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말씀을 듣고서, 믿게 되었다”(요한복음 4:41)
[성서일과 4본문]
(출애굽기 17:1-7)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은 신 광야를 떠나서, 주님의 명령대로 진을 옮겨 가면서 이동하였다. 그들은 르비딤에 진을 쳤는데, 거기에는 백성이 마실 물이 없었다.
2. 백성이 모세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대들었다. 이에 모세가 “당신들은 어찌하여 나에게 대드십니까? 어찌하여 주님을 시험하십니까?” 하고 책망하였다.
3. 그러나 거기에 있는 백성은 몹시 목이 말라서, 모세를 원망하며, 모세가 왜 그들을 이집트에서 데려왔느냐고, 그들과 그들의 자식들과 그들이 먹이는 집짐승들을 목말라 죽게 할 작정이냐고 하면서 대들었다.
4.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었다. “이 백성을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은 지금이라도 곧 저를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합니다.”
5.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이 백성보다 앞서서 가거라. 그리고 나일 강을 친 그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거라.
6. 이제 내가 저기 호렙 산 바위 위에서 너의 앞에 서겠으니, 너는 그 바위를 쳐라. 그러면 거기에서 이 백성이 마실 물이 터져 나올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이 보는 앞에서,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하였다.
7.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에서 주님께 대들었다고 해서, 사람들은 그 곳의 이름을 므리바라고도 하고, 또 거기에서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 하면서 주님을 시험하였다고 해서, 그 곳의 이름을 맛사라고도 한다.
(시편 95)
1. 오너라, 우리가 주님께 즐거이 노래하자. 우리를 구원하시는 반석을 보고, 소리 높여 외치자.
2. 찬송을 부르며 그의 앞으로 나아가서, 노래 가락에 맞추어, 그분께 즐겁게 소리 높여 외치자.
3. 주님은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 위에 뛰어나신 왕이시다.
4. 땅의 깊은 곳도 그 손 안에 있고, 산의 높은 꼭대기도 그의 것이다.
5. 바다도 그의 것이며, 그가 지으신 것이다. 마른 땅도 그가 손으로 빚으신 것이다.
6. 오너라, 우리가 엎드려 경배하자. 우리를 지으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자.
7.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가 손수 이끄시는 양 떼다. 오늘, 너희는 그의 음성을 들어 보아라.
8. “므리바에서처럼, 맛사 광야에 있을 때처럼, 너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
9. 너희의 조상들은 그 때에,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하고 또 시험하였다.
10. 사십 년을 지나면서, 나는 그 세대를 보고 싫증이 나서 ‘그들은 마음이 빗나간 백성이요, 나의 길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구나’ 하였고,
11. 내가 화가 나서 ‘그들은 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하고 맹세까지 하였다.”
(로마서 5:1-11)
1.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2.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아오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소망을 품고 자랑을 합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을 자랑합니다. 우리가 알기로,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4.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5.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6. 우리가 아직 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제 때에, 경건하지 않은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7. 의인을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더욱이 선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감히 죽을 사람은 드뭅니다.
8.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되었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합니다.
10.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일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한 일입니다.
11.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를 하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4:5-42)
5. 예수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는 마을에 이르셨다. 이 마을은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곳이며,
6. 야곱의 우물이 거기에 있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피로하셔서 우물가에 앉으셨다. 때는 오정쯤이었다.
7. 한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으러 나왔다.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마실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하셨다.
8.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가서, 그 자리에 없었다.
9.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은 유대 사람인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유대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과 상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10.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알고, 또 너에게 물을 달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았더라면, 도리어 네가 그에게 청하였을 것이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11. 여자가 말하였다. “선생님, 선생님에게는 두레박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선생님은 어디에서 생수를 구하신다는 말입니까?
12. 선생님이 우리 조상 야곱보다 더 위대하신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는 우리에게 이 우물을 주었고, 그와 그 자녀들과 그 가축까지, 다 이 우물의 물을 마셨습니다.”
13.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
15. 그 여자가 말하였다. “선생님, 그 물을 나에게 주셔서, 내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여기까지 나오지도 않게 해주십시오.”
16.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너라.”
17. 그 여자가 대답하였다. “나에게는 남편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남편이 없다고 한 말이 옳다.
18. 너에게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바로 말하였다.”
19. 여자가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이십니다.
20. 우리 조상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선생님네 사람들은 예배드려야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2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여자여,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아버지께,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22. 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을 예배한다. 구원은 유대 사람들에게서 나기 때문이다.
23.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24.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25. 여자가 예수께 말했다. “나는 그리스도라고 하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압니다. 그가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26.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에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다.”
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그 여자와 말씀을 나누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예수께 “웬일이십니까?” 하거나, “어찌하여 이 여자와 말씀을 나누고 계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28. 그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29. “내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히신 분이 계십니다.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닐까요?”
30. 사람들이 동네에서 나와서, 예수께로 갔다.
31. 그러는 동안에, 제자들이 예수께, “랍비님, 잡수십시오” 하고 권하였다.
32.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에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 하셨다.
33. 제자들은 “누가 잡수실 것을 가져다 드렸을까?” 하고 서로 말하였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이다.
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 때가 된다고 하지 않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눈을 들어서 밭을 보아라. 이미 곡식이 익어서, 거둘 때가 되었다.
36. 추수하는 사람은 품삯을 받으며,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거두어들인다. 그리하면 씨를 뿌리는 사람과 추수하는 사람이 함께 기뻐할 것이다.
37. 그러므로 '한 사람은 심고, 한 사람은 거둔다'는 말이 옳다.
38. 나는 너희를 보내서, 너희가 수고하지 않은 것을 거두게 하였다. 수고는 남들이 하였는데, 너희는 그들의 수고의 결실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39. 그 동네에서 많은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것은 그 여자가, 자기가 한 일을 예수께서 다 알아맞히셨다고 증언하였기 때문이다.
40.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머무시기를 청하므로, 예수께서는 이틀 동안 거기에 머무르셨다.
41.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서, 믿게 되었다.
42. 그들은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제 당신의 말 때문만은 아니오. 우리가 그 말씀을 직접 들어보고, 이분이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심을 알았기 때문이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구원’입니다.
구약, “거기에서 이 백성이 마실 물이 터져 나올 것이다” (출애굽기 17:6)
시편, “우리를 구원하시는 반석” (시편 95:1)
서신서,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얻으리라는” (로마서 5:9)
복음서, “이분이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심을 알았기 때문이오” (요한복음 4:42)
오늘 요절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서, 믿게 되었다”입니다. (요한복음 4:41)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출애굽기 17:1-7, 시편 95)]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바위에서 물이 솟다’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투덜거리는 백성의 모습은
<늘 의식주문제로 하나님 사랑을 잊어버리는> 우리 모두의 고질병을 보여줍니다.
백성은 이미 바로 앞 15:22-25의 ‘마라’에서 겪었음에도 금세 또 물타령을 하는 것입니다.
물이 부족할 때 그 고통과 두려움은 인지상정이나
하나님께서 친히 이끌어내시고 동행하시는 출애굽이라는 특수상황에서,
더욱이 이미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거듭 겪었음에도 반복해서 불평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다시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몸소 “저기 호렙산 바위 위에서”
모세 앞에 서 계시겠다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6)
두려움에 빠진 백성과 모세를 위한 하나님의 적극적인 구원의 손길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주님께 예배하고 복종하여라’입니다.
이 시편의 시인은 성전에 모인 회중에게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보존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외칩니다.
그 하나님을 잊고 불평만 일삼는 자들은
오늘 구약본문의 백성이 결국 약속의 땅에 들지 못하였듯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지 못할 것입니다.(11)
이는 신약의 히브리서 3:7∼4:11절로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히브리서의 “안식”개념은 공관복음의 “하나님나라”와, 요한복음의 “생명”처럼 모든 소망의 총괄개념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로마서 5:1-11 / 요한복음 4:5-42)]
오늘 서신서본문의 소제목은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는 평화’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1)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소망을 품은 자(2),
그리고 환난을 자랑하는 자(3)>로 요약합니다.
이를 늘 기뻐하고 자랑하는 자가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특히 환난 때마다 하나님을 의심하고 시험하는 오늘 광야백성과 구별됩니다.
이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을 때 다다를 경지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이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요,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 사랑과 그 나라의 소망이 가득하게 된 자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예수와 사마리아 여자’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사마리아 수가성 여자는,
예수님을 만나 점점 변화하여 믿음에 이르는 그리스도인,
개과천선 환골탈태 인생의 모범입니다.
육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의 대표인 수가성 여자가
처음에는 예수님의 겉모습만 보다가,
예수님 말씀 들으며 차차 영안이 열립니다.
대화가 감정적인 대립으로 전개되어가던 정점에서
예수님은 그 여자의 아킬레스건을 짚으십니다.(16)
그 뒤로 여자의 눈이 열려가며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 대화의 매개는 <물>이었고,
물의 의미 역시 육에서 영으로 변화해 갑니다.
예수님의 <물>을(10, 14)을 육적인 것으로 오해하다가
대화가 무르익어가며 차차 그 영적인 뜻을 감지하였을 것입니다.
제자들 역시 그 여자처럼 예수님의 <양식>을 육적인 것으로 오해합니다.(33)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제자들도 차차 눈이 열려갑니다.
그 과정의 35절 하반부는, 마치 몰려오는 수가성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수가성 사람들도 그 여자처럼, 그리고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눈이 활짝 열립니다.(42)
오늘 복음서본문의 알맹이는
<예수님 말씀을 듣는 자들의 행복-구원의 기쁨>입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사순절 3주 성서일과들의 공통 주제는 ‘구원’입니다.
구약은 백성이 갈증에서, 그 공포에서 해방되는 장면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앞 15장에서 이미 물타령을 하다 하나님의 은혜를 겪었고,
그러자마자 또 16장에서 먹을거리 타령하다가 또 하나님의 은혜,
만나와 메추라기 역사를 겪었음에도 금세 또 불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단기간 동안 연속해서 이런 은혜를 겪었다면,
불평이 아니라 스스로 돌아보며 무릎 꿇고 기도했어야 옳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사랑 기억력이, 믿음이, 의식주문제 앞에서 이렇게 연약하고 강퍅합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본문은 바로 이러한 우리네 아킬레스건을 짚습니다.
지으셨을 뿐 아니라 내내 기르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을 노래하고 환호하기는커녕
까맣게 잊어버리고 저 므리바에서처럼 투덜거릴 때
하나님의 은혜는커녕 그 진노를 보게 된다고 노래합니다.(11)
그런데 오늘 서선서의 바울은, 이러한 천방지축 인생임에도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얻는 길,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노래합니다.(9)
그리고 오늘 복음서본문에서 예수님은
마치 오늘 육에 사로잡혀 사는 우리를 대표하는 것 같은
수가성 여자의 아킬레스건을 짚으십니다.
그리하여 영안이 열린 그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달려가 전도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만난 수가성 사람들은
예수님 말씀을 이틀 내내 경청하며
에바다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 그리스도를 고백하기에 이릅니다.(42)
코로나19와 신천지가 뒤섞인 바이러스천지에서
세상 사람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사재기를 합니다.
너도나도 중국을, 신천지를, 정부를 향하여 투덜거립니다.
그보다 먼저 코로나19의 원인인 자연파괴, 인간의 탐욕을 반성해야 할 때임에도.
므리바 같은 이 시대에 “저기 호렙산 바위 위에서”(출 17:6)
우리 앞에 서 계실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그 바위는 무엇인지 찾아봐야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연약한 인생의 아킬레스건을 짚으신 것은
너, 나, 우리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려는 것입니다.
어느새 추수 때입니다.(요 4:35)
사순절 세 번째 고갯마루에서, 수가성 사람들처럼
주님 말씀 경청하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재발견할 때입니다.
[나머지]
* “나의 양식은...”(요한 4:34)
예수님의 이 말씀은 생명의 기초인 물타령 뒤에 나온 비유입니다. 양식은 물과 더불어 생명의 기본입니다. 즉, 목숨과 같이 소중하다는 뜻입니다. ‘그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34절)은 목숨처럼 소중한 일입니다.
** 므리바 물타령과 수가성 물타령
오늘 구약본문에는 백성이 물타령 끝에 “호렙산 바위”에서 생명수를 얻는 장면이 나옵니다.(6) 그런데 이것은 얼마 뒤에 호렙산(=시내산)에서 말씀을 받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20장) 그런데 생명수에서 생명의 말씀으로 이어지는 이 장면은 오늘 복음서본문에서 반복됩니다. 물타령하던 수가성 여인이 동네사람들과 함께 예수님 생명의 말씀을 받는 장면 말입니다.
*** 불화의 물, 화해의 물
우리 믿음의 아킬레스건이 바로 돈인데, 오늘 본문은 그보다 더 근원적인 아킬레스건을 보여주십니다. 바로 물입니다. 오늘 4본문의 또 하나의 알맹이는 하나님과의 불화, 그리고 화해(예배)입니다. 바람 앞의 갈대 같은 우리 믿음은, 시도 때도 없이 주님께 대들고 시험하고 불화합니다. ‘과연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출 17:7) 이런 불신앙이 지금 내 모습이라는 것을 오늘 구약본문은 거울처럼 보여주십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은 구약본문처럼 ‘물’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대들었다”면(출 17:2),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마실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하십니다.(요 4:7) 구약본문의 물이 불화의 동기였다면, 복음서본문의 물은 화해의 끈이 됩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에는 불화의 상징들이 즐비합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남자와 여자, 윤리와 방종, ‘이 산(그리심 산)’과 예루살렘 등입니다. 이런 불화, 불신, 편견, 벽들을 예수님께서 하나하나 허물어버리십니다. 그 결과 사마리아 사람들이, 제자들보다도 먼저, ‘랍비’가 아니라, ‘예언자’를 넘어, “그리스도”(29), “세상의 구주”(42)로 고백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본문의 정 가운데서 예수님께서는 ‘참 예배’의 알맹이를 보여주십니다.(23)
오늘 복음서본문에는 예수님의 역설적인 가르침이 돋보입니다. 구약본문의 ‘불화의 물’과 복음서본문의 ‘화해의 물’이 짝을 이루듯이, “내가 주는 물”(14)과 “나의 양식”(34)이 대를 이룹니다.
**** 목마르신 예수님, 배고프신 예수님
구약본문에서 이미 살폈듯이, 인간 생명의 가장 근본이 되는, 그래서 하나님 신앙의 아킬레스건이 되는 ‘물’과 ‘밥’, 자칫 불신앙, 하나님과의 불화의 불씨가 되기 십상인 ‘물’과 ‘밥’으로, 오히려 화해의 물꼬를 트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님께서는 배고프고(8) 목이 마른(6, 7) 상태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먹을거리를 사러 동네로 들어갔고,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요청하십니다. 배고픈 상태, 목마른 상태에서 하나님과 불화했던 백성들과 달리, 예수님은 그 상태를 오히려 하나님과 화해시킬 기회로 바꾸신 것입니다. 목마르신 분이 오히려 “내가 주는 물”을 설파하십니다. 배고프신 분이 오히려 “나의 양식”을 설파하십니다.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32)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어드리는 것(34) 때문에 밥 안 먹어도 배부르신 마음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과 밥은 여러 의미가 담깁니다. 특히 요한복음 6장 22절 이하의 말씀은 그 극치를 이룹니다. 물론 이 모두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 즉 완전한 화해, 완전한 하나 됨, 즉 완전한 선교입니다.
“내 살은 참 양식이요, 내 피는 참 음료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있다.”(요한복음 6:55-56)
길을 가다보니 어느덧,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출 17:7) 이런 질문이 무색해집니다.
(※ 3년 전에 올린 것을 다듬어 올립니다)
[말씀동시] 샘물 (이찬영 지음. 시냇물교회 청년부. 「성실문화」 102호)
하늘에서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고
살랑 부는 바람에 향긋한 봄내음이 실려오며
들에는 생명을 가진 풀들이 푸르게 자라나던
기분 좋은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 어느 날에
우물가에 예수께서 앉아 나를 부르신다면
그리고 영생에 이르는 샘물을 주신다면
그 샘물은 어린 아이의 마음과 같이 맑으며
오랜 경험을 가진 어른들보다 지혜롭고
목마른 자가 마시는 물처럼 귀할 것이니
그 샘물은 곧 우리 주님
나는 주님을 믿고 내 안에 받아들입니다.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말씀시조] 죄인 위해 죽으신 분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02호)
죄인 위해 죽으신 분 예수님 그 은혜로
하나님과 화해하고 평화를 누리도다
하나님 사랑과 생명 우리 안에 부으사
[말씀서예] 로마서 5:1,2,9,11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 102호)
[시편노래] 시편 95, 오너라 노래하자 (이정훈 작사, 홍의종 작곡. 「성실문화」 102호)
[본문] (시편 95)
[노랫말]
1. 오너라 노래하자 즐거이 노래하자, 창조와 구원의 주 주님께 노래하자,
온 땅과 산과 바다 주가 손수 지으셨다, 신들 위에 뛰어난 왕 크신 주께 환호하자
2. 오너라 경배하자 엎드려 경배하자, 창조와 구원의 주 주님 앞에 무릎 꿇자,
므리바 맛사광야 고집을 버리거라, 사십년 광야고집 주님 앞에 무릎 꿇자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전일교회 홍의종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95 (오너라 노래하자) (이정훈 작사, 홍의종 작곡)
[시편 송서(誦書)] 시편 95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02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3.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
4. 땅의 깊은 곳이 그의 손 안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
5.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7. 그-는 우리의 하나-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9. 그 때에 너-희 조상-들이-, 내가 행-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 (시험-)하고-, (나-를) 조-사하였-도다-∼
10.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다함께]
11.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말씀동화] 은비까비가 호렙산에서 그리심산까지 여행한 까닭은?
옛날옛날 한옛날에, 호랑이가 구름타고 세계일주 하던 시절 이야기예요.
오늘 이야기는 은비랑 까비랑 구름타고 다니면서
온 세상 사람들 눈매를 살피는 이야기야.
왜 사람 눈매를 살피냐고?
좋은 질문이군.
왜냐하면, 그건 하늘나라에서 받은 매우 중요한 미션이기 때문이지!
오랜 옛날부터,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실 때부터
사람의 눈은 그 사람의 마음을 보여주는 창이었거든.
그래서 사람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는 은비까비는
사람들 눈매를 보고 그 사람 마음이 좋은지 나쁜지 알아차렸단다.
오늘도 은비까비는 천사 가브리엘의 명령을 받고 먼 여행을 다녀오는 길이야.
은비까비는 천사가 만들어준 슈퍼 구름비행기를 타고 어디든 언제든 마음껏 다니는데
오늘은 자그마치 1500년이나 되는 시간을 넘어서
멀리 시나이반도까지 다녀오는 중이란다. 정말 대단하지?
호렙산 바위 앞에서 지팡이를 번쩍 들던 모세의 눈은 이글이글 불꽃같았고,
바위에서 물이 터져 나오는 장면을 바라보는 장로들 눈은(출애굽기 17:6)
전부 다 초코파이처럼 휘둥그랬단다.
은비가 모세랑 장로들의 눈매를 부지런히 사진 찍었고
까비가 얼른 천사 가브리엘한테 까톡 보내자마자
은비까비는 얼른, 저 백성들 투덜대고 아우성치던
정신없는 호렙산을 부리나케 떠났어.
호렙산을 떠나 도착한 산은 그리심산이라는 곳이야.
그리심산은 호렙산보다 한참 위에 있는데,
거리도 거리지만, 자그마치 1500년이나 되는 시간을 단번에 훌쩍 건너다보니
은비랑 까비가 지금 정신이 얼얼한가봐.
그래도 은비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그리심산 저 아래 마을을 유심히 살피는데,
마을 근처 우물가에서 어떤 남자와 여자가 한창 대화중이네?
무슨 대화인지는 몰라도 은비랑 까비에게 지금 중요한 건 눈매지, 눈매!
까비도 이제 정신이 좀 드는지 졸린 눈을 비비다가 눈이 동그래지네.
“저 남자 누굴까? 눈에서 천사 가브리엘님보다 훨씬 더 맑고 밝은 빛이 나는 걸?”
벌써 알아본 은비도 눈빛이 두 배로 초롱초롱해져서 두 사람의 눈매를 살피더니,
“까비야, 지금 저 여자 눈매가 정말 재미있어. 눈빛이 바뀌는 게 정말 변화무쌍해!”
까비도 눈을 왕방울만 하게 뜨고 물동이를 든 여자의 눈매를 살피는데
정말 변화무쌍하게 변하고 또 변하네.
처음에 낯선 남자를 보았을 때부터 눈매가 가늘어지나 싶더니
점점 더 가늘어지는 걸 보니 아마 기분도 상하고 잔뜩 긴장하고 있나봐.
은비랑 까비가 초롱초롱 눈으로 두 사람의 눈매를 살피는 한편
귀를 쫑긋 세우고 그들의 대화를 열심히 듣고 있네.
“선생님은 유대 사람인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시죠?”(요한복음 4:9)
“선생님, 선생님에게는 두레박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선생님은 어디에서 생수를 구하신다는 말이죠?”(11)
“선생님이 우리 조상 야곱보다 더 위대하신 분이라는 말입니까?”(12)
“그는 우리에게 이 우물을 주었고, 그와 그 자녀들과 그 가축까지, 다 이 우물의 물을 마셨어요.”(12)
“선생님, 그 물을 나에게 주셔서, 내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여기까지 나오지도 않게 해주세요.”(15)
선생님이라는 저 남자의 목소리는 차분한데
여자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눈매도 점점 ‘짜장소녀 뿌까’ 눈처럼 가늘어지고 있어.
마지막 말을 할 때는 고개를 휙 돌려버리네.
그러자 선생님이 뭐라고 한마디 하자마자 여자의 눈이 금세 도끼눈으로 변하는 거야.
‘염라공주 모모레’ 눈 같은 도끼눈!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너라.”(16)
바로 이 말이었어.
그런데 왜 갑자기 도끼눈이 된 걸까?
어라? 그런데 또 몇 마디 주고받더니 도끼눈이 금세 초코파이 눈으로 변하네?
“선생님, 내가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이십니다.”(19)
은비의 사진기에서 찰칵찰칵 바쁘게 사진 찍는 소리가 요란하고
군침을 꿀꺽꿀꺽 삼키는 까비의 손에서는 땀이 한강수야.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닌 거야.
선생님 말씀 들으면서, 초코파이였던 저 여자의 눈이 대왕초코파이만큼 커지더니
선생님이 또 한 말씀하시자, 순식간에 하트눈으로 변하네.
바로 그때 선생님, 아내 예언자님의 제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하트눈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둔 채 마을로 달려가기 시작했어.
어리둥절한 예언자의 제자들이 선생님과 대화하던 중에
우루루 그 하트눈 여자를 따라온 수가마을 사람들이 선생님께 몰려드네.
많은 사람들의 눈매들은 제각각이었어.
뿌까눈도 있었고, 초롱초롱 샛별눈도, 벌써부터 초코파이 눈도 있었지.
그런데 선생님 말씀을 듣기 시작하면서 너도나도 하나 둘 모두 하트눈이 되어가네?
도대체 저 남자, 아니 저 예언자 선생님은 누굴까?
세상에서 가장 눈이 맑고 밝은 저 남자는 과연 누굴까?
그나저나 우리 은비랑 까비는 걱정이 태산이네.
지금까지 온 세상 다니면서, 온 시절 왔다갔다하면서, 참 많은 사람들 눈매사진 찍어왔지만
저렇게 변화무쌍한 눈은 처음이거든.
뿌까눈이었다가, 도끼눈으로, 초코파이눈이었다가 대왕초코파이눈, 그리고 하트눈까지!
보나마나 가브리엘 천사가 투덜거릴게 뻔하네 뻔해.
이리 변화무쌍하게 마음이 변했다니, 이게 실화냐?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말씀을 들었기에 저렇게 변한 거냐?
그 설명을 해야 하는데, 도대체 정리가 안 되네?
나도 궁금해.
도대체 저 여자는 남편을 데려오라는 말씀을 듣고 왜 도끼눈이 되고
또 무슨 말씀 들었기에 하트눈으로 변한 걸까?
정말 궁금해... 뭐라고? 요한복음말씀에 자세히 나온다고?
그렇군. 얼른 은비까비에게 알려줘야겠다.
그럼 은비까비는 요한복음 책을 구하러 얼른 너희에게로 2천년 여행을 떠나겠지?
너희도 늘 고운 눈매로 하루하루 지내기 바래.
은비까비는 언제 어디서든 눈매 사진찍기 선수거든.
[이정훈 지음. 2020년 3월 14일 토요일 오후]
(만화영화 「은비까비 옛날옛적에」와 웹툰 「짜장소녀 뿌까」, 「염라공주 모모레」등의 주인공을 참고했습니다.
요한복음 4장 예수님과 수가성 여자의 앞부분 15절까지의 대화를, 여자의 감정이 점점 상해가는 갈등 상황으로 해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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