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성서일과 4본문]
(창세기 24:34-38, 42-49, 58-67)
34. 노인이 말하였다. "저는 아브라함 어른의 종입니다.
35. 주님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셔서, 주인은 큰 부자가 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주인에게 양 떼와 소 떼, 은과 금, 남종과 여종, 낙타와 나귀를 주셨습니다.
36. 주인마님 사라는 노년에 이르러서, 주인어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으셨는데, 주인어른께서는 모든 재산을 아드님께 주셨습니다.
37. 주인어른께서 저더러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아들의 아내가 될 여인을, 내가 사는 가나안 땅에 있는 사람의 딸들에게서 찾지 말고,
38. 나의 아버지 집, 나의 친족에게로 가서, 나의 며느리감을 찾아보겠다고 나에게 맹세하여라' 하셨습니다.
42. 제가 오늘 우물에 이르렀을 때에, 저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주님께서 원하시면, 제가 오늘 여기에 와서, 하는 일이 잘 이루어지게 하여 주십시오.
43. 제가 여기 우물 곁에 서 있다가, 처녀가 물을 길으러 오면, 그에게 항아리에 든 물을 좀 마시게 해 달라고 말하고,
44. 그 처녀가 저에게 마시라고 하면서, 물을 더 길어다가 낙타들에게도 마시게 하겠다고 말하면, 그가 바로 주님께서 내 주인의 아들의 아내로 정하신 처녀로 알겠습니다' 하고 기도하였습니다.
45. 그런데 제가 마음속에 기도를 다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왔습니다. 그는 우물로 내려가서, 물을 긷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에게 '마실 물을 좀 주시오' 하였더니,
46. 물동이를 어깨에서 곧바로 내려놓고 '드십시오. 낙타들에게도 제가 물을 주겠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을 마셨습니다. 따님께서는 낙타에게도 물을 주었습니다.
47. 제가 따님에게 '뉘 댁 따님이시오?' 하고 물었더니, 따님께서는 '아버지는 함자가 브두엘이고, 할아버지는 함자가 나홀이고, 할머니는 함자가 밀가입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따님의 코에는 코걸이를 걸어 주고, 팔에는 팔찌를 끼워 주었습니다.
48. 일이 이쯤 된 것을 보고, 저는 머리를 숙여서 주님께 경배하고, 제 주인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신 주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주님은 저를 바른 길로 인도하셔서, 주인 동생의 딸을 주인 아들의 신부감으로 만날 수 있게 하여 주셨습니다.
49. 이제 어른들께서 저의 주인에게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보여 주시려거든, 저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을 해주시고, 그렇게 하지 못하시겠거든, 못하겠다고 말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셔야, 저도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할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58. 그들이 리브가를 불러다 놓고서 물었다. "이 어른과 같이 가겠느냐?" 리브가가 대답하였다. "예, 가겠습니다."
59. 그래서 그들은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를 아브라함의 종과 일행에게 딸려보내면서,
60. 리브가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우리의 누이야, 너는 천만 인의 어머니가 되어라. 너의 씨가 원수의 성을 차지할 것이다."
61. 리브가와 몸종들은 준비를 마치고, 낙타에 올라앉아서, 종의 뒤를 따라 나섰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를 데리고서, 길을 떠날 수 있었다.
62. 그 때에 이삭은 이미 브엘라해로이에서 떠나서, 남쪽 네겝 지역에 가서 살고 있었다.
63. 어느 날 저녁에 이삭이 산책을 하려고 들로 나갔다가, 고개를 들고 보니, 낙타 행렬이 한 떼 오고 있었다.
64. 리브가는 고개를 들어서 이삭을 보고, 낙타에서 내려서
65. 아브라함의 종에게 물었다. "저 들판에서 우리를 맞으러 오는 저 남자가 누굽니까?" 그 종이 대답하였다. "나의 주인입니다." 그러자 리브가는 너울을 꺼내서, 얼굴을 가렸다.
66. 그 종이 이제까지의 모든 일을 이삭에게 다 말하였다.
67. 이삭은 리브가를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그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리브가는 이삭의 아내가 되었으며, 이삭은 그를 사랑하였다. 이삭은 어머니를 여의고 나서, 위로를 받았다.
(시편 45:10-17)
10. 왕후님! 듣고 생각하고 귀를 기울이십시오. 왕후님의 겨레와 아버지의 집을 잊으십시오.
11. 그리하면 임금님께서 그대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임금님이 그대의 주인이시니, 그대는 임금님을 높이십시오.
12. 두로의 사신들이 선물을 가져오고, 가장 부유한 백성들이 그대의 총애를 구합니다.
13. 왕후님은 금실로 수놓은 옷을 입고, 구중 궁궐에서 온갖 영화를 누리니,
14. 오색찬란한 옷을 차려입고 임금님을 뵈러 갈 때에, 그 뒤엔 들러리로 따르는 처녀들이 줄을 지을 것이다.
15. 그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안내를 받아, 왕궁으로 들어갈 것이다.
16. 임금님, 임금님의 아드님들은 조상의 뒤를 이을 것입니다. 임금님께서는, 그들을 온 세상의 통치자들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17. 내가 사람들로 하여금 임금님의 이름을 대대로 기억하게 하겠사오니, 그들이 임금님을 길이길이 찬양할 것입니다.
(로마서 7:15-25a)
15.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16. 내가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율법이 선하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17. 그렇다면, 그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18.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19.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20.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21.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22.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23.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24.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마태복음 11:16-19, 25-30)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길까? 마치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서, 다른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17. '우리가 너희에게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을 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해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는 귀신이 들렸다' 하고,
19. 인자는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 그들이 말하기를 '보아라, 저 사람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한다. 그러나 지혜는 그 한 일로 옳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25. 그 때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였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이 일을 지혜 있고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드러내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의 은혜로운 뜻입니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맡겨주셨습니다. 아버지 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으며, 아들과 또 아들이 계시하여 주려고 하는 사람 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
28.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4본문을 징검다리처럼 이어주는 구절들은 이것입니다.
“위로를 받았다”(창세 24:67),
“잊으십시오”(시편 45:10),
“나를 건져주신”(로마 7:25),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마태 11:28)
오늘 제목은,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로 정했습니다.
마침 맥추감사주일이라 이 제목이 의미 있다고 보았습니다.
맥추감사주일은, 지난 반년(6개월)을 돌아보며 감사하는 날입니다.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반년을 반성하고, 앞으로 남은 반년을 계획하며 한바탕 쉬는 날입니다.
그런데 쉰다는 게 뭘까요?
안식, 안식일 정신의 알맹이는 뭘까요?
[구약본문 (창세기 24:34-38, 42-49, 58-67)]
오늘 아브라함의 노종이 주인 아들 이삭의 며느릿감을 찾는 과정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조건을 제시한 것 같은데, 가만 보면 슬기로운 조건으로 보입니다.
늙은 나그네에게 친절하고, 추측컨대 꽤 많은 물을 마실 것 같은 낙타들에게도 친절하고(자비롭고), 그렇게 봉사할 수 있을 만큼 육체적으로도 건강한 처녀를 고르고 있습니다.
그러다 만난 사람이, 금상첨화로, 주인의 조카딸(손녀딸, NIV.) 리브가입니다.
오늘 구약본문에서 눈에 띄는 내용은 안식과 위로입니다.
첫째, 아브라함의 종이 주인의 며느릿감을 고르는 과정에서 ‘안식’이라는 주제가 돋보입니다.
노구를 이끌고 긴 여행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당장 사람과 짐승이 마실 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일까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바로 그 물을 주는 사람이 내 주인의 며느릿감이라 정해버립니다.
내가 마실 물을 좀 달라고 부탁하면, 자원해서 낙타에게까지 물을 베풀 자비로운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둘째, 리브가를 만나 아내로 맞아들이고 사랑하게 된 이삭이 “위로를 받았다”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물을 나누어줌으로써 이삭과 이어지게 된 리브가!
그러고 보니 이삭은 물과 연관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삭, 우물을 파는 영성”이라는 글에 자세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정광일. 가락재 골짜기에 담긴 영성, 27 『성실문화』79호, 112-115쪽)
[시편본문 (시편 45:10-17)]
오늘 시편본문은 오늘 구약본문의 주제인 ‘이삭의 혼인’에 대한 응답찬송으로 안성맞춤입니다.
새번역 표제에 ‘왕실혼인잔치를 위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전반부는 임금님을 돋보이게 하는 노래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후반부(9-15절)는 왕후님을 돋보이게 하는 노래입니다.
16절은 (임금님과 왕후님이 낳은) 왕자들을 축복하는 노래입니다.
마지막 17절은, 사람들이 임금님 이름을 대대로 기억하고, 길이길이 찬양하리라는 내용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에서 전체 주제에 따라 눈에 띄는 구절은, “왕후님의 겨레와 아버지의 집을 잊으십시오.”입니다.
육에 속한 세상일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몰두할 때, 교회는 명실상부한 주님의 신부가 되는 법입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오늘 시편본문 식으로 말하자면, 왕후님이 겨레와 아버지의 집을 잊지 못하는 꼴입니다.
그래서 끊임없는 갈등과 불편, 그리고 고통을 짊어지고 살게 됩니다.
오늘 서신서는 우리의 이런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서신서본문 (로마서 7:15-25a)]
(15)“내가 하는 일”,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
(16)“그런 일”
(17)“그와 같은 일”
(19)“원하지 않는 악한 일”
(20)“해서는 안 되는 것”
오늘 바울 사도는 이상과 같은 언급 끝에, 내 육신 속에 죄가, 악이 붙어 있다고 토로합니다.(21,23,24)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22) 내 몸 속에 있는 죄의 법이(23, 공동번역) 그 즐거움을 금세 고통으로 바꿉니다.
이런 악순환 가운데 터져 나오는 탄식입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주겠습니까?”(24)
물론 예수님이 열쇠입니다.(25)
육신에 속한 세상일은 잊고, 예수님만 바라볼 때 나는 건져집니다.
해방됩니다.
비로소 쉼을 얻게 됩니다.
[복음서본문 (마태복음 11:16-19, 25-30)]
오늘 복음서본문의 전반부는 예수님께서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비유로 보여주시는 장면입니다.
장터의 아이들이 ‘혼례식 놀이’와 ‘장례식 놀이’를 놓고 이러쿵저러쿵하는 모습으로 설명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의 금욕적인 삶과 예수님의 자유로우신 삶 모두 미워하는 사람들!
아마 저들에게 요한과 예수 모두 눈엣가시 같았나봅니다.
율법에 매여 사는 사람의 전형입니다.
율법의 알맹이를 놓치고 살고 있기 때문에, 껍데기에 매여 제 신명 다 죽이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진리에 가까운 삶, 아니 진리 자체를 만나도 거기서 진리의 향기를 맡을 후각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율법의 알맹이, 사랑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특히 약자를 향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약자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폭발적으로 발현한 저 출애굽 체험과 십계명의 알맹이를 새까맣게 잊은 것입니다.
본문 하반부인 25절 이하의 예수님 말씀은, 바로 이 점을 정확히 짚고 있습니다.
25절의 “어린아이들”이란 약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보입니다.(독일성서공회판 해설 참조)
25절 끝의 “감사합니다”, 그리고 26절 말씀은, 예수님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입니다.
약자를 향한 마음!
역시 부전자전(父傳子傳)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의 알맹이는 28-30절 말씀입니다.
<“수고”와 “무거운 짐”>이란, 오늘 서신서본문의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포로가 되어가는, 오늘 복음서본문의 장터에 앉아 구시렁거리는 아이들 같은, 이 세대의 멍에, 육욕의 멍에들입니다.
독일성서공회판 해설은, 28절 끝과 29절 끝의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는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는 뜻을 넘어, 전인적인 구원을 얻는다는 뜻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나 주가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일렀다. 가던 길을 멈추어서 살펴보고, 옛길이 어딘지, 가장 좋은 길이 어딘지 물어 보고, 그 길로 가라고 하였다.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평안히 쉴 곳을 찾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도 너희는 여전히 그 길로는 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예레미야 6:16)
[정리]
맥추감사주일은 올해 절반을 마무리하며 반성하고 감사하는 날입니다.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발자취들이 어지럽지나 않았는지 돌아보는 날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세상 일, 세상 자랑, 세상 욕심에 빠져들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는 날입니다.
영의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온갖 육욕의 멍에를 내려놓고 예수님의 멍에를 메는 날입니다.
율법의 알맹이, 말씀의 알맹이를 놓치고 껍데기만 붙들고 씨름하는,
그리하여 시나브로 비대해진 교회,
당뇨와 동맥경화 직전까지 온 교회의 멍에를 내려놓고,
교회 안에 안주하려고만 하는 안일하고 무미건조해진 신앙생활의 멍에를 다 내려놓고
주님처럼 겸손하고, 바람처럼 개혁해갈 수 있는 예수님의 자유로운 멍에를 메는 날입니다.
거기 참 안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 유두(流頭, 2014. 7. 11. 금, 음력 6/15)
이번 주 금요일은 유두(流頭)입니다.
옛 어른들, 특히 농사짓는 어른들이 아무리 바빠도 쉬기로 약속한 날입니다.
여름휴가 같은 날, 안식일 같은 날입니다.
유두는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의 줄임말입니다.
동쪽에서 흘러오는 냇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뜻입니다.
물론 머리만 감는 게 아니라, 정신없이 일하느라 온통 소금 땀에 절은 온 몸을 씻습니다.
두레꾼들에게 가장 힘든 여름농사 (논 김매기) 중에 잠시 쉬는 날입니다.
일의 관성 때문에 자칫 몸이 축나는 걸 막기 위해 쉬기로 약속한 날입니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그날은 단체로 쉬면서 냇가에 가서 몸도 씻고, 머리를 식힙니다.
천렵을 하며 영양보충도 하면서 앞으로 남은 농사일도 머리를 맞대고 함께 궁리하고 정리합니다.
맥추감사주일과 잘 통하는 음력명절, 일하는 농부님들의 지혜가 담긴 유두날이 코앞입니다.
맥추감사주일과 유두를 연달아 맞이하는 교회는 지금 어떠합니까?
머리 한번 감고 몸이 잠깐 쉰다고 해서 진정한 자유, 진정한 해방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까지 두고두고 쉴 수 있어야 참 안식, 참 해방, 참 감사가 나오는 법입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참 안식을 누릴 수 있으려면, 세상일, 세상자랑을 점점 줄이고 천국일, 천국자랑을 늘여가야 합니다.
천국일, 천국자랑이 무엇입니까?
바로 나보다 더 약한 자에게 위로와 힘이 되어주고 그분들을 높이는 일, 바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일, 그게 천국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내 가까이 다가오는 약한 자들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내 행복의 열쇠, 참 안식의 열쇠,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문득, 몇 달 째 몸도 맘도 쉬지 못하고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우리 이웃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거기서 함께 못 쉬면서, 더불어 슬픔을 나누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떠오릅니다.
[말씀동시] 하나님을 바라봐! (김윤서 지음. 명암교회학교 5학년. 『성실문화』 79호)
지금도 하나님께선
우리를 부르고 계셔
하나님을 바라봐!
우리가 반응해야
하나님도 기뻐하실거야
하나님을 바라봐!
[말씀시조] 마태복음 11:16-19, 25-30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79호)
인자의 피리소리 들을귀 있는자여
인생짐 내려놓고 내멍에를 짊어져라
내멍에 짊어지는자 내가친히 업으리
[말씀서예] 시편 45:11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 79호)
[말씀노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주원남 지음. 『성실문화』 79호)
[본문] (마태복음 11:16-19, 25-30)
[노랫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다 내게로 오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해설]
본문의 말씀 중 28-30절의 내용을 곡으로 만들었다.
[악보] (높은소리 주원남 지음, 2014년 4월 14일)
[시편송서] 시편 45:10-17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79호)
* 전래 자장가(천자문 독송)풍으로
10. 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11.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12. 두로의 딸은 예물을 드리고 백성 중 부한 자도 네 얼굴 보기를 원하리로다
13. 왕-의 딸-은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니--,
그-의 옷-은 금으-로--, (금으로 금으로) 수 놓았도다-∼
14. 수 놓은 옷을 입은 그는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며 시종하는 친구 처녀들도 왕께로 이끌려 갈 것이라
15. 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함을 받고 왕궁에 들어가리로다
16. 왕--의-- 아들-들은-, 왕-의 조상((들))을 계승할 것이라,
왕--이-- 그들-로--, 온 세계((의)) 군왕을 삼으리로다-∼
[다함께]
17.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영원히) 찬송하리∼로∿다∼∥
[말씀동화] 두목님 욕하는 날 ?
“동류수 두목욕∼, 동류수 두목욕∼
동류수 두목욕∼, 동류수 두목욕∼♬”
[새야새야 가락에 맞추어]
뭐지?
저건 또 무슨 소리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로 노래를 부르시는 선생님을 아이들이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우리교회 학생부 선생님은 가끔 저렇게 이상한 노래를 부르곤 하십니다.
선생님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은 각양각색입니다.
시냇가의 조약돌처럼 요모조모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도 있고,
소 닭 보듯, 게으른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음메∼’
무슨 마법사의 주문 같은 저 이상한 말은 되게 낯설지만, 그래도 가락은 익숙하죠?
우리 선생님은 늘 몇 개 안 되는 단순한 민요가락에 얹어 읊조리시기 때문에
우리는 저게 새야새야 가락이라는 것쯤은 이젠 금세 다 압니다.
“동류수 두목욕∼, 동류수 두목욕∼
동류수 두목욕∼, 동류수 두목욕∼♬”
“선생님, 오늘은 무슨 상이 걸렸어요?”
까만 눈동자를 한여름 조약돌처럼 반짝이던 소현이가 궁금해 못 참겠다는 듯 불쑥 질문을 합니다.
저 정도로 이상망통한 주문이라면 분명히 상당한 상품이 걸린 퀴즈가 틀림없거든요.
우리 선생님은 잊을만하면 이렇게 근질근질한 퀴즈에 아기자기한 상품을 내거시곤 하죠.
소현이의 질문에 게슴츠레하던 아이들의 눈동자도 송아지 눈만큼이나 커집니다.
“짜잔∼, 오늘 상품은 바로 이거, 합죽선이다. 바야흐로 한여름 아니냐? 여름엔 피서, 피서엔 부채, 부채 중의 부채, 여름엔 역시 합죽선이 최고지! 이 합죽선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삼국지 제갈공명의 부채, 학우선이 울고 갈 천하의 합죽선! 전라북도 전주의 부채명장 이기동선생님의 작품이란 말이다!! 대나무와 종이가 혼인하여 자식을 낳으니 그 이름 맑은 바람, 이 아니 좋을쏘냐?”
오늘따라 우리 선생님이 좀 흥분하신 것 같죠?
부채라고 해서 시큰둥하던 아이들도, 지하철 장사꾼 뺨치는 선생님의 선전에 한 번 더 쳐다봅니다.
선생님이 합죽선을 ‘촤락∼’ 하고 펼치시자, 아이들은 모두 ‘우와∼’ 감탄합니다.
선생님은 흐뭇한 미소로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시며 살랑살랑 부채질을 하십니다.
게슴츠레하던 눈동자들도 모두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하네요?
“난 저런 거 별로지만, 우리 엄마아빠 갖다 드리면 되게 좋아하시겠는 걸?”
“그러게, 저거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데?”
빙글거리던 영구도 군침을 꿀꺽 삼킵니다.
너도나도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기 시작하네요?
“동류수 두목욕? 이게 대체 뭘까? 동류수? 혹시 증류수를 잘못 들은 건가? 증류수에 우리 모두 목욕하자 뭐 그런 건가?”
“증류수가 아니라, 동류수라는 사람도 목욕한다 뭐 그런 말 아닌가?”
“아냐 아냐, 동류수라는 녀석이 우리 두목한테 욕을 한다는 뜻이야, 동류수 네 이놈∼!”
아이들의 천방지축 기발한 상상력에 선생님이 껄껄 한바탕 웃으십니다.
“이 녀석들, 과연 너희들의 무식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짓궂은 표정으로 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이란 글자 그대로 동쪽에서 흘러오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뜻이란다. 동쪽은 해뜨는 쪽이니까 양기가 충천한, 즉 ‘동류수’란 아주 생기발랄한 물이겠지? 그 물에 머리를 감으며 정신 번쩍 들게 한다는 뜻이야.”
“그런데 선생님, 왜 갑자기 머리를 감는 이야기가 나온 거죠?”
우리 교회 학생회에서 가장 머리에 신경을 많이 쓰고 매일매일 머리 감느라 애쓰는 선구가 질문합니다.
“좋은 질문이다. 지금 너무 더워서 정신없이 일하다보면 몸이 상할 수 있으니까 머리 감고 목욕하면서 좀 쉬자는 거다. 냇가에 가서 물고기도 잡고 매운탕도 끓여 먹고 그러거든!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건, 너무 정신없이 일하다보면 자칫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으니까, 정신 차리고 뒤도 돌아다보고, 앞도 내다보면서 일을 제대로 조정하자는 뜻도 있어!”
“그런데 왜 갑자기 동쪽 물에 머리감는 걸 이야기하시는 거죠? 그리고 동류수두목욕이라는 어려운 말은 선생님께서 만드신 말인가요?”
나리의 예리한 질문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십니다.
“아차, 내 정신 좀 봐라. 바로 오는 금요일이 유두(流頭)날이거든. 유두는 해마다 음력 6월 15일 날인데, 그 유두라는 이름이 바로 ‘동류수두목욕’이라는 옛말을 줄여서 만든 이름이란다. 유(流).두(頭), 흐르는 물에 머리 감는다는 뜻이지, 우물물이나 수돗물에 머리 감는 게 아니라, 흐르는 물, 즉 모두 함께 냇가로 나가서, 무슨 의식을 치르듯이, 한바탕 머리도 감고 멱도 감고, 천렵해서 매운탕 끓여먹고 쉬는 날이 바로 유두야.”
“그럼 왜 음력 6월 15일을 유두날로 잡은 거죠?”
조용히 있던 영원이도 또 한 번 예리한 질문을 합니다.
“매우 좋은 질문이다. 음력 6월 15일경은 우리 농부님들에게 있어서 한여름 농사철 중에서 가장 힘들 때였단다. 아무리 천천히 농사를 지어도, 한여름에 세 차례는 김을 매줘야 하는데, 물이 가득한 논에 들어가 뙤약볕 아래서 엉거주춤 자세로 잡초를 뽑아주는 일은 아주 고된 일이었겠지? 바로 한 달 뒤인 음력 7월 15일은 백중날로서, 마지막 김매기를 하는 날이니까 아무리 더워도 신나는 날이었을 거야. 즉 백중 때까지 체력이 버틸 수 있으려면, 봄부터 정신없이 달려온 농사일을 잠깐이라도 멈추고 쉬면서 몸과 마음을 추슬러야 하였던 거지. 그래서 해마다 유두날에는 아무리 일이 바빠도 모두 함께 쉬며 이렇게 냇가로 가서 씻고 영양보충도 하기로 약속한 거란다.”
“선생님, 그러고 보니까요, 오늘이 바로 맥추감사주일인데, 유두날 뜻하고 좀 통하는 것 같은데요? 한해의 절반이 끝나고 다시 절반을 시작하는 주일이 바로 맥추감사주일이잖아요? 지난 주 목사님 광고말씀처럼, 지난 6개월 동안 잘 지내왔는지 돌아보면서 반성도 하고 감사하는 날인데, 그게 유두날 정한 이유하고 좀 통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중3 혜원이가 느릿느릿 발언을 합니다.
선생님 눈이 보름달처럼 둥그레지십니다.
“옳거니, 우리 혜원이가 제대로 짚는구나. 맥추감사절도 그렇고 유두날 머리감는 것도 그렇고, 우리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하나 찾아볼까?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는 한 여름철에 모든 걸 잠깐 멈추고 지나온 발자국도 돌아보고 우리 주변도 돌아보자 이거 아니냐? 그런데 단옷날처럼 창포물에 머리감는 것이 아니라, 동쪽에서 흘러오는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 게 어째 남다르지 않니?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우리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에 머리를 감고 제정신 차리는 거, 바로 그거 아니겠어? 즉 가던 길 멈추고 다시 말씀을 열고 그 말씀의 강물에 머리를 담그고, 내 마음을 담그고, 그래서, 지금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던 내 삶이 다시 하나님을 향하게 방향을 돌이키는, 우리 이걸 회개라고 하잖아? 이 회개의 기회가 바로 오늘 맥추감사주일이고, 우리 유두날의 교훈과 통한다 이거겠지.”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선생님 말씀을 경청합니다.
우리 조상님들의 슬기로운 전통인 유두의 의미도 알게 되고 맥추감사절의 의미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오늘 본문말씀 다들 읽어왔지? 복음서 마태복음 11장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 28.‘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참 멋진 말씀이지?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멍에’라는 것은 수레나 쟁기를 끌기 위해 말이나 소의 목에 메는 구부러진 나무로 만든 도구인데, 예수님께서 왜 노동의 상징인 이 멍에라는 비유를 드셨을까? 오늘 예수님께서 드신 멍에의 비유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단다. 하나는, 마치 유두날처럼, 고된 일상의 노동을 벗어버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 당시 무거운 멍에와 같은 율법주의를 벗어버리는 것을 가리킨단다. 이 무거운 멍에를 다 벗어버리고, 예수님께서 새로 풀어주시는 말씀, 그 바람처럼 자유롭고, 구름처럼 가벼운 말씀,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의 말씀을 나의 새 멍에로 짊어질 때 비로소 우리 인생은 완전한 쉼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지. 지옥과 같은 우리 인생이 완전히 천국삶으로 변화된다는 말씀이야!”
아이들의 눈이 조금씩 빛을 잃기 시작하네요?
시냇가 조약돌처럼 반짝이던 눈빛이 밤안개처럼 점점 게슴츠레해져 갑니다.
선생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얘들아. 너희 오늘 퀴즈 상품도 못 탔는데, 어때, 다시 한 번 도전해 보지 않을래?”
퀴즈 상품이라는 말에 아이들 눈이 다시 번쩍 열립니다.
“우리 이번엔 퀴즈 말고, 즉흥극, 역할극 한번 해보는 게 어떨까? 병원에 가면 사이코드라마라는 게 있단다. 의사선생님, 간호사선생님하고 환자들이 함께 즉석에서 연기하는 심리치료극 비슷한 건데, 각자 맡겨진 역할에 충실하다보면 어느새 환자들은 스르르 마음 문이 열리기도 하고, 선생님들은 환자들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해서 치료의 실마리를 얻게 되곤 하지.
사실 지금 우린 모두 어떤 의미에서 환자란다. 최근 세월호 사건이랑 동부전선 총기난사 사건을 보면서 우리 온 국민이 큰 상처를 입었잖아. 4대강 사업의 후유증으로 온 나라 강물이 썩어가는 건 또 어떻고? 그래서 정부 관리들이 하는 모든 일들에 대해 온 국민적인 불신이 점점 쌓여가고 있지 않니? 군부대나 경찰과 검찰, 그리고 모든 공무원들 가운데서도 양심적이고 성실한 분들이 있을 텐데, 어느새 우린 우리나라 정부와 국회, 모든 행정기관들이 100% 썩어빠졌다고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 또한 큰 병이지. 어디 그뿐이겠니? 지금 너희 모습을 한번 돌아보렴. 정치하는 사람들 못지않게, 학교에서, 집에서 내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하는 바람에 형과 아우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고, 나보다 약한 자를 무시하고 멸시하는 일은 없을까? 지금 내 생활방식, 공부습관, 내 몸 관리에도 큰 문제가 있을 지도 모르지. 그런데 우리는 그 작은 것 하나 포기하지 못하고, 돌이키지 못하며 살고 있잖아? 우리가 손가락질하고 욕하는 저 게으르고 부패한 이 나라 책임자들 모습하고 하나도 다를 게 없거든! 어떡하지?
그래서 선생님이 제안하는 거야.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오늘 말씀 받은 김에, 때마침 맥추감사주일이고 유두날도 코앞인 김에, 우리 지금 짊어지고 있는 너무 무겁고 잘못된 길 가게 만드는 한쪽으로 기우뚱한 멍에를 벗어버리고 예수님의 새 멍에를 멜 수 있도록, 내 안의 무거운 멍에, 비뚤어진 멍에를 하나하나 드러내게 만드는 역할극을 한번 해보는 게 어떨까? 오늘 복음서 말씀에 나오는 아이들의 혼례식놀이랑 장례식놀이처럼 말이다.”
아이들의 눈빛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합니다.
시냇가 조약돌처럼 반짝입니다.
펄떡펄떡 힘차게 헤엄치는 붕어의 비늘처럼 반짝거립니다.
우리 영구가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들며 제안하네요.
“선생님, 먼저 혼례식놀이가 어떨까요? 제가 이삭을 한번 맡아보겠습니다.”
“영구 오빠가 이삭 맡으면, 아무도 리브가 안 할걸?”
소현이가 영구를 째려보며 놀려댑니다.
“그럼 내가 플롯을 불테니 소현이 넌 춤춰봐, 요새 아빠한테 배우는 강령탈춤 한번 춰보시던가?”
“선생님, 혼례식놀이 말고, 농사놀이가 어떨까요? 유두날 모두 농사 쉬면서 황소 목에 걸어놓은 무겁고 비뚤어진 멍에도 풀어서 가벼운 걸로 바꿔주고요. 그런데 유두날엔 황소도 머리 감는 건가요?”
“야야, 유두날엔 머리감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류수 두목욕’, 두목님 욕하는 날이잖아. 내가 욕하는 역할 맡아볼게. 그건 내가 좀 잘할 것 같아. 느낌 알잖아!”
이러쿵저러쿵, 쿵더쿵 쿵더쿵, 방아 찧는 소리처럼 신나는 아이들의 재담에 선생님이 빙그레 웃으십니다.
오늘 역할극으로 우리 아이들의 무거운 멍에가 금세 가벼워질 것만 같아서 선생님 마음이 점점 행복해집니다.
[이정훈 지음. 2014년 7월 6일 주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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