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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2013년 11월 3일, 추수감사주일 예배준비 노트

* 원래 차례로는 이번 차례는 왕국절 11주지만, 저희 교회가 이번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바람에, 이번주는 추수감사절 본문으로 준비합니다.(성서일과 본문으로, 왕국절 11주와 추수감사절 본문이 다릅니다.) 왕국절 11주 묵상을 따로 준비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 저희 교회가 11월 3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까닭은, 한국전통문화를 고려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전통 추수감사절은 음력 10월 초하루였습니다. 고구려의 '동맹'과, 예의 '무천'의 날짜가 그렇습니다. 추석이 가족 단위의 조상 차례였던 것에 비해, 상달에 올리는 제천의식은, 모든 추수를 다 마친 뒤에, 온 나라가 하늘님께 올리는 추수감사제였습니다. 그래서 저희 성실교회에서는 음력 10월 1일 직전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킵니다. 평소 음력 10월 초하루는 종종 11월 3째 주일일 때도 있습니다. 금년 2013년은 마침 음력 10월 1일이 11월 첫째 주일입니다.

 

 

생생한 감사

 

[성서일과 4본문]

 

(신명 26:1-11)

1.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유산으로 주시는 그 땅에 당신들이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고 살 때에,

2.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주시는 땅에서 거둔 모든 농산물의 첫 열매를 광주리에 담아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곳으로 가지고 가십시오.

3. 거기에서 당신들은 직무를 맡고 있는 제사장에게 가서 '주님께서 우리 조상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대로, 내가 이 땅에 들어오게 되었음을, 제사장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께 오늘 아룁니다' 하고 보고를 하십시오.

4. 제사장이 당신들의 손에서 그 광주리를 받아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제단 앞에 놓으면,

5.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서 다음과 같이 아뢰십시오. '내 조상은 떠돌아다니면서 사는 아람 사람으로서 몇 안 되는 사람을 거느리고 이집트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몸붙여 살면서, 거기에서 번성하여, 크고 강대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6. 그러자 이집트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괴롭게 하며, 우리에게 강제노동을 시켰습니다.

7. 그래서 우리가 주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부르짖었더니, 주님께서 우리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우리가 비참하게 사는 것과 고역에 시달리는 것과 억압에 짓눌려 있는 것을 보시고,

8.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9. 주님께서 우리를 이 곳으로 인도하셔서,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10. 주님, 주님께서 내게 주신 땅의 첫 열매를 내가 여기에 가져 왔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그것을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 놓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께 경배드리고,

11. 레위 사람과, 당신들 가운데서 사는 외국 사람과 함께,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과 당신들의 집안에 주신 온갖 좋은 것들을 누리십시오.

 

(시편 100)

1. 온 땅아, 주님께 환호성을 올려라.

2.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고, 환호성을 올리면서, 그 앞으로 나아가거라.

3. 너희는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알아라. 그가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의 것이요, 그의 백성이요, 그가 기르시는 양이다.

4. 감사의 노래를 드리며, 그 성문으로 들어가거라. 찬양의 노래를 부르며, 그 뜰 안으로 들어가거라. 감사의 노래를 드리며, 그 이름을 찬양하여라.

5. 주님은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 영원하다. 그의 성실하심 대대에 미친다.

 

(빌립 4:4-9)

4.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5.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7.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8. 마지막으로, 형제자매 여러분,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무엇이든지 경건한 것과, 무엇이든지 옳은 것과, 무엇이든 순결한 것과, 무엇이든 사랑스러운 것과, 무엇이든지 명예로운 것과, 또 덕이 되고 칭찬할 만한 것이면, 이 모든 것을 생각하십시오.

9. 그리고 여러분은 나에게서 배운 것과 받은 것과 듣고 본 것들을 실천하십시오. 그리하면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요한 6:25-35)

25. 그들은 바다 건너편에서 예수를 만나서 말하였다. "선생님,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

26.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여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자를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예수께 물었다.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됩니까?"

29.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

30. 그들은 다시 물었다. "우리에게 무슨 표징을 행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보고 당신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이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31. '그는 하늘에서 빵을 내려서, 그들에게 먹게 하셨다' 한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3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다 주신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참 빵을 너희에게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33. 하나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다."

34. 그들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그 빵을 언제나 우리에게 주십시오."

3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4본문 전체에 감도는 느낌]

* 추수감사절을 준비하며 놓치지 말아야 할 것,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것이 무엇인가?

** 좀 엉뚱한 것 같지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지금 감사해야 할 분이 누구냐, 어떤 분이냐이다.

*** 그분과 나와의 관계가 정확하고 선명할수록, 추수감사예배는 한 뼘 더 진지해지고 생생해질 것이다.

→ 이게 이번 추수감사절 성서일과 4본문의 알맹이다!

 

[구약 (신명 26:1-11)]

구약본문에서 유달리 많이 반복되는 문구들이 눈에 띈다.

→ “당신들”(19회), “주 당신들의 하나님”(8회)

→ 우리와, 우리 하나님과의 관계를 자꾸자꾸 부각시키는 것 같은 느낌이다.

→ 이는 그 중요한 관계가 자꾸자꾸 흐릿해져가는, 그 관계의 중요성을 시나브로 잊게 만드는 이 시대에 대한 파수꾼의 나팔소리처럼 들린다.

 

구약본문은 마치 추수감사의 바람직한 방법과 순서를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1) 첫 열매 담기(2절)

2) 성전으로 가져가기(2절)

3) 제사장에게 가기(3절)

4) 제사장에게 성전에 온 목적을 밝히기(3)

5) 하나님께 추수감사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고하기(5-10)

(→ 내가 지금 바치는 것은, 오직 주님께서 도우심으로 결실하고 추수한, 흠 없고 신령한 물질임을 강조하며 밝히는 것 같다.)

6) 예물을 바치고 하나님께 경배하기(10)

7) 소외된 이들(기업 없는 이들, 땅 없는 이들, 직업이 없거나 불안정한 이들)과 함께 추수한 것 누리기(11)

 

 

[시편 (시편 100)]

시편본문에서 ‘감사’의 느낌이 많이 우러난다.

→ 4절에 “감사의 노래를 드리며”가 두 번 반복되고 있다.

→ 그 감사는 매우 기쁘고 역동적이다. “환호성”을 올리라고 두 번 반복한다.(1, 2절)

→ 그 감사의 주체는 “온 땅”이고, 감사의 대상은 “주님”이시다.

 

시편 100편이 추수감사절 찬양으로 안성맞춤이라 생각된다.

→ 우리가 추수감사를 해야 하는 정확한 까닭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3절)

→ 3절, “그가 우리를 지으셨으니”를 묵상하면서, 추수감사는 내가 지은 농산물 추수를 감사드림과 동시에, 주님께서 지으신 나 자신이 바로 주님께서 추수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익기까지) 심으신 뒤 방치하지 않으신 은혜, 때를 따라 물과 거름을 주고, 김매고 보살피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그 은혜에 대한 감사!

→ 그리고 또 한 가지, 지금 내가 과연 알곡으로 자라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말씀이다.

 

 

[서신서 (빌립 4:4-9)]

서신서 본문은 (시편 100:3절과 연이어) ‘또 하나의 추수’, 아니 가장 진지하고 묵직한 추수인 ‘마지막 심판’을 제대로 준비하는 길에 대한 말씀이다.

[→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다는 말씀에서 그 느낌이 강하게 드러난다.(5)]

→ 마지막 심판(추수)를 준비하는 길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항상 기뻐하기(4), 내 관용을 모든 이에게 알리기(5), 근심하지 않기(6), 감사함으로 모든 일을 하나님께 아뢰기(6)

 

서신서를 묵상하면서 마음에 들어오는 구절이 “하나님의 평화”(7)와 “평화의 하나님”(9)이다.

그런데, 두 구절 바로 앞에, “그리하면”이 있다.

마지막 심판(추수)를 준비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물과 거름(샬롬)은 어디서 오는가? 이다.

1) 그것은 바로, (6절)“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일이다.

→ 이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다시 한 번 각성시키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 의붓아버지가 아닌 친 아버지, 그것도 세상 그 어느 절친보다 더 절친한 부모자식관계! 그런 관계라야 6절과 같이,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을 수 있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뢸 수 있는, 그런 소통이 가능하다.

2) 그리고 또 하나, (9절)“배운 것과 받은 것과 듣고 본 것들을 실천”하는 일이다.

→ 말씀대로, 말씀만큼, 말씀을 고스란히 실천하는 동안, 샬롬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 샬롬과 임마누엘! 샬롬 하나님의 임마누엘, 그분과 나와의 동거,,, 이것이 추수(심판)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길이다.

 

 

[복음서 본문 (요한 6:25-35)]

복음서본문의 알맹이는,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분명히 아는 일이다.

→ “참 빵”(32)∼“하나님의 빵”(33)∼“그 빵”(34)∼“생명의 빵”(35)은 예수님이시고 그 “생명의 빵”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은 성부하나님이시다.(32-35)

→ “생명의 빵”을 먹는 길(그분을 먹을 수 있는 길)은, 그분을 믿는 일(29)이다. 곧 그분과 나와의 관계를, 그 관계의 신비로운 역사를 만끽하며 하루하루 사는 일이다.

→ 달리 말하면, 참 추수감사의 길은, 썩을 양식에 대한 감사 이전에, (더 근본적으로) 썩지 않을 생명의 빵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먹게(내 안에 모시고, 그 뜻 기억하며 실천하게) 하실 정도로 관계 맺어주심에 대한 감사이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은 출생 순간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 빵과 관련이 깊다.

빵집 동네(베들레헴)에서 나셨으며, 더욱이 말밥그릇에 담겨 태어나셨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떡을 떼시며 그것이 당신의 몸이라고 하셨다.

인류의 밥으로 오신 주님!

 

 

[나머지 단상들]

추수감사의 길에 대한 마지막 명령들이 마음에 계속 남는다.

구약 신명기 본문 마지막 11절과, 서신서 빌립보서 마지막 9절의 지침(指針)이다.

 

(빌립보서)말씀을 배운 대로 실천하는 길,

(신명기)농사짓고 추수할 땅이 없는 이들, 오늘날 땅 없고 직장 없는 미래가 불투명하고 불안정한 이웃들과 내 추수를, 내 소득을 나누는 일, 억지로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누릴 수 있는’ 길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 둘은 하나로 통한다. 애매하고 추상적이지 않은 명료하고 생생한 관계! 그리고 감사!

 

빌립보서는 왜 ‘말씀 실천’을 강조했나? 그것은 추상적인 하나님과의 추상적인 소통이 아니라, 시,공간,관계적으로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하나님(5)과의 점점 생생해지는 소통을 위해서다. 말씀을 머리로만, 마음으로만 추상적으로 느끼는 한 그 관계는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말씀을 몸으로 실천하는 길만이 그분과의 관계를 생생하게 재정립하는 길이다. 그 때 추수감사(심판 준비)는 알맹이(알곡) 있는 감사가 될 수 있다.

 

신명기는 왜 ‘어려운 이웃과 물질 나눔’을 강조했나? 그것은 앞서 5-10절에서 구체적으로 보고드린 대로 과거 이집트 노예시절, 외국인으로, 나그네로 살던 기억과, 그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신 주님의 구체적인 구원 역사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내 추수감사의 목적과 감사과정이 추상적이지 않고 명료하면 명료할수록, 내 소득을 어려운 이웃들과 나눌 수 있게, 누릴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지금 내가 추수하기까지 내내 임마누엘로 관계하신 그분에 대한 생생한 믿음의 증거다.

 

 

[말씀노래] 내게 오너라(생명의 떡)

 

1. 썩는양식 위하여 일하지말고 / 영생토록 남을양식 위해일하라

이양식은 너위해 인자가주리니 / 인자는 아버지의 인치신자라

 

2. 썩는양식 위하여 일하지말고 / 영생토록 남을양식 위해일하라

생명의떡 바로나다 내게오너라 / 기갈중에 있는자는 모두모두오너라

 

 

 

 

 

 

[말씀동화] 예수님을 닮은 허수아비

 

고요한 빈들입니다.

 

한여름엔 시원한 바다처럼 초록 물결로 가득한 들판이었습니다.

가을철엔 누렇게 익은 벼이삭으로 꽉 찬 들판이었습니다.

첫서리 내리고 입동도 지난 지금은 텅 빈 들판, 고요한 빈들입니다.

 

아!

저기 빈들을 지키는 이가 하나 있네요!

남루한 옷을 입고 밀짚모자를 눌러쓴 허수아비!

옷차림은 볼품없지만 들판에서 가장 늠름하고 훤칠한 지킴이, 허수아비입니다.

 

바람이 붑니다.

차가운 바람이 빈들을 꽉 채웁니다.

바람따라 참새 한 무리가 날아오네요.

빈들에 내려앉아 남아있는 이삭줍기를 합니다.

풍년 들녘엔 떨어진 이삭도 넉넉합니다.

그리고 한 떼 두 떼 참새 떼들이 오고갈 때마다 이삭은 줄어듭니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참새 한 마리가 벼이삭을 찾아다니며 힐끗힐끗 요리조리 허수아비를 올려다보네요.

세상에서 가장 한가한 허수아비는 물끄러미 참새를 굽어봅니다.

뒤늦게 날아와 빈들엔 이삭이 남아있지 않아 마음만 이리저리 바쁜 참새입니다.

허수아비는 허기진 어린 참새에게 이리 오라고 부릅니다.

허수아비 뒤에 아무도 못 찾은 이삭이 잔뜩 모여 있었습니다.

보물찾기하듯 숨은그림찾기 하듯 신바람 난 어린 참새가 냉큼 허수아비 가까이 다가옵니다.

한 점 두 점 이삭을 줍던 참새가 허수아비에게 말을 겁니다.

배고픈 건 참아도 궁금한 건 못 참는 어린 참새입니다.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 이름 뭐예요?”

 

“어머! 난 아저씨 아니야. 아가씨야. 이름은 허수아비고.”

 

“허수-아비요?”

 

“아니, 허-수아비!”

 

“오예쁜 이름이네요. 아가씨를 보니까 내가 아는 아저씨를 많이 닮았어요. 멀리 이탈리아 아씨시 마을 프란시스 아저씨요. 프란치스님은 허-수아비님처럼 이름도 길고요, 옷차림도 남루했데요. 그리고 우리 새들과 대화를 나누는 걸 무척 좋아했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닮으려고 무척 애를 많이 쓰셨고요.”

 

“예수님? 나는 그분을 닮으려 애쓴 적 없는데?”

 

“내가 보기엔 수아비님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많이 닮았어요. 특히 두 팔 벌리고 다리는 하나로 모은 그 모습,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랑 아주 비슷해요. 그리고 자기 것을 아낌없이 나눠주시는 것도요.”

 

“아니야, 벼이삭은 내 것이 아니야. 하늘님께서 내리신 이슬과 빗물, 그리고 햇빛으로 추수한 거란다.”

 

빈들입니다.

배고픈 어린참새가 허기진 배를 채울 겨를도 없이 힘세고 재빠른 참새 떼가 날아와 다 먹어치웁니다.

울상이 된 어린참새가 허수아비를 올려다봅니다.

금방이라도 울음보가 터질 것만 같습니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허수아비가 빙그레 웃으며 소곤소곤 이야기합니다.

 

“내 허리춤에 이삭이 숨어 있단다.”

 

남루한 저고리가 바람에 춤을 추자

볏짚으로 만든 허수아비의 몸 구석구석에 묵은 이삭이 드러납니다.

다행히 철든 참새들은 허수아비를 싫어합니다.

조금 거만해보이고, 조금은 무섭기도 하고, 그리고 들녘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닮은 낯선 모습이 싫습니다.

그래서 허수아비의 저고리 안에 맛있는 이삭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모릅니다.

철없는 어린 참새는 포르르 날아올라 허수아비의 이삭을 먹습니다.

허수아비의 몸을 먹습니다.

 

“호호호, 아이 간지러워, 참새야 참새야 체할라 조금 천천히 먹으렴!”

 

“고마워요 수아비님. 자기 몸을 먹으라고 주시는 분은 수아비님이 처음이에요.”

 

“아니야, 아니야, 내 몸은 내 것이 아니야. 하늘님이 자라게 하신 벼이삭, 볏짚으로 만들어진 내 몸은 하늘님이 내려주신 몸이란다. 그러니 하늘님께 ‘고맙습니다!’ 하고 감사드리렴. 그리고 하늘님은 너처럼 나그네, 특히 어리고 힘없는 나그네가 배고플 때 내 몸을 나눠주는 걸 매우 기뻐하실 거야.”

 

참새는 허수아비의 몸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짹짹짹 쉬지 않고 종알거립니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주워들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허수아비는 귀를 쫑긋 세우고 참새 이야기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귀담아 듣습니다.

 

참새와 허수아비는 서로서로 한 뼘 두 뼘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참새와 허수아비는 서로서로 세 뼘 네 뼘 서로 가까워져 갑니다.

늠름한 허수아비의 몸을 먹은 어린참새는 아까보다 서너 뼘 더 늠름해집니다.

늠름한 허수아비의 몸은 아까보다 서너 뼘 더 홀쭉해졌습니다.

 

찬바람에 불기 시작합니다.

시나브로 정이든 참새와 허수아비도 이제 헤어질 시간입니다.

늠름해진 어린 참새는 헤어지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홀쭉해진 허수아비는 헤어지는 슬픔에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이 아픕니다.

 

“고마워요 수아비님! 보잘것없는 저 같은 참새에게 귀한 몸을 먹여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다음 가을엔 더 늠름해져서 놀러올게요. 그리고 더 재미있는 이야기 많이 물어올게요.”

 

“고마워 참새야! 네 덕분에 외롭고 썰렁한 빈들이 모처럼 오붓하고 아기자기하고 따뜻하고 참 재미있었어. 다음에도 꼭 날 찾아오렴. 그리고 잊지 말거라. 넌 보잘 것 없는 새가 아니야. 새 중의 새, 진정한 새, 너는 참새란다. 하늘님이 먹이시는 늠름한 참새란다.”

 

“고마워요 수아비님, 수아비님은 제가 본 아가씨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늠름한 아가씨예요.”

 

참새는 씩씩하게 날아오릅니다.

허수아비 위로 날아올라 정성을 다해 인사를 하고 떠나갑니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빙글빙글 빙그레 돌아갑니다.

따뜻한 미소로 참새를 배웅하던 허수아비는 허리춤이 허전합니다.

 

“왜 이리 춥고 허전할까? 허수아비니까 허술한 게 당연하겠지?”

 

허수아비는 혼자서도 재미있는 척 농담을 합니다.

빈들처럼 썰렁한 농담입니다.

금세 어린 참새가 그립습니다.

그래서 겨울바람이 더 춥게 느껴지나 봅니다.

 

“붕∼붕∼”

 

북풍이 세차게 몰아치자 허수아비의 허리가 푹 꺾입니다.

허수아비의 머리가 땅을 향하면서 밀짚모자가 툭 떨어집니다.

 

“밀짚모자는 한여름에나 필요한 법이지. 이젠 모자를 벗을 때가 되었지 뭐!”

 

여전히 허수아비는 혼자서도 재미있는 척 농담을 합니다.

내년 가을엔 늠름하고도 좀 더 튼튼한 허수아비로 우뚝 서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허리춤에 토실토실한 이삭이 잔뜩 달려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붕∼붕∼붕∼∼∼”

 

북풍이 한바탕 더 크게 몰아칩니다.

하늘님께서 보내신 큰 바람입니다.

그 바람에 마침내 허수아비는 다리 째 뽑혀 빈들에 눕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땅에 누워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늘님, 난생처음 편안히 땅에 누워 하늘을 봅니다. 하늘이 저렇게 푸를 수 있다니! 하늘님 참 고맙습니다!”

 

겨울바람은 뭐가 그리 바쁜지 여전히 씽씽 거리며 빈들을 쏘다니고 있습니다.

허수아비는 겨울바람을 느끼며 하늘을 향해 미소를 짓습니다.

빈들에 혼자 서있을 때보다 훨씬 넉넉해진 미소입니다.

무엇이든 아낌없이 내려주시는 하늘님을 닮은 미소입니다.

 

[이정훈 지음, 2013년 7월 말]

[『성실문화』 76호, 예배마당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