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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성령강림 후 8주 (2016년 7월 10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성서일과 4본문]

(아모스 7:7-17)

7. 주님께서 나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보여 주셨다. 다림줄을 드리우고 쌓은 성벽 곁에 주님께서 서 계시는데 손에 다림줄이 들려 있었다.

8. 주님께서 나에게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고 물으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다림줄입니다" 하니, 주님께서 선언하신다.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의 한가운데, 다림줄을 드리워 놓겠다. 내가 이스라엘을 다시는 용서하지 않겠다.

9. 이삭의 산당들은 황폐해지고 이스라엘의 성소들은 파괴될 것이다. 내가 칼을 들고 일어나서 여로보암의 나라를 치겠다."

10. 베델의 아마샤 제사장이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에게 사람을 보내서 알렸다. "아모스가 이스라엘 나라 한가운데서 임금님께 대한 반란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는 모든 말을 이 나라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11. 아모스는 '여로보암은 칼에 찔려 죽고, 이스라엘 백성은 틀림없이 사로잡혀서, 그 살던 땅에서 떠나게 될 것이다' 하고 말합니다."

12. 아마샤는 아모스에게도 말하였다. "선견자는, 여기를 떠나시오! 유다 땅으로 피해서, 거기에서나 예언을 하면서, 밥벌이를 하시오.

13. 다시는 베델에 나타나서 예언을 하지 마시오. 이곳은 임금님의 성소요, 왕실이오."

14.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오. 나는 집짐승을 먹이며, 돌무화과를 가꾸는 사람이오.

15.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양 떼를 몰던 곳에서 붙잡아 내셔서,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로 가서 예언하라고 명하셨소.

16. 이제 그대는,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시오. 그대는 나더러 '이스라엘을 치는 예언을 하지 말고, 이삭의 집을 치는 설교를 하지 말라'고 말하였소.

17. 그대가 바로 그런 말을 하였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오. '네 아내는 이 도성에서 창녀가 되고, 네 아들딸은 칼에 찔려 죽고, 네 땅은 남들이 측량하여 나누어 차지하고, 너는 사로잡혀 간 그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꼼짝없이 사로잡혀 제가 살던 땅에서 떠날 것이다.'"

 

(시편 82)

1. 하나님이 하나님의 법정에 나오셔서, 신들을 모아들이시고 재판을 하셨다. 하나님께서 신들에게 말씀하셨다.

2. "언제까지 너희는 공정하지 않은 재판을 되풀이하려느냐? 언제까지 너희는 악인의 편을 들려느냐? (셀라

3. 가난한 사람과 고아를 변호해 주고, 가련한 사람과 궁핍한 사람에게 공의를 베풀어라.

4. 가난한 사람과 빈궁한 사람을 구해 주어라. 그들을 악인의 손에서 구해 주어라."

5. 그러나 그들은 깨닫지도 못하고, 분별력도 없이, 어둠 속에서 헤매고만 있으니, 땅의 기초가 송두리째 흔들렸다.

6.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신들이고,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들이지만,

7. 너희도 사람처럼 죽을 것이고, 여느 군주처럼 쓰러질 것이다."

8. 하나님, 일어나셔서, 이 세상을 재판하여 주십시오. 온 나라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골로새서 1:1-14)

1.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과 형제인 디모데가,

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실한 형제자매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3. 우리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항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4.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해서 여러분이 품고 있는 사랑을 전해 들었습니다.

5. 이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두신 소망에 근거합니다. 이 소망은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 이미 들은 것입니다.

6. 이 복음은 온 세상에 전해진 것과 같이, 여러분에게 전해졌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듣고서 참되게 깨달은 그날로부터, 여러분 가운데서와 같이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7.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와 함께 종이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는 여러분을 위해서 일하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8. 성령 안에서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 준 사람입니다.

9. 그러므로 우리가 여러분의 소식을 들은 그 날부터, 우리도 여러분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을 채워 주시기를 빕니다.

10. 여러분이 주님께 합당하게 살아감으로써,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고, 모든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점점 더 알고,

11. 하나님의 영광의 권능에서 오는 모든 능력으로 강하게 되어서, 기쁨으로 끝까지 참고 견디기를 바랍니다.

12. 그리하여 성도들이 받을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여러분에게 주신 아버지께, 여러분이 빛 속에서 감사를 드리게 되기를 우리는 바랍니다.

13. 아버지께서 우리를 암흑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14. 우리는 그 아들 안에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누가복음 10:25-37)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서, 예수를 시험하여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2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느냐?"

27. 그가 대답하였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2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

29. 그런데 그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께 말하였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두고 갔다.

31.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32.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 곳에 이르러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33.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34.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다.

35. 다음 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 하였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그가 대답하였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어둠을 깨뜨리는 빛입니다.

 

구약, “다림줄을 드리워 놓겠다”(아모 7:8)

시편, “가난한 사람과 빈궁한 사람을 구해 주어라”(시편 82:4)

서신서, “우리를 암흑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골로 1:13)

복음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누가 10:27)

 

오늘 요절은,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입니다.(누가 10:29)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아모스서 7:7-17 / 시편 82)]

오늘 구약본문은 아모스서입니다.

아모스는 평범한 양치기였고 농부였습니다.

게다가 남쪽나라 유다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북쪽나라 이스라엘의 심장부에 가서 예언을 합니다.

 

물론 축복하고 덕담하는 예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듣기에 저주처럼 들리는 예언입니다.

모처럼 태평성대라 자부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13대 왕이었던 여로보암 2세는 모처럼 40년이나 왕 노릇 합니다.

그리고 정치 경제적으로 번영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모스의 예언에 콧방귀질 하고 배척합니다.

 

그러나 눈 밝고 귀가 열린 사람이라면 다 압니다.

당시 상류층이 얼마나 탐욕스럽고 타락했는지를!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 농민들이 얼마나 높은 세금에 시달렸는지를!(5:11-12)

이를테면, 재벌감세에다 국민증세, 즉 부익부 빈익빈 세상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과 정의는 나날이 메말라가더니

급기야 앗시리아의 우상을 숭배하기에 이릅니다.(5:26)

 

이때 주님께서 아모스에게 보여주신 것이 바로 다림줄입니다.

다림줄은 건축자의 것입니다.

건축자는 벽이 기울었으면 아낌없이 부수고 다시 세웁니다.

이를 판단하는 도구가 바로 다림줄입니다.

 

그러므로 다림줄은, 파괴의 도구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세상을 암흑으로 만들어버릴 도구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지금 이스라엘의 어둠을 깨뜨리고 빛나는 새이스라엘을 건설할 도구입니다.

오늘 구약본문에서, 이스라엘의 어둠을 깨뜨리는 빛은 바로 다림줄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은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신비로운 세계를 보여줍니다.

장소는 하나님의 법정입니다.

그런데 법정에 선 피고가, 다름 아니라 세상 사람들을 재판하는 법관들이었던 것입니다.

 

본문은 이 법관(재판관)들을 사람과는 다른 천상의 존재로 묘사합니다.

하나님을 대리하여 지상의 법을 주관하는 존재입니다.

이런 존재 설정은, 의인이 고난당하고 악인이 승승장구하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한 가닥 설명이 되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불의하고 부정부패 부조리한 천상의 법관들 모습이

현실세계의 법관들 모습을 그대로 투영했다는 사실입니다.

아니면 이런 불의한 천상의 법관들 모습이 현실 세계 법관들을 전염시킨 걸까요?

 

아무튼 천상의, 또는 이 땅의 재판관들은 힘 있는 자, 악인들은 편들고, 가난한 자, 약자들은 외면합니다.

한마디로 공의롭지 못하고 공정하지 않은 재판을 되풀이 하는 것입니다.(2-4)

이에 시인이 부르짖는 마지막 8절이 압권입니다.

 

하나님, 일어나셔서, 이 세상을 재판하여 주십시오. 온 나라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검사고 판사고 변호사고 두루두루 전관예우다 뭐다 하며 시끄럽고 더러운 오늘날 이 세상에

이 말씀은 사이다보다 더 시원한, 바이칼 호수 보다 더 시원한,

백두산 천지 보다 훨씬 더 시원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민심이 곧 천심임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처럼 높디 높은 이 땅의 법조인들을 모조리 피고석에 세운 하나님의 법정이라니!(1-2)

 

그렇습니다.

오늘 시편본문에서, 이 세상 약자들의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하는

저 부조리한 법조계의 어둠을 깨뜨리는 빛은 바로 하나님의 법정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골로새서 1:1-14 / 누가복음 10:25-37)]

오늘 서신서본문은 골로새서 첫머리입니다.

골로새는 에베소 동쪽 180에 위치한, 직물산업이 활발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골로새 출신으로서, 바울의 전도를 받은 에바브라가 고향에 교회를 세웁니다.

그런데 이 골로새교회에 거짓교사가 출현합니다.(2)

 

거짓교사의 가르침은, 할례와 거룩한 날들 성수, 지나친 금욕, 그리고 천사숭배 등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은 단호합니다.

즉 교회의 부활신앙은, 그 어떤 제도와 세력, 폭력도,

우리 주 예수께서 목숨 바쳐 세워주신 성도의 자유를 결코 침범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서신서본문에서,

교회의 잘못된 가르침이라는 어둠을 깨뜨리는 빛은,

오직 복음(5-6),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입니다.(9)

 

오늘 복음서본문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입니다.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율법에 의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요약됩니다.

 

율법교사답게 그는 이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청산유수로 대답을 잘도 합니다.

심지어,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추가합니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이 질문은 두 가지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할 이웃은 바로 강도만난 이웃입니다.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날강도들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 강도들에게 힘없이 당하는 약자들이 또 얼마나 많습니까?

 

둘째, 우리가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할 이웃은,

뜻밖에도 우리의 밖에 나 있는 적대자들 또는 소수자들입니다.

 

원래 율법교사의 이웃개념은 당시 통념대로, 정치적, 종교적 동지였습니다.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그런데 예수님은 강도만난 이웃을 보고도 못 본체한 그들의 이웃제사장과 레위사람에 이어서

결코 이웃이 될 수 없는 저 사마리아 사람을 등장시키신 것입니다.

 

그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만나 죽어가는 사람의 신분에 상관없이,

즉 그가 자기의 이웃(동지)인지 아닌지 상관없이

그를 살리기 위해 지극정성을 쏟습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이웃은(동지는)커녕 원수 같은 사마리아 사람임에도

결국 율법학자는 예수님의 질문에 모기만한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정리]

오늘 복음서본문에서 어둠을 깨는 빛, 즉 우리의 몽매(蒙昧)한 마음,

여태 미망(迷妄)에 사로잡힌 어둡고 혼란스런 마음을 깨뜨리는 빛은,

예수님의 사랑, 그 한없는 사랑입니다.

 

그러면, 내 이웃은 누구입니까?”

 

우리가 예수님께서 그러셨듯이, 목숨 걸고 사랑해야 할 이웃은,

약하고 힘없고 동료도 없어서, 강도 만난 사람입니다.

이렇게 강도 만난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데, 즐비한데, 못 본체 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사람처럼 제아무리 거룩한 일, 제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사람의 생명 구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게 이웃사랑이요, 그게 바로 하나님사랑으로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내 이웃은 누구입니까?”

 

우리가 예수님께서 그러셨듯이, 한없는 사랑을 펼치려면,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내 동지는커녕, 원수처럼 여기는 사람, 짐승처럼 여기는 사람조차

이웃으로 볼 수 있도록 눈이 열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창녀들과도 밥상을 같이 하셨습니다.

 

 

 

[나머지] (3년 전 여기 올린 글도 다듬고 보충해서 올립니다)

* 팔레스타인 의사, 이스라엘 소녀를 구하다

며칠 전 뉴스에서, 어느 팔레스타인 출신 의사가

팔레스타인 무장괴한에게 공격을 받아 죽어가던 어느 이스라엘 소녀를 구한 사건을 보았습니다.

그 의사 알리 슈루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상자가 이스라엘인인지, 혹은 아랍인인지 구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단지 그들을 도울 수 있어 신에게 감사했다.”

 

소녀의 아빠인 마크의 장례식이 있던 3일 흥분한 몇몇 조문객들은 “(팔레스타인에) 복수해야 한다!”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숨진 마크와 함께 탈무드 학원에서 일했던 동료인 베니 칼마존은 사고 현장에서 마크의 가족을 구조하고 도왔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앞으로도 오트니엘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아랍인들과의 만남을 이어가며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이스라엘이 불법 점령하고 있는 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민간인과 군인을 팔레스타인인들이 공격하고

이에 이스라엘이 보복하면서 양쪽의 긴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인의 공격으로 30여명의 이스라엘인이 숨졌으며,

이스라엘의 보복 등으로 210여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숨졌다고 합니다.(황금비 기자. 한겨레. 2016. 7. 6)

 

** 오늘 성서일과 4본문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끈을 하나님의 뜻이라 붙여 봅니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다림줄로 묘사됩니다. 즉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그 기준은 아모스서 곳곳에 나옵니다.

시편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재판으로 묘사됩니다. ‘공정한 재판입니다.

서신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믿음’, ‘사랑’, ‘소망’, ‘복음’, ‘은혜’, ‘열매’, ‘감사’... 여러 가지로 묘사됩니다. 특히 하나님의 뜻을 가리키는 표현이 3차례 등장합니다. (1)“하나님의 뜻으로...”, (9)“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 (10)“하나님을 점점 더 알고,”

복음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으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비(慈悲)’로 요약됩니다.

 

*** 하나님께서 다림줄을 드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하늘에서 땅을 향해 내려오는 기준의 상징

화살처럼 빨리 내려오시겠다는 하나님 마음 상징(다림줄 추는 화살촉처럼 생겼습니다.)

성벽이 곧게, 바르게, 정직하게 서지 않았다는 암시

성벽을 세울 때 정확하게 하듯이, 허물 때 역시 정확하게 따져서 하시겠다는 표시

내가 목수(건축주)라는 상징, 즉 성을 세우고 부수는 전권이 내게 있다는 상징

 

다림줄은,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멀어진, 이렇게 기울어진 세상의 기울기를 한 눈에 보여줍니다.

다림줄은, 올바른 재판,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유일한 하나님의 기준을 상징합니다.

다림줄은, 화살처럼 빨리 내려오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상징합니다.

다림줄은 하나님의 공의를 상징합니다.

다림줄은 하나님 나라를 바로 세우는 척도입니다.

다림줄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춤추게 하는 소리 없는 장단입니다.

 

 

 

 

[말씀동시] 이웃 (이선구 지음. 성실교회 고등부 3학년. 성실문화87)

내가 쓰러져 있을 때 손을 내밀어 준 건

제사장도 레위사람도 아닌 사마리아인이었다

 

내가 고난 받을 때 기꺼이 이웃이 되어준 건

스승도 동족도 아닌 불의한 이방인이었다

 

나는 아직 누가 내 이웃인지도 모르는데

저 이방인은 모르는 나를 이웃이라 여긴다

 

 

 

 

[말씀시조] 영생 얻으려느냐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7)

영생 얻으려느냐 네 이웃을 사랑하라

사마리아 사람처럼 자비의 길 따르거라

오늘도 강도만난 자 너도 가서 도와야

 

 

 

 

[말씀한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냐?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87)

盡心盡誠宜盡力(진심진성의진력)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敬天愛人當盡仁(경천애인당진인) 마땅히 하나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撒人顧恤被襲血(살인고휼피습혈) 피습되어 피 흘린 이를 사마리아 사람이 돌보았으니

爾意孰爲遇盜隣(이의숙위우도린) 너는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라 하겠느냐?

 

 

 

 

[말씀서예] 시편 82:8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87)

 

 

 

 

[말씀노래] (이정훈 작사. 아리랑가락. 성실문화87)

[본문] (누가복음 10:25-37)

[노랫말]

1. 어떤사람 예루살렘 떠나가다가 /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만났네

   강도들이 옷벗기고 마구때려서 / 죽게된걸 버려두고 도망갔다네

2. 마침어떤 제사장이 그길가다가 / 강도만난 사람보고 피해지나고

   레위인도 그를보고 피해버리니 / 강도만난 저사람은 다죽어가네

3. 사마리아 사람하나 그길가다가 / 그를보고 측은지심 일어났다네

   올리브 기름붓고 포도주부어 / 상처를 소독하고 싸매어주네

4. 여관에 데려가서 돌보아주고 / 여관주인 손을빌려 돌보아주네

   강도만난 네이웃의 진정한이웃 / 사마리아 사람처럼 그리살기를

 

[해설]

본문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어 아리랑가락에 얹었다.

 

[악보] 사마리아 사람처럼 (이정훈 작사, 아리랑가락, 2013년 3월)

 

 

 

 

[시편 송서(誦書)] 시편 82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87)

(* 천자문 독송 가락, 즉 전래자장가 풍으로)

 

1.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

2.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셀라

 

3. 가난한 자-와 고아---,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 베풀-지며-

 

4.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하시는도다

5.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

 

6. ---- 말하-기를-, 너희--- -들이며-,

   다-- 지존자-- 아들들이라-, (--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7.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

 

[다함께]

8.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 (-소유)-- 때문이니∼∥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성령강림후 8, 2016710(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아모스 7:7-17, 시편 82, 골로새서 1;1-14, 누가복음 10:25-37)

 

 

 

 

 

 

 

 

 

 

 

 

 

 

 

 

 

 

 

 

 

 

 

 

 

 

 

 

 

 

 

 

 

 

 

 

 

 

 

 

 

 

 

 

 

 

 

 

 

 

 

 

 

 

 

 

 

 

 

 

 

가로열쇠

아브라함이 100살에 부인 사라를 통해 얻은 아들. 이름 뜻은 웃음이다. 주로 농업에만 전념하였기 때문에 아버지 아브라함이나 아들 야곱같이 다사다난한 생활을 하지 않고 비교적 평온하게 살았다. 40세에 리브가와 혼인하여 쌍둥이 형제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 180세에 사망했다. (아모스)

사도 바울의 가장 절친한 동역자이며 후계자로서, 유대인 어머니와 헬라(그리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유니게와 외할머니 로이스로부터 기독교 신앙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몸도 약하고 성격도 소심한 편으로 추측되지만 주님의 교회를 열심히 섬긴 목회자다. 바울과 함께 여러 서신서의 공동발신인이기도 하다. ‘고린도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빌레몬서. (골로새서)

성소에서 제사를 맡아 주관하고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는 사람으로서, 레위 족속 가운데서도 아론의 후손들만 이 일을 맡아 했다. 24패로 나뉘어 차례대로 일했다. 나머지 레위인들은 성소의 다른 일들을 맡아서 했다. (아모스, 누가복음)

소아시아의 중심도시였던 에베소의 동쪽 180에 위치한 도시다. 내륙지방으로 통하는 대로변에 있었으며, 이웃도시 라오디게아, 히에라폴리스 등과 더불어 소아시아 직물산업의 중심도시였다. (골로새서)

은화의 로마식 단위로서 신약시대 예수님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다. (참고로 은화의 이스라엘식 단위는 세겔’, 그리스식 단위는 드라크마이며, 화폐 가치는 각각 다르다.) (누가복음)

 

세로열쇠

하나님이 다스리시기를!’, 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신다는 뜻이며, 창세기의 야곱이 하나님께 받은 새 이름이다. 그래서 야곱의 12아들의 후손들이 세운 유대나라를 이 이름으로도 부른다. (아모스)

원래 예루살렘 남쪽 18쯤 떨어진 마을 드고아 출신, 즉 남유다 출신인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북이스라엘에 가서 예언하였다. 주로 이스라엘 수도인 사마리아와 왕립 성소인 베델(벧엘)에서 예언활동을 하였다. 그 당시는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시대로서, 한창 번영하던 시절이어서인지 그는 배척당했다. (그러나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가 심하여 그는 약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강자들을 호되게 질타했다.) 그는 이사야처럼 왕족출신도 아니고, 예레미야처럼 제사장 집안출신도 아닌 양치기였고 나무를 가꾸는 농부였다. 이름 뜻은 무거운 짐을 진 자이다. (아모스)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이다. 북왕국이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한 뒤 이곳에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온 이들과 섞인 혼합 주민이 살게 되는 등, 여러 이유로 이곳 사람들은 유대인들로부터 이단자로 여겨졌다. (누가복음)

북왕국 이스라엘의 첫 왕.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어리석음 덕분에 북왕국을 세움으로서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따라서 백성들이 예배를 위해 남유다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는 것을 막으려고 북이스라엘의 북쪽 과 남쪽 벧엘에 성소를 만들어 금송아지 상을 두는 죄를 범했다. 그래서 그의 왕조는 아들 나답 왕 때 쿠데타로 망했다. 오늘 구약본문인 아모스에 나오는 ○○○○○○○○ 2로서, 이스라엘 첫 왕과는 혈연관계가 아닌, 동명이인(同名異人)인 이스라엘 13대 왕이다. 비교적 오래 살면서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아모스)

평균 해면 아래 259미터에 있는 낮은 지역으로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오래된 성읍이다. 가장 오래된 성벽은 이미 BC.7,000년 경 세워졌다. 바로 아래 있는 사해(死海)에서 나는 소금, 역청, 유황 장사로 부유했다. 이 성읍 언덕 기슭에서 솟아나는 샘 덕분에 종려나무가 우거진 오아시스도 있어서 종려나무의 성읍이라고도 불렸다. (누가복음)

 

 

 

 

 

 

[말씀동화] 동물농장 타령

 

 

닭장 속에는 암탉이(꼭꼬댁 꼭꼬꼬꼬), 문간 옆에는 거위가(끄웩 꽥꽥),

배나무 밑엔 염소가(매해해 매해해), 외양간에는 송아지(음메 음메),

닭장 속에는 암탉들이, 문간 옆에는 거위들이, 배나무 밑엔 염소들이, 외양간에는 송아지

우위야 우우우우우 우위야 우우우우

깊은 산 속엔 뻐꾸기(뻐꾹 뻐꾹), 높은 하늘엔 종달새(종알종알 종알종알),

부뚜막 위엔 고양이(야옹 야옹), 마루 밑에는 강아지(몽몽 몽몽),

깊은 산 속엔 뻐꾸기가, 높은 하늘엔 종달새가, 부뚜막 위엔 고양이가, 마루 밑에는 강아지

우위야 우우우우우

[번안가요 동물농장’]

 

사마리아 어느 마을 어린이들이 합창을 합니다.

목소리 높여 동물농장 노래를 부릅니다.

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동네 어른들이 한마디씩 합니다.

 

저 노래 어디서 배웠나? 누가 지었지? 꽤 밝고 재미있는 걸?”

 

그런데 왜 하필 동물노래야? 하고 많은 노래들 중에 왜 하필 동물노래냐고?”

 

? 동물 노래가 어때서?”

 

어떠긴, 뭐 좀 찜찜해서 그러지...”

 

찜찜해? ? 무슨 일인데?”

 

유대 놈들이 우리를 개 돼지 취급하잖아.”

 

그래도 저 노래엔 개 돼지는 없잖아?”

 

개는 있어, 강아지! 끄트머리에 나와. 아마 돼지도 어딘가 꿀꿀거리면서 숨어 있을 거야. 저 노래도 유대 놈들이 지어서 퍼뜨린 게 틀림없다고!

 

 

그때 사마리아 마을로 예수님 일행이 들어옵니다.

마을 사람들은 순간 쥐죽은 듯 조용해집니다.

서로서로 눈치만 살피다가 슬금슬금 일어섭니다.

 

어느새 아이들은 벌써 예수님 일행을 향해 달려갑니다.

나그네를 맞으며 해바라기처럼 활짝 웃는 아이들 얼굴에서 빛이 납니다.

 

아저씨 누구세요? 누군데 저희 마을에 오셨나요?”

 

우린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오는 길이란다. 예루살렘에 가는 중이야.”

 

예루살렘 가는 길이라는 말을 들은 마을 어른들 눈꼬리가 올라갑니다.

 

여보시오. 잠깐 길을 멈추시오. 어서들 나가요. 우리 마을엔 예루살렘 가는 사람들 들어올 수 있는 마을이 아니에요. 썩 물러들가시오.”

 

예수님 제자들이 썩 나서더니 말합니다.

여기저기서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왜 이래? 무슨 마을 인심이 이리 사나워?”

 

여보시오. 당신들은 우리 선생님 소문도 못 들었소? 우리 예수님이 어떤 분인데 이런 푸대접이란 말이오?”

 

예수님이라는 말에 마을 어른들이 당황합니다.

예수님 소문은 이 마을까지 이미 자자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옥신각신 회의를 시작하는가 싶더니 금세 끝납니다.

 

마을 사람들은 끝내 예루살렘으로 가는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제자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난리가 났습니다.

우레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한바탕 하려고 소매를 걷어올리는 걸

예수님께서 말리십니다.

 

그만들 해라!”

 

 

결국 예수님 일행은 마을 밖 큰 나무 아래 앉아 쉽니다.

일행 중엔 가버나움에서부터 예수님을 졸졸졸 따라온

율법교사 하나가 있었습니다.

 

율법교육부 정책기획관이라는, 꽤 직급이 높은 교사입니다.

원래 예루살렘 사람인데 갈릴리에 파견 나가 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 일행이 예루살렘 가는 줄 눈치 채고,

모처럼 고향가려고 얼른 짐 싸서 예수님 일행을 뒤쫓아 온 겁니다.

 

그는 마치 예수님이 힘 빠지실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사마리아 마을에서 배척받으시자마자 예수님께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이런저런 질문 끝에 마지막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정말 내 이웃 말입니다. 예수님조차 개무시하는 저기 저런 저 개 돼지 같은 사마리아 사람들 말고, 진짜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이 질문을 하는 율법교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예수님이

마침내 짧은 옛날이야기를 해주십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 만난 어떤 사람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제사장도, 레위 사람도, 율법교사도 다 피하여 지나갔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가까이 가서, 그 상처를 응급처치 하더니 나귀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 돌봐주었다. 밤새 끙끙 앓는 사람 곁을 지키며 땀을 닦아주었고, 펄펄 끓는 이마에는 물수건을 얹어주고 밤새 갈아주었다. 다음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여관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하였다. 너는 이 네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교사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고민합니다.

특히 이야기 중에 율법교사도 강도 만난 사람을 못 본체 한 것이 끝내 마음에 걸립니다.

사실 사마리아 사람들 뿐 아니라 갈릴리 촌사람들까지 개 돼지처럼 여기던 차라

어안이 벙벙합니다.

 

결국 모기소리만큼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합니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차마 제 입으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사실은 강도 만난 어떤 사람이 율법교사, 바로 너였다. 너는 원래 율법교사나 제사장처럼 지체 높은 사람들, 유대나라 상위 1%만 사람이고, 나머지 99%는 개 돼지처럼 여기고 있는 줄 나는 안다. 그러나 보아라. 네가 강도 만났을 때 너를 이웃으로 여기고 달려와 도와준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뿐이지 않느냐? 개 돼지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똥개 똥돼지로 여기던 사마리아 사람 말이다. ‘이웃이란, 신분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사상이 달라도,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재난을 당했을 때 가족처럼 나서서 끝까지 돌봐주는 사람이 이웃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그런 재난을 당했을 때, 내가 달려가 도와줄 때, 그가 어떤 사상, 어떤 정체성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그는 나의 이웃이 되는 것이다. 만약 누가 급한 재난을 당했을 때 못 본체 한다면, 그는 세상 누구와도 이웃이 될 자격이 없는 못난이다. 나는 네가 부디 그런 못난이가 되지 말고, 저 착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이 누구와도 이웃이 될 수 있는, 유대 1%만이 아니라, 세상 99%, 아니 온 세상 100%와 이웃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때 나무 뒤에 숨어서 예수님 말씀을 엿듣고 있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들 가슴속에서 심쿵, 심쿵하는 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었죠.

그들은 얼른 마을로 돌아갑니다.

그들 중 유일한 어린이 하나가 종달새 같은 목소리로 종알거리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고스란히 전하기 시작합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자신들은 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아닌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천하의 예수님 같은 이웃을 이웃으로 섬기지 못한 것이 한없이 후회됩니다.

 

다음부터는 자신들을 개 돼지처럼 여기는 예루살렘 사람들조차

이웃으로 여기는 게 옳다는 생각이 불현 듯 솟구칩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아무리 얘들처럼 동물농장 타령을 할지라도

우리는 그들 개 돼지 타령쯤은 흘러가는 구름처럼 편안하게 흘려 듣기로 마음먹습니다.

 

[이정훈 지음. 2016710일 주일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