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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성령강림절 6주(성령강림 후 5주, 2022년 7월 10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그대로 행하여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누가복음 10:28)

 

[성서일과 4본문]

(아모스 7:7-17)

7. 주님께서 나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보여 주셨다. 다림줄을 드리우고 쌓은 성벽 곁에 주님께서 서 계시는데 손에 다림줄이 들려 있었다.

8. 주님께서 나에게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고 물으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다림줄입니다하니, 주님께서 선언하신다.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의 한가운데, 다림줄을 드리워 놓겠다. 내가 이스라엘을 다시는 용서하지 않겠다.

9. 이삭의 산당들은 황폐해지고 이스라엘의 성소들은 파괴될 것이다. 내가 칼을 들고 일어나서 여로보암의 나라를 치겠다.”

10. 베델의 아마샤 제사장이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에게 사람을 보내서 알렸다. “아모스가 이스라엘 나라 한가운데서 임금님께 대한 반란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는 모든 말을 이 나라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11. 아모스는 여로보암은 칼에 찔려 죽고, 이스라엘 백성은 틀림없이 사로잡혀서, 그 살던 땅에서 떠나게 될 것이다하고 말합니다.”

12. 아마샤는 아모스에게도 말하였다. “선견자는, 여기를 떠나시오! 유다 땅으로 피해서, 거기에서나 예언을 하면서, 밥벌이를 하시오.

13. 다시는 베델에 나타나서 예언을 하지 마시오. 이 곳은 임금님의 성소요, 왕실이오.”

14.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오. 나는 집짐승을 먹이며, 돌무화과를 가꾸는 사람이오.

15.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양 떼를 몰던 곳에서 붙잡아 내셔서,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로 가서 예언하라고 명하셨소.

16. 이제 그대는,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시오. 그대는 나더러 '이스라엘을 치는 예언을 하지 말고, 이삭의 집을 치는 설교를 하지 말라'고 말하였소.

17. 그대가 바로 그런 말을 하였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오. ‘네 아내는 이 도성에서 창녀가 되고, 네 아들딸은 칼에 찔려 죽고, 네 땅은 남들이 측량하여 나누어 차지하고, 너는 사로잡혀 간 그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꼼짝없이 사로잡혀 제가 살던 땅에서 떠날 것이다.’”

 

(시편 82)

1. 하나님이 하나님의 법정에 나오셔서, 신들을 모아들이시고 재판을 하셨다. 하나님께서 신들에게 말씀하셨다.

2. “언제까지 너희는 공정하지 않은 재판을 되풀이하려느냐? 언제까지 너희는 악인의 편을 들려느냐? (셀라

3. 가난한 사람과 고아를 변호해 주고, 가련한 사람과 궁핍한 사람에게 공의를 베풀어라.

4. 가난한 사람과 빈궁한 사람을 구해 주어라. 그들을 악인의 손에서 구해 주어라.”

5. 그러나 그들은 깨닫지도 못하고, 분별력도 없이, 어둠 속에서 헤매고만 있으니, 땅의 기초가 송두리째 흔들렸다.

6.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신들이고,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들이지만,

7. 너희도 사람처럼 죽을 것이고, 여느 군주처럼 쓰러질 것이다.”

8. 하나님, 일어나셔서, 이 세상을 재판하여 주십시오. 온 나라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골로새서 1:1-14)

1.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과 형제인 디모데가,

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실한 형제자매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3. 우리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항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4.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해서 여러분이 품고 있는 사랑을 전해 들었습니다.

5. 이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두신 소망에 근거합니다. 이 소망은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 이미 들은 것입니다.

6. 이 복음은 온 세상에 전해진 것과 같이, 여러분에게 전해졌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듣고서 참되게 깨달은 그날로부터, 여러분 가운데서와 같이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7.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와 함께 종이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는 여러분을 위해서 일하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8. 성령 안에서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 준 사람입니다.

9. 그러므로 우리가 여러분의 소식을 들은 그 날부터, 우리도 여러분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을 채워 주시기를 빕니다.

10. 여러분이 주님께 합당하게 살아감으로써,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고, 모든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점점 더 알고,

11. 하나님의 영광의 권능에서 오는 모든 능력으로 강하게 되어서, 기쁨으로 끝까지 참고 견디기를 바랍니다.

12. 그리하여 성도들이 받을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여러분에게 주신 아버지께, 여러분이 빛 속에서 감사를 드리게 되기를 우리는 바랍니다.

13. 아버지께서 우리를 암흑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14. 우리는 그 아들 안에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누가복음 10:25-37)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서, 예수를 시험하여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2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느냐?”

27. 그가 대답하였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하였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하였습니다.”

2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

29. 그런데 그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께 말하였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두고 갔다.

31.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32.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 곳에 이르러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33.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34.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다.

35. 다음 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하였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그가 대답하였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알맹이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바로 행하다입니다.

 

구약,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양떼를 몰던 곳에서 붙잡아내셔서... 예언하라고 명하셨소”(아모 7:15)

시편, “언제까지 너희는 공정하지 않은 재판을 되풀이하려느냐? 언제까지 너희는 악인의 편을 들려느냐?”(시편 82:2)

서신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을 채워주시기를 빕니다”(골로 1:9)

복음서,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느냐?”(누가 10:26)

 

오늘 요절은, “그대로 행하여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입니다.(누가복음 10:28)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아모스서 7:7-17 / 시편 82)]

오늘 구약본문소제목은 다림줄 환상, 아모스가 벧엘에서 쫓겨나다입니다.

북왕국이 정치경제적으로 한창 번영하던 여로보암2세 때

남왕국에서 목축업을 하던 아모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북왕국의 수도 사마리아와 왕립성소 벧엘에까지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빈익빈부익부 사회와 그런 불의한 상태가 전혀 문제되지 않는 잘못된 예배를

아모스는 질타합니다.

메뚜기 환상과 불의 환상에 이어 다림줄 환상으로

하나님이 그러한 이스라엘을 허물어버리실 것을 예언합니다.

 

(다림줄은 성벽을 세울 때 쓰는 도구인 동시에,

성벽을 허물 때의 상징으로도 썼습니다 ; 왕하21:13, 34:11, 2:8)

 

북왕국에서 가장 중요한 성소인 벧엘 성소의 우두머리 제사장 아마샤가

아모스를 내란죄로 뒤집어씌워 북왕국에서 추방합니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막은 꼴이 됨으로써(16)

아마샤의 집안은 망하고 말 것이라고 아모스가 예언합니다.(17)

 

오늘 시편본문소제목은 하나님이 재판하여 주십시오입니다.

어찌하여 하나님 백성 중의 약자는 늘 억울하게 불의한 일만 당하고 반면에

약자를 억누르는 강자(악인)들은 왜 벌도 안 받고 승승장구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답하듯이,

오늘 시인은 환상적인 상황을 설정하여 노래합니다.

 

멀리 계신 하나님께서 신들(재판장들)을 보내셔서 인간들을 재판할 임무를 주셨다는,

그런데 그들은 그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서

빈익빈부익부 세상, 땅의 기초가 송두리째 흔들리는(5) 엉터리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그러니 하나님이 직접 이 땅을 재판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시인은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8)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골로새서 1:1-14 / 누가복음 10:25-37)]

오늘 서신서본문소제목은 인사, 감사와 중재의 기도입니다.

바울의 전도로 그리스도인이 된 에바브라가 세운 골로새교회는 지금

거짓교사의 가르침 때문에 할례와 금욕, 천사숭배 등에 빠져

부활의 능력이 주시는 참 자유의 선물을 잃어버릴 지도 모릅니다.

이를 염려하여 바울이 옥중에서 이 편지를 씁니다.

 

그래서 바울과 디모데 등은 골로새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을 얻도록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9-10)

그 지식의 첫 걸음이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우리를 암흑권세에서 벗어나 해방세상에서 살게 해주신 것이었습니다.(12-13)

 

오늘 복음서본문소제목은 선한 사마리아인입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어떤 율법교사가 <영생의 길>을 묻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율법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을 기억나게 하십니다.(6:5, 19:18)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영생의 길임을 확인해주십니다.

 

그러자 율법교사가 내 이웃이 누구냐고 다시 묻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로써

이웃개념을 2가지 면에서 확장시켜주십니다.

 

첫째, 지금까지 가까운 동지 등으로 한정되었던 이웃개념을

원수처럼 적대시했던 이들에게까지 크게 확대하십니다.

둘째, 나 중심으로 규정하려던 이웃개념을(29) 뒤집어서

지금당장 이웃의 도움이 필요한 약자를 중심으로 한 이웃개념을 보여주신 것입니다.(36)

 

이렇게 이웃개념을 이중으로 확대시키신 예수님은

그런 이웃으로서, 지금 가서 그 사랑을 실천하라고 명하심으로써(37)

영생의 길을 환히 보여주십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해설 일부 참조)

 

 

[정리]

 

오늘 구약본문의 등장인물인 아모스와 아마샤는

이름은 비슷해도 영 다른 길을 갑니다.

아마샤는 나랏돈을 받고 일하는 고위 공무원급 종교인인데

아모스는 돈이 아니라 하나님 명을 받고 일하는 예언자입니다.

 

그래서인지, 심지어 낯선 타국에 가서 말씀을 전하면서도,

사람 눈치, 권력자의 눈치 보지 않고 할 말을 다 합니다.

그래서 쫓겨나더라도 예언자가 그런 거 두려워할 리 없습니다.

이것이 <말씀의 사람>입니다.

 

아마샤는 공권력을 이용해서 <말씀의 사람> 아모스를 내쫓습니다.

눈엣가시, 귀에 가시 같은 말이 더 이상 들리지 않으니 잠깐은 좋을지 몰라도

그 행동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로막는 악행이었음을 깨달을 귀가 과연

아마샤에게 있었을까요?

 

아마샤는 오늘 우리에게 거울입니다.

말씀을 바로(올바로) 아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바로 알고 ()바로 행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오늘 복음서본문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십니다.

 

언제부턴가 읽씹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많이 들린다 싶더니

다소 거친 이 단어가 언제부턴가 사전에까지 올라 있습니다.

사전에는 문자 메시지 따위를 읽고 답하지 아니함이라고 나와 있는데,

'읽고 씹기'의 준말로, 문자메시지나 SNS 등을 확인하고 답장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오픈사전)

 

오늘 복음서본문 예수님 말씀,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느냐?”(10:26)

이 말씀을 묵상하던 중 문득 이 단어가 떠오른 것입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려던 그 율법교사는 읽은 말씀을 소리 내어 암송합니다.(27)

그런데 평소에 그는 아마도 그 말씀을 읽씹했나 봅니다.

 

한편, ‘아예 성경 안 읽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들지만,

내 문자를 아예 안 읽었으면 몰라도 읽었는데 답 없는 게 더 속상하듯이,

아마 주님도 성경말씀 읽고도 답 없는 게 더 속상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 읽고 답 없다는 것은, 말씀대로 바로 행동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반복해서 이렇게 못 박듯이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28)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37)

 

 

 

[나머지]

* 하나님의 뜻

성령강림절 6(성령강림후 5) 성서일과 본문 하나의 주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다림줄로 묘사됩니다.(7-8) 즉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시편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법정으로 묘사됩니다.(1) ‘공정한 재판말입니다.(2절과 비교) 서신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9)으로 묘사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놓치지 맙시다.(6-7) 복음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자비(慈悲)”입니다.(37) 이는 하나님나라의 열쇠요 알맹이(기운)입니다.

 

** 아모스 예언자

아모스는 당시 통속적인 밥벌이형 예언자들과 달리, 다른 직업이 있었으므로 돈 주는 이의 눈치를 보며 예언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남의 나라에 원정 간 상황이므로 지연이나 혈연에도 매이지 않습니다. 신학교도 안 나왔으니(14) 학연에도 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오직 나를 예언자로 부르신 하나님만 바라보며 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다림줄을 드신 까닭은?

다림줄은 하늘에서 땅을 향해 내려오는 기준의 상징, 화살처럼 빨리 내려오시겠다는 하나님 마음 상징(다림줄 추는 주로 화살촉처럼 생겼습니다.), 성벽이 곧게, 바르게, 정직하게 서지 않았다는 암시, 성벽을 세울 때 정확하게 하듯이, 허물 때 역시 정확하게 따져서 하시겠다는 표시, 내가(주님께서) 목수(건축주)라는 상징, 즉 성을 세우고 부수는 전권이 내게 있다는 상징... 다림줄은,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멀어진, 이렇게 기울어진 세상의 기울기를 한 눈에 보여줍니다. 다림줄은, 올바른 재판,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유일한 하나님의 기준을 상징합니다. 다림줄은, 화살처럼 빨리 내려오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상징합니다. 다림줄은 하나님의 공의를 상징합니다. 다림줄은 하나님 나라를 바로 세우는 척도입니다. 다림줄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춤추게 하는 소리 없는 장단입니다.

 

****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이 질문은 두 가지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할 이웃은 바로 강도만난 이웃입니다.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날강도들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 강도들에게 힘없이 당하는 약자들이 또 얼마나 많습니까? 둘째, 우리가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할 이웃은, 뜻밖에도 우리의 밖에 나 있는 적대자들 또는 소수자들입니다.

원래 율법교사의 이웃개념은 당시 통념대로, 정치적, 종교적 동지였습니다.(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그런데 예수님은 강도만난 이웃을 보고도 못 본체한 그들의 이웃제사장과 레위사람에 이어서 결코 이웃이 될 수 없는 저 사마리아 사람을 등장시키신 것입니다. 그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만나 죽어가는 사람의 신분에 상관없이, 즉 그가 자기의 이웃(동지)인지 아닌지 상관없이 그를 살리기 위해 지극정성을 쏟습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이웃은(동지는)커녕 원수 같은 사마리아 사람임에도 결국 율법학자는 예수님의 질문에 모기만한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 이 타락한 불공정 시대에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오늘 구약의 아모스 예언자가 활동한 이스라엘은 정치·경제·군사적으로 강대국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빈익빈부익부가 심해지고 종교는 타락합니다. 강자가 약자를 점점 더 많이 수탈하는 온통 불공정한 시대였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시편기자의 입을 통해 이렇게 외치십니다. “언제까지 너희는 공정하지 않은 재판을 되풀이 하려느냐?”(시편 82:2) 아모스가 활동하던 이스라엘 상황과 비슷한 지금 대한민국은, 끊임없는 사법농단으로 판사들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대한민국은, 법꾸라지들이 판을 치고 법과 원칙”, “법과 상식이 공염불(空念佛)이 되어버린 지 오랜 대한민국은 오늘 시편말씀을 뼈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골로새교회에게 전한 사도바울의 간절한 기도처럼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을 구하기에 힘쓰고 오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남남갈등, 남북갈등을 무색하게 만드는 이 사마리아 사람의 상식과, 상식에 맞는 그 행동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누가복음 10:37)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 ‘말씀의 사람이 가장 이기기 힘든 유혹

(상략) 신학대학교수, 성서공회 총무, 성서번역자, 목사 등 한평생을 말씀의 사람으로 살아오며 가장 이기기 힘든 유혹이나 일이 있었다면 무엇인지를 여쭸다. 선생님의 대답이 궁금했는데, 참으로 뜻밖의 대답을 하셨다. 내가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사람들이 원하는 말을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가장 힘들었다는 대답이었다. 지금까지도 가장 큰 유혹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쇠망치로 한 대 얻어맞는 느낌이었는데, 선생님은 그 대답이 불충분하다 여기셨는지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말씀을 전하러 갔다가 쫓겨난 적이 제 기억에는 겨우 세 번밖에 없어요.” 마음이 아뜩해졌고, 멍해졌다. 말씀을 전하러 갔다가 쫓겨난 일은 내게는 한 번도 없는 일이었다. 그 일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선생님의 대답은 돌아보게 했다. (중략) 말씀의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선생님은 변함없이 가르쳐주고 계시다.(한희철 지음. 하루 한 생각125-126. 꽃자리 2021)

 

 

 

 

 

[말씀동시]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김민서 지음. 세움교회 고등부. 성실문화111)

네 이웃을 사랑하여라

하나님 말씀하셨지만

 

이유 달고

피하고

도망가고...

 

예수님이 찾는 사람

자비를 베푼 사람

사마리아 사람이지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순종은 알면서 어렵다

 

 

 

 

[말씀시조] 믿음과 사랑 소망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11)

믿음과 사랑소망 충만하신 성도들아

하나님 뜻을 아는 지식을 더하시라

주님을 점점 더 알아 하나님께 기쁨을

 

 

 

 

[시편노래] 시편 82, 하나님이 신들을 불러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성실문화111)

[본문] (시편 82)

[노랫말]

1. 하나님이 신들을 불러 재판하여 말씀하네, 너희 재판 언제까지 내내 불공정 하려느냐

너희는 언제까지 악인의 편 들려느냐, 고아와 가난한 약자 변호하고 구하거라

2. 무지몽매 판사들로 땅의 기초 흔들리니, 하나님이 말씀하네 선고를 내리시네

너희 모두 신들이고 지존자의 아들이나, 너희 모두 죽으리라 사람처럼 죽으리라

3. 하나님 일어나서 이 땅 재판 하옵소서, 이 세상 온 나라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어나서 몸소 재판 하옵소서, 이 세상 만백성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인 전일교회 홍의종 목사가 곡을 붙였다.

이 노래는 돌림노래로 부를 수 있다. 부르는 요령은 다음과 같다.

처음에 회중이 같이 시작하여 1,2소절을 부른 후, 회중의 반은 3소절을 부르고, 나머지 회중은 1소절을 시작한다.

4절까지 다 부른 후 먼저 끝난 회중은 4절의 3,4소절을 다시 한 번 같이 부르면서 끝낸다.

 

[악보] 시편 82 (하나님이 신들을 불러 재판하여 말씀하네)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20220710_시편노래 82 하나님이 신들 불러.m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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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송서(誦書)] 시편 82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111)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

2. 너희가 -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셀라

 

3.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4.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하시는도다

 

5. 그들은 알지도 못하---, 깨닫지도-- 못하---,

-암 중에- 왕래-하니-, --- 터가 흔들리---

 

6.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7.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사람처럼--) 죽으---,

고관--- 하나- 같이-, ----지리-로다-

 

[다함께]

8.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 심판하소서-,

-든 나라가 주의- 소유-, (-소유)-- 때문이니∼∥

 

20220710_시편송서 82.m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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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동화] 웅범이네 읽씹소동

 

옛날옛날 한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곰순이랑 동굴에서 천자문 암송 내기하던 시절 이야기예요.

 

도대체 읽씹이 뭐길래 이 야단이냐. 말 좀 해보라니까!”

 

할아버지가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굳게 닫힌 웅범이 입은 열릴 줄 모릅니다.

그때 귀가하신 엄마가 할아버지께 여쭙니다.

 

아버님, 웅범이가 왜 저러죠?”

 

별일 아닌데, 아까부터 무슨 <읽씹>이라는 것 때문에 씩씩거리면서 저리 부어있구나.”

 

순간 엄마의 얼굴이 환해집니다.

엄마는 늘 웅범이 마음속을 환히 꿰뚫고 있거든요.

 

아마 웅범이 친구가 카톡 문자 읽고 답 안 해서 저러는 걸 거예요.”

 

카톡 문자라는 말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웅범이 표정을 살피십니다.

 

 

귀가하신 아빠랑 함께 온 가족이 저녁상에 둘러앉았습니다.

밥상머리 화제도 오늘 웅범이의 <읽씹> 이야기였습니다.

아빠가 못마땅한 듯 한마디 하십니다.

 

요새 아무리 애들 말 줄이기가 유행이라지만, 읽씹이 뭐냐 읽씹이.”

 

아빠말씀이 떨어지기 무섭게 웅희가 스마트폰 사전을 검색합니다.

 

아빠, 이거 보세요. ‘읽씹은 사전에도 있는 말이에요.”

 

문자 메시지 따위를 읽고 답하지 아니함. 어라, 오픈 사전에는 더 자세히 나왔네! '읽고 씹기'의 준말로, 문자메시지나 SNS 등을 확인하고 답장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아빠 눈이 휘둥그레지고 여태 눈치 채지 못하신 할아버지는

자다가 봉창’, 아니아니, ‘꿈보다 해몽처럼

멋진 말씀을 해주십니다.

 

그래 <읽고 씹기>는 우리네 학창시절에도 유행이었어. 중고등학교 시절 한창 영어공부에 열을 올릴 때는 매일 영어사전 한 장씩 읽고 나서 씹어 먹곤 했지.”

 

아니 그걸 왜 씹어 먹어요?”

 

 

할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난 웅범이와 웅희의 눈이

아까보다 더 휘둥그레집니다.

그건 마치 무협지 수준의 무용담이었기 때문입니다.

의기양양해진 할아버지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영어 단어 외우려는 단호한 마음으로 영어사전 읽고 찢어 씹어 먹는 건 아무것도 아니지! 우리 조상님들의 읽고 씹기는 그보다 훨씬 더 왕성하셨단다.”

 

할아버지는 옛날 조선시대 선비들의 책읽기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저녁밥을 씹으며 듣는 할아버지 말씀은 늘 그렇듯이

된장찌개보다 더 구수합니다.

 

오늘날 공무원시험이나 국가고시 시험에 해당하던 과거시험장에 나가기 위해서는 사서삼경을 통째로 외워야 했거든!”

 

그래서 어린 시절 천자문부터 사서삼경에 이르기까지

옛날 사람들은 글을 외우기 쉽도록 단순한 가락에 얹어 읊조리며 외웠습니다.

하루 세끼 밥을 먹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자근자근 씹듯이 경서를 읽고 또 읽으며 외웠던 것입니다.

 

 

그런데요 할아버지, 오늘 오빠가 잔뜩 부어있었던 그 <읽씹>은요...”

 

웅희는 할아버지께 웅범이의 <읽씹 분노>

옛 어른들의 책읽기나 영어사전 읽고 씹어 먹기와는 전혀 다른

문자를 읽고 답장을 하지 않는다는 뜻임을

조근조근 친절하게 알려드렸습니다.

 

그 순간 할아버지의 눈이 샛별처럼 빛납니다.

그리고는 얼른 방에서 성경책을 가져오시더니

오늘 종일 읽으시던 성경말씀을 소리 내어 읽어주십니다.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서, 예수를 시험하여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하였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누가복음10:25-28)

 

할아버지의 눈은 아까보다 더 빛을 뿜고 있습니다.

 

바로 이거란다. 할애비의 <읽고 씹기>랑 너희의 <읽고 씹기>가 뜻이 다르지만, 봐라, 이 말씀 안에서는 하나로 통하지 않느냐!”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는 웅범이와 웅희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이

하트눈이 되십니다.

 

 

이 말씀, 경천애인(敬天愛人) 예수님을 모르던 우리 옛 선비들의 마음에도 있었지.”

 

할아버지는 예수님을 모르던 시절 선비들의 마음속에서

경천애인, 즉 하늘 공경과 사람 사랑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고,

그들은 그 비슷한 정신이 담긴 글들을 수없이 밥 먹듯이 자근자근

읽고 씹으면서 그 글에 담긴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평생을 두고 실천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저 옛 성현의 글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말씀이라는 성경을 읽으면서도 그 말씀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지 않는 것이 바로 오늘 웅범이가 분노한 <읽고 씹기> 아니겠느냐?”

 

그래서 예수님은 그 율법학자가 하나님말씀을 읽고도 실천하지 않을까봐,

그래서 하나님이, 마치 오늘 웅범이처럼, 그의 <읽씹>에 분노하실까봐,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누가복음10:28)라고

단단히 못을 박듯 말씀하신 것이라고!

 

그러고 보니 예수님의 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말씀에 나온

제사장과 레위인이 딱 오늘날 교회 사람들 같고

사마리아 사람이 딱 오래전 예수님도 모르던 우리 선비들 같다고!

할아버지는 일일이 깨알같이 가르쳐주십니다.(누가복음10:31-35)

 

할아버지 말씀에 아이들의 눈은 점점 별처럼 빛나고

심지어 엄마아빠의 눈은 하트눈이 되어버립니다.

웅범이네 읽씹 소동을 내려다보시는 하나님 눈은 지금 어떤 모양일까요?

[이정훈 지음. 202279일 토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