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면서 늘 깨어 있어라”(누가복음 21:36)
[성서일과 4본문]
(예레미야서 33:14-16)
14. “나 주의 말이다. 보아라,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약속한 그 복된 약속을 이루어 줄 그 날이 오고 있다.
15. 그 때 그 시각이 되면, 한 의로운 가지를 다윗에게서 돋아나게 할 것이니, 그가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16. 그 때가 오면, 유다가 구원을 받을 것이며, 예루살렘이 안전한 거처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주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다’ 하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시편 25:1-10)
1. 주님,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립니다.
2.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께 의지하였으니,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내 원수가 나를 이기어 승전가를 부르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3.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수치를 당할 리 없지만, 함부로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고야 말 것입니다.
4. 주님, 주님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고, 내가 마땅히 가야 할 그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5. 주님은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주님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종일 주님만을 기다립니다.
6. 주님, 먼 옛날부터 변함없이 베푸셨던, 주님의 긍휼하심과 한결 같은 사랑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7. 내가 젊은 시절에 지은 죄와 반역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님의 자비로우심과 선하심으로 나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8. 주님은 선하시고 올바르셔서, 죄인들이 돌이키고 걸어가야 할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신다.
9. 겸손한 사람을 공의로 인도하시며, 겸비한 사람에게는 당신의 뜻을 가르쳐 주신다.
10. 주님의 언약과 계명을 지키는 사람을 진실한 사랑으로 인도하신다.
(데살로니가전서 3:9-13)
9.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 때문에 누리는 모든 기쁨을 두고, 여러분을 생각해서, 하나님께 어떠한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까?
10. 우리는 여러분의 얼굴을 볼 수 있기를, 또 여러분의 믿음에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줄 수 있기를 밤낮으로 간절히 빌고 있습니다.
11.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의 길을 친히 열어 주셔서, 우리를 여러분에게로 가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12. 또, 우리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 여러분끼리 서로 나누는 사랑과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여러분의 사랑을 풍성하게 하고, 넘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13. 그래서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굳세게 하셔서, 우리 주 예수께서 자기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 잡힐 데가 없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누가복음 21:25-36)
25.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서 징조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서 괴로워할 것이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올 일들을 예상하고, 무서워서 기절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 때에 사람들은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을 띠고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28.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일어서서 너희의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구원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29.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아라.
30. 잎이 돋으면, 너희는 스스로 보고서, 여름이 벌써 가까이 온 줄을 안다.
31.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로 알아라.
32.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다.
33.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내 말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해서, 방탕과 술취함과 세상살이의 걱정으로 너희의 마음이 짓눌리지 않게 하고, 또한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게 하여라.
35. 그 날은 온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닥칠 것이다.
36. 그러니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또 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늘 깨어 있어라.”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다시 오실 예수님, 그분이 오실 때’입니다.
구약, “그때 그 시각이 되면... 그가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예레미야서 33:15)
시편, “주님의 언약과 계명을 지키는 사람을 진실한 사랑으로 인도하신다”(시편 25:10)
서신서, “예수께서 자기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잡힐 데가 없게 해주시기를 빕니다”(데살로니가전서 3:13)
복음서,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게 하여라”(누가복음 21:34)
오늘 요절은, “또 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늘 깨어 있어라”입니다.(누가복음 21:36)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예레미야서 33:41-16, 시편 25:1-10)]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주님의 약속’입니다.
오늘 본문은 23:5-6절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고 우주적인 사건입니다.
백성의 불순종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과 예루살렘 멸망,
그럼에도 사랑의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회복의 약속입니다.
그 날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태어날 ‘의로운 가지’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15)
“복된 약속”이란(14) “공평과 정의”(15)
즉 “구원”(16)을 이루실 “의로운 가지”이신(15)
예수님이 오시리라는 약속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하나님의 용서와 인도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 시는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를 따라 지은 시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3, 5)이란
자신의 죄를 자각하고 회개의 길로 접어드는 사람,
즉, 가던 길 멈추고 하나님을 향하는 길을 찾는 사람입니다.(8)
그 길은 올바른 길(8), 곧 주님의 길(4), 진리의 길입니다.(5)
제대로 회개하기 시작하면 겸손해져서(9)
말씀에 순종하기 시작함으로써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의 손을 잡고 동행하게 됩니다.(10)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데살로니가전서 3:9-13, 누가복음 21:25-36)]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가기를 원하다’입니다.
데살로니가에 갈 수 없게 된 바울이
대신 보낸 디모데 편에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과 사랑을 확인하고
크게 위로받고 기뻐 감사합니다.(9)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길”은(11)
사랑의 길(친교), 곧 하나님 사랑의 통로입니다.
지금 바울은 그 길을 구하고 있습니다.(11)
이 사랑의 길, 친교의 길이 열림으로
성도간의 사랑과 이웃과의 사랑이 풍성해집니다.(12)
이 길이 바로 우리가 거룩해짐으로써 참 성도가 되는 길인 것입니다.(13)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인자가 오신다, 깨어있어라’입니다.
인자가 오심으로 일어날 세계사의 종말로
세상 사람들은 크게 무서워하고 제자들은 소망의 기쁨이 차오를 것입니다.(28)
이 모든 천재지변이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구원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28, 31)
이런 일이 다 일어날
“이 세대가 끝나기 전”이라는 구체적인 기간은 정확하지 않습니다.(32)
다만 누가는 사도행전 1:6-8절에서, 부활예수님의 육성을 통하여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라고 한 번 더 정리해줍니다.
오늘 예수님 말씀의 핵심은,
그 날이 덫과 같은 황망한 고통과 공포의 날이 아니라
기쁨과 구원의 날이 되도록
늘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36)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해설 일부 참조)
(예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정리]
대림절 첫 주일에 우리가 받은 말씀에는 반복해서 <길>이 나옵니다.
“주님의 길”, “내가 마땅히 가야 할 그 길”(시편25:4), “올바른 길”(8)
“우리의 길”(살전3:11)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 날을 기다리며 그 길을 닦아야 할 대림절,
이 절기 대림절기 때만이 아니라
우리 평생 그날을 기다리며 그 길을 닦아야 하는 것을 기억하게 하는 대림절에,
우리가 닦아야 할 그 길은 바로 우리의 일상(日常)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실 곳은(렘33:15)
다름 아닌 여기, 이 ”세상”, 우리의 일상입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곳이요, 이웃과 나누는 지금 여기입니다.(살전3:12)
“또한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게 하여라”(눅21:34)
이 말씀은 그 날이 세상 사람들에게 덫과 같이 닥칠 것이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덫이란 짐승이 늘 다니는 길에 설치하는 법입니다.
즉 그날, 주님 오시는 길이란, 고고한 별천지가 아닌 우리 일상이리라는 뜻입니다.
정교분리 운운하며, 심지어 그것을 엉뚱하게 해석하여
성도는 세상일에 관심 꺼야 한다고 주장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교회는 오히려 두 눈 부릅뜨고 부정·부패·불의한 권력자들을 감시해야 합니다.
“또 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늘 깨어 있어라”(눅21:36)
우리가 불의한 권력자들을 나무라는 것은
한편 그들이 회개하고 자기를 닦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일입니다.
이리하여 너와 나 우리가 마음을 모아 자신의 일상을 닦는 일이야말로
기도하면서 늘 깨어 있을 수 있는 길일 것입니다.
[나머지]
* 메시지(message)와 마사지(massage)
예레미야를 읽을 때마다 메시지와 마사지가 떠오릅니다. 1980년대 중반 어느 날, 청년부 활동 열심히 하던 제기동 동성감리교회 시절이야기입니다. 늘 똘똘하고 샤프한 후배였던 동원이가 자기 동기 여학생에게 핀잔을 줍니다. “마사지가 뭐냐, 메시지를! 넌 맨날 틀리더라...” 아마 청년부 회지 만들다가 생긴 일로 기억합니다. 7개 철자 가운데 하나를 잘못 쓴 겁니다. “e”를 “a”로 쓴 겁니다. 그게 그거 같은데, 모양도 비슷하고 발음도 비슷한데... 뜻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예레미야뿐이 아닙니다. 구약과 신약성경말씀의 예언자들은, 참 예언자들은 늘 왕따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천하의 엘리야조차 도망자 신세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어떻습니까? 둘 다 포악한 왕비들 심기를 잘못 건드렸다가 낭패를 당한 것입니다. 심지어 요한은 옥에 갇히고 목이 잘리기까지 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예언자가 정치, 경제, 사회 문제를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정치지도자의 부정한 사생활 문제까지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간혹 그런 설교를 할 때 ‘치는 설교’한다느니, ‘정치적’이라느니 합니다. 그런데 예언자는 그런 걸 외면해선 안 됩니다. 지금 우리 모습이 아무리 부끄러워도, 그걸 감추려는 사람들 앞에서, 말씀의 거울에 비친 그 추한 모습을 끄집어 내 직시하도록 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회개의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설교를 정치적이라느니, 정치적으로 편향되었다느니 한다면, 그건 이 마지막 때에, 어쩌면 회개의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막는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성경교사와 달리 예언자는, 예언자의 설교는 스스로 왕따와 테러 같은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고 ‘메시지’를 전해야 할 예언자가 성경말씀으로 사람들 마음을 ‘마사지’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 주님 오시는 길이 우리가 늘 다니는 길이고, 주님 오실 날이 우리가 늘 살아가는 일상인 까닭
대림절 첫 주일입니다. 대림절은 원래 재림예수를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대림절기 빛깔이 회개와 근신, 금식과 금욕을 상징하는 보랏빛인 것입니다. 주님의 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정확한 날짜를 알려고 해서도 안 되지만, 늘 깨어 기도하는 사람들은 그 날이 가까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살전5:4-5) 그래서 벗들에게 탐욕과 술 취함을 경계하는 것입니다.(누가21:34) 그래서 성도는 늘 깨어 기도하며 주님 오실 길을 닦아야 합니다. 그 길을 닦는 일이란, 먼저 나를 닦는 회개의 길입니다. 말씀으로 돌아가 주님의 길을 배우고 따라야 합니다.(시25:4-5, 8-10) 또 그 길을 닦는 일이란, 성도 간에 교통(친교)하는 사랑의 길,(살전3:11-12) 이웃과 사랑을 나누는 길입니다.(12) 그 길이 반들반들해 질 정도로 일상적으로 나누는 일입니다. 그게 우리가 거룩해지는 길, 그게 바로 그 길을 닦는 일입니다.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게 하여라”는 말씀을 보니(누가21:34) 오늘 본문들의 “그 날”과 “그 길”의 뜻이 통합니다. 주님 오시는 “그 날”과 주님 오시는 “그 길”은 만유를 초월해 계시는 그분께서 우리 삼차원 세계로 내려오심의 강력한 상징들입니다. 문제는 덫입니다. 덫이란 짐승이 늘 다니는 길에 설치하는 법입니다. 올무도 그렇고 창애도 그렇고, 그물도 그렇습니다. 주님 오시는 길이, 주님 오시는 날이 바로 우리가 늘 다니는 길, 우리가 늘 살아가는 일상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일상의 변화가 중요합니다. 작은 것부터 회개하여 방탕과 탐욕으로부터 해방하고 이웃과 한없이 나누는 일 말입니다.
*** 재림예수께서 타고 오실 구름이란
논배미 마다 추수도 마치고 온산 한가득 참나무 낙엽도 풍년이더니 어느덧 대림절입니다. 대림절은 원래 재림예수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오늘 대림절 1주 성서일과는 그 주제로 본문이 정해졌습니다. 재림예수께서 구름타고 오시리라는 말씀의 “구름”은(눅21:27) 뭉게뭉게 많은 상상을 일으킵니다. 먼저 주님의 영광,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 강렬한 빛을 가려주는 구름, 더럽고 위험한 것들로부터 우리를 막아주는 구름, 공간적으로 위의 상징, 셀 수 없이 많은 어마어마한 장관(壯觀)의 상징, 그리고 우리의 모든 경험과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오시는 그분, 즉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그분의 모습을 가려주는 구름도 떠오릅니다. 그밖에도 재림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구름이란 한없이 많은 세월 쌓이고 쌓인, 마라나타, 그 많은 마음들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또 하나, 가장 빨리 가장 최단거리로 우리에게 오시려는 주님 마음의 상징입니다. 오늘 본문들 가운데 두드러진 것을 꼽으라면 <그 날>과 <그 길>입니다. 우리에게 그날은 두렵고도 설레는 참 신비로운 날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눅21:31) 주님의 공평과 정의가 실현되는 날이요(렘33:15) “온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닥칠”(눅21:35) 아무도 피할 수 없는 날입니다. 마치 시므온과 안나처럼(눅2:22-) 오랫동안 그 날을 기다리며 “마라나타” 기도하고 찬양해온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 날을 앞당기고 싶어하는 우리들은(벧후3:12), 그 기쁜 날을 제대로 맞이할 그 길을 “주님의 길”에서 찾습니다.(시25:4) “내가 마땅히 가야할 그 길”(시25:4), “죄인들이 돌이키고 걸어가야 할 올바른 길”(8)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 잡힐 데가 없게”(살전3:13)될 그길... 오늘도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는 늘 깨어 기도하면서(눅21:36) “주님의 길”(시25:4) 바로 <풍성한 사랑의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살전3:12) “또, 우리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 여러분끼리 서로 나누는 사랑과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여러분의 사랑을 풍성하게 하고, 넘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살전3:12)
(※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하나님의 아들 (이인성 지음. 「성실문화」 121호)
해와 달과 별을 운행하시는 분
바람과 파도를 다스리시는 분
하늘에도 육지에도 계시는 분
나무와 새와 들꽃을 통해 자신을 보여주시는 분
지구 안에도 밖에도 위에도 아래에도 계시는 분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영원히 항상 똑같으신 분
나를 우리를 온 생명들을 두툼하게 돌보시는 분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시는 바로 그 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게 하소서!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게 하소서!
[시편시조] 시편 25, 주님을 기다리는 내 영혼 살피소서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21호)
주님을 기다리는 내 영혼 살피소서
마땅히 가야할 길 올바른 길 보이소서
주님의 한결같으신 사랑으로 이끄사
[시편노래] 시편 25,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립니다 (이정훈 편사, 고승하 작곡. 「성실문화」 121호)
[본문] (시편 25:1-10)
[노랫말]
1.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립니다, 내 하나님 내가 주님 의지합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주의 사람이, 부끄러움 당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을 기다리는 주의 사람이,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내 원수의 승전가를 막아주소서, 내 하나님 내가 주님 의지합니다.
2.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립니다, 나의 주여 주님의 길 보여주소서
나는 종일 주님만 기다립니다, 주님의 진리로 지도하소서
내 구원의 하나님 가르치소서, 주님의 진리로 가르치소서
마땅히 내가 갈 길 가르치소서, 나의 주여 주님의 길 보여주소서
3.옛날부터 베푸셨던 주님의 긍휼, 한결같은 그 사랑을 기억하소서
젊은 시절 나의 죄를 기억마시고, 자비롭고 선히 나를 기억하소서
바른 길로 돌이키게 가르치시고, 겸손한 자 공의로 인도하시며
그 말씀 지키는 자 사랑하시는, 선하고 올바르신 나의 하나님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아름나라 이사장이신 작곡가 고승하 선생이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25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립니다) (이정훈 편사, 고승하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25:1-10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21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주--님--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립니다-,
2.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께 의-지-하였으니-∼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내 원수가 나를 이기어 승전가를 부르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3.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수치를 당할 리 없지만, 함부로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고야 말 것입니다.
4. 주--님-- 주님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고--,
내가- 마땅히 가야 할 그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5. 주님은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주님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종일 주님만을 기다립니다.
6. 주--님-- 먼 옛날부터-, 변-함없-이 베푸-셨던-,
주님의 긍휼하심과- 한결 같-은- 사랑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7. 내가 젊은 시절에 지은 죄와 반역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님의 자비로우심과 선하심으로 나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8. 주님은 선하시고 올바르셔서, 죄인들이 돌이키고 걸어가야 할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신다.
9. 겸손-한-- 사람-을--, 공의로 인-도하시-며--,
겸비-한-- 사람에게는-, 당신의 뜻-을 가르쳐- 주-신다-∼
[다함께]
10. 주님-의-- 언약-과--, 계명을 지키는 사람-을--,
진실-한-- 사랑-으로-, (진실한 사랑으-로-) 인도하∼신∿다-∼∥
[말씀동화] 낙락장송(落落長松)의 오른팔이 떨어지던 날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낙락장송 아래서 낮잠 자다가 솔방울 맞고 이마에 혹 나던 시절 이야기예요.
“펄펄 눈이 옵니다 바람 타고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솜을
자꾸자꾸 뿌려 줍니다 자꾸자꾸 뿌려 줍니다∼”
(‘눈’ 1절, 이태선 작사, 박재훈 작곡)
사시나무가 노래합니다.
그런데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노래하네?
그도 그럴 것이 뒷동산의 어른이고 온 마을의 자랑이신
낙락장송의 오른팔이 뚝 떨어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냥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아예 쭉 찢어지듯 떨어져버렸습니다.
난생처음 겪는 큰 눈이 이틀이나 내리 쏟아지는 바람에
낙락장송은 가지에 쌓이고 쌓인 눈덩이 무게를 견디지 못한 겁니다.
“이름이 낙락장송(落落長松)이니까,
떨어질 락(落)이 두 개나 들었으니까...”
뒷동산 헛똑똑이 자작나무가 재잘재잘 아는 채 하려다가
주변 나무들의 눈총을 받고 머쓱해서 고개를 숙입니다.
그나마 낙락장송이니까 그만했지
빼빼마르고 키만 큰 소나무들 중에는 아예 허리가 뚝 부러진 것이 여럿입니다.
겨울 산의 대부분 나무들은 잎이 다 떨어져서 눈 피해가 없지만
소나무는 이파리가 생생해서 눈이 쌓이니
이렇게 무거운 눈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내가 태어나 백년 만에 이런 눈은 처음이야.
마지막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이 틀림없어.”
찢어진 오른팔에서 송진을 흘리며 낙락장송이 중얼거립니다.
곁에 있던 참나무가 낙락장송을 어루만지며 흐느낍니다.
여기저기 소나무 가지 꺾이는 소리에
겨울 산이 온통 우울합니다.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난 구원의 하나님을 인해 기뻐하리라”
(‘무화과나무 잎이 마르고’ Tony Hopkins 지음, 하박국3:17)
뒷동산 자락에 있는 수도원 가까이 사는 사철 푸른 차나무가 말씀노래를 부릅니다.
눈 무게를 견디지 못해 가지가 휘어져서
땅바닥에 코를 박고 얼어붙어버린 차나무가
낑낑 버티면서 수도원에 매일 듣는 성경말씀노래를 계속해서 읊조립니다.
“...포도나무의 잎이 말라 떨어지듯이, 무화과나무의 잎이 말라 떨어지듯이,
하늘에 있는 별들이 떨어질 것이다.”(이사야서34:4)
뒷동산 나무들의 친구 까마귀가 펄펄 날아와서
낙락장송의 어깨에 내려앉으며 말합니다.
“나무는 하나님의 가장 오랜 생물이고 오랜 친구지.
그래서 하나님의 기쁨과 분노, 슬픔과 즐거움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빨리 느끼고 공감하는 벗이지”
까마귀는 성경말씀을 읊조리면서
나무는 다른 생명을 먹여 살리는 생명의 원천이라고(창세기1:29-30)
나무는 하나님 창조의 순서에서도 해달별보다 고참이라고 부추깁니다.(창세기1:11-13)
“도시의 넓은 거리 한가운데를 흘렀습니다.
강 양쪽에는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내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 쓰입니다.”(요한계시록22:2)
이렇게 나무는 온 생명을 치료하며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주니,
그러고 보니 나무는 예수님을 참 많이 닮았다고
까마귀는 거듭해서 나무를 칭찬합니다.
까마귀의 덕담이 큰 위로가 되었는지
낙락장송과 부러진 소나무들이 뚝뚝 송진을 떨구며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여전히 언 땅에 코를 박고 있는 수도원 차나무도 성경말씀을 읊조립니다.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으면, 너희는 스스로 보고서,
여름이 벌써 가까이 온 줄을 안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로 알아라...”(누가복음21:29-31)
나무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먼저 가장 생생히 느끼는 나무는
오늘도 하나님의 때가 성큼 가까워졌음을 느낍니다.
세상 모든 생명들 가운데서 가장 빨리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낙락장송 어깨 위에 앉았던 까마귀가 얼른 아래로 내려갑니다.
차나무 푸른 잎 하나를 입에 물고 낙락장송 송진에 적시더니
푸드득 날개 치며 하늘높이 날아오릅니다.
[이정훈 지음. 2024년 11월 30일 토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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