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친히 행하신 일로 기뻐하신다”(시편 104:31)
[성서일과 4본문]
(창세기 11:1-9) 바벨탑
1. 처음에 세상에는 언어가 하나뿐이어서, 모두가 같은 말을 썼다.
2. 사람들이 동쪽에서 이동하여 오다가, 시날 땅 한 들판에 이르러서,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3.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자, 벽돌을 빚어서, 단단히 구워내자.”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썼다.
4. 그들은 또 말하였다. “자,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
5. 주님께서 사람들이 짓고 있는 도시와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다.
6.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만일 사람들이 같은 말을 쓰는 한 백성으로서, 이렇게 이런 일을 하기 시작하였으니, 이제 그들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하는 말을 뒤섞어서,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8. 주님께서 거기에서 그들을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 세우는 일을 그만두었다.
9. 주님께서 거기에서 온 세상의 말을 뒤섞으셨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 곳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한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
(시편 104:24-34, 35b) 주님이 피조물을 돌보신다
24. 주님,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것이 어찌 이리도 많습니까? 이 모든 것을 주님께서 지혜로 만드셨으니, 땅에는 주님이 지으신 것으로 가득합니다.
25. 저 크고 넓은 바다에는, 크고 작은 고기들이 헤아릴 수 없이 우글거립니다.
26. 물 위로는 배들도 오가며, 주님이 지으신 리워야단도 그 속에서 놉니다.
27. 이 모든 피조물이 주님만 바라보며, 때를 따라서 먹이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28. 주님께서 그들에게 먹이를 주시면, 그들은 받아먹고, 주님께서 손을 펴 먹을 것을 주시면 그들은 만족해합니다.
29. 그러나 주님께서 얼굴을 숨기시면 그들은 떨면서 두려워하고, 주님께서 호흡을 거두어들이시면 그들은 죽어서 본래의 흙으로 돌아갑니다.
30. 주님께서 주님의 영을 불어넣으시면, 그들이 다시 창조됩니다. 주님께서는 땅의 모습을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
31. 주님의 영광은 영원하여라. 주님은 친히 행하신 일로 기뻐하신다.
32. 주님이 굽어보기만 하셔도 땅은 떨고, 주님이 산에 닿기만 하셔도 산이 연기를 뿜는다.
33.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나는 주님을 노래할 것이다. 숨을 거두는 그 때까지 나의 하나님께 노래할 것이다.
34. 내 묵상을 주님이 기꺼이 받아 주시면 좋으련만! 그러면 나는 주님의 품 안에서 즐겁기만 할 것이다.
35. (죄인들아, 이 땅에서 사라져라. 악인들아, 너희도 영원히 사라져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송하여라. 할렐루야.
(사도행전 2:1-21) 성령의 강림,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1. 오순절이 되어서, 그들은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다.
2. 그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3. 그리고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혓바닥처럼 갈라지는 것 같은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4.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5. 예루살렘에는 경건한 유대 사람이 세계 각국에서 와서 살고 있었다.
6. 그런데 이런 말소리가 나니, 많은 사람이 모여와서, 각각 자기네 지방 말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어리둥절하였다.
7. 그들은 놀라, 신기하게 여기면서 말하였다. “보시오,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이 아니오?
8. 그런데 우리 모두가 저마다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오?
9. 우리는 바대 사람과 메대 사람과 엘람 사람이고, 메소포타미아와 유대와 갑바도기아와 본도와 아시아와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와 이집트와 구레네 근처 리비아의 여러 지역에 사는 사람이고, 또 나그네로 머물고 있는 로마 사람과
11. 유대 사람과 유대교에 개종한 사람과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인데, 우리는 저들이 하나님의 큰 일들을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있소.”
12. 사람들은 모두 놀라 어쩔 줄 몰라서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오?” 하면서 서로 말하였다.
13. 그런데 더러는 조롱하면서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서, 목소리를 높여서, 그들에게 엄숙하게 말하였다. “유대 사람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이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15. 지금은 아침 아홉 시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듯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16. 이 일은 하나님께서 예언자 요엘을 시켜서 말씀하신 대로 된 것입니다.
17.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들과 너희의 딸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18. 그 날에 나는 내 영을 내 남종들과 내 여종들에게도 부어 주겠으니, 그들도 예언을 할 것이다.
19. 또 나는 위로 하늘에 놀라운 일을 나타내고, 아래로 땅에 징조를 나타낼 것이니, 곧 피와 불과 자욱한 연기이다.
20. 주님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오기 전에, 해는 변해서 어두움이 되고, 달은 변해서 피가 될 것이다.
21. 그러나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요한복음 14:8-17(25-27)) 예수는 하나님께 이르는 길... 성령의 약속
8. 빌립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좋겠습니다.”
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네가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이것은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
14.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다.
17. 그는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므로, 그를 맞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안다. 그것은, 그가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25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나는 이 말을 너희에게 말하였다.
26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27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알맹이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니’입니다.
구약, “그들이 거기에서 하는 말을 뒤섞어서,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창세기 11:7)
시편, “주님께서는 땅의 모습을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시편 104:30)
서신서, “이 일은 하나님께서 예언자 요엘을 시켜서 말씀하신대로 된 것입니다”(사도행전 2:16)
복음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요한복음 14:10)
오늘 요절은, “주님은 친히 행하신 일로 기뻐하신다”입니다.(시편 104:31)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창세기 11:1-9 / 시편 104:24-34, 35b)]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바벨탑’입니다.
처음에 같은 말을 쓰던 인류는,
도시를 세우고 하늘에 닿게 탑을 높이 쌓아서 스스로 이름을 날리려 합니다.
이것은 바로 다음 장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이름을 날리게 하신 아브라함의 경우와 비교됩니다.(12:2)
3절의 축성 기술은 인류 지식의 총화(總和), 그 상징인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매우 작은 것이지만
이것이 장차 인류를 감당치 못할 파멸로 이끌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6)
하나님은 인류의 그러한 무절제와 파멸을 막으시려고
사람들의 말을 뒤섞음으로써 사람들을 흩어버리십니다.
자신의 창조주 하나님을 깨닫고 믿는 이들은
내 인생 최선의 길이 바로 하나님 마음대로 이끄는 길임을 압니다.
나를 지으셨으니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럴 능력이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주님이 피조물을 돌보신다’입니다.
시인은 세상만물의 질서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와 위대하심을 발견하고(24) 기쁘게 찬양합니다.
시인은 세상만물의 먹을거리와 호흡조차 주님 손에 달려있음을 봅니다.(27-29)
(이는 오늘 구약본문의 바벨탑을 짓는 사람들과 비교됩니다.)
30절은 매년 봄마다 되살아나는 산천초목을 떠오르게 하는데
그 안에 피조세계를 모두 평안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
온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의 숨(29)을, 하나님의 영을(30) 그 뜻대로 이끄십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의 그 ‘자연스런’ 기쁨에(31) 공명하며 찬양합니다.(33)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의 그 생명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들을 물리치려는 것입니다.(35a))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사도행전 2:1-21 / 요한복음 14:8-17(25-27)]
오늘 서신서본문의 소제목은 ‘성령의 강림,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입니다.
세례요한이 이미 알리고(눅3:16), 예수님께서 약속하신대로(행1:5)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십니다.
그런데 그 모양과 내용이 불의 “혀”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하나님의 큰일들”을 방언으로 말합니다.(4,11)
그래서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각각 자기네 나라말로 알아듣게 된 것입니다.
이에 당황하고 소란한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설교를 시작합니다.
베드로는 이 신비로운 상황의 본질을 정확히 알려줍니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대로(16) “주님의 크고 영화로운 날”(20) 즉,
하나님의 심판 날을 알리는 <심판의 시계바늘>이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예수는 하나님께 이르는 길, 성령의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가리켜서 (하나님께서 바로 당신을 통해 우리에게 오셨음을,
그러므로 당신이 바로 다시)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심을 밝히시자(6)
빌립이 보다 확실하게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청합니다.(8)
그러자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이 바로
하나님을 가장 제대로 보여주는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가르침과 표적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11))
즉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계시므로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10)
심지어 이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 가고 난 뒤부터는
제자들이 그 일을 할 것이라는 엄청난 사실까지 말씀하십니다.(12)
그때는 이미 제자들이 주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대로 살 정도로(15)
하나님의 영께서 오셔서 제자들 안에서 일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16-17)
그러므로 제자들이 하는 기도 또한 성령의 인도에 따른 기도요,
예수이름, 즉 예수님 뜻대로 구하는 기도이므로
그 기도를 일으키신 우리 안의 주님께서 그 기도를 다 이루실 것입니다.(13-14)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성령강림절기 첫 주일 성서일과 말씀들 안에서
바람처럼 일하시는 하나님의 신바람이 느껴집니다.
4본문 구석구석, 시편의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의 숨결과 손길이 닿은 창조세계를 선한 길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그 탐욕의 끝을 아시기에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짓는 사람들을 흩으십니다.
그때 말의 소통을 막으셨던 하나님께서
사도행전본문에서는 말을 통하게 하십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바벨탑 사람들만큼이나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길이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오셔서 일하셨다는 놀라운 사실을!(요14:10)
더구나 부활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제자들 안에서 당신의 그 일을 계속 할 것이라는 사실을!(요14:12)
“주님은 친히 행하신 일로 기뻐하신다”(시편 104:31)
주님께서 교회를 통해 일하십니다.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신 이유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두려움의 뿌리인 탐욕을 꺾고 주님의 평화를 세우려 하십니다.(요14:27)
주님께서 기뻐하실 그 일을 아무도 막아서는 안 됩니다.
지금 교회 안팎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전혀 올 것 같지 않은 그날,
그러나 그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나, 그리고 우리 사회가 다시 창조될 그날!
“주님께서 주님의 영을 불어넣으시면, 그들이 다시 창조됩니다. 주님께서는 땅의 모습을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시편104:30)
[나머지]
* 바벨탑과 빌립 사이에서
구약 본문의 바벨탑은 마천루(摩天樓; 고층건물)를 연상케 합니다. 마천루의 마(摩)는 어루만진다는 뜻입니다. ‘하늘을 어루만질 만큼 높은 다락집(건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건 ‘하늘이 어루만지는 산’이라는 뜻의 천마산(天摩山)과 반대입니다. 그래서 마천루라는 이름이 은근히 불경스럽던 차에, 바벨탑에서는 아주 노골적인 불경(不敬)이 느껴집니다. 하늘에 대한 경외심이 아니라 호기심 내지는 강한 과시욕이 느껴져서 더 그렇습니다. 경외심이 없었던 까닭은 바벨의 사람들이 하늘의 뜻에 무지했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에서 빌립이 예수님께 매우 당돌한 요구를 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좋겠습니다.” 문득 바벨탑의 불경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빌립의 요구는 바벨탑의 불경과는 달리 순수한 갈망이었습니다. 바로 앞(6-7절) 예수님 말씀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이제 너희는 내 아버지를 알고 있으며, 그분을 이미 보았다." 그럼에도 빌립의 요구 안에 바벨탑과 닮은 게 하나 있다면, 하늘 뜻(주님)에 대한 무지입니다. (요한 14: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 바벨탑과 현대기술 사이에서
세상의 과학기술이 한없이 발전하여 하늘을 찌를 듯이 발전하는 모습에서 오늘 우리는 다시 바벨탑을 느낍니다. 그렇게 발전한 세상, 스마트 기술의 극대화로 세상 언어의 장벽이 다 허물어질 세상은 또 다시 바벨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예감은 기우일까요? 바벨의 교훈은 이것입니다. 하늘을 찌를 듯한 토목기술의 발달, 과학기술의 발달, 그것으로는 결코 ‘흩어져야 진정한 하나 됨을 이루는 천국’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최대의 랜드마크였던 바벨탑사건에서, 우리는 소통의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하늘 뜻에 어두워져갈 수밖에 없는 이 반비례의 역사를 기억하면서, 우리는 더욱 겸허하게 하늘의 뜻을 살피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할 것이다.
*** 환골탈태(換骨奪胎)
오늘 본문들 안에는 궁금증이 가득합니다. 창세기는 세상이 탑 쌓는 일을 하나님이 궁금해 하시고 (또는 하늘이 궁금하여 사람들이 탑을 쌓고) 사도행전은 듣도 보도 못한 언어기적을 예루살렘 사람들이 궁금해 합니다. 복음서는 예수님말씀을(7) 들은 빌립이 하나님아버지를 궁금해 합니다.(8) 오늘 시편은 이 모든 궁금증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영을 불어넣으시면, 그들이 다시 창조됩니다. 주님께서는 땅의 모습을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 주님의 영광은 영원하여라. 주님은 친히 행하신 일로 기뻐하신다.”(시편 104:30-31) 세상에 탐욕이 차오르고 창조질서가 흐려질수록 창조주 하나님 기억이 희미해지고 생명의 기운이 희미해집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주님의 영을 불어넣으시고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
환골탈태(換骨奪胎)! 뼈대를 바꾸어 끼고 태를 바꾸어 쓴다는 이 말이 어찌 감히 주님의 재창조 과정을 다 담을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가던 길 멈추고 방향을 바꾸는 회개의 길조차 버거운 이 세대이겠습니까. 그러니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어둡고 어지러운 무질서한 우리에게 진리의 영이 임하시면 환골탈태 이상의 감당키 어려운 고통과 일시적인 혼돈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혼돈은 영에 속한 사람으로 변해가는 생명의 과정이니 무늬만 제자라도 우리는 참고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진리의 영으로 오셔서(요 14:17) 상상도 못한 <창조와 구원의 일>(창조질서를 회복하는 일)을 하십니다.(12) 바로 이 작고 작은 우리를 통해서 말입니다. 그 일은 그분이 하시니, 우리가 할 일은 이것뿐입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나는 주님을 노래할 것이다. 숨을 거두는 그 때까지 나의 하나님께 노래할 것이다.”(시 104:33)
**** 진리가 우리 안에서 환하게 되살아나
오늘 4본문은 무언가 목구멍까지 꽉 찬 마지막 때에 주님(영)이 내려오시는 장면으로 가득합니다. 주님이 내리시면 세상은 역전됩니다. 한 언어로 하나로 뭉치던 세력이 흩어지고(창세기) 각 언어로 흩어진 사람들이 한 언어로 통합니다.(사도행전) 죽었던 피조물이 다시 창조되어 땅이 새로워지고(시편) 웅크린 제자들이 능력의 종이 됩니다. 오리무중(五里霧中)이던 제자들이 진리로 환해집니다.(요한복음)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도 시커먼 무언가가 목구멍까지 꽉 찼습니다. 공평과 정의는 간 곳 없고, 각계각층이 부정부패하고 불의합니다. 생명보다 돈, 민주보다 권력이 먼저인 정권과 기업의 오만이 하늘을 찌릅니다. 문제는 이런 정권을 표로 심판하고 이런 기업을 불매로 심판해야 할 우리들입니다. 세상 껍데기들이 불타버리고 그 민낯이 다 드러났어도 바뀌지 않는 우리의 고집이 문제입니다. 마지막 징조를 흘려버리고, 이 마지막 기회를 놓쳐버리는 우리들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경험이 다르고 정보가 달라서 좋아하는 정당이 갈릴 수는 있다 해도 내가 좋아하는 정당, 정권의 상한 민낯이 드러났을 때는 상한 곳을 가리지 말고 드러내어 치료해야 합니다. (중략)
마지막 때가 차오를수록, 그러나 우리는 희망을 봅니다. 주님께서 내려오셔서 손수 갈아엎으시고 그래서 생명의 질서를 잡으시고, 공평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우리를 다시 지으시고 땅의 모습을 다시 새롭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지금 성령의 계절에 우리의 참스승께서 목숨 바쳐 가르쳐주신 진리가 우리 안에 환하게 되살아나길 빕니다. 부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주님의 몸 교회가 건강하게 다시 서서 씩씩하게 걸음마 배우던 초심을 회복하길 빕니다.
(※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내 사랑 (이소현 지음. 성실교회 고등부. 「성실문화」 111호)
내 사랑을 너는 알아채지 못하는구나
내 사랑을 너는 알아주지 않는구나
사실은 언제나 너의 곁에 있었는데
사실은 언제나 너의 안에 있었는데
너는 이미 이 사랑을 알고 있으니
그 의심이 믿음으로 바뀔 때까지
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릴 테다
[말씀시조] 새 술에 취한 듯이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11호)
새 술에 취한 듯이 방언으로 하는 이 말
여러분 구원 위한 하나님의 큰 역사라
성령을 부어주시니 터져 나온 그 말씀
[시편노래] 시편 104, 주님 손수 만드신 것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성실문화」 111호)
[본문] (시편 104:24-34, 35b)
[노랫말]
1. 주님 손수 만드신 것 어찌 이리 많습니까, 지혜로운 주의 솜씨 어찌 이리 크십니까
주님이 지으신 것 온 땅에 가득하고, 물고기와 리워야단 온 바다를 노닙니다
2. 주님 손만 바라보는 온 세상 모든 생명, 주님 손의 먹을거리 만족스레 먹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얼굴을 숨기시면, 온 생명은 두려워서 어쩔 줄 모릅니다
3. 호흡을 거두시면 흙으로 돌아가고, 주님의 숨 불어넣어 온 땅이 새로나니
새로워진 땅의 모습 주님께서 기뻐하고, 빛나는 주의 영광 영원무궁 찬란하리
4. 주님 눈길 닿으시면 온 땅이 진동하고, 손길만 스치셔도 온 산이 타오르네
내 숨이 다하도록 주님을 노래하리, 할렐루야 내 노래가 주님을 기뻐하리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인 전일교회 홍의종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04 (주님 손수 만드신 것 어찌 이리 많습니까)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104:24-34, 35b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11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에 맞추어)
24.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25. 거기에는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는 생물 곧 크고 작은 동물들이 무수하니이다
26. 그 곳에는 배들이 다니며 주께서 지으신 리워야단이 그 속에서 노나이다
27. 이--것--들--은--, 다-- 주께서 때를- 따라-,
먹-을 것을-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바라나이다-)∼
28. 주께서 주신즉 그들이 받으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그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29.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30.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31.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
32. 그가 땅을 보신즉 땅이 진동하며 산들을 만지신즉 연기가 나는도다
33.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34. 나-의 기도를 기쁘-게--,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다함께]
35...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말씀동화] 하얀 개와 검은 돼지의 노래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제주 올레길에서 구름사진 찍던 시절 이야기예요.
눈보다 하얀 개 스피츠 한 마리가 제주도 올레길을 걷고 있었어요.
느릿느릿 길을 가던 하얀 개는 숯처럼 검은 돼지 한 마리를 만났어요.
“저리가. 난 검은 거 싫어.”
돼지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하얀 개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내가 얼마나 귀한 돼진데.”
돼지는 길가에 있는 돌하르방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어요.
“우리 동네 돌하르방도 검잖아. 검은 건 깊고 깊은 참 귀한 빛깔이라고.”
옥신각신하던 하얀 개와 검은 돼지가
싸우다 정이 들어서 점점 친해졌어요.
하얀 개와 검은 돼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다정해질 무렵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개와 돼지가 노는 모습을 보고 한마디씩 했어요.
“개랑 돼지가 같이 노네.”
“하얀 개랑 검은 돼지라니.”
“저 녀석들 값 좀 나가겠는걸.”
“똥돼지 맛있겠다.”
“그래봐야 개돼지야.”
관광객들의 수다가 점점 더 밉살맞아 가자
검은 돼지가 관광객들을 쏘아보며 외쳤어요.
“겉모습만 보고 이러쿵저러쿵 하지 마시지!”
관광객들 가운데 한 사람이 이죽거리며 중얼거렸어요.
“똥돼지가 우리보고 뭐라뭐라 꿀꿀거리네.”
돼지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관광객들이 한바탕 깔깔 웃고
그중 하나가 동료들을 바라보며 개구쟁이 눈빛으로 말했어요.
“왜 ‘개돼지, 개돼지’ 그러는 줄 알아?”
“먹는 거밖에 모르니까 그러지.”
“먹고사는 게 힘들어서 시민의식이고 뭐고 다 팽개친 사람들을 못된 권력자들이 개돼지라 부르지.”
“개돼지는 막장인생들이야. 열두 동물 띠 가운데서도 제일 끄트머리잖아. 개띠 돼지띠가.”
이번엔 하얀 개까지 울화통이 터졌으나 꾹 눌러 참았어요.
하얀 개는 검은 돼지가 마치 멧돼지처럼 관광객들에게 돌진하려는 걸 간신히 말리고 나서
하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늘님, 하늘님께서 주시는 먹을거리를 우습게 아는 저 사람들 어쩌면 좋죠?”
그러고 나서 하얀 개가 하늘을 우러르며 노래합니다.
“이 모든 피조물이 주님만 바라보며, 때를 따라서 먹이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먹이를 주시면, 그들은 받아먹고, 주님께서 손을 펴 먹을 것을 주시면 그들은 만족해합니다.”(시편104:27-28)
관광객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얀 개를 바라보았어요.
“제주 개들은 늑대 사촌인가? 늑대처럼 우네.”
하얀 개의 대단한 노래에 눈이 휘둥그레진 검은 돼지가 말했어요.
“이런 좋은 노래를 어디서 배웠어? 이 노래를 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하얀 개의 노래와 검은 돼지의 간절한 마음을 내려다보시던 하늘님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어요.
“어쩌다 한번 사람들이 개돼지들의 노래를 알아들을 필요도 있겠구나.”
그때 갑자기 동쪽하늘에서 양떼구름이 몰려왔어요.
양떼 하나하나가 거문고처럼 가야금처럼 피아노처럼 모양이 변하더니
이번엔 서쪽하늘에서 새털구름이 가느다란 콩나물처럼 몰려와서
나래를 단 구름콩나물들이 개와 돼지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죠.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검은 돼지가 하얀 개를 따라 부르는 그 노랫소리가
관광객들의 귀에 들리기 시작한 거예요.
넋이 나간 관광객들이 하나하나 중얼거리기 시작했어요.
“개돼지들이 노래를 하네? 먹을거리가 저렇게 고귀한 거라니!”
“내 귀에만 들리는 게 아니었어? 이게 어찌된 일이지?”
“보통 개돼지들이 아니야. 저건 신령한 개돼지야.”
“개돼지를 홀대하는 게 아니었어. 거룩하신 하늘님이 먹이시니 모두가 거룩한 거였어.”
“약자를 차별하고 업신여기는 건 참 부끄러운 짓이야!”
어둑어둑하던 관광객들의 눈빛이 점점 맑고 밝아졌어요.
새털구름 양떼구름 너머로 하늘님의 미소가 밝게 빛나고
하얀 개를 따라 부르는 검은 돼지의 노래는 점점 멋들어집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영을 불어넣으시면, 그들이 다시 창조됩니다. 주님께서는 땅의 모습을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 주님의 영광은 영원하여라. 주님은 친히 행하신 일로 기뻐하신다.”(시편104:30-31)
[이정훈 지음. 2022년 6월 4일 토요일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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