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나를 도와주십시오”(마태복음 15:25)
[성서일과 4본문]
(창세기 45:1-15)
1. 요셉은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자기의 모든 시종들 앞에서 그만 모두들 물러가라고 소리쳤다. 주위 사람들을 물러나게 하고, 요셉은 드디어 자기가 누구인지를 형제들에게 밝히고 나서,
2. 한참 동안 울었다. 그 울음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밖으로 물러난 이집트 사람들에게도 들리고, 바로의 궁에도 들렸다.
3. "내가 요셉입니다!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다고요?" 요셉이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으나, 놀란 형제들은 어리둥절하여, 요셉 앞에서 입이 얼어붙고 말았다.
4. "이리 가까이 오십시오" 하고 요셉이 형제들에게 말하니, 그제야 그들이 요셉 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넘긴 그 아우입니다.
5. 그러나 이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아넘기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6. 이 땅에 흉년이 든 지 이태가 됩니다. 앞으로도 다섯 해 동안은 밭을 갈지도 못하고 거두지도 못합니다.
7. 하나님이 나를 형님들보다 앞서서 보내신 것은, 하나님이 크나큰 구원을 베푸셔서 형님들의 목숨을 지켜 주시려는 것이고, 또 형님들의 자손을 이 세상에 살아 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8. 그러므로 실제로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리로 보내셔서, 바로의 아버지가 되게 하시고, 바로의 온 집안의 최고의 어른이 되게 하시고, 이집트 온 땅의 통치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9. 이제 곧 아버지께로 가셔서, 아버지의 아들 요셉이 하는 말이라고 하시고, 이렇게 말씀을 드려 주십시오. '하나님이 저를 이집트 온 나라의 주권자로 삼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지체하지 마시고, 저에게로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10. 아버지께서는 고센 지역에 사시면서, 저와 가까이 계실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버지의 여러 아들과 손자를 거느리시고, 양과 소와 모든 재산을 가지고 오시기 바랍니다.
11. 흉년이 아직 다섯 해나 더 계속됩니다. 제가 여기에서 아버지를 모시겠습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집안과 아버지께 딸린 모든 식구가 아쉬운 것이 없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하고 여쭈십시오.
12. 지금 형님들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이 요셉임을 형님들이 직접 보고 계시고, 나의 아우 베냐민도 자기의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13. 형님들은, 내가 이집트에서 누리고 있는 이 영화와 형님들이 보신 모든 것을, 아버지께 다 말씀드리고, 빨리 모시고 내려오십시오."
14. 요셉이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얼싸안고 우니, 베냐민도 울면서 요셉의 목에 매달렸다.
15. 요셉이 형들과도 하나하나 다 입을 맞추고, 부둥켜 안고 울었다. 그제야 요셉의 형들이 요셉과 말을 주고받았다.
(시편 133)
1.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2. 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서 그 옷깃까지 흘러내림 같고,
3. 헤르몬의 이슬이 시온 산에 내림과 같구나. 주님께서 그곳에서 복을 약속하셨으니, 그 복은 곧 영생이다.
(로마서 11:1-2a, 29-32)
1.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신 것은 아닙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나도 이스라엘 사람이요,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람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29.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마운 선물과 부르심은 철회되지 않습니다.
30. 전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던 여러분이, 이제 이스라엘 사람의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31. 이와 같이, 지금은 순종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여러분이 받은 그 자비를 보고 회개하여, 마침내는 자비하심을 입게 될 것입니다.
32.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않는 상태에 가두신 것은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5:(10-20) 21-28)
(10. 예수께서 무리를 가까이 부르시고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12. 그 때에 제자들이 다가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분개하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자기가 심지 않으신 식물은 모두 뽑아 버리실 것이다.
14.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 먼 사람이면서 눈 먼 사람을 인도하는 길잡이들이다. 눈 먼 사람이 눈 먼 사람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15. 베드로가 예수께 "그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니,
16.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도 아직 깨닫지 못하느냐?
17.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지, 뱃속으로 들어가서 뒤로 나가는 줄 모르느냐?
18.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는데, 그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
19. 마음에서 악한 생각들이 나온다. 곧 살인과 간음과 음행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다.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 그러나 손을 씻지 않고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21.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22. 마침, 가나안 여자 한 사람이 그 지방에서 나와서 외쳐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 딸이, 귀신이 들려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 때에 제자들이 다가와서, 예수께 간청하였다. "저 여자가 우리 뒤에서 외치고 있으니, 그를 안심시켜서 떠나보내 주십시오."
24.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의 길을 잃은 양들에게 보내심을 받았을 따름이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나아와서, 예수께 무릎을 꿇고 간청하였다. "주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26.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27. 그 여자가 말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
28. 그제서야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참으로 네 믿음이 크다. 네 소원대로 되어라." 바로 그 시각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구약,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창세기 45:5)
시편, “주님께서 그 곳에서 복을 약속하셨으니, 그 복은 곧 영생이다”(시편 133:3)
서신서, “하나님의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로마서 11:30)
복음서, “바로 그 시각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마태복음 15:28)
오늘 요절은, “주님, 나를 도와주십시오”입니다.(마태복음 15:25)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창세기 45:1-15 / 시편 133)]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요셉이 형제들에게 자기를 밝히다’입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자신을 알리는 대목입니다.
첫 절 첫대목인 “북받치는 감정”이 오늘 본문 내내 분위기를 이끕니다.
오늘 본문 앞(42∼44장)에서는 요셉이 형제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렇게 점점 일을 발전시켜 급기야 친동생 베냐민이 이집트 노예가 될 지경으로 만듭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형들은 지난 22년간 감추어온 자신들의 죄,
아우 요셉을 이집트 노예로 팔았던 죄를 고백하게 되고(42:21-23)
심지어 유다는 베냐민 대신 자신이 노예가 되겠다고 간청하기에 이릅니다.(44:33)
이 과정은 요셉과 형들 모두에게 22년간의 상처가 치유되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 순간 요셉은 형제들 앞에 엉엉 울며 자신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핵심은,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크신 계획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약속 성취 프로젝트입니다.
그 약속이 지켜지려면 일단 야곱의 열두 아들과 그 자식들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아주 단순한!
이 단순한 이치 속에서 하나님의 자비가 드러납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형제화합의 복’입니다.
오늘 구약본문의 응답찬송으로서 안성맞춤입니다.
그런데 이를 조금 더 확대시켜보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갈등과 분단 이후
북과 남, 즉 이스라엘과 유다의 화해를 꿈꾸는 노래로도 보입니다.
“헤르몬의 이슬이 시온산에 내림과 같구나”(3)
마치 ‘백두에서 한라까지’처럼,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처럼,
북쪽 끝 ‘단’ 위의 헤르몬산에서 남유다 예루살렘의 이슬이 시온산까지 내립니다.
하나님의 은혜, 단비처럼 쏟아지는 ‘이슬’을 그만큼 공감하고 공명하며 함께 나누는 모습입니다.
미움다툼시기질투, 온갖 오해와 탐욕으로 갈라졌던 형제들이 하나 되는 모습입니다.
오늘 “기름”과 “이슬”은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요
또 하나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자연의 이치입니다.
즉 동기(同氣)간에 화합하는 모습,
아무리 크게 다투었어도 마침내 화합하는 모습입니다.
형제가 다시 하나 되는 거기서 하나님이 큰 복을 약속하십니다.
그 복은 곧 영생입니다.(3)
아브라함과 맺으셨던 하나님의 약속,
그 구원계획의 최종 열매인 영생 말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로마서 11:1-2a, 29-32 / 마태복음 15:10-28)]
오늘 서신서본문의 소제목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구원’입니다.
전반부인 1, 2, 29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이스라엘 선택을 재확인합니다.
아브라함에서 야곱으로 이어지는 대를 이은 구원약속 말입니다.
이어서 이스라엘이나 이방민족 모두의 순종과 불순종, 그리고 하나님 자비와의 관계를
치우침 없이 정리합니다.
결국 불순종의 강물 따라 흘러가는 세상 모든 인생들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 안에서 생명을 구할 수 있을 따름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정결함과 부정함, 가나안 여자’입니다.
예수님의 절망, 상처와 분노가 절절히 느껴집니다.
“너희는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하셨는데(10) 깨닫기는커녕,
“이 말씀을 듣고 분개하고 있다는” 바리새파 사람들 때문입니다.(12)
(“내 말”이란, 앞서 1절부터 9절까지 이야기 속에 내용이 담겨 있으며, 그 요약이 11절 말씀입니다.)
얼마나 분노하셨으면,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도 아닌 가라지처럼 여기실 정도입니다.(13-14)
그토록 사랑하는 당신의 동포들로부터 외면당하신지 이미 오랩니다.
고향 회당에서조차 가르치기 어려워져서(13:54-58) 지금 바깥으로 다니시는 중입니다.
급기야 ‘말씀에 분개하는’ 자들을 등지고
완전 이방 땅인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신 것입니다.
절망과 상처, 분노에 휩싸인 예수님 앞에 가나안 여자 한 사람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주님”이라 부르며 딸을 괴롭히는 악귀를 쫓아주시길 간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외면하십니다.
급기야 예수님과 이방여자는 ‘개타령’까지 주고받기에 이릅니다.
이방여자의 믿음을 최고치로 끌어올리기 위한 속셈이셨으리라 풀기도 하지만,
저는 왠지 예수님의 속셈보다는 상한 속, 절망과 상처, 그 통증이 느껴집니다.
마침내 이방여자의 큰 믿음 때문에,
예수님이 치유하시는 한편 크게 치유 받으시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기득권을 흔드는 주님말씀에 분개하던 바리새인들과 달리,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주님말씀조차 단단히 붙들고 매달리는 저 여자의 한마디!
“나는 가나안의 개새끼로소이다!”
마침내 예수님은 동포들을 향한 분노와 통증 대신 자비심을 회복하시고,
이방인을 향한 자비심까지 배가되셨을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춤으로 부스러기 은혜를 발견했던 가나안 여자는
그 낮은 곳에서 마침내 천국의 열쇠를 찾았을 것입니다.
[정리]
오늘 구약과 시편본문에서, 형제간, 한 민족 간의 오랜 상처들, 미움·다툼·시기·질투·오해들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지혜로 풀어지는 과정이 매우 아름답고 부럽습니다.
우리 민족도, 우리 사회도, 우리 교회도, 우리 가족도
한없으신 하나님의 자비로, 그 은혜로 묵은 상처들 다 풀어지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무한하십니다.
그 자비를 진심으로 바라는 이들에게 아무 차별 없이 베푸십니다.
심지어 내가 진심으로 하나님의 자비를 간청할 때, 오히려 하나님이 행복해지십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대자대비(大慈大悲, 큰 사랑과 큰 슬픔)!
그 자비를 외면하고 사는 인생들로 인한 하나님의 근심이
큰 기쁨으로 바뀌시는 것입니다.
“주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지금 우리가 하나님께 바쳐야 할 가장 좋은 것은 이것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주인공 가나안 여자처럼, 오직 하나님의 자비만 기대하면서
내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매달리는 믿음!
이 끈질긴 믿음 말입니다.
[나머지]
* 이스라엘을 넘어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다
오늘 복음서본문과 서신서본문의 핵심을 짚으려면, 신약성경의 큰 주제 하나를 유심히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이하,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참조)「... 이스라엘이 먼저 선교를 받아, 하나님이 이스라엘 안에서 그의 종말적 통치를 펼치시면 곧이어 모든 민족이 시온으로 몰려들 것이라는 예언자들의 대망(사 2:2-5, 25:6-8, 60:3-4, 렘 3:17, 슥 8:20-23), 구약의 예언자들로부터 대대로 이어진 그 대망이 무너집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예수님의 복음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서가 바뀌어 먼저 복음이 이방 모든 민족에게 전해져야 하게 된 것입니다...」
** 예수님의 자비심(慈悲心)
여기 한 가지 엉뚱한 궁금증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저 간절한 가나안 여자와 냉랭한 예수님 사이에 흐르고 있는 기운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이 가나안 여자의 애원이 오히려 예수님의 돌덩이 같은 마음을 녹여내다니요. 정결예법 논쟁에서 동포들의 불통으로 멍든 지금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저 상처를, 오히려 치료받으러 온 저 애절한 가나안 여자의 간절함이 치유해드리다니요. 이것은 마치 이세벨이 데려온 수많은 바알과 아세라 예언자들을 다 물리친 천하의 예언자 엘리야가, 증오에 찬 이세벨이 내뱉은 한마디, 엘리야에게 복수하겠다는 그 한마디에 벌벌 떨며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치유를 받은 것처럼, 예수님이 이 가련한 가나안 여자의 치열한 개타령에, 예수님의 불통을 무릅쓰고 소통하려는 저 치열한 기세에, 그만 스르르 치유가 되신 것처럼 보이니 말입니다. 불통으로 다치고 닫힌 마음, 그 상처가, 가나안 여자의 저 몸부림치는 소통의 기세에 스르르, 불통의 돌덩어리가 녹아버린 것일까요? 그리하여 마침내 예수님의 동포들을 향한 분노와 통증, 그 슬픔의 진창에서 연꽃처럼 자비심이 솟구치고, 이방인을 향한 자비심까지 배가되신 듯 보이니 말입니다. 오늘의 요절은 이것입니다. “주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자비만 기대하면서 내 모든 것 다 내려놓고,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매달리는 믿음! 이 끈질긴 믿음의 선포, “주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이 믿음에 예수님의 슬픔 장작이 사랑의 불꽃으로 타오르십니다. 사랑 자, 슬플 비, ‘자비(慈悲)’ 그리고, 큰사랑과 큰 슬픔, 대자대비(大慈大悲)! 자비란 슬픔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은 사랑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자비심은 우리의 고통어린 간청, 크나큰 슬픔과 어울려 소통하면서 발현하십니다.
(※ 예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 제가 개인 사정으로 여기까지 예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올립니다. 아래부터는 새로 지은 것입니다. 약 한달 정도 그럴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말씀동시] 개타령과 부스러기타령 (서무석 지음. 「성실문화」 115호)
명창대회 결승전에서
카랑카랑 우렁찬 예수님의 개타령이 끝나자마자
가나안 여자 한 사람이 부스러기타령 한 대목을 부른다
구성진 부스러기타령 듣자마자 예수님 외치시기를
참으로 명창이로다
크나큰 믿음의 노래로다
예수님의 칭찬타령이 울려 퍼질 때
심청가 청이 아버지 눈뜨는 대목처럼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얼∼쑤!
[시편시조] 북녘 땅 헐몬 이슬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15호)
북녘 땅 헐몬 이슬 시온까지 적시듯이
형제자매 어울리니 아름답고 즐거워라
주님도 행복하셔라 영생 복을 베푸실
[시편노래] 시편 133, 이리도 아름답고 저리도 즐거워라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 115호)
[본문] (시편 133)
[노랫말]
1. 이리도 아름답고 저리도 즐거워라, 어울려 함께 사는 형제자매 흥겨워라,
보배로운 기름처럼 헤르몬의 이슬처럼, 주님께서 부으시는 향기로운 평화여라
2. 머리 위에 부은 기름 수염타고 옷깃까지, 헤르몬의 맑은 이슬 시온산에 이르러라,
복스럽다 형제자매 영원무궁 어울려라, 주님께서 부으시는 향기로운 평화여라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인 이석훈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33 (평화의 노래)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133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15호)
(※아리랑 가락에 맞추어)
(뒷소리)[찬양대]
1. 그- -얼 마나, 아- -름 답고, 즐- 거- 운-, 가- -- --,
형제 자매 가-, 어울 려- 서-, 함께 사는 모-, 습- -- --,
(앞소리)[독창]
2. 머리 위에 부은, 보배 로운 기름((이)), 수염 곧아 론의, 수염 을타 고-,
흘- -러 서-, 그- 옷깃 까지, 흘러 내림 같-, 고- -- --∼
(뒷소리)[찬양대]
3. 헤- -르 몬의, 이- -슬 이-, 시- 온- 산- 에- -- --,
(시- -온 산에) 내- 림- 과-, 같- -- 구-, 나- -- --,
(앞소리)[독창]
주님 께- 서-, 그곳 에- 서-, 복- 을- 약속, 하- -셨 으니,
그- -복 은-, 곧- 영- 생-, (영- -생) 이-, 다- -- --∼
(뒷소리)[다함께]
아- -리 랑-, 아- -리 랑-, 아- 라- 리-, 요- -- --,
아- -리 랑-, 고- 개- 로-, 넘- -어 간-, 다- -- --∼∥
※ 가락은 아리랑가락이고, 장단은 세마치로 읊는다.
(뒷소리는 세마치로, 앞소리는 중중모리로 해도 좋다.)
※ 쉼표(‘,’)까지 세마치 한 장단 3박 이다.(중중모리일 경우는 한 줄이 한 장단)
(즉, 세마치 4장단이 중중모리 1장단이다.)
※ 세마치장단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하여 편의상 1박을 3분박 대신 2분박으로 구분했다.
(예; 악보 세 번째 마디에 종종 나오는 셋잇단음표 식으로 표기한 것이 3분박의 맛을 살린 것이다.)
※ 뒷소리는 찬양대 합창으로, 앞소리는 독창이나 이중창으로 하면 좋겠다.
[말씀동화] 칡넝쿨과 환삼덩굴의 돌림노래
옛날옛날 한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몸보신하려고 칡뿌리 캐려다가 더위먹고 몸살나던 시절 이야기예요
온 산을 뒤덮으려는 기세로 칡넝쿨이 용을 쓰는 한여름날
바로 옆 칡넝쿨을 따라 올라오는 저건 뭐지?
"꼬마야, 넌 뭐냐?"
"꼬마라뇨, 내가 얼마나 힘이 센데"
비록 이파리 크기는 칡의 반도 안 되지만
환삼덩굴의 기세가 만만치 않아요
칡 줄기에는 없는 비장의 까끄리도 줄기마다 빽빽해서
사람들이 잘 만지려고도 하지 않을 정도죠
칡넝쿨과 환삼덩굴은 마치 토끼와 거북이처럼
누가누가 빠르나 온산 나무들을 타고 오르는 경주를 합니다
토끼처럼 쉬지않고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쉼 없이 기어오릅니다
달리기로 결판이 나지 않으니까
이번에는 장기자랑 겨루기를 시작했어요
먼저 칡넝쿨이 한없이 거만한 표정으로 말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나무를 못살게 군다고 욕하면서도 내 뿌리로 만든 칡즙의 맛은 못 잊는다고! 영양가는 또 어떻고!"
"언니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요"
환삼덩굴은 최근에 과학자들의 연구보고서를 들먹였어요
한없이 거만한 표정으로!
"정말이에요, 내 이파리와 줄기가 사람들 머리카락에 그렇게 좋다니까?"
이제 곧 으뜸 대머리 치료제가 될 거라며 뻐기는
환삼덩굴의 목소리가 점점 거만해져 갑니다
"게다가 나는 이파리와 줄기만 쓱쓱 거두어 쓰면 되지만, 언니 뿌리 캐기는 얼마나 어려운데! 한여름에 삽질에 곡괭이질에, 보약 먹으려다 더위먹기 딱 좋지!“
마침내 칡넝쿨이 마지막 비장의 카드를 꺼냈어요
"환삼아! 너는 들리느냐, 저 웅장한 꿀벌들의 합창이!"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온산 공기를 진동하는 저 소리는 ,
오오! 꿀벌들의 합창이었어요
칡넝쿨 사이사이로 아카시꽃처럼 주렁주렁
붉디붉은 칡꽃이 만발한 거였죠
아름다운 칡꽃의 향내와, 그 향기에 취해 춤추는 꿀벌들의 합창에
마침내 환삼덩굴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맙니다
그러자 칡넝쿨이 그 넉넉한 이파리로 자그마한 환삼덩굴 이파리를 어루만지며 노래합니다
"헤르몬의 이슬이 시온에 내림과 같구나~"(시편33:3)
칡넝쿨은 하늘이슬이 얼마나 공평하고
이 공평한 하늘이슬을 먹고사는 우리가
얼마나 공평하게 만들어졌는지를
조용조용 환삼덩굴에게 들려줬어요
"하나님은 다 계획이 있으셔"
굼뱅이도 뒹구는 재주가 있다 듯이
애물단지 칡넝쿨과 환삼덩굴 또한
애지중지 사랑스런 장점을 심어주신 하나님!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 모두의 화목이라고,
우리가 서로서로 약점만 보고 무시하고 욕하지 말고
그 하나님의 작품 안에 담긴 장점을 보고
어울려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한다고 칡넝쿨은 말했어요
붉디붉은 칡꽃의 향내와 꿀벌 합창단의 코러스 속에
칡과 환삼의 노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1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2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서 그 옷깃까지 흘러내림 같고,
3헤르몬의 이슬이 시온 산에 내림과 같구나. 주님께서 그곳에서 복을 약속하셨으니, 그 복은 곧 영생이다~
(시편 133)
[이정훈 지음, 2023년 8월19일 토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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