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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신정절 3주(왕국절 3주, 창조절 2주, 2024년 9월 8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남을 잘 보살펴주는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은(잠언 22:9)

 

[성서일과 4본문]

(잠언 22:1-2,8-9,22-23)

1. 많은 재산보다는 명예를 택하는 것이 낫고, 은이나 금보다는 은총을 택하는 것이 낫다.

2.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다 함께 얽혀서 살지만, 이들 모두를 지으신 분은 주님이시다.

8. 악을 뿌리는 사람은 재앙을 거두고, 분노하여 휘두르던 막대기는 기세가 꺾인다.

9. 남을 잘 보살펴 주는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은, 그가 자기의 먹거리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기 때문이다.

22. 가난하다고 하여 그 가난한 사람에게서 함부로 빼앗지 말고, 고생하는 사람을 법정에서 압제하지 말아라.

23. 주님께서 그들의 송사를 맡아 주시고, 그들을 노략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시기 때문이다.

 

(시편 125)

1.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시온 산과 같아서, 흔들리는 일이 없이 영원히 서 있다.

2. 산들이 예루살렘을 감싸고 있듯이, 주님께서도 당신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토록 감싸 주신다.

3. 의인이 불의한 일에 손대지 못하게 하려면, 의인이 분깃으로 받은 그 땅에서 악인이 그 권세를 부리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4. 주님, 선한 사람과 그 마음이 정직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5. 주님, 비틀거리면서 굽은 길을 가는 자를 벌하실 때에, 악한 일을 하는 자도 함께 벌받게 해주십시오. 이스라엘에 평화가 깃들기를!

 

(야고보서 2:1-10(11-13)14-17)

1.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마십시오.

2. 이를테면, 여러분의 회당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금반지를 끼고 들어오고, ,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도 들어온다고 합시다.

3. 여러분이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호의를 보이면서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거기 서 있든지, 내 발치에 앉든지 하오하고 말하면,

4. 바로 여러분은 서로 차별을 하고, 나쁜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5.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그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6. 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 여러분을 압제하는 사람은 부자들이 아닙니까? 또 여러분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사람도 부자들이 아닙니까?

7. 여러분이 받드는 그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사람도 부자들이 아닙니까?

8. 여러분이 성경을 따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으뜸가는 법을 지키면, 잘하는 일입니다.

9. 그러나 여러분이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요, 여러분은 율법을 따라 범법자로 판정을 받게 됩니다.

10. 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도 한 조목에서 실수하면, 전체를 범한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11. “간음하지 말라하신 분이 또한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간음은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살인을 하면, 결국 그 사람은 율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12. 여러분은, 자유를 주는 율법을 따라 앞으로 심판을 받을 각오로, 말도 그렇게 하고 행동도 그렇게 하십시오.

13. 심판은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합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14.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15.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 먹을 것조차 없는데,

16. 여러분 가운데서 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십시오하면서, 말만 하고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7. 이와 같이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마가복음 7:24-37)

24. 예수께서 거기에서 일어나셔서, 두로 지역으로 가셨다. 그리고 어떤 집에 들어가셨는데, 아무도 그것을 모르기를 바라셨으나,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

25. 악한 귀신 들린 딸을 둔 여자가 곧바로 예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의 발 앞에 엎드렸다.

26. 그 여자는 그리스 사람으로서, 시로페니키아 출생인데,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27.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자녀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28. 그러나 그 여자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개들도 자녀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

29. 그래서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돌아가거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

30. 그 여자가 집에 돌아가서 보니, 아이는 침대에 누워 있고, 귀신은 이미 나가고 없었다.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서, 데가볼리 지역 가운데를 지나, 갈릴리 바다에 오셨다.

32. 그런데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33. 예수께서 그를 무리로부터 따로 데려가서,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고, 침을 뱉어서,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보시고서 탄식하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에바다하셨다. 그것은 열리라는 뜻이다.

35. 그러자 곧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똑바로 하였다.

36.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명하셨으나, 말리면 말릴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퍼뜨렸다.

37. 사람들이 몹시 놀라서 말하였다. “그가 하시는 일은 모두 훌륭하다. 듣지 못하는 사람도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하신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약한 자를 눈여겨보시고 친히 챙기시는 주님처럼입니다.

 

구약, “주님께서 그들의 송사를 맡아주시고”(잠언 22:23)

시편, “주님께서도 당신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토록 감싸주신다”(시편 125:2)

서신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마십시오”(야고 2:1)

복음서, ‘하늘을 우러러보시고서 탄식하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에바다하셨다’(마가 7:34)

 

오늘 요절은, “남을 잘 보살펴주는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은입니다.(잠언 22:9)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잠언 22:1-2, 8-9, 22-23, 시편 125)]

오늘 구약본문 소제목은 훈계의 가치, 30가지 교훈입니다.

1-2, 8-9, 22-23절 등 3개 단위 중,

각각 둘째 절인, 2, 9, 23절은 같은 주제를 드러냅니다.

인간 세상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함께 산다는 점,

그리고 이 두 부류의 관계 속에 하나님도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특히 23절은 하나님께서 사회적 약자의 편에 계심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러므로 약자를 홀대하거나 억압하는 자는 지극히 어리석습니다.

강자가 약자를 차별대우하거나 억압함은 하나님을 거스름이요,

스스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짓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본문 소제목은 야훼께서 자기 백성을 두르시도다입니다.

이스라엘이 강대국의 침략과 통치로 하나님께 받은 땅이 혼돈상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신앙이 흔들리고(3) 분열이 일어납니다.(5)

 

그러나 제아무리 연약하고 위기상황이어도,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든든한 언약이 있습니다.(1,2,4) (이사 14:32, 28:16)

게다가 우리 하나님은 약한 자를 편드는 분이시니

더 말할 나위 없습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야고보서 2:1-10(11-13)14-17, 마가복음 7:24-37)]

오늘 서신서 본문 소제목은 사람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입니다.(로마 2:11)

하나님께서는 늘 약자 편에 계십니다.(신명 10:17-19)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강자를 차별하신다는 뜻이 아니고 그 반대입니다.

 

강자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증거고,

약자는 하나님의 벌을 받은 증거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고,

오히려 약자처럼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강자들이 깨닫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 소제목은 수로보니게 여인, 귀먹고 말 못하는 사람 치유입니다.

지난 주 본문에 곧 이어서,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칩거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아무도 모르는 이방 땅으로 가셔서 아예 숨으려 하셨던 것입니다.(24)

 

하나님 말씀을 자꾸만 오해하는 동포들이 답답하고(마가 7:1-23, 특히 8)

심지어 고향사람들조차 예수님을 배척하기 때문입니다.(6:1-6)

게다가 사람들은 너도나도 예수님의 표적에만 혈안이기 때문입니다.(8:11-12)

급기야 당신을 철저히 가리고 입을 닫고 마음을 닫기에 이르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소문을 듣고 어느 이방 여자가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이때 예수님이 이방인을 라 표현하십니다.(27)

예수님의 이 표현은 구별보다 차별에 가까워 보여 의아합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 안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굳게 닫힌 마음이 녹아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방 여자의 부스러기발언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자의 이 말에서 과연 무엇을 느끼셨을까요?

 

곧이어 여자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예수님은 다시 길을 나섭니다.

여러 이방지역을 돌아 다시 갈릴리에 오셔서 에바다를 외치십니다.(34)

에바다(열려라)”는 막힌 귀와 입이 열리라는 뜻입니다.

이제 이 사람은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신앙을 고백할 수도 있게 됨으로써

하나님과 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해설 일부 참조)

(예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정리]

신정절(왕국절)3(창조절 2)에 받은 성서일과 본문들에는

줄줄이 약자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기자들은 이구동성 약자들을 살피시고 챙기시는 주님을 노래합니다.

 

돈도 없고 권력도 백(back)도 없는 약자들이 마지막으로 기대는 것이 판사입니다.

그러나 정의가 무너지고 법이 쓰러진 어지러운 시대에는

판사조차 자기 이득을 따라 강자의 편을 듭니다.

그때 약자의 마음을(주님의 마음을) 오늘 구약본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송사를 맡아 주시고,

그들을 노략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시기 때문이다”(잠언22:23)

 

역사가 체득하고 온몸으로 파지(把持)한 바

오직 주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음을 아는 약자의 삶은 그렇게

<약한 자의 경건>으로 자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 주님의 제자라면 이구동성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 약육강식 세상은 약자를 버려도 창조주 주님은 끝까지 감싸주신다고.

그런 주님 앞에서 약자를 깔보지 말고 외려 우러르라고.

그렇게 약자를 잘 보살펴주는 사람이 복을 받는 법이라고.(22:9)

 

듣지 못하는 사람도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하시는 분(7:37)

절규하듯 외치시는, 신음하듯 속삭이시는 예수님의 에바다”(34)

새벽을 앞둔 깊은 어둠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귀에 천둥처럼 스미시기를 빕니다.

 

 

 

[나머지]

* “에바다”1

오늘 복음서본문의 예수님 심정이 매우 격하십니다. 6장 첫머리, 고향에서 배척당하신 예수님, 7장 첫머리,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8)는 동포들로 인한 실망과 상처... 바로 그 때 시로페니키아 이방 여자를 만난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예수님의 개타령과 이방여자의 부스러기타령!’이라 부르곤 합니다.) 개타령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심정과 부스러기타령으로 답가를 부르는 이방여자의 심정이 묘하게 어울립니다. 이어서 갈릴리 바다에 오셔서 만난 청각장애인을 고치실 때도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탄식하십니다. 그리고 에바다하고 외치십니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드신 우리 예수님께서 잠시라도 쉬고 싶어 아무리 깊이 숨으려 해도(24) 세상엔 이렇게 약한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방여자도, 청각장애인도 물밀 듯이 밀려옵니다. 너무 힘들어 외면하시다가, 저들이 애달파 탄식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시로페니키아 여자의 믿음으로 힘을 얻으시고, 청각장애인의 막힌 귀와 입을 열어주심으로, 예수님의 꽉 막혔던 가슴, 고향사람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때문에 꽉 막혔던 가슴이 활짝 열리셨을 것이라는! 그래서 오늘 시로페니키아 여자와 저 귀먹고 말 못하는 장애인이 참 고맙습니다. 주님의 몸 교회를 오늘도 수많은 약자들이 바라봅니다. 그런데 저들의 심정이, 저 시로페니키아 여자처럼, 청각장애인처럼 두근거릴지는 의문입니다. 교회가 예수님처럼 공감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예수님처럼 실천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고 말로만 선을 외치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오늘 우리 교회는 약자들의 심정, 비통하고 억울한 외침 앞에 무릎 꿇고 귀 기울여 경청해야 할 때입니다.

 

** “에바다”2

구별은 할 수 있지만 차별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늘 약자의 편을 들고 계시는 마당에,(잠언 22:23) 그건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늘 약자 편을 드시는 까닭은, 강자와 약자를 모두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자 편을 드시는 것을 보고서 강자들은 내 힘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교만을 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자와 약자의 차별뿐 아니라, 혈연, 지연, 학연 때문에 차별하는 것도 안 됩니다. 이 역시 하나님의 공의, 즉 공평과 정의를 훼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개타령이(마가 7:27) 차별인지, 표적(스스로)금지 때문인지, 또는 이방여자의 믿음을 끌어올리기 위한 밀당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마음이 섞여 있다 해도, ‘차별이 두드러져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방여자의 부스러기탄원이 대단한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니 말입니다. 마치 옥합을 깨뜨린 여자처럼, 제 자존심과 온 마음을 깨뜨려서 굳게 닫힌 마음, 지치신 예수님 마음에 부어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곧 이어지는 예수님의 에바다에 앞서서 먼저 예수님 마음이 활짝 열리신 것이 느껴집니다. 이방여자와도 통했으니 동포들과 다시 통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에바다는 모든 동포들의 닫힌 귀와 입이 열리라는 선포입니다. 그리고 오늘 수많은 차별로 하나님과 단절된 우리의 닫힌 귀와 입, 그리고 마음이 열리라는 사랑의 선포입니다.

 

*** 창조질서 회복 - 주님 닮아가기

신정절(왕국절·창조절)의 큰 주제는 <창조질서(천국질서)회복>입니다. <정의·평화·창조질서회복> 말입니다. 창조질서(천국질서) 회복을 위한 지난 주 신정절(왕국절) 첫 주일을 여는 본문말씀의 주제 즉, 첫째단추는 주님의 말씀으로였는데,

오늘 둘째 주일 주제는, ‘주님의 자비심으로입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본문들마다 가난한 자, 약자들이 나옵니다. 성경의 눈으로 볼 때 가난한 자, 약자들이란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자의 상징이요, 동시에 이웃들로 하여금 그를 보면서 하나님의 자비를 기억하고 닮게 하는 거룩하고 경건한 존재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시로페니키아 여자가 예수님께 그 자비를 구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개타령>을 하십니다. 오늘 서신서본문의 차별금지법에 비추어(1), 이해하기 어려운 심각한 차별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 이 이방여자의 경건, 오직 주님만 바라고 주님께만 집중하는 <약한 자의 경건>이 극대화됩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지금도 우리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즐비합니다. 내가 가진 <성경거울>에 비추어 도저히 납득 안 되는 일들 투성입니다. 그럴수록 더 강렬하게 우리가 붙잡을 것이 바로 오늘 시로페니키아 여자의 경건인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에바다!” 우리의 닫힌 눈과 귀를, 그리고 입까지 열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 백성은 최우선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즉 하나님의 자비(慈悲)를 구하는 자입니다. 동시에 그 자비를 닮아가는, 즉 주님을 닮아가는 사람들입니다.

(* 전에 올린 것을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에바다 (김윤서 지음. 세움교회 청년부. 성실문화120)

여름 장마에 하늘이 열린 것처럼 비가 내린다

농부는 필요한 때에 비를 기다리지만

여름 장맛비는 내리고 싶은 곳에 내리고 싶은 만큼 내린다

 

예수님의 은혜는 누구에게 오는 걸까?

 

부스러기라도 좋다는 마음으로 주인을 바라보는 여자.

필요한 때에 내리는 예수님의 은혜를 받았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

안타까운 마음에 예수님도 탄식하셨다.

예수님도 울고 그 사람도 울고...

하늘이 열렸다. 귀가 열렸다. 입도 열렸다.

 

 

 

 

[시편시조] 시편 125, 정직한 사람들이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20)

정직한 사람들이 주님을 의지하니

산처럼 큰 손으로 주님이 감싸주네

악한 힘 무너뜨리고 베푸시는 그 은혜

 

 

 

 

[시편노래] 시편 125, 주님을 의지하는 든든한 사람이여 (이정훈 편사, 이천진 작곡. 성실문화120)

[본문] (시편 125)

[노랫말]

1. 주님을 의지하는 든든한 사람이여, 영원무궁 우뚝 솟은 시온산 닮았어라

주님이 감싸주는 영원한 백성이여, 산들이 둘러주는 예루살렘 닮았어라

2. 의인의 땅 더럽히는 악한권세 몰아내고, 비뚤어진 거짓의 길 악인들을 벌하소서

선하고 정직한 자 주 은혜를 베푸소서, 오 주여 이 땅 위에 평화를 베푸소서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한양대 교목실장이신 작곡가 이천진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25 (주님을 의지하는 든든한 사람이여) (이정훈 편사, 이천진 작곡)

20240908 시편노래 125 주님을 의지하는 든든한 사람이여.m4a
2.61MB

 

 

 

 

 

 

[시편송서(誦書)] 시편 125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120)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주님을 --하는 사람---, 시온 산과-- 같아---,

흔들리-- -이 없----, -(영원)히 서 있---

 

2. 산들--- -루살렘을, 감싸--- 있듯---,

-님께서도 당신의 백성을, 지금부-- --토록 감싸 주신다-

 

3. 의인--- 불의한 일에-, 손대지 못하게 하려---,

의인이 --으로 받은 그 땅에서, 악인이 (()) 권세를 부리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4. ---- -한 사람과, (()) 마음이 정직한 사람-에게-,

은혜--- 베풀---,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5. ---- --거리면서-, 굽은 길을 가는 -를 벌하실 때에-,

-한 일(()) 하는 자----, -께 벌받게 해주십시오

----라엘---, 평화--- (평화가) 깃들--!

 

 

20240908 시편송서 125.m4a
4.32MB

 

 

 

 

 

[말씀동화] 신기방기 아기연필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일기 쓰려고 돌칼로 연필 깎던 시절 이야기예요.

 

마을에서 가장 키 작은 어린이 나리가 문구점에 들어갑니다.

빨강연필 노랑연필 파랑연필을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고릅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기를 쓰느라 나리의 연필은 금세 몽당연필

아기연필이 되어버렸거든요.

 

정성껏 쓴 일기를 보신 선생님께서 한껏 칭찬해주신 뒤로

누구보다 일기쓰기를 좋아하게 된 나리는

키는 가장 작아도 일기쓰기 대장입니다.

 

한참을 고르고 고르던 나리가

마침내 노랑연필을 택하고

주머니를 탈탈 털어 노랑연필 한 자루를 삽니다.

 

빨강 연필을 사려고 보면, 노랑 연필이 더 예쁜 것 같고,

노랑 연필을 사려고 보면, 파랑 연필이 더 예쁜 것 같다,

빨강 연필 노랑 연필 파랑 연필, 다 사고 싶지만,

돈이 없어 그냥, 노랑연필만 샀다

필통을 열어보니, 조그만 아기연필이, 따뜻한 엄마 품에, 가만히 누워 있다

[‘연필경북문경초 6학년 황금순, 경북안동 길산초 4학년 김순규 시, 백창우 곡)]

 

 

나리의 필통은 누구보다 깨끗하고 폭신합니다.

여러 날 동안 일기 쓰느라 애쓴 아기연필이 편히 쉬도록 깨끗한 화장지를

세 겹이나 깔아주었거든요.

 

사람은 나이 먹을수록 키가 자라 점점 어른이 되고

연필은 나이 먹을수록 키가 줄어 점점 아기가 되고

 

작달막한 나리는 오늘도 아기연필을 만지작거리며 흥얼거립니다.

비록 키가 가장 작은 아기연필이지만

아기연필은 오래오래 나리와 일기를 함께 쓴 주인공이니

키다리연필보다 훨씬 아는 게 많은 필통의 대장입니다.

 

 

키다리 노랑연필을 정성껏 깎아서 나리가 일기를 씁니다.

반짝반짝 나리의 눈동자는 별처럼 빛나고

차곡차곡 나리의 일기장은 꽃밭처럼 고와집니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데 비쩍 마른 작은 길고양이가 조심조심 맴돈다.

밥을 먹던 큰 고양이가 휙 고개를 돌려 흘겨보니 작은 고양이가 쩔쩔맨다.

밥을 가져다주니 작은 고양이는 큰 고양이보다 더 빨리 먹는다.’

 

키다리 노랑연필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연필통에 들어가 눕고

이제 차례가 되어 아기연필이 일어납니다.

나리는 아기연필이랑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어서

짤막한 아기연필로는 짤막한 요절말씀만 씁니다.

 

남을 잘 보살펴 주는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은,

그가 자기의 먹거리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기 때문이다.’

(잠언22:9)

 

 

밤이 깊어갈수록 나리의 꿈나라 여행이 무르익습니다.

꿈나라 꼬꼬마 아기연필이 나리에게 말을 겁니다.

 

주인님, 이제부터는 무엇이든 저를 쥐고 쓰는 대로 이루어질 거예요.”

 

나리가 아기연필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주인님이라니, 너는 나의 벗이야.”

 

발그레 사랑스런 아기연필을 쥐고 나리가 새 공책에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일기장도 아니고 성경말씀 요절공책도 아니고 이번엔 기도공책입니다.

 

무더위에 지친 쪽방 할머니 이마에 시원한 산들바람 불어주세요.

다친 사람, 아픈 사람, 얼른 응급실에서 잘 치료받게 해주세요.

이스라엘 가자지구 밥도 물도 없어 굶주린 어린이들에게

따듯한 밥과 물을 주세요.’

 

 

초롱초롱 이른 아침에 눈을 뜬 나리의 얼굴이 해님처럼 환합니다.

꿈나라에서 맛본 아기연필의 기도공책 때문입니다.

아기연필로 쓴 기도대로 나리의 소원이 꿈나라에서 이뤄진 거죠.

 

나리의 기도, 나리의 꿈이 이 세상에서도 이뤄질 것만 같습니다.

이젠 총과 대포가 맛있는 엿이 되고 초코바가 되고

세상 모든 핵발전소 핵무기가 꽃밭의 거름이 되고

온 세상 거짓말쟁이들의 코가 가래떡처럼 한없이 늘어지는 꿈을 꿀 겁니다.

 

나리의 꿈이 쑥쑥 자라갑니다.

나리의 일기장이, 나리의 요절공책 기도공책이 무럭무럭 자랍니다.

마을에서 가장 키가 작고 가난한 나리가

세상에서 가장 넉넉하고 너그러운 일기대장, 말씀대장, 기도대장이 되어갑니다.

 

[이정훈 지음. 202497일 토요일 아침]

(이오덕 선생님이 엮은 책 일하는 아이들의 글들에 백창우 선생님이 곡을 붙인 노래를 듣고 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