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복음 23:11)
[성서일과 4본문]
(여호수아기 3:7-17)
7.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바로 오늘부터 내가 너를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보는 앞에서 위대한 지도자로 세우고,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처럼 너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하겠다.
8. 이제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요단강의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강에 들어가서 서 있으라고 하여라."
9.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였다. "이 곳으로 와서, 주 당신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10. 여호수아가 말을 계속하였다. "이제 이루어질 이 일을 보고, 당신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 당신들 가운데 계셔서,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히위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기르가스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당신들 앞에서 쫓아내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11. 온 땅의 주권자이신 주님의 언약궤가 당신들 앞에서 요단강을 건널 것입니다.
12. 이제 이스라엘의 각 지파마다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뽑으십시오.
13. 온 땅의 주권자이신 주님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강 물에 닿으면, 요단강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줄기가 끊기고, 둑이 생기어 물이 고일 것입니다."
14.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진을 떠날 때에,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백성 앞에서 나아갔다.
15. 그 궤를 멘 사람들이 요단강까지 왔을 때에는, 마침 추수기간이어서 제방까지 물이 가득 차 올랐다. 그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 물 가에 닿았을 때에,
16. 위에서부터 흐르던 물이 멈추었다. 그리고 멀리 사르단 근처의 아담 성읍에 둑이 생겨, 아라바의 바다 곧 사해로 흘러가는 물줄기가 완전히 끊겼다. 그래서 백성들은 여리고 맞은쪽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17. 온 이스라엘 백성이 마른 땅을 밟고 건너서, 온 백성이 모두 요단강을 건널 때까지, 주님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강 가운데의 마른 땅 위에 튼튼하게 서 있었다.
(시편 107:1-7, 33-37)
1. 주님께 감사드려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2. 주님께 구원받은 사람들아, 대적의 손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아, 모두 주님께 감사드려라.
3. 동서남북 사방에서, 주님께서 모아들이신 사람들아, 모두 주님께 감사드려라.
4. 어떤 이들은 광야의 사막에서 길을 잃고, 사람이 사는 성읍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으며,
5. 배고프고 목이 말라, 기력이 다 빠지기도 하였다.
6. 그러나 그들이 그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는 그들을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7. 바른길로 들어서게 하셔서, 사람이 사는 성읍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33. 주님께서는 강들을 사막으로 만드시며, 물이 솟는 샘들을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34.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죄악 때문에, 옥토를 소금밭이 되게 하신다.
35.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막을 연못으로 만드시며, 마른 땅을 물이 솟는 샘으로 만드시고,
36. 굶주린 사람들로 거기에 살게 하시어, 그들이 거기에다 사람 사는 성읍을 세우게 하시고,
37. 밭에 씨를 뿌리며 포도원을 일구어서,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시며,
(데살로니가전서 2:9-13)
9.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고생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파하였습니다.
10. 또, 신도 여러분을 대할 때에, 우리가 얼마나 경건하고 올바르고 흠 잡힐 데가 없이 처신하였는지는, 여러분이 증언하고, 또 하나님께서도 증언하십니다.
11.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이, 우리는 여러분 하나하나를 대합니다.
12. 우리는 여러분을 권면하고 격려하고 경고합니다마는, 그것은 여러분을 부르셔서 당신의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하게 살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13.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하는 것은, 여러분이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실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신도 여러분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3:1-12)
1.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다.
3.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르지 말아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다.
4. 그들은 지기 힘든 무거운 짐을 묶어서 남의 어깨에 지우지만, 자기들은 그 짐을 나르는 데에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경문 곽을 크게 만들어서 차고 다니고, 옷술을 길게 늘어뜨린다.
6. 그리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며,
7. 장터에서 인사 받기와, 사람들에게 랍비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는 호칭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선생은 한 분뿐이요, 너희는 모두 형제자매들이다.
9. 또 너희는 땅에서 아무도 너희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분, 한 분뿐이시다.
10.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호칭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가운데서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주님께서 살 길을 열어주시다’입니다.
구약, “물줄기가 완전히 끊겼다. 그래서 백성들은 여리고 맞은쪽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여호수아기 3:16)
시편, “바른길로 들어서게 하셔서, 사람이 사는 성읍으로 들어가게 하셨다”(시편 107:7)
서신서, “이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신도 여러분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2:13)
복음서,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마태복음 23:12)
오늘 요절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입니다.(마태복음 23:11)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여호수아 3:7-17 /시편 107:1-7, 33-37)]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다’입니다.
지도자를 정하고 세우고 키우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모세를 세우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세우고 동행하십니다.(7)
오늘 요단강이 어제의 홍해를 연상시킵니다.
헤르몬산 눈 녹은 물 때문에 강 언덕에 넘칠 만큼 큰물이 된 것입니다.
홍해 때처럼 요단강에서 큰 절망의 장벽이 오히려 희망의 길이 되고 살길이 열립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약속(말씀)과 하나님의 임재를 동시에 상징합니다.
언약궤가 요단강 도하의 열쇠가 됩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이 백성을 이끌고, 백성과 깊이 관계하시는 상징이요 실제입니다.
언약궤는 주님께서 백성의 살길을 열어주신 것을 오래오래 기억하게 할 표지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구속받은 자들의 감사시’입니다.
큰 감사축제 예배의식의 서문인 듯합니다.(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여러 감사의 이유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땅과 물을 주관하시어, 택한 자들, 주린 자들을 먹이신다!(36)
땅과 물은 하나님이 백성과 관계하시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살길을 열어주셨음을 잊지 않으려고
백성은 정기적으로 이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데살로니가전서 2:9-13 /마태복음 23:1-12)]
오늘 서신서본문의 소제목은 ‘교회설립에 있어서 사도의 활동’입니다.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초기 활동을 회상합니다.
수고와 고생을 무릅쓰고 바울은 신도들을 “아버지”의 마음으로 권면, 격려, 경고하고(11)
“어머니”의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7, 지난 주 본문)
아무런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주야로 노동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9)
이런 큰 수고 가운데서도 바울이 크게 감사하는 것은,
신도들이 하나님 말씀을 받는 자세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들으며, 거기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을 붙들고 사는 모습에 대한 바울의 감동이 느껴집니다.(13)
‘말씀’은 하나님이 백성과 관계하시는 가장 강력한 도구요, 하나님 뜻의 정수입니다.
말씀이 “신도 여러분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13)
주님께서 지금도 시시때때 이모저모로 성도의 살길을 열어주고 계심을 뜻합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한 질책’입니다.
저들은 권위를 세우는 일 때문에 호칭, 복장, 자리에 관심이 많습니다.(5-7)
저들은 권위를 내세워 율법의 실천을 강요하면서도 자기들은 실천 안 합니다.(4)
예수님께서 진정 권위를 높이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그건 바로 자기를 낮추는 일입니다.(11-12)
하나님은 우리의 참 선생, 참 아버지, 참 지도자로 관계하십니다.(8-10)
하나님은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나를 낮추고 또 낮출 때
깊이 만날 수 있는 분이십니다.
‘내리사랑’의 원리처럼, 내가 낮아질수록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더욱 세차고
나의 살길을 열어주시는 주님을 점점 더 강하고 선명하게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정리]
‘내리사랑’의 원리는, <사랑은 물처럼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을 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의 시선은 늘 낮은 자를 향하시기 마련입니다.
돈과 권력을 가졌을지라도
그 돈과 권력을 낮은 자를 위해 쓰려 애쓰는 사람 역시 낮은 자입니다.
이미 하심(下心;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을 품고 실천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구약본문의 상황이, 지금 2023년 가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과 대조됩니다.
1948년 영국 미국 등 강대국들의 여러 욕심이 뒤섞여 빚어진 이스라엘 건국 이래로
오늘 가자지구 학살에 이르기까지,
저 수많은 사건들의 배경은 탐욕입니다.
이스라엘과 강대국들의 그 탐욕을, 오늘 구약본문을 비롯한 구약성경 구절들로 합리화 하고
심지어 한국교회가 나서서 합리화 해주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구약본문의 응답찬송인 오늘 시편본문 곳곳에서
오히려 오늘 이스라엘에게 핍박받는 가자지구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배고프고 목이 말라, 기력이 다 빠”진 이들(5),
“그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는 이들(6),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을 그 고통에서 건지”실 이들(6)...
부디 하나님께서 지금 가자지구 사람들에게 살길을 열어주시길,
한국교회가 이 일에 섬기는 자의 길을 갈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
[나머지]
* 가나안 7부족을 쫓아내신 까닭은
오늘 구약본문의 알맹이는, 가나안 7부족이 강자이고 이스라엘 백성이 약자가 아니라, 사람이 강자이고 땅이 약자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구약 말씀 몇 곳을 살펴봅니다. 첫째, 땅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 성경의 정신입니다.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다만 나그네이며, 나에게 와서 사는 임시 거주자일 뿐이다.”(레25:23) / “6.한갓 돈 많음을 자랑하며 재물을 믿는 그들이거늘, 7.하느님께 돈을 바친다고 죽을 목숨을 살려주시랴? 8.목숨 값은 엄청난 것, 그 값을 치르기는 감히 생각도 못할 일 9.저승길을 가지 않고 영원히 살리라고는 생각도 마라. 10.지혜로운 사람도 죽고 어리석은 자 우둔한 자 모두 죽는 법이다. 두고 가는 재산은 결국 남의 것, 11.그들이 땅에다가 제 이름 매겼더라도 그들의 영원한 집, 언제나 머물 곳은 무덤뿐이다.”(시49:6-11, 공동번역) (새번역 11. “사람들이 땅을 차지하여 제 이름으로 등기를 해 두었어도 그들의 영원한 집, 그들이 영원히 머물 곳은 오직 무덤뿐이다.”) 둘째, 하나님의 땅을 오염시킬 때, 창조질서를 무너뜨리고, 탐욕으로 오염시킬 때 땅은 그게 어느 민족이건 모두 토해버린다는 것이 성경의 정신입니다.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니었고 우리 대한민국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탐욕은, 돈을 추구하는 과정, 즉 그 당시 풍요의 신을 숭배하는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온갖 음란한 행위들로 표현됩니다. “12.하나님이 땅을 보시니, 썩어 있었다. 살과 피를 지니고 땅 위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속속들이 썩어 있었다. 13.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땅은 사람들 때문에 무법천지가 되었고, 그 끝날이 이르렀으니, 내가 반드시 사람과 땅을 함께 멸하겠다.”(창6:12-13) / “24.위에서 말한 것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저지르면, 이것은 너희가 스스로를 더럽히는 일이니, 그런 일이 없도록 하여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낼 민족들이, 바로 그런 짓들을 하다가 스스로 자신을 더럽혔다. 25.따라서 그들이 사는 땅까지 더럽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악한 땅을 벌하였고, 그 땅은 그 거주자들을 토해 내게 되었다. 28.너희가 그 땅을 더럽히면, 마치, 너희보다 앞서 그 땅에 살던 민족을 그 땅이 토해 냈듯이, 너희를 토해 낼 것이다.”(레18:24, 25, 28) / “그 때에야 비로소, 땅은 안식을 누릴 것이다. 땅이 그렇게 폐허로 버려져 있는 동안, 곧 너희가 원수들의 나라로 잡혀가 있는 동안에, 비로소 땅은 쉴 것이며, 제 몫의 안식을 누릴 것이다.”(레26:34) / “너희가 사는 땅, 곧 내가 머물러 있는 이 땅을 더럽히지 말아라. 나 주가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함께 머물고 있다.”(민35:34) 그리고 오늘 시편 본문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강들을 사막으로 만드시며, 물이 솟는 샘들을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죄악 때문에, 옥토를 소금밭이 되게 하신다.”(시107:33-34) 그렇습니다. 오늘 구약본문말씀 가운데 가나안 일곱 부족을 몰아내는 것은 저들이 하나님의 땅을 탐욕으로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그 탐욕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땅은 내 것이라는 착각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런 착각은 땅을 망가뜨리고 그렇게 땅을 망가뜨린 자들은 그것이 원주민이건 이주민이건 간에 누구라도 그 땅에서 쫓아낸다는 것이 온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 뜻입니다.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니고, 우리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엉터리 국토개조론을 들먹이며, 하나님의 땅을 제 것인 양 착각하고 4대강 강바닥을 파헤치고,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를 깨부순 지 오랩니다. 심지어 후쿠시마의 비극이 현재진행중임에도, 지금 정부와 핵마피아들이 우리 대한민국 땅 곳곳에 소형 원자로를 들여올 구상을 한다는 소문이 횡횡합니다. 이것은 아주 상징적이면서도, 아주 실제적인 상황입니다. 언젠가 우리는 그 결과를 볼 것입니다. 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니 땅을 차지하기 위해, 땅으로 돈을 벌기 위해 살지 맙시다. 그것을 위해 인생을 허비하지 맙시다. 그것은 아무리 발버둥해도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늘 아버지의 것입니다. (그러니 이미 나의 것, 즉 우리의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내 이름으로 등기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다가 허무하게 죽어간 이들의 비극을 성경은 아주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내 이름으로 등기하기 위해 돈 벌려고 애쓰지 말고, 우리 남은 인생을 오직 약자를 편드는 일을 위해 삽시다. 그것이 슬기로운 일입니다. 그것이 천국의 주인이 되는 길입니다. 그것이 이 땅에 천국을 이루어가는 길이요,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길입니다.
**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처럼 말씀을 맡은 예언자들이 튼튼하게 서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한국교회 일부, 목회자 일부가 욕먹고 흔들린다고 해서 모든 교회가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내 가족들에게, 그리고 내 직장 동료들에게 여호수아 같은 사람들이요 모두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 정 가운데 튼튼히 우뚝 서 있어야 할 말씀의 일꾼들입니다. 지금 우리의 천국길을 가로막는 요단강은 교회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한국사회의 흘기는 눈입니다. 그 뿌리는, 더 커지고 높아지려고만 하는 한국교회의 욕심이요, 점점 더 늘어만 가는 내 안의 온갖 탐욕입니다. 명량(鳴梁)의 거센 물줄기 같은 요단강 급류를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는 내게 맡겨진 말씀을 언약궤처럼 메고 여럿이 함께 말씀을 메고, 거기 명량의 이순신처럼 의연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 말씀에 부끄럽지 않게, 말씀이 부끄러워지지 않게, 말씀의 영광이 가려지지 않게 오늘의 요단강 가운데서 말씀대로 살아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은 한국교회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려 하십니다.(살전2:13) 세상논리, 경제논리에 휘둘리지 말고, 세상맛들인 교회, 돈맛에 물든 교인들이 아무리 아우성치며 엉뚱한 길로 가자고 외치더라도, 2,000 규빗(1㎞) 거리를 두고(수3:4), 주의 말씀이 인도하시는 대로 먼저 앞서 갑시다. 너무 앞서간다고 비꼬는 소리 들려와도 그냥 말씀 따라 신나게 행진합시다. 그리고 멈추라하신 그 자리에 멈추어 섭시다. 쓰나미 같이 몰려드는 약육강식(弱肉强食) 아귀 같은 돈의 횡포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말씀이 붙드시는 대로 거기 튼튼하게 서 있읍시다. 내가 그 위태로운 자리 정 가운데서 오직 말씀 하나만 붙들고 튼튼히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내 가족은, 내 동료들은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명의 주인이 누구이신지, 진정 나의 주인이 누구신지 시나브로 알게 될 것입니다.
*** 종교개혁의 남은 숙제 - 작은 자 편들기
1517년에 벌어졌던 종교개혁의 또 하나의 알맹이는, 종교귀족, 종교재벌들 때문에 허리가 휘는 약자들의 발견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믿음으로’ 다시 선 교회에게 남은 일은 약자의 편에 서는 일입니다. 그게 종교개혁의 핵심이요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배운 것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편드시는 분이라는 사실! 구약의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목숨처럼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부터 시작해서, 신약의 예수님께서 보잘 것 없는 약자, 소자에게 한 것이 바로 내게 한 것이라 하신 말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편드시는 분, 약한 자 편을 드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강한 자나 약한 자나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은 강한 자나 약한 자 모두에게 공평합니다. 그러나 어느 부모나 다 그러하듯이, 많은 자식들 가운데서도 특히 약한 자식에게 더 마음이 가는 법입니다. 더구나 강한 자식이 약한 자식의 목을 조를 때는... 강한 자식이 제 것 다 먹고도 더 먹으려고 약한 자식의 몫을 빼앗으려 할 때, 정상적인 부모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연히 매를 들고 강한 자식을 때리고 벌을 줄 것입니다. 그리고 빼앗겨서, 억울해서, 아파서 울고 있는 약한 자식을 달래고, 눈물을 닦아주고, 안아주고, 상처를 어루만지며 먹을 것을 줄 것입니다. 그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게 부모의 사랑입니다. 강한 자식을 사람 만들기 위해서라도 더 때릴 것입니다. 그게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게 편드시는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 사랑의 원리인 것입니다.
**** 욕위대자(欲爲大者) 당위인역(當爲人役)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 배재학당 교훈입니다. 마태 20:25-27절 말씀인데, 오늘 본문 마태 23:11절 말씀과도 통합니다. 물론 여기서 ‘크고자 하거든’의 큰 사람[大者]이란, 크게 성공한 사람, 높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는 마태복음 20장 본문의 앞뒤 문맥만 보아도 환히 알 수 있습니다. 보물찾기로 비유한다면, 천국의 열쇠는 절대 높은 자리에 없습니다. 천국의 열쇠는 낮고 낮은 자리 저 아래 숨어 있습니다.
***** 연약궤와 경문곽
종교개혁주일 다음 주일인 오늘 주신 성서일과 말씀들에서 <말씀>에 집중해 보니, 먼저 구약본문의 “언약궤”와 복음서본문의 “경문곽”(5)이 짝을 이룹니다. 그런데 이 둘은 차이가 너무 큽니다. 오늘 언약궤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기적의 중심에 있었으나 오늘 경문곽은 예수님의 나무라심 중간에 있습니다. 오늘 언약궤나 경문곽이나 모두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점은 같으나 언약궤는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역사하심을 목격하는,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는 것임에 반하여, 경문곽은 율법학자 바리새인 자신을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자랑거리일 뿐입니다.(마태 23:5) 오늘 서신서본문에서 바울의 편지가 매우 감동적입니다. “실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살전2:13) “이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신도 여러분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살전2:13) 바울의 전도를 교회가 “실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는 것도 놀랍고,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이 “신도 여러분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지금 한국교회 강단의 상황과 차이가 너무 커서 놀라운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한국교회의 말씀은 지금 어떠합니까? 그 작은 경문곽을 크게 만들어봐야 얼마나 더 크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마태 23:5) 그건 사람들에게 잘나 보이려는, 허무하고 위태롭고 부끄러운 행동일 뿐입니다. 세상이 크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편리만 추구하며 안일하게 사는 동안 임계점에 다다른 자연계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마치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듯 우리의 요단강을 건너야 할 때입니다. 교회는 지금까지의 광야생활을 뒤로 하고 결단하기를, 하나님의 언약궤, 시은소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교회로 거듭나서 연암의 열하(熱河)처럼 우르릉 쾅쾅 넘쳐흐르는 저 요단강을 향해 한발 내딛기를,(수 3:15) 그리고 마침내 그 거센 강물이 멈추어 온 세상이 건너는 사이에도 교회는 그 요단강 한 가운데 우뚝 설 수 있기를 기도할 때입니다. 먼저 우리가 성경말씀을 읽을 때마다 이 말씀이 “실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히기를, 그리하여 시나브로 내 안에서 그 말씀 살아 움직이시기를 빕니다.(살전 2:13) 그때 지금 하나님께서 친히 나를 움직이고 계시는 이 든든한 감동과 감사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 길 없던 길을 내시는 주님
오늘 사도바울은 하나님을, 우리와 관계하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여러분을 부르셔서 당신의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살전2:12) 우리가 그런 하나님께 합당하게 살 수 있으려면(12) 나를 권면하시고 격려하시고 경고하시는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다.(12) 하나님나라에서 나를 빛나게 하시려고 지금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나의 시커먼 허물을 속속들이 다 아심에도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지도자로, 스승으로 모셨으니 더 무슨 권위, 무슨 권력, 무슨 돈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내 경험, 내 상식과 달라도 하나님 말씀만 의지하여 그 말씀 붙들고 (언약궤 메고) 요단강 물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 순간 갈라지는 강물, 그 ‘길 없던 길’을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게 나를 낮추는 자들만이 오를 수 있는 천국길입니다.
(※ 예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개미의 마음가짐 (이선구 지음. 성실교회 청년부. 「성실문화」 116호)
베짱이 연주는 아름답지만
베짱이처럼 사는 건 안 될 말이지
소리만 크고 일하지 않으니
겨울이 오면 어떻게 할까
좋은 음악 들으며 열심히 일해
근사한 개미집을 만들어 보자
오손도손 함께 살 집 만들어보자
[시편시조] 시편 107, 선하고 인자하신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16호)
선하고 인자하신 주님께 감사하라
길 잃고 목마른 자 길 찾아 물주시며
마른 땅 옥토가 되어 풍년 들게 하시니
[시편노래] 시편 107, 감사하세 감사하세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성실문화」 116호)
[본문] (시편 107:1-7, 33-37)
[노랫말]
1. 감사하세 감사하세 선하신 우리 주께, 동서남북 사방에서 주님께 감사하세
사막에서 길을 잃고 배고프고 목마를 때, 생명길 열어주신 우리 주께 감사하세
2. 감사하세 감사하세 인자하신 우리 주께, 구원받은 사람들아 주님께 감사하세
사막에서 물주시어 마을 짓고 농사지어, 굶주린 자 살려주신 우리 주께 감사하세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어서, 예전에 홍의종 목사가 지은 ‘시편 62, 내 영혼아 잠잠히’(성실문화 105호) 가락에 붙였다.
[악보] 시편 107 (감사하세 감사하세)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107:1-7, 33-37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16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주님-께-- 감-사드려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2. 주님께 구원받은 사람들아, 대적의 손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아, 모두 주님께 감사드려라.
3. 동서남북 사방에서, 주님께서 모아들이신 사람들아, 모두 주님께 감사드려라.
4. 어--떤-- 이들-은--, 광야의 사-막-에서 길을- 잃고-,
사람이 사-는 성--읍--, (성-읍-)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으며-∼
5. 배고프고 목이 말라, 기력이 다 빠지기도 하였다.
6. 그러나 그들이 그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는 그들을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7. 바른길로 들어서게 하셔서, 사람이 사는 성읍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33. 주-님께서는 강들-을--, 사막으로- 만드-시며-,
물-이 솟는- 샘들-을--,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34.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죄악 때문에, 옥토를 소금밭이 되게 하신다.
35.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막을 연못으로 만드시며, 마른 땅을 물이 솟는 샘으로 만드시고,
36. 굶주-린-- 사람-들로-, 거기에 살-게 하시-어--,
그들-이-- 거기-에다-, 사람 사-는- 성읍을 세우게 하시고---∼
[다함께]
37. 밭-에 씨-를 뿌리-며--, 포도원을-- 일구-어서-,
풍성-한-- 소출-을--,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시∿며-∼∥
[말씀동화] 지렁이의 일기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지렁이랑 1미터 경주 시작 딱총소리 기다리며 잔뜩 웅크리던 시절 이야기예요.
모하메드는 이스라엘 가자지구에 사는 지렁이예요.
매일매일 떨어지는 미사일과 폭탄에
지렁이 학교도 문을 닫고
오늘도 모하메드는 땅 속 깊이 들어가 엄마 곁에 바싹 붙어서 오들오들 떨고 있습니다.
비처럼 내리는 폭탄 때문에 매일매일 사람들이 죽어가고
가자지구 지렁이들도 죽어갑니다.
지렁이학교 많은 친구들을 잃은 모하메드는
오들오들 떨면서도 눈물을 흘리며 하늘나라에 먼저 간 친구들을 그립니다.
“그런데 엄마, 하늘나라에도 땅이 있어요?”
땅과 반대인 하늘나라에 땅이 있을지
지렁이가 살 수 있는 흙은 있을지
모하메드는 그게 궁금합니다.
땅에서 남 좋은 일 하면
그 열배백배가 하늘곳간에 쌓인다고 학교에서 배운 모하메드는
가자지구에서 배고프고 목마른 지렁이와 사람들에게
먹을거리와 물을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지렁이보다 백배천배 더 큰 사람 어린이들에게 지금은 아무 도움을 줄 수 없지만
지금 배고프고 다친 지렁이 친구들에게 나눠준 물과 밥이
하늘곳간에 열배백배, 천배만배 쌓이게 되면
하늘나라 사람 어린이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모하메드는 없는 눈이 별처럼 빛납니다.
“하늘곳간에는 하늘일기장이 있단다.”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는 하늘곳간에 있는 하늘일기장에는
땅에서 일일이 다 적지 못한 일기가 열배백배나 자세히 기록된다고
모하메드의 엄마가 일러줍니다.
땅 욕심 때문에 가자지구를 만들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꽁꽁 가두더니
지금 또다시 이런저런 핑계로 가자지구 사람들을 시내광야로 내쫓아버리려는
이스라엘 높은 사람들의 하늘일기장에는
과연 그 욕심이 얼마나 자세히 기록될까?
하루하루 지렁이 모하메드의 궁금증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습니다.
천년이나 된 가자지구 교회 예배당에 폭탄이 떨어져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지렁이교회는 더 깊이깊이 땅속 깊은 곳으로 이사를 갑니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마태복음23:12)
지렁이 목사님이 소곤소곤 설교하며 예수님말씀을 속삭입니다.
땅속으로 더 깊이 내려갈수록 하늘나라에서는 더 높은 집에 살게 된다는 건가?
모하메드의 궁금증이 다시 치솟습니다.
“어떤 이들은 광야의 사막에서 길을 잃고, 사람이 사는 성읍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으며,
배고프고 목이 말라, 기력이 다 빠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그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는 그들을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시편107:4-6)
지렁이교회 찬양대가 지금 오들오들 떨고 있는 가자지구 작은 사람들과 지렁이들을 그리며
시편노래를 부릅니다.
소곤소곤 속삭이듯 작은 소리로 부릅니다.
“하늘곳간 땅문서에는 이스라엘 높은 사람들의 땅은 한 평도 안 될 것입니다.”
지렁이교회 목사님 설교에 감동하며
하늘곳간 땅문서에 적힌 가자지구 가난한 사람들의 땅은 얼마나 넓을지
모하메드의 상상력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엄마랑 집으로 돌아가는 모하메드가
문득 엄마에게 말합니다.
“이제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이스라엘 사람이 지렁이를 닮았다는 성경말씀 때문에(이사야 41:14, 새번역)
늘 이스라엘 사람이 정다워서 사람이 되고 싶었던 모하메드가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는지 엄마는 물어보지 않습니다.
모하메드와 엄마는 없는 눈을 가늘게 뜨고 노래합니다.
아까 찬양대가 부른 시편노래를 소곤소곤 낮은 소리로 흥얼거립니다.
“사람들이 땅을 차지하여 제 이름으로 등기를 해 두었어도 그들의 영원한 집,
그들이 영원히 머물 곳은 오직 무덤뿐이다.”(시편49:11, 새번역)
[이정훈 지음. 2023년 11월 4일 토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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