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
[성서일과 4본문]
(사도행전 7:55-60)
55. 그런데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쳐다보니,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였다.
56.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하나님의 오른쪽에 인자가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57. 사람들은 귀를 막고, 큰 소리를 지르고서, 일제히 스데반에게 달려들어,
58. 그를 성 바깥으로 끌어내서 돌로 쳤다. 증인들은 옷을 벗어서,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두었다.
59. 사람들이 스데반을 돌로 칠 때에, 스데반은 "주 예수님, 내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60. 그리고 무릎을 꿇고서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이 말을 하고 스데반은 잠들었다.
(시편 31:1-5, 15-16)
1. 주님, 내가 주님께 피하오니, 내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의 구원의 능력으로 나를 건져 주십시오.
2.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속히 건지시어, 내가 피하여 숨을 수 있는 바위, 나를 구원하실 견고한 요새가 되어 주십시오.
3. 주님은 진정 나의 바위, 나의 요새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인도해 주시고 이끌어 주십시오.
4. 그들이 몰래 쳐 놓은 그물에서 나를 건져내어 주십시오. 주님은 나의 피난처입니다.
5. 주님의 손에 나의 생명을 맡깁니다. 진리의 하나님이신 주님, 나를 속량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15. 내 앞날은 주님의 손에 달렸으니, 내 원수에게서, 내 원수와 나를 박해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16.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 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베드로전서 2:2-10)
2. 갓난아기들처럼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그리워하십시오. 여러분은 그것을 먹고 자라서 구원에 이르러야 합니다.
3. 여러분은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습니다.
4.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는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으셨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살아 있는 귀한 돌입니다.
5. 살아 있는 돌과 같은 존재로서 여러분도 집 짓는 데 사용되어 신령한 집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니다.
6.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아라, 내가 골라낸 귀한 모퉁이 돌 하나를 시온에 둔다. 그를 믿는 사람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7. 그러므로 이 돌은 믿는 사람들인 여러분에게는 귀한 것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집 짓는 자들이 버렸으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돌"이요,
8. 또한 "걸리는 돌과 넘어지게 하는 바위"입니다. 그들이 걸려서 넘어지는 것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그렇게 되도록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9.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10.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자비를 입지 못한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자비를 입은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4:1-14)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고 너희에게 말했겠느냐?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3. 내가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에게로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도마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이제 너희는 내 아버지를 알고 있으며, 그분을 이미 보았다."
8. 빌립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좋겠습니다."
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네가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이것은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
14.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알맹이는 ‘나를 품어주시는 주님’입니다.
사도행전, “주 예수님, 내 영혼을 받아주십시오”(사도행전 7:59)
시편, “주님의 손에 나의 생명을 맡깁니다”(시편 31:5)
서신서,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베드로전서 2:9)
복음서,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요한복음 14:2)
오늘 요절은,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입니다.(베드로전서 2:9)
[사도행전과 시편본문 정리 (사도행전 7:55-60 / 시편 31:1-5, 15-16)]
오늘 사도행전본문은 스데반이 순교하는 장면입니다.
그 과정이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는 과정과 매우 비슷합니다.
먼저 적대자들을 격분시켜 죽음에 이르게 한 동기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인자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게 될 것이오.”(누가 22:69)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하나님의 오른쪽에 인자가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사도 7:56)
숨을 거두는 과정도 비슷합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누가 23:34, 46)
“주 예수님, 내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사도 7:59-60)
진리가 (몰)상식을 무너뜨리니 비진리인 기득권세력들이 견디지 못하고 악을 저지릅니다.
그런 죽음이, 그런 악이 예수님도 스데반도 끝내 삼키지 못하는 것은
주께서 나를 품어주시리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제목은 ‘안전한 주의 손 안에서’입니다.
내내 적대자들의 극심한 위협에 시달리던 다윗의 기도입니다.
주님만이 내 생명을 지켜주실 분이라는 확신이 구구절절 가득합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오늘 사도행전 본문 59절과 통하는 5절입니다.
“주님의 손에 나의 생명을 맡깁니다...”(시편 31:5)
어떠한 악한 상황에서도 주님은 나를 편들고 나를 품어주시리라는
믿음의 노래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베드로전서 2:2-10 / 요한복음 14:1-14)]
오늘 서신서본문의 제목은 ‘하나님의 새 백성’입니다.
이교 환경과 로마황제의 극심한 핍박 가운데서도 신앙을 지키려는 교회들,
소아시아 여러 교회들에게 주는 베드로의 권면입니다.
‘하나님의 새 백성’은 주님께서 나를 품어주실 뿐 아니라
주님과 일심동체가 되어가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님과 하나 된 교회, 예수님의 분신과 같은 우리!
4.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는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으셨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살아 있는 귀한 돌입니다.
5. 살아 있는 돌과 같은 존재로서 여러분도 집 짓는 데 사용되어 신령한 집이 됩니다...
오늘 본문은 마치 돌 시리즈 같습니다.
“귀한 돌”(4), “살아있는 돌”(5), “버린 돌, 모퉁이 돌, 머릿돌”(6,7), 그리고 “걸림돌”(8)
구약의 돌 이야기들이(사 28:16, 시 118:22) 줄줄이 이어지며,
마침내 믿는 자들의 복스러움을 드러냅니다.
요약하자면, 이방인이었던 우리가(10) 하나님 말씀으로 거듭나서(2),
산돌로서 신령한 성전건축에 쓰임 받은 자가 되고(5)
마침내 이스라엘 민족에게 부여된 온갖 명예로운 칭호들까지 받게 된 것입니다.(9)
오늘 복음서본문의 제목은 ‘아버지께로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기나긴 고별연설의 시작부분입니다.
예수님 떠나시는(죽으시는) 목적은 우리가 있을 곳을 마련하는 일,
즉 우리 모두가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고별사여서인지, 오늘 예수님 말씀은 구구절절 강렬합니다.
특히 6절 말씀이 그렇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이 길(예수님)은 이미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오셨던 바로 그 길입니다.
하나님은 이모저모로 백성에게 당신 뜻을 계시하셨지만
이렇게 온전하게 당신 자신이 오셨던 적은 없었습니다.(9-11)
그러므로 가장 온전하게 아버지께 갈 길은 바로 이 길뿐입니다!
특히 11절 말씀은
예수님께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외치셨던 바로 그 말씀의 반복입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아라. 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면, 나를 믿지는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0:37-38)
그리고 13-14절의 “내 이름으로 구하면” 다 이루어주신다는 것은,
예수이름 의지해서, 즉 주님 뜻하시는 대로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가지는 담대함은 이것이니, 곧 무엇이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요일 5:14)
오늘 복음서본문은 ‘나를 품어주시는 주님’이 점점 무르익어
삼위 하나님이 하나이시듯, 우리도 주님과 하나 되어감을 내다보게 합니다.
아버지의 일(10)을 아드님이 하시듯(11)
그 일을, 아니 그보다 더 큰 일을 우리가 하게 하시니 말입니다.(12)
이건 그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일,(벧전 2:9)
즉, 우리가 하나님과 온전히 하나 되는 경지의 일입니다.
바로 이것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지금 떠나시려는 것입니다.(12)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참조)
[정리]
예수님께서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4:1)
그 어떤 극한 상황, 악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근심하지 않는 것은
내 아버지 집에 내 방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련해 주신 방입니다.
스데반도 믿고 근심하지 않았던 그 방입니다.
베드로도 바위처럼 굳게 믿었던 그 방입니다.
다윗도 그리워한 그 방입니다.
그 방은 신령한 젖과 같은 주님의 말씀을 먹으며 이르는 방입니다.
그 방은 오직 예수님 이름으로 직통하는 방입니다.
그 방은 주님과 내가 하나 되어 동거하는 방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그 방으로, 빛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나머지]
* 스데반과 5.18 빛고을 시민들
며칠 있으면 5.18, 대한민국 빛고을 광주(光州)의 절망과 희망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1980년 5월, 군부독재자들은 자기들 상식의 세계가 무너질 것을 걱정하여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몰아 무자비하게 죽인 것입니다.
1980년 5월 18일 이후 대한민국 광주는 우리의 상식, 아니 몰상식을 무너뜨렸습니다.
오늘 사도행전본문의 스데반이 신성모독이라는 이름으로 죽어가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스데반이 자기 영혼을 주님께서 품어주실 것을 믿었듯이,
1980년 빛고을 광주시민들 역시
역사가 그들의 빛나는 생명을 기억하리라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오월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같은 노래들이 부활하고 있습니다.
5.18 행사장 광주시민 뿐 아니라
대한민국 온 국민들 가슴마다 그 노래가 번지고 있습니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마치 오늘 시편본문의 다윗의 노래처럼,
제아무리 악한 상황이 기승을 부릴지라도 마침내 ‘공평과 정의’가 이기리라는
믿음의 노래입니다.
[말씀동시] 교회란 (이선구 지음. 성실교회 청년부. 「성실문화」90호)
우리가 그분을 모실 수 있게 하는 자리이며
우리가 그분과 가까워지게 하는 장소이다.
그분과 함께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지점이며
그분을 모시고 있는 신성한 신전이다.
진정으로 우리가 속해야 할 길이자 생명인
그 이름은 바로 교회이다.
[말씀시조] 성령충만 스데반이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90호)
성령충만 스데반이 부활예수 증거하니
몽매한 폭도들이 스데반을 돌로 치네
원수들 다 용서하고 스데반이 잠들다
[말씀한시] 바로 그 현장에는 사울이 있었다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90호)
熱烈講說司提反(열렬강설사제반) 스데반이 열렬히 외쳤다
注目仰天上帝榮(주목앙천상제영) ‘저 천상 하나님의 영광을 보시오’
同心擁上石擊之(동심옹상석격지) 일제히 달려들어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였다
現場少者掃羅名(현장소자소라명) 바로 그 현장에는 청년 사울이 있었다.
[말씀서예] 사도행전 7:56 (「성실문화」90호)
[말씀노래] 내가 바로 길과 진리, 생명이로다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90호)
[본문] (요한복음 14:1-14)
[노랫말]
1. 너희는 마음에 근심말아라 / 하나님을 믿으니 또나를(날) 믿어라 /
내가가서 너희거처 예비하리라 / 다시와서 너희를 영접하리라
2. 나의길 너희모두 알고있노라 / 주여그길 저희는 모르옵니다 /
도마야 나의길은 아버지의집 / 내가바로 길과진리 생명이란다
3. 너희는 내아버지 알고있노라 / 너희는 내아버지 이미보았다 /
저희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소서 / 빌립아 눈을열고 나를보거라
4. 아버지안에 내가있고 내안에 아버지 / 너희는 이를믿고 결행하여라 /
내이름 내뜻대로 기도하여라 / 내가바로 길과진리 생명이로다
[해설]
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었고, 문화원 동인인 찬양사역자 이석훈 목사님이 가락을 붙였다.
[악보] 내가 바로 길과 진리, 생명이로다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2014. 1)
[시편 송서(誦書)] 시편 31:1-5, 15-16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90호)
(※ 천자문 독송가락, 즉 전래 자장가가락으로)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
2.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소-서--∼
3.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4. 그들이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그물에서--) 빼-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 니이다---∼
5.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속량하셨나이다
15.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주소서-∼
[다함께]
16.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나-를) 구원하∼소∿서∼∥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부활절 5주 2017년 5월 14일 주일 (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사도행전 7:55-60, 시편 31:1-5,15-16, 베드로전서 2:2-10, 요한복음 14:1-14
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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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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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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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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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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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열쇠
①구약 17권 째 성경으로서 이 책의 히브리어 원명은 ‘찬양의 책’(세페르 테힐림)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찬양뿐만 아니라 기도의 시가 더 많아서 70인 역은 ‘시의 책’이라고 하였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성경 전체의 축소판이다’라 할 정도로 이 책에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가 담겨 있으며, 모세에서부터 에스라에 이르기까지 거의 1000여 년에 걸친 긴 세월동안 여러 사람들이 각기 다양한 환경과 시대배경 속에서 지은 시를 담았다. 이 책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와 경배이며, 그래서 예수님을 비롯한 신약성경의 많은 기록자들이 구약에서 이 책을 가장 많이 인용하였다.
②성경에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인 이 이름이 자주 나오는데, 여기에는 여러 이미지가 담겨 있다. 때론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에 견주어 약하고 덧없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특히 하나님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몸소 마지막 심판을 주재하실 분, 심판 후 왕국을 지배하실 분(다니엘 7:13-14)이라는 뜻을 담아 예수님을 가리키기도 한다.(사도행전)
③이름 뜻은 '면류관'이다. 초대교회가 가난한 자들을 매일 구제하는 일을 맡기려고 선출했던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행 6:1-6)이다. 헬라파 유대인이며,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다. “○○○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쳐다보니”(사도행전)
⑤제사장 : 성소에서 제사를 맡아 주관하고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는 사람. 레위 족속 가운데서도 아론의 후손들만 이 일을 맡아 했다. 24패로 나뉘어 차례대로 일했다. 나머지 레위인들은 성소의 다른 일들을 맡아서 했다.(베드로전서)
⑥예수님의 12사도 중 한 사람으로, 그 이름은 ‘쌍둥이’라는 뜻이다. 요한복음에서는 ‘디두모’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다가 의심 많은 제자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전설에 의하면 인도에서 순교하였다.(요한복음)
세로열쇠
①다윗이 점령한 여부스족 요새의 본 이름인데, 그 뒤로 다윗성이라 불리다가, 차차 온 예루살렘과 그 주민의 칭호가 되었다.(베드로전서)
②남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김. 또는 그렇게 여겨서 베푸는 혜택. 하나님께서 죄 많은 우리를 향하여 품으시는 마음을 가리키는 낱말로도 쓰인다.(베드로전서)
④이름 뜻은 ‘말을 사랑하는 자’이다. 성경에는 동명이인이 몇 있는데, 그 중 중요 인물로는 사도 빌립과 집사 빌립이다. ‘사도 빌립’은 갈릴리 근처 벳새다 출신으로서 나다나엘을 주님께 인도했다. 원래 안드레와 함께 세례요한의 제자였던 것으로 추정한다.(요 1:44) 이성적이고 계산이 빠른 반면 소심하고 소극적인 성품인 듯 하다.(요 6:5) 말년에 소아시아 브루기아에서 일하다가 히에라볼리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집사 빌립’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헬라파 과부들을 돕고 봉사와 구제를 위해 선발된 최초의 일곱 집사 가운데 한사람으로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였다.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였고(이 사건은 동북 아프리카에 복음이 전파되는 중요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였다. “○○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요한복음)
⑤성경에 동명이인이 몇 명 있는데, 구약과 신약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을 각각 꼽으라면, 구약의 이 인물은 이스라엘 첫 왕이었다. 그는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로서 키가 크고 용모도 준수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며, 백성에게 인기가 좋은 다윗을 시기하다가, 급기야 블레셋과의 전쟁 중 길보아 산 전투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신약의 이 인물 역시 베냐민 지파 사람인데 나중에 바울로 이름을 바꾼다.(사도행전)
⑥‘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의 헬라어(=희랍어=그리스어)이며, 히브리어로는 ‘메시야’라고 한다. 예수님을 가리킨다.(베드로전서)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대한성서공회), 「성경낱말사전」(성도출판사), 인터넷 사전 등을 참고하고 부분 인용했습니다.)
[말씀동화] 빛고을이 바위섬을 부르기 시작하니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헤엄쳐 바위섬에 놀러가서
갈매기랑 물개랑 여럿이 함께 노래 부르던 시절 이야기예요.
그때는 돌섬이었는데 지금은 독도라고 부르죠.
독도가 된 뒤부터 홀로섬[독도(獨島)]이라고 뜻이 바뀌었고요.
‘돌’을 원래 ‘독’이라고도 부르는 건데, 돌이 졸지에 외로워진 건가?
아무튼 그렇잖아도 아무도 찾지 않는 돌섬이
이름 때문에 진짜 외로운 섬이 되어버렸습니다.
하긴 섬은 원래 외롭죠.
작은 섬일수록 더 외롭고요.
이젠 강치도 물개도 호랑이도 안 찾아와서 더 외롭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외로운 섬, 바위섬 독도에 사람이 찾아왔어요.
누구한테 얻어맞았는지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고
온몸 구석구석 피멍이 들고 상처에서 피가 흐릅니다.
하루 또 하루 바닷물에 몸을 닦고, 철썩철썩 파도소리에 마음을 닦습니다.
어느 날 수심 가득한 눈으로 하염없이 흰 파도와 갈매기만 바라보던 시인은
문득 눈빛을 반짝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무언가 적기 시작했어요.
무엇을 적는지 한참을 적어 내려가는 동안 눈물도 주르르 흘러내립니다.
한바탕 무언가를 적은 뒤에 그 글을 되 뇌이며 그는 흥얼흥얼 노래합니다.
아하! 시를 짓고 가락을 붙이는 걸 보니, 그는 시인인가 보죠?
그 사람의 노랫소리에 “끼룩 끼룩‘ 갈매기들이 추임새를 넣으며
장단을 맞춥니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던 이곳에, 세상 사람들 하나둘, 모여들더니, 어느 날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위섬과 흰 파도라네,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해...이제는 갈매기도 잠들고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바위섬’ 배창희 지음. 김원중 노래]
시인이 살던 고장은 빛고을 광주(光州)입니다.
광주는 예로부터 인심 좋고 음식 좋고 노래도 좋은 고장이었습니다.
그 이름 그대로 모든 게 빛나는 고을이었고,
모든 이들 마음을 빛나게 해주는 찬란한 고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승냥이 떼가 들이닥칩니다.
며칠 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이리떼가 빛고을에 들이닥칩니다.
그리고 수많은 빛고을 사람들을 물어뜯기 시작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이리떼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그리고 불구의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보다 못한 빛고을 사람들이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리떼를 막기 위해서 뭉쳐서 죽창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이리떼를 막아내기엔 턱없이 작았습니다.
그래서 고을 밖으로 사람을 보내어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이리떼의 우두머리는 미리 손발을 써서 빛고을을 철저히 고립시켰습니다.
이웃 고을 사람들이 빛고을에 들고나지도 못하고, 소식도 듣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빛고을은 빛을 잃었고, 하루하루 외로운 돌섬처럼 변해갔습니다.
철저히 차단된 육지 속 섬이 되어간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도 돌처럼 굳어지고
마음 따라 몸까지 굳어져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빛을 잃은 빛고을에 시인이 들어왔습니다.
바위섬 독도에서 이리떼에게 물어뜯긴 상처를 닦고
승냥이 떼에게 찢긴 마음, 동료들을 떠나 도망친 부끄러운 마음까지 다 닦아내고서
빛나는 몸, 빛나는 마음으로 고향땅에 돌아왔습니다.
반겨주는 이 하나 없어도, 기어이 시인은 고향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노래를 부르기 위해 노래를 품고 돌아온 것입니다.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해...이제는 갈매기도 잠들고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시인이 부르는 바위섬 노래를 듣고 쓰러진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섭니다.
서로서로 부축해주며 어깨동무가 되어 시인에게 다가옵니다.
시인이 부르는 노래에 아픈 사람들이 모여 들자, 시인은 성경말씀도 읊조립니다.
성경말씀 따라 바위섬이 이젠 외로운 섬이 아니라 든든한 요새가 되어갑니다.
‘주님은 진정 나의 바위, 나의 요새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인도해 주시고 이끌어 주십시오. 그들이 몰래 쳐 놓은 그물에서 나를 건져내어 주십시오. 주님은 나의 피난처입니다. 주님의 손에 나의 생명을 맡깁니다. 진리의 하나님이신 주님, 나를 속량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내 앞날은 주님의 손에 달렸으니, 내 원수에게서, 내 원수와 나를 박해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 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시편 31:3-5, 15-16)
이윽고 시인의 노래를 듣고 성경말씀을 들은 빛고을 사람들 마음이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밝아지니 몸도 따라 밝아집니다.
빛고을 사람답게 노랫말 하나하나가 환하게 빛납니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 이리떼에 맞선 사람들은 쓰러지고 스러져갔어도
그들이 외친 정의의 함성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山川)은 압니다.
깨어난 사람들의 뜨거운 함성, 정의의 외침을
산꼭대기에 새기고 흐르는 강의 마음에 새긴 것입니다.
그 외침을 하늘이 알고 땅이 기억하는 것입니다.
빛고을 사람들이 일어나 시인의 노래 바위섬을 따라 부르기 시작하자,
육지 속 섬이었던 광주, 돌처럼 굳어버린 섬 광주의 몸과 마음이
하루하루 풀리기 시작합니다.
빛고을 광주의 마음이 풀리고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면서
시인의 노래 바위섬이 온 나라로 번지기 시작합니다.
빛고을의 노래에 온 나라의 어둠이 물러가고 밝아집니다.
빛고을의 노래가 온 나라의 마음을 위로합니다.
[이정훈 지음. 2017년 5월 14일 주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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