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억해 주십시오”(누가복음 23:42)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서 50:4-9a)
4. 주 하나님께서 나를 학자처럼 말할 수 있게 하셔서, 지친 사람을 말로 격려할 수 있게 하신다. 아침마다 나를 깨우쳐 주신다. 내 귀를 깨우치시어 학자처럼 알아듣게 하신다.
5. 주 하나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셨으므로, 나는 주님께 거역하지도 않았고, 등을 돌리지도 않았다.
6. 나는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겼고, 내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뺨을 맡겼다. 내게 침을 뱉고 나를 모욕하여도 내가 그것을 피하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7. 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니, 그들이 나를 모욕하여도 마음 상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각오하고 모든 어려움을 견디어 냈다.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겠다는 것을 내가 아는 까닭은,
8. 나를 의롭다 하신 분이 가까이에 계시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나와 다투겠는가! 함께 법정에 나서 보자. 나를 고소할 자가 누구냐? 나를 고발할 자가 있으면 하게 하여라.
9. 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실 것이니, 그 누가 나에게 죄가 있다 하겠느냐? 그들이 모두 옷처럼 해어지고, 좀에게 먹힐 것이다.
(시편 31:9-16)
9. 주님,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나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울다 지쳐, 내 눈이 시력조차 잃었습니다. 내 몸과 마음도 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10. 나는 슬픔으로 힘이 소진되었습니다. 햇수가 탄식 속에서 흘러갔습니다. 근력은 고통 속에서 말라 버렸고, 뼈마저 녹아 버렸습니다.
11. 나를 대적하는 자들이 한결같이 나를 비난합니다. 이웃 사람들도 나를 혐오하고, 친구들마저도 나를 끔찍한 것 보듯 합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마다 나를 피하여 지나갑니다.
12. 내가 죽은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으며, 깨진 그릇과 같이 되었습니다.
13. 많은 사람이 나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사방에서 협박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나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내 생명을 빼앗으려고 음모를 꾸밉니다.
14.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15. 내 앞날은 주님의 손에 달렸으니, 내 원수에게서, 내 원수와 나를 박해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16.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 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빌립보서 2:5-11)
5.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6.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8.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11.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1-49) (또는 누가복음 22:14-23:56)
1. 그들 온 무리가 일어나서, 예수를 빌라도 앞으로 끌고 갔다.
2. 그들이 예수를 고발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우리 민족을 오도하고,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반대하고, 자칭 그리스도 곧 왕이라고 하였습니다."
3. 그래서 빌라도가 예수께 물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대답하셨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소."
4.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는 아무 죄도 없소."
5.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주장하였다. "그 사람은 갈릴리에서 시작해서 여기에 이르기까지, 온 유대를 누비면서 가르치며 백성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6.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서 물었다. "이 사람이 갈릴리 사람이오?"
7. 그는 예수가 헤롯의 관할에 속한 것을 알고서, 예수를 헤롯에게 보냈는데, 마침 그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었다.
8. 헤롯은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그는 예수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오래 전부터 예수를 보고자 하였고, 또 그는 예수가 어떤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싶어하였다.
9. 그래서 그는 예수께 여러 말로 물어 보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10.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곁에 서 있다가, 예수를 맹렬하게 고발하였다.
11. 헤롯은 자기 호위병들과 함께 예수를 모욕하고 조롱하였다. 그런 다음에, 예수에게 화려한 옷을 입혀서 빌라도에게 도로 보냈다.
12.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서로 원수였으나, 바로 그 날에 서로 친구가 되었다.
13. 빌라도는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과 백성을 불러모아 놓고서,
14.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이 사람이 백성을 오도한다고 하여 내게로 끌고 왔으나, 보다시피, 내가 그대들 앞에서 친히 신문하여 보았지만, 그대들이 고발한 것과 같은 죄목은 아무것도 이 사람에게서 찾지 못하였소.
15. 헤롯도 또한 그것을 찾지 못하고, 그를 우리에게 돌려보낸 것이오. 이 사람은 사형을 받을 만한 일을 하나도 저지르지 않았소.
16. 그러므로 나는 이 사람을 매질이나 하고, 놓아주겠소."
17. (없음)
18. 그러나 그들이 일제히 소리 질러 말하였다. "이 자를 없애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주시오." -
19. 바라바는, 그 성 안에서 일어난 폭동과 살인 때문에 감옥에 갇힌 사람이다.-
20.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21. 그러나 그들이 외쳤다. "그 자를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22. 빌라도가 세 번째 그들에게 말하였다.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나쁜 일을 하였단 말이오? 나는 그에게서 사형에 처할 아무런 죄를 찾지 못하였소. 그러므로 나는 그를 매질이나 해서 놓아줄까 하오."
23. 그러나 그들은 마구 우기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큰 소리로 요구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소리가 이겼다.
24. 마침내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대로 하기로 결정하였다.
25. 그래서 그는 폭동과 살인 때문에 감옥에 갇힌 자는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놓아주고, 예수는 그들의 뜻대로 하게 넘겨주었다.
26.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가다가, 들에서 오는 시몬이라는 한 구레네 사람을 붙들어서, 그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의 뒤를 따라가게 하였다.
27. 백성들과 여자들이 큰 무리를 이루어서 예수를 따라 가고 있었는데, 여자들은 예수를 생각하여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다.
28. 예수께서 여자들을 돌아다보시고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두고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두고 울어라.
29. 보아라, '아이를 배지 못하는 여자와, 아이를 낳아 보지 못한 태와, 젖을 먹여 보지 못한 가슴이 복되다' 하고 사람들이 말할 날이 올 것이다.
30. 그 때에, 사람들이 산에다 대고 '우리 위에 무너져 내려라' 하며, 언덕에다 대고 '우리를 덮어 버려라' 하고 말할 것이다.
31. 나무가 푸른 계절에도 사람들이 이렇게 하거든, 하물며 나무가 마른 계절에야 무슨 일이 벌어지겠느냐?"
32. 다른 죄수 두 사람도 예수와 함께 처형장으로 끌려갔다.
33. 그들은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서,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달고, 그 죄수들도 그렇게 하였는데, 한 사람은 그의 오른쪽에, 한 사람은 그의 왼쪽에 달았다.
34. [그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제비를 뽑아서,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졌다.
35. 백성은 서서 바라보고 있었고, 지도자들은 비웃으며 말하였다. "이 자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그가 택하심을 받은 분이라면, 자기나 구원하라지."
36. 병정들도 예수를 조롱하였는데, 그들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신 포도주를 들이대면서,
37. 말하였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라면, 너나 구원하여 보아라."
38. 예수의 머리 위에는 "이는 유대인의 왕이다" 이렇게 쓴 죄패가 붙어 있었다.
39. 예수와 함께 달려 있는 죄수 가운데 하나도 그를 모독하며 말하였다.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라."
40.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똑같은 처형을 받고 있는 주제에,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우리가 저지른 일 때문에 그에 마땅한 벌을 받고 있으니 당연하지만, 이분은 아무것도 잘못한 일이 없다." 그리고 나서 그는 예수께 말하였다.
42.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43.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44. 어느덧 낮 열두 시쯤 되었는데, 어둠이 온 땅을 덮어서,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45. 해는 빛을 잃고, 성전의 휘장은 한가운데가 찢어졌다.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어 말씀하셨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는 숨을 거두셨다.
47. 그런데 백부장은 그 일어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말하였다. "이 사람은 참으로 의로운 사람이었다."
48. 구경하러 모여든 무리도 그 일어난 일을 보고, 모두 가슴을 치면서 돌아갔다.
49. 예수를 아는 사람들과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를 따라다닌 여자들은, 다 멀찍이 서서 이 일을 지켜보았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깊은 어둠 속의 한 자루 촛불처럼’입니다.
구약, “주님께서 내 귀를 열어주셨으므로”(이사야서 50:5)
시편,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주십시오”(시편 31:16)
서신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빌립보서 2:11)
복음서,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누가복음 23:43)
오늘 요절은,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입니다.(누가복음 23:42)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이사야서 50:4-9a, 시편 31:9-16)]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고난에 처한 하나님의 종’입니다.
본문 바로 앞 1-3절에서 바빌론 포로들의 절망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방의 빛(뭇 민족의 빛)”으로 삼으신(사 49:6) “하나님의 종”은
그 극심한 고난에도 불구하고(6-7) 참으로 의연합니다.(8-9)
놀라울 만큼 지금 바빌론 포로들의 절망과 대비됩니다.
그 의연함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나의 죄 없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며, 인정하신다는 사실을
“아침마다”(4) 내게 들려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음성 들을 귀를 열어주시는(5) 그 사랑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안전한 주의 손 안에서’입니다.
시인은 지금 큰 고통 중에 있습니다.
형벌처럼 보이는 질병으로 인해 고통스럽고,
확신에 찬 정죄와 비난에(11,13) 더욱 절망합니다.
그럼에도 시인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이 절망과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길은 바로,
내가 죄 없음을 환히 아시는(17-18) 하나님의 손길입니다.(15)
내가 앞이 캄캄할 때(9),
해처럼 환한 얼굴로(16),
그 한결같은 사랑으로(16) 환하게 비추어주시는 주님!
그래서 시인은 지금 주님만 의지하며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14-16)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빌립보서 2:5-11, 누가복음 23:1-49)]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삶’입니다.
오늘 본문(6-11절)은 교회의 오랜 ‘그리스도 찬가’입니다.
교회가 내내 외워 부르며 새기고 되새겨야 할 소중한 고백이요,
하루하루 뚜벅뚜벅 걸어 나가야할 길, 제자의 길입니다.
높고 높으신 우리 주님께서, 낮고 낮은 사람의 모습을 넘어
십자가 죽음의 자리까지 낮아지신
이 ‘주님의 길’이 곧 우리가 갈 길이요,
이 길 끝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응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9-11)
아무리 깊은 절망의 나락까지 떨어질지라도,
교회에게는 희망의 끈이 있습니다.
이보다 더 낮은 곳까지 뚜벅뚜벅 내려가신 예수님의 자기 비움,
자기 비움의 노래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요약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길’입니다.
그 길은 참으로 분통터지는 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방인 빌라도도, 여우같은 헤롯왕조차 증거 없다고 했음에도,(14-15)
정작 동포들, 종교지도자들은 기를 쓰고 예수님을 정죄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한 것은,
예수님의 죄가 아니라, 시기, 질투, 미움이었습니다.
오직 자기 권력 유지에만 눈 어두운 저 부정부패한 지도자들이 벌이는 조작과 왜곡,
저 크나큰 불법과 불의였습니다.
불법, 불의의 시작은 달콤할지 모르지만,
그 끝이 얼마나 쓰고 고통스러울 것인지 아시기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길 그 고통 중에도,
백성의 앞날을 걱정해주십니다.(28-31)
고통과 절망, 절대 고독의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뜻밖의 길동무, 십자가 어깨동무 덕분에 위로를 받으십니다.
죽음의 순간에 가장 가까이서 예수님의 죄 없으심을 역설하며
동행을 간청하던 그 죄수 말입니다.
억측이요 비약이지만,
절망의 예수님께 그 죄수는 작은 촛불 한 자루 같습니다.
물론 그 죄수에게 예수님은 그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누가복음 23:43)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오늘은 사순절 끝 주일, 주님의 수난주일이어서인지
성서일과 모든 본문의 분위기가 어둡습니다.
절망의 기운이 가득합니다.
그럼에도, 그 절망의 끝 짙은 어둠 속에 한 자루 촛불 같은 희망이 보입니다.
구약의 촛불(도우심)은(7,9),
막힌 귀를 열어(5) 아침마다 내게 들려주시는(4) 주님의 음성입니다.
시편의 촛불은,
닫힌 눈을 열어(9) 내 앞길을 환히 비춰주시는 “주님의 환한 얼굴”입니다.(16)
서신서의 촛불은,
나의 바닥보다 훨씬 더 낮은 곳에 계신 예수님의 ‘바닥소리’ - ‘자기 비움의 노래’입니다.
복음서의 촛불은,
역설적으로, 예수님의 마지막 길에 동행하는 죄수의 간청입니다.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누가복음 23:42)
온 무리가 모욕하고(11), 조롱하고(11, 36), 모독할 때(39),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예수님의 의로우심을 주장하던(41) 길벗의 간청입니다.
이 간청이 예수님께 촛불 한 자루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이틀 뒤 4월 16일 화요일은 세월호 5주기입니다.
어둠이 온 나라를 뒤덮고, 유가족의 상처는 말로 다 표현 못할 지난 5년입니다.
이 어두운 상처를 위한 촛불 한 자루 같은 노래,
촛불 한 자루 같은 희망을 오늘 하나님 말씀에서 봅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극심한 조롱과 모독 가운데서도 이어지던
지난 5년, 광화문(光化門) 광장의 단식들...
<나를 기억해 달라는> 세월호 천막들, 노란 리본들이, 오히려
대한민국에게 한 자루 촛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머지]
* 모욕을 참고, 기적을 참으시다
이번 수난주일 복음서본문 가운데서 또 하나의 알맹이는, “모욕”과 “기적”입니다. 특히 오늘 구약본문과 연계하여, “모욕”이라는 단어가 눈에 많이 띕니다. 예수님 십자가 길에서 사람들이 모욕하고(23:11), 조롱하고(23:11, 36), 모독합니다.(23:39) 그런 가운데 모욕당하고 있는 예수님께, 이런저런 목적으로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헤롯23:8, 지도자들23:35, 병정들23:37, 죄수23:39 등) 그리고 어디선가 읽었는데, 가룟유다의 배신 역시 사실은, 스승께서 자꾸 죽으시겠다는 말씀일랑 이제 그만 접으시고 유월절 찬스를 놓치지 말고 속히 봉기를, 기적을 일으키시도록 자극하는 극약처방을 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상상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아무런 기적을 행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모욕을 당하면서도 결코 기적을 일으키지 않으십니다. 딱 한 차례, 대제사장 종의 잘린 귀를 고쳐주셨을 뿐입니다. 이 극심한 모욕과 고통 속에서도, 아무리 억울해도 기적을 일으키지 않으시는, 순종을 위해, 언약을 위해, 사랑의 완성을 위해, 결코 기적을 보이지 않으시는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의 완성을 봅니다. 이것이 바로 표적이 아닐까요? 동서고금에 이런 사랑, 이런 사랑의 기적은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3년 전 올린 것 다듬음)
[말씀동시] 어리석은 사람들 (서무석 지음. 성실교회 교우. 「성실문화」98호)
빌라도
헤롯왕
대제사장
백성의 지도자들, 병정들, 다른 죄수...
이 어리석은 사람들보다 내가 더 어리석어 보일 때가 있다
진짜로!
[말씀시조] 내 귀를 여시는 분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98호)
내 귀를 여시는 분 하나님께 순종하니
사람들 모욕에도 내 마음 든든하다
하나님 날 도우시니 누가 감히 다투리
[말씀서예] 이사야서 50:7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98호)
[말씀노래] 십자가에 달리시다 (이정훈 작사, 박승원 작곡. 「성실문화」98호)
[본문] 누가복음 23:1-49
[노랫말]
1. 털털 털어봐도 티끌조차 없으신분, 죄없는 예수님을 고발하는 무리들아
간악한 대제사장 정치꾼 빌라도와, 여우같은 헤롯왕의 부끄러운 십자가라
2. 달달 달려들어 못박으라 소리치고, 죄없는 예수님을 끌고가는 무리들아
통곡하는 여인들과 십자가진 구레네시몬, 가시관 예수님의 고통스런 십자가라
3. 탕탕 망치소리 예수님의 비명소리, 십자가에 달린 주님 조롱하는 무리들아
성전휘장 찢어지고 예수께서 숨지시니, 죽음을 이기신분 참사랑의 십자가라
[해설]
누가복음 23:1-49절 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4.4조로 다듬었고, 성실문화원 동인이며 월드뮤직그룹 ‘공명’ 단원이신 박승원 선생이 가락을 붙였다.
[악보] 십자가에 달리시다 (이정훈 작사, 박승원 작곡)
[시편 송서(誦書)] 시편 31:9-16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98호)
(※‘새야새야’ 가락에 맞추어, ‘쉼표’까지가 중중모리 한 장단)
9. 여호와여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10.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11.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12.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
13.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14.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15.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6.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 가락은 ‘새야새야, 파랑새야’로, 장단은 중중모리로 읊는다.
※ 쉼표(‘,’)까지 한마디가 12박 한 장단이다. (즉, 한 줄이 중중모리 두 장단이다.)
※ 한 박(‘=’)은 편의상 2분박(‘--’)으로 쪼개어 짚을 수도 있다.
※ 밑줄(‘ ’)친 부분은 글자 수가 많아도 3박으로 읊으면 된다.(이 때 너무 서두르지 말고 여유있게 읊는 것이 좋다.)
※ 굵은 글자는 찬양대가 송서(誦書, 새야새야)로 읊조리고, 나머지는 회중이 낭독한다. (찬양대가 읊조릴 때 회중도 콧노래처럼 작게 따라 해도 좋다.)
※ 가락이 조금 차이가 나는 것이 오히려 어우러지는 멋이 있어 좋다.
※ 마지막 절은 다함께 읊조린다.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사순절 6주(수난주일) 2019년 4월 14일 주일 (성서일과 낱말 맞추기)
이사야서 50:4-9a, 시편 31:9-16, 빌립보서 2:5-11, 누가복음 2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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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
라 |
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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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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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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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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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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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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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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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
제 |
사 |
장 |
십 |
자 |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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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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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열쇠
①주후(A.D.) 26-36년에 유다를 다스린 로마총독.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자로 유명하다. 사도신경에 그 이름이 불명예스럽게 올라 있다.(누가복음)
②하나님, 임금, 주인, 기타 높은 지위에 있는 이를 부를 때, 그 권위를 인정하는 의미로 쓰던 호칭.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이렇게 부르며, 특히 개역성경의 ‘여호와’를 새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했다. 아람어로 ‘마레’, 헬라어로 ‘퀴리오스’를 이렇게 번역한다.(이사야서, 시편, 빌립보서, 누가복음)
③북아프리카에 있는 도시 이름인데, 지금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로 추측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시몬의 고향이다. 시몬은 뒤에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그의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 역시 나중에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마가복음 15:21). 특히 바울은 루포의 어머니, 즉 시몬의 부인을 가리켜 “내 어머니”라고까지 칭한바 있다.(로마서 16:13) (누가복음)
④이 직분은 모세의 형 ‘아론’으로부터 시작되어 그 후손, 특히 ‘사독’의 후손들이 맡았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 역할을 했다. 이들의 종교적인 역할 중 가장 큰 일을 꼽으라면, 일 년에 한 번 있는 ‘대 속죄일’(욤 키푸르)에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의식을 거행하는 일이다.(누가복음)
⑥페르시아에서 시작된 처형 도구로서, 로마시대에는 이를 노예, 도둑, 반역자(정치범)에게 집행했다. 이 처형에 앞서 채찍질이 가해졌는데 그 때문에 이 형틀에 달리기 전 이미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을 만큼 가혹했다. 예수님께서 이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빌립보서, 누가복음)
세로열쇠
①예수님과 동시대 사람으로서, 그의 본명 또한 예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개역개정 성경 외에 새번역과 공동번역 성경은 마태복음 27장에서 그렇게 번역했다.) 또한 열심당원이었을 것으로 추측하며, 명절 관례를 따라 죄수 한 사람을 석방해 줄 때에, 예수님 대신 풀려난 사람이다.(누가복음)
②만유의 창조주시며 구원자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성부, 성자, 성령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하느님이라고도 부른다. 천주교식으로 천주(天主) 즉 하늘의 주인, 즉 하늘님이 변해서 하느님이 된다. 그런데 ‘하늘’은 예전에 ‘하날(하ᄂᆞᆯ⟨한ᄋᆞᆯ=큰 알)’이라 불렀던 것에 비추어 하늘님보다 하날님, 즉 ○○○이 더 오랜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천주교와 개신교가 함께 보기 위한 공동번역 성경은 ‘하느님’으로 통일했다. ○○○에는 ‘하늘’이란 느낌 외에도 ‘하나’를 뜻하는 느낌도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이사야서, 시편, 빌립보서, 누가복음)
④여럿 가운데 어느 하나를 골라잡게 하여 거기에 미리 적어 놓은 기호나 글에 따라 승부나 차례 따위를 결정하는 방법, 또는 그것에 쓰는 종이나 물건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성경에는 중요한 것을 결정할 때 이것을 뽑아서 결정하는 일이 많았다. 사도행전 1:15-26절에 보면 가룟 유다가 죽은 뒤 새로운 사도를 세울 때도 요셉과 맛디아 둘 중에서 이것을 뽑아 결정하였다. (누가복음)
⑤로마 군대의 최소 단위인 100명으로 조직된 단위 부대의 우두머리로서, 신약성경에는 몇 명의 ○○○이 소개되고 있다. ⓵하인의 중풍병 치유를 위해서 예수님께 신하를 보낸 가버나움의 ○○○(마 8:5-13; 눅 7:2) ⓶예수님의 십자가 곁에서 사형 집행을 관리한 ○○○. 그는 주변의 조롱하는 무리들과는 달리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했다.(마 27:54; 막 15:39; 눅 23:47, 누가복음에는 의인이라고만 고백했다.) ⓷가이사랴의 ○○○ 고넬료. 그는 베드로의 전도로 회심하고 주님을 영접한 최초의 이방인이다.(행 10장) ⓸율리오라는 이름의 ○○○. 그는 바울을 가이사랴에서 로마로 호송하는 책임을 맡았던 자인 아구사도 대(隊)의 ○○○이었다(행 27:1, 6). 자기 부하들이 죄수들을 죽이는 것을 막아 바울의 생명을 지켜주었다(행 27:43). 한편, 구약 시대에도 ○○○과 유사한 직분이 있었는데, 군대 통솔 뿐 아니라 재판, 행정 등 그 역할이 매우 광범위했다(출 18:21, 25; 신 1:15). (누가복음)
⑥율법을 필사하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전문가로서, 원래 구약시대에는 레위지파가 이 역할을 했으나, 포로기 이후 점점 전문화되면서 신약 시대에 와서는 그 역할을 바리새파가 다수를 담당했다. 그들은 유대 정치기구인 산헤드린 공회의 중심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많은 규칙들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짐처럼 지우려 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보다 율법에 집착하는 그들의 태도를 예수님은 비판하셨다.(누가복음)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대한성서공회), 「성경낱말사전」(성도출판사), 인터넷 사전 등을 참고하고 부분 인용했습니다.)
[말씀동화] 영철이의 노란리본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노란리본 만들려고 손톱, 아니 발톱 깎던 시절 이야기예요.
오늘도 터덜터덜 풀죽은 영철이가 집으로 가고 있어요.
등이 굽은 영철이의 교복이 오늘따라 더 후줄근해 보이네요?
영철이네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있던 제비가 빙빙 영철이 머리 위를 맴돌아도
영철이는 제비를 못보고 지나칩니다.
“영철아, 오늘은 별일 없었니?”
풀죽은 영철이를 바라보며 엄마가 근심스럽게 물어도
영철이는 고개만 한번 꾸벅 인사할 뿐 엄마랑 눈도 맞추지 않아요.
영철이의 표정이 하루하루 어두워갈수록 엄마의 얼굴에도 그늘이 짙어지고,
방에 들어간 영철이는 오늘도 묵묵히 노란리본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초등학생 때는 친구가 있었는데
단짝 친구가 이사 간 뒤로 마을에도 친구가 없고
학교에도 친구가 없어졌어요.
영철이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왕따가 되어버린 거예요.
입학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어쩌다 학교에서 제일 힘센 아이의 눈 밖에 난 뒤로
영철이 가까이에 아무도 다가오지 않네요?
점심도 늘 혼자서만 먹고...
2학년이 되어서도 변한 게 없어요.
영철이를 괴롭히는 그 아이가 또 같은 반이 되어버린 거죠.
힘없고 키도 작은 영철이를 그 아이가 더 많이 괴롭히기 시작한 건,
아마 세월호 노란 리본 때문일거예요.
언제였더라? 영철이가 마음 깊이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죠.
세월호에 유달리 고등학생 형, 누나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희생자 부모님들이 눈물 흘리시는 모습을,
그리고 애써 단식하는 모습을 뉴스에서 본 거예요.
영철이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단식하는 이유는 잘 몰라요.
그런데 그 단식을 조롱하고 욕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간다는 소식을 들은 거죠.
아마 영철이가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달기 시작한 게
그 때쯤일 것입니다.
그리고 영철이를 괴롭히는 그 아이가 영철이를 더 노골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한 것도
아마 그 때부터였을 거예요.
그 아이가 영철이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리본을 떼어냅니다.
“개나 소나 다 노란리본이냐?”
영철이는 서럽고 무서웠지만,
또 노란 리본을 만들어 달았죠.
매일 맞으면서도 이를 악물고 매일 노란 리본을 만들어 달았어요.
영철이가 노란리본을 만들어 달기 시작한 것은
세월호 가족들이 조롱당하고, 나처럼 왕따 당하는 걸 느꼈기 때문이에요.
학교 밖에서 봉사활동 할 때 들은 어른들끼리 하는 이야기도 그랬죠.
세월호 유가족들이 순 돈만 밝힌다는...
그래도 영철이는 어른들이 노란리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해도
절대 떼지 않았어요.
자기를 괴롭히는 그 아이가 뒤통수를 때리고 강제로 떼어내도
매일매일 노란리본을 다시 만들어 달죠.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과 친한 사이도 아니지만,
이젠 그렇게 하는 것이
마치 의리를 지키는 일처럼 느껴지고요!
학교랑 집, 그리고 교회!
영철이가 다니는 곳은 이 셋뿐이랍니다.
그러던 영철이가 큰맘 먹고 서울로 가네?
세월호 텐트를 보려고 주일예배 마치자마자 광화문 광장을 찾아가는 거예요.
난생처음 보는 광화문 광장이 정말 넓군요!
그런데 영철이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언젠가 뉴스에서 보았던 세월호 텐트가 없어졌네?
그 대신 나무로 지은 자그마한 집이 있군요.
그 집은 세월호 텐트 대신 지은 ‘기억·안전 전시 공간’이래요.
처음 온 광화문 광장의 기운이 남다릅니다.
영철이는 나무 집 앞에서 눈을 감고 기도해요.
오래전부터 오고 싶었던 곳이라 그런지 가슴이 두근두근 하고요.
목사님 설교말씀 때문인지, 광화문광장이 정말 빛나는 것 같네?
‘빛 광(光), 될 화(化), 문 문(門)’, 광화문(光化門)!
왕따 당하면서도 세월호 텐트 유가족들이 끝까지 광화문 광장을 지키자,
드디어 촛불 한 자루 한 자루 모여들어,
그 이름처럼, 거기 온통 빛이 되게 만든 문, 광화문!
충동인지 운명인지 영철이가 광화문광장을 찾은 것은
목사님 설교 때문입니다.
오늘 수난주일 본문말씀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옆에 달린 죄수와 대화하는 장면을 설교하시면서
목사님은 느닷없이 그 광화문광장과 촛불 이야기를 꺼내신 거예요.
지금 예수님이 얼마나 왕따를 당하시는 중인지 설명하는 대목에서
영철이는 왈칵 눈물을 쏟았는데,
예수님 바로 곁에서 죽음을 눈앞에 둔 십자가 어깨동무인 그 죄수가 하는 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누가복음 23:42)
이 간청이 오히려,
지금 절망에 빠진 예수님께
마치 촛불 한 자루 같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라는 그 말씀에
영철이는 뜨거운 눈물에다 콧물까지 흘리고 만 것입니다.
온통 예수님이 죄인이라고 조롱하는 사람들 틈에서
유일하게 예수님이 아무 죄 없으시다고 말한 그 사람을
정말 예수님은 어깨동무로 느끼셨을지도 모릅니다.(누가복음 23:41)
그 동무의 말에 예수님이 얼마나 큰 위로를 받으셨을지
영철이는 압니다.
귀가하는 차 안에서 내내 영철이는 오늘 설교말씀을 되새겼어요.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주십시오”라는
그 십자가 어깨동무의 간청에 예수님의 대답이 너무너무 감동이었고요!(43)
그 말씀을 언젠가 세월호 부모님들 만나면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께 나를 기억해 달라는 십자가 어깨동무의 심정과
세월호를 기억해 달라는 유가족의 심정이
어쩐지 통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리고 영철이는 그 세월호를 기억하려는 노란리본을,
노란리본을 강제로 떼면서 나를 괴롭히는 그 아이를 생각했어요.
내일모레 화요일 4.16, 세월호 5주기 날에는
세월호 리본을 하나 더 만들어서 그 아이에게 주기로 결심합니다.
이런 용기가 도대체 어디서 났는지 모르지만,
집으로 들어가는 영철이의 어깨가 늠름해 보입니다.
문득 영철이 머리 위를 빙빙 도는 제비의 모습을 보고
너무너무 반가워서 영철이가 외쳤어요.
“언제 왔니 제비야, 강남 갔던 내 친구야!”
[이정훈 지음. 2019년 4월 14일 주일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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