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네게 하신 일을 다 이야기하여라”(누가복음 8:39)
[성서일과 4본문]
(열왕기상 19:1-15a) 시내산(호렙산)의 엘리야
1. 아합은, 엘리야가 한 모든 일과, 그가 칼로 모든 예언자들을 죽인 일을, 낱낱이 이세벨에게 알려 주었다.
2. 그러자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심부름꾼을 보내어 말하였다. “네가 예언자들을 죽였으니, 나도 너를 죽이겠다. 내가 내일 이맘때까지 너를 죽이지 못하면, 신들에게서 천벌을 달게 받겠다. 아니, 그보다 더한 재앙이라도 그대로 받겠다.”
3. 엘리야는 두려워서 급히 일어나, 목숨을 살리려고 도망하여, 유다의 브엘세바로 갔다. 그 곳에 자기 시종을 남겨 두고,
4. 자신은 홀로 광야로 들어가서, 하룻길을 더 걸어 어떤 로뎀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에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기도하였다. “주님,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나는 내 조상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5. 그런 다음에, 그는 로뎀나무 아래에 누워서 잠이 들었는데, 그 때에 한 천사가, 일어나서 먹으라고 하면서, 그를 깨웠다.
6. 엘리야가 깨어 보니, 그의 머리맡에는 뜨겁게 달군 돌에다가 구워 낸 과자와 물 한 병이 놓여 있었다. 그는 먹고 마신 뒤에, 다시 잠이 들었다.
7. 주님의 천사가 두 번째 와서, 그를 깨우면서 말하였다. “일어나서 먹어라. 갈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
8.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다. 그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서, 밤낮 사십 일 동안을 걸어, 하나님의 산인 호렙산에 도착하였다.
9. 엘리야는 거기에 있는 동굴에 이르러, 거기에서 밤을 지냈다. 그 때에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10.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11.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곧 나 주가 지나갈 것이니, 너는 나가서, 산 위에, 주 앞에 서 있어라.” 크고 강한 바람이 주님 앞에서 산을 쪼개고, 바위를 부수었으나, 그 바람 속에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12. 그 바람이 지나가고 난 뒤에 지진이 일었지만, 그 지진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가고 난 뒤에 불이 났지만, 그 불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그 불이 난 뒤에,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들렸다.
13.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서, 외투 자락으로 얼굴을 감싸고 나가서, 동굴 어귀에 섰다. 바로 그 때에 그에게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14.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돌이켜, 광야길로 해서 다마스쿠스로 가거라. 거기에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서, 시리아의 왕으로 세우고,
(시편 42, 43) 하나님을 사모함, 환난을 당할 때의 기도
(42편) 1. 하나님, 사슴이 시냇물 바닥에서 물을 찾아 헐떡이듯이,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헐떡입니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하니, 내가 언제 하나님께로 나아가 그 얼굴을 뵈올 수 있을까?
3. 사람들은 날이면 날마다 나를 보고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비웃으니, 밤낮으로 흘리는 눈물이 나의 음식이 되었구나.
4. 기쁜 감사의 노래 소리와 축제의 함성과 함께 내가 무리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면서 그 장막으로 들어가곤 했던 일들을 지금 내가 기억하고 내 가슴이 미어지는구나.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 괴로워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또다시 찬양하련다.
6. 내 영혼이 너무 낙심하였지만,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산에서, 주님만을 그래도 생각할 뿐입니다.
7.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저 큰 폭포 소리를 따라 깊음은 깊음을 부르며,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저 파도의 물결은 모두가 한 덩이 되어 이 몸을 휩쓸고 지나갑니다.
8. 낮에는 주님께서 사랑을 베푸시고, 밤에는 찬송으로 나를 채우시니, 나는 다만 살아 계시는 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9.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께 호소한다.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나를 잊으셨습니까? 어찌하여 이 몸이 원수에게 짓눌려 슬픈 나날을 보내야만 합니까?”
10. 원수들이 날마다 나를 보고 “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하고 빈정대니, 그 조롱 소리가 나의 뼈를 부수는구나.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 괴로워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또다시 찬양하련다.
(43편) 1. 하나님, 나를 변호하여 주십시오. 비정한 무리를 고발하는 내 송사를 변호하여 주십시오. 거짓을 일삼는 저 악한 사람들에게서 나를 구해 주십시오.
2. 나의 요새이신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어찌하여 나는 원수에게 짓눌려 슬픔에 잠겨 있어야만 합니까?
3. 주님의 빛과 주님의 진리를 나에게 보내 주시어, 나의 길잡이가 되게 하시고, 주님의 거룩한 산, 주님이 계시는 그 장막으로, 나를 데려가게 해주십시오.
4. 하나님, 그 때에, 나는 하나님의 제단으로 나아가렵니다. 나를 크게 기쁘게 하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렵니다. 하나님, 나의 하나님, 내가 기뻐하면서, 수금가락에 맞추어 주님께 감사하렵니다.
5. 내 영혼아, 어찌하여 그렇게도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도 괴로워하느냐?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또다시 찬양하련다.
(갈라디아서 3:23-29) ...종과 아들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는 율법의 감시를 받으면서, 장차 올 믿음이 나타날 때까지 갇혀 있었습니다.
24. 그래서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에게 개인교사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게 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25. 그런데 그 믿음이 이미 왔으므로, 우리가 이제는 개인교사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26. 여러분은 모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27. 여러분은 모두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28.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29.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약속을 따라 정해진 상속자들입니다.
(누가복음 8:26-39)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시다
26. 그들은 갈릴리 맞은편에 있는 거라사 지방에 닿았다.
27. 예수께서 뭍에 내리시니, 그 마을 출신으로서 귀신 들린 사람 하나가 예수를 만났다. 그는 오랫동안 옷을 입지 않은 채, 집에서 살지 않고, 무덤에서 지내고 있었다.
28. 그가 예수를 보고, 소리를 지르고서, 그 앞에 엎드려서, 큰 소리로 말하였다. “더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29. 예수께서 이미 악한 귀신더러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귀신이 여러 번 그 사람을 붙잡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쇠사슬과 쇠고랑으로 묶어서 감시하였으나, 그는 그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서 광야로 뛰쳐나가곤 하였다.
30.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대답하였다. “군대입니다.” 많은 귀신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31. 귀신들은 자기들을 지옥에 보내지 말아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32. 마침 그 곳 산기슭에, 놓아기르는 큰 돼지 떼가 있었다. 귀신들은 자기들을 그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게 허락해 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허락하시니,
33.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그 돼지 떼는 비탈을 내리달아서 호수에 빠져서 죽었다.
34.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이 일을 보고, 도망가서 읍내와 촌에 알렸다.
35. 그래서 사람들이 일어난 그 일을 보러 나왔다. 그들은 예수께로 와서, 귀신들이 나가버린 그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이 들어서 예수의 발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36. 처음부터 지켜본 사람들이, 귀신 들렸던 사람이 어떻게 해서 낫게 되었는가를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
37. 그러자 거라사 주위의 고을 주민들은 모두 예수께, 자기들에게서 떠나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들이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배에 올라 되돌아가시는데,
38. 귀신이 나간 그 사람이 예수와 함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하였으나, 예수께서는 그를 돌려보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39. “네 집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네게 하신 일을 다 이야기하여라.” 그 사람이 떠나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일을 낱낱이 온 읍내에 알렸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알맹이는 ‘나의 상처를 직시하시는 주님’입니다.
구약,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왕상 19:10,14)
시편, “그 조롱소리가 나의 뼈를 부수는구나”(시편 42:10)
서신서, “우리는 율법의 감시를 받으면서, 장차 올 믿음이 나타날 때까지 갇혀있었습니다”(갈라 3:23)
복음서, “예수께서 이미 악한 귀신더러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명하셨던 것이다”(누가 8:29)
오늘 요절은, “네 집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네게 하신 일을 다 이야기하여라”입니다.(누가복음 8:39)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열왕기상 19:1-4(5-7)8-15a / 시편 42, 43)]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호렙산의 엘리야’입니다.
갈멜산에서 승리하고 오랜 가뭄까지 끝냈음에도,
천하의 엘리야는 이세벨의 엄포에 이상하리만치 급격하게 절망에 빠집니다.
그의 주변에 동지가 없었기 때문일까요?
심지어 죽기를 바라는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떡과 물을 먹여 살리십니다.
그리고 모세와 백성에게 처음 스스로 드러내 보이셨던 호렙(시내)산으로 엘리야를 부르십니다.
그래서 모세의 금식을 떠올리는(출34:28) 사십 주야를 걸어
마침내 엘리야는 호렙산에 다다릅니다.
엘리야는 넋 나간 이의 넋두리처럼, 하나님 앞에서 탄식을 반복합니다.(10, 14)
두 차례 넋두리의 중간에 일어난 큰 바람과 지진, 그리고 불로써
이윽고 엘리야가 깊은 절망에서 깨어나는 듯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어루만지시듯
세미한 음성으로 물음으로써 다시 그의 상처를 드러내 주십니다.
반복해서 넋두리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이어서 처방을 내리듯 명령을 내리십니다.(15∼)
그리고 오늘 본문 직후에 많은 동지와(18) 제자를(19) 주시니 엘리야의 상처가 아물어갑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낯선 땅에서 하나님을 갈망함’입니다.
이 탄원의 노래에는 하나님께조차 버림받은 느낌이 가득합니다.(42:9, 43:2)
그래서 이 노래는 딱 오늘 구약의 주인공 엘리야의 마음처럼 들립니다.
이 노래는 두 편으로 나뉘었으나 같은 후렴구(42:5,11, 43:5) 때문에 한 편의 시로 보입니다.
시인은 곳곳에 큰 낙차로 폭포처럼 쏟아지는 요단강 물줄기로써(42:7)
자신이 당하고 있는 온갖 모욕과 억울한 무고(誣告)를 묘사합니다.(43:1)
그럼에도 시인은 반복해서 스스로에게 낙심하지 말라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고 노래합니다.
아니 그분이 이미 오셔서 나를 어루만지며 편드심을 믿고 찬양합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갈라디아서 3:23-29 / 누가복음 8:26-39)]
오늘 서신서본문의 소제목은 ‘약속과 율법’입니다.
믿음으로 우리가 의로워져 하나님의 자녀로서 차별 없이 하나되기 전까지는,
우리는 율법의 감시를 받으며 갇혀 지내야 했습니다.(23)
율법은 우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자유를 억압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은혜로 우리는 율법시절의 그 상처 다 씻고
믿음으로 하나님과 온전한 친교, 하나 됨의 신비를 누립니다.
주님과 하나 되고(27) 사람들과 차별 없이 하나 되는(28)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시다’입니다.
본문 바로 앞에, 갈릴리 바다에서 만난 광풍을 꾸짖어 잠잠케 하신 예수님께서(23-24)
배에서 내리자마자 만난 광인, 아니 귀신들린 자를 향하여 소리 없이 꾸짖으십니다.(29)
하나님 사랑 받으며 빛나고 복스럽게 자라야 할 저 소중한 생명이
엄청난 규모의 군대귀신에게 점령당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군대귀신은 물러가고 그 사람은 회복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근처에 있던 돼지 떼가 물에 빠져 몰살한 사건 때문에
거라사 주위의 고을 사람들은 예수님께 떠나달라고 하고, 반면에
귀신이 나간 그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가겠다고 애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귀가시키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집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네게 하신 일을 다 이야기하여라”(39)
가까운 이들과 다시 하나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그의 치유와 회복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예수님은 아셨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가 몸소 겪은 하나님의 일을 반복해서 이야기함으로써
그는 점점 더 회복되고, 나부터 하나님을 더 알아가며 가까워질 것이고,
그 증언을 들은 사람들도 하나님과 가까워져 탐욕으로부터 해방되어갈 것입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갈라진 것 다시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의 계절에
6.25한국전쟁 그 날을 앞두고 기억하게 하는 이 주일에
나조차 묻어버린 나의 상처를 주님께서 직시하고 치유하시는 말씀을 읽습니다.
갈멜산에서 치른 전쟁 같은 결투를 마친 엘리야는
그 상처를 다스릴 겨를도 없이 이세벨의 공격을 받고 절망합니다.
함께 상처를 보듬어줄 동지 하나 없이 홀로 죽음의 문턱에 선 엘리야에게
주님께서 물과 떡을 먹여 살려내시고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부르십니다.
그렇게 40주야를 걸으며 묵상하게 하시고(왕상19:8), 그 안의 상처를 드러내게 하시고(10)
광풍과 지진과 불로써 정신을 차리게 하신 뒤에
다시 한 번 내 안의 상처를 반복해서 드러내게 하십니다.(14)
그 반복되는 소리를 반복해서 묵묵히 들어주신 하나님께서 마침내 처방을 내리십니다.(15)
예언자가 해야 할 일을 하게 하심으로, 그리고
상상도 못했던 동지들을 만나고(18) 귀한 제자를 만나게 됨으로써(19-)
엘리야의 상처는 시나브로 치유되어 이전보다 더 씩씩해질 것입니다.
한국사회와 한국교회 안에 군대귀신처럼 드글드글한 상처,
아직도 틈만 나면 덧나기 일쑤인 6.25한국전쟁의 상처는
언제나 남과 북 모두를 전쟁의 패배자로 만들어버립니다.
70여 년 전 그 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승리하는 길은
민족의 그 상처 제대로 치유하는 길,
즉 끝없이 소통하고 한 뼘이라도 하나 되어가려 애쓰는 평화의 길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처방을 내리시듯
한국교회에게 내리신 처방은,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을 받은 교회답게
우리 사회 곳곳에 평화의 일꾼을 기름 부어 세우는 일입니다.
오늘 군대귀신 몰아내고 거라사 사람을 회복시키신 예수님처럼,
틈만 나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본군국주의 망령들 다 몰아내는 일입니다.
틈만 나면 세대를 가르고, 계층을 가르고, 남녀 사이까지 갈라버리는
소프트한 과장과 매끄러운 왜곡,
저 거짓말투성이 이간질투성이 불의한 세력들을 몰아내는 일입니다.
그럴 수 있도록 한국교회는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님이 계시는 교회답게
내 안에 평화의 기운을 든든히 채우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나머지]
* 사랑의 처방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인 6.25가 코앞입니다. 6.25전쟁 때문에 지금도 한반도는 너도나도 극심한 트라우마에 빠져 삽니다. 반민특위 실패와 제주 4.3, 여수순천, 그리고 각지의 보도연맹과 6.25까지, 전국에 분단의 희생, 그 상처 없는 가정이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보도연맹 학살 때 가까운 친족 당숙어른을 잃었습니다.) 분단의 상처는 너무나 크고 깊고 오랩니다. 하나 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앙망하는 교회들조차 분단마귀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기 시작하면 귀하고 거룩한 형제자매조차 마귀로 보입니다. 한 집안 식구들끼리도 세대 간에 마음이 분단되어 삽니다. 한 교회 교우들끼리도 분단되어 삽니다. 한 나라 사람들까지도 분단문제를 보는 눈이 다르니 하물며 남과 북 두 땅을 다시 잇는 길은 얼마나 멀고 험하겠습니까. 이런 우리에게 오늘 하나님께서 전쟁을 치른 뒤 엘리야의 고통을 보여주시고, 또 전쟁처럼 격렬하고 더러운 고통의 상징인 거라사 군대귀신 들린 자의 고통까지 보여주십니다. 엘리야의 넋두리를 반복해서 들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군대귀신 들린 자를 보자마자 소리 없이 회복시키시는 예수님의 능력!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십자가 사랑이란 회복케 하시는 능력이요, 하나 되게 하시는 사랑입니다.(갈라 3:28) 지금 주님의 능력, 주님의 사랑으로 한반도 분단의 상처가 치유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반복하고 있는 이 땅 각양각색의 넋두리를 한탄을 호소를 반복해서 귀 기울여 들어주고 계신 하나님께서 이제 힘찬 사랑의 처방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 사랑의 권능
오늘 본문들은, 엘리야가 다시 새로워지는 과정과(구약) 거라사 광인이 새로워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복음서) 그리고 순식간에 주님을 잃어버린 시인이 하나님을 기다리는 믿음의 모습과(시편) 예수님이 오신 뒤부터 새로 열리는 믿음의 세계를 보여줍니다.(서신서) 모두모두 주님을 만나 새로워집니다. 엘리야는 주님과 동행하던 사람이었으나 순식간에 주님을 잃어버린 꼴을 당하다가 극적으로 다시 회복합니다. 주님과 만났던 첫사랑을 잃고 근근도생(僅僅圖生)하는 지금 우리에게 오늘 엘리야가 희망을 줍니다. 계속 잘나가지 않고 크게 꺾어졌다가 다시 회복되는 모습이라 더 큰 감동과 희망을 줍니다. 거라사 광인은 엘리야와 달리 처음 주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군대귀신은 무엇일까요? 그 군대귀신에게 한없이 시달리고 있는 저 벌거숭이 내 이웃은 누구일까요? 그가 그리스도를 옷 입도록 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마귀권세가 제아무리 강할지라도 우리 주님의 권능에 비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권능은 사랑에서 나오는 권능이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사랑, 한 영혼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그 사랑 말입니다. 사랑이 권능입니다. 사랑의 힘이 약해진 우리 교회는 오직 성령을 받아야 권능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랑의 힘이 세져야, 땅 끝까지 증인이 될 것입니다. 주님으로 옷을 입은 거라사 광인에게서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느껴집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넘쳐야 이웃 사랑의 길, 증인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이웃 사랑의 불길이 타오를 때 나를 향한 하늘사랑의 향기가 진동합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배가되는 사랑의 권능을 마귀권세는 도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주여! 제가 지금 성령을 기다립니다!
(※ 여러해 전 예배준비노트에 올린 글을 다시 다듬어 올립니다.)
(* 이상, 「성실문화」 111호 '예배마당'에서 옮깁니다.)
[말씀동시] 귀신들린 사람 (장은우 지음. 「성실문화」 111호)
예수는
그들의 이름을 물었다
예수는
그들의 말을 들었다
예수는
귀신을 나가게 하였다
그는
예수를 알렸다
[말씀시조] 믿음으로 말미암은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11호)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 자녀들은
세례를 받음으로 예수님과 하나 되니
모두가 예수 안에서 차별 없이 하나라
[시편노래] 시편 42·43, 사슴이 시내에서 물을 찾아 헐떡이듯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 111호)
[본문] (시편 42, 43)
[노랫말]
1. 사슴이 시내에서 물을 찾아 헐떡이듯, 하나님 내 영혼이 주를 찾아 헤맵니다
갈급한 내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하니, 언제나 주께 나가 그 얼굴을 뵈오리까
2. 사람들 나를 보고 네 하나님 어디 있냐, 매일매일 비웃으니 눈물만 삼킵니다
성전으로 행진하며 크게 부른 감사찬양, 그때 일을 기억하니 가슴이 미어지네
(후렴)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고 괴로우냐, 하나님을 기다려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3. 요단 땅과 헤르몬산 미살산 마루에서, 낙심한 내 영혼이 주님만 생각할 때
주님께서 일으키는 큰 파도와 폭포소리, 모두가 한덩이로 이 몸을 휩씁니다
4. 낮에 베푼 주의 사랑 밤에 부른 나의 찬양, 나의 반석 내 하나님 어찌 나를 잊으실까
원수들이 빈정대며 네 하나님 어디 있냐, 날마다 그 조롱에 나의 뼈가 부서지네
(후렴)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고 괴로우냐, 하나님을 기다려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5. 하나님 내 송사를 변호해 주옵소서, 악한 자들 거짓에서 나를 구해 주옵소서
나의 요새 내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립니까, 원수에게 짓눌린 나 어찌 이리 슬픕니까
6. 주님의 빛 주의 진리 나에게 보내시어, 거룩한 산 성전으로 날 이끌게 하옵소서
하나님 그때 나는 제단 앞에 나아가서, 나의 기쁨 하나님을 수금으로 찬양하리
(후렴)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고 괴로우냐, 하나님을 기다려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인 이석훈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42, 43 (사슴이 시내에서 물을 찾아 헐떡이듯)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42·43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11호)
(※ 후렴구 42:5,11, 43:5만 ‘새야새야’ 가락에 맞추어, ‘쉼표’까지가 중중모리 한 장단)
(42편)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5. 내 영혼아==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시-리-라==,
그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9.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10.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11. 내 영혼아==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시-리-라==,
그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43편)
1.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4.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5. 내 영혼아==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시-리-라==,
그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 42:5, 11절과 43:5절은, 하반부가 조금 차이가 있지만, 대동소이하다고 판단하여 운율에 맞추어 문장을 조금 다듬어서 통일시켰다.)
※ 가락은 ‘새야새야, 파랑새야’로, 장단은 중중모리로 읊는다.
※ 쉼표(‘,’)까지 한마디가 12박 한 장단이다. (즉, 한 줄이 중중모리 두 장단이다.)
※ 한 박(‘=’)은 편의상 2분박(‘--’)으로 쪼개어 짚을 수도 있다.
※ 밑줄(‘ ’)친 부분은 글자 수가 많아도 3박으로 읊으면 된다.(이 때 너무 서두르지 말고 여유있게 읊는 것이 좋다.)
※ 굵은 글자는 찬양대가 송서(誦書, 새야새야)로 읊조리고, 나머지는 회중이 낭독한다. (찬양대가 읊조릴 때 회중도 콧노래처럼 작게 따라 해도 좋다.)
※ 가락이 조금 차이가 나는 것이 오히려 어우러지는 멋이 있어 좋다.
※ 마지막 절은 다함께 읊조린다.
[말씀동화] 유기꽃 엄마
옛날옛날 한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화분에 달맞이꽃 옮겨 심던 시절 이야기예요.
“꼬로록∼!”
검은고양이 형제들이 배고파서 울상입니다.
엄마고양이도 배가 고파 속상하고요.
“내 배에서 시냇물소리가 나.”
“내 뱃속에선 딱따구리 소리가 나거든!”
길고양이 가족이 갑자기 굶게 된 것은
늘 밥 주는 아줌마가 단단히 화가 났기 때문입니다.
아줌마가 기르는 작은 꽃 화분들을 고양이들이
사뿐사뿐 밟아버렸거든요.
“다신 밥 안 줄 거야!”
야단맞는 까닭을 여태 알지 못하는 고양이 형제에게
엄마고양이가 조용히 타이릅니다.
“아줌마는 유기꽃 엄마야. 꽃 화분 밟으면 안 돼.”
그리고 조금 있다가 엄마고양이가 다시 말합니다.
“조금만 기다려봐. 밥 주실 거야.”
유기꽃 엄마는 작은 시골학교 선생님이세요.
모자라다고 타박 받는 특수반 아이들 도움 선생님이시죠.
가족들도 힘겨워하는 자폐증 아이들을
늘 웃으며 쓰다듬어주고 등 두드려주고 고운 노래로 마음을 어루만져주십니다.
아줌마 별명이 유기(遺棄)꽃 엄마인 것은
시들어가는 꽃들을 살려내는,
특히 버려진 꽃 화분들을 하나하나 멋지게 되살려내는
그 신비한 솜씨, 사랑의 손 때문입니다.
공양미 삼백 석에 인당수에 던져진 심청이,
그 험한 바다에 버려진 심청이처럼
누군가에게서 버려진 상처투성이 꽃과 화분들을 모아서, 선생님은
정성을 다해 심청이처럼 멋지게 살려내고 그걸 특수반 아이들과 함께 가꿉니다.
학기가 끝날 때마다 살아난 꽃 화분을 각자 집으로 가져가야하는데
안타깝게도 다시 버려진 꽃 화분들이 생기고
버려지고 다시 버려진 꽃 화분을 유기꽃 엄마가 어루만집니다.
“두려워말고 서운해 하지 마. 내가 있잖아.”
이슬을 먹이고 햇볕도 먹이려고 밖에 내놓은 꽃 화분들을
철부지 길고양이들이 사뿐사뿐 밟아버린 뒤에
유기꽃 엄마는 속상한 마음으로 시편노래를 부릅니다.
“나의 요새이신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어찌하여 나는 원수에게 짓눌려 슬픔에 잠겨 있어야만 합니까?”(시편43:2)
어떻게 하면 고양이들이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곰곰이 궁리하면서 유기꽃 엄마가 고양이 밥을 들고 나옵니다.
“너희에게도 상처가 있는 거 알아. 너희 엄마의 엄마 때, 또 그 엄마의 엄마 때 누군가에게 버려진 상처, 그리고 내가 밥을 주지만 여전히 길고양이의 불안한 눈빛을 이해해. 그런데 이 꽃 화분들도 얼굴은 예쁘지만 마음속엔 너희만한 상처가 있어.”
아줌마가 다시 주는 밥그릇에 달려간
검은고양이 세 마리는 순식간에 밥그릇 삼매경에 빠집니다.
고양이들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으시던 아줌마는
다시 꽃 화분에게 다가가 짠한 눈빛으로 어루만집니다.
그리고 문득 파란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화살기도를 날립니다.
“주님은 아시죠 제 마음?”
다시 꽃들을 매만지면서 밥 먹는 고양이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다시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에게 길을 열어 주세요. 꽃 화분들과 고양이들이 같이 살 수 있는 길을요.”
이튿날 아줌마가 학교 다녀오는 길에
길가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쓰러진 풀과 나뭇가지들이 즐비합니다.
마구 자란 풀을 깎았나봅니다.
“어머나! 풀을 깎다가 이 귀한 화살나무까지 잘라버렸네.”
아줌마는 얼른 가방에서 천 가방을 꺼내어서
흉하게 널브러진 나뭇가지들을 주워 담았어요.
대부분 살지 못할 나뭇가지들은 땅에 묻어줍니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렴.”
집에 도착한 아줌마는 얼른 화살나무가지를 꺼내어서
전지가위로 15㎝정도씩 잘라서
빈 화분 몇 개에 나누어 심었어요.
“고양이들아, 아줌마의 회심의 미소가 보이느냐?”
검은고양이들이 멀찍이서 아줌마를 바라보며 갸우뚱거릴 때
방글방글 웃으며 아줌마는 또 중얼거립니다.
“꼭 화살처럼 생겼지? 다행히도 화살나무는 꺾꽂이가 되거든. 열흘만 지나면 뿌리도 내리고 서서히 새순도 돋을 거야. 가을철 단풍은 또 얼마나 예쁜데. 세상 어느 불꽃보다도 강렬하단다.
아줌마는 다시 화살기도를 날립니다.
버려진 화살나무 가지들을 잘라서 다시 심으며
눈가에 이슬이 맺힌 아줌마가 환하게 씻긴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주님 고맙습니다. 저의 화살기도에 순식간에 보내주신 화살나무! 유머 넘치는 우리 하나님!
앞으로 유기꽃 엄마의 씩씩한 화살나무 화분이
철부지 검은고양이들로부터 작은 꽃 화분들을 지켜줄 것입니다.
그리고 아줌마의 꾸중으로부터 길고양이들의 마음을 지켜줄 것입니다.
바람처럼 화살나무 화분들을 만든 유기꽃 엄마가
신바람 나게 다시 시편노래를 부릅니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그렇게도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도 괴로워하느냐?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또다시 찬양하련다.”(시편42:5,11, 43:5)
화살나무 화분들에 물을 주면서
유기꽃 엄마는 다시 화살기도를 올립니다.
평화, 평화, 평화의 임금이신 예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11호 예배마당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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