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라”
[성서일과 4본문]
(하박국 1:1-4, 2:1-4)
1. 이것은 예언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말씀이다.
2.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시고, "폭력이다!" 하고 외쳐도 구해 주지 않으시니, 주님,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3. 어찌하여 나로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보기만 하십니까? 약탈과 폭력이 제 앞에서 벌어지고, 다툼과 시비가 그칠 사이가 없습니다.
4.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합니다. 악인이 의인을 협박하니, 공의가 왜곡되고 말았습니다.
2:1. 내가 초소 위에 올라가서 서겠다. 망대 위에 올라가서 나의 자리를 지키겠다.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실지 기다려 보겠다. 내가 호소한 것에 대하여 주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실지를 기다려 보겠다.
2. 주님께서 나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라. 판에 똑똑히 새겨서, 누구든지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여라.
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되어야 이루어진다. 끝이 곧 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공연한 말이 아니니, 비록 더디더라도 그 때를 기다려라. 반드시 오고야 만다. 늦어지지 않을 것이다.
4. 마음이 한껏 부푼 교만한 자를 보아라. 그는 정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시편 119:137-144)
137. 주님, 주님은 의로우시고, 주님의 판단은 올바르십니다.
138. 주님께서 세우신 증거는 의로우시며, 참으로 진실하십니다.
139. 내 원수들이 주님의 말씀을 잊어버리니, 내 열정이 나를 불사릅니다.
140. 주님의 말씀은 정련되어 참으로 순수하므로, 주님의 종이 그 말씀을 사랑합니다.
141. 내가 미천하여 멸시는 당하지만, 주님의 법도만은 잊지 않았습니다.
142. 주님의 의는 영원하고, 주님의 법은 진실합니다.
143. 재난과 고통이 내게 닥쳐도, 주님의 계명은 내 기쁨입니다.
144. 주님의 증거는 언제나 의로우시니, 그것으로 나를 깨우쳐 주시고 이 몸이 활력을 얻게 해주십시오.
(데살로니가후서 1:1-4, 11-12)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 사람의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2.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3.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을 두고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니,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크게 자라고, 여러분 모두가 각자 서로에게 베푸는 사랑이 더욱 풍성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4. 그러므로 우리는 온갖 박해와 환난 가운데서도 여러분이 간직한 그 인내와 믿음을 두고서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여러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11.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나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시며 또 그의 능력으로 모든 선한 뜻과 믿음의 행위를 완성해 주시기를 비는 것입니다.
12. 이렇게 해서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여러분에게서 영광을 받고,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9:1-10)
1. 예수께서 여리고에 들어가 지나가고 계셨다.
2.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세관장이고, 부자였다.
3. 삭개오는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려고 애썼으나, 무리에게 가려서, 예수를 볼 수 없었다. 그가 키가 작기 때문이었다.
4. 그래서 그는 예수를 보려고 앞서 달려가서, 뽕나무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거기를 지나가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러서 쳐다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
6. 그러자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서, 기뻐하면서 예수를 모셔 들였다.
7.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서, 모두 수군거리며 말하였다. "그가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
8. 삭개오가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9.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10.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제대로 잘 사는 길’입니다.
구약,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하박국 2:4)
시편, “그것으로 나를 깨우쳐주시고 이 몸이 활력을 얻게 해주십시오” (시편 119:144)
서신서, “여러분의 믿음이 크게 자라고... 사랑이 더욱 풍성해가고” (데살로니가후서 1:3)
복음서, “예수를 모셔 들였다” (누가복음 19:6)
오늘 요절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라”입니다. (하박국 2:2)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하박국 1:1-4, 2:1-4 / 시편 119:137-144]
오늘 구약본문의 예언자는 유대나라가 한창 어지러운 시절, 여호야김 시대에 활동한 하박국입니다.
요시야왕의 말씀회복과 예배개혁, 즉 기운찬 종교개혁의 불길을
그 아들 여호야김이 꺼버리고 나라는 크게 어지러워진 그 시절,(예레 22:13-17)
부정부패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하박국은 끊임없이 하나님과 문답합니다.
악인이 잘되고 의인이 고통 받는 수상한 시절입니다.
강포한 외세(바벨론)는 승승장구하고, 그 와중에도 부정부패한 여호야김 정권은 부패의 끝을 모릅니다.
예언자 하박국은 말이 아니라 판에 기록하여 누구나 읽을 수 있게 하는 식으로 예언을 합니다.
대자보, 또는 고속도로 중간중간에 있는 커다란 광고판이나 이정표가 연상됩니다.
아니 요즘 같아서는 스마트폰 SNS에 글을 올리는 방법이 더 연상됩니다.
오늘 그 예언의 알맹이는 이 어지럽고 수상한 시절도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끝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사람은 끝까지 말씀(언약)을 붙들고 의지한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믿음,
이 난세에 우리가 살 길이요, 요시야의 개혁을 되살릴 수 있는 길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은 온통 하나님 말씀 칭송으로 가득한 시 119편 중 일부입니다.
말씀이 하루하루 잊히는 세상이지만, 그럴수록 말씀을 향한 열정이 불타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139)
말씀대로 살려하면 점점 더 불편해지는 세상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말씀을 더욱 기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143)
그게 진정 활기차게 사는 길, 제대로 잘 사는 길임을 아는 사람입니다.(144)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데살로니가후서 1:1-4, 11-12 / 누가복음 19:1-10)]
오늘 서신서본문의 무대인 데살로니가 교회는 마지막 때에 대한 오해로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닥쳤다고 아무 일도 안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오직 말씀, 말씀을 바로 읽고 바로 믿는 길입니다.
하박국 시대의 어지러움을 극복한 바로 그 믿음,
끝을 제대로 직시하고, 끝까지 언약(말씀)을 붙드는 믿음 말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주인공은 삭개오입니다.
삭개오는 난세에 끝까지 말씀을 붙들고 산 사람이 아닙니다.
그 반대로 난세를 기회로 돈을 번 부정부패 불의한 사람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런 삭개오가 오늘 개과천선(改過遷善)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겁니다.
말씀을 붙잡은 겁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예수님을 초청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청하여 삭개오네 집으로 가신 것입니다.
삭개오는 그저 예수님이 궁금해서 바라보려고 애썼을 뿐이었습니다.
큰 믿음으로 말씀(예수님)을 붙든 것이 아니라, 그저 궁금해서 말씀을 보려했을 뿐인데
그런 삭개오 안으로 ‘말씀’이 스스로 쑥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러자 삭개오 인생이 180도 변신한 것입니다.
[정리]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오직 믿음”, “오직 말씀”을 외치던 마르틴 루터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한 날입니다.
루터의 개혁의 극치가 마침 오늘 구약본문인 하박국 2:4절 말씀이었다는 사실이 뜻 깊습니다.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한국교회가 제대로 잘 사는 길이 여기 있습니다.
하박국 시대가 그랬듯이,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랬듯이,
오늘 한국교회 역시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무슨 뜻인지 몰라도 끊임없이 말씀을 읽으려 뽕나무에 오르는 수고를 아끼지 않을 때,
그 말씀께서 기쁨으로 내 안에 들어오시는 기적을 체험할 것입니다.
내 안에 들어오신 말씀과 어울리다보면,
신선노름에 도끼자루야 어찌되건, 중요한 건,
삭개오처럼 내가 변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마침내 마지막 때가 제대로 보이고 그 때를 제대로 준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회개하여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이 묵시를 기록하는,
이 복음을 외치는
한국교회가 참 예언자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나머지]
* 루터 종교개혁의 알맹이는 “온 세상을 수도원으로!”였습니다.
수도원에서나 읽을 수 있었던 성경이었습니다. 성경을 가질 수도 읽을 수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수도사의 길을 버리고 파계한 것으로만 알았는데, 사실 루터의 목표는 수도원정신을 붙들고 세상 모두가 성경말씀을 읽을 수 있게 하려던 것이었습니다.
“수도원을 떠나 세상으로 돌아온 ‘마르틴 루터의 길’은 초대교회 이래 이 세상에 대하여 수행된 가장 날카로운 공격이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길은 이제 이 세상 한 복판에서 실천되어야 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벗어난 수도원 생활에서 특별한 능력으로 실천되던 것들이 이제는 세상 안에 살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피할 수 없는 명령이 되었습니다. 예수의 명령에 대한 완전한 순종이 일상적인 직업생활에서 수행되어야 했습니다. 이로써 그리스도인의 삶과 세상 삶 사이의 갈등이 예측할 수 없을 만큼 깊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맞서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백병전이었습니다... (본훼퍼, 허혁 역「나를 따르라」서회, 1965. 30-31 / 채수일. ‘종교개혁-세상을 수도원으로 만드는 운동’,「기독교사상」 2015. 3월호 8쪽 재인용)
* 사경(寫經)과 초서(抄書)
사경(寫經)은 성경공부를 위해 열심히 모여 함께 연구하는 사경(査經)이 아니라, 성경말씀을 베껴 쓰는 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우리 옛 사람들은 불경은 물론 사서삼경을 무시로 베껴 쓰는 일을 귀히 여겼습니다. 인쇄도구가 부족했던 시절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경서를 베껴 쓰는 일 자체가 귀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불가에서는 불경을 베껴 쓰는 일을 부처님께 공양하는 일로도 여길 정도였습니다. 요사이는 성경말씀을 눈으로 읽을 뿐 아니라 오디오 기기를 통해 귀로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새기는 길 가운데는 소리 내어 읽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사경, 즉 성경말씀을 일일이 베껴 쓰는 훈련 역시 귀중한 전통이요 성경말씀을 새기는 훌륭한 방법이라 여겨지고 있습니다.
초서(抄書)는 글씨 서체 가운데 하나인 초서(草書)가 아니라, 책 가운데서 중요한 내용을 뽑아서 베껴 쓰는 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옛 선비들은 자신의 학식이 이미 높았음에도, 옛 성현들의 글이나 동문수학하는 이들의 귀한 글귀를 베껴 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귀한 사상들과 소통했고, 그런 행위 자체를 안빈낙도(安貧樂道) 침잠완색(沈潛玩索)하는 길이라 여긴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부지런히 베껴 쓰는 사경은 물론이고, 성경의 진리를 논한 예언자적인 글들을 베껴 쓰는 초서문화를 되살리면 좋겠습니다. 앞에 소개한, 루터의 종교개혁을 재해석한 본 훼퍼의 글과 같은 귀한 글을 SNS 같은 곳에 적어 올리는 것도 이 시대의 하박국 식(式) 초서문화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끝으로 옛 어른들의 초서문화 흔적을 하나 소개합니다.
경서를 통째로 베끼거나 중요한 부분만 가려 뽑아 베끼거나, 이것이(초서抄書하는 것이) 좀 무식하고 무의미한 일 같으나, 실제로 중요한 공부방법이라고 가르쳐주신 스승님의 가르침을 산석(山石) 황상은 76세가 되도록 곰처럼, 거북이처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키려 애썼다.
『... 황상이 76세이던 어느 날, 돋보기를 코에 걸치고 한참 책을 베껴 쓰는 그를 보고 사람들이 물었다. “그 연세에 무슨 영화를 보시려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만 하십니까.” 황상의 대답은 이랬다. “내 스승이신 다산 선생께서는 이곳 강진에 귀양 오셔서 스무 해를 계셨네. 그 긴 세월에 날마다 저술에만 몰두하시느라 바닥에 닿은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났지. 열다섯 살 난 내게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삼근(三勤)의 가르침을 내려주시면서 늘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네. “나도 부지런히 노력해서 이를 얻었느니라. 너도 이렇게 하거라.” 몸으로 가르치시고 말씀으로 이르시던 그 가르침이 6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어제 일처럼 눈에 또렷하고 귓가에 쟁쟁하다네. 관 뚜껑을 덮기 전에야 어찌 이 지성스럽고 뼈에 사무치는 가르침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책에서 필요한 부분을 베껴 쓰는 초서(抄書) 공부를 다산은 중시했다. 황상도 이 공부를 죽을 때까지 한 것이다. 다산은 “공부에는 요령이 필요하다. 초서를 통해 그 요령을 익힐 수가 있다. 처음 보는 내용은 따로 적어두어야 한다”고 자식과 제자를 가르쳤다. 다산의 맏아들 정학연이 남긴 글에 의하면 황상은 다산이 가장 아낀 제자였다고 한다.[책소개. 중앙일보 배영대 기자; 정민.『삶을 바꾼 만남-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문학동네(2011)]
* 예수님과 삭개오
삭개오에게는 판의 흐름을 읽는 눈이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평생 터득한 이익을 쫓는 동물적 감각으로 인생을 올인해야 할 승부처를 찾은 것입니다. 처음엔 마치 노름판의 타짜처럼 (구라든, 끗발이든)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자기 집으로 모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자기 집에 들어오시자 삭개오는 점점 그분 예수님께 몰입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가장 귀하게 여기던 돈, 꽁꽁 묶어두었던 돈주머니를 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뒤 삭개오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무튼 삭개오는 단 한번 예수를 만나 인생이 변화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평생 예수를 만난다고 하면서도 인생이 변하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말씀의 바다에 나를 풍덩 던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내 인생에 맞추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순종이 아니라 계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목수들의 그랭이 법은 여기서 참 소중한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랭이 법이란 한옥 지을 때 쓰는 말입니다. 톱으로 자른 매끈한 나무기둥을 받치기 위해 주춧돌 면을 매끈하게 하지 않고, 반대로 주춧돌 면은 원래 울퉁불퉁한 대로 두고 그 울퉁불퉁한 주춧돌 면에 맞추어 나무기둥 밑동을 울퉁불퉁하게 깎아내어 주춧돌 위에 딱 맞추어 끼워 세울 수 있게 하는 기법입니다. ‘주춧돌이신 주님 말씀에 딱 맞추어 나를 깎아내자!’)
단 한번 예수를 만난 삭개오, 그 인생이 송두리째 변한 반면에, 우리 인생이 여태 변하지 못하는 까닭은 어쩌면 우리가 아직 예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니 바로 그것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예수를 만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아직 나무 위에만 있다는 말입니다. 나와 눈이 마주치신 예수님께서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어서!” 하고 부르시는대도, 무엇 때문인지 머뭇거리고 있기 때문이란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나무 위에서 언제까지 예수가 어떤 분인지, 조사만하고 있을 것입니까? 멀리서 바라보듯 관망하고만 있을 것입니까?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과 만나는 곳입니다. 만나서 그분을 맛보고, 그분을 먹고, 그분과 하나 되는 곳입니다. 그분의 맵고 쓰고 짜고 시고 달콤한 오미자와 같은 오만가지 맛을 보고, 그 희로애락, 기쁨과 공포와 십자가의 눈물 핏물, 그리고 마침내 신비로운 부활의 환희를, 부활의 능력을 맛보아야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말씀동시] 삭개오의 짧은 키 (이진구 지음. 성실교회 중등부 2학년. 「성실문화」88호)
삭개오의 약점인 짧은 키
삭개오의 단점인 짧은 키가
예수님께 구원받아
커보이네
[말씀시조] 예수님 궁금해서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8호)
예수님 궁금해서 뽕나무 오른건데
예수님 내게 오사 구원을 베푸시네
예수님 보시옵소서 이 죄인의 변화를
[말씀한시] 저 분이 죄인의 집에서 묵으신다고?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88호)
汚吏稅吏官(오리세리관) 탐관오리 세리
撒該矮小身(살해왜소신) 왜소한 삭개오
欲見升桑樹(욕견승상수) 예수님 얼굴을 보고 싶다고 뽕나무에 오르니
今夜宿汝門(금야숙여문) 오늘 밤 네 집에서 묵으리라 하셨다
濟貧財割半(제빈재할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이웃에 나눠 주겠습니다
衆見喞咕喧(중견즉고훤) 무리가 수군수군 말질을 했다
彼宿罪人屋(피숙죄인옥) 저 분이 죄인의 집에서 묵으신다고?
汝爲亞伯孫(여위아백손) 세리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니라.
[말씀서예] 시편 119:137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88호)
[말씀노래] 여리고 아리랑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8호)
[본문] (누가 19:1-10)
[노랫말] 여리고 아리랑
1. 예수님 여리고 지나가시다 / 뽕나무 삭개오 쳐다보시네
삭개오 삭개오 세리삭개오 / 뽕나무 뭐하러 올라갔느냐
2. 예수님 예수님 우리예수님 / 예수님 보고싶어 올라왔어요
삭개오 삭개오야 내려오너라 / 오늘은 네집에서 묵어야겠다
3. 사람들 수군수군 난리가났네 / 예수님이 죄인집에 묵으러가네
신이오른 삭개오 크게외치네 / 내재산 세상에 바치렵니다
4. 삭개오 닫힌마음 예수님만나 / 여리고 여린마음 활짝열리네
바로오늘 이집에 구원이왔노라 / 인자는 오늘도 잃은양찾았노라
5.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여리고 삭개오 행복하여라
여리고 여리고 여리여리고 / 여리고 굳은마음 허물어지네
[해설]
본문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어서 아리랑 가락에 얹었다.
[악보] 여리고 아리랑 (이정훈 지음, 2013. 6. 26)
[시편 송서(誦書)] 시편 119:137-144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88호)
(※ 천자문 독송 가락, 즉 전래 자장가 가락으로)
137. 여--호--와--여--, 주-는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
138. 주께서 명령하신 증거들은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니이다
139. 내 대적들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 내 열정이 나를 삼켰나이다
140. 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141. 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142.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
143.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다함께]
144. 주--의-- 증거-들은-,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사-,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88호 예배마당)
왕국절 10주, 2016년 10월 30일, 종교개혁주일 (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하박국 1:1-4, 2:1-4, 시편 119:137-144, 데살로니가후서 1:1-4, 11-12, 누가복음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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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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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열쇠
①만유의 창조주시며 구원자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성부, 성자, 성령을 가리키는, 한국인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하느님이라고도 부른다. 천주교식으로 천주(天主) 즉 하늘의 주인, 즉 하늘님이 변해서 하느님이 된다. 그런데 ‘하늘’은 예전에 ‘하날(하ᄂᆞᆯ)’이라 불렀던 것에 비추어 하늘님보다 하날님, 즉 ○○○이 더 오랜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천주교와 개신교가 함께 보는 성경은 ‘하느님’으로 뜻을 모았다. ○○○에는 하늘의 느낌 외에도 ‘하나’를 뜻하는 느낌도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데살로니가후서)
②사도 바울의 가장 절친한 동역자이며 후계자로서, 유대인 어머니와 헬라(그리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유니게와 외할머니 로이스로부터 기독교 신앙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몸도 약하고 성격도 소심한 편으로 추측되지만 주님의 교회를 열심히 섬긴 목회자다. 바울과 함께 여러 서신서의 공동발신인이기도 하다. ‘고린도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빌레몬서’ 등. (데살로니가후서)
③예루살렘교회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서, 예루살렘교회 결의안을 안디옥교회에 전달하기 위해 바울, 바나바와 함께 파송되었었다.(행 15:22-23) 마가 요한 문제로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졌을 때, 바울의 선교여행에 동역했고, 베드로와도 동역하여 베드로전서를 대신 기록하기도 했다.(베전 5:12). 아람(유대)식 이름인 실라의 라틴(로마)식 이름. 유대출신 로마시민이었다. (데살로니가후서)
④‘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의 헬라어(=희랍어=그리스어)이며, 히브리어로는 ‘메시야’라고 한다. 예수님을 가리킨다.(데살로니가후서)
⑤하나님께서 백성들과 관계하시는 방식, 백성을 사랑하시는 방식이다. 하나님께서 백성과 맺으신 언약, 즉 백성을 지키시고 보존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 방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아우르는 표현으로서, 하나님은 이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신다.(시 37:28, 사 61:8) “악인이 의인을 협박하니, ○○가 왜곡되고 말았습니다.”(하박국)
세로열쇠
①유다 예언자 중 한 사람이다. 유다의 종교개혁을 위해 애썼던 요시야 왕이 죽은 뒤 그 아들 여호야김 때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대국 바벨론의 강포와, 그 와중에도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백성을 수탈하기만 하는 부패한 여호야김 정권을 보며(예레 22:13-17), 하나님의 정의가 살아있다면 어떻게 악인이 판치고 의인이 핍박당하는 시대가 계속될 수 있는지를 끈질기게 질문한 예언자다. 그의 예언서 마지막 세 번째 장은 감동적인 음악(시가)형식이어서 혹시 레위인 음악봉사자 출신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기도 한다. (하박국)
②마케도니아의 가장 중요한 항구도시였으며 로마제국의 속령 마케도니아주의 수도이며 총독의 주재지였다. 이 도시는 로마제국의 동서를 잇는 가장 중요한 도로인 데그나티아 대로변에 있었다. 바울과 실루아노가 선교여행 중에 빌립보에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난 뒤 이 도시에 이르러 전도하여 교회가 세워졌다. 뒤에 바울은 이 교회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디모데를 보내기도 했으며 이 교회에 두 차례 써 보낸 편지가 신약성경에 들어 있다.(데살로니가후서)
③노아의 12대 손이요 데라의 아들로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났다.(갈대아는 지금의 이라크 남부지역으로서, 바벨론이 수도였는데, 뒤에 바벨론 제국으로 컸다. 우르는 이라크 남단 유프라테스 강변 도시로서, 예전 수메르의 도시국가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의 부인 사라에게서 이삭을 낳았다. 그의 형제는 나홀와 하란이며, 그의 조카는 롯이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며,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조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이름 뜻은 ‘열국의 아버지’이다.(누가복음)
④평균 해면 아래 259미터에 있는 낮은 지역으로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오래된 성읍이다. 가장 오래된 성벽은 이미 BC.7,000년 경 세워졌다. 바로 아래 있는 사해(死海)에서 나는 소금, 역청, 유황 장사로 부유했다. 이 성읍 언덕 기슭에서 솟아나는 샘 덕분에 종려나무가 우거진 오아시스도 있어서 ‘종려나무의 성읍’이라고도 불렸다.(누가복음)
⑤사전에는 간단히 ‘의로운 사람’이라 설명하지만,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사는 사람’, 좀 더 구체적으로, 나의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해 죽으신 것을 믿음으로써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받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하박국)
[말씀동화] 미친개 오삭개가 사람이 되었어요!
옛날옛날 한옛날에, 호랑이가 뽕나무에 올라가려고 땀 뻘뻘 흘리던 시절 이야기예요.
여리고 여린 작은 마을에 성격이 아주아주 지랄 맞은 개 비글 한 마리가 살았어요.
비글 중에서도 무지무지 못생기고 다리도 짧은 그 개 이름은 오삭개였습니다.
오삭개는 동네 개돼지들 가운데서 돈에 가장 악착같은 개였어요.
왜냐고요? 그야 물론 사람이 되기 위해서였죠.
그 때는 사람이 되려면 돈이 많아야 하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래서 오삭개는 매일매일 웩웩 악악 악쓰듯 짖어대며
동네사람, 아니 동내 개돼지들로부터 악착같이 돈을 걷어 들였어요.
물론 온 동네 개돼지들은 오삭개를 정말 미워했고요.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요.
태백산 꼭대기 어느 신성한 나무 아래 하늘이 내린 산삼이 살고 있었는데,
이름하여 천종삼(天種蔘), 그 산삼이 마침내 하산을 했다는 거예요.
왜냐고요? 그야 물론 온 세상 개돼지들을 사람 만들기 위해서였죠.
“천종삼님이 그렇게 돈이 많나? 어떻게 이 많은 개돼지들을 다 사람 만든다지?”
“아니야, 그게 아니고, 그 천종삼 향내만 맡으면 개돼지들이 싹 다 사람이 되는 거라던데? 그 천종삼님 말이, 돈은 오히려 사람을 개돼지로 만드는 거고, 진짜 사람이 되려면 천종삼 향내를 맡아서 돈 욕심이 줄어들어야 한다는 거야!”
이 소문을 들은 여리고 여린 작은 마을은 술렁이기 시작했어요.
가뜩이나 돈이 없는데, 저 못생긴 오삭개가 다 빼앗아가 버렸으니
이젠 영원히 사람 되긴 틀렸다고 낙심천만이었거든요.
그런데 돈 없어도 사람이 될 수 있다니 말이에요.
이 소문을 오삭개가 듣는다면 가뜩이나 험악한 표정이 더 일그러지겠죠?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온 마을이 들썩이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천종삼님이 이 여리고 여린 작은 마을을 지나간다고
동네방네 난리가 난 거예요.
오삭개가 동네 주민들에게 악악거리네요?
허튼 소문 떠들어대지 말라고 악악거리네요?
그러자 동네 주민들이 오삭개를 비웃으며 여기저기서 개타령을 부릅니다.
“개야 개야 얼룩개야, 개야 개야 얼룩개야, 개야개야 얼룩개야, 가랑잎만 달싹해도 짖는 개야∼
청사초롱 불 밝혀라, 우리 님이 오시거든, 개야 개야 얼룩개야, 개야 개야 얼룩개야,
짖지를 마라, 짖지를 마라∼ 웩웩, 악악, 짖지를 마라∼”
(전래민요 ‘통영 개타령’을 조금 다듬음. 1절은 원래, ‘검둥개’, ‘멍멍, 멍멍’임)
마침내 천종삼님이 마을에 들어섭니다.
벌써 온 마을에 천종삼님 향내가 진동하기 시작하네요?
어라? 그런데 못난이 오삭개는 도대체 어디 간 걸까? 아까부터 안보이네?
아무튼 온 동네 주민들은 마을을 지나가는 천종삼님을 둘러싸고 온통 흥분의 도가니입니다.
바로 그 때였어요.
인파에 밀려 천천히 걸어가던 천종삼님이 걸음을 멈추고 뽕나무 위를 바라봅니다.
거기 오삭개가 올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광경을 본 동네 사람, 아니 온 동네 개돼지들 모두 어리둥절했겠죠?
“아니 저놈의 오삭개 녀석이 뽕나무에 올라갔네?”
“다리도 짧은 녀석이 용케도 올라갔군.”
“천종삼 소문 다 헛소문이라고 악악대던 녀석이 도대체 저긴 왜 올라간 걸까?”
동네 주민들과 제자들에게 둘러싸인 천종삼님이 오삭개를 바라보며 관심을 기울이자
동네 주민들이 너도 나도 신나게 떠들어댑니다.
“천종삼님, 저 녀석은 쳐다보지도 마세요. 개도 저런 미친개가 없습니다.”
“맞아요. 저 녀석 이름이 오삭갠데요, 외국식으론 성이 뒤로 가서 삭개오라나 뭐라나? 그런데 하도 돈에 미친 미친개라서요, 길가다 저 놈을 보기만 해도 등꼴이 오싹해진답니다. 그래서 저흰 저 놈을 오싹한 개라고 ‘오싹개’라 부르죠.”
주민들 말을 들으면서 천종삼님은 더 지극한 향내를 뿜으시며 오삭개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말을 겁니다.
“오삭개씨 내려오세요. 오늘 저는 당신 집에 묵고 싶습니다.”
오삭개의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가뜩이나 천종삼님 향내 때문에 정신이 어질어질한데
천하의 천종삼님이 내 집에서 묵으시겠다니?
그동안 내 집에 차 한 잔 하러 들어오려는 이도 하나 없었는데... 아이구 어지러워라!
동네 개돼지들이 뭐라뭐라 웅성거리지만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옵니다.
오삭개는 어떻게 뽕나무에서 내려왔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떻게 천종삼님을 집으로 모셨는지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정신이 들고 보니 어느새 천종삼님이 내 집에 쑥 들어와 계신 겁니다.
천종삼님이 집안에 들어오시니 그 향기가 더욱 진동합니다.
천종삼님의 향내에 취한 오삭개가 큰 목소리로 말합니다.
“천종삼님 보십시오. 제 전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동네 주민들에게 강제로 빼앗은 것은 네 배로 갚겠습니다.”
오삭개가 말을 마치자마자 하인들에게 진수성찬을 차리라 명하는데
천종삼님이 따스한 목소리로 말을 합니다.
“오삭개씨 내게 먹을거리를 주기 전에 먼저 나를 먹으세요. 그게 먼저입니다.”
천종삼님이 몸의 일부를 떼어내자 맑고 하얀 피가 흐릅니다.
천종삼이 몸 조각을 오삭개에게 건네며 말합니다.
“이건 참사람 오삭개씨를 위해 드리는 내 살과 피입니다.”
오삭개는 저도 모르게 천종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 귀한 천종삼 조각을 받아듭니다.
그리고 입에 넣고 조심조심 씹기 시작합니다.
천종삼님의 향내가 입안 가득, 아니 온몸 가득 퍼져나갑니다.
그리고 천종삼님의 기운이 오삭개의 영혼을 적십니다.
여리고 여린 작은 마을에서, 천하의 미친개 오삭개가
가장 먼저 사람이 되었다는 소문이 온 세상에 퍼져갑니다.
이 소문을 들은 온 세상 개돼지들이 너도나도 천종삼님께 달려갑니다.
세월이 흘러 흘러 백년 이백년, 천년 이천년, 수천 년이 흘러도
천종삼님을 먹어야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진리는 변함없습니다.
돈을 너무 많이 먹어 개돼지가 되었어도,
천종삼님의 몸을 먹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오삭개가 온 몸으로 보여준 겁니다.
천종삼님 말씀이 너무 어렵다고 투덜대면서라도,
일단 천종삼님 말씀을 붙들고 읽기 시작만하면 됩니다.
내가 아무리 어리고, 아무리 어리석어도, 뽕나무를 붙잡듯 말씀을 붙들기만 하면,
그러면 마치 말씀이 나를 읽으시듯 내 안에 쑥 들어오십니다.
그저 천종삼님이 궁금해서 살펴보기만 하려고 뽕나무에 올랐던 오삭개에게
오삭개가 간절히 초청한 것도 아닌데
천종삼님이 알아서 그냥 쑥 들어와 참사람 만들어주셨다는 사실을
오삭개가 온 몸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88호 예배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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