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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2013년 10월 6일 (왕국절 7주, 세계성찬주일) 예배준비 노트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성서일과 4본문]

(애가 1:1-6)

1. 아, 슬프다. 예전에는 사람들로 그렇게 붐비더니, 이제는 이 도성이 어찌 이리 적막한가! 예전에는 뭇 나라 가운데 으뜸이더니 이제는 과부의 신세가 되고, 예전에는 모든 나라 가운데 여왕이더니 이제는 종의 신세가 되었구나.

2. 이 도성이 여인처럼 밤새도록 서러워 통곡하니, 뺨에 눈물 마를 날 없고, 예전에 이 여인을 사랑하던 남자 가운데 그를 위로하여 주는 남자 하나도 없으니, 친구는 모두 그를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는가!

3. 유다가 고통과 고된 노역에 시달리더니, 이제는 사로잡혀 뭇 나라에 흩어져서 쉴 곳을 찾지 못하는데, 뒤쫓는 모든 자들이 막다른 골목에서 그를 덮쳐 잡는구나.

4. 시온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쓸쓸하다니! 명절이 되었는데도 순례자가 없고, 시온 성으로 들어가는 모든 문에도 인적이 끊어지니, 제사장들은 탄식하고, 처녀들은 슬픔에 잠겼구나. 시온이 이렇게 괴로움을 겪는구나.

5. 대적들이 우두머리가 되고, 원수들이 번영한다. 허물이 많다고, 주님께서 그에게 고통을 주셨다. 아이들마저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사로잡혀 끌려갔다.

6. 도성 시온이 누리던 모든 영광이 사라지고, 지도자들은 뜯을 풀을 찾지 못한 사슴처럼 되어서, 뒤쫓는 자들에게 힘 한 번 못쓴 채 달아나고 말았구나.

 

(시편 137)

1. 우리가 바빌론의 강변 곳곳에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면서 울었다.

2. 그 강변 버드나무 가지에 우리의 수금을 걸어 두었더니,

3. 우리를 사로잡아 온 자들이 거기에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고, 우리를 짓밟아 끌고 온 자들이 저희들 흥을 돋우어 주기를 요구하며, 시온의 노래 한 가락을 저희들을 위해 불러 보라고 하는구나.

4. 우리가 어찌 이방 땅에서 주님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랴.

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아, 너는 말라비틀어져 버려라.

6. 내가 너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 예루살렘을 내가 가장 기뻐하는 것보다도 더 기뻐하지 않는다면, 내 혀야, 너는 내 입천장에 붙어 버려라.

7. 주님, 예루살렘이 무너지던 그 날에, 에돔 사람이 하던 말, "헐어 버려라, 헐어 버려라. 그 기초가 드러나도록 헐어 버려라" 하던 그 말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8. 멸망할 바빌론 도성아, 네가 우리에게 입힌 해를 그대로 너에게 되갚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9. 네 어린 아이들을 바위에다가 메어치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딤후 1:1-14)

1.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이,

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자비와 평화가 그대에게 있기를 빕니다.

3. 나는 밤낮으로 기도를 할 때에 끊임없이 그대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조상들을 본받아 깨끗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4. 나는 그대의 눈물을 기억하면서, 그대를 보기를 원합니다. 그대를 만나봄으로 나는 기쁨이 충만해지고 싶습니다.

5. 나는 그대 속에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을 기억합니다. 그 믿음은 먼저 그대의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깃들여 있었는데, 그것이 그대 속에도 깃들여 있음을 나는 확신합니다.

6. 이런 이유로 나는 그대를 일깨워서, 그대가, 나의 안수로 말미암아, 그대 속에 간직하고 있는 하나님의 은사에 다시 불을 붙이게 하려고 합니다.

7.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8.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에 대하여 증언하는 일이나 주님을 위하여 갇힌 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함께 겪으십시오.

9.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거룩한 부르심으로 불러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실을 따라 하신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를 따라 하신 것입니다. 이 은혜는 영원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타나심으로 환히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썩지 않음을 환히 보이셨습니다.

11. 나는 이 복음을 전하는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12. 그러므로 나는 이런 고난을 당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믿어 온 분을 잘 알고 있고, 또 내가 맡은 것을 그분이 그 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13.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나에게서 들은 건전한 말씀을 본보기로 삼고,

14. 우리 안에 살고 계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맡은 바 선한 것을 지키십시오.

 

(누가 17:5-10)

5. 사도들이 주님께 말하였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6.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뽕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기어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다."

7. "너희 가운데서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다고 하자. 그 종이 들에서 돌아올 때에 '어서 와서, 식탁에 앉아라' 하고 그에게 말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8. 오히려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너는 허리를 동이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야,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그 종이 명령한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을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우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여라."

 

 

[성서일과 4본문 묵상 노트]

이번 성서일과 4본문을 읽으면서 복음서를 중심으로 믿음, 순명(順命)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사전을 보니까 순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순명; 명령에 복종함,

천명(天命)에 순종함

 

 

[구약과 시편]

오늘 구약과 시편의 느낌은 아주 슬픕니다.

구약은 “아, 슬프다”(1)로 시작합니다.

시편은 “울었다”(1)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순명의 반대, 즉 불복종, 불순종의 결과입니다.

지극히 믿음 없는 행동의 결과라는 겁니다.

자기 경험으로, 제 머리로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일단 믿고 따랐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 잘난 사람들’은 제 경험, 제 머리로, 세치 혀로, 외교술로 강대국 위기를 넘기려 했던 것입니다.

 

구약과 시편에 공통적으로 많이 나오는 단어를 꼽으라면, ‘시온’입니다.

구약 애가에 4차례 반복해서 나옵니다.(4, 6)

시편에도 두 차례 반복합니다.(1, 3)

시온은 넓은 의미로 예루살렘을 뜻합니다.(시 137:5, 6, 7)

예루살렘은 평화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듯,(시 137:7) 그 이름도 무너졌습니다.

믿음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의 한 귀퉁이가 무너져내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서신서와 복음서]

오늘 서신서 본문에도, 복음서 본문과 관련해서 읽다보니 ‘믿음’이 눈에 띕니다.

“거짓 없는 믿음”, “그 믿음”(5)

“내가 믿어 온 분”(12)

“믿음과 사랑”(13)

특히 13절은, ‘믿음’과 ‘사랑’이 어깨동무하고 있는 것같이 느껴집니다.

 

복음서 본문의 주제를 ‘믿음’(5-6절)과 ‘순종’(7-10절) 둘로 나누어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둘을 하나로 이어 보았습니다.

믿음의 개념을 설명할 때, 교리적, 심리적, 마인드콘트롤적, 심지어 어떤 이는 최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믿음을 순종, 좀 더 구체적으로 순명(順命)과 관계해서 이해하는 길을 엿보았습니다.

 

이번 주 ‘성서일과 사랑방’ 모임에서 이 본문을 함께 묵상하고 나누다가 유익한 정보를 많이 얻었습니다.

복음서 본문의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에 대한 토론 중에 목사님들이 영화 대사 하나를 소개했습니다.

유명한 영화, 유명한 대사입니다.

 

[영화 『넘버 3』중 한석규와 이미연의 대화 장면]

“오빠 나 사랑해?”

“아니, 야, 너 사랑이 뭔지 아냐? 사랑이라는 건 누군가를 90%이상 믿는다는 거야, 까놓고 말해서 난 너 그만큼 못 믿어.”

“그럼 몇% 나 믿는데?”

“51%”

“겨우?”

“인마 50%는 넘잖어. 야, 너 내가 어떤 새끼건 49%이상 믿을 것 같애? 안 믿어 어떤 새끼든”

“하긴 오빠 다리병신 되면 난 틀림없이 고무신 바꿔 신을 거야. 그러니깐 제발 다치지마”...

 

그러고 보니, 이 대사 첫 머리가 인상적입니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90% 이상 믿는다는 거...”

그러고 보니 믿음과 사랑은 아주 가까운 사이입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건, 믿음이라는 건, 숫자놀음, 퍼센트 놀음이 아닙니다.

그건 임계점이 50%를 넘어선 어느 지점이라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이란, 믿음이란, 이해를 넘어선, 논리를 넘어선 순명(順命)입니다.

이해관계가 틀어지면 고무신 바꿔 신는 그런 게 아닙니다.

순명(順命)의 명(命)은 ‘목숨’이라는 뜻입니다.

믿음이란, 사랑이란 목숨을 거는 일입니다.

목숨을 걸고 따르는 길입니다.

 

복음서 본문을 다시 자세히 봅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 뽕나무에게 명(命)했을 때 뽕나무가 뽑혀서 바다에 심겨지리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인한 신비롭고 신통한 현상입니다.

물론,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뽕나무가 바다에 심겨지는' 등이 가리키는 것은, 믿음이란 우리의 상상을, 우리의 계산을 뛰어넘는 경지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교회 밤 기도회 때 저희 집 선구가 이 본문에 대하여 이런 질문을 합니다.

 

“마치 뽕나무가 명령에 순종해서 바다에 심겨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혹시 그걸 강조하신 말씀은 아닌가요?”

 

선구의 느낌이 제 마음에도 와 닿았습니다.

뽕나무가 명(命)을 받고 그대로 따르는 순명(順命)입니다.

마치 뽕나무에게 믿음이 있다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겨자씨 한 알만한 크기 등을 넘어서는 경지의 세계입니다.

그러고 보니 본문은 바로 다음 순명(順命)에 관한 주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인화한 뽕나무의 순명, 즉 뽕나무의 믿음으로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뽕나무가 제 맘대로 뽑혀서, 그것도 땅이 아니라 바다에 심겨질 수 있나?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 바로 성육신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자궁에 심겨지는 일 말입니다.

(이 역시 성서일과 사랑방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어린 청소년인 마리아가 부들부들 떨면서 수태고지(受胎告知)를 받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어린 마리아가 대답합니다.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마리아의 뱃속에서 열 달을 지내고 세상에 태어나 33년을 지내십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승천하십니다.

이 34년 동안 마리아는 내내 그 때 수태고지 때를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처구니없고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명(命)이 34년 동안 그 안에서 무르익어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순명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랬듯이, 부르실 때 결행하는 순종입니다.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논리적인 명(命)일지라도 목숨 걸고 결행하는!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와 같은, 그런 순명(順命)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천천히 내 작은 머리와 내 작은 마음을 어루만지십니다.

그렇게 결행했던 나의 믿음이 일생에 걸쳐 차차 작디작은 내 안에서 무르익습니다.

그렇게 그 순명, 그 믿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내 안에서 좋은 열매로 무르익습니다.

 

 

[나머지]

다시, 믿음이란 무엇인가?

성서일과사랑방 모임 중에 주원남목사님이, 딤후 1:5절 묵상을 나눌 때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믿음이 깃들여 있다는 표현 말입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 첫 구절에 (누가 17:5)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는 표현과 비교해 봅니다.

계속 묵상해야 할 말씀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딤후 1:4절의, "그대의 눈물"에 대해 묵상합니다.

앞의 구약본문과 시편본문에 가득한 눈물과 어떻게 다르며 어떻게 이어지는 것인지 좀 더 묵상합니다.

 

 

[말씀노래] 순종의 노래

1. 예수님 예수님 우리예수님 /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주세요

믿음이 많이많이 많아지면은 / 우리도 주님처럼 큰일할래요

2.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한알도 / 뽕나무 움직이는 능력있단다

믿음은 모아두는 훈장(이)아니고 / 부르실 때 결행하는 순종이란다

3. 밤낮없이 수고하는 종을보아라 / 군말없이 순종하는 종을보아라

칭찬도 보상도 하나없어도 / 늠름한 저순종이 믿음이니라

 

(* 제가 노랫말을 다듬고, 카나다 광림교회 이석훈 목사님이 곡을 붙였습니다.)

 

 

 

 

 

[말씀동화] 거북이의 애국가

 

“저 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섬, 오늘도 거센 바람 불어오겠지, 조그만 얼굴로 바람맞으니,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가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영구는 오늘도 구성지게 노래를 부릅니다.

영구의 애창곡 홀로아리랑이에요.

영구는 이 노래가 참 좋습니다.

영구는 이 노래를 늘 혼자 부릅니다.

 

영구가 원덕초등학교 운동장에 놀러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건 얼마 안 되었습니다.

어디서 왔는지, 집이 어디인지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헤어스타일도 독특하고 말도 더듬거려서 아직 가까이 다가가는 친구도 없습니다.

 

영구를 가끔씩 눈여겨보는 친구가 생겼습니다.

학교에서 가장 호기심이 많은 호기심 대장 진구입니다.

진구는 관찰력이 뛰어나 그림도 잘 그리고 음악에도 소질이 있습니다.

학교 사물놀이패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재간둥이입니다.

꽹과리는 물론이고 리코더 솜씨도 보통이 아닙니다.

요새는 기타를 배우려고 아빠의 기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음악을 사랑하고 호기심이 많은 진구가 영구의 홀로아리랑에 잔뜩 귀를 기울입니다.

학교 운동장 구석에서 혼자 홀로아리랑을 부르는 영구에게 진구가 다가갑니다.

 

“너 노래 쫌 잘 부른다. 나도 그 노래 알아. 홀로아리랑이지?”

 

홀로아리랑을 알아주는 진구 때문에 영구의 얼굴이 환해집니다.

 

“너 이름 뭐야?”

 

“나 영구야”

 

“정말? 난 진구야. 우리 이름이 비슷하네? 너 어느 학교 다니냐? 우리 동네 살아? 우리 친구하자”

 

영구는 학교에 다니지 않습니다.

그래도 키도 비슷하고 이름도 비슷한 진구와 금세 친구가 되었습니다.

홀로아리랑 덕분에 영구와 진구는 단짝이 되었습니다.

 

“영구야 네 이름은 무슨 뜻이야?”

 

“응, 내 이름은 ‘영원한 거북’이라는 뜻이야. 그래서 영구(永龜)야.”

 

“정말? 나도 진짜 거북인데? 원래는 ‘진리를 구하라(眞求)’였는데 지금은 ‘진짜거북이(眞龜)’로 둔갑했어. 우리 아빠가 거북이는 느리지만 끝까지 오래오래 가는, 성실과 건강장수의 상징이래. 그런데 너는 왜 영원한 거북이냐? 그건 무슨 뜻이야?”

 

영구는 대답대신 그냥 씩 웃으며 진구를 바라보기만 합니다.

영구는 진구를 따라 공장골수도원에도 가게 되었습니다.

수도원에서 새로운 노래도 배우고 성경말씀도 함께 읽습니다.

 

요사이 배운 노래 가운데 지난 주 배운 말씀노래 “순종의 노래”가 영구의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한 주간 매일 읽은 성서일과 본문말씀들이 영구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된 유대인들의 눈물이 느껴집니다.

애가 1장 1절 말씀은 “아, 슬프다!”로 시작합니다.

시편 137장 1절도 “시온을 생각하면서 울었다”로 시작하는 노래입니다.

심지어 디모데후서 1장 4절에 “그대의 눈물”이라는 구절도 왠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이번 주는 내내 성서일과 말씀을 읽으면서 영구는 눈물을 흘립니다.

 

특히 시편 137장 5, 6절을 자주 노래하며 영구의 목소리가 떨립니다.

요새는 학교 운동장에서도 이 노래를 자주 부릅니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아, 너는 말라비틀어져 버려라. 내가 너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 예루살렘을 내가 가장 기뻐하는 것보다도 더 기뻐하지 않는다면, 내 혀야, 너는 내 입천장에 붙어버려라∼”

 

귀가 밝은 진구가 영구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느낍니다.

눈치 빠른 진구가 슬쩍슬쩍 영구의 눈물을 훔쳐봅니다.

아마 영구는 지금 고향을 매우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호기심 많은 진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영구에게 묻습니다.

 

“영구야, 너 무슨 일 있냐? 왜 이번 주는 말씀 읽을 때마다 목소리가 울렁거려?”

 

영구는 얼른 눈물을 감추며 애써 미소를 짓습니다.

 

“응, 고향생각이 좀 나서 그래”

 

“고향? 그래 네 고향이 어디냐? 좀 알려주라. 넌 집도 안 알려주고 맨날 슬며시 사라져버리고!”

 

“진구야. 미안해! 넌 참 좋은 벗인데, 내 고향 얘기 들으면 내가 좀 싫어질지도 몰라.”

 

“괜찮아 난 팔도강산 다 좋아해. 네가 저 아래 경상도나 전라도에서 왔어도 좋고, 저 위에 북한에서 왔어도 좋고, 더 위에 연변에서 왔어도 좋아. 어서 말해봐, 네 고향이 어디야?”

 

진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영구가 드디어 입을 엽니다.

 

“진구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너무 놀라지는 말고.”

 

호기심 대장 진구는 군침을 꿀꺽 삼킵니다.

 

“사실은 진구야, 내가 네 이름처럼 진짜 거북이야. 난 거북이란다. 내 고향은 울릉도야. 울릉도에 가면 거북이 바위도 있단다. 그리고 저 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섬 독도가 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터였지”

 

“콜록콜록, 캑캑!”

 

군침을 꿀꺽 삼키던 진구가 갑자기 기침을 합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던 군침이 갑자기 딴 길로 빠졌나봅니다.

빨개진 진구의 눈이 보름달처럼 커집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농담하지 말고...!”

 

그러나 영구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합니다.

 

“진구야, 나는 동해바다 용왕님의 아들이란다. 수백 년을 살면서 제주도에서 함경도까지 거침없이 동해바다를 누비며 살아왔어. 용궁에서 노닐 때는 의젓한 왕자님이지만, 용궁 바깥에서 헤엄을 치며 인간세상 모래밭을 오르내릴 때는 거북이의 모습으로 다니지.”

 

진구의 눈이 보름달처럼 커지더니 이번에는 입이 벌어집니다.

뒷동산 덤바위만큼 큼지막하게 입이 떡 벌어집니다.

벌어진 입이 다물어질 줄 모릅니다.

당황한 진구가 두근두근 더듬거리며 질문합니다.

 

“그런데 무슨 거북이가 사람처럼 말을 해? 그리고 무슨 거북이가 육지에 이렇게 오래 살아? 여기서 동해바다까지 가려면 자동차로 아무리 씽씽 달려도 두 시간은 걸리는데?”

 

영구는 씩 웃으면서 말을 잇습니다.

 

“응, 비록 양평은 바다에서 멀지만, 용궁은 가깝단다. 왜냐하면 모든 우물은 용궁과 통하거든. 지금은 대부분 우물이 없어졌지만. 이 마을 네가 모르는 곳에 딱 하나 용궁과 통하는 우물이 남아있단다.”

 

“그렇다면, 용왕님 아들이 왜 산동네에 온 거야? 바다에 안 살고?”

 

“그건... 얼마 전부터 동해바다가 조금씩 오염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야.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일본 바다가 방사능에 오염되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그 오염수가 태평양을 돌아 동해에까지 들어오기 시작했지. 그래서 우리 아버지이신 용왕님께서 방사능 오염수 때문에 눈병이 나셨단다. 우리 아버지 눈병을 고치기 위한 약을 구하기 위해 산좋고 물맑은 양평으로 오게 된 거야. 양평에 가면 진귀한 약초가 많다는 소문이 용궁엔 이미 자자하단다.”

 

“그럼 토끼 간이나 뭐 그런 게 아니라 약초를 찾아 온 거란 말이야? 약초면 무슨 약초야? 산삼? 아니면 영지버섯?”

 

“나도 아직 정확히는 몰라. 지금은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중이야. 용왕님 뿐 아니라 지금 동해바다 수많은 물고기들이 방사능 오염수에 감염되기 시작했어. 이제 몇 해 안 가서 우리 동해바다는 방사능에 오염되어버리고 말거야. 그렇게 되면 동해바다 내 친구들, 모든 물고기들은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거두게 되겠지. 그런데 말야, 하늘님의 도우심으로 내가 너 진구를 만나서 공장골 수도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지난 주 아주아주 귀한 정보를 얻게 되었어.”

 

“그게 뭔데?”

 

진구의 눈이 대보름달처럼 휘둥그레집니다.

 

“그건 바로, 오늘 성서일과 서신서 본문인 디모데후서 1장 10절 말씀이야. 다시 들어보렴, ‘...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썩지 않음을 환히 보이셨습니다.’ 바로 이 말씀이야! 썩지 않는다는 말씀이 내 마음에 와 닿았어. 오염되어가는 동해바다가 더 이상 썩지 않을 수 있는 길은 바로 예수님의 복음이야! 그리고 오늘 복음서 예수님말씀에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뽕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기어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라고 하셨어. 이게 무슨 뜻일까? 뽕나무를 바다에 심으면, 우리 용궁마당에 뽕나무를 심으면 방사능 오염수가 사라진다는 암시가 아닐까? 뽕나무는 이파리도 단백질 투성이라 나물도 맛있고, 영양가도 많고, 오디도 맛있고, 심지어 첫서리 맞은 뽕나무이파리로 아홉 번 덖어 만든 뽕잎차가 매우 신비로운 약효가 있다고 하잖아?”

 

진구의 눈이 조금 가늘어집니다.

 

“영구야 잠깐! 너 지금 좀 많이 흥분한 것 같다. 내 생각에 예수님 말씀이 그런 뜻은 아닌 것 같거든? 조금만 릴렉스, 릴렉스,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봐. 뽕나무가 바다에 심겨진다는 건, 그게 방사능 오염을 막기 때문이 아니라...”

 

“아냐, 이건 2천 년 전 예수님이 오늘 우리 동해바다를 위해 주신 계시가 틀림없어. 예수님은 우리 용궁에서 아주 유명한 분이시거든! 2천 년 전 폭풍우 치는 밤에 갈릴리 바다 위를 걸으신 소문이 갈릴리 물고기들과 어부들을 통해 전 세계 바다에 쫙 퍼졌단다. 그 뒤로 오대양의 용왕님들에게 예수님은 영웅 중에 영웅이야. 예수님이 오늘 하신 이 말씀대로 어서 뽕나무를 우리 용궁으로 옮겨야 할텐데... 어떻게 하지? 어떻게 뽕나무를 뽑아서 우물을 통과할 수 있을까?”

 

진구의 눈이 더 가늘어집니다.

지금 영구는 고향이 너무 그리워서 성경말씀 예수님 뜻을 깊이 헤아리기 힘든 게 틀림없습니다.

진구는 영구를 진정시키며 이야기합니다.

 

“영구야. 우리 집에 가면 아빠가 만들어두신 뽕잎 차가 있어요. 내가 그걸 가져다 줄 테니까, 그걸 네 아버지 눈병에 써봐. 어쩌면 효과가 있을지도 몰라.

 

영구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합니다.

 

“그러고 보니까, 이번 주 말씀이 영구 네게는 정말 구절구절 절실했겠구나. 망가진 고향, 망가진 예루살렘을 그리며 부르는 슬픈 노래들이 네 마음을 울렸겠구나? 그게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지! 어쩌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때문에 우리 동해바다까지 오염되기 시작하는 것도, 그 바람에 너희 용궁이 망가지기 시작한 것도 모두 다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 말씀, 하나님 명령을 무시하며 살아온 결과인 게야! 이제부터라도 전기도 아껴 쓰고, 에너지도 절약하고, 불편해도 자연을 훼손하지 말고 보호하며 살아가는 게 바로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믿음의 길이 분명해! 원자력 발전소도 하나하나 없애고, 절대 더 짓지 말고, 핵무기도 절대 만들지 말고! 비록 불가능해 보이지만, 너와 나부터 이렇게 결심하고, 생활 속에서 하나하나 절약하고 실천하며 노력하는 것이 바로 뽕나무를 바다에 심는 것과 같은 믿음의 길이 아닐까? 그러면 차차 네 아버지 용왕님의 눈병도 낫게 되고, 동해바다 물고기들도 방사능 오염수로부터 안전해지게 되지 않을까?”

 

가만히 듣고 있던 영구의 눈빛이 점점 더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하네요?

진짜 거북이와 영원한 거북이, 거북이 두 마리가 환하게 마주보며 웃습니다.

하나님의 귀한 선물, 맑은 물을 지키기 위해, 이제부터는 전등 한 개 더 끄고, 쓰지 않는 콘센트는 빼 놓고, 세탁기도 덜 돌리려 옷도 깨끗이 입고, 조금 더러운 건 참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 말씀 하나하나 순종하며 더디어도 끝까지 함께 가자며 거북이 두 마리가 두 손을 꼭 잡습니다.

 

영구가 홀로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홀로아리랑은 동해바다 용궁의 애국가입니다.

진구와 영구는 손을 맞잡고 홀로아리랑을 목소리 높여 구성지게 부릅니다.

 

“금강산 맑은 물은 동해로 흐르고, 설악산 맑은 물도 동해 가는데, 우리네 마음들은 어디로 가는가,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 될까∼♬

백두산 두만강에서 배타고 떠나라, 한라산 제주에서 배타고 간다, 가다가 홀로 섬에 닻을 내리고, 떠오르는 아침해를 맞이해보자∼♬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가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이정훈 지음, 2013년 10월 6일 주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