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위기에서
[성서일과 4본문]
(이사 5:1-7)
1.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노래를 해 주겠네. 그가 가꾸는 포도원을 노래하겠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기름진 언덕에서 포도원을 가꾸고 있네.
2.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고, 아주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네. 그 한가운데 망대를 세우고, 거기에 포도주 짜는 곳도 파 놓고,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는데, 열린 것이라고는 들포도뿐이었다네.
3. 예루살렘 주민아, 유다 사람들아, 이제 너희는 나와 나의 포도원 사이에서 한 번 판단하여 보아라.
4. 내가 나의 포도원을 가꾸면서 빠뜨린 것이 무엇이냐? 내가 하지 않은 일이라도 있느냐? 나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는데 어찌하여 들포도가 열렸느냐?
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무슨 일을 하려는지를 너희에게 말하겠다. 울타리를 걷어치워서, 그 밭을 못쓰게 만들고, 담을 허물어서 아무나 그 밭을 짓밟게 하겠다.
6. 내가 그 밭을 황무지로 만들겠다. 가지치기도 못하게 하고 북주기도 못하게 하여, 찔레나무와 가시나무만 자라나게 하겠다. 내가 또한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겠다."
7. 이스라엘은 만군의 주님의 포도원이고, 유다 백성은 주님께서 심으신 포도나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선한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보이는 것은 살육뿐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옳은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들리는 것은 그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울부짖음뿐이다.
(시편 80:1-2, 8-19)
1. 아, 이스라엘의 목자이신 주님, 요셉을 양 떼처럼 인도하시는 주님,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그룹 위에 앉으신 주님, 빛으로 나타나 주십시오.
2.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앞에서 주님의 능력을 떨쳐 주십시오. 우리를 도우러 와 주십시오.
8. 주님께서는 이집트에서 포도나무 한 그루를 뽑아 오셔서, 뭇 나라를 몰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습니다.
9. 땅을 가꾸시고 그 나무의 뿌리를 내리게 하시더니, 그 나무가 온 땅을 채웠습니다.
10. 산들이 그 포도나무 그늘에 덮이고, 울창한 백향목도 그 가지로 뒤덮였습니다.
11. 그 가지는 지중해에까지 뻗고, 새 순은 유프라테스 강에까지 뻗었습니다.
12. 그런데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그 울타리를 부수시고 길을 지나가는 사람마다 그 열매를 따먹게 하십니까?
13. 멧돼지들이 숲에서 나와서 마구 먹고, 들짐승들이 그것을 먹어 치우게 하십니까?
14. 만군의 하나님, 우리에게 돌아오십시오. 하늘에서 내려다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보살펴 주십시오.
15. 주님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이 줄기와 주님께서 몸소 굳세게 키우신 햇가지를 보살펴 주십시오.
16. 주님의 포도나무는 불타고 꺾이고 있습니다. 주님의 분노로 그들은 멸망해 갑니다.
17. 주님의 오른쪽에 있는 사람, 주님께서 몸소 굳게 잡아 주신 인자 위에, 주님의 손을 얹어 주십시오.
18. 그리하면 우리가 주님을 떠나지 않을 것이니,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십시오.
19. 만군의 하나님,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시오. 우리가 구원을 받도록,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나타내어 주십시오.
(히브 11:29-12:2)
11:29 믿음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홍해를 마른 땅을 지나가듯이 건넜습니다. 그러나 이집트 사람들은 그렇게 해보다가 빠져 죽었습니다.
30. 믿음으로 이레 동안 여리고 성을 돌았더니,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31. 믿음으로 창녀 라합은 정탐꾼들을 호의로 영접해 주어서,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망하지 아니하였습니다.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그리고 예언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정복하고, 정의를 실천하고, 약속된 것을 받고, 사자의 입을 막고,
34. 불의 위력을 꺾고, 칼날을 피하고, 약한 데서 강해지고, 전쟁에서 용맹을 떨치고, 외국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35. 믿음으로 여자들은 죽었다가 부활한 가족을 다시 맞이하였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더 좋은 부활의 삶을 얻고자 하여, 구태여 놓여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을 받기도 하고, 채찍으로 맞기도 하고, 심지어는 결박을 당하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면서 시련을 겪었습니다.
37. 또 그들은 돌로 맞기도 하고, 톱질을 당하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을 당하며, 고난을 겪으며, 학대를 받으면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았습니다.
38.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다녔습니다.
39.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아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판은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40.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계획을 미리 세워두셔서,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성에 이르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12:1 그러므로 이렇게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갖가지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
2.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누가 12:49-56)
49. "나는 세상에다가 불을 지르러 왔다.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바랄 것이 무엇이 더 있겠느냐?
50. 그러나 나는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그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괴로움을 당할는지 모른다.
51.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렇지 않다. 도리어,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 한 집안에서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서, 셋이 둘에게 맞서고, 둘이 셋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맞서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맞서고, 어머니가 딸에게 맞서고, 딸이 어머니에게 맞서고,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맞서고,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서, 서로 갈라질 것이다."
54. 예수께서 무리에게도 말씀하셨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소나기가 오겠다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그런데 그대로 된다.
55. 또 남풍이 불면, 날이 덥겠다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그대로 된다.
56.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왜, 이 때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성서일과 4본문 묵상 노트]
오늘 성서일과 4본문의 공통주제는 ‘임박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임박한 심판’입니다.
좀 더 쉽고 편안하게 이렇게 표현해봅니다, ‘인생의 위기(危機)에서!’
[구약과 시편]
오늘 구약과 시편은 유대나라의 위기에 대한 예언과 노래입니다.
오늘 구약과 시편은 서로 깊이 통합니다.
사 5:2절의 “아주 좋은 포도나무”와 시 80:8절의 “포도나무 한 그루”가 통하고, 사 5:5절의 “울타리를 걷어치워서”와 시 80:12절의 “울타리를 부수시고”가 통합니다.
그리고 사 5:5절 끝의 “아무나 그 밭을 짓밟게 하겠다”와, 시 80:13절의 “멧돼지들이 숲에서 나와서 마구 먹고...”도 서로 통합니다.
포도원(이스라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공들여 심고 가꾸신 포도나무가(유대 백성들이) 불신(不信)과 불순종으로 결국 들포도밖에 안 되어(변질되어) 포도원을 포기하고 버리시는 모습이 그렇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자식에게 사랑과 정성을 다해 젖을 먹여 키웠더니 도저히 내 자식이라 할 수 없는 자식으로 자랐습니다.
그러니 그 어머니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생김새도 성격도 어디 하나 닮은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기를 낳고 길러주신 하나님만 의지하지 않고 다른 것 의지한 결과입니다.
그 결과 유대백성들은 하나님의 법과 정 반대의 길을 갑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뜻을 “아주 좋은 포도나무”(2절)∼“선한일”, “옳은 일”(7절), (즉 선행, 정의, 자비)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불순종의 길을 “들포도”(2절, 4절)∼“살육”, “울부짖음”(7절) (즉, 범죄, 불의, 무자비)로 묘사합니다.
시편 80:1절은 하나님의 두 가지 모습을 묘사합니다.
앞부분은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목자의 모습, 뒷부분은 지성소 법궤 위 시은좌(施恩座)에 앉아 죄를 사하시는 구원자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1절 끝부분은 “그룹 위에 앉으신 주님 빛으로 나타나 주십시오.”라고 노래합니다.
이는 본문 마지막 19절b에서 “우리가 구원을 받도록,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나타내어 주십시오.”와 통합니다.
불신(不信)과 불순종의 대가로 버려진 민족, 망가진 민족에게 한 번 더 기회를 달라는 애원입니다.
제아무리 하나님을 잊고 지내는 인생이라도, 우상에 찌든 인생이라도, 마지막 심판 앞에서, 인생의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서는 그분을 기억하고 매달리는 법입니다.
오늘 시편의 끝 절(19절)은, 자연스럽게 서신서로 이어집니다.
[서신서와 복음서]
시편본문의 대강인 민족적 위기상황은 오늘 서신서 본문의 첫 절로 이어집니다.
서신서 첫절인, 히브리서 11:29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너는 그 역사적인 대목입니다.
이어지는 모든 내용들이 유대민족의 위기상황, 역사의 고비마다 등장했던 수많은 믿음의 사건들과 인물들입니다.
반복하는 말이지만, 우리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잊을 때마다 우리 인생은 위기를 맞게 되고, 그 위기 덕분에 다시 하나님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그분을 생생하게 기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분, 보이지 않는 그분의 나라를 바라보며(직시하며) 그분을 향해, 그분 나라를 향해, 그분의 뜻을 따라 한걸음 내딛는 행동입니다.[백척간두(百尺竿頭) 진일보(進一步)]
그래서 믿음 없는 세상, 눈에 보이는 것만 아는 물질만능의 세상은 이런 믿음의 행동을 어리석다고들 합니다.
시편기자가 마지막 19절에서 노래한,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나타내어 주십시오”는, 오늘 히브리서 본문의 마지막 절(12:2)의 “예수를 바라봅시다”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그야말로 ‘믿음’의 상징입니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12:2)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가리켜,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그 예수께서 인생의 마지막에 보이지 않는 그 나라를 바라보신 것입니다.
사랑덩어리이신 예수님은 바로 ‘믿음 덩어리’셨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은 시작부터 강렬합니다.
“나는 세상에다가 불을 지르러 왔다...”
독일성서공회판 성경해설을 보면, ‘불은 구약 성경의 그림언어에서 종밀시에 하나님 백성을 정결케 하고 새롭게 하는 수단이며(슥 13:9, 말 3:2-3),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하나님말씀의 심판하는 힘에 대한 표상(렘 5:14, 23:29)’이라고 설명합니다.
불은 고난과 분열, 그리고 나아가 심판의 고통입니다.
물론 그 심판은 구원의 과정입니다.
오늘 구약과 시편본문의 주제는 유대민족의 위기와 심판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 본문의 주제는 온 인류의 임박한 위기와 심판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우리 예수님께서, 그것을 어서 느끼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던 길 멈추고 속히 돌아서라고 외치십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왜, 이 때는 분간하지 못하느냐?"(눅 12:56)
[나머지]
오늘 서신서 앞에 나오는,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는 대목이 이렇게 묘사되는 것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믿음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홍해를 마른 땅을 지나가듯이 건넜습니다.” (히 11:29a)
히브리서 11:23-29는 모세의 믿음에 대한 매우 비중 있는 묘사이며, 그 끝 절인 29절이 오늘 서신서 본문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모세의 믿음에 대한 설명과 해석의 연장이라 해도, 출 14:21에 의하면 홍해가 갈라지는 것은 장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일이므로 이미 마른 땅이 된 길을 따라 건넌 것을 가리켜 “믿음으로”라 붙인 것은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스라엘 전설은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가 가로막았을 때 모세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바다 위로 손을 내밀어 바닷물을 가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모세가 지팡이를 들었을 때 바다는 갈라지지 않았답니다. 애굽의 군대가 다가오는데 바다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 절박한 순간 낫손이라는 사람이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바닷물이 발목을 지나 무릎을 넘어 가슴과 어깨까지 차올랐습니다. 그래도 낫손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바닷물이 그의 콧구멍을 막으려는 순간에 바닷물이 갈라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한1서 5:4) / 『하늘양식』(2012년 12월 26일 수요일) ‘세상을 이기는 힘은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한희철목사)
[말씀동화]
말씀을 먹은 누에가 지어내는 명주실은 과연 무슨 빛깔일까?
우리 동네 동산 중턱에 둥그스름한 수도원이 하나 있습니다.
거기 가면 멋쟁이 안토니 수사님이 사시죠.
안토니 수사님은 원래 소리꾼이었어요.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음유시인!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시를 읊조리듯 하나님의 말씀을 노래하는 가수였어요.
어둡고 어지러운 세상에 밝고 맑은 노래를 부르는 예언자!
노래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신나는 예언자셨대요.
안토니 수사님이 소리꾼 시절 자주 부르시던 노래는 이사야 5장이랑 시편 80편이었대요.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노래를 해 주겠네. 그가 가꾸는 포도원을 노래하겠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기름진 언덕에서 포도원을 가꾸고 있네.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고, 아주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네. 그 한가운데 망대를 세우고, 거기에 포도주 짜는 곳도 파 놓고,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는데, 열린 것이라고는 들포도뿐이었다네.’ (이사 5:1, 2)
토실토실 탐스러운 포도원이 그만 꾀죄죄한 들포도 세상이 되어버렸네요?
에덴동산처럼 맑고 밝던 금수강산이 온통 4대강 녹조처럼 더러워졌어요.
맑고 밝은 하나님 마음을 등지고 어두컴컴하고 꾀죄죄한 돈돈 돼지 돈(豚), 돈주머니 우상만 바라보는 들포도 세상이 되어버린 거예요.
‘그런데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그 울타리를 부수시고 길을 지나가는 사람마다 그 열매를 따먹게 하십니까? 멧돼지들이 숲에서 나와서 마구 먹고, 들짐승들이 그것을 먹어 치우게 하십니까? 만군의 하나님, 우리에게 돌아오십시오. 하늘에서 내려다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보살펴 주십시오.’ (시편 80:12-14)
화가 잔뜩 나신 하나님이 더 이상 보호해주시지 않게 되었어요.
그러자 세상은 온통 강한 놈이 약한 자를 잡아먹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지옥이 되어버린 거죠.
성난 멧돼지 같은 돈돈 돼지 돈!
돈이 돈을 잡아먹는 돼지 돈 세상, 돈 귀신 세상이 되어버린 거예요.
“우리 함께 에덴동산 같았던 우리 금수강산을 회복합시다. 핵무기 뺨치는 원자력 발전소를 줄입시다. 좀 불편해도 전등불도 좋은 차도 줄입시다. 맛있는 거 먹는 것도 줄이고, 좋은 옷 사 입는 것도 줄입시다. 그래야 원자력발전소 줄어들고 금수강산이 회복됩니다∼♬”
아무리 예언자의 노래를 불러도 세상은 꿈쩍도 안했죠.
이미 돈맛에 찌든 사람들의 혀, 돈타령에 젖어버린 사람들의 귀에, 예언자의 노래가 들릴 리 없었어요.
그래서 낙심한 소리꾼, 상처 입은 예언자는 세상을 등지고 산에 들어가버린 거예요.
그렇게 하릴없이 양평 봉성리의 수도원 동산에 올라오게 된 거랍니다.
수도원에 들어오기 전까지 명창이셨던 안토니 수사님이 지금은 변신 중이세요.
명창(名唱) 대신 명장(名匠)이 되어가는 중이죠.
평소 존경하던 최동식 장로님으로부터 명주실을 꼬아 현악기 줄 만드는 법을 배우신 거예요.
최장로님은 비빔밥으로 유명한 전주에서 거문고를 만드는 인간문화재세요.
거문고의 굵은 줄 대현(大絃)은 자그마치 230가닥이나 되는 명주실을 수천 번 꼬아 만드는 거랍니다.
그런데 안토니 수사님이 질 좋은 현악기 줄 만드는 전문가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뭔지 아세요?
그건 바로 수도원 뒷동산이 뽕나무 산이었기 때문이죠.
동네 할아버지 한 분이 젊은 시절 산기슭에 잔뜩 심어놓은 뽕나무들이 온 산에 퍼지게 된 거예요.
질 좋고 싱싱한 뽕잎을 잔뜩 구할 수 있어서 신바람이 난 안토니 수사님은 아예 잠사(蠶舍, 누에 집)까지 지어 누에를 치기 시작했죠.
안토니 수사님은 명주실 수백가닥을 수천 번씩 엮으면서 늘 기도를 합니다.
‘이 명주실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가 되게 해주세요. 이 악기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돈 욕심, 고기 욕심에 찌든 세상 사람들 탁한 마음이 맑아지게 해주세요. 한 뼘 더 밝아지게 해주세요.’
그런데 우리 안토니 수사님이 요사이 또 한 가지 공들이시는 일이 생겼어요.
그건 바로 누에모임을 만드는 거랍니다.
누에모임이란 누에치는 어른들 모임이 아니라 어린아이들 모임이죠.
안토니 수사님이 처음 수도원에 올라왔을 때 ‘애벌레 회’라는 모임이 있었어요.
초등학생 여섯 명이 모여 성경말씀도 읽고 찬미도 하는 작디작은 모임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안토니 수사님이 새벽기도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한 말씀을 받은 뒤부터 애벌레 회를 ‘누에모임’으로 이름을 바꾼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신(神)이라고 하셨다. 또 성경은 폐하지 못한다. (요한 10:35)
이 말씀을 받은 뒤, 안토니 수사님은 애벌레 회 어린이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셨대요.
‘그렇지! 매주일 말씀을 받는 어린이들은 아무리 어려도 예언자로구나. 말씀[언(言)]을 맡은[예(預)] 사람[자(者)], 소중한 예언자(預言者)로구나!’
이렇게 해서 ‘애벌레 회’가 ‘누에모임’으로 바뀌게 된 거죠.
누에는 애벌레 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아주아주 커다랗고 늠름한 애벌레라죠?
그리고 누에는 뽕잎을 무척이나 많이 먹습니다.
새벽기도 중에 안토니 수사님에게 또 하나의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맞아! 우리 아이들은 뽕잎 식욕 왕성한 누에처럼 말씀 식욕이 왕성해! 그렇다면 당연히 누에처럼 누에고치를 지어 명주실을 자아낼 수 있겠구나!’
그래서 시작한 것이 ‘말씀동시’ 짓기와 ‘말씀동요’ 짓기입니다.
지금 우리 ‘누에모임’ 어린이들은 누구나 말씀동시를 짓는 ‘동시인(童詩人)’입니다.
말씀동요는, 어린이들이 지은 말씀동시에 소리꾼 출신이신 안토니 수사님이 곡을 붙입니다.
이번주일부터는 ‘말씀시조’도 짓기 시작했습니다.
초장, 중장, 종장 등, 시조 가운데서 가장 쉬운 평시조 형식으로 짓습니다.
먼저 안토니 수사님이 이번 주일 본문말씀인 누가복음 12:49-56절로 말씀시조를 지었습니다.
나 왔다 내가 왔다 불지르러 내가 왔다
온 세상 불놓으면 온갖우상 타버리련만
잿더미 돈다발 미련, 참미련쿠나 인생이여
그다음엔 누에모임 어린이들이 세 명씩 두 팀으로 나뉘어서 말씀시조 두 수를 짓습니다.
한명이 초장, 다른 아이가 중장, 나머지 아이가 종장을 지어 합치기도 합니다.
운율이 안 맞거나 내용이 어색하면 초장 중장 종장을 서로 바꿔치기 해가면서 다듬어갑니다.
이렇게 앞으로 몇 주 동안 완성될 시조 여러 수를 초장, 중장, 종장 각 장을 한 장씩 종이카드에 옮깁니다.
시조 열 수면 종이카드 서른 장이 나옵니다.
서른 장을 섞어서 흩어놓고 원래 시조를 초,중,종장 순서대로 맞추는 놀이인 가투(歌鬪)놀이도 합니다.
가투(歌鬪)놀이는 원래 조선시대에 선비들이 놀던 놀이라고 합니다.
최근 50년 전까지만 해도 가족들이 모여앉아 가투를 즐기는 집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화투(花鬪)놀이보다 훨씬 재미있고 품위 있는 유익한 놀이였습니다.
가투는 시조 수십 수를 외워야만 놀 수 있는 놀이입니다.
가투로 우리 누에모임 어린이들 모두가 말씀시조를 달달 외우게 만드는 안토니 수사님의 지혜가 놀랍습니다.
말씀동시, 말씀동요, 그리고 말씀시조와 가투놀이까지!
신바람 난 누에모임 어린이들은 더 부지런히 말씀을 먹습니다.
말씀욕심이 늘어나면 돈 욕심이 줄어듭니다.
말씀노래를 부를수록 돈 욕심이 줄어듭니다.
뽕잎 먹느라 여념이 없는 누에는 돈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법입니다.
누에가 뽕잎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듯이, 누에모임 어린이들은 말씀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랍니다.
누에가 아름다운 명주실을 자아내듯이, 누에모임 어린이들은 아름다운 말씀노래를 지어냅니다.
명주실이 현악기가 되어서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내듯이, 누에모임 어린이들은 말씀노래로 온 세상을 맑고 밝고 향기롭게 만들어 갑니다.
노래 예언자의 꿈을 접었던 안토니 수사님은 누에모임 말씀노래꾼들을 볼 때마다 행복합니다.
낙심을 희망으로, 위기를 일곱 배 기회로 바꿔주신 우리 하나님이 고맙기 짝이 없습니다.
말씀노래를 지을 때마다 누에들의 믿음이 자라납니다.
말씀노래를 부를 때마다 누에들은 하나님과 가까워집니다.
봉성리 수도원 누에모임 어린이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예언자들입니다.
[이정훈 지음, 2013년 8월 17일 토요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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