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祈禱)의 도(道)
[성서일과 4본문]
(호세 1:2-10)
2. 주님께서 처음으로 호세아를 시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주님께서는 호세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아라! 이 나라가 주를 버리고 떠나서, 음란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3. 호세아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과 결혼하였다. 고멜이 임신하여, 호세아의 아들을 낳았다.
4. 주님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다.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하여라. 이제 곧 내가 예후의 집을 심판하겠다. 그가 이스르엘에서 살육한 죄를 물어서 이스라엘 왕조를 없애겠다.
5. 또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평원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겠다."
6. 고멜이 다시 임신하여 딸을 낳았다. 이 때에 주님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다. "그 딸의 이름은 로루하마라고 하여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용서하지도 않겠다.
7. 그러나 유다 족속은 내가 불쌍히 여기겠다. 그들의 주 나 하나님이 직접 나서서 그들을 구출하겠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활이나 칼이나 전쟁이나 군마나 기마병으로 구출하는 것이 아니다."
8. 로루하마가 젖을 뗄 때에, 고멜이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9.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고 하여라. 너희가 나의 백성이 아니며, 나도 너희의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10.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져서,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되어 보거나 세어 볼 수 없을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사람들이 너희를 로암미라고 부른 땅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를 것이다.
(시편 85)
1. 주님, 주님께서 주님의 땅에 은혜를 베푸시어, 포로가 된 야곱 자손을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2. 주님의 백성들이 지은 죄악을 용서해 주시며, 그 모든 죄를 덮어 주셨습니다. (셀라)
3. 주님의 노여움을 말끔히 거두어 주시며, 주님의 맹렬한 진노를 거두어 주셨습니다.
4.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 우리에게 다시 돌아와 주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에게 품으신 진노를 풀어 주십시오.
5.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로 노여움을 품고 계시렵니까?
6. 주님의 백성이 주님을 기뻐하도록 우리를 되살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7. 주님, 주님의 한결 같은 사랑을 보여 주십시오. 우리에게 주님의 구원을 베풀어 주십시오.
8.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내가 듣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약속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 주님의 성도들이 망령된 데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9. 참으로 주님의 구원은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가까이 있으니, 주님의 영광이 우리 땅에 깃들 것입니다.
10.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는 평화와 서로 입을 맞춘다.
11.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는 하늘에서 굽어본다.
12. 주님께서 좋은 것을 내려 주시니, 우리의 땅은 열매를 맺는다.
13. 정의가 주님 앞에 앞서가며, 주님께서 가실 길을 닦을 것이다.
(골로 2:6-19)
6.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7. 여러분은 그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우심을 입어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굳게 하여 감사의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
8. 누가 철학이나 헛된 속임수로, 여러분을 노획물로 삼을까 조심하십시오. 그런 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라 하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9. 그리스도 안에 온갖 충만한 신성이 몸이 되어 머물고 계십니다.
10. 여러분도 그분 안에서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통치와 권세의 머리이십니다.
11. 그분 안에서 여러분도 손으로 행하지 않은 할례, 곧 육신의 몸을 벗어버리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12. 여러분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또한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습니다.
13. 또 여러분은 죄를 지은 것과 육신이 할례를 받지 않은 것 때문에 죽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14.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불리한 조문들이 들어 있는 빚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으셔서, 우리 가운데서 제거해버리셨습니다.
15. 그리고 모든 통치자들과 권력자들의 무장을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포로로 내세우셔서, 뭇 사람의 구경거리로 삼으셨습니다.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일이나 명절이나 초승달 축제나 안식일 문제로, 아무도 여러분을 심판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17. 이런 것은 장차 올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요, 그 실체는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18. 아무도 겸손과 천사 숭배를 주장하면서 여러분을 비방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런 자는 자기가 본 환상에 도취되어 있고, 육신의 생각으로 터무니없이 교만을 부립니다.
19. 그는 머리에 붙어 있지 않습니다. 온 몸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각 마디와 힘줄을 통하여 영양을 공급받고, 서로 연결되어서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대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누가 11:1-13)
1. 예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는데, 기도를 마치셨을 때에 그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에게 말하였다.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준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그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말하여라. '아버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고,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십시오.
3.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십시오.
4.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우리가 용서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누구에게 친구가 있다고 하자. 그가 밤중에 그 친구에게 찾아가서 그에게 말하기를 '여보게, 내게 빵 세 개를 꾸어 주게.
6. 내 친구가 여행 중에 내게 왔는데, 그에게 내놓을 것이 없어서 그러네!' 할 때에,
7. 그 사람이 안에서 대답하기를 '나를 괴롭히지 말게. 문은 이미 닫혔고, 아이들과 나는 잠자리에 누웠네. 내가 지금 일어나서, 자네의 청을 들어줄 수 없네' 하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의 친구라는 이유로는, 그가 일어나서 청을 들어주지 않을지라도, 그가 졸라대는 것 때문에는, 일어나서 필요한 만큼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구하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10. 구하는 사람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아버지가 된 사람으로서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12. 달걀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들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성서일과 4본문 묵상 노트]
오늘 성서일과 4본문의 공통주제는 기도(祈禱)입니다.
[구약]
호세아는 문서예언자 가운데 유일한 북이스라엘 출신 예언자입니다.
그는 몸으로, 혼인 생활 자체로,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전한 예언자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름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깨달음을 주는 예언자입니다.
호세아라는 이름 뜻이 ‘그가 건지신다, 여호와가 도우신다’는 뜻입니다.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길’의 소중함을 다시금 절감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하기! 사실 이게 얼마나 중요하고도, 또 어려운지요!)
호세아 본문을 묵상하면서 문득 떠오르는 것이 몇 개 있습니다.
청년시절 기도응답노트를 매일 기록했던 적이 있습니다.
매일 중보기도 제목과 기도내용을 구체적으로 적고, 그 기도가 응답받은 날짜와 구체적인 사항까지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왜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 것인가?
지금 내가 매일 하고 있는 기도가,
1) 구체적이지 않은 것인지? (너무 형식적이고 동일내용 반복적이고, 기도응답 확인도 하지 않는 느슨함 때문인가?)
2) 긴장감도, 간절함도 없는 것인지?
3) 빠른 응답을 기대하지 않은 것인지?
4) 느린 응답조차 기대하지 않고 있는 것인지?
5) 다른 어느 누구, 어느 무엇이 아니라, 바로 그분께서 나를 도우신다! 호세아! 그 이름과 같은 믿음이 없는 것인지?
돌아보니, 지금 내 기도에 긴강감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기대감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기도응답 노트를 붙들고 살던 시절, 그 기도생활의 재미도 떨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음란한 자식’(호세 1:2)이 별것이 아닙니다.
‘호세아’!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그 이름 뜻 잊고 사는 게 ‘음란한 자식’ 아닙니까?
내가 지금 배고플 때, 아플 때, 힘들 때, 밥 달라고, 약 달라고, 도와달라고 졸라야 할,
당연히 밥 차려주실, 약 발라주실, 힘을 주실 바로 그분, 제 아비 어미도 몰라보는, 그게 음란한 자식 아닙니까?
당장 내 기도문화를 바꿔야 할 때입니다.
호세아, 그 이름처럼, 애오라지 주님의 도우심만을 굳게 믿는, 든든한 신뢰감!
그런 참 자식답게 구해야 합니다.
더 이상 ‘근본 없는 자식’, ‘로암미’(9)처럼 굴지 맙시다.
내 생생한 부모에게 구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10)답게 당당하고 떳떳하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시편]
오늘 시 85편 묵상 중 가장 마음 깊이 들어온 구절은 8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내가 듣겠습니다.”
친 자식의 당당한 기도는, 당연히 아버지의 응답에 귀 기울이는 법입니다.
그 응답이 내 기대와 다르더라도 외면하지 않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쳇!, 흥!” 하고 돌아서면 남남이 되어버리는 그런 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간구에 정반대의 뜻을 주시더라도 경청하는 게 자식입니다.
그리고 그분 뜻에 맞추어 다시 내 간구를 수정하여 구하는 게 도리입니다.
기도는 그렇게 발전해가는 법입니다.
[서신서]
오늘 서신서 본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구절은, “그리스도(그분) 안에서”입니다.
자그마치 6회나 반복하고 있습니다.(6-12절)
오늘 본문 제일 처음 6절이 인상적입니다.
“... 그분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마지막 19절도 같은 뜻으로 이어집니다.)
오늘 서신서 본문은 그렇게, 수미일관하게 ‘그리스도 안에서’를 강조합니다.
즉, 그리스도 밖의 다른 엉뚱한 것에 기대지 말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전체 주제인 ‘기도’로 설명하자면, 기도는 엉뚱한 샛길로 빠져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건강한 교회 공동체, 즉 주님의 몸과 온전히 연결된 상태의 기도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철학, 헛된 속임수, 사람들의 전통, 세상의 유치한 원리’(8절), ‘천사숭배, 환상도취, 육신의 생각’(18절) 등, 그런 것에 기댄 기도는 통화품질이 좋을 리 없습니다.
마치 전혀 끊김 없고 통화품질 상태가 생생한 유선전화와 같은 기도의 모습이 바로 마지막 19절에 나옵니다.
“... 온 몸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각 마디와 힘줄을 통하여 영양을 공급받고, 서로 연결되어서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대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가 바로 내 탐욕을 위해 하는 기도가 아니라, 주님 뜻에 따라 하는 기도일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나와 교회를 주님 뜻대로 무럭무럭 자라게 하는 법입니다.
[복음서]
오늘 복음서에는 기도에 관한 많은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1절 첫머리에 예수님의 기도 습관이 엿보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도하시는 예수님!
제자들의 요청에 따라 가르쳐주신 주의기도는, 공동체 기도의 백미입니다.
공동체 기도는 내 기도를 엉뚱한 샛길로 빠지지 않게 잡아줍니다.
특히 주의기도는 추상적이고 지나치게 관념적인 기도가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기도입니다.
먼저 주의기도는, 예수님의 기도 지침대로(마태 6:33), 가장 먼저 주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게 하십니다.
“일용(日用)할 양식”에는 과욕, 탐욕을 위한 기도를 금하라는 주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4절의 우리 죄 용서를 구함에 앞서서, 내게 빚진 자를 용서한다는 선언이 담겨 있습니다.
점점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논리, 경제동물, 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오늘 나에게, 아주아주 생생한 교훈이 담긴 기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의기도를 가리켜 짧으면서도 무거운 기도라고 하나봅니다.
이 무거운 기도를 실천할 때, 내 인생의 무거운 멍에는 점점 가벼워집니다.
그렇게 수많은 인생의 걸림돌(시험=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9절 이하의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생선 달라는데 뱀을 줄 아빠는 없다는 뜻 안에는 또 다른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뱀을 달라는데 뱀을 주는, 전갈을 달라는데 전갈을 주는 아빠도 없다는 뜻입니다.
즉 내가 하는 기도가 내 영생을 갉아먹는 탐욕을 구하는 기도라면 절대로 들어주실 까닭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쾌락을 누리는데다가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약 4:2-3)
끝으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주의기도에 담긴 예수님의 뜻을 지키는 기도생활을 위해서 우리에게 성령님이 꼭 필요합니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김재임 (OMSC, 'Joy in the Lord'; the collage Art of Jae-Im Kim, Vol. 1)
작가 김재임 선생님(겨자씨 교회) 동의를 얻어 여기 싣습니다.
그림을 원하는 분은 소속과 사용처를 밝히시면 첨부파일로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suhmoo@hanmail.net) 이정훈
[말씀동화] 비무장지대에서 숯을 구워라!
"석탄 백탄 타는데∼ 연기만 폴폴 나구요∼
이내 가슴 타는데∼ 연기도 김도 안나네∼
에헤야∼ 데헤야∼ 어여라난다 디여차∼
허송세월을 말아라∼♬"
홍세아는 강원도에서 알아주는 숯장이예요.
오늘도 신바람나게 석탄가(사발가)를 부르며 숯을 굽고 있네요.
홍세아의 아버지는 함경도 화전민 출신이고 어머니는 제주도 해녀 출신이시죠.
지금은 딱 그 중간, 강원도 어느 마을에 자리잡고 살고 있어요.
홍세아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예수쟁이예요.
참나무가 숯가마에 들어가면 화끈한 숯으로 변하는 것처럼,
홍세아가 예배당에 들어가면 화끈한 기도의 사람이 됩니다.
홍세아는 강원도에서 알아주는 나무꾼이죠.
그리고 교회에서 알아주는 기도꾼이고요.
오늘도 홍세아는 커다란 도끼로 참나무를 잘라서 숯을 굽습니다.
도끼질을 하기 전에는 언제나 하늘님께 기도를 올립니다.
그리고 숯가마에 불을 넣기 전에도 언제나 하늘님께 기도를 올리죠.
그러던 어느 날 숯가마 구름같은 연기 속에 하늘님이 나타나셨어요.
“홍세아야, 홍세아야 너는 지금 곧바로 비무장지대로 들어가거라. 거기서 참나무를 잘라 숯을 구워라”
깜짝 놀란 홍세아는 하늘님께 여쭈었어요.
“하늘님 하늘님, 비무장지대라뇨? 거기는 아무나 막 들어갈 수 없는 무서운 곳인데요?”
“아니다. 비무장지대는 무서운 곳이 아니다. 지금 정말 무서운 곳은 비무장지대의 남쪽과 북쪽에 사람 사는 땅이 더 무서운 곳이다. 지금 남과 북에서 NLL(서해 북방한계선)을 놓고 떠들어대는 소리가 내 귀를 찌르고, 흉악한 무기를 사고파는 소리가 내 가슴을 후벼 파대니 내가 견딜 수가 없구나.”
“하늘님, 아무리 그래도 비무장지대는요, 이름만 비무장지대지, 사실은 무서운 무기로 완전무장한, 한반도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랍니다. 한 발짝만 잘못 디뎌도 지뢰가 폭발한다니까요?”
“그건 걱정 말아라. 내가 다 해결해두었으니 너는 아무 걱정 말고 내 명령만 따르거라.”
늘 하늘님 말씀만 철썩같이 믿고 순종하는 홍세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하늘님의 말씀을 따라 비무장지대로 갔어요.
무쇠도끼 한 자루 어깨에 짊어지고 무조건 북쪽을 향해 걸었어요.
홍길동의 벗 차돌바위처럼 도끼 하나 짊어지고 타박타박 걸었어요.
드디어 휴전선에 다다르자 육중한 철책문이 스르르 열리네요.
“다행이군, 아직 내 도끼를 쓸 일이 없으니 안심이야!”
조마조마 가슴을 졸이며 마침내 비무장지대로 한 발 한 발 들여놓기 시작했어요.
어스름 달빛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는데 드디어 무언가 발에 밟혔어요.
“철커덕!”
“아뿔싸! 이건 바로 말로만 듣던 바로 그 대인지뢰(對人地雷)가 아닌가?”
홍세아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립니다.
그런데 그 순간, ‘방긋’ 하고 꽃이 피어올랐어요.
불꽃처럼 빨갛고 커다란 모란꽃이네요.
세아의 두 눈이 보름달처럼 둥그레집니다.
몇 걸음 더 걸어가다가 또 다시 ‘철커덕’하고 걸리는 게 있습니다.
이번엔 무릎 아래에 가느다란 철사줄 같은 것이 걸린 것입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부비트랩(booby trap)이지?”
그 순간, 쇠구슬처럼 생긴 까만 꽃씨들이 ‘파다닥’ 날개치는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말로만 듣던 공포의 크레모아 지뢰가 터진 거였어요.
꽃씨들이 100미터 저 멀리까지 날아가 떨어지자 여기저기 형형색색 예쁜 꽃들이 피어오릅니다.
이런 세상에! 순식간에 사방이 온통 꽃 천지가 되어버리네요?
‘이게 웬일이람? 이러다가 비무장지대가 완전 비밀의 정원이 되어버리겠는걸?’
신바람 난 홍세아는 달빛을 타고 밤새도록 비무장지대를 쏘다니기 시작했어요.
아주 작심을 한 듯이 비무장지대를 에덴동산처럼 아름다운 꽃동산으로 만들려나 봐요.
홍세아가 발 딛는 곳곳마다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오릅니다.
조금 큰 지뢰를 밟으면 단물이 뚝뚝 떨어지는 커다란 과일나무가 솟아오릅니다.
사람이 밟으면 안 터진다는 대전차지뢰도 홍세아가 밟으면 커다란 느티나무로 둥실 솟아오르네요.
밤하늘 둥근달님도 하늘님 마음처럼 빙그레 웃고 있습니다.
동틀 무렵 짊어진 도끼가 무거워 홍세아는 느티나무 아래 잠시 드러누웠습니다.
‘하늘님께서 나를 비무장지대로 부르신 목적이 바로 이것이었을까? 이름만 비무장지대를 진짜 비무장지대로, 완전 꽃동산지대로 만드시려는 것이었을까? 그런데 왜 참나무를 잘라 숯을 구우라고 하신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만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꿈속에서 홍세아는 다시 하늘님을 만났습니다.
“세아야 밤새 애썼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참나무를 잘라 숯을 구워야 한다.”
“하늘님, 그런데 왜 비무장지대에서 노루고기를 굽지 않고, 감자를 굽지 않고, 왜 하필 숯을 구워야 하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그건 지금 남과 북에서 하는 짓거리들 때문에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내 가슴속을 보여주기 위해서란다. 저 구역질나는 NLL타령을 들어보렴. 피눈물 흘리는 중소기업인들을 외면한 채 개성공단 문고리만 잡고 달싹거리고 있는 저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책임자들을 보렴. 그리고 아직도 원자력 발전소와 전쟁무기를 사고파는 남과 북의 장사꾼들을 보렴. 저들은 나라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제 배를 불리기 위한 권력에만 혈안이 되어 있단다. 저들을 보면서 나는 하도 메스꺼워서 하루에도 열두 번씩 헛구역질을 한단다. 그리고 내 가슴은 숯처럼 새까맣게 타들어간단다. 이제 네가 남과 북의 중간, 온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여기 비무장지대에서 시뻘겋고 새까맣게 숯을 구워야 하는 이유를 알겠느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홍세아는 번쩍, 잠을 깼어요.
그리고 눈을 부비면서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열었어요.
그런데 뉴스 첫머리부터 난리가 났네요?
강원도의 유명한 숯장이가 월북을 했다는 뉴스였어요.
북쪽에서 무식한 숯장이를 돈으로 매수했다는 둥, 남쪽에서 사고를 치고 북쪽으로 도망가는 중이라는 둥, 조국을 배신한 창녀라는 둥, 온통 홍세아를 헐뜯는 이야기로 가득했어요.
‘두둥-!’
화가 난 홍세아는 드디어 도끼를 들고 일어섭니다.
도끼날이 하늘에서 번쩍 빛을 뿜습니다.
도끼로 허공에 사람 인(人)자를 그립니다.
그 위에 두 줄을 그으니 하늘 천(天)이 됩니다.
함경도에서 화전을 일구며 사셨던 아버지로부터 배운 도끼춤입니다.
빙글빙글 돌며 춤사위는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서울장안 타는데∼ 한강수로 끄련만∼
삼천만 가슴 타는데∼ 무엇으로 끄려나∼
에헤야∼ 데헤야∼ 어여라난다 디여차∼
허송세월을 말아라∼♬”
“한바탕 도끼춤을 추고나니 이제야 좀 마음이 가라앉는군. 자 이제 하늘님 명을 따라 참나무를 베어 숯을 구워야겠다.”
눈을 들어 사방을 바라보니 저 앞에 아름드리 참나무 숲이 보입니다.
참나무 숲속에 들어가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를 골라놓고 도끼를 번쩍 치켜듭니다.
한번 ‘쿵’ 내리찍고, 두 번 ‘쿵’ 내리찍고, 세 번째 커다란 원을 그리며 도끼를 돌리는 순간, 도끼는 홍세아의 손아귀를 뿅-하고 빠져나와 저 건너편 연못에 퐁당 빠져버리네요?
당황한 홍세아는 얼른 연못으로 뛰어갔어요.
끝이 안 보이는 깊은 연못가에 서서 홍세아는 발만 동동 굴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지난주일 예배시간에 받은 말씀을 기억하고 암송하기 시작합니다.
“구하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누가 11:9)
그리고 마침내 기도의 사람 홍세아가 연못 앞에 무릎을 꿇고 도끼를 간구하는 기도를 올리기 시작합니다.
“하늘님, 저를 용서해주세요. 제가 도끼질신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도끼질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하늘님께 기도 올리는 것을 깜빡 잊고 말았습니다. 제발 제 도끼를 찾아주세요. 그 도끼가 있어야 제가 하늘님 명을 따라 참나무 숯을 만들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때 연못 안에서 산타크로스처럼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가 올라오시네요?
손에는 눈처럼 하얗게 빛나는 은도끼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나무꾼아, 당황하지 말고 찬찬히 잘 보거라, 이 도끼가 네 도끼냐?”
“아닙니다. 제 도끼가 아닙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다시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데 이번엔 금빛 찬란한 금도끼를 들고 있습니다.
“그럼 이 도끼가 네 도끼냐?”
“아뇨. 그것도 제 것이 아닌데요?”
할아버지는 다시 물속에 들어갔다가 홍세아의 무쇠도끼를 쥐고 올라옵니다.
“그럼, 이 도끼가 네 도끼냐?”
“예, 그게 바로 제 것입니다만, 그런데 어르신은 누구시죠?”
돌발질문에 당황한 할아버지가 더듬거리며 대답하네요.
“나, 나는 하늘님이 보내신 산신령, 아니 참, 천사란다. 그건 그렇고, 참으로 900년 만에 착한 나무꾼을 만나는구나. 요새는 금도끼만 보면 너도나도 제 것이라고 우겨대는 세상인데 말이다. 자 이 도끼 세 자루를 모두 네게 줄테니 잘 사용하거라.”
“그런데 산신령님, 아니 천사님, 제겐 무쇠 도끼만 있으면 되는데요? 금도끼는 단단한 참나무를 자르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될텐데요?”
“금도끼와 은도끼는 나무를 자르는 도끼가 아니란다. 그건 네 마음을 자르는 도끼란다. 금도끼는 네가 하늘님께 기도하기 전에, 쾌락을 위한 돈을 구하려는 탐심을 베어버리는 도끼이고, 은도끼는 자칫 기도 중에 솟아날지도 모를, 네 원수를 미워하는 마음을 잘라버리는 도끼란다.”
홍세아는 크게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이름만 기도꾼이 아니라 진짜배기 기도꾼이 되기로 결심했어요.
무슨 일을 할 때나 먼저 하늘님께 아뢰고, 하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올리기로 결심했어요.
그리고 금도끼와 은도끼를 기억하며, 온전한 기도를 위해 탐심과 미워하는 마음을 매일매일 잘라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하늘님의 다른 명이 떨어질 때까지 비무장지대에 살면서 열심히 참나무 숯을 만들어 하늘님의 속마음을 온 세상에 보여주기로 결심했어요.
물론 쉬는 시간에는 비무장지대 구석구석 싸돌아다니면서 지뢰밭을 꽃밭으로, 과일밭으로, 약초밭으로 변신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시간 날 때마다, 기도중의 기도, 주기도문을 읊조리기 시작했어요.
내 탐욕과 미운마음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기도 주기도문입니다.
도끼질을 하면서도 주기도송을 부르네요?
지뢰를 밟으며 도끼춤을 추면서도 주기도송을 부르네요!!
석탄가보다 더 신바람나는 주기도송입니다.
그나저나, 세상 사람들은 비무장지대가 꽃동산지대로 변신하고 있는 것에 대해 뭐라고 떠들어댈까요?
그리고 비무장지대에서 시뻘겋고 새까맣게 숯을 굽고 있는 홍세아에 대해 뭐라고 떠들어댈까요?
남과 북의 군인들은 홍세아의 숯가마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를 보며 뭐라고 떠들어댈까요?
저들이 연기처럼 솟아오르는 하늘님의 분노, 숯처럼 타들어가는 하늘님의 마음을 과연 언제나 알게 될지 모르지만, 오늘도 홍세아는 비무장지대 숯을 구우면서 흥얼흥얼 주기도송을 부릅니다.
[이정훈 지음, 2013년 7월 28일 주일 새벽]
[주기도문 노래 악보] 문성모 목사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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