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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3주 (2019년 5월 5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내 어린양떼를 먹여라(요한복음 21:15)

 

[성서일과 4본문]

(사도행전 9:1-6 (7-20))

1.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위협하면서, 살기를 띠고 있었다. 그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마스쿠스에 있는 여러 회당으로 보내는 편지를 써 달라고 하였다. 그는 그 를 믿는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묶어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려는 것이었다.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다.

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그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다.

5. 그래서 그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6.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7. 그와 동행하는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으나, 아무도 보이지는 않으므로, 말을 못하고 멍하게 서 있었다.

8.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서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끌고, 다마스쿠스로 데리고 갔다.

9. 그는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10. 그런데 다마스쿠스에는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었다.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서 아나니아야!” 하고 부르시니, 아나니아가 주님, 여기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11.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곧은 길이라 부르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사울이라는 다소 사람을 찾아라. 그는 지금 기도하고 있다.

12. 그는 [환상 속에]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손을 얹어 시력을 회복시켜 주는 것을 보았다.”

13. 아나니아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해를 끼쳤는지를, 나는 많은 사람에게서 들었습니다.

14.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잡아 갈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그는 내 이름을 이방 사람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가지고 갈, 내가 택한 내 그릇이다.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지를, 내가 그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17. 그래서 아나니아가 떠나서,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손을 얹고 형제 사울이여, 그대가 오는 도중에 그대에게 나타나신 주 예수께서 나를 보내셨소. 그것은 그대가 시력을 회복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도록 하시려는 것이오하고 말하였다.

18.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가고, 그는 시력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그는 일어나서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냈다.

20. 그런 다음에 그는 곧 여러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였다.

 

(시편 30)

1. 주님, 주님께서 나를 수렁에서 건져 주시고, 내 원수가 나를 비웃지 못하게 해주셨으니, 내가 주님을 우러러 찬양하렵니다.

2. ,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께 울부짖었더니, 주님께서 나를 고쳐 주셨습니다.

3. 주님, 스올에서 이 몸을 끌어올리셨고, 무덤으로 내려간 사람들 가운데서, 나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4. 주님을 믿는 성도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여라.

5. 주님의 진노는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영원하니, 밤새도록 눈물을 흘려도, 새벽이 오면 기쁨이 넘친다.

6. 내가 편히 지낼 때에는 "이제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겠지" 하였지만,

7. , 태산보다 더 든든하게 은총으로 나를 지켜 주시던 주님께서 나를 외면하시자마자 나는 그만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8. 주님, 내가 주님께 부르짖었고, 주님께 은혜를 간구하였습니다.

9. 내가 죽은들 주님께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내가 죽어 구덩이에 던져지는 것이 주님께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한 줌의 티끌이 주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한 줌의 흙이 주님의 진리를 전파할 수 있습니까?

10. 주님, 귀를 기울이시고 들어 주십시오.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 주님께서 나를 돕는 분이 되어 주십시오.

11. 주님께서는 내 통곡을 기쁨의 춤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나에게서 슬픔의 상복을 벗기시고, 기쁨의 나들이옷을 갈아입히셨기에

12. 내 영혼이 잠잠할 수 없어서,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 나의 하나님, 내가 영원토록 주님께 감사를 드리렵니다.

 

(요한계시록 5:11-14)

11. 나는 또 그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를 보고, 그들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그들의 수는 수천수만이었습니다.

12. 그들은 큰 소리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권세와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하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13. 나는 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과, 또 그들 가운데 있는 만물이, 이런 말로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 양께서는 찬양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영원무궁 하도록 받으십시오.”

14. 그러자 네 생물은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서 경배하였습니다.

 

(요한복음 21:1-19)

1. 그 뒤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는데, 그가 나타나신 경위는 이러하다.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제자들 가운데서 다른 두 사람이 한 자리에 있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나가서 배를 탔다. 그러나 그 날 밤에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4. 이미 동틀 무렵이 되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들어서셨으나, 제자들은 그가 예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5.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리하면 잡을 것이다.” 제자들이 그물을 던지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서, 그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7. 예수가 사랑하시는 제자가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시다하고 말하였다. 시몬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서, 벗었던 몸에다가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내렸다.

8. 그러나 나머지 제자들은 작은 배를 탄 채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면서, 해안으로 나왔다. 그들은 육지에서 백 자 남짓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들어가서 고기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9. 그들이 땅에 올라와서 보니, 숯불을 피워 놓았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지금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오너라.”

11.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가서, 그물을 땅으로 끌어내렸다. 그물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렇게 많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제자들 가운데서 아무도 감히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주님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13. 예수께서 가까이 오셔서, 빵을 집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이와 같이 생선도 주셨다.

14.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신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15. 그들이 아침을 먹은 뒤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 떼를 먹여라.”

16. 예수께서 두 번째로 그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쳐라.”

17. 예수께서 세 번째로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때에 베드로는, [예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이나 물으시므로, 불안해서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먹여라.

18.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다녔으나, 네가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릴 것이고, 너를 묶어서 네가 바라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다.”

19.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를 암시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알맹이는 부활예수 만나 새로워지다입니다.

 

사도행전, “그는 곧 여러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였다”(사도행전 9:20)

시편, “나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시편 30:3)

서신서, “찬양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영원무궁하도록 받으십시오”(계시록 5:13)

복음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아십니다”(요한복음 21:15,16,17)

 

오늘 요절은, “내 어린양떼를 먹여라입니다.(요한복음 21:15)

 

 

[사도행전과 시편본문 정리 (사도행전 9:1-6(7-20) / 시편 30)]

오늘 사도행전본문 소제목은 사울의 회개입니다.

부활예수님의 가장 대표적인 적대자였던 사울이 가장 적극적인 전도자로 변화한 것은

부활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그동안 제자들, 즉 교회를 핍박한 것은 곧 예수님을 핍박한 것이었습니다.(4-5)

 

그 제자 중 하나인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하고 세례를 줍니다.

그 과정에서 사울은 눈이 열리고,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

부활 예수님을 전도하기에 이릅니다.(20)

 

거룩하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聖徒)”를 핍박하던 사울이(14)

오히려 주님의 이름때문에 고난당하는 자로,

부활예수 만나, 거룩한 성도로 변화한 것입니다.(16)

 

오늘 시편본문 소제목은 감사의 기도입니다.

원래는 개인 치유 감사시였는데,

주전 165년 경, 훼손된 성전을 다시 세운 성전봉헌을 기념하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성전(聖殿)은 곧 성도(聖徒)의 모임, 즉 교회입니다.

4절의 성도는 사도행전 13절의 성도와 짝을 이루는데,

사울 때문에 훼손되었던 성도들이 회복되고, 사울 또한 성도로 변화한 <성전회복 사건>!

그러므로 이 노래는 오늘 사도행전 본문의 온 성도들의 감사노래로 안성맞춤 찬양입니다.

 

나를 고쳐주시고(2), 나를 회복시켜주시고(3),

마치 옷 갈아입듯 쉽게 내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주실 수 있는 분,

베드로를 바울을 저렇게 변화시키신 분,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11)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요한계시록 5:11-14 / 요한복음 21:1-19)]

오늘 서신서본문 소제목은 두루마리와 어린양입니다.

희생양처럼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어린양이라고 지칭합니다.(12)

그런데 어린양은 지금 하나님 옆에 계시고 경배 받으십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어 하나님께 통치권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앞의 두 절은 수천수만의 천사들의 찬양이고,

뒤의 두 절은 천하만물의 찬양입니다.

천사들이, 교회를 대표하는 일곱 교회가 바치는 듯, 일곱 헌사를 한 것과(12)

만물들이 네 가지 헌사를 하자(13) 네 생물이 아멘!”으로 화답한 것이(14)

마치 짝을 이루는 듯합니다.

 

오늘 복음서본문 소제목은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시다, 내 양떼를 먹이라입니다.

2절의 일곱 제자는 계시록 1:11절의 일곱 교회, 즉 교회 전체의 대표를 암시합니다.

예수님 명을 따르자 고기를 많이 잡게 된 것은(6),

예수님 처음 만나 제자가 되었을 때를 기억나게 합니다.(5:1-9)

 

예수님의 3차례 똑같은 질문은 베드로의 3차례 예수 부인을 기억나게 합니다.

특히 첫 질문은(15,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마가복음 14:29절을 기억나게 하며(비록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공동번역)

예수님은 이 3차례 질의응답 과정으로 베드로를 치유하고 세우십니다.(13:37-38)

 

37.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왜 지금은 내가 따라갈 수 없습니까? 나는 주님을 위하여서는 내 목숨이라도 바치겠습니다."
38.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이라도 바치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정으로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해설 일부 참조)

 

 

[정리]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니 베드로가 변하고 사울도 변합니다.

베드로의 변화과정이 눈물겹고,

사울의 변화과정이 가슴 벅찹니다.

 

큰 고기떼를 잡은 뒤에(6) 베드로는 예수님 첫 만남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누가 5:10)

그러자 예수님께서 바로 물으시고 바로 명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어린양떼를 먹여라”(15)

 

우리는 베드로가 뒤에 이런 제자로 변화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그런 바울로 변화한 것도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입니다.

 

그 어린양떼로서 말씀을 받아먹으며

어린양 예수님의 몸, 교회로 자라난 우리가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어린양 가신 길을 따르고 있는지...(21:19)

 

오늘은 어린이 날입니다.

내 어린양 떼를 먹여라는 예수님 말씀이 가슴을 찌릅니다.

소파(小波) 방정환은 천도교인으로서

예수님의 이 말씀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실천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처럼 서른 셋 짧은 나이를 살면서도

누구 못지않게 마음껏 어린이를 사랑하였고

식민지 시대 굶주린 어린이들을 먹이기 위해

수많은 글을 짓고 책을 만든 사람입니다.

 

10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잔잔히 퍼지고 있는

잔물결 소파(小波)의 정신과 작품들이 아름답습니다.

 

한국교회는 이제부터라도, 교회를 향하신 예수님의 명을 기억하여,

우리가 진정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이 땅의 어린양떼 같은 어린이들을 먹이는 일에

방정환처럼 몰두해야 할 것입니다.

 

 

 

[나머지]

* 오늘 본문 가운데 짝을 이루는 구절들

먼저 부르심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행전 9:4)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한 21:15-17)

 

이어서 급식(給食)’입니다.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다.’(행전 9:19)

와서 아침을 먹어라”(요한 21:12)

내 양떼를 먹여라”(요한 21:15-17)

 

그리고 고난함께입니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지를, 내가 그에게 보여주려고 한다.”(행전 9:16)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를 암시하신 것이다.”(요한 21:19)

 

예수님처럼 내가 죽어 너를 살리는 급식의 길, ‘고난 함께입니다.

그 길 가라고, 부활예수님께서 오늘도 제 길 찾지 못하고 있는 우리를 부르십니다.

 

** 오늘 시 30편은 수전절 찬양시

주전 165년에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의해 더럽혀지고 파괴된 성전을 정결하게 재건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가 바로 수전절(광명절, 성전봉헌절)입니다. 오늘 시 30편은 이 수전절에 부르는 시편찬양입니다. 이 시편을 묵상하면서, 수전절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을 느낍니다. 수전절은 성경전서 중에 요한복음 10장에 딱 한 번 나오는 절기입니다. 말씀이신 주님,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로마군에게, 유대인들에게 모욕당하시고, 그렇게 온몸이 허물어지고 다시 부활하신, 십자가 수난과 부활이 수전절의 의미와 똑같습니다. 바로 이 절기를 지키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오르신 예수님, 성전 솔로몬 행각을 거니신 요한복음 10장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그 때 무슨 묵상을 하셨을지 묵상합니다. (마침 다음 주일인 부활절 4주 본문이네요!)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복음서의 부활 예수님과 베드로의 새벽 대화에 나오는 사랑의 희랍어 단어가 아가페와 필리아로 구분되는 것에 대해, 구별된 의미로 보는 입장과, 차이 없이 썼던 당시 문화를 주장하는 입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묵상에서는, 베드로의 죽음을 암시하시는 대목과, “내 양떼를 먹여라고 하시는 말씀,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말씀 때문에, 아가페의 의미가 더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아가페는 당신의 몸을 먹이로 주신 하나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랑으로 양떼를 먹이라는 말씀이 아니실까 생각하며 묵상했습니다.

 

**** 기억에 대하여

새벽 바다에서 밤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던 제자들과 나누시는 대화와 진행과정은 딱 누가복음 5장을 연상시킵니다. 밤새 허탕만 친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던, 그리고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잔뜩 잡았던, 이어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8)라고 고백했던 베드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과 마지막 만난 베드로는, 오른쪽으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잔뜩 잡으면서 예수님과의 그 첫 만남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처음 만난 그 날 나를 따라오너라...”(1:17) 그 음성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마지막 만난 오늘도 나를 따르라고 하시니 말입니다.(21:19) 그런데 나를 따르라시는 말씀의 느낌, 그 무게는 그때와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12절에, “와서 아침을 먹어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살아생전 주님과 마지막 나누었던, 며칠 전 그 밥상이 기억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에서 내 양을 먹여라하시는 말씀이 예사롭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침내 당신께서 스스로 몸을 쪼개 주셨듯이 베드로는 양떼를 먹이기 위해, 주님의 몸 교회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온몸을 다 던져야 하는 목자의 심정을 실천하게 됩니다. 19절 말씀들이, 특히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17절에서 베드로는, 새벽바닷가에서 3번 연거푸 질문하시는 선생님 때문에 몹시 불안합니다. 그것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입니다. 3연속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입니다. 어쩌면 그 새벽, 첫 닭 울음과 함께 울었던 그 통곡이 기억났을지도 모릅니다.

(3년 전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 ‘모도가 봄이다

서울에 있는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모도가 봄이다라는 행사를 오늘 (201955일 주일)까지 합니다. 저는 얼마 전 먼 거리를 달려 그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왜냐하면 모도가 봄이다는 방정환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방정환이 1920, 22세 나이에 개벽창간호에 실은 소설 유범(流帆)’에 나오는 시가 바로 모도가 봄이다입니다. <모도가 봄이다. ()도 봄 물도 봄이고 사람도 봄이고 空氣(공기)까지도 봄 空氣(공기)이다 그 부들업고 다사한 봄바람에 섯기어 가장 流暢(유창)하고 가장 平和(평화)로운 노래소리가 獨立門(독립문) 全體(전체)를 싸고 돈다 그것은.> 그런데 일제는 개벽 가운데 이 소설, 이 소설 가운데서 이 시 모도가 봄이다를 콕 짚어 까만 먹물로 지워버렸습니다. 그 부드러운 노래가 그만큼 강했던 것입니다. 그만큼 빛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어디 덮는다고 덮어집니까?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어둠은! 드디어 삼일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드러난 이 빛나는 모도가 봄이다에 누가 곡을 붙였습니다. 그렇게 인터넷으로 들은 그 노래가 하도 좋아서 그 행사 전시장까지 한달음에 달려간 것입니다. 그 현장의 느낌을 느끼고 싶어서! 어른들의 저 어두운 온갖 탐욕의 무게에 짓눌려 사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빛나고 맛있는 노래를 먹여주고 싶습니다. 이 노래를 지어준 방정환과 그림(the)연주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큰 박수를 보냅니다. “내 어린양떼를 먹여라(요한 21:15) 예수님 명을 따라야 할 교회의 일을, 바로 이 분들이 하셨습니다.

 

 

 

 

 

 

[말씀동시] 시몬에게 (서무석 지음. 성실교회 교우. 성실문화98)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 모른다지만

나는 네 속을 보고 있다

나는 네 속을 알고 있다

 

열 길 물 속을 보고 그물을 던지라고 한 것이

오늘이 처음이 아니로구나

게네사렛 호수에서 너를 처음 만난 그 날을

너는 기억하느냐

 

디베랴 새벽바다 열 길 물 속을 보며

오늘도 나는 네 속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저 물고기떼처럼 우글거리는

너의 많은 마음을 본다

 

시몬아, 너도 내 속을 볼 수 있다면

지금 오직 너 하나뿐인 내 마음을

시몬아,

네가 볼 수 있다면...

 

 

 

 

[말씀시조] 사울아 사울아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98)

사울아 사울아 예수님이 부르시니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이 변화한다

가거라 아나니아야 내가 택한 그에게

 

 

 

 

[말씀서예] 사도행전 9:15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98)

 

 

 

 

[말씀노래] 디베랴 새벽바다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98)

[본문] 요한복음 21:1-19

[노랫말]

1. 디베랴 새벽바다 배고픈 일곱제자, 밤새도록 던진그물 한마리도 못잡았네

예수님 말씀따라 오른쪽에 던진그물, 큰물고기 백쉰세마리 감당하기 어려워라

2. 디베랴 새벽바다 행복한 일곱제자, 밤새도록 고생하다 부활예수 만났어라

예수님 말씀따라 떡과고기 받아먹네, 오병이어 잔치처럼 신비롭고 행복해라

3. 디베랴 새벽바다 두근두근 일곱제자, 요한의아들 시몬아 네가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 말씀따라 예수님 사랑해요, 내양떼를 먹여라 두근두근 사랑해라

 

[해설]

요한복음 21:1-19절 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4.4조로 다듬었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이석훈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디베랴 새벽바다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시편 송서(誦書)] 시편 30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98)

(전래자장가 가락으로,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2. 여호와 내 하나님이---, -가 주-부르짖----,

-를 고치셨나이---, (-를 나-를 고치셨나이다---)

 

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4. -의 성-도들----, 여호와를-- 찬송-하며-,

-의 거-(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5.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6.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7. --------, ---- 은혜---,

-를 산 같이 굳----, (-게 굳-) 세우셨더니-,

-의 얼굴을 가리-시매-, -가 근-심하였나이다-,

(-의 얼굴을 가리-시매-, -가 내-근심하-- 나이다---)

 

8.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9.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10. 여호와여-- 들으-시고-, -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11.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다함께]

12. ---하지 아니-하고-, -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하나님----, -가 주-영원히 감사하∼∥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부활절 3, 201955일 주일 (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사도행전 9:1-6(7-20), 시편 30, 요한계시록 5:11-14, 요한복음 21:1-19

 

 

 

 

 

 

 

 

 

 

 

 

 

 

 

 

 

 

 

 

 

 

 

 

 

 

 

 

 

 

 

 

 

 

 

 

 

 

 

 

 

 

 

 

 

 

 

 

 

 

 

 

 

 

 

 

 

 

 

 

 

 

 

 

 

 

 

 

 

 

 

 

 

 

 

 

 

 

 

 

 

 

 

 

 

 

 

 

 

 

 

 

 

 

 

 

 

가로열쇠

이름 뜻은 여호와의 선물이다. 갈릴리 어부이며 야고보와 요한의 아버지다. 그의 아내 역시 예수님을 열성적으로 섬겼다.(요한복음)

예수님 제자 가운데 한명이며, 이름 뜻이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름 끝의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빌립의 전도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사도의 명부에 언제나 빌립과 같이 나오는 바돌로매와 동일인으로 보인다.(10:3, 3:18, 6:14) (요한복음)

생후 1년 미만의 새끼 양을 말한다. ○○○의 고기는 연하고 맛이 있어 히브리인들에게는 진미(珍味)로 여겨졌고, 따라서 그것을 잡는 것은 중요한 일이 있음을 의미했다. 성경에서는 일찍부터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제물로 ○○○이 사용되었는데, 아침저녁의 상번제, 안식일, 초하루,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유월절 전의 일주일, 칠칠절, 결례, 나실인의 서원 때 등에 쓰였다. 그리고 비유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5:17; 40:11; 21:15), 복음 전파자(10:3), 온순함(11:19), 메시야가 통치하는 나라(11:6; 65:25), 그리스도(1:29; 벧전 1:18-19; 5:6-8), 적그리스도(13:11) 등으로 묘사되었다.(요한계시록, 요한복음)

성경에 동명이인이 몇 명 있는데, 구약과 신약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을 각각 꼽으라면, 구약의 이 인물은 이스라엘 첫 왕이었다.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로서 키가 크고 용모도 준수한 사람이었는데,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며, 백성에게 인기가 좋은 다윗을 시기하다가, 급기야 블레셋과의 전쟁 중 길보아 산 전투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신약의 이 인물 역시 베냐민 지파 사람인데 나중에 바울로 이름을 바꾼다.(사도행전)

활발이라는 뜻을 가진 지역으로서, 과거 아람(시리아)의 수도였고, 현재도 시리아의 수도인데, 때때로 이곳이 수도였던 국가를 지칭하기도 한다. 삼면이 산악으로 둘러싸인 670미터 높이의 평지에 있다. 주전 64년부터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240Km나 떨어져 있었지만, 오래 전 아브라함 때부터 이스라엘과 관계를 맺어온 까닭에 많은 유대인들이 그곳에 살고 있었다.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러 이곳에 있는 여러 회당으로 가다가 부활예수님을 만나 회심하여 바울이 되었다.(사도행전)

 

세로열쇠

예수님 당시 갈릴리 호수 서쪽 해안에 있었고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도시다. 주후 20년경에 헤롯 안티파스가 당시 황제(티베리우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황제 이름을 따서 ○○○라는 이름을 붙였고 호수도 ○○○ 호수라 불렀다. 호수가 워낙 커서 바다라고도 불렀다. (요한복음)

이름 뜻이 야훼는 은혜로우시다인 다메섹에 살던 예수교인(그리스도인)으로서, 사울(사도바울)에게 세례를 준 사람이다(9:10). 동명이인(同名異人)으로 삽비라의 남편(5;1)과 대제사장(23:2)등이 있다.(사도행전)

이 직분은 모세의 형 아론으로부터 시작되어 그 후손, 특히 사독의 후손들이 맡았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 역할을 했다. 이들의 종교적인 역할 중 가장 큰 일을 꼽으라면, 일 년에 한 번 있는 대 속죄일’(욤 키푸르)에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의식을 거행하는 일이었다.(사도행전)

기쁨이라는 뜻의 고을로서, 사도 바울의 고향이다. 소아시아 동남부 지역에 있으며, 로마시대에는 유명한 키케로가 총독으로 있을 만큼 중요한 도시였으며, 인구 8만 정도의 지중해 연안에 있는 유명한 문화도시였다.(사도행전)

히브리말로 죽은 사람이 가는 곳이라는 뜻인데, 신약에서는 무저갱’, ‘음부’, ‘지옥등으로 쓰여 악마의 거처처럼 사용되었다.(무저갱 無底坑 ; 악마가 벌을 받아 한 번 떨어지면 헤어나지 못하고 영원히 갇혀 있는 그 밑 닿은 데 없이 깊다는 구렁텅이. 악마의 행위를 따르는 사람도 죽어서 그곳으로 간다 함) (시편)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대한성서공회), 성경낱말사전(성도출판사), 인터넷 사전 등을 참고하고 부분 인용했습니다.)

 

 

 

 

 

 

[말씀동화] 한반도에 시편구름이 떠오르는 날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건망증 고치려고 총명탕 끓여먹던 시절 이야기예요.

 

하나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난리가 났습니다.

왜냐고요? 왜긴 왜겠어요,

세상 사람들이 하도 건망증이 심해졌기 때문이죠.

걸핏하면 하나님이랑 약속 한 걸 까맣게 잊어버리기 일쑵니다.

 

저 녀석들이 까마귀를 절대 잡아먹지 못하게 온 세상 까마귀란 까마귀는 모두 하늘나라로 이사를 시켜야겠다.”

 

오죽 답답하시면 이런 말씀까지 하셨을까?

하나님과 맺은 사랑의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걸핏하면 싸우고 빼앗고 서로 눈 흘기고 미워하니 하나님 마음이 오죽하셨을까!

보다 못한 천사 가브리엘이 곁에서 한마디 합니다.

 

하나님, 온 세상 까마귀 다 이사시키는 것보다는, 세상 사람들에게 총명탕 먹이는 게 쉽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가브리엘에게 명령하십니다.

 

그렇게 하거라. 총명탕 만드는 법은 알지?”

 

가브리엘이 넙죽 절하고 하나님 앞에서 물러나와서

사흘밤낮 정성을 기울여 기도를 하고 찬양을 합니다.

미가엘도 부르고 수천수만 천사들을 다 불러 모아

보약을 달이듯이 시편 30편을 밤낮으로 정성을 기울여 읊조립니다.

 

주님의 진노는 잠깐이요, 그의 은총(恩寵)은 영원하니, 밤새도록 눈물을 흘려도, 새벽이 오면 기쁨이 넘친다.”(시편 30:5)

 

이윽고 찬양을 마친 가브리엘이

하늘벼루에 물을 담아 먹을 갈더니

커다란 붓으로 새하얀 구름 위에 이 시편 한 구절을 큼지막하게 씁니다.

 

 

시편가를 머금은 시편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닙니다.

어느 날 갈릴리 디베랴 바다로 고기잡이 하러 나서는 배 위에 머물더니

비를 한바가지 부어줍니다.

한바탕 시편구름이 부어준 비를 맞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일곱 제자들입니다.(요한 21:2)

 

시편구름 때문이었을까?

밤새도록 한 마리 고기도 못 잡은 제자들, 특히 그중에서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밤새 고기 한 마리 못 잡았던 오래전 기억이 가물거립니다.

아뿔싸, 바로 그때, 언제 나타나셨는지, 부활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리하면 잡을 것이다.”(요한 21:6)

 

그물을 끌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큰 고기가 많이 잡혔고

그 순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 처음 만났던 그 날을 기억해냅니다.(누가 5:1-11)

그 순간 요한이 소리칩니다.

 

저분은 주님이시다.”(요한 21:7)

 

그 말을 듣자마자 베드로는 정신없이 바다로 뛰어듭니다.

어푸어푸 예수님을 향해 헤엄칩니다.

온몸이 오그라들듯 추운 새벽바다에 빠지자마자 또 하나의 기억이 솟구칩니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바다 위를 걷다가 풍랑이 무서워 물에 빠져 꼴깍꼴깍 소리치던 기억!

 

주님, 살려주십시오.”(마태 14:30)

 

 

오돌오돌 떨던 베드로가 조금씩 편안해집니다.

차가운 새벽 바닷물에 젖은 옷 때문에 춥고

부끄러운 예전 기억들 때문에 추웠지만

예수님이 피워주신 모닥불 곁에서 옷이 마르고 마음이 풀어지나봅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요한 21:12)

 

예수님이 나눠주신 떡과 물고기를 먹으며

일곱 제자는 모두 오병이어 기억이 솟아납니다.(누가 9:10-17)

예수님께서 베푸신 153마리 엄청난 물고기를 보니 더욱 그러합니다.

 

아침을 먹은 뒤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내 어린 양 떼를 먹여라.”(요한 21:15)

 

같은 질문과 대답이 세 차례 이어지는 동안

베드로의 마음이 점점 아프기 시작합니다.

배신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쳐놓고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던 그날 그 새벽이 기억난 것입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마가 14:29)

 

주루루 흘러내리는 베드로의 눈물을 닦아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차례 반복해서 물으시며,

세 번 배신했던 베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마음을 닦아주신 것입니다.

 

“...밤새도록 눈물을 흘려도, 새벽이 오면 기쁨이 넘친다.”(시편 30:5)

 

 

시편구름이 다시 둥실 떠오르더니 다마스쿠스 가는 길 위에 멈춥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주님,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팝박하는 예수다.”(사도행전 9:4-5)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진 겁니다.

천하의 싸울아비 같던 사울이 기세등등 다마스쿠스로 가다가

갑자기 나타나신 부활예수님 때문에 길바닥에 엎어지고

눈이 멀어버린 겁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내립니다.

시편구름이 한바가지 쏟아부은 비를 맞으며

사울은 겨우겨우 다마스쿠스로 갑니다.

그리고 사흘밤낮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끙끙 앓습니다.

 

그러는 동안 불현 듯 기억납니다.

사흘밤낮 어두컴컴한 큰 물고기 속에서 지냈던

요나의 기도입니다.(요나서 2)

 

그리고 순식간에 이어지는 또 하나의 기억!

사람들이 퍼뜨리던 헛소문, 헛소문인줄만 알았던 그 소식!

사흘밤낮 어두컴컴한 돌무덤에 계시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빛나는 그분!

그 순간 햇빛보다 더 밝았던 그 빛의 정체가 느껴집니다.(26:13)

 

 

하나님 마음이 조금조금 풀어지시고 있나 봐요.

붉으락푸르락 하던 하나님 얼굴빛이 점점 부드러워집니다.

하나님 눈치를 살피던 가브리엘이 한마디 하네요.

 

하나님, 역시 총명탕 효과가 살아있네요!”

 

하나님이 한층 부드러워진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앞으로 온 세상과 온 교회에 총명탕을 종종 먹이도록 하거라. 총명탕 글자 뜻은 알지?”

 

가브리엘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넙죽 절하고 하나님 앞에서 물러 나와

온 세상에 두고두고 보낼 시편구름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혼자 할 수 있는 양이 아니니 다른 천사들도 다 부릅니다.

 

그리고 각자 시편구름 만들 시편가 노랫말들을 적은 종이에

총명탕(寵命湯) 쓰는 법이라고 제목도 달아서 나눠줍니다.

그때 미가엘이 갸우뚱거리며 중얼거립니다.

 

총명탕(寵命湯)? 총명탕(聰明湯) 아닌가?”

 

가브리엘이 미가엘을 내려다보며 빙글빙글 웃습니다.

수전절 성전봉헌가 시편 30편을 적은 시편구름이

둥실둥실 한반도를 향해 흘러가고 있습니다.

 

탐욕과 거짓말로 더럽혀져 눈에 살기 가득한 교회들이(9:1)

한바탕 진통 끝에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고 어린이들 하트 눈으로 변할 것입니다.

교회들이 모두모두 맑고 아름다운 어린이처럼,

빛나는 수전절처럼 새로워질 것입니다.

 

주님의 진노는 잠깐이요, 그의 은총(恩寵)은 영원하니, 밤새도록 눈물을 흘려도, 새벽이 오면 기쁨이 넘친다.”(시편 30:5)

 

[이정훈 지음. 201955일 주일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