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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부활절 5주(2024년 4월 28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요한14:7)

 

[성서일과 4본문]

(사도행전 8:26-40)

26.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빌립에게 말하였다. "일어나서 남쪽으로 나아가서,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로 가거라. 그 길은 광야 길이다."

27. 빌립은 일어나서 가다가, 마침 에티오피아 사람 하나를 만났다. 그는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고관으로, 그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내시였다. 그는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 길에 마차에 앉아서 예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다.

29. 성령이 빌립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마차에 바짝 다가서거라."

30. 빌립이 달려가서, 그 사람이 예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을 듣고 "지금 읽으시는 것을 이해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가 대답하기를 "나를 지도하여 주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올라와서 자기 곁에 앉기를 빌립에게 청하였다.

32.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것이었다. "양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과 같이, 새끼 양이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것과 같이,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33. 그는 굴욕을 당하면서, 공평한 재판을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겼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이야기하랴?"

34.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였다. "예언자가 여기서 말한 것은 누구를 두고 한 말입니까? 자기를 두고 한 말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두고 한 말입니까?"

35. 빌립은 입을 열어서, 이 성경 말씀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수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36.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니, 내시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거리낌이 되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37. (없음)

38. 빌립은 마차를 세우게 하고, 내시와 함께 물로 내려가서, 그에게 세례를 주었다.

39.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니, 주님의 영이 빌립을 데리고 갔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었지만, 기쁨에 차서 가던 길을 갔다.

40. 그 뒤에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났다. 그는 돌아다니면서 여러 성에 복음을 전하다가, 마침내 가이사랴에 이르렀다.

 

(시편 22:25-31)

25. 주님께서 하신 이 모든 일을, 회중이 다 모인 자리에서 찬양하겠습니다. 내가 서원한 희생제물을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앞에서 바치겠습니다.

26. 가난한 사람들도 "여러분들의 마음이 늘 유쾌하길 빕니다!" 하면서 축배를 들고,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

27. 땅 끝에 사는 사람들도 생각을 돌이켜 주님께로 돌아올 것이며, 이 세상 모든 민족이 주님을 경배할 것이다.

28. 주권은 주님께 있으며, 주님은 만국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29. 땅 속에서 잠자는 자가 어떻게 주님을 경배하겠는가? 무덤으로 내려가는 자가 어떻게 주님 앞에 무릎 꿇겠는가? 그러나 나는 주님의 능력으로 살겠다.

30. 내 자손이 주님을 섬기고 후세의 자손도 주님이 누구신지 들어 알고,

31.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도 주님께서 하실 일을 말하면서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셨다' 하고 선포할 것이다.

 

(요한일서 4:7-21)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드러났으니, 곧 하나님이 자기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10.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된 것입니다.

13.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14.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그것을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16.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았고, 또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17.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이 점에 있으니, 곧 우리로 하여금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담대해지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대로 또한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기 때문입니다.

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징벌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19.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20.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21.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15:1-8)

1.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내게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잘라버리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손질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그 말로 말미암아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4.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너희도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6.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그는 쓸모없는 가지처럼 버림을 받아서 말라 버린다.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서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어서 내 제자가 되면, 이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그 말씀으로 나는 설레고 나는 변하고입니다.

 

사도행전, 보십시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거리낌이 되는 것이라도 있습니까?”(사도 8:36)

시편, “주님께서 하신 이 모든 일을, 회중이 다 모인 자리에서 찬양하겠습니다”(시편 22:25)

서신서, 우리가 이렇게 담대해지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대로 또한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기 때문입니다”(요일 4:17)

복음서,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그 말로 말미암아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요한 15:3)

 

오늘 요절은,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입니다.(요한14:7)

 

 

[사도행전과 시편본문 정리 (사도행전 8:26-40, 시편 22:25-31)]

오늘 사도행전본문 소제목은 에티오피아 내시입니다.

이름 모를 에티오피아 내시는 초대교회 첫 이방선교 사건의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교회의 계획이나 노력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시작하고 완성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화해(친교)의 범위는 늘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빌립이 들려준 예수 이야기는 내시에게 참 기쁜 소식(복음)입니다.

그 말씀 받은 뒤 내시는 예수와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첫 번째 일,

즉 세례를 받고 싶은 감동이 일어 빌립에게 세례를 청하고 받습니다.

이방 내시가 말씀으로 가슴 설레며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친교를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성령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오늘 시편본문 소제목은 의인의 수난과 영광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에는 하나님과 친교하는 여러 회중의 모습이 가득합니다.(25)

참 깊고 깊은 탄식과 탄원에 이어지는 감사와 감동의 노래가 오늘 시편 22편 본문입니다.

지옥 같은 우리 인생이 어느 순간 천국 삶으로 바뀌는 건,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22:1) 십자가의 피눈물이 부활의 기쁨으로 결실하듯,

오늘 시편 기자는 고난 중 서원한 것을 지키려고 구원의 기쁨으로 감사 제사를 드립니다.

이때 가난한 자들(26), 그리고 이방 내시처럼 먼 곳 사람들(27),

심지어 죽은 자와(29), 미래 세대들까지(30-31) 이 친교에 함께합니다.

말씀을 들은 이들의 놀라운 변화행진은 끊임없습니다.

(29절은 히브리어 원문의 훼손이 심하여 정확한 뜻을 찾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리스어 번역을 따른 공동번역을 참고합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요한14:7-21, 요한복음 15:1-8)]

오늘 서신서 본문 소제목은 하나님의 사랑과 형제 사랑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친교의 알맹이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우리의 노력과 수고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일어나고(7, 10, 19)

하나님께서 나눠주시는 선물입니다.(13)

 

거짓교사들의 영지(靈智)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사랑,

보잘 것 없는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하나님의 그 사랑!(10)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에게서 난 그 사랑을 받아 그 사랑을 아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8)

 

그런데 그 사랑을 아는 길은, 하나님 사랑 받은 사람답게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일입니다.(7, 8, 12, 21)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 소제목은 참 포도나무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가리켜 참 포도나무고 아버지는 농부라고 하십니다.(1)

왜 그냥 포도나무라고 하지 않고 참 포도나무라고 하셨을까요?

아주 좋은 포도나무라는 뜻이 아닐까요? 농부가 참 아끼고 사랑하는 포도나무!

 

농부와 그 포도나무의 관계가 눈에 선합니다.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 했는데,

농부와 포도나무, 성부와 성자 사이의 친교의 밀도가 상당합니다.

 

문제는 참포도나무의 가지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는 한 몸입니다.

무어라 말로 다할 수 없이 친밀한 한 몸입니다.

그런데 다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 오늘 예수님 말씀입니다.(2)

 

포도나무와 가지의 친교는 열매로 압니다.(5)

그 친교는 말씀으로 이루는 친교이며(7)

그 친교의 또 하나의 증거, 즉 내가 예수제자라는 증거는

바로 서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복음 13:34-35)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해설 부분 참조)

(예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정리]

부활절 5주에 주신 성서일과 본문말씀들마다 온통 두근두근 진동합니다.

 

기쁜 소식을 들은 내시의 벅찬 가슴은 두말할 것도 없고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로 시작한 시편22편은 시나브로 뜨거운 감사로 변화하여

주님께서 하신 이 모든 일”(25)을 노래로 지어 찬양합니다.

요한일서와 요한복음은 온통 부자유친(父子有親)’의 신비가 서로사랑의 감동으로 만발합니다.

 

영지주의자 뺨칠 만큼 여전히 머리로만 말로만 사랑하는 우리를 향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하나님에 대해 무관심한 세상의 심장을 향해

이 말씀이 날아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요일4:7)

 

하나님말씀을 품은 사람들, 하나님을 품고 품기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시편 첫머리, “주님께서 하신 이 모든 일”(22:25)이신 대자대비(大慈大悲)

고스란히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고통받는 사람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 그들을 외면하지도 않으신다.

부르짖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응답하여 주신다.”(22:24)

 

부활의 계절이 무르익어감에도 여전히 지옥에 살고 있는

가자지구 사람들, 후쿠시마 사람들을

아무리 멀리 있어도 외면하지 않고 공감하고 반응합니다.

오늘 말씀을 받은 우리는 그렇게 예수님처럼 변화해 갑니다.(요일4:17)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이 점에 있으니, 곧 우리로 하여금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담대해지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대로 또한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기 때문입니다.”(요일4:17)

 

 

 

[나머지]

* 에티오피아 내시

에티오피아는 고대 그리스에서 누비아를 지칭하는 이름이었습니다. 누비아는 이집트 아래 수단의 북쪽 지역으로서, 대대로 여왕들이 다스렸다고 합니다. 그 여왕들을 가리키는 이름이 간다게입니다. 내시는 아마도 환관이었을 텐데, 그가 이사야서를 묵상하는 것을 보니 이사야 56:3-5절이 떠오릅니다.(독일성서공회판 해설 참조) 4..."비록 고자라 하더라도, 나의 안식일을 지키고,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을 하고, 나의 언약을 철저히 지키면, 5.그들의 이름이 나의 성전과 나의 성벽 안에서 영원히 기억되도록 하겠다. 아들딸을 두어서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 더 낫게 하여 주겠다. 그들의 이름이 잊혀지지 않도록, 영원한 명성을 그들에게 주겠다..."(이사야 56:4-5) 그런데 신명기에 따르면 환관은 유대교인으로 개종할 수 없습니다. "고환이 터졌거나 음경이 잘린 사람은, 주님의 총회 회원이 되지 못합니다.(신명기 23:1) 그럼에도 이사야서에서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린 것입니다. 이사야 56장의 배경인 바벨론 포로기에 왕궁에서 근무하던 유대인들이 거의 환관이었을 것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무튼 빌립을 만난 에티오피아(누비아) 내시의 감격이 느껴집니다. 아무 거리낌 없이, 결격사유 없이(36) 주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지는 감동입니다. 그야말로 예수에 관한 기쁜 소식을 듣고(8:35), 빌립은 사라졌으나 기쁨에 차서 가던 길을갑니다.(8:39)

 

** 영지주의를 경계하며

오늘 본문인 요한일서와 요한복음이 쓰인 시대 상황을 돌아봅니다. 그 당시 교회 안팎을 통틀어 가장 큰 문제는 복음의 가현화였습니다. 하나님 말씀, 즉 예수님 사랑을 생생하게 닮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누구보다 사랑, 사랑의 실천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말만 무성한 교리 중심의 교회가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랑이 되어가는 교회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영지주의가 문제였습니다. 영지주의는 예수님에 대해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지식, 하나님을 아는 것, 즉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매우 강조하는 한편, 그것을 매우 비밀스러운 것으로 독점하려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말씀에서, 바로 이러한 잘못된 영지주의적 분위기를 망치로 깨부수는 듯한 선포를 한 것입니다.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일 4:7-8)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만천하에 하나님의 정체를 까발린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눈에 보이는 형제자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안다고, 참 통쾌하게 선언한 것입니다.

 

*** “완전한 사랑”(요일 4:18)

오늘 서신서본문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무려 29회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알맹이도 서로 사랑하라입니다.(7, 11, 12) 그런데 이 알맹이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이 관계는 오늘 서신서본문과 복음서본문의 중요한 공통분모입니다. ,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라는 관계가 서신서와 복음서에 각각 3차례씩, 6차례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요일 4:13, 15, 16 / 요한 15:4, 5, 7) 이 관계의 중심이신 하나님을 가리켜 오늘 서신서본문은 사랑으로,(“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8) 오늘 복음서본문은, “농부로 묘사합니다.(“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1) 그러고 보니,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사랑을 심어 사랑농사 짓는 분이십니다. 포도나무 가지인 우리가 그 열매 풍성히 맺으려면 우리가 주님 안에, 주님 (말씀)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집니다.(7) 이건 바로 그분의 뜻대로 구하는 경지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일 5:14, 개역개정) 그분의 뜻, 오직 사랑으로 구하는 것 말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사랑열매 가득해집니다. 거기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완전한 사랑에는 두려움 없는 법입니다.(요일 4:18)

 

**** 허리 끊긴 남북형제의 서로사랑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우울하고 무뚝뚝한 표정뿐이셔서, 날 되게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날 미워하시는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늙으신 내 아버지는 날 사랑하고 계셨다. 심지어 날 자랑스러워하고 계셨다.’ 이렇게 사랑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겉으로, 말로, 표정으로 드러나는 사랑만 사랑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겉사랑말로만 사랑일 때가 많습니다. 참사랑은 늙으신 내 아버지의 속사랑같은 건지도 모릅니다. 사람관계는 늘 좋게 이어질 수는 없습니다. 부부간, 부모자식 간에도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습니까? 그래도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 했습니다. 부모자식 간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교가 있다는 말입니다. 친교야 말로 부모자식 간에 가장 중요한 알맹이라는 뜻입니다. 그 친교가 바로 하나님이 나를 알고,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경지요,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있는 경지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이들이 서로 사랑하는, 말로만 혀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내가 가진 돈과 정성을 다 기울여 사랑하는 서로사랑일 것입니다. 남북정상회담이 다시 열리기를 고대합니다. 지금으로선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꿈을 꿀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원수 되었던 혈육이 어깨동무가 되고, 끊어진 허리가 다시 이어지는 꿈을 꿉니다. 보이는 내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요일 4:20) 이것은 지금 삼천리금수강산 온 백성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거하자 (김민서 지음. 세움교회 청년부. 성실문화118)

이루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예수님 안에 살기

말이 안 되고, 이해 안 되는 이야기 같다

 

열매가 되어야지!

하나님 아버지 웃게 하는 열매

 

바쁘게는 살지만

쓸모없게 사는 건 아닌지

 

그분 안에 거하자

날 위해 죽으신 예수님 사랑 안에

 

 

 

 

[시편시조] 시편 22, 주님 하신 모든 일을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18)

주님 하신 모든 일을 회중 앞에 찬양하리

이 세상 모든 민족 주님을 찬양하리

오로지 주님의 능력 나를 살려주시니

 

 

 

 

[시편노래] 시편 22, 은혜로운 주의 역사 (이정훈 편사, 박상은 작곡. 성실문화118)

[본문] (시편 22:25-31)

[노랫말]

1. 은혜로운 주의 역사 소리 높여 찬양하리, 서원한 희생제물 성도들과 봉헌하리

가난한 사람들도 배부르고 너그러워, 주님을 찾는 사람 모두모두 찬양하리

2. 땅 끝 백성 회개하며 주님께 돌아오고, 이 세상 모든 민족 주님을 경배하리

온 누리 주인이신 주님을 바라보라, 만국을 다스리는 주님만 바라보라

3. 땅속에서 잠자는 자 어찌 주를 경배하리, 주님 주신 생명으로 내가 주를 경배하리

내 자손 후세 자손 대대손손 주 섬기고, 그 백성 구원하신 우리 주님 찬송하리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KBS 국악관현악단 단원이신 대금 연주자 박상은 선생이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22 (은혜로운 주의 역사) (이정훈 편사, 박상은 작곡)

 

 

20240428 시편노래 22 '은혜로운 주의 역사'.m4a
4.18MB

 

 

 

 

 

 

[시편송서(誦書)] 시편 22:25-31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118)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25. 주님께서 하신 이 모든 일을, 회중이 다 모인 자리에서 찬양하겠습니다. 내가 서원한 희생제물을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앞에서 바치겠습니다.

26. 가난한 사람들도 "여러분들의 마음이 늘 유쾌하길 빕니다!" 하면서 축배를 들고,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을 찾-는 사람---, 누구나 주님을 --할 것이다-,

27. 땅 끝에 사-는 사람-들도-, 생각을 돌이켜 주님께-- 돌아올 것이며---

 

이 세상 모든 민족이 주님을 경배할 것이다.

28. 주권은 주님께 있으며, 주님은 만국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29. 땅 속에서-- 잠자는 자가-, 어떻게 주님을 --하겠는가-?

무덤으로-- 내려가-- 자가, 어떻게 주님 앞-- 무릎 꿇--는가-?

 

그러나 나는 주님의 능력으로 살겠다.

30. 내 자손이 주님을 섬기고 후세의 자손도 주님이 누구신지 들어 알고,

 

[다함께]

31. -태어나-- -은 세대도, --께서 -- 일을 말하-면서-,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셨-' 하고 선포할 것-∼∥

 

20240428 시편송서 22;25-31.m4a
4.10MB

 

 

 

 

 

[말씀동화] 달려라 빌립, 달려라 나리!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운동회 경주하려고 황토물들인 머리띠 질끈 동여매던 시절 이야기예요.

 

이게 무슨 꿈이람?”

 

벌떡 일어난 나리의 등줄기로 주르르 땀이 흘러내립니다.

송글송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나리가 중얼거렸어요.

 

낯선 땅 뙤약볕에서 달리기를 하는 꿈이었어요.

뒤에서는 천사가 빌립 파이팅!”하며 응원하고

내가 왜 빌립이지? 내가 왜 달리기를 하지?’

어리둥절 바라보니 저 앞에 마차 한 대가 가고 있었어요.

 

평화의 성 예루살렘에서 지옥의 땅 가자지구로 달리는 마찹니다.

나리가 열심히 달려 마차를 따라잡고서 살펴보니

마차에는 구호품이 잔뜩 실려 있었죠.

 

마차에 타고 있던 흑인 아줌마가 나리의 손을 잡아주고

냉큼 마차에 올라탄 나리는 땀을 닦는 둥 마는 둥 얼른 물었죠.

 

이게 다 뭐예요?”

 

뭐긴요, 이스라엘 군인들의 가자지구 학살 때문에

굶주리고 부상당한 분들을 위한 음식과 약이죠

 

 

흑인 아줌마는 어리둥절한 나리에게 찬찬히 성경말씀을 들려줬어요.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요한일서4:20-21)

 

드디어 마차는 가자지구에 도착했지만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어요.

총을 든 이스라엘 군인들이 절대 안 된다고

사람도 구호품도 절대 못 들어간다고 막아섰어요.

 

바로 그때였어요.

하늘에서 불마차가 내려오고

불마차를 몰고 온 예언자 엘리야가 말했어요.

 

어서 구호품을 옮깁시다.”

 

땀이 식기도 전에 나리는 얼른 마치에서 내려

흑인 아줌마랑 엘리야랑 함께 영차영차 구호품을 불마차로 옮겼어요.

땀을 닦는 둥 마는 둥 흑인 아줌마와 작별하고 불마차에 오른 나리는

엘리야와 함께 하늘을 날아 가자지구 굶주린 분들에게로 날아갑니다.

 

 

꿈에서 깨어난 나리는 엄마아빠께 달려갔어요.

신바람 나게 꿈 이야기를 들려드리니

엄마아빠의 입꼬리가 초승달처럼 빙그레 귀에 걸립니다.

 

교회학교에서 사도행전 8장 말씀을 정말 열심히 공부했구나!”

 

우리 빌립 집사님이 밤새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기하느라 배고프겠다.”

 

그래, 착한 일 많이 하려면 밥 든든히 먹어야지.”

 

엄마아빠는 나리의 머리를 쓰다듬고 등 두드려주시며

맛있는 밥상을 차려주십니다.

밥상을 차리며 온가족이 애찬식 노래 밥의 기도를 합창합니다.

 

밥을 밥을 주신 예수님, 동무들과 함께 밥을 먹는, 이 자리가 기쁨의 자리, 되게 하소서

밥은 밥은 내 것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것, 이 자리에 밥을 소중히, 여기게 하소서

밥을 밥을 서로 나눔은, 동무들과 사랑을 나누는 것, 이 밥을 통해 한 자녀, 되게 하소서∼♬

[‘밥의 기도채희동 시, 이천진 곡]

 

나리네가 부르는 밥의 기도가 하늘나라에 올라가

하나님의 집 가득히 진동하고 하나님 마음을 울리니

천군천사들이 목소리 높여 응답찬송을 부릅니다.

 

그는 고통받는 사람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 그들을 외면하지도 않으신다.

부르짖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응답하여 주신다.

주님께서 하신 이 모든 일을, 회중이 다 모인 자리에서 찬양하겠습니다...”(22:24-25)

 

[이정훈 지음. 2024427일 토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