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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신정절 4주(왕국절 4주, 창조절 3주, 2023년 9월 17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진심으로 자기 형제자매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마태복음 18:35)

 

[성서일과 4본문]

(출애굽기 14:19-31)

19. 이스라엘 진 앞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천사가 진 뒤로 옮겨가자, 진 앞에 있던 구름기둥도 진 뒤로 옮겨가서,

20. 이집트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그 구름이 이집트 사람들이 있는 쪽은 어둡게 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는 쪽은 환하게 밝혀 주었으므로, 밤새도록 양 쪽이 서로 가까이 갈 수 없었다.

21. 모세가 바다 위로 팔을 내밀었다. 주님께서 밤새도록 강한 동풍으로 바닷물을 뒤로 밀어 내시니, 바다가 말라서 바닥이 드러났다. 바닷물이 갈라지고,

22.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한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으며 지나갔다. 물이 좌우에서 그들을 가리는 벽이 되었다.

23. 뒤이어 이집트 사람들이 쫓아왔다. 바로의 말과 병거와 기병이 모두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쫓아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24. 새벽녘이 되어, 주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에서 이집트 진을 내려다 보시고, 이집트 진을 혼란 속에 빠뜨리셨다.

25. 주님께서 병거의 바퀴를 벗기셔서 전진하기 어렵게 만드시니,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쫓지 말고 되돌아가자. 그들의 주가 그들 편이 되어 우리 이집트 사람과 싸운다!' 하고 외쳤다.

26.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너는 바다 위로 너의 팔을 내밀어라. 그러면 바닷물이 이집트 사람과 그 병거와 기병 쪽으로 다시 흐를 것이다."

27. 모세가 바다 위로 팔을 내미니, 새벽녘에 바닷물이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왔다. 이집트 사람들이 되돌아오는 물결에서 벗어나려고 하였으나, 주님께서 이집트 사람들을 바다 한가운데 빠뜨리셨다.

28. 이렇게 물이 다시 돌아와서 병거와 기병을 뒤덮어 버렸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따라 바다로 들어간 바로의 모든 군대는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하였다.

29.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한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으며 지나갔는데, 바닷물이 좌우에서 그들을 가리는 벽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30. 바로 그 날,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셨고, 이스라엘은 바닷가에 널려 있는 이집트 사람들의 주검을 보게 되었다.

31.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치신 주님의 크신 권능을 보고 주님을 두려워하고, 주님과 주님의 종 모세를 믿었다.

 

(시편 114)

1.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야곱의 집안이 다른 언어를 쓰는 민족에게서 떠나올 때에,

2. 유다는 주님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다.

3. 바다는 그들을 보고 도망쳤고, 요단 강은 뒤로 물러났으며,

4. 산들은 숫양처럼 뛰놀고 언덕들도 새끼양처럼 뛰놀았다.

5. 바다야, 너는 어찌하여 도망을 쳤느냐? 요단 강아, 너는 어찌하여 뒤로 물러났느냐?

6. 산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숫양처럼 뛰놀았느냐? 언덕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새끼양처럼 뛰놀았느냐?

7. 온 땅아, 네 주님 앞에서 떨어라.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어라.

8. 주님은 반석을 웅덩이가 되게 하시며, 바위에서 샘이 솟게 하신다.

 

(로마서 14:1-12)

1. 여러분은 믿음이 약한 이를 받아들이고, 그의 생각을 시비거리로 삼지 마십시오.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믿음이 약한 사람은 채소만 먹습니다.

3. 먹는 사람은 먹지 않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사람은 먹는 사람을 비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도 받아들이셨습니다.

4. 우리가 누구이기에 남의 종을 비판합니까? 그가 서 있든지 넘어지든지, 그것은 그 주인이 상관할 일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서 있게 할 수 있으시니, 그는 서 있게 될 것입니다.

5. 또 어떤 사람은 이 날이 저 날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이 다 같다고 생각합니다. 각각 자기 마음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6. 어떤 날을 더 존중히 여기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요, 먹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먹으며, 먹을 때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먹지 않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먹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7. 우리 가운데는 자기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또 자기만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8.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9.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죽은 사람에게도 산 사람에게도, 다 주님이 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0. 그런데 어찌하여 그대는 형제나 자매를 비판합니까? 어찌하여 그대는 형제나 자매를 업신여깁니까?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11.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다. 내가 살아 있으니, 모든 무릎이 내 앞에 꿇을 것이요, 모든 입이 나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12. 그러므로 우리는 각각 자기 일을 하나님께 사실대로 아뢰어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8:21-35)

21.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형제가 나에게 자꾸 죄를 지으면,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하여야 합니까?"

22.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하여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마치 자기 종들과 셈을 가리려고 하는 어떤 왕과 같다.

24. 왕이 셈을 가리기 시작하니, 만 달란트 빚진 종 하나가 왕 앞에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는 빚을 갚을 돈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그 아내와 자녀들과 그 밖에 그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랬더니 종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참아 주십시오. 다 갚겠습니다' 하고 애원하였다.

27. 주인은 그 종을 가엾게 여겨서, 그를 놓아주고, 빚을 없애 주었다.

28. 그러나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나자, 붙들어서 멱살을 잡고 말하기를 '내게 빚진 것을 갚아라' 하였다.

29. 그 동료는 엎드려 간청하였다.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 하지 않고, 가서 그 동료를 감옥에 집어넣고, 빚진 돈을 갚을 때까지 갇혀 있게 하였다.

31.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딱하게 여겨서, 가서 주인에게 그 일을 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다 놓고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애원하기에, 나는 너에게 그 빚을 다 없애 주었다.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

34. 주인이 노하여, 그를 형무소 관리에게 넘겨주고,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가두어 두게 하였다.

35. 너희가 각각 진심으로 자기 형제자매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주님 앞에서입니다.

 

구약, “주님을 두려워하고”(출애굽기 14:31)

시편, “온 땅아, 네 주님 앞에서 떨어라”(시편 114:7)

서신서,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로마서 14:10)

복음서, “하늘나라는 마치 자기 종들과 셈을 가리려고 하는 어떤 왕과 같다”(마태복음 18:35)

 

오늘 요절은, “너희가 각각 진심으로 자기 형제자매를 용서해주지 않으면입니다.(마태복음 18:35)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출애굽기 14:19-31 / 시편 114)]

오늘 구약본문소제목은 이스라엘이 홍해 가운데로 지나다입니다.

홍해가 마르는 기적, 홍해가 갈라져서 마치 양옆이 대형 수족관처럼 되어버린 기적은,

마치 창세기의 바다를 다스리시는 하나님 권능을 기억나게 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9-10)

 

그런데 다른 오늘의 본문들, 특히 복음서본문과 연결해서 보니,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사실보다도

이집트 군병과 군마들이 홍해에 빠져 죽은 사실이,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소통한 결과 홍해를 기적적으로 건넜고,

바로가 하나님과 불통한 결과 홍해에 군병과 군마들이 빠져 죽은 것입니다.

이 사건들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주님 앞에서! 홍해가 요동친 것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소제목은 출애굽 때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혼돈의 세력인 바다도 정리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부동(不動)의 존재인 산들도 요동칩니다.

 

유달리 여러 대구가 눈에 띕니다.

혼돈의 바다가 도망치고, 부동의 산들이 요동칩니다.

젖은 바다가 마르고, 마른 바위가 물로 젖습니다.

 

혼돈과 부동(不動)같은 불통의 상징들이 도망치고 요동치는 모습에서

모든 불통의 뿌리들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소통의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권능이 느껴집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로마서 14:1-12 / 마태복음 18:21-35)]

오늘 서신서본문소제목은 형제자매를 비판하지 말아라입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과 강한 사람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믿음이 약한 자들이란, 아마 로마교회의 유대그리스도인들인 듯합니다.

안식일 및 유대 절기들을 지키려하고,

마치 다니엘처럼, 고기와 술을 금하는 부류들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차이, 이런 이질감 정도는 불법과 불의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가며 일어나는 자연스런 과정입니다.

 

더구나 지금 믿음이 약한 자들을 업신여기거나 비판할 겨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심판할 사람이 아니라,

얼마 안 있어 주님 앞에서 심판받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 소제목은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입니다.

사람 사이에서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큰 용서가 뒤집어진다는 무시무시한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들 모습, 온통 불통천지로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십니다.

 

오늘 예수님의 비유는 매우 큰 대비와 대구가 돋보입니다.

한 달란트, 즉 노동자 15년 품삯의 일만 배와

한 데나리온, 즉 노동자 하루품삯의 백배가 큰 대비를 이룹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한 달 임금 약 200만원으로 치니,

36천억 원과 대략 1000만원의 저울질입니다.

(36만 배의 차이입니다. 물론 여기서 숫자는 별 의미 없습니다)

 

그 큰 용서 받은 사람이 이 작은 용납을 하지 못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불통, 고집불통이 바로 지금 나의 모습입니다.

그 큰 용서를 받은 사람이라면, 이 작은 용서쯤은 일곱 번이 아니라

한도 끝도 없이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예수님 말씀입니다.

 

 

[정리]

오늘 복음서본문의 주인공,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이 어리석은 까닭은

방금 내가 주님 앞에서 용서받은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 내 눈에 주님이 보이지 않으니, 내가 주님 앞에 있지 않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심판 때가 아니니 지금 내가 주님 앞에 있지 않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자기 형제자매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마태복음 18:35)

이 말씀이 귀에 들리지 않고 마음에 걸리지 않은 것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알맹이, 용서의 원리는 주기도문에도 나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마태 6:12)

(여기서 죄 지은 사람빚진 자’, ‘이라 새기기도 합니다.)

 

특히 주기도문을 총 정리하듯 마무르시는 14-15절의 예수님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해 주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마태 6:14-15)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여기서 잘못, 즉 죄란 인간관계상의 온갖 문제들,

, 미움, 다툼, 시기, 질투, 오해, 거짓 등으로 드러나는데,

그 근본이 바로 탐욕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야기인즉,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죄와 용서의 알맹이는,

(본문의 예화에 나온 것처럼) 경제적인 부채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의 원문에도 이 사실이 잘 드러납니다.

 

그만큼 우리 인생에서 용서의 문제는, (감정적인 차원을 넘어)

내가 경제적인 희생을 감수할 것을 전제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불통들의 근원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큰 희생을 치르고 우리 죄를 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일만 달란트 정도는 비교도 안 될 십자가 보혈을 흘리심으로!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18: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이것이 오늘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마음입니다.

주님 앞에서, 황급히 나와 너, 우리를 돌아보아야 할 주님의 명령입니다.

(예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나머지]

* 갈라지고 다시 합쳐진 홍해처럼, 교회도!

지금 한국사회는 이런저런 정치적인 쟁점들이 우후죽순입니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거짓말로 인한 이간질입니다. 거짓말로 공동체가 분열되고 교회조차 갈라지고 있습니다. 그 강도가 예전보다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 큰일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급속도로 노령화 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빠른 속도로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교회학교 문을 닫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소금과 빛이었던 교회가 그 맛을 잃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회가 복음의 맛, 천국의 맛을 잃게 된 것은 언제부턴가 교회 안에 만연한 거짓말 때문입니다. 이는 너도나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어난 현상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간절하지도 절실하지도, 심지어 확실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듣고 싶은 구절만 귀에 들리는 것입니다. 오늘 구약본문의 3,500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러했습니다. 조금만 힘들어도 불평하며 하나님과 모세를 불신했습니다. 하나님 말씀, 예언자의 대언을 가벼이 여겼습니다. 이스라엘도 이집트도 모두 그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로 오늘!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저 사람들 앞에서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같은 피조물이지만 사람들보다 자연이 더 적극적으로 순종한 것입니다. 하늘 무서운 줄 아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노래는 온통 이 사실로 가득합니다. 홍해처럼 갈라진 한국교회가 홍해처럼 다시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올 것입니다.(14:27) 갈라진 바다 위로 팔을 내밀었던 모세처럼 갈라진 교회 위로 팔을 내밀 참다운 예언자,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거짓 없는 진실한 예언자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았던 홍해처럼, 교회는 어서 경외심을 회복해야 합니다.(114:7)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다. 내가 살아 있으니, 모든 무릎이 내 앞에 꿇을 것이요, 모든 입이 나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로마서 14:11)

 

** 세상 두려움과 하나님 두려움(경외심)의 차이

영화 명량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병사들의 저 끝없는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리고 마침내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배로 일자진(一字陣)을 펼친 상태에서 혼자 진격합니다. 다른 부하들의 배는 두려움에 꿈쩍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대장선이 혼자 적들에게 돌진해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웁니다. 그러자 나머지 배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해결할 길 없었던 부하들의 두려움은, 이순신 장군의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는 가르침과 실천을 보면서 서서히 용기로 바뀝니다. 오늘 구약본문도 바다에서 벌어지는 전쟁입니다. 그런데 배를 타고 싸우는 게 아닙니다. 싸움은 하나님께서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은 바다를 걸어서 건너 승리합니다. 우리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구원 방법과 스케일! 그 결과 우리가 얻게 되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14:31), 그것은 경외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에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자부하는 교회조차 그렇습니다. 그건 구원과정의 알맹이를 전혀 맛보지 못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은,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세상 두려움과 정반대입니다. 하나님 두려움(경외심)은 오히려 우리를 씽씽 움직이게 합니다. 그 두려움(경외심)은 친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예수님의 용기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저런 세상 두려움이 나를 가위눌리게 할 때마다 내가 할 응급처치는, 골든타임을 놓치기 전에, 가장 먼저 내게 진정 주님을 향한 두려움(경외심)이 있는지 점검하는 일입니다.

(예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이가난진(以假亂眞)의 시대!’

가짜가 진짜를 어지럽히고, 거짓이 진실인양 거짓이 진실을 뒤흔드는 (이가난진의) 세상! (지금 우리) 백성들은 진실을 알아보지 못하고 거짓을 따라가다 패망한 이스라엘 민족과 흡사합니다.”[배태섭 장로, 김성복 편저, 민중목회의 길(2023. 동연) 141-142]

 

 

 

 

 

[말씀동시] 어리석은 짐꾼 (이선구 지음. 성실교회 청년부. 성실문화116)

들 짐은 많은데 옮길 손은 두 개

힘들어서 우니 수레가 오네

수레에 타고 있던 건 낯익은 동료

자기 짐을 떠넘기려 시비를 걸어보네

옥신각신 하는 사이 수레는 멀리 떠나고

길에 남은 건 짐과 나 혼자

천국문까지 갈 길이 먼데

한 발짝도 못 떼니 어찌하려나

 

 

 

 

[시편시조] 이집트 노예살이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16)

이집트 노예살이 야곱이 떠날 때에

바다는 도망치고 요단강 물러났네

바위를 샘솟게 하신 주님 앞에 떨어라

 

 

 

 

[시편노래] 시편 114, 주의 성소 나가신다 (이정훈 편사, 이천진 작곡. 성실문화116)

[본문] (시편 114)

[노랫말]

1. 이집트 떠났노라 그 세상을 떠났노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주의 성소 되었노라

온땅아 떨지어다 주님 앞에 떨지어다, 주의 백성 이스라엘 주의 성소 되었노라

2. 바다야 도망쳐라 요단강은 물렀거라, 주님을 모신 백성 주의 성소 나가신다

산들아 언덕들아 양떼처럼 날뛰어라, 주님을 모신 백성 주의 성소 나가신다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한양대 교목실장인 이천진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14 (주의 성소 나가신다) (이정훈 편사, 이천진 작곡)

 

 

20230917 시편노래 114 주이 성소 나가신다.m4a
2.87MB

 

 

 

 

 

 

 

[시편송서(誦書)] 시편 114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116)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야곱의 집안이 다른 언어를 쓰는 민족에게서 떠나올 때에,

2. 유다는 주님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다.

 

3. 바다는 그들을- 보고 도망-쳤고-, --강은 -물러났----,

4. 산들은 --처럼 뛰놀---, --들도 새끼양-처럼 뛰놀-았다-

 

5. 바다야, 너는 어찌하여 도망을 쳤느냐? 요단강아, 너는 어찌하여 뒤로 물러났느냐?

6. 산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숫양처럼 뛰놀았느냐? 언덕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새끼양처럼 뛰놀았느냐?

 

[다함께]

7. 온 땅아 네 주님 앞에서 떨어라,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어---,

8. 주님은 반석을 웅덩이가 되게 하시며, --에서 -(샘이) 솟게 하--∼∥

 

20230917 시편송서 114.m4a
2.62MB

 

 

 

 

 

 

[말씀동화] 얼음땡 놀이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다람쥐랑 얼음땡 놀이하다가 감기 걸려 재채기하던 시절 이야기예요.

 

술래잡기 놀이에 푹 빠진 엄지가 하루는 심통이 났어요.

오늘따라 선생님이 마음에 안 든 걸까?

자꾸 자기 손을 잡으려는 선생님께 심통을 부립니다.

 

얼음!”

 

몸과 마음이 불편한 아이들이 모인 장미반이

삼삼오오 선생님들과 함께 까르르까르르 모두가 즐거운 날,

모처럼 현장학습 나온 이 좋은 날 엄지는

한번 얼음!”을 외치더니 바닥에 주저앉아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장미반에 온지 얼마 안 된 새내기 선생님은

바위처럼 요지부동 엄지를 달래느라 어쩔 줄 모릅니다.

 

엄지야, 어서 가서 선생님이랑 같이 아이스크림 사먹자, ?”

 

천하의 먹보 엄지가 맛있는 아이스크림 앞에서도 꿈쩍 않고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소용없어서

새내기 선생님은 뙤약볕 아래 땀만 뻘뻘 흘립니다.

 

그때 빙그레 웃으며 다가온 지도사 선생님이

엄지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며 외칩니다.

 

!”

 

그러자 바위처럼 꿈쩍 않던 엄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툭툭 털고 일어나 아이스크림 가게 쪽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갑니다.

 

우리 엄지 덕분에 오늘 선생님이 술래가 되셨네요.”

 

그제야 눈치를 챈 새내기 선생님은

지도사 선생님께 연거푸 감사인사를 하면서

부리나케 엄지를 따라 아이스크림 가게로 달려갑니다.

 

 

하나님이랑 늘 마음이 통하는 물새들이 외칩니다.

후쿠시마 앞바다에 쏟아지는 핵폐수를 향해 외칩니다.

 

얼음!”

 

홍수에 떠내려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구하려다 함께 떠내려가는 의로운 사람들을 향해서도 외칩니다.

 

얼음!”

 

부당하고 불의한 갑돌이 갑순이들의 끊임없는 갑질을 못 견디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선생님들,

그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약자들을 향하여 외칩니다.

 

얼음!”

 

힘센 술래들이 무서워서 도망치다

스스로 얼음!”을 외칠 힘도 용기도 없는 수많은 약자들을 대신해서

물새들이 외칩니다.

 

얼음!” “얼음!” “얼음!”

 

이번에는 물새가 서울 하늘로 날아올라

붉은 용 한 마리가 똬리를 튼 산위를 날며 외칩니다.

 

얼음!”

 

스스로 얼음!”을 외칠 슬기도 참을성도 없는 천하의 욕심쟁이

()돌이 갑()순이를 대신해서

물새들이 외칩니다.

 

얼음! 제발 좀, 얼음!”

 

사람들을 대신해서 얼음을 외치다 목이 쉰 물새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만하면 되었다. 이제 그만 쉬어라.”

 

 

하나님 명령을 받은 모세 할아버지가 바다 위로 팔을 내밀자

갑자기 바다가 갈라지기 시작했어요.(14:21)

밤새도록 강한동풍으로 바다가 갈라지고 바닥이 마를 때쯤

하나님과 늘 마음이 통하는 온 바다 생물들이(104:25-28) 이렇게 외쳤죠.

 

얼음!”

 

그러자 깊은 바다 마른 밑바닥을 걸어서 건너는 이스라엘 사람들 좌우에서

갈라진 바닷물은 마치 빙하처럼, 거대한 유리벽처럼 꿈쩍도 안합니다.

 

마치 술래나 된 듯이, 천하의 갑돌이 파라오의 명을 따라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 뒤를 쫓아 바닷길로 달려들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다를 다 건너가자

모세 할아버지는 다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팔을 내밉니다.

 

바로 그때 바다를 날아 건너던 기러기 떼 가운데서

작은 새끼 기러기 한 마리가 유리벽처럼 멈춘 바다를 스치며 외칩니다.

 

!”

 

[이정훈 지음. 2023916일 토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