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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2013년 8월 11일, 성령강림절 13주(또는 성령강림 후 12주, 남북평화통일공동기도주일) 예배준비 노트

말씀으로 평화통일!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 1:1, 10-20)

1. 이것은,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다.

10. 너희 소돔의 통치자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여라.

11.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기가 지겹고, 나는 이제 수송아지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싫다.

12. 너희가 나의 앞에 보이러 오지만, 누가 너희에게 그것을 요구하였느냐? 나의 뜰만 밟을 뿐이다!

13. 다시는 헛된 제물을 가져 오지 말아라. 다 쓸모 없는 것들이다. 분향하는 것도 나에게는 역겹고, 초하루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으며, 거룩한 집회를 열어 놓고 못된 짓도 함께 하는 것을,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14. 나는 정말로 너희의 초하루 행사와 정한 절기들이 싫다. 그것들은 오히려 나에게 짐이 될 뿐이다. 그것들을 짊어지기에는 내가 너무 지쳤다.

15. 너희가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를 한다 하여도 나는 듣지 않겠다. 너희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다.

16. 너희는 씻어라. 스스로 정결하게 하여라. 내가 보는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려라. 악한 일을 그치고,

17.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

18.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오너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빛과 같다 하여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며, 진홍빛과 같이 붉어도 양털과 같이 희어질 것이다.

19. 너희가 기꺼이 하려는 마음으로 순종하면, 땅에서 나는 가장 좋은 소산을 먹을 것이다.

20. 그러나 너희가 거절하고 배반하면, 칼날이 너희를 삼킬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다.

 

(시편 50:1-8, 22-23)

1. 전능하신 분,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어, 해가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온 세상을 불러모으신다.

2. 더없이 아름다운 시온으로부터 하나님께서 눈부시게 나타나신다.

3. 우리 하나님은 오실 때에, 조용조용 오시지 않고, 삼키는 불길을 앞세우시고, 사방에서 무서운 돌풍을 일으키면서 오신다.

4. 당신의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위의 하늘과 아래의 땅을 증인으로 부르신다.

5. "나를 믿는 성도들을 나에게로 불러모아라. 희생제물로 나와 언약을 세운 사람들을 나에게로 불러모아라."

6. 하늘이 주님의 공의를 선포함은, 하나님, 그분만이 재판장이시기 때문이다. (셀라)

7. "내 백성아, 들어라. 내가 말한다. 이스라엘아, 내가 너희에게 경고하겠다. 나는 하나님, 너희의 하나님이다.

8. 나는 너희가 바친 제물을 두고 너희를 탓하지는 않는다. 너희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나에게 늘 번제를 바쳤다.

22. 하나님을 잊은 자들아, 이 모든 것을 깨달아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을 때에 구하여 줄 자가 없을까 두렵구나.

23.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 나에게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니, 올바른 길을 걷는 사람에게, 내가 나의 구원을 보여 주겠다."

 

(히브리서 11:1-3, 8-16)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2. 선조들은 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으로 증언되었습니다.

3.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나 있는 것에서 된 것이 아닙니다.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고, 장차 자기 몫으로 받을 땅을 향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했지만, 떠난 것입니다.

9. 믿음으로 그는, 약속하신 땅에서 타국에 몸 붙여 사는 나그네처럼 거류하였으며, 같은 약속을 함께 물려받을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장막에서 살았습니다.

10. 그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세우실 튼튼한 기초를 가진 도시를 바랐던 것입니다.

11. 믿음으로 사라는, 나이가 지나서 수태할 수 없는 몸이었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그가 약속하신 분을 신실하신 분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2. 그래서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한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과 같이 많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는, 많은 자손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13.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반겼으며, 땅에서는 길손과 나그네 신세임을 고백하였습니다.

14.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네가 고향을 찾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15. 그들이 만일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16. 그러나 사실은 그들은 더 좋은 곳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늘의 고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도시를 마련해 두셨습니다.

 

(누가복음 12:32-40)

32. 두려워하지 말아라. 적은 무리여, 너희 아버지께서 그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33. 너희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고, 하늘에다가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도둑이나 좀의 피해가 없다.

34.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놓고 있어라.

36. 마치 주인이 혼인 잔치에서 돌아와서 문을 두드릴 때에, 곧 열어 주려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되어라.

37. 주인이 와서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이 허리를 동이고, 그들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 와서 시중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나 새벽에 오더라도,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다.

39. 너희는 이것을 알아라. 집주인이 언제 도둑이 들지 알았더라면, 그는 도둑이 그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40.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인자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 예배준비 노트와 말씀동화는 성실문화 75호 예배마당(106-116쪽)에 실었던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실은 것입니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노트]

  2013년 성령강림 후 12주(남북평화통일공동기도주일) 성서일과 본문말씀을 반복해서 읽으며, 오래 전 기록된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의미를 묵상한다. 새로우면서도 한결같으신 하나님의 뜻을 되새기면서 2013년 남북평화통일공동기도주일 예배를 준비한다.

   

[4본문 전체에 감도는 느낌]

  * 성서일과 4본문을 묵상하는 동안, ‘남북평화통일공동기도주일’이라는 이름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본문말씀, 특히 구약과 시편 묵상 중에, 내 기도, 우리 기도, 우리 예배가 과연 제대로 되었는지 반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명실상부(名實相符)한 기도, 천지(天地)가 소통할 수 있는 예배가 되려면 먼저 무엇을 할 것인가?

 

** 형제를 죽인 가인처럼, 지금 내 손에 피가 가득하다고 하신다.(이사 1:15c), 여태 그 피 씻지 않고 산다고 나무라신다.(이사 1:16a)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신다.(이사 1:10), 그 말씀은 바로 정의(正義), 억울한 이 편들어주는 일이라고 말씀하신다.(이사 1:17)

 

*** 서신서와 복음서는 우리가 준비해야 할 제대로 된 기도, 바른 예배의 길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신다. 부단히 ‘하늘 고향’을 그리워하며(히 11:16) 믿음의 길을 가는 “나그네 신세”(히 11:13c) 라는 자각(自覺), 이것이 “믿음”의 길, 믿는 자의 길이다. 그런 나그네는 물욕(物慾)을 벗어버릴 수 있다.(누가 12:33∼34)

 

 

[구약과 시편 본문 (이사 1:1, 10-20, 시편 50:1-8, 22-23)]

 

말씀에 귀 닫고 하는 기도와 제물은 역겹다!

 

(이사 1:10) 너희 소돔의 통치자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여라.

(이사 1:15b)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를 한다 하여도 나는 듣지 않겠다.

 

⇒ (비교) (시 50:17) 너희는 내 교훈을 역겨워하고, 나의 말을 귓전으로 흘리고 말았다.

⇒ (참고) (잠언 28:9) 귀를 돌리고 율법을 듣지 않으면, 그의 기도마저도 역겹게 된다.

⇒ (공동번역) 귀를 막고 하느님의 법을 듣지 아니하면, 하느님은 그의 기도마저 역겨워하신다.

⇒ 말씀에 귀 닫고 하는 기도와 제물은 역겹다!

 

본문의 맥락에서, “말씀”은 “정의”를 가리킨다(17). 그리고 여기서 “정의”란 약해서 억울한 눈물 흘리는 이들을 편들어주는 일이다.(17) 그러므로 정의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주님을 아는 지식”)이고, 그 ‘하나님의 법’의 바르고 빠른 판결과 집행이다.

 

(참고) (이사 11: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 “주님을 아는 지식” (= 말씀 = 하나님의 법(法) = 정의) ⇒ 억울한 일 없게!! 바른 재판 필요(必要)!

 

 

  말씀(하나님의 法)으로 재판하신다!

 

그러고 보니 시편본문은 하나님을 공의로우신 “재판장”으로 묘사한다.(시편 50:4, 6)

제대로 판결을 내리시려고 천지(天地)를 증인으로 부르신다.(시편 50:4)

예배의 절기 주제 때문일까? 우리 손에 가득한 피(이사 15c)가 동족 간에 흘린 피를 가리키시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원수맺음, 복수심이 풀리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는 말씀이다. 그 상태로 예배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씀이다. 이 느낌으로 오늘 본문을 다시 본다.

 

⇒ 그 피를 씻으라고 하신다.(이사 1:16) : 제주 4.3, 육이오, 판문점 도끼만행, 아웅산 폭파, 칼기 폭파, 천안함, 연평도 포격,,, 정확한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도, 해결되지도 않은 상태로 점점 땅에 묻혀 잊혀가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동족상잔의 피, 아벨의 피를 결코 잊지 않고 계신다는 말씀이다.(창세 4:10)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너의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

 

오늘 우리에게 아벨은 누구인가? 법 없이도 살, 정치 없이도 살, 남북의 선한 백성들이 아닐까?

⇒ 하나님께서는 남과 북의 손에 묻어 있는 피를 어떻게 판결하시는가? : 피를 씻고 정결하게 하라. 그 첫 걸음으로, 악행을 멈춰라.(이사 1:16), 그리고 정의를 찾고, 배우고, 남북대결로 인해 피눈물 흘리는 남과 북의 약자들을 편들어주고 구체적으로 도와줘라.(이사 1:17)

 

시편은, 우리가 지금 예배를 준비함에 있어서, 내 경험, 내 확신, 내 신념에 머물지 말고, 다시 한 번 주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귀 기울일 것을 강력하게 명하신다.

“하나님을 잊은 자들아, 이 모든 것을 깨달아라.”(시편 50:22a)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물 바치기와 “올바른 길” 걷기로 요약한다.(시편 50:23), 형식적인 봉헌이 아니라 진심을 담은 봉헌, 감사하는 마음의 봉헌은 바로 형제와 화해하는 일이다.(마태 5:23∼24) 그게 바로 주님 보시기에 올바른 길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24.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새번역)

 

 

[서신서와 복음서 본문 (히브 11:1-3, 8-16, 누가 12:32-40)]

 

하늘 고향을 그리는 나그네, 깨어있는 종들이여! 너희 안에 천국이 이루어진다!

 

(히브 11:13)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반겼으며, 땅에서는 길손과 나그네 신세임을 고백하였습니다.

(히브 11:16a) 그러나 사실은 그들은 더 좋은 곳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늘의 고향입니다.

(누가 12:32) 두려워하지 말아라. 적은 무리여, 너희 아버지께서 그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 오늘 서신서와 복음서 본문의 알맹이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천향(天鄕), 즉 천국(하나님 나라)이다.

이것이 믿음의 길을 가는 이들의 꿈이다. 그래서 믿는 자, 예배하는 자들은 스스로를 나그네라 인식한다.(히브 11:13c) 나그네란 가벼운 봇짐과 남루한 행색이 떠올려지는 고단함의 대명사다. 한마디로, 편리, 편안함을 추구하는 물욕(物慾)의 길과 정반대의 길이라는 말이다.

오늘 복음서 본문은 히브리서의 “나그네 신세”를 “종”으로 바꾸어 비유한다. 종 역시 나그네의 느낌과 비슷하다. 늘 주인의 명을 기다리느라 노심초사하며 대기해 있는 불편한 인생의 대명사다.

(⇒ 아무튼 오늘 서신서와 복음서 말씀은, 우리의 ‘안주’와 ‘편리’ 욕구가 얼마나 반(反)예배적인가를 반복해서 보여주시는 불편한 말씀이다.)

 

오늘 복음서 본문의 알맹이는, 본문 바로 앞, 12장 13절 이하(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과 연이어서 철저히 물욕(物慾)을 경계하는 말씀이다. 내가 번 돈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고, 아낌없이 나누는 순간 천국 곳간이 풍성해진다는 말씀이다.(누가 12:33)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를 ‘깨어있는 종’으로 비유하셨다.(누가 12:37)

그 종은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놓고” 있다.(누가 12:35)

 

허리에 띠를 띤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지만, 나는 왠지 배고픔을 이기려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 연상된다. 그만큼 근검절약하여 모은 내 물질을 이웃과 나누려고, 가장 어려운 이웃들을 쉼 없이 찾아다니느라 늘 등불을 켜고 사는 환한 인생이다. 그리고 마침내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진다. 주인이 온 것이다. 그런데 그 주인이 이상하다. 갑자기 종으로 변신하여 그 깨어있는 종들을 먹이시는 것이다.(누가 12:37b) 그 종들을 “식탁에 앉히”는 것은, 우리 머리에 쉽게 떠오르는 고아원 식당에 질서정연하고도 엄숙하게 앉아 음식을 먹는 자세가 아닐 것이다. 중동지역 특유의 느슨하게 기대어 앉는,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풀어진 바로 그 자세일 것이다. 늘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온 종들에게 이런 호사를 누리게 하시는 주인의 마음이 느껴지는가? 이건 마치 오랜 나그네 길을 마치고 귀가한 자식을 위로하며 차려먹이는 외할머니 마음, 엄마의 마음이라 할 것이다.

 

정리해보면, 나그네 의식, 깨어있는 종 의식을 가진 예배자는 물욕(物慾)을 제어하며 모은 돈을 아낌없이 나눌 수 있고, 바로 그 순간 천국 곳간이 풍성해진다는 공식... 이를 조금 쉽게 풀어보자면,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라는 노랫말처럼, 물질이 나누어지는 순간 거기서 바로 천국의 향기, 천국의 기운이 발현하는 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가 12:37) 주인이 와서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이 허리를 동이고, 그들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 와서 시중들 것이다.

 

이어서 명심할 것은, 오늘 복음말씀의 결론, “준비하고 있어라!” 이것이다. 마침 남북평화통일공동기도주일에 주시는 이 말씀이 매우 의미심장하고도 참 감사하다.

 

(누가 12:40)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인자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4본문 묵상 정리]

 

본문의 거울에 비추어 남북평화통일공동기도주일을 다시 생각한다.

그게 뭔가? 무엇을 바라는 기도인가? 그냥 피 흘림만 없는 남과 북의 재결합을 바라는 것인가? 체제우월경쟁, 군사력, 경제력만으로 이루는 통일은 억지통일일 뿐이다. 결국 동상이몽 투성이 불편한 동거일 뿐이다.

우리의 기도는, 여전히 약육강식, 적자생존 식의 물화(物貨)가 지배하는 세상으로의 통일이 아닌, 하나님의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천국을 지향하는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 나는, 남북평화통일공동기도주일을 준비하는 남과 북의 교회들은, 과연 그런 천국을 꿈꾸며 허리띠 졸라매는 나그네, 깨어있는 종처럼 살고 있는가?

 

그리고 또 한 가지, 남북분단의 원인과 그 뒤이어온 온갖 분단 상처들의 원인을 낱낱이 파헤쳐 구형(求刑)하고 양형(量刑)하는 문제이다. 오늘 시편기자가 고백한 재판장이신 하나님, 공의로우신 하나님, 그리고 예언자 이사야가 선포한 “너희는 씻어라” 하고 외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하면서 과연 씻는 것, 정결하게 하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지 생각해본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 뼈를 깎는 노력을 다하여 분단의 원인, 그리고 분단으로 인한 온갖 상처들의 원인을 밝혀내야 한다.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용서를 피차간에 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분단 상처가 가장 심하고 위중한 분들부터 치료하는 자세로, 그에 어울리는 보상을 해야 한다. 최소한 남북 책임자들이 법적으로 그 보상의 계획을 세우고 제도화하고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분단의 상처를 씻고 남북평화통일을 간구하는 당사자로서, 우리가 판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누가 피고고 누가 원고인 것을 따지기에 앞서, 분단현실 앞에, 분단시대를 이리도 오래도록 끌어온 당사자로서, 역사 앞에, 하나님 앞에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가 의사가 아니라 환자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간다. 오늘 본문말씀 속에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길을 따라 치료하고 복종해야 할 것이다.

⇒ 하나님의 법 경청하기, 여기서부터 정의가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물욕이 제어(통제)된다. 여기서부터 천국이 시작된다.(임하신다)

⇒ 천국을 지향하는, 값없이 내 것을 나누는 공동체의식으로 남북평화통일 건축의 밑돌을 놓아야 한다.

 

 

[나머지 단상들]

 

칠석(七夕) ; 2013년 8월 13일(화요일)이 칠석(七夕)이다. 이즈음 8.15를 앞두고 칠석이 주는 교훈은 이산가족 상봉이다. 사랑놀음에 빠져 본분을 잊은 벌로 1년에 한 차례만 만날 수밖에 없는 견우와 직녀처럼, 남과 북은 8.15즈음에 일 년에 한번만 이렇게 통일을 꿈꾸어야 할 것인가?

특히 이산가족들은 어떻게 해서든 만나야 한다. 가능한 자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기도하는 남북평화통일이란, 어떻게 해서든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길 찾기!

남북갈등을 조장하는 모든 것들의 근원을 조사하고,

남북화합을 이룰 수 있는 모든 길을 찾아 궁리하고 교육하고 실천하기!

특히 남과 북에서 가장 어려운 이들, 약한 이들, 그래서 억울한 눈물 흘리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길 찾기!

말씀 속에서 그 길들을 찾기 위한 남북한공동 성경공부!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남북에서 가장 약하고 억울한 분단피해자들을 틈틈이 촘촘히 찾아 섬기려는 제도적인 노력 등이 필요하다.

 

 

 

 

[말씀동화] 소복소복 말씀을 담는 절구와 장구

 

“윤하 윤색은 다 지나가고∼, 황국단풍 다시 돌아오누나 이에에에∼ 지화자차 좋다... ”

 

‘에구에구 또 시작이네, 또 시작이야!’

 

내가 구시렁거리니까, 처마 밑에 있는 장구가 씩 웃으며 말했어요.

 

‘절구야 왜 그래, 구성지고 좋잖아?’

 

‘좋은 것도 하루 이틀이지, 하루에도 열두 번씩, 윤하 윤색은 다 지나가고∼ 하시잖아! 너무 궁상맞아! 우리 할아버진 완전 궁상스타일이라니까?’

 

‘절구야 그렇지 않아. 잘 들어봐, 할아버지 노래가 예전하고는 많이 달라지셨어. 할아버지 배따라기는 원래 궁상맞고 슬펐는데, 이제 그 느낌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어. 씩씩한 느낌이 아주 많이 느껴져. 난 평생 할아버지 음악 속에 살아서 잘 알아.’

 

오늘도 우리 장구 덕분에 소중한 사실을 하나 배워서 한 뼘 더 행복해지네요.

새로운 걸 배우고 깨닫는 건 참 행복한 일이에요.

장구와 절구, 우리는 멋진 단짝! 강화도에서도 멀리 떨어진 작은 섬 교동에 사는 경복할아버지네 가족들이죠.

 

경복할아버지는 원래 황해도 연안 사람이에요.

할아버지 이름은 연안 이씨, 이경복 씨인데요, 연안에 있는 연백평야에서 소문난 설장구셨대요.

설장구는 장구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상장구, 또는 수장구라고도 하죠.

원래 북녘땅에는 쌀농사가 자그마해서 마을 풍물패도 별로 없는데, 북에서 가장 넓은 연백평야 덕분에 연안에는 풍물이 꽤 발달했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할아버지는 평안도와 황해도 전통민요인 서도소리의 대가셔요.

조금 아까 부르신 노래는 황해도의 대표적인 민요인 배따라기죠.

배타는 뱃사람들의 아픔이 가득한 노랜데요, 경복할아버지는 고향이 그립고 가족들이 보고플 때마다 늘 이 노래를 부르신답니다.

 

할아버진 이산가족이시거든요.

연안에서 농사도 지으면서 행복하게 잘사셨는데, 전국풍물경연대회 참석하러 달랑 장구 하나 둘러메고 서울 나들이 나오셨다가 그만 육이오 전쟁이 나는 바람에 고향에 있는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신 거죠.

그래서 고향에서 가장 가까운 이곳, 연백평야가 빤히 바라다 보이는 여기 교동에 오셔서 정착하셨어요.

바로 코앞에 살고 있을 처자식들 생각에 다시 결혼도 안하시고요.

 

‘그나저나 장구야 너 어서 가죽을 새로 해야 하는데 어떡하지?’

 

하도 낡아서 가죽이 상한바람에 언제부턴가 장구는 쓸쓸하게 처마 밑 툇마루에 나와 살게 되었답니다.

경복할아버지는 이제 너무 연세가 많고 몸이 약해지셔서 장구가죽 새로 하러 다녀오실 힘도 없으세요.

그래서 배따라기 부르실 때도 이젠 그냥 무릎장단만 치시죠.

 

‘아냐 괜찮아. 평생 장구채로 두드려 맞았는데 이젠 좀 쉴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아!’

 

장구가 너스레를 떨면서 말했어요. 그래서 나도 얼른 맞장구를 쳤어요.

 

‘야, 그래도 너는 작은 채로 맞았으니 그 정도지 난 어마어마한 저 절굿공이로 맞았잖아! 쿵덕쿵, 쿵덕쿵, 야야, 내 앞에서 맞는 얘긴 꺼내지도 마, 그건 오뚜기 앞에서 중심 잡는 소리야, 아무렴 그렇고말고! 내가 돌절구였기에 망정이지 너 같은 나무였으면 아마 벌써 두 동강 났을 거야!’

 

‘그래도 절구야 넌 참 평생 신나게 살았잖아? 네 덕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배부르고 행복했는지 온 동네사람들이 다 알잖아?’

 

‘원, 사돈 남 말 하네, 정말 신나고 멋진 건 너지! 장구 너야말로 한평생 참 신명나게 잘살았지. 네 덕분에 연백평야 벼이삭들도 신바람 났고, 연백사람들은 물론이고 우리 교동사람들까지 행복했잖아. 할아버지 설장구 가락에 어깨춤도 들썩, 또 할아버지 서도소리 가락에 너도나도 훌쩍훌쩍! 넌 정말 많은 사람들 웃기고 울린 예능계의 종결자! 네가 등장하기만하면 모든 놀이가 끝마칠 수밖에 없다는 진정한 노름마치였어!’

 

맞아요, 이건 내가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 아니에요.

우리 설장구는 경복할아버지와 함께 정말 멋진 일을 많이 했어요.

더욱이 예배당 찬양반주까지 도맡아서 한 장구는 아마 우리 설장구 말고 누가 또 있을라고요?

 

원래 우리 할아버지는 예배당과는 거리가 먼 분이셨어요.

처음 교동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실 때는 매일매일 술만 마시느라 일도 제대로 못하셨대요.

몸도 맘도 점점 약해지셨고요.

고향땅을 매일 보고 싶어서, 넓은 서울에 가서 맘껏 살지도 못하고 딱 귀양살이하는 꼴이셨거든요.

이건 우리끼리 얘기지만, 사실 교동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아주 지체 높은 정치범들을 귀양 보내던 섬이었대요.

조선시대 유명한 왕인 연산군도 교동에서 귀양살이하다 죽었죠.

 

아무튼 그렇게 매일매일 술만 마시면서 귀양살이 아닌 귀양살이를 하던 어느 날, 할아버지 앞에 동네 교회 목사님이 나타나신 거예요.

교회 할머니들로부터 할아버지 소문을 들으시고 그냥 마실 오신 거예요.

그렇게 하루하루 말벗으로 지내시다가 그냥저냥 예배당에까지 다니게 된 거죠.

 

그런데 사실 우리 할아버지가 못이기는 척 하면서 예배당에 가시게 된 건, 그 무렵 할아버지가 꾼 꿈 때문이었대요.

아주 이상한 꿈을 연속해서 꾸셨다는데, 하루는 꿈에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셨대요.

꿈을 꾸면서도 이게 도대체 웬일인가 하면서 두레박을 타고 올라가는 동안 가만 생각해보니까 황해도 연안 고향땅에 두고 온 처자식들이 바로 하늘나라 선녀랑 세 자녀였더래요.

그래서 아주아주 신이 나서 두근두근 두레박을 타고 올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꼬끼오 하는 새벽닭소리와 함께 두레박 줄이 뚝 끊어지더라나 뭐라나?

선녀탕 속에 풍덩 빠지면서 잠을 깨고 나니 얼마나 허망하고 서운하던지 가족들 이름을 부르면서 꺼이꺼이 우셨대요.

 

그런데 그 다음날 또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다리를 건너고 있더래요.

가만 보니까 다리가 그냥 다리가 아니라 오작교더래요.

오작교가 뭐냐 하면, 까마귀 오, 까치 작, 바로 까막까치들이 만든 다리죠.

칠월 칠석이면 일 년 내내 헤어져 살던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해주기 위해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임시다리, 이산가족 상봉다리로 유명한 바로 그 오작교(烏鵲橋)를 건너고 있었더래요.

그리고 오작교 건너편을 바라보니 할머니가 생글생글 웃고 계시더래요.

너무 너무 행복해서 할아버지는 마구 달리기 시작했대요.

그런데 이게 웬일이래? 갑자기 다리에 구멍이 뻥 뻥 뚫리기 시작하더니 오작교가 금세 허물어지더래요.

원인은 까치녀석들이었어요.

농작물을 하도 망가뜨려서 맨날 돌로 쫓아내던 그 까치녀석들이더래나 뭐라나?

아무튼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혼비백산 깨어보니 꿈이더래요.

 

식은땀을 흘리면서 또 눈물을 주루루 흘리고 있는데, 때마침 그 때 동네 교회 목사님이 마실을 오시더래요.

지난주에는 처음 놀러 오신 그 목사님을 상당히 퉁명스레 대했었는데, 그날은 이틀 연속해서 이상한 꿈을 꾸는 바람에 목사님한테 진지하게 꿈 얘기를 들려드렸대요.

그랬더니 목사님이 아주 그럴듯하게 꿈풀이를 해주시고 그렇게 차차 목사님하고 가까워지게 된 거죠.

 

처음엔 할아버지도 그냥 마실가는 마음으로 예배당에 가셨었는데, 그만 찬송가 부르는 재미에 푹 빠지는 바람에 예배당을 빠져나오지 못했다나 뭐라나?

끼는 못 속인다나 뭐라나?

풍금반주자도 없는 작은 교회여서 장구로 반주하기 시작했더니, 교회 할머니들 사이에서 인기가 하늘을 찌르셨다나 뭐라나?

아무튼 이러저러하여 예배당출입을 자주하시던 어느 날 우리 경복할아버지는 예수님 말씀 듣다가 그만 눈물을 왈칵 쏟으셨어요.

 

“...땅에서는 길손과 나그네 신세임을 고백하였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네가 고향을 찾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들이 만일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 11장 말씀인데요.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이 구절이 마음에 쏙 들어와 박혀버리셨대요.

그리고 괜히 많이 울고 그러셨대요.

그런데 마침 그날 이 말씀도 들으셨던 거예요. 바로 누가복음 12장 말씀이에요.

 

“...두려워하지 말아라. 적은 무리여, 너희 아버지께서 그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너희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고, 하늘에다가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도둑이나 좀의 피해가 없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놓고 있어라...”

 

바로 이 말씀이셨대요.

이 말씀이 또 한 번 심장에 콕 박히시는 바람에 할아버지는 그날 바로 저를 사오신거예요.

차타고 배타고 강화 장에 나가셔서 낑낑거리며 돌절구를 사오신거죠.

그리고 그날부터 참 열심히 일하셨어요.

허리끈 졸라매고 닥치는 대로 품도 파시고 농사도 지으셨어요.

그리고 열심히 방아도 찧고 떡도 만들어서 교회에서 하는 사랑밥상이란 밥상은 거의 도맡다시피 하신 거죠.

노래 잘 부르고 장구도 잘 치시는 할아버지는 이제 교회 할머니들뿐 아니라 온 동네사람, 온 교동사람들 사이에서 인기스타가 되버리셨어요.

 

이 무렵부터 할아버지는 이름도 바꾸셨어요.

클 경, 복 복, 경복(景福)이셨는데, 경계할 경, 종복, 경복(警僕)으로 고치신거예요.

“깨어있는 종”이라는 뜻이죠.

교회에서 찬양 대장도 맡아하시고, 말씀에 푹 빠져서 봉사하는 재미로 매일매일 행복하게 살기 시작하면서, 할아버지는 많은 것이 변하셨어요.

이름처럼 깨어있는 종이 되기 전까지는 늘 술을 입에 달고 살고,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툭하면 “빨갱이 놈들”, “빨갱이 같은 놈들”하는 상스러운 욕을 입에 달고 사시던 할아버지가 그 뒤론 입에 찬송을 달고, 말씀을 달고 사시게 된 거죠.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목사님께서 북녘땅 어린이들이 굶주린다는 소식을 전하셨을 때도 앞장서서 도우셨어요.

교인들 가운데서 빨갱이 뭐라뭐라하면서 구시렁거리는 분들까지 열심히 설득하시면서 앞장서서 헌금을 하셨죠.

 

그뿐이 아니에요. 어느 날부터는 목사님 설교말씀 듣고 은혜를 받으셨다면서 강화읍내에 있는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까지 매주 나가서 서도소리를 가르치기 시작하신 거예요.

아이들은 서도소리 특유의 떠는 음이 하도 어렵고 재미도 없어서 시큰둥한데도 경복할아버지는 아주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가르치셨어요.

이건 우리 설장구한테 들은 얘긴데요,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열심히 봉사를 하신 건, 다름 아니라 끊어진 두레박 줄과 무너진 오작교를 보수공사 하는 셈이었대요.

남과 북의 마음을 이어주는 아리랑처럼, 아이들이 서도소리를 배우면 황해도 사투리랑 한 뼘 더 가까워지고, 낯설기만 한 북녘땅이 좀 더 친근해지게 된다는 거죠.

 

경복할아버지가 교회 생활 열심히 하시면서 변하신 건 또 있어요.

매일매일 뒷산에 올라 북녘땅 연백평야를 바라보시며 울면서 술을 마시던 것이 변해서, 이젠 고향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를 드려요.

그리고 북녘의 가족들 들으라고 힘차게 성경말씀도 읽으시죠.

찬양을 하고 배따라기도 부르시죠.

배따라기는 원래 뱃사람들의 위태로운 바다생활, 자칫 사고를 당해서 가족들과 헤어지게 되는 슬픈 이야기가 담긴 노래거든요.

그런데 그런 배따라기가 아주 씩씩한 배따라기로 바뀐 거예요.

목사님 말씀 듣다가 교회가 구원의 방주, 커다란 배라는 말씀을 듣고 나서부터, 교인들은 모두 사람 낚는 뱃사람이로구나 하고 무릎을 한번 탁 치고 나서부터는 배따라기를 노랫말도 조금씩 바꾸어가면서 아주 힘찬 ‘구원가’로 부르게 되신 거죠.

 

그렇게 하루 이틀, 한해 두해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젠 연세가 많으셔서 강화에 나가 서도소리 가르치는 일도 그만두셨고, 절구질도 못하시지만, 매일매일 뒷산에 오르셔서 고향땅을 바라보는 일만은 계속하신답니다.

그리고 그 산자락에 자그마한 땅을 사서 할아버지 산소자리도 만들어두셨죠.

보통사람들은 대부분 햇볕 잘 드는 남쪽방향으로 산소자리를 잡지만, 할아버지는 일부러 해도 안 드는 북쪽을 향해서 자리를 잡으셨어요.

바로 북녘 고향땅을 바라보시려는 거죠.

우리 예수님이 해님보다 더 밝은 분이셔서 아무 문제없으시데요.

그리고 나중에 돌아가셔서 산소에 누우시면 더 자주 고향땅을 바라보실 수 있다면서, 살아도 행복하고, 죽으면 더 행복할거라고 하세요.

진짜 고향, 하늘 고향에서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면서 좋아하세요.

 

장구와 절구 우리도 할아버지 따라 늙어가면서 더 행복하답니다.

이젠 우리 할아버지 절구질 할 힘도 없으셔서 비록 내 속에는 파랗게 이끼만 꼈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온갖 좋은 것 다 받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우리 장구도 비록 가죽이 없어져서 음악소리는 못 내지만, 나처럼 하늘을 바라보고 누워 햇볕을 담을 수 있어서 행복해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할아버지 서도소리 가락처럼 구성지게 읊조리는 말씀독경(讀經) 소리 매일매일 소복소복 담을 수 있는 우리는 참 행복한 장구, 행복한 절구입니다.

 

[이정훈 지음, 2013년 5월 초, 성실문화 75호 예배마당 지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