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하나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사야서 12:2)
[성서일과 4본문]
(스바냐서 3:14-20)
14. 도성 시온아, 노래하여라. 이스라엘아, 즐거이 외쳐라. 도성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15. 주님께서 징벌을 그치셨다. 너의 원수를 쫓아내셨다. 이스라엘의 왕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16. 그 날이 오면, 사람들이 예루살렘에게 말할 것이다. “시온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힘없이 팔을 늘어뜨리고 있지 말아라.
17. 주 너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 구원을 베푸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너를 보고서 기뻐하고 반기시고, 너를 사랑으로 새롭게 해주시고 너를 보고서 노래하며 기뻐하실 것이다.
18. 축제 때에 즐거워하듯 하실 것이다.” “내가 너에게서 두려움과 슬픔을 없애고, 네가 다시는 모욕을 받지 않게 하겠다.
19. 때가 되면, 너를 억누르는 자들을 내가 모두 벌하겠다. 없어진 이들을 찾아오고, 흩어진 이들을 불러모으겠다. 흩어져서 사는 그 모든 땅에서, 부끄러움을 겪던 나의 백성이 칭송과 영예를 받게 하겠다.
20. 그 때가 되면, 내가 너희를 모으겠다. 그 때에 내가 너희를 고향으로 인도하겠다. 사로잡혀 갔던 이들을 너희가 보는 앞에서 데려오고, 이 땅의 모든 민족 가운데서, 너희가 영예와 칭송을 받게 하겠다. 나 주가 말한다.”
(이사야서 12:2-6)
2.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다. 나는 주님을 의지한다. 나에게 두려움 없다. 주 하나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시다.”
3. 너희가 구원의 우물에서 기쁨으로 물을 길을 것이다.
4. 그 날이 오면, 너희는 또 이렇게 찬송할 것이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의 이름을 불러라. 그가 하신 일을 만민에게 알리며, 그의 높은 이름을 선포하여라.
5. 주님께서 영광스러운 일을 하셨으니, 주님을 찬송하여라. 이것을 온 세계에 알려라.
6. 시온의 주민아! 소리를 높여서 노래하여라. 너희 가운데 계시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참으로 위대하시다.”
(빌립보서 4:4-7)
4.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5.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7.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누가복음 3:7-18)
7.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닥쳐올 진노를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8. 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어라. 너희는 속으로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이다’ 하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
9. 도끼를 이미 나무뿌리에 갖다 놓으셨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어서 불 속에 던지신다.”
10. 무리가 요한에게 물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11.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속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12. 세리들도 세례를 받으러 와서,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13. 요한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너희에게 정해 준 것보다 더 받지 말아라.”
14. 또 군인들도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아무에게도 협박하여 억지로 빼앗거나, 거짓 고소를 하여 빼앗거나, 속여서 빼앗지 말고, 너희의 봉급으로 만족하게 여겨라.”
15. 백성이 그리스도를 고대하고 있던 터에, 모두들 마음속으로 요한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그가 그리스도가 아닐까 하였다.
16.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나보다 더 능력 있는 분이 오실 터인데,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소. 그는 여러분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오.
17. 그는 자기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려고, 손에 키를 들었으니,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오.”
18. 요한은 그밖에도, 많은 일을 권면하면서, 백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다시 오실 예수님, 그분이 오실 때(3)’입니다.
구약, “너를 사랑으로 새롭게 해주시고 너를 보고서 노래하며 기뻐하실 것이다”(스바냐서 3:17)
시편,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의 이름을 불러라”(이사야서 12:4)
서신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빌립보서 4:6)
복음서,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오”(누가복음 3:17)
오늘 요절은, “주 하나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시다”입니다.(이사야서 12:2)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스바냐서 3:14-20, 이사야서 12:2-6)]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기뻐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스바냐는 히스기야 왕의 고손자로서 왕족출신 예언자입니다.
요시야 왕 어린 시절, 즉 개혁사업을 시작하기 전
온 나라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던 시절의 예언입니다.
강대국 포로생활이 불을 보듯 훤하던 시절의 예언입니다.
그런데 지금 비록 곤고하고 추한 상태지만
앞으로 백성이 새로워질 것을 예언자는 내다봅니다.
(17, “너를 사랑으로 새롭게 해주시고”, 새번역)
그러니까 미리 기뻐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선포합니다.
감동적인 것은, 두 번이나 반복해서
주님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는 격려와,(15, 17)
더욱이 하나님께서 백성을 보고 기뻐 노래하신다는 구절입니다.(17)
상상을 초월하는 주님의 사랑이 정말 놀랍습니다.
18-20절은 15-17절 말씀에 대한 확증입니다.
요약하자면,
하나님께서 백성과 함께 계시고, 한없이 사랑하시니
기뻐하라, 마음껏 미리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14)
오늘 시편본문 대신 택한 이사야서의 소제목은 ‘감사찬송’입니다.
이사야서 12장은 모두 6절뿐으로, 매우 짧지만 큰 힘 주는 노래입니다.
강대국 사이에서, 하나님 말고 외교술에 더 의지하려던 어리석은 시절임에도
시편의 문학형식에 따른 이 감사찬송으로
다시 한 번 ‘구원의 하나님’을 기억하게 합니다.
특히 하나님을 “나의 노래”라고 한 부분은(2)
오늘 구약본문인 스바냐 3:17절의
하나님께서 “너를 보고서 노래하며”와 짝을 이룹니다.
서로 주고받으며 사랑가를 노래하니, 기쁨이 샘물처럼 솟습니다.
오늘 이사야서 노래의 핵심은,
지금 하나님의 진노의 과정, 이 위기는
오히려 하나님의 위로를(구원하심을) 경험할 기회이니
환란 중에도, 오직 그의 이름을 부르며(4) 두려워말고(2) 미리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빌립보서 4:4-7, 누가복음 3:7-18)]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주 안에서 하나 됨과 기뻐함’입니다.
본문의 상황은 바로 앞 구절에 잘 나옵니다.
교회에서 복음일꾼으로 일하다가 사이가 벌어진 두 자매,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화해를 바라며 바울은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기쁨의 근거는 임박한 재림입니다.(5)
이 기쁨은 관용과 직결되며(5)
이는 다시 “하나님의 평화”와 직결됩니다.(7)
“하나님의 평화”의 뿌리는 우리 계산을 뛰어넘는(7)
‘하나님의 관용’(용서와 화해)입니다.
‘하나님의 관용’을 맛본 자에게서 우러나오는 또 하나의 관용!
때론 원리와 원칙조차 내려놓을 수 있을 만큼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7) 관용!
거기서 “하나님의 평화”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일렁이기 시작합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세례요한’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알맹이는 8절과 18절에 반복해서 나옵니다.
전통적인 관념, 그 잘못된 <안전심리>를 어서 깨뜨려 각성하고,
“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어라”(8)
요단강 예언자 요한과, 갈릴리 예언자 예수님이 연이어 이구동성으로 외치신 복음,
“회개하여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태복음 3:2, 4:17)
회개의 과정은 힘들어도 그 열매는 천국이니,
회개에 알맞은 열매가 바로 천국의 기쁨, “기쁜 소식”(18), ‘복음’(의 열매)입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예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정리]
오늘 대림절 3주에 읽은 복음서본문의 분위기가 매우 무겁고 격렬합니다.
밀려드는 군중에게 회개하라고,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으라고 외치는
세례자 요한의 목소리가 우르릉 쾅쾅 우레처럼 쩡쩡합니다.
좋은 열매 맺지 않는 나무는 찍어서 불 속에 던지신다는(눅3:9)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라는(눅3:17)
이 무시무시한 말씀 끝에
백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고 복음서기자는 말합니다.(눅3:18)
어떻게 이 불안한 선포, 불편한 요구가 기쁠 수 있을까요?
그건 바로 주님께서 오셔서
“너를 사랑으로 새롭게” 해주실 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습3:17)
세례자 요한은 그 기쁨 맛볼 수 있는 길, 그 열쇠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사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것입니다.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기쁨을 미리 맛보며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세례요한의 복음을 듣고 있는 유대군중들보다도
심지어 세례자 요한보다도 훨씬 더 그 가능성이 높은 형편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부활을 듣고 믿고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부활의 기쁨, 부활의 신비를 믿지 못하고 삽니다.
죽음권세 단번에 무너뜨리신 부활의 능력, 부활 역사를 믿지 못하고 삽니다.
여전히 탐욕이 내 양심을 이기는 삶, 즉
여전히 죽음공포에 멱살 잡힌 삶을 살고 있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러나 부활신앙이 점점 무르익어가는 사람은 다릅니다.
부활신앙이 차오를수록 죽음공포는 점점 희미해져가고
내 속 깊은 곳에서 잠자던 양심이 깨어나 탐욕을 이기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속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눅3:11) 할 수 있는 이타적인 삶
이기보다 이타적인 삶이 더 행복한 새 사람이 되어가면서
마침내 저 마지막 때를 앞당겨 그 “기쁜 소식”을 미리 만끽하며
이렇게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 하나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시다”(사12:2)
[나머지]
* 나를 새롭게 해주시는 주님의 사랑
요한은 백성들이 자진해서 세례 받으러 나오는데도 욕설을 퍼붓습니다. “독사의 자식”이라는 요한의 욕설은 매우 충격적이고 구체적으로 회개의 열매를 촉구하는 요한의 선포는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건 마지막 심판의 자리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그 충격과 공포를 조금이라도 미리 느껴 회개로 이끌려는 배려인지도 모르니까요. 오늘 4본문의 공통분모는, 대림절 3주답게, ‘그날이 오고 있다!’입니다. 그런데 지난 두 주와 달리, 그 알맹이는 ‘기쁨’입니다. 포로생활 중에도 기쁘고, 옥중에서도 기쁘고, 세례자 요한에게 욕을 먹으면서도 기쁩니다. 왜냐하면 그날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날이 오고 있다는 말은 곧 임마누엘! “주님과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들의 기쁨 안에는 또 다른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뻐하는 걸 넘어, 하나님께서 우리 때문에 기뻐하신다는, 얼마나 기쁘셨으면 노래까지 부르신다는 말씀입니다.(스바냐3:17) (지난 주 4본문의 알맹이는 정화(淨化)였죠.) 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의 돈 욕심이 정화되고, 이모저모로 우리가 회개하고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를 보시며 노래하고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스바냐 3:17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를 보고서 노래하며 기뻐하신다는 말씀 바로 앞에 “너를 사랑으로 새롭게 해주시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 오묘하고 신비로운 말씀 때문에 가슴이 뜁니다. 이 말씀을 좀 더 깊이 알고 싶습니다. 이 말씀에 담기신 하나님의 마음, 그 가슴 뛰는 사랑을 느끼고 싶습니다.
** 화해와 관용의 사람이여
천국이 가까우면, 내가 그걸 정말로 느낀다면 나의 삶이 어떻게 변할까요? 예수님의 재림 심판을 진심으로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의 시선은 지금 어디를 향할까요? 마치 맹수가 먹잇감에 집중할 때처럼, 그 시선이 온통 먹잇감에 집중하여 한발 한발 전진할 때처럼, 모기가 떼로 와서 물고, 돌멩이가 발에 채여도 그런 건 맹수의 안중에도 없듯이...! 마치 한눈에 반한 사람 앞에선 주변의 소음조차 아름다운 음악이 되어버리듯이, 재림예수께만 몰두하여 그분만 바라보며 진심으로 기다리는 사람에겐, 일상의 갈등과 시시비비쯤은 마음 쓰지 않고 덮어줄 관용이 있습니다.(빌4:5) 예수님이야말로 관용의 절정이셨습니다. 우주 역사에 다시없을 용서와 화해의 극치셨습니다. 다시 오실 그분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용서와 화해에 대하여, 관용에 대하여 다시 새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서신서본문에서 관용을 보았다면, 복음서에서는 회개를 봅니다. 그러고 보니 관용과 회개는 뗄 수 없는 단짝입니다. 주님의 관용으로 내가 회개의 기회를 얻고, 회개에 알맞은 열매, 그 무르익은 열매 (나의)관용을 얻으니 말입니다. 오늘 서신서와 복음서에서 관용과 회개의 짝을 보았다면, 오늘 구약과 시편(이사야)에서 두 노래의 짝을 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나의 노래라 하며,(이사 12:2) 스바냐는 내가 하나님의 노래라고, 하나님이 나를 보고 노래하신다고 합니다.(스바 3:17)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서 노래하며 기뻐하신다니! 내가 하나님의 기쁨이라니, 하나님이 친히 노래 부르실 만큼 내가 하나님의 기쁨이라니! 「새번역성경」은 그게 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새로워졌기 때문이라고 번역합니다. 여전히 꽉꽉 막혀 관용의 관(寬)자도 꺼내지 못하는 상처투성이 나를 부디 주님께서 사랑으로 어루만져주시기를 빕니다. 그렇게 회개하고 새로워져서, 주님을 닮은 관용의 사람이 되길 빕니다. 주님 오실 날 고대하는 대림의 계절에!
*** 기쁨의 샘, 하나님의 웃음보
우리 세포 안에는 DNA repair gen, 즉 DNA 복구유전자정보라는 게 들어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DNA가 왜곡되어 암세포가 되는 것인데 이것을 정상으로 다시 복구한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면역력 강화 세포가 됩니다. 여기에 사람의 마음, 특히 ‘기쁨’이 매우 강력한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집단에서 경전을 읽고 찬송을 하고 열렬히 기도하는 집회에서 암과 같은 병이 치유되는 현상이 가능하다는 해석입니다. 기쁨 배가 훈련, 웃음꽃 피우기 훈련은 고대 인도의 전통의술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만, 신앙세계의 신비, 하나님의 영역을 전부 과학으로 설명하려드는 것 같아서 좀 걱정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기쁨이란 좋은 것입니다. 기쁨은 내 몸과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예방해주는 고마운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밝게 해주고, 내가 맡은 일을 할 때도 능률이 배가되게 할 수 있는 것이 기쁨입니다. 오늘 대림절 3째 주일 성서일과 4본문을 관통하는 끈이 바로 ‘기쁨’입니다. 그렇다면 그 기쁨의 원천은 무엇인가? 구약성경 스바냐 3장은 그 기쁨의 원인이 임마누엘입니다. 15절과 17절에,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니... 주 너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는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 즉 하나님과 우리가 동행하고 동거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기쁨입니다. 그런데 그게 우리만의 기쁨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도 큰 기쁨이시라는 말입니다. 얼마나 기쁘셨으면 노래까지 부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하는 경우야 다반사지만, 오!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노래하신다는 것입니다.(스바냐 3:17) 오늘도 여러분에게 말씀이 임하십니다. 부디 그 말씀으로 여러분 안에 깊이 묻혀있는 신령한 기쁨의 샘이 터지는 놀라운 역사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 신령한 기쁨의 샘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웃음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바치시는 사랑의 노래입니다.
**** 회개열매 맺어야 할 주의 재림이 기쁜 소식인 까닭은?
대림절 3주에 주신 본문말씀의 알맹이는 <가까이 오신 주님>이고 본문의 분위기는 <기쁨>입니다. 그런데 그 기쁨이 있기 전에 먼저 갈등과 분열, 고통의 과정이 있습니다. (구약) 우상숭배, 포로생활, 귀환, (서신서) 교회 내부 갈등과 화해, (복음서) 권력자들의 폭력, 그리고 회개, 그리고 모든 우상, 갈등, 폭력, 모든 고통의 바탕에는 탐욕이 있습니다. 탐욕과 우상숭배, 이 끊임없는 악순환을 끊어내신 십자가의 주인께서 지금 다시 오고 계십니다. 화해와 평화의 임금이신 그분께서 가까이 오셨다는 사실만으로도(빌4:5) 우리가 항상 기뻐할 이유는 충분합니다.(4) 오늘 세례자요한이 세리와 군인들에게 말한 명령에서(눅3:12-14) 오늘 우리네 권력기관 구석구석의 적폐청산의 과제가 떠오릅니다. 조금이라도 있는 자가 없는 자와 나누라는 명령에서(11) 오늘 우리네 나눔시스템, 공정사회의 화두가 떠오릅니다. 이 모두가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으려는(8) 노력입니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는 이 소식이 기쁜 소식입니까? 기쁜 소식이라면, 왜 기쁜 소식인지 하나하나 정리해봅시다. 기쁜 소식이 아니라면, 왜 기쁘지 않은지 생각해봅시다.
(※ 전에 올린 것을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가지치기 (이선구 지음. 성실교회 청년부. 「성실문화」 121호)
하늘 아래 과수원 제멋대로 자란 나무
좋은 열매 맺으려면 가지치기해야 하네
낮은 나무 햇빛 막는 불필요한 가지치고
많은 열매 욕심 대신 적은 열매 탐스럽게
추수의 날 다가오면 과수원 주인 내려와
좋은 건 하늘 식탁에 나쁜 건 도끼로 베니
전지가위 참고 견뎌 좋은 열매 맺어보자
[말씀시조] 이사야서12, 나의 힘 나의 노래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21호)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 주 하나님
구원의 우물에서 기쁨의 물 길어주실
주님을 찬송하여라 거룩하신 주님을
[말씀노래] 이사야서12, 감사찬송 (이정훈 편사, 이천진 작곡. 「성실문화」 121호)
[본문] (이사야서 12:2-6)
[노랫말]
1.나의 힘 나의 노래 내 구원의 주, 하나님을 의지하니 두려움 없네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으리, 너희는 기쁨으로 물을 길으리
2.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너희는 또 이렇게 찬송부르리
주 이름 부르며 감사하여라, 높으신 그 이름을 선포하여라
3.주께서 행하신 영광스런 일, 그 일을 만민에게 널리 알려라
이것을 온 세계에 널리 알려라, 소리 높여 주님을 찬송하여라
4.시온의 주민아 노래하여라, 소리를 높여서 노래하여라
너희 중에 계시는 거룩하신 분, 이스라엘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해설]
이사야서 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한양대 교목실장이신 작곡가 이천진 목사가 지은 ‘시편 119,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성실문화 115호) 가락에 붙였다.
[악보] 이사야서 12:2-6 (감사 찬송) (이정훈 편사, 이천진 작곡)
[말씀송서(誦書)] 이사야서12:2-6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21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2.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다. 나는 주님을 의지한다. 나에게 두려움 없다. 주 하나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시다.”
3. 너희가 구원의 우물-에서-, 기-쁨-으로 물-을 길을 것이다-,
4. 그 날이 오-면 너희는 또--, 이렇게 찬송할 것이-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의 이름을 불러라. 그가 하신 일을 만민에게 알리며, 그의 높은 이름을 선포하여라.
5. 주님께서-- 영-광스러운, (영-광스러운) 일-을- 하셨으니-,
주님을 찬-송하여-라--, 이것을 온- 세-계에 알려-라--∼
[다함께]
6. 시온-의-- 주민-아--!, 소리를 높여서 노래하-여-라--,
너희 가운데- 계시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참으로 위대하∼시∿다-∼∥”
[말씀동화] 여의도 양떼구름의 어깨춤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춤추는 야광봉 불빛 따라 으쓱으쓱 어깨춤 추던 시절 이야기예요.
휘리릭 바람이 붑니다. 을씨년스런 겨울바람이 붑니다.
어디서 날아왔을까?
한 뭉치 마른풀들이 서울 여의도의 차도 경계석에 막혀 이리저리 꿈틀거립니다.
하루 이틀 겨울바람에 동글동글 춤추던 마른풀 뭉치들이
오! 딱 높은음자리표처럼 자리 잡습니다.
큰맘 먹고 여의도 국회 시위에 올라온 시골 아저씨가
이리저리 여의도 거리를 구경하며 돌아다니다가
문득 길바닥 높은음자리표 마른풀 뭉치를 발견하고 경탄합니다.
“오! 예술이네! 이건 바람의 예술이네”
어느덧 여의도 하늘 한가득 몰려온 양떼구름 가운데서
가장 작고 볼품없는 아기구름이 종알거립니다.
“바람의 예술은 바로 나죠, 바람의 예술은 구름이죠!”
조금이라도 더 커 보이려고 자꾸자꾸 숨을 들이키는 아기구름에게는
또 하나의 꿈이 있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태워드리는 꿈
예수님 전용 구름이 되는 꿈!
“예수님 걱정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온 하늘에 꽉 찬 양떼구름을 바라보며 소구가 소리칩니다.
“하늘에는 양떼구름, 땅에는 시위대구름!”
소구가 운을 맞추며 으쓱으쓱 어깨춤을 추자
함께 온 작은오빠 진구가 문득 시 한수 지어 읊조립니다.
“양떼구름 아래, 목자 잃은 양떼 같은 우리에게
구름타고 오시는, 참 목자 예수께서 노래하시네
친구들아
힘내라
형이 가고 있어!”
주거니 받거니 소구와 진구의 맞장구에 말없이 미소 짓던 선구가
문득 땅바닥에 누워있는 마른풀 높은음자리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외칩니다.
“오! 이거야말로 딱 바닥소리네!”
마치 높은음자리표가 겨울바람에 춤추며 하늘높이 치솟듯이
이제 곧 여기저기 밑바닥 소리들이 노래가 되어 합창이 되어
온 하늘을 울릴 것만 같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덧 국회 앞 시위대의 구호는 온통 떼창으로 변하고 있고
여기저기 피어나는 양광봉, 응원봉의 물결이
신바람 나게 춤추기 시작합니다.
소구진구선구는 시위대의 떼창에 맞추어 으쓱으쓱 들썩들썩 어깨춤을 추며
교회학교에서 배운 말씀노래를 읊조립니다.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어라∼ 도끼를 이미 나무뿌리에 갖다 놓으셨다∼”
(누가복음3:8,9)
시위대의 떼창 함성보다는 훨씬 작은 세미한소리 말씀노래지만
밤하늘 양떼구름은 그 노래에 들썩이기 시작하고
막둥이 아기구름은 다시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힘껏 내쉬면서
누구보다 신바람 나게 춤추기 시작합니다.
어느덧 시위대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앉은 소구진구선구는
시위대 떼창에 따라 한바탕 노래 부른 뒤에
다시 그 가락에 얹어 신명나게 말씀노래를 부르니
밤하늘 양떼구름이 으쓱으쓱 어깨춤을 춥니다.
“하나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하나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주 하나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시다”(이사야서 12:2)
[이정훈 지음. 2024년 12월 14일 토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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