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떠나가셨다”(누가복음 4:30)
[성서일과 4본문]
(예레미야서 1:4-10)
4.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5.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도 전에 너를 선택하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거룩하게 구별해서, 뭇 민족에게 보낼 예언자로 세웠다.”
6. 내가 아뢰었다. “아닙니다. 주 나의 하나님, 저는 말을 잘 할 줄 모릅니다. 저는 아직 너무나 어립니다.”
7. 그러나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직 너무나 어리다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그에게로 가고, 내가 너에게 무슨 명을 내리든지 너는 그대로 말하여라.
8. 너는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9. 그런 다음에, 주님께서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고,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맡긴다.
10. 똑똑히 보아라. 오늘 내가 뭇 민족과 나라들 위에 너를 세우고, 네가 그것들을 뽑으며 허물며, 멸망시키며 파괴하며, 세우며 심게 하였다.”
(시편 71:1-6)
1. 주님, 내가 주님께로 피합니다. 보호하여 주시고, 수치를 당하는 일이 없게 해주십시오.
2. 주님은 의로우시니, 나를 도우시고, 건져 주십시오. 나에게로 귀를 기울이시고,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3. 주님은 나의 반석, 나의 요새이시니, 주님은, 내가 어느 때나 찾아가서 숨을 반석이 되어 주시고, 나를 구원하는 견고한 요새가 되어 주십시오.
4. 나의 하나님, 나를 악한 사람에게서 건져 주시고, 나를 잔인한 폭력배의 손에서 건져 주십시오.
5. 주님, 주님 밖에는, 나에게 희망이 없습니다. 주님, 어려서부터 나는 주님만을 믿어 왔습니다.
6. 나는 태어날 때부터 주님을 의지하였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에 나를 받아 주신 분도 바로 주님이셨기에 내가 늘 주님을 찬양합니다.
(고린도전서 13:1-13)
1. 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3. 내가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내가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
4.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8.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언도 사라지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집니다.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10.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인 것은 사라집니다.
11. 내가 어릴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12.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누가복음 4:21-30)
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
22.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 은혜로운 말씀에 놀라서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3.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내게다 끌어대면서, ‘우리가 들은 대로 당신이 가버나움에서 했다는 모든 일을, 여기 당신의 고향에서도 해보시오’ 하고 말하려고 한다.”
24.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무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 시대에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서 온 땅에 기근이 심했을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들이 많이 있었지만,
26. 하나님이 엘리야를 그 많은 과부 가운데서 다른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으시고, 오직 시돈에 있는 사렙다 마을의 한 과부에게만 보내셨다.
27. 또 예언자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 나병환자가 많이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서 아무도 고침을 받지 못하고, 오직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이 고침을 받았다.”
28.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서, 모두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를 동네 밖으로 내쫓았다. 그들의 동네가 산 위에 있으므로, 그들은 예수를 산벼랑까지 끌고 가서, 거기에서 밀쳐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떠나가셨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진실에 귀를 닫은 세상에서’입니다.
구약, “너는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주겠다”(예레미야서 1:8)
시편, “주님, 주님밖에는, 나에게 희망이 없습니다”(시편 71:5)
서신서,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고린도전서 13:6)
복음서,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서, 모두 화가 잔뜩 났다”(누가복음 4:28)
오늘 요절은,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떠나가셨다”입니다.(누가복음 4:30)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예레미야서 1:4-10, 시편 71:1-6)]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예레미야의 소명’입니다.
예레미야는 제사장 가문 출신 예언자입니다.
예수님처럼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오직 백성의 구원을 위해 애쓰다
백성 가운데서 고난당한 ‘눈물의 예언자’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언자 소명기사인데, 이사야, 에스겔의 그것과 비슷하나,
차이점은 예레미야는 예언자가 되지 않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언자에게 있어서 어리고 말솜씨 부족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몸소 도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어린 예레미야는 마침내 유대를 넘어
여러 나라 여러 백성의 예언자, 큰 예언자가 될 것입니다.(10)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하나님의 보호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오늘 시편은 구약본문의 응답찬송으로서 안성맞춤입니다.
마치 오늘 시인은
예레미야가 예언자로서 겪는 첫 고통(두려움)을 고스란히 느끼며
하나님의 든든한 보호하심을 탄원하는 듯합니다.
특히 구약 5절과 시편 6절이 짝을 이룹니다.
마치 구약 5절이 시편 6절로 이어지는 연속극 같습니다.
그리고 마치 시편 1절(시편본문 전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구약 8절로 대답하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고린도전서 13:1-13, 누가복음 4:21-30)]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12장 끝 절의 이음새로 보아 ‘더 큰 은사’로도 보이지만,
실은 사랑을 은사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사랑은 모든 은사들이 은사되게 하는 기초요 결정적인 기준이며,
하나님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2)
사랑이 없을 때, 즉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을 때
예언자도 이미 예언자가 아닌 것입니다.(2)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나사렛에서 배척을 받으시다’입니다.
나사렛 회당 회중은 예수님 말씀선포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럼에도 이어지는 그들의 반응은 부정적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에서(24-27)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범위가 이스라엘을 넘으실 것임이 드러납니다.
이에 분노한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해치려하는 모습에서
장차 다가올 예수님의 수난이 느껴지고
심지어 그 고난의 현장에서 “그들의 한 가운데를 지나서 떠나가”시는(30) 장면은
마치 예수님의 부활의 신비를 미리 보는 것만 같습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정리]
주현절기 한가운데서 오늘 우리가 읽은 성서일과 말씀은
험난한 예언자의 길을 보여주십니다.
특히 복음서본문의 끝 구절은 일촉즉발 위기일발의 상황에서도
거침없으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예언자의 기개를 봅니다.
진실에 귀를 닫은 세상에서 예언자의 길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들려주는 것은 예언자가 아니라고
오늘 고향사람들에게 살해위협까지 당하심에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예언자의 길을 보여주십니다.
불의한 독재자의 귀에 듣고 싶어 하는 말만 전하는 목사는 예언자가 아닙니다.
광복 이후 한국의 대통령들에게 듣고 싶어 하는 말만 전하는 목사가 늘어만 갑니다.
분단마귀에게 먹힌 대중, 분단마귀에게 먹힌 교인들을 위해서
진실을 외칠 예언자는 줄어만 갑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떠나가셨다”(누가복음 4:30)
고향사람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떠나가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문득 주님의 몸 교회를 떠나가버리시는 예수님을 느끼며 소스라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두 손 모아 기도할 때입니다.
“어불성설입니다 주님! 어떻게 주님이 주님의 몸을 떠나십니까?”
한국교회, 개신교 교세의 하강곡선 각도가 급격해지고 있습니다.
아합 왕을 죽이려고 결심하신 주님께서
예언자들의 입에 거짓말 하는 영을 집어넣으시던 장면이 떠오릅니다.(왕상22:19-23)
탐욕스런 왕, 우상에 눈먼 왕과 함께 몰락하는 거짓 예언자들이 떠오릅니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맡긴다”(예레미야서1:9)
그럼에도 오늘 하나님께서는 다시 우리에게 말씀을 맡기십니다.
그 거룩한 말씀, 진리의 말씀, 사랑의 말씀이 한국교회의 입에 담깁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진리의 영을 불어넣어주시기를
그래서 우리가 다시 예언자의 기개(氣槪)를 되찾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나머지]
* 예수님과 예레미야
예수님처럼 예레미야는 독신입니다.(렘16:1-4) 오늘 예수님처럼,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 때문에 고향사람들이 살해하려 합니다.(렘11:21) 예수님처럼 성전 무너질 것 예언하다가 살해 위협을 받습니다.(렘26:8-9) 그래서 예레미야는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괴로워하며 그 잔을 피하려 합니다.(렘20:7∼)
** 예언자의 길
예레미야는 스스로 말을 잘 못하고 어리다면서 예언자 되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예레미야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자는 인간의 말을 유창하게 잘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고스란히 전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 내가 너에게 무슨 명을 내리든지 너는 그대로 말하여라”(7) 예레미야는 제사장 가문 출신입니다. 제사장이 되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불안정한 삶의 대명사인 예언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유다가 한창 어려웠던 그 시절에 오랜 세월 예언자 노릇을 합니다. ‘눈물의 예언자’라는 별명처럼 매우 고단한 인생을 삽니다. 그럼에도 예레미야가 끝까지 이 힘든 예언자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말씀에 담긴 하나님 사랑의 기운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너는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8)
*** 예언자의 길, 사랑
모든 은사는 사랑에 기초할 때 은사(은총의 선물)로서 목적을 다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서신서본문에 열거된 사랑에 대한 수많은 기준들에 비추어(4-7) 그 중 하나라도 자신 있는 것을 나는 찾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내가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자녀라면, 그 사랑의 씨앗이 분명히 내 안에 어딘가 숨어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8)라는 말씀이 강렬한 희망을 일으킵니다. 고린도교회는 물론이고, 나날이 추락중인 한국교회를 향하신 귀한 선물, ‘하나님 사랑’의 기억을 활활 불러일으키는 말씀입니다.
**** 예언자의 기운이 꺾인 세상에서, 사랑 - 예언자의 자존심, 예언자의 기개
오늘 복음서본문은 예수님 공생애 첫 수난의 기록입니다. 주현절 기간에 읽는 복음서 말씀 가운데 예수님의 주현 후 첫 시련인 것입니다. 홀대받는 것은 물론 살해위협까지 당하십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예언자의 자존심을 보이십니다. 거침없이 말씀하시고,(23-27) 거침없이 난관을 뚫고 갈 길을 가십니다.(30) 마치 주님께서 오늘 예레미야에게 약속하신 “보호”의 말씀이 예수님께 고스란히 임한듯합니다.(렘1:8) 그러고 보니 오늘 구약본문의 주인공은 구약에서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예언자,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입니다. 그런데 마치 모세가 부르심을 거부했듯이(출3:11, 4:10,13) 예레미야도 두려워서 예언자의 길을 거부합니다.(6)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그리하셨듯이(출3:12) 예레미야에게도 주님께서 친히 동행하실 것을, 보호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8) 그렇습니다. 예언자는 주님의 동행, 주님의 보호 없이 예언자일 수 없습니다. 오늘 서신서본문은 주님의 동행을 사랑으로 묘사합니다. “예언하는 능력”조차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2) 예언자의 기운이 꺾인 오늘 한국교회는 오늘 예수님과 예레미야와 달리 예언자의 고통조차 못 느낍니다. 고린도교회의 분열상이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는 한국교회에,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다는 것은, 지금 주님이 나와 동행하지 않으시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사랑 없이 어떻게 예언, 주님 말씀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한국교회는 주님의 보호를, 주님의 밀착보호, 그 사랑을 구할 때입니다. 예언자의 자존심과 예언자의 기개가 사라진 한국교회는 오늘 첫 단추를 다시 꿰는 자세로,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 사랑을 놓쳐버리기 직전, 주님의 손을 놓아버리기 직전, 바로 그 때 그 자리로 되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 예언자가 모든 난관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이유
주현절 4주에 우리가 받은 본문말씀들에서 예언자와 하나님의 관계를 봅니다. 예언자와 그를 보내시는 하나님의 끈끈한 관계! 본문 곳곳에 예언자의 두려운 마음이 가득하고 그를 위로하고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이 스미고 있습니다. 교회는 매주일 예배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파송합니다. 교회의 모든 지체는 그러므로 말씀 받고 파송 받는 예언자(預言者)입니다.(預 맡길 예, 미리 예) 오늘 서신서본문은 그러므로 예언자란, 말씀을 맡은 자인 동시에 말씀에 담긴 사랑을 맡은 자임을 암시합니다. 이 사실, 이 사명을 깨친 예언자는, 고향 나사렛에서 큰 모욕을 견디신 예수님처럼 이로써 장차 받으실 수난과 부활을 예감하신 예수님처럼 말씀으로 사랑으로 모든 난관을 견디며 그 난관을 뚫고 나갑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딥니다.”(고린도전서13:7)
(※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몽당연필 (이소현 지음. 성실교회 청년부. 「성실문화」 121호)
“나를 선택해줘!”
하늘에서 내려올 거대한 손을 기다리며
하나같이 입을 모아 외친다
얼마 전 선물 받은 새 만년필도
알록달록 예쁜 무늬가 새겨진 색연필도
전문가용 고급 4B 연필도
조잘조잘 떠들어대기 바쁘다
어두운 필통 한 구석
닳고 닳아 작아진 몽당연필만이 말없이 기다린다
몽당연필은 알고 있다
그 손의 주인을 알고 있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을 알고 있다
긴 시간 나를 쥐고 선을 그으며 흘린 땀을 기억한다
언젠가 다시 그 따뜻한 손에 안겨
즐거운 그림을 그릴 것을 믿고 있다.
[시편시조] 시편 71, 태어나 지금까지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21호)
태어나 지금까지 주님만 나의 희망
주님은 나의 반석 견고한 요샙니다
악한 자 손아귀에서 나를 건져주시길
[시편노래] 시편 71, 주여 내가 주님께로 피하나이다 (이정훈 편사, 박승원 작곡. 「성실문화」 121호)
[본문] (시편 71:1-6)
[노랫말]
1.주여 내가 주님께로 피하나이다, 수치를 당치 않게 보호하소서
의로우신 내 주여 날 건지소서, 나에게 귀 기울여 날 구하소서
2.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의 하나님, 언제나 어디서나 날 지키실 분
내가 숨을 반석이 되어주소서, 견고한 요새가 되어주소서
3.오 나의 하나님 날 구하소서, 악한 자의 손에서 건져주소서
잔인한 폭력배가 달려들 때에, 오 주여 주님만이 희망입니다
4.태어날 때부터 의지하오니, 저는 어릴 때부터 주님만 믿으니
모태에서 나올 때에 날 받으신 주여, 언제나 주님만을 찬양합니다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월드뮤직그룹 ‘공명’ 단원이신 작곡가 박승원 선생이 지은 ‘시편 17, 정직한 사람의 기도’(성실문화 115호) 가락에 붙였다.
[악보] 시편 71 (주여 내가 주님께로 피하나이다) (이정훈 편사, 박승원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71:1-6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21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주--님-- 내--가--, 주님께로-- 피합-니다-,
보호하여-- 주시-고--, 수치를 당하는 일-이 없-게- 해주 십시오---∼
2. 주님은 의로우시니, 나를 도우시고, 건져 주십시오. 나에게로 귀를 기울이시고,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3. 주님-은-- 나의- 반석-, 나-의 요새-이시-니--,
주님은 내-가 어느 때-나- 찾아가-서-, 숨-을 반석이 되어 주-시-고--∼
나를 구원하는 견고한 요새가 되어 주십시오.
4. 나의 하나님, 나를 악한 사람에게서 건져 주시고, 나를 잔인한 폭력배의 손에서 건져 주십시오.
5. 주--님-- 주-님 밖에는, 나에게 희망이 없-습니다-,
주--님-- 어려서-부터 나는-, 주님만을-- 믿-어- 왔습니다-∼
[다함께]
6. 나--는-- 태어날 때부터, 주님-을-- 의-지-하였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에-, 나-를 받아- 주신- 분도-∼
바--로-- 주님이셨기에, 내가- 늘-- 주님을 찬양합∼니∿다-∼∥
[말씀동화] 우리의 노래가 이 잠든 땅에 북소리처럼 울려날 수 있다면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달랑 소구 하나 들고서 어깨춤 추며 풍물패 뒤따르던 시절 이야기예요.
“땅도 땅도 내 땅이다, 조선 땅도 내 땅이다
내 땅이다 내 땅이다, 백두산 땅도 내 땅이다∼”
[일제강점기 풍물패 장단노래 앞부분, 자진모리 삼채장단]
풍물패를 이끄는 상쇠가 선창하면 모두 따라 부릅니다.
풍물패뿐 아니라 깡충깡충 춤추며 뒤따르는 어린이들도 신나게 따라합니다.
대보름이 가까우니 설날부터 시작한 풍물패의 지신밟기가 한창입니다.
이 마을 저 마을 삼천리 방방골골에서 뜰볿이, 마당밟이 천지입니다.
워낙 노래를 좋아하는 조선 사람을 되게 싫어하는 일본 순사들이
칼을 빼들고 입을 막고 노래를 틀어막으려 혈안입니다.
노래는 빛의 속도로 노랫말을 담아 전달하는 최고의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순사들은 불순한 조선독립 사상이 마치 전염병처럼 번진다며 저 난리입니다.
풍물패가 이 노래만 부르면 일본 순사뿐 아니라 중국정부도 가자미눈을 뜨고 부들부들 떱니다.
백두산이 조선 땅이라고 노래하는 것이 못마땅한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욕심꾸러기들이 제일 미워하는 것이 바로
역사적 사실과 진실을 담아 노래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뿔싸! 풍물패를 이끌며 노래하던 상쇠가 일제 순사에게 붙잡혀 갑니다.
사실을 말하고 진실을 노래했는데 손을 묶고 입을 틀어막고 끌고 갑니다.
어두운 가막소로 끌고 갑니다.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절대로 잊지 않을게, 꼭 기억할게 다 기억할게 아무도 외롭지 않게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절대로 잊지 않을게, 꼭 기억할게 다 기억할게 아무도 외롭지 않게
일 년이 가도 십 년이 가도 아니 더 많은 세월 흘러도, 보고픈 얼굴들 그리운 이름들 우리 가슴에 새겨놓을게∼”
[윤민석 지음. ‘잊지 않을게’ 앞부분]
세월호 엄마들이 노래합니다.
일 년이 가고 십 년도 지났지만 엄마들은 계속 노래합니다.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의 귀에 이 노래가 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에 미친 왕 헤롯 군대의 칼날에 숨진 아기들을 기억하며
성탄절 무렵이면 베들레헴 엄마들이 노래합니다.
2024년 성탄절 아침에 피난민 천막에서 숨진 아기 실라 파시를 그리워하며
가자지구 엄마들이 노래합니다.
더 이상 얼어죽지 말고 굶어죽지 말고 총 맞아 죽지 말라고
미사일 폭격에 무너지는 건물에 깔려죽지 말라고, 그리고
이스라엘 군대의 학살 트라우마에 시달려 죽지 말라고
가자지구 엄마들이 목메어 노래합니다.
아뿔싸! 노래하던 엄마들이 이스라엘 욕심꾸러기 군인들에게 붙잡혀갑니다.
역사를 말하고 진실을 노래했는데 손을 묶고 입을 틀어막고 끌고 갑니다.
낭떠러지로 끌고 가 밀어버리려 합니다.
그러나 엄마들은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떠나갑니다.(누가복음4:25-30절 되새김)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따뜻한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
어둠 산천 타오르는 작은 횃불 하나 될 수 있다면
우리의 노래가 이 잠든 땅에, 북소리처럼 울려날 수 있다면
침묵 산천 솟구쳐 오를 큰 함성 하나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네∼”
[백창우 지음.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줌 될 수 있다면’ 앞부분]
한겨울 칼바람에도 노래마을 굴렁쇠 아이들이 노래합니다.
따듯하게 노래하고 신명나게 노래하니 얼어붙은 마음들이 따듯해집니다.
굴렁쇠 아이들의 따듯한 노래에
세월호 엄마들과 베들레헴 엄마들과 가자지구 엄마들의 마음에 힘이 생깁니다.
역사를 기억하며 사실과 진실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
그늘진 땅 햇볕 한줌 되고, 잠든 땅을 북소리처럼 둥둥 깨우니
어둡던 하늘과 땅이 조금씩 밝아지고 따듯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보좌와 네 생물과 그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땅에서 구원을 받은 십사만 사천 명 밖에는, 아무도 그 노래를 배울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거짓말을 찾을 수 없고, 그들에게는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요한계시록14:3,5)
온 하늘이 입을 모아 노래합니다.
탐욕스런 욕심꾸러기 거짓말쟁이들은 절대 부를 수 없다고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진실한 노래는
진실하고 흠 없는 사람들만 부를 수 있는 법이라고!
[이정훈 지음. 2025년 2월 1일 토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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