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2013년 10월 20일 (왕국절 9주) 예배준비 노트

말씀의 맛, 기도의 맛

 

[성서일과 4본문]

(예레 31:27-34)

27. "그 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뿌리겠다. 나 주의 말이다.

28. 내가 전에 그들을 뽑아내고 부수고 무너뜨리고 멸망시키고 재앙에 빠뜨리려고, 감시를 늦추지 않았으나, 이제는 내가 그들을 세우고 심으려고, 감시를 늦추지 않겠다. 나 주의 말이다.

29. 그 때가 오면, 사람들이 더 이상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었기 때문에, 자식들의 이가 시게 되었다'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30. 오직 각자가 자기의 죄악 때문에 죽을 것이다. 신포도를 먹는 그 사람의 이만 실 것이다."

31. "그 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새 언약을 세우겠다. 나 주의 말이다.

32. 이것은 내가 그들의 조상의 손을 붙잡고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던 때에 세운 언약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은 나의 언약을 깨뜨려 버렸다. 나 주의 말이다.

33. 그러나 그 시절이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언약을 세울 것이니,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34. 그 때에는 이웃이나 동포끼리 서로 '너는 주님을 알아라' 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작은 사람으로부터 큰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모두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 나 주의 말이다."

 

(시편 119:97-104)

97. 내가 주님의 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온종일 그것만을 깊이 생각합니다.

98. 주님의 계명이 언제나 나와 함께 있으므로, 그 계명으로 주님께서는 나를 내 원수들보다 더 지혜롭게 해주십니다.

99. 내가 주님의 증거를 늘 생각하므로, 내가 내 스승들보다도 더 지혜롭게 되었습니다.

100. 내가 주님의 법도를 따르므로, 노인들보다도 더 슬기로워졌습니다.

101. 주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나쁜 길에서 내 발길을 돌렸습니다.

102. 주님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나는 주님의 규례들에서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103. 주님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도 단지요? 내 입에는 꿀보다 더 답니다.

104. 주님의 법도로 내가 슬기로워지니, 거짓된 길은 어떤 길이든지 미워합니다.

 

(딤후 3:14-4:5)

14.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굳게 믿는 그 진리 안에 머무십시오. 그대는 그것을 누구에게서 배웠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15. 그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대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줄 수 있습니다.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17.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4:1. 나는 하나님 앞과,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분의 나타나심과 그분의 나라를 두고 엄숙히 명령합니다.

2. 그대는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하게 힘쓰십시오.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책망하고 경계하고 권면하십시오.

3.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건전한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네 욕심에 맞추어 스승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4. 그들은 진리를 듣지 않고, 꾸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5. 그러나 그대는 모든 일에 정신을 차려서 고난을 참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그대의 직무를 완수하십시오.

 

(누가 18:1-8)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2. "어느 고을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3. 그 고을에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그 재판관에게 줄곧 찾아가서, '내 적대자에게서 내 권리를 찾아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4. 그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얼마 뒤에 이렇게 혼자 말하였다. '내가 정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지만,

5. 이 과부가 나를 이렇게 귀찮게 하니, 그의 권리를 찾아 주어야 하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가 자꾸만 찾아와서 나를 못 견디게 할 것이다.'"

6.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라.

7.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찾아주시지 않으시고, 모른 체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얼른 그들의 권리를 찾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

 

 

[성서일과 4본문 묵상 노트]

이번 성서일과 4본문을 읽으며 묵상하는 동안 마음속에 쏙 들어온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말씀의 맛” 입니다.(시편 119:103)

시인은 “말씀의 맛”이 꿀보다 더 달다고 노래합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성서일과 중 3본문의 주제가 ‘말씀’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주제인 복음서도 ‘말씀’과 연관하여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구약본문, 예레미야 31:27-34에는 “나 주의 말이다”가 여섯 번이나 반복됩니다.

예언자로부터 하나님 말씀 들을 때 별 감동 없는 오늘 우리들 때문에 자꾸 강조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레 31:27, 28, 31, 32, 33, 34)

 

시편본문 119:97-104에는 매 절마다 말씀과 관련한 단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97)“주님의 법”, (98)“주님의 계명”, (99)“주님의 증거”, (100)“주님의 법도”, (101)“주님의 말씀”, (102)“주님의 규례”, (103)“주님의 말씀”, (104)“주님의 법도”

 

서신서본문, 디모데후서 3:14-4:5에도 말씀과 관련한 단어가 이어집니다.

(14)“진리”, (15)“성경(X 2)”, (16)“성경”, (17)“성경”, (4:2)“말씀”, (3)“교훈”, (4)“진리”

 

시편에서는 “말씀의 맛”이 꿀보다 더 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서신서에는 그 맛이 쓰다는 식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저들이 좋아하는 단맛, 즉 귀에 달콤한 말은 결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 걸 가리켜 말 그대로 감언이설(甘言利說)이라고 부릅니다.

예언자는, 목사는, 교사는 결코 감언이설을 위해 세워진 사람이 아닙니다.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건전한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네 욕심에 맞추어 스승을 모아들일 것입니다.”(딤후 4:3)

 

오늘 4본문 가운데서 “말씀의 맛”이 가장 강렬한 구절로, 예레미야 31:33절을 꼽고 싶습니다.

출애굽 때 광야에서 받은 돌판에 새긴 말씀보다 훨씬 더 강렬합니다.

출애굽 때 쉽게 깨졌던 그 언약보다(32) 훨씬 더 단단한 관계의 언약입니다.

 

“...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판에 새겨 기록하여 ...”

 

이렇게 형성된 관계, 하나님과 그 백성, 나아가 생생한 부모자식관계!

이런 관계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이라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자동적으로 그분을 찾습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그분께 간구하기 마련입니다.

응답이 더디면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 반복해서 간구합니다.

점점 더 강하게 요구하게 되는 법입니다.

 

내 마음판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판에 그분 말씀, 그분 뜻, 그분 약속, 그분 흔적이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그분이 내 어버이시라는 증거가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기도 하지 않고, 기도를 해도 적당히 하다 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건 내가 그분 자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 판에 그 말씀 새겨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알맹이는 기도입니다.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 말씀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이것입니다.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찾아주신다는 말씀입니다.(누가 18:7, 새번역)

“택하신 백성”! 이 부분이, 묘하게도 오늘 구약본문인 예레미야 31:33절 말씀과 이어집니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이렇게 택하신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까?

이 말씀 바로 앞에 그 답이 있습니다.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33)

 

그러고 보니, “택하신 백성의 권리”란 바로 ‘마음 판에 새겨진 말씀’이었습니다.

‘마음 판에 새겨진 말씀’이 바로 “택하신 백성”이라는 아이디카드(신분증명서)입니다.

‘마음 판에 새겨진 말씀’이 바로 “택하신 백성”의 권리장전(權利章典)인 것입니다.

 

사노라면 억울한 일 당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정말 억울한 것은, 우리가 그분의 자녀라는 명명백백한 사실을 부정 당하는 일입니다.

내 안에 새겨진 말씀 - 하나님의 정의, 평화, 사랑, 창조질서,,, 양심이 무너지고 짓밟히는 일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쉬지 않고 주님께 부르짖고 또 부르짖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머지]

[딤후 4:3]

성경말씀 가운데 복(福)이 나오면 눈이 번쩍 뜨입니다.

그러나 화(禍)로 보이는 가난과 고난이 나오면 자동적으로 마음의 귀를 닫습니다.

그건 바로 내 안에 주님을, 말씀을 모시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겉으로는 그분을 내 안에 모신 것 같지만, 사실 내 왕국의 문지기나 기껏해야 수호신(守護神) 정도로 초청한 것뿐입니다.

그분을 왕으로 모실 때 비로소 ‘내 왕국’이 변하여 천국(天國)이 되는데도 말입니다.

내 안에 ‘내 말’이 아니라 ‘그 말씀’으로 가득 찰 때 ‘내 왕국’이 무너지고 천국이 세워지는데도 말입니다.

 

[누가 18:7-8]

무조건 반복해서 떼쓰듯 기도하면 다 이루어주신다는 게 아닙니다.

탐욕을 채우기 위한, 쾌락을 위한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쾌락을 누리는데다가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야고 4:2-3)

 

마음 판에 말씀이 새겨져 있는 주님의 참 자녀의 권리를 찾기 위한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말씀 충만한 가운데 나오는 기도에 꼭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요한 15:7)

 

이제 우리의 기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주님 백성의 권리, 주님 자녀의 권리를 되찾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즉 나를 비우고 내 안에 말씀을 채울 수 있기를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 말씀에 위배되는 세상, 그 말씀의 소리를 가로막는 세상을 개혁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의, 평화, 사랑, 창조질서보전을 해치는, 돈과 권력의 노예 세상을 개혁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낙심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반복 또 반복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노래] 믿음으로 기도하라

 

1. 무례하고 시건방진 안하무인 재판관도 / 끈질기게 졸라대는 과부정성 못이긴다

제자들아 제자들아 낙심말고 기도하라 / 제자의 권리로다 믿음으로 기도하라

2. 대자대비 하나님이 사랑많은 하나님이 / 밤낮으로 부르짖는 너희기도 들으신다

제자들아 제자들아 낙심말고 기도하라 / 제자의 권리로다 믿음으로 기도하라

 

 

 

 

 

[말씀동화] 망치소녀 신바람 났네!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앞서가던 영구오빠가 냅다 소리칩니다.

큰소리는 쳤지만 다리를 후들후들 떨고 있네요.

상구오빠가 간절한 눈빛으로 소라를 바라봅니다.

 

“소라야, 저 놈은 너무 크다. 네가 상대해야겠는 걸?”

 

“알았어, 오빠! 저 정도는 별거 아니니까 너무 걱정 마!”

 

지금 소라는 삼장목사를 모시고 오빠들과 함께 이스라엘로 가는 중입니다.

키다리 삼장목사님은 대머리에 검정 안경을 쓰셨죠.

기다란 나무지팡이를 짚고 저 뒤에 따라오시고 있군요.

 

... 어느 날 갑자기 온 세상에서 성경책이 사라졌습니다.

종이성경은 물론 스마트폰과 인터넷 안에서도 모든 성경이 사라져버렸죠.

그러자 세상은 혼란에 휩싸이고 맙니다.

 

시도 때도 없이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집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건 날벼락뿐이 아닙니다.

여름만 되면 시간당 100밀리가 넘는 폭우가 물폭탄처럼 쏟아집니다.

삼천리금수강산 대한민국에도 지진과 쓰나미는 마치 여름철 장마처럼 연중행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바람에 곳곳에 있던 원자력발전소를 멈춘 지 오랩니다.

지진으로 원자력발전소가 깨지면서 방사능오염수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젠 바다의 물고기뿐 아니라 쌀농사도, 맛있는 고구마 농사도 안 됩니다.

산에서 자라는 밤나무와 버섯과 산삼조차 방사능에 오염될 지경입니다.

 

예언자들은 세상에 딱 하나 남은 성경책이 베들레헴에 있다고 합니다.

베들레헴은 이스라엘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이죠.

베들레헴 어느 동굴 속에 있는 그 성경책을 가져와야 합니다.

그래야 삼천리금수강산이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덤벼라 요괴야! 나의 여의봉 맛을 보여주마!”

 

어느새 소라의 오른손에 커다란 망치가 들려 있군요.

집채만 한 커다란 멧돼지 요괴가 탱크처럼 달려듭니다.

소라는 벼락같이 소리 지르며 공중으로 날아오릅니다.

순간 소라의 망치가 번쩍 빛을 뿜습니다.

레이저광선이 몸에 닿자마자 요괴는 마치 백만 볼트 전기에 감전된 듯이 펄쩍 뜁니다.

그러더니 엄청나게 커다란 멧돼지 요괴가 새끼손가락만한 액세서리처럼 작아지네요?

깜짝 놀란 요괴는 어마뜨거라 꼬물꼬물 꽁무니를 뺍니다.

하늘에 솟아올랐던 소라가 어느덧 땅에 내려와 가쁜 숨을 몰아쉽니다.

 

“애썼다 소라야!”

 

삼장목사님이 소라의 등을 두드려줍니다.

저 뒤에서 구경만 하던 저팔계 상구오빠와 사오정 영구오빠도 박수를 칩니다.

 

“소라, 짱이다! 저 엄청난 요물들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하네!”

 

오늘도 으쓱으쓱 어깨춤이 절로 나오네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려해도 어깨가 자꾸 으쓱으쓱 올라갑니다.

아빠와 오빠들의 칭찬에 소라의 입꼬리도 자꾸만 춤을 춥니다.

쿨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려해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렵습니다.

 

“푸하하하하하∼”

 

“호호호∼ 무슨 아이가 자면서 이렇게 큰소리로 웃을까? 소라야 어서 일어나, 학교가야지!”

 

엄마 목소리에 벌떡 일어나보니 꿈이네요.

소라는 입맛을 쩍쩍 다시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오늘도 손오공 꿈을 꾸었군요.

소라는 품고 자던 손오공 인형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잔나비(원숭이) 띠’ 소라의 영웅은, 처키도 뿌까도 아닌 바로 손오공입니다.

 

사실 그 인형은 손오공이 아니라 그냥 자그마한 원숭이 인형이에요.

며칠 전 오빠들이랑 양평대명콘도 수영장에 놀러갔다가 오락실 인형뽑기에서 뽑은 거죠.

오빠들은 아무 것도 못 뽑았지만, 소라는 단번에 뽑아버렸답니다.

 

수많은 인형들 중에서 유달리 원숭이 인형에 눈이 갔습니다.

그런데 사실 소라의 눈길을 끈 알맹이는 원숭이 인형 목에 걸린 자그마한 망치 액세서리였죠.

알록달록한 색깔도 색깔이려니와 엄지 손가락만한 망치에서 뿜어 나오는 묘한 빛이 눈길을 사로잡았죠.

신기한 건, 소라 외에는 아무도 그 오묘한 빛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아무튼 소라는 그 뒤로 매일매일 팔뚝만한 원숭이 인형을 품고 잠을 잡니다.

학교 갈 때도 엄마 몰래 가방에 넣어 갑니다.

그리고 교실에서 공부할 때도, 집에서 만화책 볼 때도, 원숭이목걸이 망치를 만지작거립니다.

 

사실 소라네는 원래 망치랑 인연이 깊습니다.

아빠가 가장 아끼는 유물이 바로 망치거든요.

아빠의 할아버지는 목수셨습니다.

아빠는 할아버지로부터 자그마한 벼루 하나와 망치 하나를 물려받았죠.

 

우리 집에서 가장 날랜 영구오빠는 오락실 두더지 잡기 챔피언입니다.

아빠 망치보다 두더지 망치가 더 크다고 우쭐대네요?

상구오빠는 그런 영구오빠를 거만하게 비웃어버립니다.

왜냐구요?

상구오빠는 스마트폰을 사려고 떡집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날 떡집 앞에서 떡메를 치는 일이죠.

 

“푸하하하핫, 영구 보아라! 이게 세상에서 가장 큰 망치란 말이다!”

 

과연 떡메는 세상에서 가장 큰 망치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라는 상구오빠의 떡메가 너무너무 부럽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가 저렇게 큰 떡메를 번쩍 들기도 어렵겠지만, 그래도 그게 부럽습니다.

조각가 큰고모가 들었다던 자그마한 돌 깨는 망치, 예술작품 만드는 망치보다도 떡메가 더 부럽습니다.

영구오빠가 들고 싶은 판사님 망치보다도 역시 소라에게는 상구오빠의 커다란 떡메가 가장 부럽습니다.

 

바로 그 때 만난 원숭이 인형의 목걸이 망치입니다.

엄지손가락만한 예쁜 망치!

아쉬운 건, 너무너무 작은 망치라는 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망치!

 

오늘도 소라는 망치를 만지작거리며 예배당에 올라갑니다.

기도하러 예배당에 올라가면서도 손오공인형을 안고 가네요.

 

“하나님, 저도 오빠들처럼 성경말씀 잘 읽고 하나님 말씀 환히 깨치게 해주세요!”

 

소라는 성경말씀 잘 읽어서 말씀동시도 잘 짓고 말씀동요도 잘 짓고 싶은 꿈이 있거든요.

소라가 기도를 마치고 주기도송을 부릅니다.

문득,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여” 하면서 습관적으로 망치를 만지작거렸습니다.

그러자 이게 웬일? 망치가 움직이기 시작하네요?

 

갑자기 망치가 부르르 떨기 시작하더니 이내 쑥쑥 커지기 시작합니다.

소라의 키보다 훨씬 커집니다.

여의봉처럼 마구마구 커집니다.

어느덧 망치 자루가 2미터나 되고 망치 머리는 절구통만 해집니다.

 

딱 어젯밤 꿈에 본 바로 그 망치입니다.

집채만 한 멧돼지를 새끼손가락만하게 쪼그라뜨렸던 바로 그 망치입니다.

꿈에도 몰랐던 마법망치였던 것입니다.

그래도 소라에게 망치는 여전히 장난감처럼 가볍습니다.

“야호!” 소라는 신바람이 납니다.

 

소라는 다시 눈을 감고 주기도송을 부릅니다.

주기도송을 부르면서 망치를 만지작거립니다.

 

“일용할 양식 주옵시고∼♬”

 

그러자 또 망치가 부르르 떱니다.

갑자기 소라 무릎이 따뜻해지네요?

눈을 번쩍 떠보니 소라가 좋아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삶은 고구마가 앞에 있습니다.

껍질째 먹어보니 초코아이스크림보다 더 달고 맛있습니다.

입에서 살살 녹습니다.

 

소라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배가 부릅니다.

신바람이 납니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주기도송을 끝까지 부릅니다.

 

“아∼아, 아∼멘∼♬”

 

바로 주기도문의 마지막 아멘을 올릴 때 망치는 다시 작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마법망치의 비밀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소라는 몇 가지밖에 모릅니다.

주기도송 어느 대목에서 망치가 커지고 작아지는지, 그리고 맛있는 음식이 나오는지만 알 뿐입니다.

마법망치의 비밀은 성경말씀에 담긴 비밀과 통한다는 사실을 소라는 동물적 감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매일 밤 기도회 때마다 성경 읽고 나서 질문 더 열심히 할 걸.”

 

후회가 막심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성경을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 밤 기도회 때마다 눈에 불을 켜고 성경을 읽어야지 결심합니다.

상구오빠보다 더 열심히 질문도 해야지 하고 결심합니다.

 

소라는 마법망치의 비밀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입이 간질간질해서 견딜 수 없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상구오빠의 떡메보다 몇 배나 더 큰, 세상에서 가장 큰 망치라고 자랑하고 싶어도 꾹 참았습니다.

 

드디어 주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예배시간입니다.

목소리 높여 성경을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목사님 설교말씀을 들으며 소라는 가슴이 뜁니다.

여태 느끼지 못했던 성경말씀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성경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낱낱이 깨달아집니다.

 

마법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니 마법이 아니라 이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건 바로 성령님께서 내 눈과 귀를 열어주시는 신비입니다.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예레 31:33)

 

‘아니 이럴 수가! 정말 하나님께서 말씀을 내 안에 넣어주시고 새겨주시는 게 느껴지네?’

 

“주님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도 단지요? 내 입에는 꿀보다 더 답니다.”(시 119:103)

 

‘아니 이럴 수가! 정말 하나님 말씀이 이렇게 달고, 초코보다 달콤할 수 있다는 걸 내가 왜 여태 몰랐을까?’

 

“주님의 법도로 내가 슬기로워지니, 거짓된 길은 어떤 길이든지 미워합니다.”(시 119:104)

 

소라는 문득 이 말씀을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목사님께 들었던 설교말씀이 하나하나 기억나기 시작합니다.

 

“주님의 법도로 내가 슬기로워지니!”

 

그러고 보니 하나님 말씀은 법(法)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 그 법을 잘 지켜야 하나님나라가 세워진다고 하셨습니다.

나랏법을 잘 지켜야 우리나라가 바로 세워진다고 하셨습니다.

민주주의를 세우는 가장 기본법을 무시하면 민주주의가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민주주의를 세우는 가장 기본법에 대해서도 가르쳐주셨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1조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민주주의를 세우는 가장 기본인 선거법을 잘 지켜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선거에 부정이 있거나, 선거공약을 지키지 못하면 나라가 기울어진다고 하셨습니다.

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가 대통령선거 부정을 저질렀다고 하셨습니다.

대통령은 공약을 하나 둘 지키지 않겠다고 한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가 점점 기울어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법도로 내가 슬기로워지니, 거짓된 길은 어떤 길이든지 미워합니다.”(시 119:104)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법을 알기 시작하면서 소라의 눈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거짓된 길은 어떤 길이든지 미워지기 시작합니다.

가슴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면서, 문득 소라는 마법망치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주기도송을 읊조리기 시작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여∼”

 

그러자 망치가 부르르 떨더니 쑥쑥 커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본 목사님의 눈이 등잔처럼 둥그레집니다.

상구오빠도 영구오빠도, 온 교우들의 눈이 보름달처럼 휘둥그레집니다.

2미터가 넘는 어마어마한 망치를 휘두르며 소라가 소리칩니다.

 

“목사님, 성경말씀 읽으면서 거짓된 길은 어떤 길이든지 미워지기 시작했어요!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불법선거 저지른 사람들, 선거공약 지키지 않는 사람들 혼내주러 다녀올게요. 제가 잘 할 수 있어요. 느낌 아니까! 이 마법망치 하나면 저 혼자서도 충분해요. 오늘 디모데후서 3:17절 말씀에,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라고 하시잖아요. 하나님께서 며칠 전에 제게 마법망치를 주셔서 저를 유능하게 하셨거든요. 이제부터 선한 일, 정의로운 일을 시작해야겠죠? 아예 나갔다 오는 김에 밀양송전탑도 없애고 고리 원자력발전소도 없애버리고, 아 맞다! 저 후쿠시마 가서 거기 원자력발전소도 없애버리고 와도 되죠? 제가 이 마법망치 한번 휘두르면 나쁜 것들은 모두 새끼손가락만큼 작아져버리거든요.”

 

목사님이 갑자기 당황하기 시작하시네요?

 

“소라야, 이스라엘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단다. ‘가진 게 망치밖에 없는 사람 눈에는 세상 모든 것이 못대가리로 보인다.’ 그런데 소라 네게는 그 망치 말고 더 귀한 게 많이 있지 않니? 무엇보다도 하나님 말씀이 있고 기도가 있잖으냐? 소라야 잠시 진정하고 오늘 하나님 말씀을 좀 더 읽어보자꾸나.”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찾아주지 않으시고, 모른 체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얼른 그들의 권리를 찾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누가 18:7-8)

 

“자, 어떠냐 소라야. 이 말씀이 네 마음에 느껴지느냐? 너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하나님의 딸이란다. 그러니 네 마음속엔 하나님 말씀이 새겨져 있는 게 분명해. 그렇다면 너는 왜 기도하지 않느냐? 하나님 택하신 백성의 권리, 하나님 자녀의 권리를 빼앗겼을 때 왜 기도하지 않느냐? 오늘 예수님 말씀이 분명히 얼른 그 권리를 찾아주실 것이라고 하셨는데 말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사대강이 망가지고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공포에 떨고, 원자력발전소 때문에 세워진 송전탑건설로 하나님 자녀들의 살림살이가 다 망가지게 생겼는데 왜 기도하지 않느냐? 지금 부정선거와 선거공약 무효화로 민주주의가,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다 망가지게 생겼는데 너는 왜 기도하지 않느냐? 기도는 그 어느 마법망치보다 훌륭한 힘이 있단다. 하나님께서 얼른 그 기도 들어주신다고 했다. 우리 이제 다 함께 힘을 모아 기도하자꾸나.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하신다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자꾸나. 이 나라의 살림살이를 맡긴 행정부 일꾼들을 위해, 우리나라의 정의수호를 맡긴 입법 사법부를 위해, 우리나라의 평화를 맡긴 국군을 위해 기도하자꾸나. 못된 원자력발전소, 못된 정치인들을 마법망치로 두드려서 새끼손가락 만하게 만드는 것도 좋지만, 하나님께 기도드려서 그들이 변화되게 하는 것이 더 멋지지 않겠니? 아무리 해도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 때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니 너무 염려 말거라. 사랑하는 소라야, 오늘부터 너는 마법망치의 힘보다 먼저 말씀의 힘, 기도의 힘을 믿고 의지하거라!”

 

소라는 눈을 깜빡거리며 목사님 말씀을 경청했어요.

그리고 오늘 성서일과 본문말씀들을 다시 느끼면서 고개를 끄덕였어요.

마법망치를 만지작거리면서 주기도송을 불렀어요.

주기도송 마지막 마디에서 마법망치는 다시 엄지손가락만큼 작아졌죠.

 

소라는 마법망치를 잘 간수했다가 나중에 더 재미있는 일을 위해 쓰기로 했어요.

그리고 우선 가장 급한 일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엄마아빠가 주신 기도공책에,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얻은 기도제목을 적어 넣었어요.

먼저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약하고 억울한 분들, 밀양 할머니들을 위해 매일매일 기도하기로 했어요.

하나님께서 언제, 어떤 식으로 기도응답해주실까?

두근두근, 망치소녀 소라는 지금 가슴이 설레며 신바람이 납니다.

 

[이정훈 지음, 2013년 10월 20일 주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