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산에서 준비될 것이다”(창세기 22:14)
[성서일과 4본문]
(창세기 22:1-14)
1.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뒤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그를 부르셨다.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니, 아브라함은 "예,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산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쳐라."
3. 아브라함이 다음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나귀의 등에 안장을 얹었다. 그는 두 종과 아들 이삭에게도 길을 떠날 준비를 시켰다. 번제에 쓸 장작을 다 쪼개어 가지고서,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그 곳으로 길을 떠났다.
4. 사흘 만에 아브라함은 고개를 들어서, 멀리 그 곳을 바라볼 수 있었다.
5. 그는 자기 종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아이와 저리로 가서, 예배를 드리고 너희에게로 함께 돌아올 터이니, 그 동안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6. 아브라함은 번제에 쓸 장작을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신은 불과 칼을 챙긴 다음에, 두 사람은 함께 걸었다.
7. 이삭이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그가 "아버지!" 하고 부르자, 아브라함이 "얘야, 왜 그러느냐?" 하고 대답하였다. 이삭이 물었다. "불과 장작은 여기에 있습니다마는,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8.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얘야,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걸었다.
9. 그들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곳에 이르러서, 아브라함은 거기에 제단을 쌓고, 제단 위에 장작을 벌려 놓았다. 그런 다음에 제 자식 이삭을 묶어서,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10. 그는 손에 칼을 들고서, 아들을 잡으려고 하였다.
11. 그 때에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그를 불렀다.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예, 여기 있습니다."
12.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
13.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고 살펴보니, 수풀 속에 숫양 한 마리가 있는데, 그 뿔이 수풀에 걸려 있었다. 가서 그 숫양을 잡아다가, 아들 대신에 그것으로 번제를 드렸다.
14. 이런 일이 있었으므로, 아브라함이 그 곳 이름을 여호와이레라고 하였다.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주님의 산에서 준비될 것이다'는 말을 한다.
(시편 13)
1. 주님, 언제까지 나를 잊으시렵니까? 영원히 잊으시렵니까? 언제까지 나를 외면하시렵니까?
2. 언제까지 나의 영혼이 아픔을 견디어야 합니까? 언제까지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여야 합니까? 언제까지 내 앞에서 의기양양한 원수의 꼴을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3. 나를 굽어살펴 주십시오. 나에게 응답하여 주십시오. 주, 나의 하나님, 내가 죽음의 잠에 빠지지 않게 나의 눈을 뜨게 하여 주십시오.
4. 나의 원수가 "내가 그를 이겼다" 하고 말할까 두렵습니다.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두렵습니다.
5. 그러나 나는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의지합니다. 주님께서 구원하여 주실 그 때에, 나의 마음은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6. 주님께서 나를 너그럽게 대하여 주셔서, 내가 주님께 찬송을 드리겠습니다.
(로마서 6:12-23)
12. 그러므로 여러분은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서, 여러분이 몸의 정욕에 굴복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13.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체를 죄에 내맡겨서 불의의 연장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답게, 여러분을 하나님께 바치고,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연장으로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14.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을 다스릴 수 없을 것입니다.
15.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에 있다고 해서, 마음 놓고 죄를 짓자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16. 여러분이 아무에게나 자기를 종으로 내맡겨서 복종하게 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복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되는 것임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죄의 종이 되어 죽음에 이르거나, 아니면 순종의 종이 되어 의에 이르거나, 하는 것입니다.
17.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여러분이 전에는 죄의 종이었으나, 이제 여러분은 전해 받은 교훈의 본에 마음으로부터 순종함으로써,
18. 죄에서 해방을 받아서 의의 종이 된 것입니다.
19. 여러분의 이해력이 미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방식으로 말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자기 지체를 더러움과 불법의 종으로 내맡겨서 불법에 빠져 있었지만, 이제는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종으로 바쳐서 거룩함에 이르도록 하십시오.
20. 여러분이 죄의 종일 때에는 의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21. 여러분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거두었습니까? 이제 와서 여러분이 그러한 생활을 부끄러워하지마는, 그러한 생활의 마지막은 죽음입니다.
22. 이제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을 받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23.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마태복음 10:40-42)
40. "너희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요,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로 맞아들이는 사람은,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을 의인이라고 해서 맞아들이는 사람은, 의인이 받을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 제자라고 해서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알맹이는 ‘꼭 필요할 때에 꼭 필요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구약, “아브라함이 그곳 이름을 여호와이레라고 하였다”(창세기 22:14)
시편, “주님께서 구원하여주실 그 때에, 나의 마음은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시편 13:5)
서신서,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로마서 6:23)
복음서,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 제자라고 해서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마태복음 10:42)
오늘 요절은, “주님의 산에서 준비될 것이다”입니다.(창세기 22:14)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창세기 22:1-14 / 시편 13)]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이삭을 바치라고 명하시다’입니다.
하나님은 처음 아브라함을 불러내실 때(12:1)보다 훨씬 더 가혹한 방법으로 아브라함을 시험하십니다.
가장 사랑하는 것(2)을 바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첫아들 이스마엘을 광야에 버릴 때의 고통보다 훨씬 더 끔찍한 일(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많은 의문과 번민이 있었을지 모르지만(cf 히11:19)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중간에 이삭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8) 아브라함의 한 가닥 소망이었을 텐데
이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 또한 뜻깊습니다.
“여호와이레”의 소망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자칫 하나님보다 더 귀하고 사랑스러운 것, 즉 우상이 될 수 있을 아들조차
하나님 명령에 따라 바치려는 아브라함의 진면모(하나님 사랑, 경외)를 보신 하나님은
비로소 이삭을 대신할 예비하신 숫양을 주십니다.
돌아보면 하나님의 아브라함 시험은, 이삭이 제물로 바쳐지기 직전까지였지만,
하나님의 우리 사랑은, 외아들이 제물로 완전히 바쳐지기까지 달려가셨습니다.(롬8:32)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시련을 겪는 자의 구조요청’입니다.
생명이 위태로운 중병에 걸린 것처럼 보이는 오늘 시인의 간구는
절망적인 질문에서 시작하여(1-2) 차차 희망과 신뢰의 기도로 전진해갑니다.(5-6)
오늘 구약본문의 응답찬송으로서,
이는 아브라함 내면의 갈등과 이삭의 의문과 공포,
그리고 두 사람의 순종과 행복한 결과와 잘 이어지는 노래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로마서 6:12-23 / 마태복음 10:40-42)]
오늘 서신서본문의 소제목은 ‘그리스도인은 의의 종이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산다>는 주제로 정리한
지난 주 본문에서 바로 이어지는 오늘 본문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답게”(13) 우리는
“불의의 연장”,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연장”, “의의 종”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의의 종으로서 “거룩함”에 이르러야(19c, 22) 우리는 제대로 하나님의 소유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과 온전한 친교의 삶은 우리를 영생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또는 이삭처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체험이 있는 사람이라야
진정 <내가 내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게 되고
그래야 나를 온전히 주님께 바침으로 온전한 친교와 성화,
그리고 영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보상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난 주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께서
한 번 더 든든한 말씀을 주십니다.
보잘 것 없는 “이 작은 사람들”(42, 즉 제자들)을 알아보고 영접하는 이들이
곧 예수님과 하나님아버지를 영접하는 것과 같다고(40), 그래서
그런 자들은 상을 받을 것이라고까지 하시며
제자로서 자존감을 높여주십니다.
세례 받음으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롬6:13) 예수제자는
누구보다도 가장 하나님과 친교할 수 있는 사람인데,
이러한 예수제자를 영접하는 이들 또한 결과적으로 주님을 영접함으로써
주님과 친교하는 복스러운 인생이 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정리]
“얘야, 번제로 바칠 어린양은 하나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8)
이때 아브라함의 목소리는 얼마나 떨렸고, 이삭의 마음은 또 얼마나 떨렸을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여호와이레”의 근원이 된 아브라함의 이 대답은
거짓말과 소망 사이 그 어디쯤일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오늘 구약본문 1절에서 “아브라함아!”라고 부르신 하나님이
11절에서 천사를 통해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라고 부르십니다.
이 대목을 연극무대에 올린다면 그 목소리를 어떻게 연출할지 생각해 봅니다.
<피눈물 흘리는 아브라함과 식은땀 흘리시는 하나님?>
이 모두가 얄팍하고 불분명한 상상일 뿐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사실을,
그가 가진 그 어느 것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아셨다는 것입니다.(12)
하나님께서 지으신 인류 가운데 이런 아브라함이 있어서
하나님 마음이 얼마나 든든하고 흐뭇하셨을 지를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외아들 예수님의 목숨을 우리를 위해 내주실 때
오늘 아브라함의 마음을 기억하며 더 기운을 내셨을 것이라는, 인간적인 생각도 해봅니다.
하나뿐인 외아들을 송두리째 내주셨던 하나님의 사랑을 절실하게 느낀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 예수제자, 즉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이요
그런 사람이 바로 나를 하나님께 제대로 바칠 수 있는 사람입니다.(롬6:13)
<내가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 즉 예수제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제대로 주님께 나를 바칠 수 있는 이 영광스러운 삶, 즉
거룩함에 이르는 삶이 바로(롬6:19,22) 주님과 온전히 친교하는 성화의 삶일 것입니다.
이런 제자의 삶은, 비록 이 세상에서 불편하고 불리하고 불안한 형편일지라도,
언제나 여호와이레! “하나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창22:8) 소망을 품을 수 있는
설레는 삶일 것입니다.
[나머지]
* 오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보여주신 까닭은?
그 옛날 이방신 몰록에게 제 아이를 희생 제물로 바치던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지금도 물질적 풍요와 무한권력을 위해서라면 상상을 초월할 짓도 서슴지 않는 이 탐욕의 시대에게, 오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보여주십니다. 그 아브라함의 입에서 지금 피비린내가 납니다. 아무 말 없이 며칠째 입술만 깨물고 또 깨물던 아브라함의 입! 그 많은 장작을 혼자 다 짊어지고 산을 오를 만큼 씩씩한 장정임에도 이삭은 늙은 아비의 뜻에 따라 순순히 묶여 장작더미 위에 오릅니다. 이삭의 이 모습에서 십자가에 오르시던 예수님이 떠오르고, 아브라함 입의 피비린내에서는, 끝내 십자가 처형을 멈추게 하지 않으시고 아들의 어린양 절규를 견디시던 하늘아버지의 소리 없는 피눈물이 연상됩니다. 경외심 가득한 아브라함의 <하나님집중력>이 하루하루 자신의 일생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 하나님과 점점 일체가 되어가게 했듯이, 오늘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주님의 몸 교회의 작은 지체들인 우리는 예수님 말씀에 힘입어 내가 주님과 이미 일체라는 사실을 각성합니다.(마태 10:40) 그럼에도 여태 끝없는 탐욕과 죽음의 공포, 악마의 거짓말과 이간질에 멱살 잡힌 이들에게 미망(迷妄)에서 어서 깨어나라고, 너희는 몰록의 자식, 맘몬의 자식이 아니라 나의 자식이라고, 너희는 나의 것임을 어서 깨치라고 계속해서 보내시는 하나님아버지의 경고신호를 오늘도 흘려버리는 눈먼 세상을 위하여, 오늘도 시편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 나의 하나님, 내가 죽음의 잠에 빠지지 않게 나의 눈을 뜨게 하여 주십시오.”(시편 13:3)
**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하고 부르시듯 주님께서 내 이름 부르실 날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던 곳 주변 나라들의 문화는 맏이를 바침으로써 더 많은 자식, 즉 다산(多産)을 약속받는 문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말도 안 되는 문화를, 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탐욕스런 몹쓸 문화를 적어도 그 후손들만큼은 물들지 않도록 아브라함과 이삭이 씻어주었습니다. 성경에 ‘모리아’라는 이름의 땅은 두 번 나옵니다. 오늘 구약본문인 창세기 22:2절과 역대하 3:1절입니다. 이 근거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산이 바로 예루살렘 성전, 또는 그 근처 골고다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리아 마지막 순간에 아브라함의 칼을 멈추어 외아들 이삭을 살리셨으나,(창세 22:11) 하나님께서는 골고다 마지막 순간에 외아들 예수를 향한 칼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참조) 거룩하신 아드님의 순종으로 우리는 생명을 얻었고, 아드님의 부활로 우리는 나를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믿음의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로마 6:13) 무언가에 나를 송두리째 바치는 데는 두려움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합니다. 대의(大義)를 위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 보다 더 힘든 일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작은 자를 위해 나를 바치는 일일 것입니다. 작은 자를 위해 헌신하는 일이 주님께 나를 바치는 일이라는 확신이 점점 짙어가는 것이 바로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믿음이 자라 마침내 “순종의 종”(로마 6:16)이 되어가는 정도(正道)일 것입니다. 내 순종의 도가 무럭무럭 자라나 마침내, 오래전 다급한 목소리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부르셨던 것처럼 주님께서 내 이름 부르실 날을 내다봅니다.
*** 이번 주 매일성서일과 중 갈라디아 5:6절 말씀.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일하는 것입니다.”(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 개역개정)
믿음은 무감각한 로봇(기계적) 같은 맹종이 아닙니다. 오늘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위 안에는 두려움(경외심)이 즉 하나님 사랑이 있었습니다!
(※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우리에게 예수님은 (김현서 지음. 세움교회 청년부. 「성실문화」 115호)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에 대해 죽은 자 되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에서 자유자가 된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가슴 벅찬 부활의 소망
놀라운 예수님을 나에게 주셨네
그 진리로 사는 것이
예수님을 아는 것
그 은혜로 덧입혀 지는 것이
새 생명을 얻는 길
[시편시조] 시편 13, 오 주님 언제까지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15호)
오 주님 언제까지 나를 외면 하십니까
굽어살펴 주옵소서 응답하여 주옵소서
오로지 의지하오니 한결같은 주 사랑
[시편노래] 시편 13, 오 주님 언제까지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성실문화」 115호)
[본문] (시편 13)
[노랫말]
1. 오 주님 언제까지 저를 잊으시렵니까, 내 영혼 언제까지 이 고통을 견디리까,
굽어 살펴 주옵소서 응답하여 주옵소서, 죽음의 잠 깨우시고 눈을 뜨게 하옵소서
2. 오 주님 언제까지 저를 잊으시렵니까, 우쭐대는 저 원수들 다스려 주옵소서
한결같은 주 사랑을 제가 의지하나이다, 구원하신 주 사랑을 기뻐 찬송하나이다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인 전일교회 홍의종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3 (오 주님 언제까지 저를 잊으시렵니까)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홍의종 노래)
(홍의종 작곡, 홍의종 노래)
[시편송서(誦書)] 시편 13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15호)
(※‘새야새야’ 가락에 맞추어, ‘쉼표’까지가 중모리 한 장단)
1. 주==님== 언제까지==, 나==를== 잊으시렵니-까==,
영=원히== 잊으시렵니-까==, 언제까지== 나를 외면하((시))렵니까==∼
2. 언제까지 나의 영혼이 아픔을 견디어야 합니까? 언제까지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여야 합니까? 언제까지 내 앞에서 의기양양한 원수의 꼴을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3. 나를 굽어살펴 주십시오. 나에게 응답하여 주십시오.
주= 나의== 하=나님==, 내가 죽음의 잠에== 빠지지- 않-게==,
나==의== 눈==을==, (눈을) 뜨게== 하여 주십시-오==∼
4. 나의 원수가 "내가 그를 이겼다" 하고 말할까 두렵습니다.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두렵습니다.
5. 그러나 나는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의지합니다. 주님께서 구원하여 주실 그 때에, 나의 마음은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다함께]
6. 주님께서== 나==를==, 너그럽게== 대하여 주셔-서==,
내==가== 주=님께==, 찬=송을== 드리겠습니-다==∼
※ 가락은 ‘새야새야, 파랑새야’로, 장단은 중모리로 (또는 중중모리로) 읊는다.
※ 쉼표(‘,’)까지 한마디가 12박이다.
※ 한 박(‘=’)은 편의상 2분박(‘--’)으로 쪼개어 짚을 수도 있다.
※ 밑줄(‘ ’)친 부분은 글자 수가 몇 개든 3박으로 읊으면 된다.
※ 크고 굵은 글자는 찬양대가 송서(誦書, 새야새야)로 읊조리고, 나머지 작은 글자는 회중이 낭독한다.
(엷은 글자를 평이하게 읽지 않고 가락을 넣어 읊조린다면, 거꾸로 굵은 글자를 회중이 읊조릴 수도 있다.)
※ 가락이 조금 차이가 나는 것이 오히려 어우러지는 멋이 있어 좋다.
※ 마지막 절은 다함께 읊조린다.
[말씀동화] 금강산 백정봉의 철야기도
옛날옛날 한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금강산 백정봉에서 기도하다가 사람이 될 뻔하던 시절 이야기예요.
온 하늘과 바다가 푸르르 잠을 깨는 새벽녘에
금강산에서 제일 키가 큰 비로봉(毘盧峰)이 일만이천 봉우리들을 둘러보는데
자그마한 백정봉(百鼎峰)이 꾸벅꾸벅 기도하고 있었어요.
졸다깨다를 반복하며 기도하는 백정봉에게 비로봉이 물었죠.
“오늘도 밤새 기도한 거야?”
백정봉이 비로봉을 올려다보며 대답합니다.
“큰언니 벌써 일어났어?”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그러다 몸 상할라.”
한숨을 포옥 폭 내쉬며 백정봉이 대답했어요.
“하나님 얼굴이 점점 더 흐릿해. 이젠 거의 기억나지 않아.”
“너만 그런 게 아니야. 우리를 지어주신 하나님 얼굴을 기억하는 봉우리는 이제 거의 없을 거야.”
땅과 하늘이 점점 더러워지고 이젠 바다조차 독한 방사능 오염수에 오염되는 바람에
누구보다 하나님과 가까운 금강산 일만이천봉조차
하나님 얼굴이 흐릿해져가는 게 너무나 안타까워서
백정봉은 매일 밤마다 기도하고 있었던 거예요.
“주님, 언제까지 나를 잊으시렵니까? 영원히 잊으시렵니까? 언제까지 나를 외면하시렵니까?(시편13:1) 제발 저희를 외면하지 마시고 예전처럼 하나님 얼굴을 보여주세요.”
어느새 하루해가 다 가고 둥근달이 둥실 떠오르자
금강산 월출봉(月出峰)이 기지개를 켭니다.
월출봉이 일어나자 큰언니 비로봉부터 금강산 남쪽 끄트머리 가칠봉(加七峰)까지
일만이천 봉우리들이 모두 월출봉을 바라봅니다.
“월출봉아 오늘도 네 도움이 필요해. 어서 하나님 이야기를 들려다오.”
월출봉은 일만이천 봉우리 가운데 상상력이 으뜸이죠.
일만이천 년 내내 모두 잠든 한밤중에 달과 함께 일어나
일만이천 봉우리들이 밤새 꾸는 꿈들을 하나하나 모으고 모아
일만이천 별들의 반짝이는 별빛을 섞어 차곡차곡 복주머니에 담아왔거든요.
상상력 대장 월출봉의 최고 소망은 ‘천국상상력’입니다.
이 아름답고 기기묘묘한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지으신 하나님이 계신 곳 천국!
과연 천국은 얼마나 아름답고 기묘한 곳일까?
물론 천국상상력의 알짜배기는 천국의 중심이신 ‘하나님상상력’이고요.
일만이천 동기(同氣)들의 간절한 눈빛을 느끼면서 월출봉이 입을 엽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이랑 가까웠던 사람이 있었어. 그런데 그런 사람조차 점점 하나님 얼굴이 희미해지기 시작했지. 언제부턴가 내가 알던 하나님 얼굴이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거든.”
달빛을 받은 월출봉의 모습이 점점 더 신비로워지고
점점 월출봉의 상상력이 빛을 뿜기 시작하자
금강산 일만이천 봉우리의 간절한 마음들이 촉촉해지기 시작했어요.
어느날 갑자기 큰아들을 내버리게 하시더니
이젠 하나 남은 외아들조차 죽여서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 명령에
사흘밤낮 한잠도 자지 못하고 끙끙 앓던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월출봉이 풀어줍니다.
“아브라함에게 그 사흘은 낮조차 온통 깜깜한 땅속 같았단다.”(창세기22:4)
드디어 월출봉은 복주머니에 담아두었던 상상력을 하나하나 꺼내면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무럭무럭 자라는 과정을 이야기했어요.
“긴 시간 어두운 땅 속에 묻혀 있었으나 마침내 어둠을 뚫고 여린 싹을 틔우는 씨앗! 그러고 보니 믿음은 어둠을 견디는 일이었어. 어둠 속에서 내가 다 이해할 수 없는 그분의 말씀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 [뉴스앤조이 김은석 간사 글에 실린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 장재령목사님 설교 중에서. 2023.03.24.]
월출봉의 상상력이 빛을 뿜으며 그 목소리는 점점 높아져가고
희미하던 일만이천 봉우리들의 낯빛도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어요.
아직 또렷하지는 않아도 이제 얼마 안 있어 하나님의 얼굴이 달처럼 둥실 떠오를 거라는 확신에
금강산 일만이천봉이 기쁜 노래를 부릅니다.
“주님께서 나를 너그럽게 대하여 주셔서, 내가 주님께 찬송을 드리겠습니다.”(시편13:6)
부푼 가슴으로 다시 기도를 시작하는 금강산 백정봉은
여기가 바로 여호와이레라는 생각에 하늘을 바라보며 외칩니다.
“여호와이레! 주님의 산에서 준비될 것이다”(창세기22:14)
[이정훈 지음. 2023년 7월 1일 토요일 아침]
(주님을 제대로 만나기 위해 금강산 백정봉에 올라 기도하던 이용도·박재봉 목사님 일화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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