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성서일과 4본문]
(열왕기상 19:1-15a)
1. 아합은, 엘리야가 한 모든 일과, 그가 칼로 모든 예언자들을 죽인 일을, 낱낱이 이세벨에게 알려 주었다.
2. 그러자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심부름꾼을 보내어 말하였다. "네가 예언자들을 죽였으니, 나도 너를 죽이겠다. 내가 내일 이맘때까지 너를 죽이지 못하면, 신들에게서 천벌을 달게 받겠다. 아니, 그보다 더한 재앙이라도 그대로 받겠다."
3. 엘리야는 두려워서 급히 일어나, 목숨을 살리려고 도망하여, 유다의 브엘세바로 갔다. 그 곳에 자기 시종을 남겨 두고,
4. 자신은 홀로 광야로 들어가서, 하룻길을 더 걸어 어떤 로뎀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에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기도하였다. "주님,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나는 내 조상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5. 그런 다음에, 그는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서 잠이 들었는데, 그 때에 한 천사가, 일어나서 먹으라고 하면서, 그를 깨웠다.
6. 엘리야가 깨어 보니, 그의 머리맡에는 뜨겁게 달군 돌에다가 구워 낸 과자와 물 한 병이 놓여 있었다. 그는 먹고 마신 뒤에, 다시 잠이 들었다.
7. 주님의 천사가 두 번째 와서, 그를 깨우면서 말하였다. "일어나서 먹어라. 갈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
8.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다. 그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서, 밤낮 사십 일 동안을 걸어, 하나님의 산인 호렙 산에 도착하였다.
9. 엘리야는 거기에 있는 동굴에 이르러, 거기에서 밤을 지냈다. 그 때에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10.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11.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곧 나 주가 지나갈 것이니, 너는 나가서, 산 위에, 주 앞에 서 있어라." 크고 강한 바람이 주님 앞에서 산을 쪼개고, 바위를 부수었으나, 그 바람 속에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12. 그 바람이 지나가고 난 뒤에 지진이 일었지만, 그 지진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가고 난 뒤에 불이 났지만, 그 불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그 불이 난 뒤에,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들렸다.
13.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서, 외투 자락으로 얼굴을 감싸고 나가서, 동굴 어귀에 섰다. 바로 그 때에 그에게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14.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15a.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돌이켜, 광야길로 해서 다마스쿠스로 가거라. (거기에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서, 시리아의 왕으로 세우고,)
(시편 42, 43)
(42편) 1. 하나님, 사슴이 시냇물 바닥에서 물을 찾아 헐떡이듯이,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헐떡입니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하니, 내가 언제 하나님께로 나아가 그 얼굴을 뵈올 수 있을까?
3. 사람들은 날이면 날마다 나를 보고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비웃으니, 밤낮으로 흘리는 눈물이 나의 음식이 되었구나.
4. 기쁜 감사의 노래 소리와 축제의 함성과 함께 내가 무리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면서 그 장막으로 들어가곤 했던 일들을 지금 내가 기억하고 내 가슴이 미어지는구나.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 괴로워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또다시 찬양하련다.
6. 내 영혼이 너무 낙심하였지만,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님만을 그래도 생각할 뿐입니다.
7.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저 큰 폭포 소리를 따라 깊음은 깊음을 부르며,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저 파도의 물결은 모두가 한 덩이 되어 이 몸을 휩쓸고 지나갑니다.
8. 낮에는 주님께서 사랑을 베푸시고, 밤에는 찬송으로 나를 채우시니, 나는 다만 살아 계시는 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9.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께 호소한다.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나를 잊으셨습니까? 어찌하여 이 몸이 원수에게 짓눌려 슬픈 나날을 보내야만 합니까?"
10. 원수들이 날마다 나를 보고 "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하고 빈정대니, 그 조롱 소리가 나의 뼈를 부수는구나.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 괴로워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또다시 찬양하련다.
(43편) 1. 하나님, 나를 변호하여 주십시오. 비정한 무리를 고발하는 내 송사를 변호하여 주십시오. 거짓을 일삼는 저 악한 사람들에게서 나를 구해 주십시오.
2. 나의 요새이신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어찌하여 나는 원수에게 짓눌려 슬픔에 잠겨 있어야만 합니까?
3. 주님의 빛과 주님의 진리를 나에게 보내 주시어, 나의 길잡이가 되게 하시고, 주님의 거룩한 산, 주님이 계시는 그 장막으로, 나를 데려가게 해주십시오.
4. 하나님, 그 때에, 나는 하나님의 제단으로 나아가렵니다. 나를 크게 기쁘게 하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렵니다. 하나님, 나의 하나님, 내가 기뻐하면서, 수금가락에 맞추어 주님께 감사하렵니다.
5. 내 영혼아, 어찌하여 그렇게도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도 괴로워하느냐?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또다시 찬양하련다.
(갈라디아서 3:23-29)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는 율법의 감시를 받으면서, 장차 올 믿음이 나타날 때까지 갇혀 있었습니다.
24. 그래서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에게 개인교사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게 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25. 그런데 그 믿음이 이미 왔으므로, 우리가 이제는 개인교사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26. 여러분은 모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27. 여러분은 모두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28.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29.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약속을 따라 정해진 상속자들입니다.
(누가복음 8:26-39)
26. 그들은 갈릴리 맞은편에 있는 거라사 지방에 닿았다.
27. 예수께서 뭍에 내리시니, 그 마을 출신으로서 귀신 들린 사람 하나가 예수를 만났다. 그는 오랫동안 옷을 입지 않은 채, 집에서 살지 않고, 무덤에서 지내고 있었다.
28. 그가 예수를 보고, 소리를 지르고서, 그 앞에 엎드려서, 큰 소리로 말하였다. "더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29. 예수께서 이미 악한 귀신더러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귀신이 여러 번 그 사람을 붙잡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쇠사슬과 쇠고랑으로 묶어서 감시하였으나, 그는 그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서 광야로 뛰쳐나가곤 하였다.
30.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대답하였다. "군대입니다." 많은 귀신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31. 귀신들은 자기들을 지옥에 보내지 말아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32. 마침 그 곳 산기슭에, 놓아기르는 큰 돼지 떼가 있었다. 귀신들은 자기들을 그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게 허락해 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허락하시니,
33.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그 돼지 떼는 비탈을 내리달아서 호수에 빠져서 죽었다.
34.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이 일을 보고, 도망가서 읍내와 촌에 알렸다.
35. 그래서 사람들이 일어난 그 일을 보러 나왔다. 그들은 예수께로 와서, 귀신들이 나가버린 그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이 들어서 예수의 발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36. 처음부터 지켜본 사람들이, 귀신 들렸던 사람이 어떻게 해서 낫게 되었는가를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
37. 그러자 거라사 주위의 고을 주민들은 모두 예수께, 자기들에게서 떠나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들이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배에 올라 되돌아가시는데,
38. 귀신이 나간 그 사람이 예수와 함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하였으나, 예수께서는 그를 돌려보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39. "네 집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네게 하신 일을 다 이야기하여라." 그 사람이 떠나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일을 낱낱이 온 읍내에 알렸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주님 만나기 전과 후’입니다.
구약, “엘리야는 두려워서”(왕상 19:3)
시편, “어찌하여 그렇게 낙심하며”(시편 42:5,11, 43:5)
서신서, “갇혀 있었습니다”(갈라 3:23)
복음서, “무덤에서 지내고 있었다”(누가 8:27)
오늘 요절은,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입니다.(시편 42:5,11, 43:5)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열왕기상 19:1-15a / 시편 42, 43)]
오늘 구약본문의 중심인물은, 마치 극심한 우울증환자 같은 모습을 보이는 엘리야입니다.
조금 전까지 슈퍼맨보다 더 막강 히어로였던 엘리야입니다.
갈멜산 제단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는 참 예언자임을 만천하에 드러냈습니다.
그런 엘리야가 이세벨의 한마디 저주에 저렇게 벌벌 떨다니요?
마치 갈멜산에서 만난 하나님이 신기루였다는 듯이,
이세벨이 무서워 저 아래 남의 나라 유대 땅 남단 브엘세바까지 도망갑니다.
그리고 스스로 죽고 싶다는 기도까지 합니다.
갈수록 태산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잠을 주십니다.
그리고 물과 먹을거리를 주십니다.
그렇게 원기회복을 시키신 뒤에 저 아래 멀고먼 시나이 반도로
시나이 반도 저 아래 호렙산으로 보내십니다.
호렙산은 모세가 처음 하나님을 만난 곳입니다.
호렙산은 모세가 하나님을 다시 만나 하나님의 십계명을 받은 곳입니다.(시내산)
호렙산에서 엘리야는 하나님을 다시 만납니다.
호렙산에서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받습니다.
산을 쪼갤 만큼 큰 바람과 지진과 불을 겪으면서
폭풍 같이 숨차던 갈멜산 칼춤의 피비린내를 가라앉히고
땅이 꺼질 듯 두려웠던 이세벨의 저주, 로뎀나무 아래 죽음의 공포를 씻어냅니다.
그러자 작지만 선명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은, 순식간에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의 노래입니다.
딱 오늘 엘리야의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노래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적들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며 비아냥댑니다.(3, 10)
그럼에도 세 번이나 반복해서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다리라고 힘을 북돋아줍니다.
그리고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찬양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5,11,5)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갈라디아서 3:23-29 / 누가복음 8:26-39)]
오늘 서신서본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율법으로 살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뒤 율법을 넘어 믿음으로 살게 되는,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비로운 과정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분을 옷으로 입습니다. 아니 그분과 완전히 하나가 됩니다.(27)
율법아래 있을 때는 꿈도 꾸지 못할 믿음의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모두가 주님 오심으로, 주님 만남으로 벌어진
전무후무한 일, 인류 최대의 사건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마귀의 종으로 살던 사람이(27, 29)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의 증인으로 거듭나는 사건을 보여줍니다.(39)
오랫동안 마귀 권세에 짓눌려 고통스런 벌거숭이로 살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나시려고(27)
예수님은 극심한 풍랑을 무릅쓰고 바다를 건너신 것입니다.(22-25)
예수님을 만나 새 사람이 된 거라사 광인은 마침내 옷을 입습니다.
눈에 보이는 옷만 입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옷 입었을 것입니다.
거라사 인근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피했지만, 오직 그만은 예수를 따르려 합니다.(38)
예수님을 제대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정리]
오늘 본문들은, 엘리야가 다시 새로워지는 과정과(구약)
거라사 광인이 새로워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복음서)
그리고 순식간에 주님을 잃어버린 시인이 하나님을 기다리는 믿음의 모습과(시편)
예수님이 오신 뒤부터 새로 열리는 믿음의 세계를 보여줍니다.(서신서)
모두모두 주님을 만나 새로워집니다.
엘리야는 주님과 동행하던 사람이었으나
순식간에 주님을 잃어버린 꼴을 당하다가 극적으로 다시 회복합니다.
주님과 만났던 첫사랑을 잃고 근근도생(僅僅圖生)하는 지금 우리에게 오늘 엘리야가 희망을 줍니다.
계속 잘나가지 않고 크게 꺾어졌다가 다시 회복되는 모습이라 더 큰 감동과 희망을 줍니다.
거라사 광인은 엘리야와 달리 처음 주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군대귀신은 무엇일까요?
그 군대귀신에게 한없이 시달리고 있는 저 벌거숭이 내 이웃은 누구일까요?
그가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도록 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마귀권세가 제아무리 강하더라도 우리 주님의 권능에 비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권능은 사랑에서 나오는 권능이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사랑,
한 영혼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그 사랑 말입니다.
사랑이 권능입니다.
사랑의 힘이 약해진 우리 교회는
오직 성령을 받아야 권능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랑의 힘이 세져야, 땅 끝까지 증인이 될 것입니다.
주님으로 옷을 입은 거라사 광인에게서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느껴집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넘쳐야 이웃 사랑의 길, 증인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이웃 사랑의 불길이 타오를 때 나를 향한 하늘사랑의 향기가 진동합니다.
끊임없이 배가되는 사랑의 권능을 마귀권세는 도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주여!
제가 지금 성령을 기다립니다!
[나머지] (3년 전 여기 올린 글 다듬고 보충해서 다시 올립니다)
* 엘리야와 거라사 광인
거라사 광인은 군대귀신이 들렸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구약의 이세벨이 길길이 뛰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고, 거라사 광인처럼 광야에서 노숙하는, 무엇에 홀린 것 같은 엘리야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거라사 광인의 모습은 딱 ‘하나님 부재(不在)’ 상황, 그 끝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더 많이 느껴집니다. (하략)
** 엘리야의 가족사진
(상략) 이런 엘리야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갈멜산에서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불덩어리로 나타나셨던 하나님이, 이번엔 아주 조용하고 따사롭게 나타나십니다. 천사를 두 차례나 보내시어 엘리야를 다독이시고 먹이십니다. ‘모유수유’하듯이, 마치 유모를 보내어 수유(授乳)하는 장면이 연상될 정도입니다. “일어나서 먹어라. 갈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7)는 말씀조차 매우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허물어진 하나님 그림이 엘리야의 내면에서 점점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그려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드디어 자리를 떨고 일어난 엘리야가 한참을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산 어느 동굴에 도착합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그리고 엘리야는 한바탕 신세타령을 늘어놓습니다. 한 때 잘 나가다가 세상이 나를 배신하는 바람에 이 지경에 이르렀노라는 아무개 노숙인의 신세타령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내면의 하나님 그림을 완전 새롭고도 생생한 그림으로 완성시키시려는 듯 행동하십니다. 이 행동은, 형식적으로는, 창세 15:7-21에서, 설익었던 아브람에게 당신을 (당신의 뜻을) 점점 더 자세히 보여주시던 하나님의 그 낯설고도 세심하신 모습이 연상됩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이 행동을 통하여 엘리야 내면의 하나님 그림은 점점 더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엘리야가 느꼈던 태풍 같고 지진 같고 불 같은 모습을 넘어서, 하나님은 매우 부드럽게 말을 걸어오십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아까 한 말씀의 반복입니다. 중요한 뜻이 담긴 말씀인 것이 분명합니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한 때 세상 권력 따위가 두려워 벌벌 떨며 생명을, 사명을 포기하려 했던, 그 초라한 실패자를 각성시키시는 과정입니다. 너 자신을 바로 알라고 하시는 겁니다. 네 생명, 네 사명의 소중함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그걸 위해 하나님은 당신의 다양한 모습을, 새로운 모습을 엘리야에게 보이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 또 이런 느낌이 듭니다. 엘리야가 아까 한 말을 반복하는 것을 유심히 느껴봅시다. 마치 녹음기처럼 반복합니다. 속으로 수없이 많이 반복 연습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걸 하나님 앞에서 두 번이나 쏟아내고 난 엘리야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 좀 어설픈 심리학적인 상상인지 모르지만, 여기서 하나님의 깊은 배려가 느껴집니다. 깊은 우울증에 빠진 엘리야가 무섭고 부끄러워서 꽁꽁 감추어두었던 내면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또 쏟아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용히 들어주시는 하나님!
분명한 것은, 이리저리 엉망으로 헝클어졌던 엘리야 내면의 하나님 그림이 이제 거의 완성에 가깝게 생생해졌음입니다. 그걸 엘리야 자신의 그림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엘리야와 하나님과의 관계, 그 다정한 가족사진이라고 하는 게 더 낫겠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숙해지고 단단해진 엘리야에게 마침내 하나님께서 새로운 명을 내리십니다.
[말씀동시] 누가 한 일일까? (김윤서 지음. 명암교회 중등부 1학년. 「성실문화」87호)
귀신들린 사람, 그 귀신을
예수님께서 쫒아내셨지
누가 한 일일까?
어둡고 차가운 무덤
꽁꽁 묶여서
편히 쉴 집도 없고
사람들도 외면한 불쌍한 사람
사납고 무서운 사람
예수님을 만났지
고침을 받았지
우리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지.
[말씀시조] 거라사 군대귀신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7호)
거라사 군대귀신 예수께서 쫓아내니
돼지떼 몰살하고 주인들 두려워라
해방된 그남자 홀로 예수사랑 증거해
[말씀한시] 애꿎게도 천진한 돼지들만 피해를 입었다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87호)
言命邪鬼自人出(언명사귀자인출)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사귀에게 명하셨다
鬼求耶穌不入獄(귀구야소불입옥) 귀신들은 예수께 지옥에는 보내지 말아달라며
魔軍請入山豕群(마군청입산시군) 산비탈의 돼지떼들 속으로 가겠다고 청했다
天眞豚種被害促(천진돈종피해촉) 애꿎게도 천진한 돼지들만 피해를 입었구나.
[말씀서예] 시편 42:5,11, 43:5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87호)
[말씀노래] 거라사 지방에 (주원남 지음. 「성실문화」87호)
[본문] (누가복음 8:26-39)
[노랫말]
1절) 거라사 지방에 무덤에서 사는 사람 / 너의 이름 무엇이냐 내 이름은 군대입니다
2절) 주님께서 명하시네 돼지 떼에 들어가라 / 돼지 떼는 비탈길로 호수에 뛰어 들었네
3절) 거라사 마을사람 두려움에 사로잡혀 / 주님께 요청했네 우리를 떠나 주세요
후렴) 귀신들아 떠나가라 나로 살지 못하게 하는 귀신들아 떠나가라 죽음 향해 질주케 하는
[해설]
거라사 지방에 귀신들린 사람을 치유하시는 이야기다. 본문의 내용을 세 개의 절에 나누어 담아 곡을 붙였다.
[악보] 거라사 지방에 (주원남 지음, 2016.3.20.)
[시편 송서(誦書)] 시편 42, 43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87호)
(※ 후렴구 42:5,11, 43:5만 ‘새야새야’ 가락에 맞추어, ‘쉼표’까지가 중중모리 한 장단)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5. 내 영혼아==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시-리-라==,
그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9.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10.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11. 내 영혼아==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시-리-라==,
그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43편
1.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4.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5. 내 영혼아==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시-리-라==,
그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 42:5, 11절과 43:5절은, 하반부가 조금 차이가 있지만, 대동소이하다고 판단하여 운율에 맞추어 문장을 조금 다듬어서 통일시켰다.)
※ 가락은 ‘새야새야, 파랑새야’로, 장단은 중중모리로 읊는다.
※ 쉼표(‘,’)까지 한마디가 12박 한 장단이다. (즉, 한 줄이 중중모리 두 장단이다.)
※ 한 박(‘=’)은 편의상 2분박(‘--’)으로 쪼개어 짚을 수도 있다.
※ 밑줄(‘ ’)친 부분은 글자 수가 많아도 3박으로 읊으면 된다.(이 때 너무 서두르지 말고 여유있게 읊는 것이 좋다.)
※ 굵은 글자는 찬양대가 송서(誦書, 새야새야)로 읊조리고, 나머지는 회중이 낭독한다. (찬양대가 읊조릴 때 회중도 콧노래처럼 작게 따라 해도 좋다.)
※ 가락이 조금 차이가 나는 것이 오히려 어우러지는 멋이 있어 좋다.
※ 마지막 절은 다함께 읊조린다.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성령강림 후 5주, 2016년 6월 19일 (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열왕기상 19:1-15a, 시편 42, 43, 갈라디아서 3:23-29, 누가복음 8: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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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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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열쇠
① 이스라엘 남서쪽 네게브 사막 중심에 있는 큰 도시. 예루살렘 남쪽 85㎞ 지점에 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살았던 곳이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정착할 때, 그랄 왕 아비멜렉과 우물 때문에 싸우지 말자며 새끼암양 7마리를 주고 언약을 맺은 곳이다. 그래서 그 이름의 뜻이, ‘일곱 우물’, 또는 ‘맹세의 우물’이다. “엘리야는 두려워서 급히 일어나, 목숨을 살리려고 도망하여, 유다의 ○○○○로 갔다.” (열왕기상)
② 3미터 높이까지 자라는 흰 금작화나무를 성경에서는 ○○○○라고 부른다. 금작화(金雀花)는 콩과에 딸린 늘푸른떨기나무로 일명 대싸리나무라고 부른다. 주로 노란 꽃이 피는데, 흰꽃은 아카시 꽃과 비슷하게 생겼다. “어떤 ○○○○ 아래로 가서, 거기에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기도하였다” (열왕기상)
③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의 헬라어(=희랍어=그리스어)이며, 히브리어로는 ‘메시야’라고 한다. 예수님을 가리킨다. (갈라디아서)
④ 모세가 이집트 왕자생활을 하다가 도망쳐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생활을 할 때, 이 산에서 불붙은 떨기나무에서 들리는 하나님 음성을 처음 만났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한 산’이라 불릴 때 이 이름이 쓰인다. 흔히 시내산과 같은 산으로 알려져 있다. 시내산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하여 50일째 되는 날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십계명 돌판을 받은 산이다. 이스라엘 아래 시나이반도 남쪽 끝부분 홍해 가까이에 있다. (열왕기상)
⑤ 예수님께서 군대귀신을 쫓아내신 곳인 오늘날 쿠르시(게르게사)라는 지역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 이름이다. 쿠르시는 예수님께서 주로 활동하시던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갈릴리 호수 건너편 호수가에 있는 고장이다. (누가복음)
세로열쇠
① 노아의 12대 손이요 데라의 아들로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인 사라에게서 이삭을 낳았다. 그의 형제는 나홀와 하란이며, 그의 조카는 롯이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며,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조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이름 뜻은 ‘열국의 아버지’이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면, 여러분은 ○○○○의 후손이요,” (갈라디아서)
② 송장(시신)이나 유골을 땅에 묻어 놓은 곳. 흙으로 둥글게 쌓아 올리기도 하고 돌로 평평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대개 묘석을 세워 누구의 것인지 표시한다. 우리와 달리 이스라엘 지역은 무른 암벽에 동굴을 파서 만드는데, 거라사의 경우 부유한 사람들은 산 사람의 집처럼 꾸며 만들기도 한다. (누가복음)
③ ‘활발’이라는 뜻을 가진 지역으로서, 과거 아람(시리아)의 수도였고, 현재도 시리아의 수도인데, 때때로 이곳이 수도였던 국가를 지칭하기도 한다. 삼면이 산악으로 둘러싸인 670미터 높이의 평지에 있다. 주전 64년부터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240Km나 떨어져 있었지만, 오래 전 아브라함 때부터 이스라엘과 관계를 맺어온 까닭에 많은 유대인들이 그곳에 살고 있었다. 다메섹이라고도 부르며,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러 이곳에 있는 여러 회당으로 가다가 부활예수님을 만나 회심하여 바울이 되었다. (열왕기상)
④ ‘작다’는 뜻을 가진 작은 산. 헤르몬 산맥의 여러 봉우리 가운데 하나로서 헤르몬 산과 요단강 사이에 있다. “내 영혼이 너무 낙심하였지만, 요단 땅과 헤르몬과 ○○○에서, 주님만을 그래도 생각할 뿐입니다” (시편)
⑤ “하나님이 보심”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시리아 사람으로, 시리아 왕 벤하닷의 신하였으나 왕을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어 55년간 시리아를 다스린다. 원래 엘리야가 이 소식을 ○○○에게 전하게 되어 있었으나 실제로 이 소식을 전한 사람은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이다.(왕하 8:11-15) “거기에 이르거든, ○○○에게 기름을 부어서...” (열왕기상)
[말씀동화] 벌거숭이 임금님의 절대패션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패션쇼 하던 시절 이야기야.
어느 나라 임금님이 어느 날 병에 걸렸어.
몸이 아픈 게 아니라, 머리가 이상해진 거야.
하루에도 옷을 몇 벌씩이나 갈아입어야 기분이 좋아지는 병이래.
그것도 내가 새 옷 입은 걸 여러 사람에게 보여줘야 더 기분이 좋아진대.
시도 때도 없이 잔치를 벌이네?
자기 나라 백성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왕궁 높은 발코니에 상을 차리고, 이 옷 저 옷 갈아입어가면서
잔치를 벌이기 일쑤야.
잔치음식 차리고 매일매일 이 옷 저 옷 비싼 옷들 사서 입느라
나라 돈이 점점 줄어들었겠지?
그래서 애국자들이 임금님께 간청했어.
이젠 제발 패션쇼 잔치 그만하시라고!
그러나 머리가 점점 더 이상해져가는 임금님 귀에
애국자들의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어.
게다가 이젠 이웃나라 사람들에게까지 옷 자랑 하고 싶어서
임금님은 시도 때도 없이 다른 나라로 달려가는 패션쇼 여행을 시작했단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골에 사는 똘똘이와 꾀돌이가 서울에 놀러 왔어.
난생처음 서울에 놀러온 똘똘이와 꾀돌이는 깜짝 놀랐어.
크게 기대하고 왔는데, 세상에서 가장 밝을 줄 알았던 서울사람들 표정이 전부 어두운거야.
알고 보니 그 이유가 바로 임금님의 패션쇼 병 때문이라는 거지.
임금님의 패션쇼 병 때문에 나라가 망하기 일보직전이야.
백성들이 점점 배고파져도, 심지어 약한 백성들이 억울하게 죽는 일이 자꾸자꾸 벌어져도
패션쇼 병에 걸린 임금님은 아무 관심도 없었어.
이 사실을 알게 되자 똘똘이와 꾀돌이는 하늘님께 기도했단다.
그리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궁리했지.
드디어 똘똘이와 꾀돌이는 한 가지 꾀를 내어 임금님에게 찾아가 이런 말을 했어.
“임금님 안녕하세요? 저희는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옷을 짓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을 들은 임금님의 귀가 번쩍 열렸겠지?
“그래, 그대들이 짓는 옷은 어떤 옷인고?”
“예, 저희가 짓는 옷은 입을 때마다 매일매일 옷 색깔과 옷 모양이 달라집니다. 그 뿐 아닙니다. 저희가 짓는 옷은 입는 사람 얼굴을 그날 그날 원하는 얼굴 모양으로 변모시켜 줍니다. 유명한 위인 얼굴로도 변할 수 있고, 멋진 히어로나 아름다운 인기 스타 얼굴로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이 옷을 가리켜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절대패션’이라고 부릅니다.”
임금님은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신났겠지?
그런데 바로 그때 꾀돌이가 한마디 더 이상한 말을 했어.
“그런데 임금님, 저희가 짓는 이 절대패션에는 한 가지 더 신비로운 비밀이 있습니다.”
“오, 또 하나의 신비라, 그건 또 무엇인고?”
“그건 바로, 이 절대패션 옷이 마음 착한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옷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어떻게 되긴?
새로운 패션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임금님인데 어떡했겠어?
아무리 비싸도 좋으니, 얼른 옷을 지으라고 명령했겠지?
몇날 며칠이 흘렀어.
드디어 신비의 절대패션이 완성되었노라고 똘똘이와 꾀돌이는 능청을 부렸겠지?
임금님은 곧바로 온 나라에 임시공휴일을 명령하고 패션쇼 잔치를 시작했어.
드디어 임금님이 왕궁 문을 열고나서더니, 요리 씰룩 조리 짤룩 행진을 시작하네?
그 모양이 어땠을까?
구경나온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졌겠지?
왜냐고? 왜긴? 지금 임금님이 완전 벌거숭이 패션이잖아?
바로 그 때 임금님의 신하들이 너도나도 마이크를 입에 대고 이렇게 외쳤어.
“오늘 임금님의 옷은 마음이 착한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절대패션’이노라!”
그러자 온 나라 사람이 입을 꼭꼭 꾹꾹 다물었겠지?
바로 그 때 어린 아이 하나가 종알거렸어.
“어? 우리 임금님이 벌거숭이네?”
착한 아이가 하는 말이니까 다른 어른들도 하나 둘씩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겠지?
“맞아 맞아 저 절대패션은 좀 이상해, 저걸 좀 봐. 아이 부끄러워! 임금님이 완전 벌거숭이야!”
여기저기서 쑥덕쑥덕 거리기 시작하더니,
이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사람들 목소리가 커졌어.
“벌거숭이 임금님! 벌거숭이 임금님! 우리 임금님은 벌거숭이∼!”
절대패션 사건으로 머리가 더 이상해진 임금님은
자기 절대패션을 벌거숭이라고 떠들어대는 자기 백성들이 미워졌겠지?
그리고 절대패션이 가짜라고 말하는 가족들과 신하들까지도 한없이 미워졌겠지?
마침내 임금님은 세상에 단 한 벌 뿐인 절대패션을 입은 채 왕궁을 뛰쳐나와 버렸어.
백성들 얼굴까지 꼴도 보기 싫어서
사람들 아무도 없는 동굴 무덤에 가서 살기 시작했지.
이젠 벌거숭이 임금님의 머릿속에는 수백 수천 명이 살고 있단다.
오늘은 이 얼굴, 내일은 또 저 얼굴로 변모한다고 믿었기 때문일까?
“골룸, 골룸, 오 마이 프레셔스!”
어떡하지? 벌거숭이 임금님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임금님이 되어버렸네?
하의실종 보다 더 심각한 건 수치심 실종이야.
부끄러운 것도 모르게 된 거지.
도대체 이를 어쩐다지?
똘똘이랑 꾀돌이를 다시 불러와야 고칠 수 있을까?
아니아니, 이건 똘똘이랑 꾀돌이가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야.
우리 하늘님께서 고쳐주셔야 고쳐지는 병이야.
얘들아, 우리 함께 하늘님께 기도하지 않을래?
“하늘님, 제발 우리 임금님 좀 살려주세요!”
[이정훈 지음. 2016년 6월 19일 주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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