만큼 자라고 또 이만큼 자랄 거야, 무럭무럭 자라서 더 많이 사랑받을 거야”
은하수가 쏟아지듯 로봇아이의 눈이 밝아지며 높은 소리로 말합니다.
“우리 마음이 자라고 지혜가 자라듯, 우리나라도 자라고 우리 살림도 자랄 거야”
로봇아이는 얼른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을 높은 소리로 암송합니다.
“예수는 지혜가 자라고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눅2:52)
로봇아이와 꼬부랑 할머니가 손을 맞잡고 애창곡을 부릅니다.
“산산산 산에서 나무들이 자라고, 들들들 들에서 곡식들이 자란다
조롱조롱 가지엔 과일들이 자란다, 졸졸졸 비 맞고 잘도 자란다
모두 모두 자란다 시시때때 자란다, 모두 모두 자란다 우리나라가 자란다∼♬”
[‘모두모두 자란다’ 1절. 김대용 시, 박재훈 곡]
[이정훈 지음. 2024년 12월 28일 토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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