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요한복음 14:1)
[성서일과 4본문]
(사도행전 7:55-60)
55. 그런데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쳐다보니,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였다.
56.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하나님의 오른쪽에 인자가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57. 사람들은 귀를 막고, 큰 소리를 지르고서, 일제히 스데반에게 달려들어,
58. 그를 성 바깥으로 끌어내서 돌로 쳤다. 증인들은 옷을 벗어서,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두었다.
59. 사람들이 스데반을 돌로 칠 때에, 스데반은 "주 예수님, 내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60. 그리고 무릎을 꿇고서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이 말을 하고 스데반은 잠들었다.
(시편 31:1-5, 15-16)
1. 주님, 내가 주님께 피하오니, 내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의 구원의 능력으로 나를 건져 주십시오.
2.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속히 건지시어, 내가 피하여 숨을 수 있는 바위, 나를 구원하실 견고한 요새가 되어 주십시오.
3. 주님은 진정 나의 바위, 나의 요새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인도해 주시고 이끌어 주십시오.
4. 그들이 몰래 쳐 놓은 그물에서 나를 건져내어 주십시오. 주님은 나의 피난처입니다.
5. 주님의 손에 나의 생명을 맡깁니다. 진리의 하나님이신 주님, 나를 속량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15. 내 앞날은 주님의 손에 달렸으니, 내 원수에게서, 내 원수와 나를 박해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16.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 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베드로전서 2:2-10)
2. 갓난아기들처럼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그리워하십시오. 여러분은 그것을 먹고 자라서 구원에 이르러야 합니다.
3. 여러분은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습니다.
4.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는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으셨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살아 있는 귀한 돌입니다.
5. 살아 있는 돌과 같은 존재로서 여러분도 집 짓는 데 사용되어 신령한 집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니다.
6.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아라, 내가 골라낸 귀한 모퉁이 돌 하나를 시온에 둔다. 그를 믿는 사람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7. 그러므로 이 돌은 믿는 사람들인 여러분에게는 귀한 것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집 짓는 자들이 버렸으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돌"이요,
8. 또한 "걸리는 돌과 넘어지게 하는 바위"입니다. 그들이 걸려서 넘어지는 것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그렇게 되도록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9.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10.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자비를 입지 못한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자비를 입은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4:1-14)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고 너희에게 말했겠느냐?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3. 내가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에게로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도마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이제 너희는 내 아버지를 알고 있으며, 그분을 이미 보았다."
8. 빌립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좋겠습니다."
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네가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이것은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
14.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알맹이는 ‘성도의 위기 때 빛나게 나타나시는 하나님’입니다.
사도행전, “...하늘을 쳐다보니,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였다”(사도행전 7:55)
시편,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 주십시오”(시편 31:16)
서신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베드로전서 2:9)
복음서, “이제 너희는 내 아버지를 알고 있으며, 그분을 이미 보았다”(요한복음 14:7)
오늘 요절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입니다.(요한복음 14:1)
[사도행전과 시편본문 정리 (사도행전 7:55-60 / 시편 31:1-5, 15-16)]
오늘 사도행전본문의 소제목은 ‘스데반의 순교’입니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이(6:5) 일곱 집사 중 하나로 뽑혀서
음식봉사와 놀라운 표적을 행하다가(6:8) 무고당하고 체포된 뒤 긴 설교를 마치고 나서(7:1-53)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오른쪽에 인자가 서 계신 것을 보고 이 사실을 말합니다.
그러자 이성을 잃을 만큼 격분한 자들이 스데반에게 돌을 던지고
스데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실 때처럼 하나님께 기도하며 숨집니다.
(59-60, 59절은 오늘 시편31:5절, 그리고 눅23:46절과 통하고, 60절은 눅23:34절과 통합니다.)
이때 스데반을 죽인 무리 중 하나였던 사울이(58) 뒤에 스데반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55절의 예수님 모습이 눅22:69절과 달리,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은 것이 아니라 서 계신 것은
스데반의 죄 없음을 적극적으로 변호하시는 느낌을 줍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보호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본문은 목숨이 위태로운 곤경 가운데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도우심을 비는 기도입니다.
위기에서 <건져주시기를> 비는 구절이 4차례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금 시인은 자신을 도우실 수 있는 분이 오직 하나님뿐임을 알고 있고
그래서 이 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특히 5절은 오늘 사도행전본문 스데반의 기도와 통하는데(행7:59)
스데반 역시 시편의 시인처럼
나의 생명(영혼)을 받으시고 품어주실 주님을 강하게 신뢰하고 있습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베드로전서 2:2-10 / 요한복음 14:1-14)]
오늘 서신서본문의 소제목은 ‘하나님의 새 백성’입니다.
본문은 구약성경(시118:22, 사28:16)을 인용하여 4-8절에 걸쳐 반복해서 “돌”을 이야기합니다.
“살아있는 돌”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성도 역시 “살아있는 돌”로서
“신령한 집” 즉 주님의 몸 교회를 이루고(고전3:16-17) 거룩한 제사장이 된다고 강조합니다.(5)
성도들이 거룩한 제사장으로서 맡은 “신령한 제사”란
바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사랑>입니다.(1:22)
성도가 예수님처럼 “신령한 집”을(5) 이루고 “신령한 제사”를(5) 드릴 수 있으려면
“신령한 젖”을 먹어야 합니다.(2)
여기서 “젖”이란 (고전3:1-2절의 그것과 달리) 어릴 때만 먹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내내 먹어야 할 주님의 말씀이요 주님의 인자하심입니다.(3)
주님의 인자하심으로 우리는, 전에는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젠 하나님의 거룩한 새 백성이 되었습니다.(9-10, 호2:23)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예수님은 하나님께 이르는 길’입니다.
본문은 17장까지 길게 이어지는 예수님 고별사의 첫머리입니다.
떠나심과(2) 다시 오심(3)에 관해 말씀하시는데
오늘본문은 떠나심에 관한 말씀이고, 다음 주에 다시 오심에 대한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오늘 알맹이 단어인 “내 아버지의 집”은(2) 주님과 우리 사이 <친교>의 절정이요 총체입니다.
이 친교의 문을 여는 열쇠가 바로, 오늘 본문의 또 하나의 알맹이 <믿음>이요(10-12)
그 친교의 사다리가 <기도>이고(13-14) 친교의 길[道]이 예수님 자신이십니다.(6절, 1:18)
이 길(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고, 또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13-14절의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뜻대로 구하기, 즉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요일5:14)
이런 기도의 삶, 즉 믿음으로 예수님과 하나로 결합하여 하나님의 집을 향하는 인생은
지금 여기서부터 거기에 이르기까지 내내 하나님과의 온전한 친교를 이룰 것입니다.
[정리]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요14:4)
“너희는 내 아버지를 알고 있으며, 그분을 이미 보았다”(7)
오늘 복음서본문의 예수님은 제자들을 너무 과대평가하십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제자들의 믿음이 자랄 것을 미리 앞당겨 선포하십니다.
이런 주님의 근거 없는(?) 자신감에 제자들이 당황합니다.(5, 8)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9)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11)
오늘 복음서본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알맹이는 하나님과의 친교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성부하나님과 가까우신지를,
세상에 없을 그런 극강의 친교를 제자들도 이룰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십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온전히 하나 된 경지의 기도가 바로
예수님 이름으로, 즉 예수님 뜻,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경지일 것입니다.
일상을 교회 밖에서 보내는 듯해도, 일상이 주님과 깊은 친교에 있는 성도라면
이미 하나님 뜻을 환히 알고, 내 뜻이 온통 하나님 뜻으로 물들었으니
그런 깊은 기도, 그런 큰일을 누리며 살 것입니다.(12-14)
오늘 복음서본문이 위기에 빠진 제자들을 위해 주신 든든하고 빛나는 말씀이듯이(1)
사도행전본문과 시편본문 역시 그러합니다.
한창 어지러운 시대 속에서 부활절 5주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참 환하고 든든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요한복음 14:1)
주님의 이름으로 이뤄가는 “신령한 집”에서(벧전2:5)
주님이 마련하실 “내 아버지의 집”을(요14:2) 미리 맛보며 사는 우리는
이 어둠의 시대 너머 주님의 “놀라운 빛 가운데”를 살고 있는 성도(聖徒)입니다.(벧전2:9)
[나머지]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요14:1)
예수님께서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4:1) 그 어떤 극한 상황, 악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근심하지 않는 것은 내 아버지 집에 내 방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련해 주신 방입니다. 스데반도 믿고 근심하지 않았던 그 방입니다. 베드로도 바위처럼 굳게 믿었던 그 방입니다. 다윗도 그리워한 그 방입니다. 그 방은 신령한 젖과 같은 주님의 말씀을 먹으며 이르는 방입니다. 그 방은 오직 예수님 이름으로 직통하는 방입니다. 그 방은 주님과 내가 하나 되어 동거하는 방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그 방으로, 빛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 일생을 오직 한 방향 “아버지께로” 향하시다가 그 길이 되어버리신 예수님
부활절 5주 성서일과 4본문을 반복해서 읽고 묵상하다 보니 내 인생의 방향이 점점 더 주님께 맞춰가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비록 더디지만, 주님을 향한 내 믿음과 사랑이 밤에도 낮에도 조금조금 자라고 있는 이 느낌이 큰 위로가 됩니다. 가장 짧은 본문인 사도행전의 스데반이 강렬합니다. 그의 믿음과 사랑이 매우 강렬합니다. 오매불망 주야장천 그리고 그리던 주님! 그 주님께서 하늘을 열고 당신 모습을 저리 생생히 보이시다니요! 이 놀라운 광경을 백성 앞에 증언하니 듣고 싶지 않은 진리가 걸림돌 되고 돌을 들어 스데반을 칩니다. 그럼에도 스데반은, 오늘 복음서 1절의 예수님말씀처럼, 믿음의 길을 갑니다. 딱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릅니다. 그리고 아무런 영향 없는 줄만 알았던 스데반의 증언은 얼마 뒤 사울을 변화시켜 스데반이 간 길을 고스란히 이어 달리게 합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예수님 말씀의 알맹이를 다섯 글자로 줄인다면, “아버지께로”입니다. 그 뜻이 귀하고 귀하여 알아듣지 못하는 도마와 빌립에게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십니다. 일생을 오직 한 방향 “아버지께로” 향하셨던 예수님께서, 그렇게 아예 “그 길”이 되어버린 예수님께서(4-6), 마침내 아버지와 내가 하나임을(요 10:30), 그 놀라운 신비를 하나하나 풀어주십니다.(요 14:10-11) 이 말씀 이 진리를 들으니 어두운 세상, 두려운 세상 모든 근심 멈춥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 다시 주님께로 향합시다. 우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가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2-3) <지금 여기서> 다시 주님께로 향하고, 즉 내 앞날을 주님께 온전히 맡기고(시 31:15), “갓난아기들처럼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그리워”합시다.(벧전 2:2)
(※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쉼터 (이선구 지음. 성실교회 청년부. 「성실문화」 114호)
빈방은 많고 음식도 넉넉해
불을 지펴놓고 사람을 기다리네
이리저리 오가며 묵을 곳 찾는
지친 사람들은 여길 보시오
돈도 물건도 필요치 않아
다만 내 이름 불러주길 바랄 뿐
이 밤이 끝날 때까지 쉬었다가오
아침이 오거든 깨워드리리
[말씀시조] 무자비한 그물에서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14호)
무자비한 그물에서 저를 건져 주옵소서
내 생명 나의 앞날 주님 손에 있나이다
든든한 나의 요새여 나를 받아 주소서
[시편노래] 시편 31 ‘주님께 피할 때에’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성실문화」 114호)
[본문] (시편 31:1-5, 15-16)
[노랫말]
1. 주님께 피할 때에 나를 받아 주옵소서, 구원의 능력으로 나를 건져 주옵소서,
나에게 귀 기울여 속히 건져 주옵시고, 내가 피할 바위처럼 든든한 요새 되옵소서
2. 나의 바위 나의 요새 주님은 내 피난처, 더러운 그물에서 나를 건져 주옵소서,
내 생명 나의 앞날 주님께 맡기오니,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환히 비추소서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인 전일교회 홍의종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31 (주님께 피할 때에)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31:1-5, 15-16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14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주-님 내가- 주님-께--, (주님-께--) 피하-오니-,
내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의 구원의 능력으로 나를 건져 주십시오.
2.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속히 건지시어, 내가 피하여 숨을 수 있는 바위, 나를 구원하실 견고한 요새가 되어 주십시오.
3. 주님은 진-정 나의- 바위-, 나--의-- 요-새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인도해- 주시고 이끌어- 주십시오-∼
4. 그들이 몰래 쳐 놓은 그물에서 나를 건져내어 주십시오. 주님은 나의 피난처입니다.
5. 주님의 손-에 나의- 생명-, (나-의 생명)을 맡깁-니다-,
진리의 하나님이신- 주--님--, 나를 속량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15. 내 앞날은 주님의 손에 달렸으니, 내 원수에게서, 내 원수와 나를 박해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다함께]
16.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 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말씀동화] “가장 유창하고 가장 평화로운 노래”
옛날옛날 한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먹물 찍은 붓으로 가장 부드럽게 눈썹 그리던 시절 이야기예요.
“모도가(모두가) 봄이다. 山(산)도 봄 물도 봄이고 사람도 봄이고 空氣(공기)까지도 봄 空氣(공기)이다 그 부들업고(부드럽고) 다사한(따사한) 봄바람에 섯기어(섞이어) 가장 流暢(유창)하고 가장 平和(평화)로운 노래 소리가 獨立門(독립문) 全體(전체)를 싸고 돈다 그것은.”
[방정환 지음. ‘모도가 봄이다’.「개벽」 창간호(1920.6.25)에 실은 소설 ‘유범(流帆)’에 나오는 시 - 박우진 작곡]
시골교회 예배당에 아이들 노랫소리가 가득합니다.
풍금소리에 맞춰 부르는 아이들 노랫소리가 부드럽고 씩씩합니다.
언제부턴가 어린이날 무렵이면
시골교회 예배당은 이 노래로 밝고 맑고 부드러워집니다.
어린이날을 만드신 방정환 선생님이 지으신 노래거든요.
가뜩이나 부드럽고 따사로운 노래에
박우진 선생님이 봄바람처럼 참 평화로운 가락을 붙여서
시골교회 어린이는 물론 모두모두 이 노래를 좋아합니다.
“나는 여기가 좋아, ‘사람도 봄이고 공기까지도 봄 공기이다’ 이게 참 맘에 들어.”
소구가 의젓하게 한 마디 하자
맑은 눈 끔벅이며 유진이가 질문합니다.
“그런데 ‘가장 유창하고 가장 평화로운 노래’는 무슨 노래야?”
유진이의 돌발질문에 선생님 눈이 왕콩자반처럼 둥그레졌어요.
선생님이 느릿느릿 입을 떼시려는 순간
빛의 속도로 시우가 먼저 말해버리네.
“그것도 몰라? 그 노래가 이 노래지, ‘모도가 봄이다’!”
시우의 씩씩한 답변에 유진이는 여전히 눈을 끔벅이고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이윽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방정환 선생님이 이 시를 지으신 때가 삼일만세운동이 일어난 다음 해인 1920년이니까,
아마 대한독립을 바라는 노래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가장 평화로운 노래라고 하셨고!“
선생님의 따듯한 상상력에 시우의 눈이 초승달처럼 빛나고
아이들도 모두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가장 평화로운 노래’는 알겠는데, 그럼 ‘가장 유창하고’는 무슨 뜻이죠?”
똘똘이 동현이의 반짝반짝 빛나는 질문에
선생님의 시냇물처럼 시원시원한 대답이 흐릅니다.
“유창(流暢)이란, 흐를 류, 펼 창, 물 흐르듯 막힘없이 자연스럽다는 뜻이야.”
주거니 받거니 시냇물처럼 졸졸졸 막힘없이 흐르는 질문과 대답으로
샛별처럼 빛나는 아이들 눈빛 속에
몽실몽실 상상력이 은하수처럼 오로라처럼 펼쳐집니다.
“지난 삼일절에 엄마아빠랑 서울 가서 독립문 구경했어요.”
독립문을 구경한 나리에게 부러운 눈초리들이 쏟아지고
발그레한 목소리로 나리의 얘기는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그런데요 독립문 가운데 서서 노래하니까 막, 동굴처럼 울렸어요.”
깊은 동굴도 아닌데, 설마 그럴 리가 하는 아이들 의심의 눈초리를 바라보며
빙그레 따듯한 미소로 선생님이 말을 이었어요.
“맞아. 선생님도 예전에 서울서 학교 다닐 때 독립문 가운데서 노래불러봤어.
되게 잘 울려, 우렁우렁 동굴처럼!”
가장 유창한 막힘없이 자연스러운 노래, 가장 평화로운 노래
그 노래가 정확히 무슨 노래인지는 몰라도
아이들 눈빛 속에는 이미 독립문 전체를 감싸고 흐르는 노래의 음표들과
평화롭고 신비로운 가락이 흐릅니다.
“일제강점기는 아주 어두운 시절이었으니까, 방정환 선생님의 그 노래는
분명히 밝고 환한 노래였을 거예요.”
귀염둥이 유진이의 혼잣말에
모두 다 콩자반처럼 빛나는 눈으로 고개를 주억거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선생님이 오늘의 시편노래를 불러주십니다.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 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시편 31:16)
일제강점기가 제아무리 어두워도 마침내 광복(光復)의 날이 왔듯이
지금 세상이 제아무리 어두워도 더 밝은 광복의 날이 올 거라고 하시며
선생님은 ‘모도가 봄이다’를 부르고 그 가락에 얹어 시편을 이어 부르십니다.
모도가 봄이다 가락과 시편노랫말의 어울림이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아이들이 흥얼흥얼 따라 부를 때, 가락과 가사가 서로 부딪히고 섞이면서
오늘의 시편노래는 점점 부드럽고 따사로워져 갑니다.
시편노래는 점점 유창하고 평화로워져서 아이들 전체를 싸고 돌 것입니다.
[이정훈 지음. 2023년 5월 6일 토요일 아침]
(유튜브에서 ‘모도가 봄이다’를 찾으면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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