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찾는 사람”(시편 14:2)
[성서일과 4본문]
(사무엘기하 11:1-15) 다윗과 밧세바
1 그 다음 해 봄에, 왕들이 출전하는 때가 되자, 다윗은 요압에게 자기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의 군인들을 맡겨서 출전시켰다. 그들은 암몬 사람을 무찌르고, 랍바를 포위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
2 어느 날 저녁에, 다윗은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 왕궁의 옥상에 올라가서 거닐었다. 그 때에 그는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옥상에서 내려다보았다. 그 여인은 아주 아름다웠다.
3 다윗은 신하를 보내서,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하였다. 다녀온 신하가, 그 여인은 엘리암의 딸로서,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라고 하였다.
4 그런데도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서 그 여인을 데려왔다. 밧세바가 다윗에게로 오니, 다윗은 그 여인과 정을 통하였다. (그 여인은 마침 부정한 몸을 깨끗하게 씻고 난 다음이었다.) 그런 다음에 밧세바는 다시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
5 얼마 뒤에 그 여인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서, 자기가 임신하였다는 사실을 알렸다.
6 다윗이 그 소식을 듣고는, 요압에게 전갈을 보내서, 헷 사람 우리야를 왕궁으로 보내게 하였다. 요압이 우리야를 다윗에게 보내니,
7 우리야가 다윗에게로 왔다. 다윗은 요압의 안부와 군인들의 안부를 묻고, 싸움터의 형편도 물었다.
8 그런 다음에 다윗은 우리야에게 말하였다. “이제 그대의 집으로 내려가서 목욕을 하고 쉬어라.” 우리야가 어전에서 물러가니, 왕은 먹을 것을 함께 딸려서 보냈다.
9 그러나 우리야는 자기 상전의 종들과 함께 대궐 문간에 누워서 자고, 자기 집으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10 다윗은 우리야가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원정길에서 돌아왔는데, 왜 집으로 내려가지 않는지를, 우리야에게 물었다.
11 우리야가 다윗에게 대답하였다.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모두 장막을 치고 지내며, 저의 상관이신 요압 장군과 임금님의 모든 신하가 벌판에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저만 홀로 집으로 돌아가서, 먹고 마시고, 나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할 수가 있겠습니까? 임금님이 확실히 살아 계심과, 또 임금님의 생명을 걸고 맹세합니다. 그런 일은 제가 하지 않겠습니다.”
12 다윗이 우리야에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오늘은 날도 저물었으니, 여기에서 지내도록 하여라. 그러나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겠다.” 그리하여 우리야는 그 날 밤을 예루살렘에서 묵었다. 그 다음날,
13 다윗이 그를 불러다가, 자기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였다. 그러나 저녁때에 그는 여전히 왕의 신하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고, 자기 집으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14 다음날 아침에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야의 편에 보냈다.
15 다윗은 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너희는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치열한 전선으로 앞세우고 나아갔다가, 너희만 그의 뒤로 물러나서, 그가 맞아서 죽게 하여라.”
(시편 14) 아무도 주님을 무시하지 못한다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다윗의 노래]
1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없다” 하는구나. 그들은 한결같이 썩어서 더러우니, 바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2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사람을 굽어보시면서,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지를, 살펴보신다.
3 너희 모두는 다른 길로 빗나가서 하나같이 썩었으니,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한 자냐? 그들이 밥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나 주를 부르지 않는구나.
5 하나님이 의인의 편이시니, 행악자가 크게 두려워한다.
6 행악자는 가난한 사람의 계획을 늘 좌절시키지만, 주님은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신다.
7 하나님, 시온에서 나오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그들의 땅으로 되돌려 보내실 때에, 야곱은 기뻐하고, 이스라엘은 즐거워할 것이다.
(에베소서 3:14-21)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라
14 그러므로 나는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빕니다.
15 아버지께서는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붙여 주신 분이십니다.
16 아버지께서 그분의 영광의 풍성하심을 따라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여 주시고,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속에 머물러 계시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18 모든 성도와 함께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고,
19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여러분이 충만하여지기를 바랍니다.
20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는 능력을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게 주실 수 있는 분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요한복음 6:1-21) 오천 명을 먹이시다
1 그 뒤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니
2 큰 무리가 예수를 따라갔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가 병자들을 고치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서, 제자들과 함께 앉으셨다.
4 마침 유대 사람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 때였다.
5 예수께서 눈을 들어서,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모여드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어디에서 빵을 사다가,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6 예수께서는 빌립을 시험해 보시고자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하실 일을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7 빌립이 예수께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 사람들에게 모두 조금씩이라도 먹게 하려면, 빵 이백 데나리온어치를 가지고서도 충분하지 못합니다.”
8 제자 가운데 하나이며 시몬 베드로와 형제간인 안드레가 예수께 말하였다.
9 “여기에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앉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 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이 앉았는데, 남자의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앉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시고, 물고기도 그와 같이 해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뒤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은 부스러기를 다 모으고, 조금도 버리지 말아라.”
13 그래서 보리빵 다섯 덩이에서,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참으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그 예언자이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와서 억지로 자기를 모셔다가 왕으로 삼으려고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예수께서 물 위를 걸으시다)
16 날이 저물었을 때에, 예수의 제자들은 바다로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갔다. 이미 어두워졌는데도, 예수께서는 아직 그들이 있는 곳으로 오시지 않았다.
18 그런데 큰 바람이 불고, 물결이 사나워졌다.
19 제자들이 배를 저어서, 십여 리쯤 갔을 때였다. 그들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배에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무서워하였다.
20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21 그래서 그들은 기꺼이 예수를 배 안으로 모셔들였다.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주님과 나 사이의 간격’입니다.
구약, ‘우리야가 다윗에게 대답하였다. “언약궤와...”’(사무엘기하 11:11)
시편,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없다”하는구나’(시편 14:1)
서신서,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속에 머물러 계시게”(에베소서 3:17)
복음서,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배에 가까이 오시는...”(요한복음 6:19)
오늘 요절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지를, 살펴보신다”입니다.(시편 14:2)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사무엘기하 11:1-15, 시편 14)]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다윗이 간음하고 살인하다’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던 다윗이 한순간 탐욕에 사로잡힙니다.
때마침 주님이 멀리 떠나신 것일까요? 아니면
탐욕에 눈 어두워서 함께 계시는 주님을 잊은 것일까요?
밧세바를 범한 뒤에, 죄가 죄를 불러들이는 악이 소용돌이칩니다.
이때 우리야의 발언은(11), 특히 언약궤를 언급한 것은(비교; 삼하7:2)
마치 다윗을 깨우쳐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예언자의 말씀 같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러한 충신을 죽입니다.(11, 23:39)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악인의 어리석음’입니다.
행악자의 어리석음이란, 머리가 나쁜 것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어두워서 하나님이 멀리 계신다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우리에게 무관심하시다고 생각하는 그것입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자들이 언제나 어디서나 어찌나 많은지,
쌍둥이처럼 거의 똑같은 시가 53편에 반복됩니다.
오늘 구약본문의 다윗이 뼈아픈 자기 어리석음을 회개하며 지은 시처럼 보일만큼
이 시의 어리석은 행악자에게서 주님을 잊은 오늘 다윗의 모습이 겹쳐 보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에베소서 3:14-21, 요한복음 6:1-21)]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라’입니다.
옥중에서(3:1) 바울이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바울의 기도는 추상적이지 않고 매우 생생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하나님이 만유를 지으셨을 뿐 아니라
하나하나 그 이름을 붙여주실 만큼(15)
사랑하며 관심하고 가까이 관계하시는 분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가장 생생한 증거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사랑(18),
“지식을 초월하는” 그 사랑은(19)
온갖 영지주의의 미혹조차 무색하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오천 명을 먹이시고 바다 위를 걸으시다’입니다.
앞으로 4주간 계속 이어질 예수님의 <생명의 빵> 설교의 서막과 배경이 될
<오병이어>의 표적이, 때마침 유월절 가까운 때여서(4)
출애굽 40년 광야 <만나>의 기억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간격을 한껏 좁혀줍니다.
이어지는 바다 위를 걷는 사건 또한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의 간격을 물리적, 영적으로 좁히시려는 주님의 마음을
급하고도 강력하게 보여줍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다윗은 지난주 구약본문에서 예언자 나단에게
<아직도 휘장 안에 있는 언약궤>를 언급했습니다.(삼하7:2)
그런데 오늘 충신 우리야가 다윗에게 바로 그 언약궤,
<아직도 휘장 안에 있는 언약궤>를 언급합니다.(삼하11:11)
그럼에도 신기할 정도로 다윗은 하나님을 못 느낍니다.
마치 무엇에 마비된 사람처럼!
만약 그때 그 순간 다윗이
우리야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느꼈다면,
얼른 회개하고 그 죄악은 증폭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아무리 많은 말씀을 읽고 있어도
지금 아무리 많은 찬양을 부르고 있어도
그게 가짜일 수 있는 것일까요?
찬양을 해도, 말씀을 읽어도, 예배를 해도,
지금 하나님을, 주님의 임재하심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말입니다.
천하의 다윗이 저럴 지경이니
혹시 나도 무늬만 예배이고, 무늬만 하나님 영광이 아닌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피고 또 살피며
나와 주님의 간격을 좁힐 수 있는 길을 찾을 일입니다.
큰 바람 사나운 물결에(요6:18) 흔들리는 제자들의 배처럼,
지금 코로나19 비대면 시대라는 큰 바람에 한바탕 흔들리는 한국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렬하게 주님을 찾을 때입니다.
주님께서 지금도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지를” 살펴보십니다.(시편14:2)
그리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우리를 발견하시고
주님께서는 바다 위를 걸으실 만큼,
최대한 빨리 최단거리로 달려오실 것입니다.
[나머지]
*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요한복음 6:20)
출애굽 백성, 배고픈 광야 백성에게 만나를 내리신 하나님께서 오늘은 오병이어를 배불리 먹이십니다.(요한 6:12) 그 많은 이들이 원하는 대로 먹게 하신 것입니다.(11) 흠뻑 먹여주신 것입니다! 온 세상 탐욕과 전쟁의 원인인 <죽음의 공포>, 그 첫 번째 공포인 굶주림의 공포를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풀어주신 것입니다. 흠뻑 그 사랑을 먹음으로 그 사랑을 심장에, 혀끝에 새겨주신 것입니다. 어두운 밤바다의 큰 바람과 풍랑 또한 죽음의 공포였습니다.(18) 이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풀어주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열두 제자가 흠뻑 먹은 그 사랑 임마누엘! 오늘 서신서본문의 사도바울도 역시 그 사랑을 흠뻑 먹은 제자입니다. 내가 맛본 임마누엘 그 크신 사랑,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에베 3:19),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게 주실 수 있는” 그분께서(20) 내 제자들도 맛볼 수 있게, 흠뻑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하시기를, 오늘도 바울은 엎드려 빕니다.(14) 그런데 오늘 구약본문의 다윗이 자꾸만 마음에 걸립니다. 성령께서 도우심으로 임마누엘을 늘 기억하며 살던 천하의 다윗이 한순간 임마누엘 치매 환자가 되어버린 것인가? 마치 부활신앙의 최정상에서 사는 것처럼 설교하는 교회 지도자들이 전혀 부활을 전혀 믿지 않는 사람처럼 사는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부활은커녕, 천국은커녕, 탐욕스런 지옥도를 그리며 사는 모습 말입니다. 우리야의 마지막 한마디가 다윗의 등골을 서늘하게 합니다. 아니 우리 한국교회의 뼈마디마디에 서리가 돋게 합니다. “...임금님의 생명을 걸고 맹세합니다. 그런 일은 제가 하지 않겠습니다.”(삼하 11:11) 오늘 다윗을 생각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또다시 무릎 꿇고 주님의 은총을 비는 일입니다. 내 작은 임마누엘 신앙을 순식간에 무너뜨릴 탐욕, 탐욕이 틈타지 못하도록 내가 너무 가난하게도 마시고, 너무 아프게도 마시고, 너무 외롭게도 마시기를 엎드려 빌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도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요한복음 6:20)
**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시는 주님
오늘 우리에게는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특히 작은 것, 약한 것을 소중히 여기시는 주님 사랑을 낱낱이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첫 제자였으나 핵심 제자그룹(베드로, 야고보, 요한)에서는 늘 빠져 있던 안드레! 그 안드레가 아주 작은 믿음으로 오병이어 어린이를 소개합니다. 거의 불신에 가까운 말도 합니다. “...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안드레의 그 작은 기대, 보일락 말락 한 저 작은 기대조차 믿음으로 받아들이신 게 아닐까요? 이 또한 작은이들의 보일 듯 말 듯 작은 믿음과 작은 헌신을 크게 쓰시는,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또한 지금 풍랑만난 작은 배와도 같은 우리를 향해 가장 빠른 지름길로 달려오시는 그 사랑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우리 주님의 사랑입니다.
1절) 사랑이 차곡차곡 쌓이게되면, 신비하고 놀라운 꽃이핀단다
사랑하나 사랑둘 쌓이게되면, 세송이가 아니라 열두송이라
2절) 보리떡 다섯개랑 생선두마리, 일곱송이 아니라 열두송이라
예수님 사랑의손 놀라운손맛, 온세상 다시없을 놀라운식탁
3절) 제자들이 배타고 십리를가니, 어둔밤 거센풍랑 너무무서워
예수님 제자사랑 쌓이고쌓여, 물위로 달려가는 놀라운사랑
[말씀노래 ‘사랑이 차곡차곡’ (이정훈 지음)]
*** 다윗과 헤롯
오늘 다윗의 모습은 지지난 주 복음서 본문의 헤롯왕과 같습니다. 욕정과 탐욕이 큰 죄로 발전합니다. 예언자를 죽인 일입니다. 헤롯은 세례자 요한을, 다윗은 우리야를 죽입니다. 제 눈에는 오늘 다윗이 헤롯보다 더 참혹하게 예언자 우리야를 죽였습니다.
**** 이런 더러운 사건을 담은 성경이 부끄러워요(?)
오늘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죽이는 과정은 매우 더럽고 부끄러운 내용입니다. 가뜩이나 세상 사람들로부터 교회가 손가락질 받는 이 시대에 이런 내용은, 거룩한 성경말씀에서 정말 감추고 싶습니다. 그런데 본회퍼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서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았던 불세출의 기독교 윤리학자 본회퍼! 그가 성경말씀에 대해 남긴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른말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하고 착한 이야기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를 변화시키고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의 말씀이다.”
(* 전에 올린 것을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기적 (김민서 지음. 세움교회 고등부. 「성실문화」 107호)
나는 믿지
예수님의 기적을
나는 알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모든 것이
예수님의 기적인 것을
나는 믿지
내 앞에 어떤 일이 닥쳐와도
예수님의 손길이 도우신다고
나는 알지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세상 끝까지 함께 하신다는 걸
[말씀시조] 사랑 속에 뿌리박고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07호)
사랑 속에 뿌리박고 터를 잡은 너희 모두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 사랑 배워
하나님 온갖 충만함 너희 안에 채우길
[말씀서예] 에베소서 3:19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 107호)
[시편노래] 시편 14, 어리석은 사람은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성실문화」 107호)
[본문] (시편 14)
[노랫말]
1.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없다고 우기는구나
한결같이 썩어서 더러운 자들, 바른 일 하는 사람 하나 없구나
2. 주님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시며, 지혜로운 사람 있나 살펴보시나
하나 같이 빗나가고 썩어빠져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 하나 없구나
3. 내 백성을 삼키는 악한 자들아, 내 이름을 모르는 무지한 자야
의인의 편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가난한 자 하나님이 보호하신다
4. 하나님 이스라엘 구원하소서, 시온에서 나오시어 구해주소서
주의 백성 고향으로 보내주실 때, 야곱이 덩실덩실 춤을 추리라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전일교회 홍의종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4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속으로)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14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07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5.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6.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7.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다함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말씀동화] 한우리가 맛있게 먹은 붕어빵 한 마리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붕어빵 구우려고 팥을 삶던 시절 이야기예요.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두 아이가 앉아서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고 있어요.
“형은 이 더운 날 배낭 메고 어디 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덩치가 큰 아이가 대답합니다.
“올림픽 경기하러 가. 난 레슬링 선수거든”
작은아이 눈이 보름달만큼 휘둥그레졌어요.
“이번 올림픽 아주 위험하다던데, 안 가면 안 돼?”
순해빠진 큰 아이가 시무룩해지며 대답을 못하자
작은아이가 얼른 종알거려요.
“무시무시한 코로나랑 방사능까지 뒤섞여서 되게 위험하다던데, 거기!”
얼굴이 동그란 작은아이의 낯빛도 시무룩 어두워지고
순둥이처럼 생긴 큰 아이가 고개를 들고 말합니다.
“원래 우리 동네대표가 따로 있는데, 그 형이 나더러 대신 나가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참 안타깝고 한심하였어요.
유두(流頭)날 개울가에서 머리감는 순둥이의 여자 친구를 보고 반한
그 동네대표 형이 흑심을 품은 거였어요.
세상에 이런 일이!
답답해 답답해 덩치만 큰 순둥이가 하도 답답해서
동글동글 작은아이가 다다다다 계속 뭐라 뭐라 합니다.
그러자 순둥이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당황한 작은아이가 얼른 다른 질문을 해요.
“형 여자 친구는 뭐라는데?”
눈물을 삼키며 하늘만 바라보던 순둥이가 더듬더듬 입을 엽니다.
“얼굴도 못보고 왔어. 도저히 못 보겠더라. 지켜주지도 못하고.”
갑자기 작은아이의 머리꼭지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나기 시작하네.
“도대체 그게 말이 돼? 나 같으면 친구들이랑 몰려가서 그 못된 동네 형 번쩍 들어서 던져버리겠다.”
순둥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해요.
“그럴 수는 없어. 우린 하나니까. 우리 모두를 위해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작은아이가 얼른 대답합니다.
“아니 그럼, 형 여자 친구는 우리 아닌가? 여자 친구랑 의리는 없는 건가? 아휴 답답해. 혹시 형 이름 고구마 아니야? 왕고구마?”
따박따박 작은아이의 바른 말에 순둥이가 할 말이 없나 봐요.
순둥이가 할 말을 잃고 다시 고개를 푸수수 숙이자
작은아이가 얼른 다른 걸 물어요.
“그나저나 형 이름 뭐야?”
“내 이름은 우리야, 한우리. 우리 모두 함께 다투지 말고 잘 살라고 부모님께서 지어주셨지.”
측은한 마음과 답답한 마음,
짠한 마음으로 순둥이를 바라보던 작은아이가
문득 도시락을 꺼냅니다.
“우리 형, 우리 이거 나눠먹자.”
작은아이는 도시락에 고이 담긴 붕어빵 일곱 개 중에서
조심조심 두 개를 꺼내어 하나씩 나눠먹습니다.
“정성껏 구워주신 우리 엄마표 건강 붕어빵이야.”
너무 맛있어서 더 먹고 싶었지만 왠지 동그란 작은아이는
빵 다섯 개는 꼭 남겨둬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순둥이 한우리가 작은아이와 헤어지면서 물었어요.
“네 이름은 뭐니? 그리고 맛있는 붕어빵 도시락 가지고 어디 가는 길이야?”
작은아이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합니다.
“오늘 내 이름은 붕어빵이야. 원래 이름은 호빵맨이고. 한우리 형 건강하게 잘 다녀와요.”
동그란 붕어빵이 동그란 선그라스를 끼고 빙그레 웃고
커다란 순둥이 한우리도 마주보며 밝게 손을 흔듭니다.
고소하고 달콤한 엄마표 붕어빵 맛이 마음에 오래 남아 있습니다.
[이정훈 지음. 2021년 7월 24일 토요일 아침]
(※호빵맨 노회찬 3주기에 우리야와 호빵맨을 어울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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