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하여 찬양하십시오”(골로새서 3:16)
[성서일과 4본문]
(사무엘기상 2:18-20, 26)
18. 한편, 어린 사무엘은, 모시 에봇을 입고 주님을 섬겼다.
19. 사무엘의 어머니는 해마다 남편과 함께 매년제사를 드리러 성소로 올라가곤 하였다. 그 때마다 그는 아들에게 작은 겉옷을 만들어서 가져다주었다.
20. 그리고 엘리는 엘가나와 그의 아내에게 "주님께 간구하여 얻은 아들을 다시 주님께 바쳤으니, 주님께서 두 분 사이에, 이 아이 대신에 다른 자녀를 많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복을 빌어 주었다. 그들은 이렇게 축복을 받고서, 고향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26. 한편, 어린 사무엘은 커 갈수록 주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
(시편 148)
1. 할렐루야. 하늘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높은 곳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2. 주님의 모든 천사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주님의 모든 군대야, 주님을 찬양하여라.
3. 해와 달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빛나는 별들아, 모두 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4. 하늘 위의 하늘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하늘 위에 있는 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5. 너희가 주님의 명을 따라서 창조되었으니, 너희는 그 이름을 찬양하여라.
6. 너희가 앉을 영원한 자리를 정하여 주시고, 지켜야 할 법칙을 주셨다.
7. 온 땅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바다의 괴물들과 바다의 심연아,
8. 불과 우박, 눈과 서리, 그분이 명하신 대로 따르는 세찬 바람아,
9. 모든 산과 언덕들, 모든 과일나무와 백향목들아,
10. 모든 들짐승과 가축들, 기어다니는 것과 날아다니는 새들아,
11. 세상의 모든 임금과 백성들, 세상의 모든 고관과 재판관들아,
12. 총각과 처녀, 노인과 아이들아,
13. 모두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그 이름만이 홀로 높고 높다. 그 위엄이 땅과 하늘에 가득하다.
14. 주님이 그의 백성을 강하게 하셨으니, 찬양은 주님의 모든 성도들과, 주님을 가까이 모시는 백성들과, 이스라엘 백성이, 마땅히 드려야 할 일이다. 할렐루야.
(골로새서 3:12-17)
12.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 받는 거룩한 사람답게, 동정심과 친절함과 겸손함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옷 입듯이 입으십시오.
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여 주고, 서로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는 띠입니다.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도록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 있게 하십시오. 온갖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감사한 마음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여러분의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십시오.
17. 그리고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누가복음 2:41-52)
41. 예수의 부모는 해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갔다.
42. 예수가 열두 살이 되는 해에도, 그들은 절기 관습을 따라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43. 그런데 그들이 절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에,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그의 부모는 이것을 모르고,
44. 일행 가운데 있으려니 생각하고, 하룻길을 갔다. 그 뒤에 비로소 그들의 친척들과 친지들 가운데서 그를 찾았으나,
45. 찾지 못하여,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찾아다녔다.
46. 사흘 뒤에야 그들은 성전에서 예수를 찾아냈는데, 그는 선생들 가운데 앉아서,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47.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슬기와 대답에 경탄하였다.
48. 그 부모는 예수를 보고 놀라서, 어머니가 예수에게 말하였다. "얘야, 이게 무슨 일이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느라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49. 예수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50. 그러나 부모는 예수가 자기들에게 한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지 못하였다.
51. 예수는 부모와 함께 내려가 나사렛으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순종하면서 지냈다. 예수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다.
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사랑으로 자라다’입니다.
구약, “주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사무엘기상 2:26)
시편, “주님이 그의 백성을 강하게 하셨으니”(시편 148:14)
서신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받는 거룩한 사람답게”(골로새서 3:12)
복음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누가복음 2:52)
오늘 요절은,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십시오”입니다.(골로새서 3:16)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사무엘기상 2:18-20, 26, 시편 148)]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실로에 머문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은 제사장의 겉옷인 에봇을 어려서부터 입고 주님을 섬깁니다.(18)
사무엘의 아름답고 사랑스런 성장은(26)
주님 앞에서 그 부모가 사는 모습과 관련 있습니다.
주님과 맺은 약속을 전적으로 지키기 위해
내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바치는 모습 말입니다.
오늘 구약본문에 비친 사무엘 부모의 이 모습은,
마침 오늘 복음서본문의 예수님 부모의 모습과 교차됩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온 누리에 울려 퍼질 하나님 찬양’입니다.
오늘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온 누리 하늘땅에 외칩니다.
(이런 시편은 오늘 본문이 유일합니다.)
전반부(1-6)는 온 하늘, 후반부는 온 땅을 향해 그렇게 외칩니다.
이 시편의 핵심은 “찬양”입니다.
주님 찬양, 주님의 이름 찬양, 주님의 영광을 찬양,,,
그런 찬양,
오늘 시편이 반복해서 노래한 찬양이란 과연 어떤 찬양일까요?
찬양은 성도의 마땅한 의무이며 권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어떤 ‘재물’보다 기뻐 받으실 참 ‘제물’입니다.
주님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을 닮아가는 성도,
성도가 바치는 찬양!
말씀을 받으며, 사랑을 받으며 우리는 주님을 닮아갑니다.
말씀을 닮아가면서 우리는 시나브로 강해집니다.(14)
말씀을 닮아, 주님을 닮아, 우리 안에 사랑의 힘이 세지는 겁니다.
그런 성도의 몸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 바로 그런 찬양일 것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골로새서 3:12-17, 누가복음 2:41-52)]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옛 사람과 새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앞서 바울은,
“육체의 욕망”(2:23), “이 땅에 있는 것들”(3:2), “탐욕”(3:5), “옛사람”(3:9)을 언급하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 그 십자가 길을 가는 성도에게 걸맞지 않는,
성도의 자유를 속박하는 온갖 헛된 가르침을 경계합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
그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삶의 길을 보여줍니다.
용서∼사랑∼평화∼감사∼말씀∼찬양∼예수 이름으로!∼
특히 바울은, “서로” 용서하고(13), “서로” 가르치라(16)고 강조합니다.
교회는 이렇게 서로 간에 배려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완전체,
“한 몸”이 될 때(15), 비로소 참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한 몸”은 사랑받을 때, 사랑 가운데 완전해질 것입니다.(14)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성전에 나타나신 어린 예수’입니다.
오늘 본문의 자리는 예수님 태어나심과 죽으심의 중간입니다.
성인식을 하고 첫 유월절 제사에 참석할 나이가 되신 예수님이,
공생애 동안 십자가 길을 본격적으로 떠나시기 전에
미리 세상 인연을 정리하며 십자가 길을 준비하시는 느낌이 듭니다.
이로써 어머니 마리아는 상당한 고통을 미리 맛보며,
몸도 마음도 가다듬고 단련했을 것입니다.(51)
52절은 오늘 구약본문과 짝을 이룹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오늘 구약본문의 사무엘과 복음서본문의 예수님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들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밥이 아니라, 돈이 아니라, 사랑으로 자라는 존재입니다.
사랑을 먹어야 자라는 성도입니다.
문득 사무엘의 부모와 예수님 부모의 모습이 비교되고
나아가 그 부모들과 나의 모습이 비교됩니다.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고 확신했던 예수,
언제 어디서나 나를 졸졸 따라온다고 생각했던 예수!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아 정신없이 찾아 헤매다 간신히 발견한 예수,
그런데 이미 내 눈높이와 달라 당황스런 예수...!
예수님 부모님의 거울로 나를 보니,
나도 여전히 예수님 진면목을 모르고 삽니다.
시도 때도 없이 닥치는 두려움으로 별별 엉뚱한 생각이 다 듭니다.
사무엘 부모님처럼 내 가장 귀한 것을 온전히,
의심 없이, 아낌없이 주님께 바칠 수 있을 날이 언제일까요?
예수님의 진면목을 맛보았을 때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통째로 꿀꺽 먹을 그때!
그날엔, 나도 오늘 시편과 같은 찬양을 진심으로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의 진면목을 맛본 사람,
예수님 말씀대로, 예수님 사랑 따라 사는 사람 바울처럼,
오늘 서신서본문, 폭포처럼 장쾌한 저 말씀이
내 안에 조금씩이나마 샘물처럼 솟고 시냇물처럼 흐를 것입니다.
“용서∼사랑∼평화∼감사∼말씀∼찬양∼주 예수의 이름으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주 예수님처럼 하늘 아버지께 감사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17)
사랑받은 사람답게, 사랑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16)
[나머지]
* “내 아버지의 집”은 어디에 있을까?
오늘 본문은 구약과 복음서가 절묘하게 통합니다. 어린 사무엘과 어린 예수님이 주인공입니다. 두 분 다 성전에 머물러 있습니다. 두 분 다 커가면서 주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 받습니다.(삼상 2:26, 누가 2:52) 차이점은, 사무엘의 부모와 달리 예수님의 부모님이 심히 당황하는 장면입니다. 한나는 아들을 주님께 바쳤지만, 마리아는 그러질 못했기 때문일까요?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아들을 우리에게 바치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무엘은 엄마가 하나님께 바친 아이지만, 예수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위해 바친 아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를 잃은 마리아가 성전에서 예수를 찾았듯이 예수를 잃은 세상은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전 “내 아버지의 집”은 어디에 있을까요?
** 잃어버린 예수를 찾아서
예수를 잃어버린 마리아의 심정, 사흘이나 헤맨 마리아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오늘 본문의 마리아는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거울입니다. 우리는 내 가까이에 예수가 늘 있으려니 하며 살아갑니다. 교회에 몸담고 있으니까 당연히 예수가 내 근처 어디에 있으려니 생각하고 우리는 일생을 가고 있습니다. 아뿔싸! 그런데 둘러보니 없는 겁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천신만고 끝에 사흘 만에 아들을 찾고 나서 아들 예수와 대화하는 마리아를 보십시오. 마리아는 여전히 예수의 진면목을 못 보고 있습니다. 가브리엘로부터 수태고지를 받은 마리아라면 오늘 아들의 말을 듣고 불현듯 깨달아 마땅한데 여전히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12년 간 예수를 키우면서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일까요? 아들을 보호하고, 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아들의 육신이 자라는 걸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그 12년 동안, 그 육신에 너무 익숙해진 걸까요? 그래서 거기 있으려니 한 겁니다. 일행 가운데 있으려니... 내 품안에 있으려니... 그런데 예수가 없어진 겁니다.
12년 동안 예수에게 익숙해진 마리아가 예수를 잃어버렸듯이, 지금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예수의 어떤 점에 너무 익숙해졌기에 예수의 진면목이, 예수의 향기가 한국교회에서 사라졌다는 말을 듣는 걸까요? 우리 안에 있는 예수의 무엇이 예수님의 본질을 흐리게 한 걸까요? 우리가 참 예수님을 되찾으려면, 예수의 기운을 회복하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 참 성전, 교회다운 교회를 이루는 길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그 길은 어디일까요?
(※ 3년 전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내가 누구인지 모르세요? (김종진 지음.「성실문화」97호)
어머니 저를 나으셨지만
아직 제가 누구인지 모르시는군요
내 아버지가 누구인지
내 집이 어디인지 모르시는군요
제 아버지가 계신 곳이
저의 집이에요 어머니
거기에 저의 음식도 있고
그곳에 저의 마음이 있어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나사렛에서 자라고 있지만
예루살렘에 올라올 때마다
내 마음이 두근두근해요
유월절 양을 볼 때마다
제 살이 찢어지는 듯하고
그 피를 볼 때에
제 심장이 비워지는 듯해요
어머니, 어머니
제가 누구인지 모르시는군요.
어머니의 심장을 크게
아프게 할 날이 다가오는 듯해요
그 때에 어린양이
하늘 아버지와 함께 하는 것을
보실 수 있으실 거에요.
어머니 그때에 알게 되실 거에요.
[말씀시조] 사랑하는 어머니가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97호)
사랑하는 어머니가 지어주신 작은 겉옷
사랑의 옷 차려입고 주님을 섬깁니다
갈수록 큰사랑 받는 작고 작은 사무엘
[말씀서예] 사무엘기상 2:26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97호)
[말씀노래] 예수님 부모님은 행복하여라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97호)
[본문] (누가복음 2:41-52)
[노랫말]
1절) 예수님 부모님은 행복하여라, 열두살 우리아들 든든하여라
유월절 끝마치고 고향가는길, 아뿔싸 우리아들 사라졌어요
2절) 더듬더듬 거슬러 올라갑니다, 예루살렘 구석구석 더듬습니다
오호라 우리아들 저기있구나, 선생들 가운데 앉아있구나
3절) 애타게 너를찾아 헤매었단다, 아들아 도대체 무슨일이냐
어찌해 다른데서 찾으셨나요, 여기가 내아버지 집이랍니다
4절) 예수님 부모님은 행복하여라, 열두살 우리아들 든든하여라
부모님께 효도하는 효자동이라, 하늘땅 사랑받는 사랑동이라
[해설]
누가복음 2:41-52절 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7.5조로 다듬었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이석훈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예수님 부모님은 행복하여라’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또 하나의 말씀노래] 내 아버지의 집 (주원남 지음. 「성실문화」 73호)
(※ 6년 전 올렸던 주원남 목사님의 말씀노래 ‘내 아버지의 집’ 다시 올립니다.)
[시편 송서(誦書)] 시편 148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97호)
(※ 천자문독송 가락, 즉 전래자장가 가락으로)
1.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 데서- 그--를--, (그-를) 찬양할지어-다--∼
2. 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
3. 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4. 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5.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6. 그가 또 그것들을 영원히 세우시고 폐하지 못할 명령을 정하셨도다
7. 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8.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와, 그-의 말씀을 따르는 광풍-∼ ((이며))
9.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수와 모든 백향목이며
10.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11.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들과 고관들과 땅의 모든 재판관들이며
12. 총각과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13.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 이로다---∼
14.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다함께]
그-는 모-든 성--도--, 곧 그를 가까이 하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찬-양) 받을이시로다 할렐∼루∿야∼∥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성탄절 1주(송년주일) 2018년 12월 30일 주일 (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사무엘기상 2:18-20, 26, 시편 148, 골로새서 3:12-17, 누가복음 2:4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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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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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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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
가로열쇠
①이름 뜻은 ‘하나님은 소유하셨다(얻으셨다)’이고, 사무엘의 아버지요 한나와 브닌나의 남편이다.(삼상 1:1-2:21)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라마다임소빔 출신으로 여로함의 아들이다. 이외에도 동명이인으로 고라의 아들(대상 6:23), 아하스 때의 고관(대하 28:7), 다윗의 용사(대상 12:6)를 비롯한 몇몇 레위 인들이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대상 6:22-28, 33-38; 9:16). (사무엘기상)
②예배 의식상의 외침인데, ‘야훼(=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이다. ‘야’는 ‘야훼’의 줄인 꼴이다.(시편)
④‘높다’, ‘하나님은 높으시다(존귀하시다)’는 이름 뜻을 가진, 사사와 대제사장직을 동시에 수행했던 인물(삼상 1:3; 4:18)로서, 아론의 넷째 아들인 이다말의 후손이다.(대상 24:3, 6) 어린 사무엘의 보호자요 스승으로서 그를 양육하며 교육시켰으나,(삼상 1:25-28; 3:8-9) 사고뭉치 두 아들(홉니와 비느하스)을 제대로 훈육하지 못하여(삼상 2:12-25), 집안이 몰락하고, 동시에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패하여 법궤까지 빼앗기는 국가적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삼상 4:11-18). (사무엘기상)
⑤‘하나님께 구하여 얻다’, 또는 ‘그의 이름은 하나님이다’라는 뜻으로서, 에브라임 산지에 거주하는 엘가나의 처 한나가 하나님께 간구하여 낳은 아들이다.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이며 선지자와 제사장 직을 겸했다.(사무엘기상)
⑥국어사전에는 ‘기독교 신자를 높여 이르는 말’이라 하고, 한자로는 ‘거룩한 무리’라는 뜻으로서, 하나님의 택하심(부르심)을 받아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며 사는 믿음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말씀)에 충실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진 자들이다.(시편)
세로열쇠
①이스라엘 북쪽의 갈릴리 지역에 있는 해발 375미터의 산꼭대기 마을로서 예수님이 유년기를 보내신 고향이다. 그때는 인구 200명도 안 되는 벽촌이었으나, 지금은 6만여 명이나 산다고 한다. 예수님 고향이어서인지, 이스라엘임에도 지금도 기독교인이 많이 사는 곳이다. (무슬림 69%에 기독교인 약 30%) (누가복음)
②다윗 왕국의 수도인데,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는 여부스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주전(B.C.) 4,000년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이름 뜻은 ‘평화의 성읍’인데, 예나 지금이나 평화와는 거리가 먼 분쟁과 폭력이 가득한 도시다.(누가복음)
③구약성경에 종종 등장하는 매우 귀한 나무로서, 나무의 왕이라 불릴 만큼 크고 향기로우며 2, 3천년이나 산다. 레바논의 국기에도 들어갈 만큼 레바논의 자랑이다. 예로부터 지나친 남벌(濫伐, 나무를 함부로 벰)로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시편)
④‘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의 헬라어(=희랍어=그리스어)이며, 히브리어로는 ‘메시아’라고 한다. 예수님을 가리킨다.(골로새서)
⑤히브리어로 ‘보냄 받은 자’, ‘심부름꾼’, ‘사자’를 의미하는 말을 우리말(한자)로 번역한 것인데, 주로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심부름꾼을 가리킨다. 때때로 이 심부름꾼이 하나님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이 경우 마치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드러내시려는 듯한 느낌을 준다.(시편)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대한성서공회), 「성경낱말사전」(성도출판사), 인터넷 사전 등을 참고하고 부분 인용했습니다.)
[말씀동화] 항아리의 눈물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성탄절 선물로 곶감을 받고 무서워서 훌쩍훌쩍 울던 시절 이야기예요.
아주 오랜 옛날 어느 마을에 커다란 돌항아리 하나가 있었어요.
투박하게 생긴 아주 오래된 항아린데
그 돌항아리가 얼마나 오래 전에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무엇을 담았던 항아리였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하루는 빗물이 고인 돌항아리 위에 포르르 참새 한 마리가 찾아왔어요.
“할아버지 저 물 좀 먹을래요.”
“오냐, 얼마든지 먹으렴”
꼴깍꼴깍 맛있게 물을 먹은 참새가 말했어요.
“할아버지는 나이가 몇 살이세요?”
“난 내 나이를 잘 몰라. 몇 백 년 동안 세다가 힘들어서 아주 오래 전에 그만두었지.”
“와, 할아버지 나이가 몇 백 살도 더 되었겠네요? 그럼 할아버지는 원래 뭘 담던 항아리였나요?”
“나는 처음에 씨앗을 담아 보관했어. 사람들 먹을 양식도 담고, 땅에 심을 종자를 담기도 했지.”
“그럼 지금은 무얼 담나요? 물을 담나요?”
“한땐 포도주도 담았었는데, 언젠가 주인이 이사하려고 집 밖에 나를 옮기고는 그냥 가버린 뒤로 계속 빗물만 담고 있구나. 때론 달빛도 담고 햇빛도 담고 그런단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엔 하나님 눈물을 담은 적도 있어.”
지나가던 제비 한 마리가 참새를 보고 미끄러지듯 내려왔어요.
“참새야, 안녕? 그간 잘 지냈니?”
“와! 제비 오랜만이다. 예루살렘엔 언제 왔어? 할아버지, 얘는 제 친구 제빈데요, 지난해 저랑 같이 성전에 집 짓고 살던 이웃사촌이에요.”(시편 84:3)
갑자기 참새와 제비가 깜짝 놀라 포르르 날아올랐어요.
어느새 두 사람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돌항아리에 고인 빗물을 땅바닥에 붓고
끙끙대며 마차에 싣습니다.
하늘높이 날아오른 참새와 제비가 마차를 따라가네요.
마차가 다다른 곳은 고을에서 가장 커다란 집,
바로 예루살렘 성전이었어요.
성전 뜰 한쪽 구석에 돌항아리를 두고 갑니다.
어느새 포르르 날아온 참새와 제비에게 돌항아리가 말했어요.
“어쩌지? 너희가 먹을 빗물이 하나도 안 남았으니...”
“괜찮아요 할아버지, 아마 조금 있으면 성전 일꾼들이 할아버지 안에 사람들 사용할 물을 담을 거예요. 그 때 살짝살짝 먹으면 되요.”
그때 갑자기 사방이 소란해졌어요.
참새도 제비도 어리둥절 소리 나는 곳을 바라봅니다.
“얘야, 이게 무슨 일이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느라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누가복음 2:48)
어떤 엄마가 어린 아들 야단치는 소린가 봐요.
아마 시골에서 유월절 제사 때문에 왔다가 아들을 잃었었나보죠?
소년이 엄마와 아빠를 번갈아 올려다보며 대답합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49)
엄마아빠의 입이 성문처럼 떡 벌어지네?
등잔처럼 커다란 눈으로 엄마아빠가 서로 마주봅니다.
곁에 있던 율법학자들도, 레위인도, 이웃주민들도 소년을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저게 무슨 소리지? 조그만 녀석이 성경지식만 대단한줄 알았더니, 배포도 보통이 아닌 걸?”
바로 그때였어요.
돌항아리가 부르르 몸을 떱니다.
항아리 위에 앉아 있던 참새와 제비가 깜짝 놀랐겠죠?
“할아버지, 무 무슨 일이세요? 어디 불편하세요?”
“아, 아니, 아니다. 이젠 괜찮다.”
“어? 할아버지, 성전 일꾼이 다녀가지도 않았는데, 이게 웬 물이죠?”
돌항아리가 촉촉한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여전히 부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참 오랜만에 눈물을 받았다. 이건 하나님 눈물이랑 내 눈물이 섞인 거란다.”
“눈물이 이렇게나 많이요? 아니 그런데 왜 눈물을 흘리셨어요? 그리고 하나님은 왜 우셨나요?”
잠깐 침묵하며 마음을 가다듬은 돌항아리가 대답했어요.
“내 마음은 돌처럼 단단해서 웬만해선 눈물을 안 흘리는데, 오늘 하나님 마음이 느껴지는 바람에 내가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려버렸어.”
참새와 제비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경청합니다.
군침을 꼴깍 삼키며 귀를 쫑긋 세웁니다.
“오래전부터 하나님 마음이 말이 아니셨거든.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부터, 이런저런 종교지도자들이랑 나라를 대표하는 임금이라는 자까지, 하나같이 다 돈 욕심 권력욕심 투성이로 하나님의 마음이랑 정 반대로만 살고 있거든. 그런데 저기 저 아이가 하는 말을 들으시더니 갑자기 설움이 북받치셨는지, 아니면 감동하셨는지, 큰 소리로 우시네?”
돌항아리도, 참새도 제비도
그것이 하나님의 감동의 눈물이라는 걸 안 것은
세월이 더 지난 뒤였어요.
그 뒤로 그 어린 소년이 매년 제사 때마다 찾아오면서 차차 알게 되었죠.
소년이 갓난아기 때 할례 받은 뒤
12년 만에 찾아온 성전에서 외친 “내 아버지의 집”이라는 그 한마디가
아프고 외롭던 하나님 마음에 얼마나 큰 위로와 감동을 드렸는지를!
그리고 또
그 소년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집을 사랑하는 지를.
또 하나님은 그 소년을 얼마나 많이 사랑하시는지를
차차 알게 되었죠.
뭘 보고 그걸 알게 되었느냐고요?
그건 다음 기회에 얘기할게요.
예루살렘 돌항아리 안에는 아무도 모르는 신비로운 이야기가
아주 많이 담겨 있거든요.
[이정훈 지음. 2018년 12월 30일 주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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