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야고보서 5:16)
[성서일과 4본문]
(에스더기 7:1-6,9-10, 9:20-22)
1. 왕과 하만은 에스더 왕후가 차린 잔치에 함께 갔다.
2. 둘째 날에도 술을 마시면서 왕이 물었다. “에스더 왕후, 당신의 간청이 무엇이오? 내가 다 들어주겠소. 당신의 소청이 무엇이오? 나라의 절반이라도 떼어 주겠소.”
3. 에스더 왕후가 대답하였다. “임금님, 내가 임금님께 은혜를 입었고, 임금님께서 나를 어여삐 여기시면, 나의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이것이 나의 간청입니다. 나의 겨레를 살려 주십시오. 이것이 나의 소청입니다.
4. 나와 내 겨레가 팔려서, 망하게 되었습니다. 살육당하게 되었습니다. 다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남종이나 여종으로 팔려 가기만 하여도, 내가 이런 말씀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만한 일로 임금님께 걱정을 끼쳐 드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5.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 왕후에게 물었다. “그자가 누구요? 감히 그런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 자가 어디에 있는 누구인지 밝히시오.”
6. 에스더가 대답하였다. “그 대적, 그 원수는 바로 이 흉악한 하만입니다.” 에스더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하만은 왕과 왕후 앞에서 사색이 되었다.
9. 그 때에 왕을 모시는 내시들 가운데 한 사람인 하르보나가 말하였다. “하만이 자기 집에 높이 쉰 자짜리 장대를 세워 놓았습니다. 그것은 임금님을 해치려는 자들을 제때에 고발한 모르드개를 매달아 죽이려고 세운 것입니다.” 그 때에 왕이 명령을 내렸다. “하만을 거기에 매달아라!”
10. 사람들은, 하만이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세운 바로 그 장대에 하만을 매달았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왕의 분노가 가라앉았다.
9:20. 모르드개는 이 모든 사건을 다 기록하여 두었다. 그는 또, 멀든지 가깝든지, 아하수에로 왕이 다스리는 모든 지방에 사는 유다 사람들에게 글을 보내서,
21. 해마다 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을 명절로 지키도록 지시하였다.
22. 그 날에 유다 사람이 원수들의 손에서 벗어났으며, 그 날에 유다 사람의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었고, 초상날이 잔칫날로 바뀌었으므로, 모르드개는 그 이틀 동안을, 잔치를 벌이면서 기뻐하는 명절로 정하고,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는 날로 지키도록 지시하였다.
(시편 124)
1. 이스라엘아, 대답해 보아라. 주님께서 우리 편이 아니셨다면, 우리가 어떠하였겠느냐?
2. “주님께서 우리 편이 아니셨다면, 원수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났을 때에,
3. 원수들이 우리에게 큰 분노를 터뜨려서, 우리를 산 채로 집어삼켰을 것이며,
4. 물이 우리를 덮어, 홍수가 우리를 휩쓸어 갔을 것이며,
5. 넘치는 물결이 우리의 영혼을 삼키고 말았을 것이다.”
6. 우리를 원수의 이에 찢길 먹이가 되지 않게 하신 주님을 찬송하여라.
7. 새가 사냥꾼의 그물에서 벗어남같이 우리는 목숨을 건졌다. 그물은 찢어지고, 우리는 풀려났다.
8. 천지를 지으신 주님이 우리를 도우신다.
(야고보서 5:13-20)
13.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
14. 여러분 가운데 병든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십시오. 그리고 그 장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
15. 믿음으로 간절히 드리는 기도는 병든 사람을 낫게 할 것이니,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은 것이 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냅니다.
17.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본성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비가 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니, 삼 년 육 개월 동안이나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으며,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내리고, 땅은 그 열매를 맺었습니다.
19.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서 진리를 떠나 그릇된 길을 가는 사람이 있을 때에, 누구든지 그를 돌아서게 하는 사람은
20. 이 사실을 알아두십시오.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사람은 그 죄인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할 것이고, 또 많은 죄를 덮어줄 것입니다.
(마가복음 9:38-50)
38. 요한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39.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막지 말아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나서 쉬이 나를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41.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해서 너희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42. “또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차라리 그 목에 큰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
43.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버려라. 네가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곧 그 꺼지지 않는 불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한 손을 잃은 채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
44. (없음)
45.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버려라. 네가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한 발은 잃었으나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
46. (없음)
47.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버려라. 네가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
48.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들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49. 모든 사람이 다 소금에 절이듯 불에 절여질 것이다.
50.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너희는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하겠느냐? 너희는 너희 가운데 소금을 쳐 두어서, 서로 화목하게 지내어라.”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간절한 기도∼회개∼전화위복’입니다.
구약,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었고, 초상날이 잔칫날로 바뀌었으므로”(에스더 9:22)
시편, “그물은 찢어지고, 우리는 풀려났다”(시편 124:7)
서신서,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사람은”(야고 5:20)
복음서, “차라리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마가 9:47)
오늘 요절은,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냅니다”입니다.(야고보서 5:16)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에스더기 7:1-6,9-10, 9:20-22, 시편 124)]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하만의 몰락, 부림절 제정’입니다.
에스더기에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구약성경에 오른 것은 구석구석에 하나님의 손길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 언어인 아카드어로 ‘제비’라는 뜻의 주사위 ‘부르’를 던져서
모르드개와 모든 유다사람들을 죽이려 했던 하만의 계획이,
완전히 뒤집어져가는 과정을, 오늘 본문은 보여줍니다.
정초에 던진 ‘부르’가 12월로 결정하는 바람에(3:7)
유대인들은 목숨 같은 시간을 벌 수 있었으니,
그 명절을 ‘부르’의 이름대로 ‘부림절’이라 부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에스더는 자신과 동포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유다 사람이라고 정체를 밝힙니다.
출애굽 시절부터 유다 사람과 철천지원수 사이인 아말렉,
그 아말렉 사람인 하만이(3:1) 몰락하는 과정이 매우 드라마틱합니다.
“초상날이 잔칫날로 바뀌었으므로”(9:22)라는 표현만 보더라도,
에스더기는 당신의 백성을 죽음에서 구원하시는 주님의 드라마틱한 손길로 가득합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어려울 때 도우시는 하나님’입니다.
오늘 시편은 전형적인 감사시로서,
구구절절 오늘 구약본문에 대한 응답찬송으로 안성맞춤입니다.
마지막 절 “주님이 우리를 도우신다”(8)에서
하나님에 대한 강한 신뢰가 느껴집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야고보서 5:13-20, 마가복음 9:38-50)]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병자들을 위한 기도, 미혹당한 자들에 대한 책임’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고난”(13), “병”(14, 15), “죄”(15, 16, 20), “죽음”(20) 등이 두드러집니다.
이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는 길은 “기도”입니다.(13, 14, 15, 16, 17, 18)
더 정확히 “믿음으로 간절히 드리는 기도”이고(15),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16),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입니다.(17)
우리가 습관적으로, 입버릇처럼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운운 하지만,
간절한 기도는 보통 기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겟세마네기도 같은 기도일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통하는, 주님의 마음과 직통하는 기도,
즉,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의 기도 말입니다.(마태 26:39)
그때 “주님께서 능력의 손을 뻗치시어 병을 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사도 4:30)
그때 하나님께서, 마치 그날 성소휘장처럼 죽음권세를 찢어버리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낯선 기적행위자, 죄의 유혹에 대한 경고’입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주 본문에서 바로 이어집니다.
‘첫째가 되려면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 섬기기’, ‘어린이 같은 작은 자 영접하기’!
이는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자냐는 다툼에 대한 예수님 말씀이셨습니다.
이런 모든 탐욕에서 다툼이 일어나고 죄가 싹틉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평화의 나라를 이루려면
이런 죄의 싹을 미리미리 잘라내야 합니다.(42, 43, 45, 47)
(42-47절의 내용이 과장되게 보이지만, 그게 예수님 뜻입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예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정리]
약육강식 세상에서 오히려 작은 자를 섬기고 영접하는 화목한 세상, 하나님나라!
그런 하나님나라 건설을 가로막는 모든 종류의 죄!
그 죄들의 싹을 잘라내는 칼, 즉 부패를 막는 소금(50), 그건 과연 무엇일까요?
세상에는 악한 일들을 가려내고 벌을 주는 일을 맡은 판검사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정의를 수호하려고 법을 지키고 집행하는 사람들입니다.
판검사가 올바르면, 세상은 정의가 시냇물처럼 흐르는 세상,
약자들의 얼굴에 늘 웃음꽃 만발하는 평화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바, 그런 평화세상은 아직 멀었습니다.
하나님나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먹고 함께 사는
참 평화세상을 이루려면(이사야서11:6, 65:25)
하나님나라 법인 <말씀>을 지키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내 안의 탐욕이 말씀을 이기지 못하도록 말씀거울을 닦으면서
말씀거울에 비친 내 얼굴의 상한 부분들을 서로서로 짚어주고 함께 닦아주는 습관!
그렇게 교회는 말씀의 수호자로서, 먼저 나부터 말씀으로 매일매일 닦아야 할 것입니다.
내 안의 사심이 돋아날 때마다 즉시 그 싹을 잘라내려고 늘 작은 칼을 차고 다니고,
늘 깨어 있으려고 방울을 달고 다니던 사람 남명 조식 선생처럼
교회는, 성도는 늘 날선 검 <말씀>을 지니고 다녀야 할 것입니다.
때론 그 날선 검인 <말씀>이 소금이 되어서 우리 안의 부패를 미리 막아주고
때론 음식의 제 맛을 돋우는 소금처럼,
우리 하나하나의 개성을 살려주며 교회를 화목하게, 세상을 의롭고 이롭게 할 것입니다.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냅니다.”(야고5:16)
그러한 의인이 바로 <말씀>을 달고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세상 쾌락에 한눈팔지 않고, 오직
미쁘신 하나님을 철석같이 믿고 의지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나머지]
* 담요 한 장 같은 소금
오늘 우리에게 소금이란 무엇일까? 우리에게 소금은 덮어주는 마음입니다. 털려고 들면 먼지 없는 이 없고, 덮으려고 들면 못 덮을 허물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 옛날 추운 계절 제 외투를 찢어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노숙자 예수를 덮어주었던 성자 마틴처럼, 오늘부터 우리 마음속에 담요 한 장씩 가지고 다닙시다. 춥고 배고픈, 외로운 이웃을 찾아 덮어주고, 허물 많은 교우들을 찾아 마치 상처를 덮어주는 ‘습윤 밴드’처럼, 그 허물 온전히 덮어주는 담요, 그런 담요 한 장씩 가지고 다닙시다.(약5:20)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소금은 바로 이런 담요 한 장 같은 따듯하고 너그러운 마음입니다.
** 화목케 하는 소금의 맛을 지닌 교회
지난주 구약본문의 주인공인 ‘유능한 아내’에 이어서 오늘 구약본문의 주인공 ‘에스더’는 민족을 구원할 하나님의 ‘유능한 일꾼’으로 등장합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대목은 “그 대적, 그 원수는 바로 이 흉악한 하만입니다.”(6)라는 칼날같이 날카롭고 정확하며, 번개처럼 간결한 에스더의 대답입니다. 이렇게 오늘 신정절(왕국절) 5주에 주시는 성서일과 본문들은 우리가 (창조질서 회복, 하나님나라 건설의 중요한 과정인) 죄의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게 하십니다. 서신서의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사람”(약5:20)과 복음서의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라도 죄 짓게 하는 사람”(막9:42)을 짝을 이루면서까지,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죄의 안팎을 보게 하시고 그 아킬레스건을 끊어내게 하십니다. 오늘 서신서에서 우리는 (죄로 인한 질병, 또는) 죄라는 질병을 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곁길로 가는 것, 하나님을 등지고 육체의 길, 세상 욕심을 따라가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하나님의 뜻인 화목, <한 몸 이루기>를 훼방하고 미움·다툼·시기·질투로 끊임없이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이간질을 끊어내고, 교회는, 한국사회를 화목하게 할, 한반도를 화목하게 할 소금의 맛을 회복할 때입니다.(막9:50)
*** 노인의 날에
내일모레 2024년 10월 1일은 세계 노인의 날입니다. (우리나라는 그 날이 국군의 날이어서 하루 미뤄 10월 2일입니다.) 노인을 공경하는 효(孝)의 나라로 서구의 노인들이 매우 부러워하던 우리나라가 어느새 전철에서도 서 계신 노인들을 본체만체하는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산삼은 100년 묵은 것을 최고로 귀히 여기면서도 노인은 늙을수록 천대합니다. 생산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돈을 못 벌기 때문입니다. 적당한 일자리도 주지 않으면서 그렇게 홀대하는 것입니다. 물질만능주의 세상, 맘몬세상의 결과입니다.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오늘 에스더기의 부림절처럼 인생역전의 새 세상이 열리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마가복음의 예수님처럼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교회로 변하기를 기원합니다.(41-42) 상상도 못했던 방법으로 이 땅 모든 노인들이 사라처럼, 엘리사벳처럼 회춘하시기를! 이삭요한 옥동자를 낳으시듯 이 시대의 희망을 낳으시기를, 하나님 약속의 그 거룩한 열매 추수하는 기쁨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주님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우리 하나님께서 다 이루실 것입니다.(시편 124:8)
(* 전에 올린 것을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 노인만세!
10월 1일은 세계노인의 날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인의 날은 10월 2일이다. 10월 1일이 국군의 날이기 때문에 하루 밀려서 그리 되었다고 한다. 이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아니 세계노인의 날이 있다는 사실도 얼마 전에야 알았다. 그게 다 둥글레음악회 덕분이다. 민들레음악회를 100회로 마친 뒤에 다시 1회부터 시작한 둥글레음악회는 주로 한국근현대사를 기억하고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 쪽으로 음악회의 길을 잡았다. 그러다가 2018년 9월 30일에 세계노인의 날을 맞이하며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제목으로 ‘노인 만세!’를 주제 삼아 음악회를 했다.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전통가요 ‘내 나이가 어때서’의 제목을 빌린 것이다. (성실문화 97호 ‘둥글레음악회 이야기’에 자세히 소개했다) 100년 묵은 산삼처럼 오래 묵을수록 귀히 여기는 게 세상엔 많다. 그런데 사람은 왜 반대일까? 이런 궁금증으로 시작해서, 노인을 귀히 여기는 나라, 노인의 진가를 알아보고 그걸 빛나게 해드리는 교회를 추구하자고 노래하며 음악회를 마무리했다. 성실문화가 오래전에 몇 해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노인들을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크리스천 노인들 가운데서 전통문화예술에 몸담고 살아오신 분들을 찾아서, 나와 함께 부산장신대 탁지일교수와 배윤숙 목사가 함께 다니며 녹음도 하고 메모도 해서 그 내용을 풀어 성실문화에 한동안 연재했다. 예전에 한창기 선생의 ‘뿌리깊은나무’에서 출판한 민중자서전을 읽고 감동하여 그 뒤를 잇는 작업이었다. 그때 깨치고 익힌 귀한 교훈 한 가지가 있다. 노인들을 인터뷰하는 전문가들이 갖추어야 할 기술 또는 사명인데, 그건 바로 노인들 자신조차 까맣게 잊고 오랜 세월 묻어두고 살아온 기억들을 번개처럼 번쩍 기억나게 해드리는 일이다. 노인들께서 자신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풀어가는 중간 중간에 마치 광맥 같은 지점을 놓치지 않고 건드려 질문을 하는 것이 열쇠다. 그 순간 노인은 눈에서 빛을 뿜고 그렇게 까맣게 잊히고 묻혔던 기억의 샘이 터지는 것이다. 어디 잊힌 것이 기억뿐일까? 거기엔 노인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답고 선한 힘들이 있다. 언젠가 이 자리에서 한차례 언급한 적이 있는데, 우리 한국교회가 놓치지 말고 소중히 여겨야 할 일로서, 교회에서 노인의 잊힌 능력을 발굴해드리는 일이 참 귀하다. 성경의 전통 가운데 참 소중한 노인만의 고유 권한이 바로 자손들을 위한 축복기도다. 그래서 노인이 자손에게 물려줄 최고 유산, 돈보다 귀한 것이 바로 축복기도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실을 노인 자신부터 깨달을 수 있게 해드리고, 지금부터 공책을 구해서 매일 손주들과 자식들을 위한 축복기도문을 일기 쓰듯 기록해서, 그것을 매년 성탄절 무렵 추려서 아이들에게 사진 찍어 보내주고, 나중에 자식들이 부모님의 축복기도공책을 모아 추려서 한 권 한 권 책으로 만들어 당사자인 아이들에게 유산으로 남기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노인 성도들은 그 과정을 담임목사와 상의도 하고, 중간중간에 목사가 모범적인 내용들을 갈무리해서 예배를 풍성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인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힘, 그럼에도 지금은 많이 잊힌 힘이 바로 옛날이야기다. 스마트폰 때문에 할머니의 재미있고 구수한 옛날이야기가 그야말로 옛날이야기가 되고 만 시대지만, 교회라면 그 아름다운 힘을 되살릴 수 있다. 재미난 민담도 좋지만 노인이 어린 시절부터 겪은 ‘내 이야기’, 나의 옛날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다. 그것은 우리 근현대사와 섞인 이야기요, 내 가문의 내력이 담긴 이야기며, 때론 내 교회의 역사와 씨줄날줄로 짜인 그야말로 작고도 귀한 생생한 역사다. 자서전 쓰기라는 말은 너무 거창할 수 있지만, 그런 마음으로 틈나는 대로 ‘내 이야기, 나의 옛날이야기’를 하나하나 적어둔다면, 먼 훗날 내 자식과 손주들이 나를 기억하며 나의 행장(行狀)을 남기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00년 전 옛 어른들이 누렸던 행장기를 남기는 문화와 만사(挽詞)와 만시(挽詩) 등의 만장(挽章)들을 모아서 고인의 추모문집을 만드는 문화 등, 이렇게 역사를 짓고 갈무리하는 소중한 문화가 이젠 다 사라졌지만, 100년 묻어둔 달란트를 발굴하는 심정으로, 교회는 노인들에게 <나의 옛날이야기>를 차근차근 기록하시게 권해드릴 필요가 있다. 때론 그림을 곁들이거나 사진을 넣어 그걸 설명하는 글을 덧붙인다면 더 생생하고 재미있는 옛날이야기책이 될 것이고, 이 또한 예배를 풍성하게 할 귀한 자료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내 이야기를 기록하는 게 힘든 노인들을 위해서는 목사나 교회 일꾼들이 정기적으로 인터뷰를 하면 좋겠다.) 노인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힘을 꼽으라면, 바로 노래다. 책을 읽으면서도 흥얼흥얼 가락에 얹어 읊조리시던 옛 어른들의 독서풍경을 나는 기억한다. 지금 그걸 흉내 내보니 나 혼자서도 참 맛깔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혼자 누리기에는 참 아깝다는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노인의 노래는 단연 자장가다. 그리고 전래자장가처럼 느리고 단순하고 구성진 옛 어린이노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동요작가 가운데 윤석중 선생님과 박재훈 목사님이 계시다. 윤선생님은 유명한 동시작가고, 박목사님은 성가작곡가요 잘 알려진 동요작곡가시다. 두 어른의 공통점은 작품이 매우 아름답다는 점이다. 노인이 되어서도 어린이 사랑, 어린이 눈높이로 동시와 동요를 지으시던 그 어른들이 지금 우리 한국교회에 참 귀한 거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교회 노인들이 모두 동요를 작곡하기는 힘들지라도, 동시를 짓는 일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성실문화에서 예전부터 추구하고 있는 말씀동시 짓기는, 교회가 성경말씀과 조금 더 가까워지고 친해지는 지름길인 것을 발견한 내 경험에서 시작한 일이다. 나는 목사들이 교회의 어린이보다 먼저 노인들께 말씀동시를 지어보시도록 이끌기를 권한다. 시작만 해보면 말씀동시는 일반 동시 짓기보다 훨씬 쉽고 재미있음을 알 수 있다. 익히 아는 복음서 본문말씀을 읽고 마치 그 말씀의 주인공이신 예수님과 대화하듯, 또는 다른 등장인물과 대화하듯, 아니면 그냥 그 인물의 심정을 그림 그리듯이 동시를 쓰다보면, 어느덧 말씀과 한 뼘 더 친해지고, 늙은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아름답고 싱싱한 이야기, 신나는 이야기가 참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일반 시보다 굳이 동시로 쓰려는 것은, 자장가, 노래 중에서도 제일 쉽고 단순하고 친하고 사랑스런 자장가의 맛과 닿아있기 때문이다. 우리 성실문화에서 지난 2011년에 펴낸 「창조와 구원」이라는 책이 있다. 텔레비전과 인터넷, 휴대폰에 팔려 성경을 읽지 않는 어린 손주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성경의 맛을 알려주려고, 캐나다의 노인 코스모 카피탄육 할아버지가 지은 성경그림책이다.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의 중요한 내용들을 일일이 그림으로 그리고 설명을 달았다. 알록달록 지극히 아마추어 솜씨여서 더 지극한 정성이 엿보인다. 이 책을 보고 감동하신 내 아버지 고 이형준 장로님이 코스모 할아버지와 함께 반반씩 출판비를 내서 우리말로 번역해 출판한 것이다. 두 노인의 열정과 헌신에 감동하며 내가 그때 느낀 것은 이것이다. 말씀사랑, 어린이사랑은 노인이 되어갈수록 무르익어 가는 게 틀림없다는! 씽씽 차타고 달릴 때는 안 보였는데 느릿느릿 걸어야 비로소 하나하나 제대로 보이는 이치만 생각해도, 재미있고 신비로운 이야기보따리는 바삐 쏘다니는 젊은이들보다는 느리게 사는 노인들에게 많다. 심지어 어르신들의 이야기세계는 때론 Ktx보다 빠르고 드론보다 드높다. 종횡무진 자유롭고 변화무쌍하다. 한때 민담을 수집하려 애쓰던 시절에 이미 터득한바다. 마치 눈만 밝으면 천금을 주고도 구하기 힘든 진귀한 보물을 싼 값에 얻을 수 있는 헌책방이나 골동품가게처럼, 노인에게는 아름다운 힘, 보물 같은 힘이 즐비하다. 젊은이들도 무관심하고 노인 자신도 잊고 사는 노인의 선하고 아름다운 힘은 마음만 먹으면 한국교회 예배를 더 아름답고 풍성하게 할 수 있을 만큼 무궁무진하다. 문제는 그것을 볼 줄 아는 눈이다. 교회는 그 보물을, 보물보다 소중한 노인들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하다.
[이정훈. 성실문화 120호 지침서 예배수첩에서 발췌]
[말씀동시] 그리스도의 사람 (김민서 지음. 세움교회 청년부. 「성실문화」 120호)
하나님의 사람들
이 세상 속 사는 사람들
작은 죄라도 죄는 죄
발이 죄를 짓든
손이 죄를 짓든
어떤 죄든 죄는 죄
지옥 불구덩이
정말 있나?
이렇게 모두 어리석어
맛 잃은 소금처럼
힘들게 산다. 아프게 산다.
[시편시조] 시편 124, 그물은 찢어지고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20호)
그물은 찢어지고 우리는 풀려났다
악한 원수 막아주신 주님을 찬양하라
우리를 도우시는 분 만유의 주 하나님
[시편노래] 시편 124, 이스라엘 너희는 대답해 보라 (이정훈 편사, 김영준 작곡. 「성실문화」 120호)
[본문] (시편 124)
[노랫말]
1. 이스라엘 너희는 대답해 보라, 주님께서 우리 편이 아니셨다면
이스라엘 너희는 대답해 보라,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원수들이 우릴 치러 일어났을 때, 원수들이 우릴 모두 삼켜버리고
홍수가 일어나서 우릴 휩쓸어, 큰물이 우리 영혼 삼켜버린다
2. 너희는 주 하나님 찬송하여라, 원수의 이빨에서 구원하셨다
너희는 주 하나님 찬송하여라, 사냥꾼의 그물에서 건져주셨다
그물은 찢어지고 우린 풀렸다,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오른다
천지를 지으신 우리 하나님, 주님이 우리를 도와주신다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새명성교회 김영준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24 (이스라엘 너희는 대답해 보라) (이정훈 편사, 김영준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124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20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이스-라--엘--아--, 대답-해-- 보아-라--,
주-님-께서 우리 편-이- 아니셨다면-, 우리가 어-떠-하였겠느-냐--∼?
2. “주님께서 우리 편이 아니셨다면, 원수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났을 때에,
3. 원수들이 우리에게 큰 분노를 터뜨려서, 우리를 산 채로 집어삼켰을 것이며,
4. 물-이 우리를 덮--어--, 홍수가 우리를 휩쓸어 갔-을 것이며,
5. 넘치-는-- 물결-이--, 우리의 영혼을 삼키고 말았을 것이다---∼”
6. 우리를 원수의 이에 찢길 먹이가 되지 않게 하신 주님을 찬송하여라.
7. 새가 사냥꾼의 그물에서 벗어남같이 우리는 목숨을 건졌다.
[다함께]
그물-은-- 찢어-지고-, 우리-는-- 풀려-났다-,
8. 천지를 지으신 주님-이--, 우리를 (우리를 우리를) 도우-∼신∿다-∼∥
[말씀동화] 지구가 지옥이 되어가던 어느 날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합죽선을 접고 독서안경을 끼고 성경책 읽던 시절 이야기예요.
“지구는 지옥이 될 거야.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증거가 있느냐고? 가자지구가 가자지옥이 되어가고 있잖아.
이것보다 더 큰 증거가 필요해?”
뒷동산 척척박사 올빼미 할머니가 참나무 가지에 앉아서
혼자서 주고받으며 쉬지 않고 중얼거립니다.
건너편 참나무에 앉아있던 소쩍새의 두 눈이 등잔만큼 동그래지고
쉬지 않고 도토리를 까먹던 다람쥐도 올빼미 할머니의 넋두리에
그 왕성하던 식욕조차 다 까먹어 버렸는지
연신 두 눈을 또르르 똑 또르르 굴리다가 오들오들 작은 목소리로 질문합니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것도 지옥이 되어가고 있는 증거인가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타잔처럼 펄쩍펄쩍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던 청설모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다람쥐에게 핀잔을 줍니다.
“겁쟁이 다람쥐야, 쫄지 말고 어서 도토리 더 먹고 키나 크렴.
지옥은 무슨, 날도 선선해지는데 왜 자꾸들 지옥타령이람.”
그래도 올빼미 할머니는 쉬지 않고 중얼거립니다.
듣거나 말거나, 믿거나 말거나, 올빼미 할머니의 넋두리는 계속됩니다.
아까부터 참나무 아래서 오들오들, 다람쥐보다 더 떨고 있는 건
바로 뒷동산 대표겁쟁이 걱정토끼입니다.
걱정토끼의 두 눈이 소쩍새보다 다람쥐보다 더 크고 동그래지고
동그란 두 눈이 점점 더 빨개집니다.
“후쿠시마 앞바다에는 벌써 지옥문이 열렸다던데?
날이 추워져서 오들오들 떨고 있던 꽃뱀도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하니
꽃뱀의 말에 걱정토끼의 눈은 더 시뻘게지고
소쩍새와 다람쥐의 똥그란 눈 눈꺼풀이 파르르 떨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부리나케 이사준비 하던 꾀꼬리가
오들거리는 다람쥐와 걱정토끼에게 따듯한 말로 위로합니다.
“지구를 지옥으로 물들여가는 욕심쟁이들한테 쫄지 말고
지옥을 에덴으로 물들여가는 착한사랑을 하세요. 많이!”
이윽고 꾀꼬리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이산저산 기도원과 수도원을 돌아다니며 들은 말씀노래입니다.
“너희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마가9:41)
“너희는 너희 가운데 소금을 쳐 두어서, 서로 화목하게 지내어라.”(마가9:50)
꾀꼬리의 아름다운 노래에 화답하듯 앞산 뻐꾸기가 노래를 시작합니다.
“새가 사냥꾼의 그물에서 벗어남같이 우리는 목숨을 건졌다.
그물은 찢어지고, 우리는 풀려났다.
천지를 지으신 주님이 우리를 도우신다.”(시편124:7-8)
덤바위산 꼭대기 너럭바위에서 독서안경 끼고 성경책을 읽던 호랑이가
꾀꼬리와 뻐꾸기의 노래를 듣고 목청을 가다듬고 노래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냅니다.”(야고보서5:16)
호랑이의 우렁찬 노랫소리에 온 산이 번쩍 정신을 차립니다.
파르르 떨리던 걱정토끼와 소쩍새, 그리고 다람쥐의 눈이 편안해지고
시뻘겋게 충혈되었던 눈들이 점점 부드러워집니다.
두레박을 타고 뒷동산 옹달샘으로 내려오던 선녀들이
꾀꼬리와 뻐꾸기 그리고 호랑이의 말씀노래에 아름다운 목소리로 화답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야고보서5:13)
[이정훈 지음. 2024년 9월 28일 토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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