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시편 23:4)
[성서일과 4본문]
(사무엘기상 16:1-13)
1.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사울이 다시는 이스라엘을 다스리지 못하도록, 내가 이미 그를 버렸는데, 너는 언제까지 사울 때문에 괴로워할 것이냐? 너는 어서 뿔병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길을 떠나,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가거라. 내가 이미 그의 아들 가운데서 왕이 될 사람을 한 명 골라 놓았다.”
2. 사무엘이 여쭈었다. “내가 어떻게 길을 떠날 수 있겠습니까? 사울이 이 소식을 들으면, 나를 죽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너는 암송아지를 한 마리 끌고 가서, 주님께 희생제물을 바치러 왔다고 말하여라.
3. 그리고 이새를 제사에 초청하여라.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내가 거기에서 너에게 일러주겠다. 너는 내가 거기에서 일러주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라.”
4. 사무엘이 주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니, 그 성읍의 장로들이 떨면서 나와 맞으며 물었다. “좋은 일로 오시는 겁니까?”
5. 사무엘이 대답하였다. “그렇소. 좋은 일이오. 나는 주님께 희생제물을 바치러 왔소. 여러분은 몸을 성결하게 한 뒤에, 나와 함께 제사를 드리러 갑시다.” 그런 다음에 사무엘은, 이새와 그의 아들들만은, 자기가 직접 성결하게 한 뒤에 제사에 초청하였다.
6. 그들이 왔을 때에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속으로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시려는 사람이 정말 주님 앞에 나와 섰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7. 그러나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셨다. “너는 그의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내가 세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
8. 다음으로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 아들도 주님께서 뽑으신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9. 이번에는 이새가 삼마를 지나가게 하였으나, 사무엘은 이 아들도 주님께서 뽑으신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10. 이런 식으로 이새가 자기 아들 일곱을 모두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으나, 사무엘은 이새에게 “주님께서는 이 아들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뽑지 않으셨소” 하고 말하였다.
11. 사무엘이 이새에게 “아들들이 다 온 겁니까?” 하고 물으니, 이새가 대답하였다. “막내가 남아 있기는 합니다만, 지금 양 떼를 치러 나가고 없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말하였다. “어서 사람을 보내어 데려오시오. 그가 이 곳에 오기 전에는 제물을 바치지 않겠소.”
12. 그래서 이새가 사람을 보내어 막내 아들을 데려왔다. 그는 눈이 아름답고 외모도 준수한 홍안의 소년이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이 사람이다. 어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
13. 사무엘이 기름이 담긴 뿔병을 들고, 그의 형들이 둘러선 가운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그 날부터 계속 다윗을 감동시켰다. 사무엘은 거기에서 떠나, 라마로 돌아갔다.
(시편 23)
1.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2.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3.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4.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5.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6.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에베소서 5:8-14)
8.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님 안에서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
9.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와 진실에 있습니다.-
10.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십시오.
11. 여러분은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끼어들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폭로하십시오.
12. 그들이 몰래 하는 일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들입니다.
13. 빛이 폭로하면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14. 드러나는 것은 다 빛입니다. 그러므로, “잠자는 사람아, 일어나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일어서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환히 비추어 주실 것이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9:1-41)
1. 예수께서 가시다가,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2.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선생님,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3.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요,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다.
4. 우리는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이 곧 온다.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6.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뒤에, 땅에 침을 뱉어서,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그에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다.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 눈먼 사람이 가서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갔다.
8. 이웃 사람들과, 그가 전에 거지인 것을 보아 온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 아니냐?” 하였다.
9. 다른 사람들 가운데는 “이 사람이 그 사람이다” 하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고, 또 더러는 “그가 아니라 그와 비슷한 사람이다” 하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눈을 뜨게 된 그 사람은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
10.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11. 그가 대답하였다. “예수라는 사람이 진흙을 개어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였소. 그래서 내가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소.”
12. 사람들이 눈을 뜨게 된 사람에게 묻기를 “그 사람이 어디에 있소?” 하니, 그는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들은 전에 눈먼 사람이던 그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데리고 갔다.
14. 그런데 예수께서 진흙을 개어 그의 눈을 뜨게 하신 날이 안식일이었다.
15. 바리새파 사람들은 또다시 그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그분이 내 눈에 진흙을 바르신 다음에 내가 눈을 씻었더니, 이렇게 보게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6. 바리새파 사람들 가운데 더러는 말하기를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그는 하나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 하였고, 더러는 “죄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러한 표징을 행할 수 있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 의견이 갈라졌다.
17. 그들은 눈멀었던 사람에게 다시 물었다. “그가 당신의 눈을 뜨게 하였는데,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그가 대답하였다. “그분은 예언자입니다.”
18. 유대 사람들은, 그가 전에 눈먼 사람이었다가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마침내 그 부모를 불러다가
19. 물었다. “이 사람이,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었다는 당신의 아들이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보게 되었소?”
20. 부모가 대답하였다. “이 아이가 우리 아들이라는 것과,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었다는 것은, 우리가 압니다.
21. 그런데 우리는 그가 지금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또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도 모릅니다. 다 큰 사람이니, 그에게 물어 보십시오. 그가 자기 일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22. 그 부모는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회당에서 내쫓기로, 유대 사람들이 이미 결의해 놓았기 때문이다.
23. 그래서 그의 부모가, 그 아이가 다 컸으니 그에게 물어보라고 말한 것이다.
24. 바리새파 사람들은 눈멀었던 그 사람을 두 번째로 불러서 말하였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라. 우리가 알기로, 그 사람은 죄인이다.”
25.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 내가 아는 것은, 내가 눈이 멀었다가, 지금은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6. 그래서 그들은 그에게 물었다. “그 사람이 네게 한 일이 무엇이냐? 그가 네 눈을 어떻게 뜨게 하였느냐?”
27. 그는 대답하였다. “그것은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말하였는데, 여러분은 곧이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어찌하여 다시 들으려고 합니까? 여러분도 그분의 제자가 되려고 합니까?”
28. 그러자 그들은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 말하였다. “너는 그 사람의 제자이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이다.
29.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30. 그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그분이 내 눈을 뜨게 해주셨는데도,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니, 참 이상한 일입니다.
31.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은 듣지 않으시지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의 뜻을 행하는 사람의 말은 들어주시는 줄을, 우리는 압니다.
32.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의 눈을 누가 뜨게 하였다는 말은, 창세로부터 이제까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33.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 아니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34. 그들은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완전히 죄 가운데서 태어났는데도, 우리를 가르치려고 하느냐?” 그리고 그들은 그를 바깥으로 내쫓았다.
35.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 사람을 내쫓았다는 말을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만나서 물으셨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 그가 대답하였다. “선생님, 그분이 어느 분입니까? 내가 그분을 믿겠습니다.”
3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이다.”
38. 그는 “주님, 내가 믿습니다” 하고 말하고서, 예수께 엎드려 절하였다.
39.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못 보게 하려는 것이다.”
40. 예수와 함께 있던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나서 말하였다. “우리도 눈이 먼 사람이란 말이오?”
4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눈이 먼 사람들이라면, 도리어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지금 본다고 말하니, 너희의 죄가 그대로 남아 있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어두운 길을 환하게 열어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구약, “바로 이 사람이다. 어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 (사무엘기상 16:12)
시편,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시편 23:3)
서신서, “그리스도께서 너를 환히 비추어 주실 것이다” (에베소서 5:14)
복음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복음 9:5)
오늘 요절은,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입니다. (시편 23:4)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사무엘기상 16:1-13, 시편 23)]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다’입니다.
본문의 주제는, (15장 끝 절에서 16장 첫 절로 이어지는 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꽉 막혔던 사무엘의 숨통이 트이고, 나아가
암담한 이스라엘에 새길, 바른 길이 열림입니다.
그 길은 바로 <새로운 왕 다윗을 세움>인데,
이 비밀스러운 기름부음은
뒤에 삼하 2:4, 5:3절에서 공식적으로 재현됩니다.
끝 절의, 주님의 영이 다윗을 감동하심은,
삼하 23:2절(다윗의 마지막 말)에 근거하여 <예언>으로 이어집니다.
그러고 보니 다음 장인 삼상 17:46-47절 다윗의 선포는 <예언자>의 선포로 보입니다.
이 예언은, 암담한 시대에 환하게 길을 여시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시편 23편 역시 그러한 예언자의 노래답습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좋은 목자’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좋은 목자>(1-4)로, <환대하는 주인>(5-6)으로 묘사합니다.
시인이 지금 암담한 현실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음은 4절과 5절에서 드러납니다.
성소 안에까지 뒤쫓는 원수는 4절 <죽음의 그늘골짜기>에 도사린 들짐승과 짝을 이룹니다.
좋은 목자이신 하나님은 이런 앞이 캄캄한 현실을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마침내 양처럼 약한 약자의 편에 서시어 막대기와 지팡이로 들짐승을 쫓으시듯,
그 원수 다 막아주시고, 그뿐 아니라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도 잔칫상을 차려주실 만큼 나를 환대하십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에베소서 5:8-14 / 요한복음 9:1-41)]
오늘 서신서본문의 소제목은 ‘빛의 자녀의 생활’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 어둠에 살던 이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사랑의 빛 안에 살면서
아예 빛이 되었습니다.(8)
(이는 오늘 복음서본문인 요한복음 9:5절, 그리고 마태복음 5:14절과 통합니다.)
인구 10만을 자랑하는 거대 상업(항구)도시였던 에베소의 교회가
돈과 성의 문란한 그 어둠의 세상에서도 빛을 받아 빛이 되었습니다.(8)
그러니 <빛의 자녀>답게 그 열매를 거두어야 마땅하다는 오늘 바울의 육성은,
잔뜩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오늘 한국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빛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나면서 맹인 된 사람의 치유’입니다.
본문의 주인공 맹인은 등장인물들 가운데서 가장 암담한 사람, 앞이 캄캄한 자였으나
빛이신 예수님을 만나(5) 환하게 새 길이 열립니다.
그런데 눈이 열려있다고 스스로 자신하는 바리새인들이 진짜로 맹인이었다는 것은
저들이 그리스도를 못 알아보고 오히려 죄인(24)이라고 단언하는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어둠이 어둠인줄도 모르고 어둠에 익숙하던 저들이
너무나도 강렬한 빛을 만나니(달처럼 그 빛을 반사하는 그 맹인 앞에서조차)
지금 너무너무 당황하여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입니다.
29절만 보더라도 앞뒤가 안 맞는 말 속에 그 증거들이 보입니다.(5:45-47절과 7:27절 참조)
맹인의 육의 눈뿐 아니라 영의 눈까지 환하게 열리는 장면은(38)
지난 주 본문의 수가성 여자를 떠올리고, 또한 도마의 고백을 미리 보는 듯합니다.(요 20:28)
그리고 <그리스도> 대신 <인자>로 표현하심은(35)
바로 뒤의 말씀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와 짝을 이룹니다.(39)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사순절 4째 고개를 넘어가는 오늘 4본문에서 가장 두드러진 이미지는 <빛>입니다.
사울 때문에 암울한 사무엘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한줄기 빛을 비추십니다.
“눈이 아름답고 외모도 준수한 홍안(紅顔)의 소년”(삼상 16:12) 다윗!
다윗의 빛나는 눈빛이 사무엘의 마음에 환하게 들어오고,
다윗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빛나는 영이 가득 차오릅니다.
“죽음의 그늘골짜기”(시 23:4)에서도 참 목자 나의 주님은 환한 빛이십니다.
다윗이 부른 이 노래는, 오늘 사무엘의 노래처럼도 들리고
특히 오늘 복음서본문의 맹인이었던 그 사람의 노래로도 들립니다.
오늘 에베소서 본문은 구석구석 빛을 강조합니다.
“빛의 자녀”(8), “빛의 열매”(9)는 그리스도인의 기본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합니다.
거짓말투성이 세상에서, 교회야말로 거짓말집단이라고 조롱받는 이 안타까운 시절에,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와 진실”이라는 말씀이 가슴에 박힙니다.(엡 5:9)
오늘 복음서본문의 나면서부터 맹인이었던 자가 참으로 빛납니다.
누구보다 캄캄했던 그 인생이 예수님 만나 저리 빛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의로운 척하는 바리새파 사람들 앞에서 전혀 주죽 들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어두움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저 빛나는 빛을 보십시오!(요 9:30-33)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죽음의 그늘골짜기처럼 어둡습니다.
코로나와 신천지가 뒤섞인 코로나천지 세상이
이젠 한국교회까지 욕하는 캄캄한 시절입니다.
오늘 4본문은 이 어두운 시절에 주시는 한줄기 빛 같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부디 오늘 시편 23:3절 말씀처럼
우리 모두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길,
특별히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한국교회를 인도해주시길 빕니다.
[나머지]
* 다윗 같은 아이들
매일 아침저녁 예배당에 올라 교회학교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기도해왔습니다. 그때마다 아이들에게 말씀을 들을 귀 환히 열리기를, 그래서 일찌감치 천국의 맛을 보고 탐욕에서 멀어지는 밝고 슬기롭고 너그러운 인생을 살기를, 진실하고 성실하게 살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못 만나게 된 뒤로 아이들 얼굴을, 환하게 웃는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기도합니다. 그때마다 제 마음이 환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늘 사무엘기상 16:12절 말씀을 읽으며 사무엘의 마음과 하나님 마음이 환해지시는 것을 느낍니다. “바로 이 사람이다. 어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삼상 16:12) 사울 같은 어른들 사이에서 어느새 다윗처럼 자란 아이들을 보며 한줄기 빛을 봅니다.
[말씀동시] 실로암 (김종진 지음. 몽골선교사. 하나님의어린양교회 목사. 「성실문화」102호)
눈도 안 보이는데, 사람들의 눈도 따갑구나
이유도 모르지만, 내가 무슨 죄가 많아서
아니면 엄마 아빠의 죄 때문이라고 하니
가뜩 눈도 안 보이는데 얼굴까지 들지 못하고 살았네
너 죄도 아니고, 네 부모의 탓도 아니다
그동안 덧씌워졌던 무거운 짐 내려지고
예수님 침으로 반죽한 진흙을 내 눈에 발라주셨네
진흙을 씻어내면서 어둠의 장막도 같이 사라졌네
이제 빛의 자녀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생겼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나도 해야겠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밤이 오기 전에
빛 되신 주님과 함께
[말씀시조] 모든 선과 의와 진실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02호)
모든 선과 의와 진실 빛의 열매 거둔 자여
어둠에서 참 빛 받은 빛의 자녀 그대들아
주께서 기뻐하실 일 저 어둠을 찢으라
[말씀서예] 에베소서 5:8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102호)
[시편노래] 시편 23, 주님 나의 목자시니 (이정훈 작사, 이길승 작곡. 「성실문화」102호)
[본문] (시편 23)
[노랫말]
1. 주님 나의 목자시니 나의 길 넉넉해라, 푸른 풀밭 누이시며 맑은 물로 이끄시네,
내게 다시 새 힘 주사 바른 길 가게 하네, 주의 이름 드높이는 바른 길 가게 하네
2. 주님 나의 목자시니 나의 길 안전해라, 죽음골짝 지날 때도 두렴없이 든든해라,
내 원수 눈앞에서 나의 잔을 채우시니, 넘치도록 크신 사랑 주와 함께 살고지고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홍대가까운교회’ 이길승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23 (주님 나의 목자시니) (이정훈 작사, 이길승 작곡)
[시편 송서(誦書)] 시편 23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102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 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주--의--)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다함께]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말씀동화] 아빠의 보물찾기
옛날옛날 한옛날에, 호랑이가 다람쥐랑 보물찾기하던 시절 이야기예요.
우리 아빠 별명이 뭔지 아세요?
다람쥐예요, 다람쥐!
몸집이 작고 재빠르시냐고요?
무슨 말씀을요.
우리 아빤 몸집은 산더미만하고 동작도 느리신걸요.
그럼 다람쥐처럼 귀엽게 생기셨냐고요?
풋∼, 글쎄요, 우리 아빠가 귀여우신가?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아빠 귀여운 거 맞네.
얼굴 생김새는 말고 좋아하시는 일, 취미가요!
우리 아빠 취미가 뭐냐 하면요,
우리 아빠는 저 어린 시절부터
저랑 우리 언니 진실이를 즐겁게 해주시려고
여기저기 좋은 걸 감추어두고 찾게 하는 보물찾기가 취미세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어디어디쯤을 뒤져 보렴 거기 좋은 게 있을 거다.>
그러면 언니랑 저는 반짝반짝 동그란 눈으로 얼른 가서 뒤집니다.
그럼 거기 또 <어디어디로 가서 뒤져보시오>라는 쪽지가 나오고,
또 가서 찾아보면 또 어디로 가라네?
그렇게 마치 보물섬 지도처럼 안내에 따라 여기저기
군침을 꼴깍꼴깍 삼키면서 한 열두 군데 쯤 돌다보면
오! 마침내 거기, 맛있는 과자가, 때론 달콤한 초콜릿,
심지어 곶감도 있었어요.
우리 아빠 보물찾기 취미는 참 오래갔어요.
저희 자매 유치원 때도, 초등학교 때도, 중고등학생 때도
우리 아빠 보물찾기는 조금씩 업그레이드되면서 저희를 행복하게 했죠.
우리가 맛있는 걸 되게 좋아해서 보물은 늘 맛있는 과자였지만,
때론 갖고 싶어 하는 거 살 수 있는 용돈이 예쁜 복주머니에 들어있을 때도 있었어요.
그건 그렇고, 왜 아빠가 다람쥐시냐고요?
잠깐 기다려 보세요.
이제 거의 다 왔어요.
제가 대학에 들어가서도 우리 아빠 보물찾기는 계속되었는데
언제부터였나?
아빠 기억력이 점점 떨어지시는 거예요.
아빠는 종종 보물섬 지도들을 여기저기 숨기시는 대신,
그냥 바로 보물들을 여러 개 여기저기 숨기실 때도 있었는데
맛있는 과자랑 초콜릿 숨기신 곳을 까맣게 잊으시네? 그러다
일 년쯤 지나서 대청소하다가 우연히 발견하기도 할 정도였죠.
그때마다 엄마는 아빠가 딱 다람쥐 같다며 놀리시고
우리는 다함께 깔깔 웃곤 했어요.
다람쥐들이 가을 도토리를 여기저기 잔뜩 숨겨두었다가 까맣게 잊는다잖아요.
그렇게 함께 웃으시면서도 아빠 얼굴에는 조금씩 그늘이 보였어요.
기억력 도우미는 역시 메모장이 짱이죠!
아빠는 그걸 비망록(備忘錄)이라고 부르셨어요.
비망록에서 ‘망’이 잊는다는 뜻이라죠?
잊지 않으려고 적어 두는 비망록!
아빠의 비망록은 여러 갭니다.
수첩이나 스마트폰 메모장, 때로는 포스트잇도 쓰세요.
안타까운 건, 비망록에 잘 적어두시고도 그걸 종종 잊어버리는 거죠.
그래도 아빠는 그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람쥐가 숨겨두고 잊어버리는 덕분에 온산에 도토리나무들이 저렇게 많아진 거란다.”
아빠의 건망증을 별로 염려하지 않으시는 엄마 말씀에 따르면
아빠의 건망증은 성경말씀을 너무 많이 읽기 때문이래요.
온종일 성경을 읽고 또 읽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옛 수도자들이
종종 이런저런 일들을 깜빡깜빡 잊곤 해서 생활에 불편을 겪으셨다네요.
그러고 보면 우리 아빠는 정말 성경말씀을 많이 읽으세요.
조용히 눈으로만 읽다가 소리 내어 읽기도 하고, 노래하듯 읊조리며 읽기도 하시죠.
성경을 쓰기도 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통째로 베껴 쓰기도 하고
중요한 부분을 골라 베끼는 경우도 있나 봐요.
우리 아빠가 성경을 읽으시다가 갑자기 “아멘!” 하고 소리칠 때면
언제나 눈빛이 다람쥐 눈망울처럼 초롱초롱하십니다.
오늘도 아빠가 말씀을 읽으시는 소릿결이 예사롭지 않아요.
과연 무슨 말씀이기에 저리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시는 걸까?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시편 23:4)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님 안에서 빛입니다.”(에베소서 5:8)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복음 9:5)
성경말씀 읽으시는 아빠의 음성이 점점 높아지시더니
갑자기 진실이 언니를 부르셔요.
“진실아 이리 와봐라. 여기 네 이름 나온다.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와 진실에 있습니다.’(에베소서 5:8-9)”
아빠는 평소에 거짓말을 몹시 미워하셨어요.
그래서 늘 저희들에게 진실하고 또 진실하라고 가르치셨죠.
북극곰이 빼빼 말라 죽어가고, 코로나19가 넘쳐나는 원인인 환경파괴,
이렇게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망가뜨리는 인간의 모든 탐욕의 뿌리가 바로
거짓말이라고 아빠는 확신하십니다.
하나님을 슬프게 만든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감춤과 핑계 역시(창세기 3:8-13)
옛 뱀 악마에게서 배운 그 더러운 거짓말의 결과라는 거죠.
아무튼 오늘 우리 아빠 얼굴이 매우 밝으시네요.
“내일 사순절 4째 주일 성서일과 말씀들이 참으로 밝고 힘차구나.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계속 거짓말만 하는 사울 왕(사무엘기상 15장) 때문에 어두컴컴하던 하나님 마음과 사무엘의 마음이 활짝 밝아지는 이 장면을 보렴. <바로 이 사람이다. 어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 저 사울처럼 거짓투성이 어른들과 달리 홍안의 소년 다윗처럼 푸르른 너희 청춘들이 있어서 아직 우리나라의 앞길은 환하다.”(사무엘기상 16:12)
아빠의 눈빛이 저리 밝디 밝은 ‘하트 눈’이 되신 걸 보면
아마 아빠의 머릿속을 캄캄하게 만드는 건망증도 다 날아가고
환히 밝아지신 게 틀림없어요.
“참! 내일이 우리 성실이 생일이구나. 우리 기념으로 성실이 스물다섯 살 축하 보물찾기 한판 어때?”
산타할아버지가 몰래 다녀가는 선물보다 더 재미있고 달콤한 우리 아빠 표 보물찾기!
과연 오늘 준비하신 아빠의 선물은 뭘까요?
아빠의 보물찾기만 생각하면
아직도 우리는 가슴이 설렙니다.
[이정훈 지음. 2020년 3월 21일 토요일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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