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덩실덩실
[성서일과 4본문]
(예레 4:11-12, 22-28)
11. 그 때가 오면, 이 백성과 예루살렘이 이런 말을 들을 것이다. "소용돌이치는 열풍이 사막에서 불어온다! 나의 딸 나의 백성이 사는 곳으로 불어온다. 이 바람은 곡식을 키질하라고 부는 바람도 아니고, 알곡을 가려내라고 부는 바람도 아니다.
12. 그것보다 훨씬 더 거센 바람이 나 주의 명을 따라 불어 닥칠 것이다." 백성에게 심판을 선언하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시다.
22. "나의 백성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그들은 나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모두 어리석은 자식들이요, 전혀 깨달을 줄 모르는 자식들이다. 악한 일을 하는 데에는 슬기로우면서도, 좋은 일을 할 줄 모른다."
23. 땅을 바라보니, 온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 하늘에도 빛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24. 산들을 바라보니, 모든 산이 진동하고, 모든 언덕이 요동한다.
25.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 하나 없으며, 하늘을 나는 새도 모두 날아가고 없다.
26. 둘러보니, 옥토마다 황무지가 되고, 이 땅의 모든 성읍이 주님 앞에서, 주님의 진노 앞에서, 허물어졌다.
27.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온 땅을 황폐하게는 하여도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겠다.
28. 이 일 때문에 온 땅이 애곡하고, 하늘이 어두워질 것이다. 나 주가 말하였으니, 마음을 바꾸지 않고, 취소하지 않겠다."
(시편 14)
1.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없다" 하는구나. 그들은 한결같이 썩어서 더러우니, 바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2.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사람을 굽어보시면서,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지를, 살펴보신다.
3. 너희 모두는 다른 길로 빗나가서 하나같이 썩었으니,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한 자냐? 그들이 밥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나 주를 부르지 않는구나.
5. 하나님이 의인의 편이시니, 행악자가 크게 두려워한다.
6. 행악자는 가난한 사람의 계획을 늘 좌절시키지만, 주님은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신다.
7. 하나님, 시온에서 나오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그들의 땅으로 되돌려 보내실 때에, 야곱은 기뻐하고, 이스라엘은 즐거워할 것이다.
(딤전 1:12-17)
12. 나는 나에게 능력을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나를 신실하게 여기셔서, 나에게 이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은 내가 믿지 않을 때에 알지 못하고 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14. 우리 주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넘치게 부어 주셔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믿음과 사랑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15.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이 말씀은 믿음직하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말씀입니다. 나는 죄인의 우두머리입니다.
1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 뜻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끝없이 참아 주심의 한 사례를 먼저 나에게서 드러내 보이심으로써, 앞으로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본보기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17. 영원하신 왕, 곧 없어지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누가 15:1-10)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에게 가까이 몰려들었다.
2.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투덜거리며 말하였다.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구나."
3.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 다니지 않겠느냐?
5. 찾으면, 기뻐하며 자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돌아와서, 벗과 이웃 사람을 불러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더 기뻐할 것이다."
8. "어떤 여자에게 드라크마 열 닢이 있는데, 그가 그 가운데서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온 집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겠느냐?
9. 그래서 찾으면, 벗과 이웃 사람을 불러모으고 말하기를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드라크마를 찾았습니다' 할 것이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노트]
이번 성서일과 4본문을 비교하며 읽다보니, 구약과 시편의 주인공은 ‘어리석은 자’입니다.(예레 4:22, 시편 14:1)
그리고 서신서와 복음서의 주인공은 “죄인”입니다.(딤전 1:15, 누가 15:1,2,7,10)
구약에서는 ‘어리석은 자’를 용서하지 않으시려는 하나님 마음이,
신약에서는 ‘죄인’을 용서하시려는 하나님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번 주는 어리석은 자와 죄인을 중심으로 묵상했습니다.
[구약과 시편]
렘 4:12절에 “심판”이라는 단어가 눈에 띕니다.
특히 구약본문의 마지막 절, 렘 4:28b를 묵상하며 이런저런 생각이 듭니다.
“... 나 주가 말하였으니, 마음을 바꾸지 않고, 취소하지 않겠다.”(예레 4:28b)
앞에서 계속 말씀하신, ‘열풍’, ‘거센 바람’, ‘혼돈’, ‘공허’, ‘어두움’, ‘진동’, ‘요동’, ‘황무지’, ‘허물어짐’, ‘황폐’...
“그 때가 오면”, 이런 심판 계획을 반드시 이루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하나님의 비장하고 무자비한 결단 속에서, 그래도 자비심이 느껴지는 것은, 바로 지난 주 본문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18장에서 ‘토기장이’를 통해 보여주신 (회개하면 뜻을 돌이키시리라는) 하나님의 속마음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18장 보다 훨씬 앞선 4장 말씀이라 다시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그리고 다시 28절의 하나님 마음-결의(決意)는 27절 말씀에 대한 다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무리지만 해봅니다.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온 땅을 황폐하게는 하여도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겠다.”(예레 4:27)
시편에도 첫 절부터 “어리석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바로 뒤 2절에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가만히 보니, 어리석은 사람이란, “하나님이 없다”는 사람이고(시편 14:1),
지혜로운 사람이란, “하나님을 찾는 사람”입니다.(시편 14:2)
성경은 우리를 크게 두 종류의 사람으로 구분합니다.
바로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 기준은 공부를 많이 하고 못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기억력”이 기준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말씀기억력”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는 자를 가리켜 어리석은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머리로, 몸으로 기억하는 자를 가리켜 지혜로운 자라고 합니다.
그 약속의 말씀, 즉 ‘말씀기억력’을 흐리게 만드는 것이 바로 악한 마귀입니다.
악마는, 우리가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않고 양다리 걸치게 하거나, 아예 우상(돈)을 향해 질주하게 합니다.
물론, ‘말씀기억력’은 머리로만 기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말씀기억은 3단계입니다.
머리, 몸(생활), 나아가 공동체로 기억하는 단계까지 있습니다.
첫 사람 하와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머리로는 기억했으나 몸으로 기억하지 못하고 나아가 공동체로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어기면 우리가 죽는다고 하셨다.”(창세 3:3)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창세 3:6)
은총으로 시작해서 죄로 끝나는 첫 사람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그것으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줄기차게 ‘말씀기억력’을 회복시키시려 애쓰십니다.
오직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게 하십니다.
그걸 위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사람들을 부르시고 다시 언약(말씀)을 주십니다.
영적치매에 가까운 우리를 위해 ‘말씀기억력’을 강화하는 이런저런 표지도 주십니다.
기억하마시며 공간에도 표지를 남기시고(무지개), 흐르는 시간에도 표지를 새기십니다(절기).
몸에도 표지를 새기게 하시고(할례), 늘 입고 다니는 옷술 색깔까지 이용해서 표지를 주십니다.(민수 15:39)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그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대대손손 옷자락 끝에 술을 만들어야 하고, 그 옷자락 술에는 청색 끈을 달아야 한다. 너희는 이 술을 볼 수 있게 달도록 하여라. 그래야만 너희는 주의 모든 명령을 기억하고, 그것들을 실천할 것이다. 그래야만 너희는, 마음 내키는 대로 따라가거나 너희 눈에 좋은 대로 따라가지 아니할 것이고, 스스로 색욕에 빠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나의 모든 명령을 기억하고 실천할 것이며,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될 것이다...” (민수 15:38-40)
그리고 마침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영의 양식을 차리신 예배마당을 베푸십니다.
문자화된 말씀(성경)과 육화된 말씀(성찬)을 먹음으로써 말씀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기원하게 하는 예배!
말씀을 기억하고 결심하고 결행하게 하는 예배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에 대한 이야기 시작하다가 너무 많이 나갔네요...
[서신서와 복음서]
오늘 서신서 본문에는 ‘죄인의 우두머리’가 나옵니다.
바울은 어리석음의 극치를 달리다가 지혜로운 자가 된 사람입니다.
말씀의 알맹이를 기억하지 못하고 껍데기만 붙들고 악착같이 살아온 사람이었죠.
그런 그가 하나님 은혜로(딤전 1:14), 그분의 자비하심으로(딤전 1:13, 16) 예수를 알게 되고 믿게 된 것입니다.(16절)
오늘 복음서 본문은 그 유명한 ‘잃은 양’과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 말씀입니다.
이 비유 말씀을 들려주신 동기는, “죄인”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투덜거리는 바리새, 율법학자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비유의 알맹이 역시, “죄인”을 가까이 하시려 애쓰시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누가 15:7, 10)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할 때 하나님이, ‘하늘 가족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아십니까, 여러분?
그래서 이번 주 말씀노래 제목은 ‘하늘이 덩실덩실’로 지었습니다.
1.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좋아서 / 예수님의 음성이 너무좋아서
세리들 죄인들이 몰려듭니다 / 온세상 죄인들이 몰려옵니다
2. 예수님의 인기가 너무 샘나서 / 바리새인 율법학자 투덜댑니다
죄인들을 영접하면 아니됩니다 / 죄인이랑 밥먹으면 큰일납니다
3. 잃은양 한 마리를 찾는거란다 / 잃어버린 은전을 찾는거란다
회개하는 한죄인이 너무좋아서 / 하늘이 덩실덩실 춤을추노라
[말씀동화] 숨바꼭질의 절대고수를 만났어요!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소현이가 한바탕 소리 지르더니 언니 오빠들을 찾아 나섭니다.
오늘은 공장골 수도원 막내 소현이가 술래네요.
수도원 아이들은 숨바꼭질 놀이를 좋아합니다.
가파른 산에 지은 수도원이지만, 아이들은 마치 산양(山羊)처럼 팔짝팔짝 잘도 뛰어다닙니다.
집 안에서 할 때는 이불장 안에도 들어갑니다.
한 여름에 옷장 안에 들어가 겨울옷 잔뜩 뒤집어쓰고 한참동안 땀을 흘리는 것도 예사입니다.
수도원 도서실에 들어가 책더미를 뒤집어쓰고 책 상자 안에 숨었다가 수사님들께 혼나기도 했죠.
그래도 숨바꼭질은 마당에서 해야 집 먼지도 안 먹고 건강해집니다.
처음에 집안에서 숨바꼭질 할 때는, 꼭꼭 숨었다가 술래에게 머리카락만 보여도 끝났습니다.
그런데 마당에서 놀면서부터는 술래의 손이 닿을 때까지 도망다닐 수 있게 되었죠.
그렇게 숨이 턱에 차도록 달아나다가 뒤따라온 술래의 손끝이 닿기만 하면 순식간에 죄수가 됩니다.
죄수는 옥에 갇혀 벌을 받는 법이죠.
감옥은 술래가 출발한 마당입니다.
술래에게 잡혀서 죄수가 된 아이들은 스스로 감옥에 가서 술래가 내린 벌을 받죠.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합니다.
무릎 꿇고 팔굽혀펴기를 할 때도 있고, 놀이 끝날 때까지 엉덩이로 이름쓰기도 합니다.
오늘도 죄수가 여럿 잡혀 왔네요.
비록 막내지만, 수도원 숨바꼭질계를 평정한 절대고수 우리 소현이는 원덕초등학교 달리기 선수거든요.
진구오빠도 잡혀와서 끙끙대며 팔굽혀펴기하고 있고 영훈이 오빠는 엉덩이로 이름쓰기를 하는군요.
바로 그때, 언제 나타났는지 선구가 와서 술래들을 뱅뱅 돌며 큰소리로 옹달샘 노래를 부르네요.
“예수님은 옹달샘, 시원하고 맛있지,
먹고먹고 먹어도, 포롱포롱 퐁퐁퐁,
욕심쟁이 혼자서, 배터지게 먹어도,
예쁜아이 여럿이 나누어서 먹어도,
예수님의 옹달샘 포롱포롱 퐁퐁퐁∼♬”
옹달샘 노래를 부르면서 감옥에 갇힌 죄수들 주위를 일곱 바퀴만 돌면 순식간에 해방이 됩니다.
마치 여리고성이 무너지듯이 감옥문이 와르르 무너지는 수도원 식 숨바꼭질이라네요?
금세 감옥이 텅텅 비어버렸습니다.
애써 붙잡은 죄수들이 해방되어 버린 겁니다.
그래도 소현이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아직 희망이 남아 있기 때문이죠.
오늘의 희망은 영원이 언닙니다.
왜냐하면 영원이 언니가 오늘의 보물이거든요.
놀이 시작할 때 보물로 정해진 사람은 도망가지 않고 꽁꽁 숨어만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술래가 보물만 발견하면 놀이는 끝납니다.
보물만 찾으면 술래는 해방되고, 그뿐만 아니라 신나는 상도 받습니다.
오늘의 상은, 맛있는 간식시간에 언니오빠들보다 두 배나 많이 먹는 상입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보일라, 보일라, 보일라∼”
오케이 보일러실! 소현이의 예리한 눈매가 순간 별빛처럼 빛납니다.
쏜살같이 마당을 가로질러 돌계단을 뛰어오릅니다.
숨을 헉헉거리면서 라일락, 모과나무, 고욤나무를 지나 보일러실로 달려갑니다.
드디어 문을 활짝 엽니다.
‘어라, 여기도 없네? 여기가 마지막 남은 곳이었는데, 그럼 도대체 어디 숨은 거람?’
소현이의 빛나던 눈빛이 시무룩해집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더니, 천하의 절대고수도 실수가 있는 법이죠.
그리고 큰소리로 외칩니다.
“못찾겠다 꾀꼬리∼♬”
그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산에서 꾀꼬리 울음소리가 납니다.
그러고 보니 9월 중순에도 아직 꾀꼬리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우리 뒷동산을 지키고 있었네요.
보통 4월 말에서 5월 초 사이에 꾀꼬리는 우리 마을을 찾습니다.
아이들은 꾀꼬리가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지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꾀꼬리는 보통 여럿이 주고받으며 지저귑니다.
소현이의 노래에 응답하듯이 영원이가 외칩니다.
“수고했다 이소현∼♬”
예상 밖으로 영원이는 숲속 아름드리 밤나무 뒤에 숨어 있었군요.
벌레를 싫어하는 영원이 언니가 모기에게 물리면서도 숲속에 꽁꽁 숨어있었다니!
역시 보물은 다르구나!
생밤을 까먹으면서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영원이에게서 보물의 포스가 환하게 뿜어나옵니다.
바로 그 때 수도원지기 어깨춤 아저씨가 아이들을 부릅니다.
“얘들아∼, 맛있는 간식 먹자∼”
아이들은 너도나도 좋아라고 달려갑니다.
황토방 지붕위에 있는 둥근마당으로 달려갑니다.
“오늘 메뉴는 맛있는 버섯튀김이다.”
순간, 아이들 표정이 일제히 찌그러집니다.
왜냐하면 어깨춤 아저씨의 유별나고 지나친 버섯사랑 때문입니다.
시장에서 사오는 안전한 버섯이 아니라 산에서 직접 따오는 야생버섯이라 왠지 불안불안 합니다.
“저, 아저씨 오늘은 간식 안 먹으면 안 될까요?”
영원이가 께름칙한 표정으로 입을 열자마자 소현이도 미간(眉間)을 찡그리며 쫑알거립니다.
“이게 뭐람, 보물도 못 찾고, 오늘 간식도 완전 꽈당이네!”
그러자 어깨춤 아저씨가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열심히 아이들을 타이릅니다.
“얘들아 이 버섯은 절대 안심해도 좋아. 한여름에 채취한 참나무 버섯이거든. 아주 맛있어. 나도 먹어보았고, 우리 수사님들은 서로 먹으려고 해도 없어서 못 드셔요. 내가 특별히 너희들 주려고 한 달 가까이 냉동실에 감추어두었던 거야.”
튀김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선구가 얼른 먹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너도나도 달려듭니다.
오랜만에 버섯튀김을 맛있게 먹습니다.
영지버섯 차(茶)도 시원하게 곁들입니다.
어깨춤 아저씨는 수사가 되기 위해 수도원에 들어왔어요.
정식 수사가 되려면 여러 해 동안 '수도원지기'를 하며 수련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어깨춤 아저씨는 성경읽는 시간과 수도원 구석구석 수리하는 시간 외에는 늘 산에 오릅니다.
산에 가서 산나물도 하고 버섯도 하고 약초도 캡니다.
그런데 버섯을 좋아하는 어깨춤 아저씨가 작년 여름에 참나무 개암버섯을 잔뜩 해왔죠.
그러나 아무도 안 먹자 끓는 물에 버섯을 데쳐서 혼자서 잔뜩 먹고는 큰 고생을 했습니다.
속이 매슥거리고 얼굴이 뻣뻣해지고 며칠 동안이나 어질어질 했습니다.
식용버섯이지만 야생버섯은 독 기운이 조금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겁니다.
들기름에 오래 담가두었다가 고기기름에 달달 볶아야 독기운이 사라지는 걸 몰랐던 것입니다.
그 뒤로 수사님들은 어깨춤 아저씨가 해오는 버섯은 절대 안 먹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깨춤 아저씨가 산삼 두 뿌리를 캐오자 비로소 어깨춤 아저씨의 영지버섯도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한 겁니다.
8월부터 9월까지는 영지버섯 철입니다.
8, 9월만 되면 어깨춤 아저씨는 어깨춤이 절로 나오고,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원래 어깨춤 아저씨는 어렸을 때부터 보물찾기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하네요.
지금도 어깨춤 아저씨는 길눈도 어둡고 눈썰미도 없습니다.
초등학교 소풍의 하이라이트 보물찾기에서 단 한 번도 보물을 찾은 적이 없었습니다.
아마 그게 한이 맺혀서 지금 온 산을 뒤지면서 영지버섯 찾기에 푹 빠진 건 아닐까요?
지금은 수도원 성경공부 시간입니다.
프란치스코 수사님이 오늘 복음말씀 누가복음 15:1-10절 말씀을 독경하십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으려고 애쓰는 목자 이야기입니다.
이어서 시편 14편 노래를 합창합니다.
특히 2절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사람을 굽어보시면서,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지를, 살펴보신다...”
나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립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을 하나님이 찾으시네? 사람은 하나님을 찾아 헤매고, 하나님은 또 그 사람 찾아 헤매시는 건가? 서로가 서로를 찾으려고 숨바꼭질 하는 건가? 그럼 둘 다 술래네?”
나리 이야기를 들으면서, 숨바꼭질의 달인들, 수도원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거립니다.
그 때 갑자기 어깨춤 아저씨도 눈빛을 반짝이며 또 엉뚱한 버섯타령을 시작합니다.
“난 산에 버섯 찾아다닐 때마다 꽁꽁 숨어있는 버섯만 골라서 환히 보여주는 안경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 많이 했어요. 그 안경만 쓰면 영지버섯 냄새가 형광 빛으로 변해보여서 금세 찾을 수 있게 하는 그런 스마트 안경! 스티브 잡스가 왜 그런 안경은 못 만들었을까요?”
바로 그 때 잠자코 듣고만 있던 혜원이가 입을 열었어요.
“어깨춤 아저씨는 영지버섯 찾으러 다니실 때 늘 보물찾기 하는 기분이시겠네요?”
“그럼 딱 그런 기분이지. 머리통만큼 커다란 영지버섯 다발을 한꺼번에 여러 송이 발견할 때는, 아휴 하루 종일 땀 흘리며 온 산을 헤맨 고생이 그냥 눈 녹듯이 사라져버린단다.”
“그럼 오늘 복음서에 나오는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마음도 보물찾기나 영지버섯 찾기 하는 마음 같은 걸까요? 예수님 말씀이, 목자가 그 잃은 양을 찾으면 굉장히 기뻐한다고 하시잖아요?”
그러자 곰곰이 듣고 계시던 프란치스코 수사님이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어요.
“혜원이가 좋은 얘기 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마음은 보물찾기하는 아이들이나, 영지버섯, 산삼을 찾아다니는 산사람들 마음하고 비슷한 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크단다. 목자에게 잃은 양은 보물처럼 귀하다는 점에서 보물찾기와 비슷하겠지? 그런데 조금만 더 곰곰이 생각해 보렴. 보물이나 영지버섯, 그리고 산삼은 원래 내 것이 아니었겠지? 내 것도 아닌 것을 찾아 헤매다가 발견했을 때 기쁨은, 마치 아이들이 엄마아빠께 선물 받는 것처럼 신나는 마음일거야. 내가 땀 흘려 농사지은 것도 아닌 산삼을 발견했을 때 기쁨처럼 말이야. 그런데 잃은 양을 찾아 헤매는 목자의 마음은 그것들과 많이 다르단다. 잃은 양은 원래 목자의 것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건, 잃은 양이 지금 매우 위험에 처해 있다는 긴박감이야. 어서 찾아내지 않는다면, 잃은 양은 배가 고파 굶주리고, 여기저기 다치고, 심지어 사나운 산짐승에게 잡아먹힐지도 모르지. 아마 그 녀석은 혼자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무리를 이탈한 호기심 많은 철부지 어린양이었던 게 분명해. 그러니 목자의 마음이 지금 얼마나 조급하겠니? 다른 양 99마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지경이겠지? 오늘 예수님 말씀을 보렴. 그 목자는 99마리를 들에 둔 채, 그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다닌다고 하셨어. 적당히 포기하는 법이 없이 끝까지 찾아다닌다는 거야. 세상 어느 술래가, 세상 어느 심마니가 보물을 찾아, 산삼을 찾아 그렇게까지 애쓸 수 있을까? 그리고 자, 그 목자가 마침내 그 잃은 양을 찾았을 때 기분이 어떠할까? 그 기쁨이 얼마만 할까? 집채만 한 산삼을 발견했어도 그 심마니 기쁨이 그 목자만 할까? 아마 그 기쁨은 잃은 자식을 찾은 엄마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복잡하고 위험한 길에서 아이를 잃었다가 며칠 만에 찾은 엄마, 추운 겨울 산에서 어린 아기를 잃었다가 며칠 만에 찾은 엄마의 마음과 가장 비슷할 거야. 기진맥진해서 거의 얼어 죽어가던 아기를 찾아내어 품에 안고 몸을 녹이고 젖을 먹여 살려냈을 때 그 엄마의 기쁨 말이다.”
“...찾으면 기뻐하며 자기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서, 벗과 이웃 사람을 불러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하고 말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더 기뻐할 것이다.”(누가 15:5-7)
“얘들아, 내가 비록 지금 수도원 원장이지만, 아직도 가끔 내 마음은 길을 잃곤 한단다. 그 때마다 갑자기 내 마음은 불안해지고 무서워지지. 그러나 바로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나는 다시 내 마음을 이런 식으로 다스리곤 한단다. - ‘그래, 맞아! 지금 잠시 길 잃은 내 마음을 주님께서 찾고 계실거야! 틀림없어! 더 엉뚱한 길로 빠지지 말고 어서 주님께 돌아가자. 지금 주님이 나를 찾으시면 야단치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뻐하실 게 분명해! 머리카락 보이지 않으려고 꼭꼭 숨지 말고, 어서 나를 찾으시도록 날 보여드리자. 옷도 더러워져서 냄새도 나고 부끄럽지만 어서 보여드리자!’”
프란치스코 수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오늘의 술래였던 소현이는 생각했어요.
‘숨어 있던 아이들을 찾으면 나는 감옥에 가두고 벌을 주는 재미가 있었는데, 하나님은 다르시네? 오히려 상을 주시려나? 죄인이 회개하면 저렇게까지 기뻐하시다니?’
나리가 또 얘기하기 시작하네요?
“냄새나는 더러운 옷을 입었어도 숨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해. 하나님이랑 하는 숨바꼭질은 꼭꼭 숨는 숨바꼭질이 아니라, 서로 술래가 되어서 서로 빨리 찾게 해주는 숨바꼭질이니까! 하나님을 만나면 아무리 냄새나는 더러운 옷도 향기로운 새 옷으로 금세 갈아입혀 주실거야.”
나리의 얼굴이 환해집니다.
소현이의 얼굴도 환해집니다.
어깨춤 아저씨의 얼굴도 환해집니다.
숨바꼭질 놀이를 사랑하는 모든 수도원 아이들의 얼굴이 환해집니다.
숨바꼭질의 절대 고수를 만난 수도원 아이들의 마음이 점점 뜨거워집니다.
[이정훈 지음, 2013년 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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