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성서일과 4본문]
(사무엘상 17:(1a, 4-11, 19-23) 32-49)
32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저 자 때문에 사기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임금님의 종인 제가 나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습니다."
33 그러나 사울은 다윗을 말렸다. "그만두어라. 네가 어떻게 저 자와 싸운단 말이냐? 저 자는 평생 군대에서 뼈가 굵은 자이지만, 너는 아직 어린 소년이 아니냐?"
34 그러나 다윗은 굽히지 않고 사울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의 종인 저는 아버지의 양 떼를 지켜 왔습니다. 사자나 곰이 양 떼에 달려들어 한 마리라도 물어가면,
35 저는 곧바로 뒤쫓아가서 그 놈을 쳐죽이고, 그 입에서 양을 꺼내어 살려 내곤 하였습니다. 그 짐승이 저에게 덤벼들면, 그 턱수염을 붙잡고 때려 죽였습니다.
36 제가 이렇게 사자도 죽이고 곰도 죽였으니, 저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도 그 꼴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자를 어찌 그대로 두겠습니까?"
37 다윗은 말을 계속하였다. "사자의 발톱이나 곰의 발톱에서 저를 살려 주신 주님께서, 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틀림없이 저를 살려 주실 것입니다." 그제서야 사울이 다윗에게 허락하였다. "그렇다면, 나가도 좋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길 바란다."
38 사울은 자기의 군장비로 다윗을 무장시켜 주었다. 머리에는 놋투구를 씌워 주고, 몸에는 갑옷을 입혀 주었다.
39 다윗은, 허리에 사울의 칼까지 차고, 시험삼아 몇 걸음 걸어 본 다음에, 사울에게 "이런 무장에는 제가 익숙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무장을 한 채로는 걸어갈 수도 없습니다" 하고는 그것을 다 벗었다. 그렇게 무장을 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40 그런 다음에, 다윗은 목동의 지팡이를 들고, 시냇가에서 돌 다섯 개를 골라서, 자기가 메고 다니던 목동의 도구인 주머니에 집어넣은 다음, 자기가 쓰던 무릿매를 손에 들고, 그 블레셋 사람에게 가까이 나아갔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다)
41 그 블레셋 사람도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42 그 블레셋 사람은 다윗을 보고 나서, 그가 다만 잘생긴 홍안 소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그를 우습게 여겼다.
43 그 블레셋 사람은 다윗에게 "막대기를 들고 나에게로 나아오다니, 네가 나를 개로 여기는 것이냐?" 하고 묻고는,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였다.
44 그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어서 내 앞으로 오너라. 내가 너의 살점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마."
45 그러자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에게 말하였다.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
46 주님께서 너를 나의 손에 넘겨주실 터이니,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사람의 주검을 모조리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밥으로 주어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
47 또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주님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48 드디어 그 블레셋 사람이 몸을 움직여 다윗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다윗은 재빠르게 그 블레셋 사람이 서 있는 대열 쪽으로 달려가면서,
49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을 하나 꺼낸 다음, 그 돌을 무릿매로 던져서, 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맞히었다. 골리앗이 이마에 돌을 맞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시편 9:9-20) 주님 찬양 (지휘자를 따라 뭇랍벤에 맞추어 부르는 다윗의 노래)
9 주님은 억울한 자들이 피할 요새이시며, 고난 받을 때에 피신할 견고한 성이십니다.
10 주님, 주님을 찾는 사람을 주님께서는 결단코 버리지 않으시므로, 주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주님만 의지합니다.
11 너희는 시온에서 친히 다스리시는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가 하신 일을 만민에게 알려라.
12 살인자에게 보복하시는 분께서는 억울하게 죽어 간 사람들을 기억하시며, 고난 받는 사람의 부르짖음을 모르는 체하지 않으신다.
13 주님,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죽음의 문에서 나를 이끌어 내신 주님,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서 받는 고통을 살펴 주십시오.
14 그렇게 하시면 주님께서 찬양 받으실 모든 일을 내가 전파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베푸신 그 구원을, 아름다운 시온의 성문에서 기뻐하며 외치겠습니다.
15 저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함정에 스스로 빠지고, 자기가 몰래 쳐 놓은 덫에 자기 발이 먼저 걸리는구나.
16 주님은 공정한 심판으로 그 모습 드러내시고, 악한 사람은 자기가 꾀한 일에 스스로 걸려드는구나.
(힉가욘, 셀라)
17 악인들이 갈 곳은 스올, 하나님을 거역한 뭇 나라들이 갈 곳도 그 곳뿐이다.
18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 끝까지 잊혀지는 일은 없으며, 억눌린 자의 꿈도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19 주님, 일어나십시오. 사람이 주님께 맞서지 못하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저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십시오.
20 주님,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시며, 자신들이 한낱 사람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알게 하여 주십시오. (셀라)
(고린도후서 6:1-13)
1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도록 하십시오.
2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은혜의 때에, 나는 네 말을 들어주었다. 구원의 날에, 나는 너를 도와주었다"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지금이야말로 은혜의 때요, 지금이야말로 구원의 날입니다.
3 아무도 우리가 섬기는 이 일에 흠을 잡지 못하게 하려고,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아무에게도 거리낌거리를 주지 않습니다.
4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하나님의 일꾼답게 처신합니다. 우리는 많이 참으면서, 환난과 궁핍과 곤경과
5 매 맞음과 옥에 갇힘과 난동과 수고와 잠을 자지 못함과 굶주림을 겪습니다.
6 또 우리는 순결과 지식과 인내와 친절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일을 합니다. 우리는 오른손과 왼손에 의의 무기를 들고,
8 영광을 받거나, 수치를 당하거나, 비난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사람 같으나 진실하고,
9 이름 없는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는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고,
10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11 고린도 사람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게 숨김없이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넓혀 놓았습니다.
12 우리가 여러분을 옹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옹졸한 것입니다.
13 나는 자녀들을 타이르듯이 말합니다. 보답하는 셈으로 여러분도 마음을 넓히십시오.
(마가복음 4:35-41)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다
35 그 날 저녁이 되었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바다 저쪽으로 건너가자."
36 그래서 그들은 무리를 남겨 두고,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함께 따라갔다.
37 그런데 거센 바람이 일어나서, 파도가 배 안으로 덮쳐 들어오므로, 물이 배에 벌써 가득 찼다.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며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39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더러 "고요하고, 잠잠하여라" 하고 말씀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고요해졌다.
40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서로 말하였다. "이분이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까지도 그에게 복종하는가?“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의 알맹이는 ‘두려움과 용기’입니다.
구약, “사기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삼상 17:32)
시편,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시며”(시 9:20)
서신서,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고후 6:10)
복음서,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서”(마가 4:41)
오늘 요절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고후 6:10)
[구약과 시편 (사무엘상 17:32-49 / 시편 9:9-20)]
오늘 구약본문의 주인공은 소년 다윗입니다.
천하의 골리앗 때문에 사기가 땅에 떨어진 하나님의 군대!
부끄러운 군대 속 가장 작은 자 다윗이 큰일을 저지릅니다.
다윗의 무기는 용기입니다.
그 용기는 작다고 무시당한 자의 만용이 아닙니다.
그 용기는 값비싼 무기, 막강 무력에서 솟아난 것이 아닙니다.
그 용기는 오직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믿음에서 나옵니다.(45)
이는 지난 주 시편본문인 시 20:7절과 직통합니다.
“어떤 이는 전차를 자랑하고, 어떤 이는 기마를 자랑하지만, 우리는 주 우리 하나님의 이름만을 자랑합니다.”
오늘 시편본문에서도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주님만 의지합니다.”(시 9:10)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오직 주님의 이름, 그 이름만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의 그 이름, 지극히 추상적이고 습관적일뿐이었던 그 이름이,
오히려 두려움 가득한 전쟁 상황, 역병의 상황에서 빛납니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던 불의한 세력들에게도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두려움이 약이 됩니다.(20)
그러고 보니 두려움은 하나님께서 참 용기를 키우시는 텃밭이었습니다.
위기가 기회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 (고린도후서 6:1-13 / 마가복음 4:35-41)]
오늘 서신서본문은, 졸지에 양떼들로부터 왕따 신세가 된 바울이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면서 양떼들에게 좋은 꼴을 먹이려 애쓰는 장면입니다.
바울은 여러 가르침 끝에 ‘옹졸한 마음’을 넓히라고 권면합니다.(11-13)
이는 교회에서 자주 경험하는 일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도 자주 겪는 일입니다.
옹졸해지는 마음 역시 두려움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교인들과 지도자들 사이에 이런 옹졸 웅덩이가 생기면
가장 먼저 체크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 안에 ‘주님의지’보다 ‘사람의지’하려는 마음이 더 커진 건 아닌지?
그리고 얼른 ‘주님의지’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어떤 옹졸도, 그 어떤 역경도(4-5), 극심한 가난에 대한 두려움도 이길 용기가 생깁니다.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고후 6:10)
오늘 복음서본문에는 제자들의 두려움이 극대화되어 드러납니다.
평화로웠던 분위기가 바람과 풍랑 앞에서 크게 흔들립니다.
차라리 배를 안탔으면 이런 어려움 없었겠지요?
교회에 소속되자마자 이모저모로 풍랑이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풍랑이 얼마나 컸는지는 몰라도,
풍랑보다 배를 더 위태롭게 만든 요소는 제자들의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그 두려움의 정체는 바로 ‘믿음 없음’입니다.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40)
이렇게 예수님께로부터 ‘믿음 없음’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자
더 큰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저들이 큰 두려움에 휩싸인 것은, 바람과 풍랑이 아니라, 주님의 정체입니다.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서로 말하였다. "이분이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까지도 그에게 복종하는가?“(41)
[정리]
군대 안에 만연한 골리앗 공포와 싸우는 다윗의 용기,
교회 안에 만연한 옹졸한 마음들과 싸우는 바울의 용기,
풍랑, 불신앙과 싸우는 제자들이 필요한 용기...!
용기란 두려움이라는 진흙탕에서 피어난 연꽃과 같습니다.
나의 두려움, 지금 우리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전쟁입니까? 역병(疫病)입니까? 가난입니까?
두려움은 지금 닥친 위기상황의 사태와 원리를 잘 몰라서 생길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걸 너무 잘 알아서 생길 수도 있습니다.
경험이 많은 전문가일수록 더 두려워질 수 있습니다.
마치 뱃사람이었던 제자들이 거센 풍랑 앞에서 떨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용기란 그 두려움을 일으킨 세상 원리를 파악하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들의 알맹이는 바로 이 사실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용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그 어떤 두려움이 스물스물 피어오르면
가장 먼저 내 안에 새겨진 주님 이름이 희미해지지 않았나 살펴야 합니다.
마치 배 안에 저 뒷방에서 주무시는 주님을 깨우는 심정으로
내 안에 희미해진 주님 이름을 다시 곡진(曲盡)하게 새겨야 합니다.
그렇게 내 안에 주님의 이름, 주님의 사랑이 다시 생생하게 차오른다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그 두려움은 자연스레 희미해져 갈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두려움도 이길 수 있는 다윗의 용기가 솟구칠 것입니다.
[나머지]
* “사자도 죽이고 곰도 죽였으니”(삼상 17:36)
오늘 구약 본문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어떻게 어린 소년이 사자와 곰을 맨손으로 잡을 수 있었을까?
다윗의 주장이 믿기 어려울정도로 허황합니다.
마치 요즘 청소년들의 컴퓨터게임, 사이버상의 전투장면 같습니다.
무시당한 소년의 흥분상태에서 한 과장된 표현처럼 보이지만,
지난주일 마지막 본문에 답이 있습니다.
사무엘이 기름이 담긴 뿔병을 들고, 그의 형들이 둘러선 가운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그 날부터 계속 다윗을 감동시켰다. (삼상 16:13)
** 목자(牧者)의식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다윗의 이 말입니다.
“아버지의 양떼를 지켜왔습니다.”(삼상 17:34)
다윗의 용기가, 두려움 속에서도 주님만 의지하려는 ‘믿음’으로 완성되었다면,
그 용기의 출발은, 바로 이것입니다.
“내 아버지의 양떼!”
내가 맡은 양떼는 내 아버지의 양떼입니다.
이런 목자의식이 있다면,
사자와 곰은 물론이고,
마치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는 악마와도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
그 믿음이 솟구치는 법입니다.(벧전 5:8-9)
저는 여기서 또 하나의 거울을 발견하고 반성합니다.
지금 총체적 어려움에 처한 한국사회의 지도자들에게 이런 목자의식이 과연 있는가?
지금 한국교회에 이런 목자의식이 얼마나 있는가?
나에게 과연 이런 목자의식이 있었던가?
*** 사공조차 없는 일엽편주(一葉片舟)처럼
교회가 시련을 당하면, 교인이 시련을 당하면, 세상은 더 크게 비웃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비아냥거립니다.
일엽편주, 큰 파도 앞의 조각배에 탔던 제자들을 보십시오. 저들은 주무시는 주님을 깨웁니다. 주님께서 살려주실 것이라는 믿음도 없었던 저들이 주님을 깨웁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풍랑을 잠재우십니다.
교우 여러분, 지금 여러분 안에 믿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도 괜찮습니다. 쓰나미 같은 어려움이 있습니까? 개무시 당해서 분노가 쓰나미처럼 솟아오릅니까? 믿음이 없어도 됩니다. 여러분 안에 주무시고 계시는 주님만 깨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구원해주시리라는 믿음이 아직 없어도 좋습니다. 그냥 깨우십시오. 적어도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구원방주 교회 안에 그분께서 주무시고 있다는 사실만 알면 됩니다. 그냥 깨우십시오. 푸념하기 위해서라도 좋습니다. 신세타령을 위해서라도 좋습니다. 화풀이하기 위해서라도 좋습니다. 그냥 깨우십시오. 그렇게 내 안에 어느새 희미해진 그분 이름을 다시 생생하게 곡진(曲盡)하게 새기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서로 말하였다. "이분이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까지도 그에게 복종하는가?" (41)
그렇게 여러분은 쓰나미보다 더 ‘무서운’ 그분의 능력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여러분을 향하신 그분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은 이렇게 생겨가는 법입니다.
며칠 후면 육이오 65주년입니다. 쓰나미처럼 한반도를 뒤덮었던 전쟁광풍처럼 오늘은 메르스(mers)가 맹위를 떨치며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믿음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최소한 여기 일엽편주 우리 교회 안에 우리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만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위기를 당했을 때 그분을 깨우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셔서 일하실 것입니다. 만파식적처럼 광풍을 잠재우시고 믿음 없는 여러분에게 믿음을, 믿음의 용기를 불어넣어 주실 것입니다.
[말씀동시] 믿음피리 (함소빈 지음. 섬돌향린교회 교회학교. 「성실문화」83호)
우리나라 신화에는
만파식적이라는
마법피리가 있다.
이 피리는
풍랑도 가라앉히고
병도 낫게 하고
기분을 좋게한다
하나님은
풍랑도 가라앉히시고
고등어 두 마리
떡 다섯 개로
오 천 명의 사람에게
먹을 것을 충분히 주시고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하시는
마법피리신가 보다.
하나님 피리는
사용법이 쉽다.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하나님을 굳게 믿으면
모든 사람이 다
쓸 수 있다.
하나님은
믿음피리다.
[말씀시조] 광풍 큰바람에도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3호)
광풍 큰바람에도 예수님 주무시니
혼비백산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는다
풍랑을 꾸짖으시고 제자믿음 깨우쳐
[말씀한시] 삼필재서당의 한(韓)송산재(松山齋)에게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83호)
三筆法古處 (삼필법고처) 삼필재는 옛 책을 읽는 곳
月出匹馬嘶 (월출필마시) 달이 뜨니 필마가 울어댄다.
信行郇山近 (신행순산근) 신행(信行)으로 사노라면 시온산이 가까이 다가오니
何煩過苦溪 (하번과고계) 괴로움의 강물을 건널지라도 무슨 걱정 있으리오.
[말씀서예] 시편 9:9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83호)
[말씀노래]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자 (주원남 지음. 「성실문화」83호)
[본문] (마가복음 4:35-41)
[노랫말]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자 주 말씀 따라서 / 캄캄한 바다 건너편에 노 저어 나아가네
거센 바람 풍랑 일 때 주님이 주무시네 / 우리의 죽게 된 것을 안 돌아 보십니까
고요하라 잠잠하라 바람아 파도야 / 두려움아 의심아 고요하라 잠잠하라
[해설]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신 주님은 우리 마음의 두려움과 의심을 잔잔케 하시며, 바다 저편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악보]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자 (주원남 지음, 2015.4.12.)
[시편 송서(誦書)]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83호)
(* 전래 자장가, 즉 천자문독송 풍으로)
9.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오--,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1.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중에-,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12.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13.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14.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15.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16.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자기가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 (힉가욘, 셀라)
17. 악인들이-- 스올-로--, (스올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
18.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19.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서-, 심판을 받-게 하소-서--∼
[다함께]
20. 여호와여-- 그들-을--, 두렵-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자기-는--, (자기는) 인생일 뿐인 줄 알게 하∼소∿서∼∥(셀라)
[말씀동화] 초록 모자를 쓴 다람쥐 로빈
햇볕이 쨍쨍 쏟아지는 여름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아래
포르르 파랑새 두 마리가 지나갑니다.
저 아래 초록빛 가득한 참나무 숲이 우거졌네요.
보기만 해도 시원한 참나무 숲입니다.
가만 보니 저기 참나무 아래 누군가 누워 있네?
저게 누구지? 아하, 곰돌이 푸우군요.
낮잠을 자나?
가만 보니까 푸우의 친구 호랑이 티거도 저쪽 편에 벌러덩 누워 있군요.
하루 종일 신나게 폴짝폴짝 캥거루처럼 뛰어다니더니
벌써 지쳐서 쉬는 건가?
당나귀 이요르가 느릿느릿 다가와 친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이제야 찾았네! 그런데 왜 저러고들 있지? 남의 동네에 와서 왜 길에서 잠을 잘까?”
이요르가 가까이 다가가보니, 아뿔싸! 동무들이 낮잠을 자는 게 아니었어요.
푸우는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었고요,
티거의 커다란 코는 두 배나 부어올랐어요!
둘 다 아파서 끙끙거리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요르가 묻습니다.
“너희 무슨 일이야? 둘이 싸웠니? 종일 너희 찾아다니다가 여기까지 왔어.”
푸우가 끙끙 신음소리처럼 대답합니다.
“꿀 따먹으려다가 이렇게 되었어.”
“뭐? 꿀 서리를 하러 남의 동네까지 온 거야? 그럼 꿀벌들한테 쏘인 거구나?”
“아니 꿀통을 지키는 다람쥐 녀석한테 얻어맞았어.”
티거도 끙끙대며 말합니다.
“나도 말리려다가 그 다람쥐한테 코를 한 대 얻어맞고 잠깐 기절했어.”
이요르가 커다란 눈을 슬프게 끔뻑거리더니 천천히 주변을 둘러봅니다.
여기저기 나무에 꿀벌통들이 매달려 있군요.
그리고 그 주변을 모자를 쓴 다람쥐 한 마리가 부지런히 오르내리고 있고요.
이요르는 천천히 다람쥐에게 다가갑니다.
“다람쥐야 안녕? 내 이름은 이요르야.”
초록빛 모자를 쓴 다람쥐가 이요르를 힐끗 바라봅니다.
“넌 또 어디서 굴러온 잿빛 당나귀냐? 너도 우리 벌꿀통에 눈독 들이는 거냐?”
“다람쥐야 그건 오해야. 난 꿀을 좋아하지 않아. 그런데 네 이름은 뭐니?”
다람쥐는 이요르의 순한 눈빛 때문에 마음을 풀고 대답합니다.
“내 이름은 로빈, 참나무 숲을 지키는 로빈이야.”
“로빈, 네 이름이 참 멋지다. 그런데 넌 왜 이런 지킴이가 되었니?”
“잿빛 당나귀야. 그건 너무 긴 이야기라 해줄 수 없단다.”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푸우와, 코가 두 배나 커진 티거도 이요르 곁에 나란히 서서
참나무 위에 앉은 로빈을 바라봅니다.
이요르가 커다란 두 눈을 슬프게 끔뻑이며 느릿느릿 말합니다.
“로빈아 내 이름은 이요르야. 그리고 며칠 있으면 내 생일이란다. 내 생일선물로 그 이야기해주면 안 되겠니?”
이요르의 간청에 드디어 로빈이 입을 엽니다.
“알겠어 이요르. 네 생일선물로 옛날이야기를 들려줄게. 우리 참나무 숲을 지으신 하느님께서 어느 날 내게 이 초록 모자를 씌워주시며 말씀하셨어. ‘내 사랑하는 딸 다람쥐 로빈아 이제부터 네가 이 숲을 지키고 꿀벌들을 지키거라. 숲과 꿀벌들을 지키지 못하면 온 세상이 시들어버리느니라.’ 이 말씀을 듣고 나는 참나무 숲의 지킴이가 된 거란다.”
로빈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티거가 말합니다.
“그런데 로빈. 너 여자애였어? 너처럼 조그마한 소녀 다람쥐가 어떻게 나처럼 커다란 호랑이를 한주먹에 잠재울 수 있었니?”
곁에 있던 푸우도 말합니다.
“그러게 말이야. 넌 나처럼 커다란 곰이랑 호랑이가 하나도 안 무섭니?”
로빈이 까르르 웃으며 대답합니다.
“그래. 난 하나도 안 무서워. 내 아버지 하나님의 숲을 해치는 녀석들은 하나도 안 무서워.”
이요르가 묻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잠깐 망설이던 로빈이 조심스럽게 대답합니다.
“이 초록 모자가 비결이야. 이 모자 안쪽에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거든. 임마누엘은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지. 그래서 이 모자를 쓰는 순간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이 생기니까 용기가 샘솟는 거란다. 그러면 비록 힘없는 소녀 다람쥐처럼 보이지만 세상 어떤 히어로들보다 더 막강한 세상 모든 힘을 다 가진 슈퍼파워 지킴이로 변신하게 되지. 그래서 하느님의 숲을 훔치고 망가뜨리려는 녀석들을 너끈히 물리칠 수 있게 되는 거야.”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티거와 푸우가 갸우뚱거리네요?
로빈이 빙그레 웃으며 다시 말합니다.
“이 모자를 쓰면, 제 아무리 커다란 사자나 불곰도 작고 작은 테디베어 곰돌이 인형처럼 작게 보인단다.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서 두루 싸돌아다니는 악마조차(벧전 5:8-9) 이 모자만 쓰면 바퀴벌레만큼 작게 보이지.”
로빈의 이야기를 들은 이요르와 푸우 그리고 티거가 드디어 고개를 끄덕입니다.
푸우가 입을 엽니다.
“로빈, 그럼 그 모자만 쓰면 천하대장군 골리앗도 손가락만한 장난감 병정으로 보이겠구나?”
로빈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맞아. 딱 그래.”
이번엔 티거가 입을 엽니다.
“아무리 거센 풍랑이 몰아쳐도, 그 모자만 쓰면, 살랑살랑 산들바람이겠구나?”
로빈이 티거의 말에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맞아. 딱 그래. 돈에 눈이 어두워진 사람들이 참나무를 마구 베어내고 흙을 퍼가는 바람에 에덴동산 같던 우리 참나무 숲이 많이 망가졌단다. 골리앗처럼 하느님 무서운 줄 모르는 욕심꾸러기들이 다시는 우리 숲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나는 매일매일 우리 숲을 지키고 있어. 메르스 전염병보다 훨씬 무섭게 대책 없이 번지는 돈 욕심으로부터 우리 숲과 숲속 동무들을 지키기 위해 나는 매일매일 눈에 불을 켜고 지키고 있어. 곰돌이 푸우야, 너도 남의 꿀통 서리 이제 그만하고 나랑 같이 참나무 숲을 지키지 않을래?”
씩씩하게 청하는 로빈의 말에, 노오란 푸우의 얼굴이 발그레 물듭니다.
소녀다람쥐 로빈을 머리에 태운 푸우는 티거와 이요르와 어깨동무를 합니다.
로빈과 세 친구들은 사총사가 되어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갑니다.
[이정훈 지음. 2015년 6월 21일 주일 아침]
'성실문화 응용하기 > 본문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강림후 6주(2015년 7월 5일 주일)예배준비 노트 (0) | 2015.07.04 |
---|---|
성령강림후 5주(2015년 6월 28일 주일)예배준비 노트 (0) | 2015.06.27 |
성령강림후 3주(2015년 6월 14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0) | 2015.06.13 |
성령강림후 2주(2015년 6월 7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2) | 2015.06.06 |
성령강림후 1주(삼위일체주일, 2015년 5월 31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0) | 2015.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