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신정절 12주(왕국절 12주, 창조절 11주, 2022년 11월 13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누가복음 21:18)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서 65:17-25)

17. “보아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이니, 이전 것들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떠오르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18.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길이길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보아라, 내가 예루살렘을 기쁨이 가득 찬 도성으로 창조하고, 그 주민을 행복을 누리는 백성으로 창조하겠다.

19. 예루살렘은 나의 기쁨이 되고, 거기에 사는 백성은 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니, 그 안에서 다시는 울음소리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

20. 거기에는 몇 날 살지 못하고 죽는 아이가 없을 것이며,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하는 노인도 없을 것이다. 백 살에 죽는 사람을 젊은이라고 할 것이며, 백 살을 채우지 못하는 사람을 저주받은 자로 여길 것이다.

21. 집을 지은 사람들이 자기가 지은 집에 들어가 살 것이며, 포도나무를 심은 사람들이 자기가 기른 나무의 열매를 먹을 것이다.

22. 자기가 지은 집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 살지 않을 것이며, 자기가 심은 것을 다른 사람이 먹지 않을 것이다. “나의 백성은 나무처럼 오래 살겠고, 그들이 수고하여 번 것을 오래오래 누릴 것이다.”

23. 그들은 헛되이 수고하지 않으며, 그들이 낳은 자식은 재난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주님께 복 받은 자손이며, 그들의 자손도 그들과 같이 복을 받을 것이다.

24.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며, 그들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내가 들어주겠다.

2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풀을 먹으며,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며, 뱀이 흙을 먹이로 삼을 것이다. 나의 거룩한 산에서는 서로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시다.

 

(시편 98)

1. 새 노래로 주님께 찬송하여라. 주님은 기적을 일으키는 분이시다. 그 오른손과 그 거룩하신 팔로 구원을 베푸셨다.
2. 주님께서 베푸신 구원을 알려 주시고, 주님께서 의로우심을 뭇 나라가 보는 앞에서 드러내어 보이셨다.
3. 이스라엘 가문에 베푸신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기억해 주셨기에, 땅 끝에 있는 모든 사람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볼 수 있었다.
4. 온 땅아, 소리 높여 즐거이 주님을 찬양하여라. 함성을 터뜨리며, 즐거운 노래로 찬양하여라.
5. 수금을 뜯으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수금과 아우르는 악기들을 타면서, 찬양하여라.
6. 왕이신 주님 앞에서 나팔과 뿔나팔 소리로 환호하여라.
7. 바다와 거기에 가득 찬 것들과 세계와 거기에 살고 있는 것들도 뇌성 치듯 큰소리로 환호하여라.
8. 강들도 손뼉을 치고, 산들도 함께 큰소리로 환호성을 올려라.
9. 주님께서 오신다. 그가 땅을 심판하러 오시니, 주님 앞에 환호성을 올려라. 그가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며, 뭇 백성을 공정하게 다스리실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 3:6-13)

6.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명령합니다. 무절제하게 살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을 따르지 않는 모든 신도를 멀리하십시오.

7. 우리를 어떻게 본받아야 하는지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서 무절제한 생활을 한 일이 없습니다.

8. 우리는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은 일이 없고, 도리어 여러분 가운데서 어느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으려고, 수고하고 고생하면서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9. 그것은, 우리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여러분에게 본을 보여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우리를 본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10.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일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하고 거듭 명하였습니다.

11. 그런데 우리가 들으니, 여러분 가운데는 무절제하게 살면서, 일은 하지 않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고 합니다.

12.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명하며, 또 권면합니다. 조용히 일해서, 자기가 먹을 것을 자기가 벌어서 먹으십시오.

13. 형제자매 여러분,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마십시오.

 

(누가복음 21:5-19)

5. 몇몇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서, 아름다운 돌과 봉헌물로 꾸며 놓았다고 말들을 하니,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6. “너희가 보고 있는 이것들이, 돌 한 개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날이 올 것이다.”

7.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선생님, 그러면 이런 일들이 언제 있겠습니까? 또 이런 일이 일어나려고 할 때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8.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는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말하기를 내가 그리스도다하거나, ‘때가 가까이 왔다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따라가지 말아라.

9. 전쟁과 난리의 소문을 듣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런 일이 반드시 먼저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종말이 곧 오는 것은 아니다.”

10.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이 일어나 민족을 치고, 나라가 일어나 나라를 칠 것이다.

11. 큰 지진이 나고, 곳곳에 기근과 역병이 생기고, 하늘로부터 무서운 일과 큰 징조가 나타날 것이다.

12.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고,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겨줄 것이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왕들과 총독들 앞에 끌려갈 것이다.

13. 그러나 이것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므로 너희는 변호할 말을 미리부터 생각하지 않도록 명심하여라.

15. 나는 너희의 모든 적대자들이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겠다.

16. 너희의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줄 것이요, 너희 가운데서 더러는 죽일 것이다.

17.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참고 견디는 가운데 너희의 목숨을 얻어라.”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극한상황에서도 위로와 희망과 기쁨을 주시다입니다.

 

구약, “나의 거룩한 산에서는 서로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다” (이사야서 65:25)

시편, “주님께서 오신다... 그가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며, 뭇 백성을 공정하게 다스리실 것이다” (시편 98:9)

서신서, “형제자매 여러분,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마십시오” (데살로니가후서 3:13)

복음서, “너희는 참고 견디는 가운데 너희의 목숨을 얻어라” (누가복음 21:19)

 

오늘 요절은,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입니다. (누가복음 21:18)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이사야서 65:17-25 / 시편 98)]

오늘 구약본문 소제목은 새 창조입니다.

본문은 바빌론 포로지에서 귀환한 뒤에도 제대로 개과천선하지 못하는 백성에게 주시는

<세 번째 이사야> 예언의 끝자락입니다.

앞서 641절의 그 강렬한 꿈이 이어져, 오늘 본문의 첫 절과 끝 절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실 새 창조의 모습입니다.

 

첫 절은 계21:1-2절과 통하고, 끝 절은 사11:6-9절과 이어집니다.

이와 달리 가운데 18-24절은 예루살렘에 국한한 이생에서의 번영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금의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고통 속에서 약속하신

간절한 꿈, 꿈같은 세상입니다.

 

여전히 허물 많은 백성임에도 하나님은,

즐겁고 행복한 백성(18),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백성(19),

그런 새 백성으로 창조하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오늘 시편본문 소제목은 전 세계를 심판하시는 임금입니다.

하나님은 바빌론 포로들에 대한 구원약속을 이루신 믿음직한 분이십니다.(3)

그리고 모두가 지금껏 알고 있던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을 넘어

온 누리를 심판하고 다스리실 온 누리의 임금이십니다.

 

그러니 이를 깨달은 시인은 새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1)

그리고 이를 본 온 누리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4-8)

이렇게 본문은 점점 찬양의 범위와 강도가 강렬해져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절(9)은 오늘 구약본문과 짝을 이루면서

억눌린 백성, 억울한 약자들의 꿈같은 세상, <공정한 세상>을 보여주며

주님 앞에 환호성을 올리며 노래를 마무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데살로니가후서 3:6-13 / 누가복음 21:5-19)]

오늘 서신서본문 소제목은 게으름에 대한 경고입니다.

앞서 살전4:11-12절에서 광신적 종말신앙으로 인한 무노동에 대해 경고한 것에 더해서,

본문은 나태할 뿐 아니라 쓸데없는 일까지 만드는 것을 경고합니다.(11)

 

바울은 그 쓸데없는 일과 정반대로 선한 일을 촉구합니다.(13)

먹고사는 일에 대한 모범(7-9)뿐 아니라

바울의 모든 삶과 교훈이 그 선한 일의 모범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 소제목은 성전의 종말, 재난의 징조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종말에 관한 큰 연설>(5-36)의 앞부분입니다.

 

(오늘 서신서본문에 나온 초대교회의 종말에 대한 오해와 연결하여)

오늘 복음서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속지 않고 오해하지 않도록

마지막 심판 이전에 벌어질 일들을 알려주십니다.

 

먼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것이고, 이어서 예수제자들에 대한 박해가 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이름 때문에 겪을 고통과 공포를 내다보며 주신 예수님의 약속 말씀은(18)

6절과 대비하여 큰 희망과 힘을 주시는 참 든든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말씀을 의지하여 제자가 할 일은 바로 참고 견디는 일입니다.(19)

 

 

[정리]

신정절(왕국절·창조절)이 끝나가고 대림절이 가까울수록

성서일과 본문들은 <마지막 때>에 관한 본문들이 이어집니다.

(마침 이 무렵 추수감사절의 추수역시 마지막 심판과 닿아있습니다.)

 

(시간 순서를 거꾸로 보면)

서신서본문은, 광신적 종말신앙으로 노동은 하지 않고 교회에서 일만 만드는 이들을 경계합니다.

복음서본문은, 마지막 심판 전에 일어날 여러 거짓말들에 속지 말라고 하십니다.

 

큰 혼돈에 빠질 상황인 교회와 제자들에게

바울도 예수님도 이구동성으로 혼돈상황을 헤쳐 나갈 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노동을 게을리 하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선한 일을 하라!(살후3:13)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테니 참고 견뎌라.(21:18-19)

 

구약본문은, 지금은 비록 허물어진 예루살렘의 암담한 상황이지만

그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바꾸어주마 약속하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창조를 선포하시다가(65:17)

갑자기 지금 여기 예루살렘의 새 창조를 약속하신 것입니다.(18)

 

그러고 보면 구약본문의 끝 절은 <먼 미래>에 있을 새 창조의 비전이면서 동시에

창조질서가 살아있던 <먼 과거> 에덴의 모습이기도 합니다.(창세기 1-3)

시간을 지으신 주인께는 미래와 과거를 지금 여기에 가져오는 일이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그 가운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금 여기에 가져오시는지를

그것을 가져오시는 목적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65:20절과 22절의 저 꿈같은 말씀은 지금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떠오르게 합니다.

특히 25절이 그러하며, 물론 23-24절 역시 그러합니다.

 

나의 거룩한 산에서는 서로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다”(65:25)

 

한 주간 내내 이 25절 말씀이 가슴을 울렸습니다.

얼마 전 이태원에서 벌어진 10.29참사 때문일 것입니다.

심지어 선채로 숨질 정도의 상황에 처해있었던 그들의 고통과 공포는

오늘 신약본문의 제자들이 예감했을 마지막 때의 그것보다 더 크기 않았을까요?

 

그들이 낳은 자식은 재난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65:23)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21:18)

 

한 주간 내내 이 말씀이 가슴에 걸렸습니다.

이 희망의 말씀이 유족들의 절망을 더할 것 같았나봅니다. 그럼에도 그 말씀 붙들고

8년 넘도록 매일 새벽 416분과 오후 416분에 알람을 맞춰두고 기도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멀고 먼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유족들의 평화를 위한 기도입니다.

 

10.29참사의 진상규명이 더딜수록 그들의 기도시간도 길어질 것입니다.

약자들, 낮은 자들이 억울하지 않도록 만들어진 법()

자기 권력의 도구로 사용하는 법기술자들이 참사의 중심에 저리 많으니 말입니다.

 

주님께서 오신다. 그가 땅을 심판하러 오시니, 주님 앞에 환호성을 올려라. 그가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며, 뭇 백성을 공정하게 다스리실 것이다.”(시편98:9)

 

마라나타!

 

주님께서 오시기를 부르짖는 저들의 목소리에 산이 떨고 강이 끓어오릅니다.

오늘 본문 가득한 희망과 사랑의 말씀이

온 교회와 유족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이 되기를 빕니다.

 

 

 

[나머지]

* 전태일 추모일

오늘 1113일은 기독청년 전태일 52주기 추모일입니다. 22년 짧은 생을 마치 불화살처럼 살다가 횃불처럼 타오른 전태일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감리교청년이었던 전태일은, 19701113일 청계천에서 숨집니다. “정부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마디와 함께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것입니다. 노동자들, 특히 어린 여공들이 인권의 기본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일하던 어둠의 시대에 촛불처럼 횃불처럼 제 몸에 불을 붙여 온 세상 어두운 눈을 열어준 것입니다. 이 벼락같은 사건에 온 세상이 놀라 흔들렸던 날입니다.

 

** 전태일 한 뼘 더 자세히 보기

해마다 이맘때면 늘 우리는 그 사람 전태일을 기억합니다. 1948826일 대구에서 태어나 19701113일 서울 평화시장에서 숨질 때 나이 22, 꽃다운 22! 전태일의 그 짧은 삶이 얼마나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삶이었던가는 전태일평전같은 책으로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생전에 그와 함께 했던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전태일은 어느 신학생(김홍기)과의 잦은 만남으로 이미 기독교신앙의 깊은 경지를 몸으로 느꼈었으며 그리고 느낀 만큼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자기보다 어려운 형편에 있는 약한 자들을 위하여 끝없이 낮아지고 또 낮아졌던 사람이었습니다. 극심한 가난과 아버지의 술주정에 못 견딘 어머니가 서울로 식모살이를 떠나시자 어린 동생을 데리고 무작정 상경하여 밑바닥생활을 시작했던 전태일은, 철 들기 전부터 이미 배고픔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청계천 봉제공장 제단사 위치까지 오른 전태일은 드디어 평생소원이던, 가족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쌀밥을 먹을 수 있는 시절을 맞이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배고픔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그였기에, 이미 기독교 신앙 가운데서 예수님의 말씀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던 그였기에, 그는 함께 일하던 평화시장의 어린 여공들의 모습을 보며 그 꿈, 제 가족과 한자리에 모여 밥 먹는 그 소박한 꿈마저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8평 넓이에 높이는 겨우 1.5미터, 마치 닭장과 같이 밀폐된 다락방 공장에서 32명이나 되는 종업원들이, 하루 종일 햇빛 한 번 보지 못하고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노동을 합니다. 기름 냄새, 땀 냄새, 원단에서 나는 냄새,,,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고, 코를 풀면 시커먼 콧물이 나옵니다. 그 뿐 아닙니다. 특히 어린 여공들은 툭하면 구박받고, 존다고 두드려 맞습니다. 졸지 말고 밤일 잘하라고 주인아저씨는 잠 안 오는 약을 먹이고, 사흘 내내 밤샘 일을 하고 나면 약기운에 잠은 안 오고 산송장처럼 팔다리가 제대로 펴지지 않고 눈만 멀뚱멀뚱합니다. 이렇게 뼈빠지게 일을 해도 한 달 임금은 평균 3천원, 그래서 어린 시다들은 점심 굶기를 밥먹듯합니다. 어디 그 뿐인가? 당시 조사에 따르면, 재단사 100% 전원이 신경성 소화불량, 만성 위장병, 신경통, 기타 질병을 앓고 있었으며, 미싱사 90%가 신경통, 류마치스, 위장병, 신경성 소화불량이며, 심지어 그 어린 여공들이 폐경 2기까지 가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진폐, 폐결핵 등 기관지 계통 질환이 많았습니다. 죽기까지 친구들을 사랑하신 예수님 십자가 사랑을 이미 알고 있던 전태일은, 그 어린 여공들에 대한 생각이 남달랐을 것입니다. 당시 성북구 쌍문동 208번지 25, 도봉산 기슭의 판잣집에 살고 있던 그는, 자기 버스비로 여공들에게 풀빵을 다 사줘 버리고 세 시간 넘게 걸려 걸어서 귀가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 통금시간에 걸려 파출소 신세를 지기도 여러 번, 결국 파출소 순경들도 정이 들어 그 후로는 무사통과였다고 합니다. 삼일 째 새벽이슬에 젖어 집에 돌아왔다가 몇 시간도 못자고 또 출근하는 아들을 붙잡고 어머님이 물었습니다. “웬일이냐? 좀 까닭을 말해 봐라.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구나.” 태일이는 대답합니다. “오다가 파출소에서 자고 왔어요. 어머니가 나 집 나올 때 차비 30원 주잖아요. 시다들이 밤잠을 제대로 못자서 낮이면 꾸벅꾸벅 졸고, 일은 해야 하는데 점심까지 쫄쫄 굶길래 보다 못해 그 돈으로 풀빵 30개를 사서 여섯 사람한테 나눠주었더니 한 시간 반쯤은 견디고 일해요. 그래서 집에 올 때 걸어왔더니 오다가 시간이 늦어서 파출소에 붙잡혔어요.” 이런 생활을 죽기 직전까지 3, 4년 계속합니다. 시간이 흘러 전태일은 이러한 개인적인 선행만으로는 당시 평화시장 전체 여공들의 아픔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근로기준법 책을 구해 문제 해결 방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조직>의 힘을 알게 되고, 그래서 바보회, 삼동친목회 등을 조직합니다. 결국 그는 평화시장 사장들로부터 미움을 사게 되고,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당시 창동에 있던 창현교회에 다니던 어머니의 소개로 삼각산기도원으로 올라가 기도원 공사 일을 합니다. 밤에는 목사님들과 성경의 원리를 가지고 옥신각신하기도 하면서,,, 아마도 그는 거기서 구체적인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을 것입니다. 아니 이미 벌써부터 자기 안에 잉태되고 있었던 예수님의 뜻을 재확인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심합니다. ‘나는 돌아가리라. 평화시장 어린 동심들 곁으로...’ 삼동친목회 벗들을 모아 근로자들이 인간적인 노동을 할 수 있을 최소한의 요구조건을 만들어 여러 방면으로 탄원을 했으나, 자기 이익에만 눈이 어두운 사장들의 벽은 너무 두터웠습니다. 근로감독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침내 목숨을 건 시위를 결심하고,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온 몸에 불을 붙이고 맙니다. 죽어가는 그는 마지막 몇 마디를 주위 사람들과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그리고 마지막 1113일 밤 10시경, 그 전날 아침 라면 한 개 먹고 나가 이틀 내내 굶었던 그는 마지막 한마디, ‘배가 고프다를 끝으로, 그는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주님 곁으로 돌아갔습니다.

 

* 우당 이회영 추모일

1117(목요일)을사늑약’(1905)으로 유명한 날입니다. 그래서 이날은 일제치하에서 장렬하게 숨지신 어른들을 기리는 순국선열의 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마침 이 날 1117일은 대한민국 교회가 온 세상에 자랑하고 기려야 할 우당(友堂) 이회영선생 순국일입니다.(1932)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던 최고 부자였던 우당의 여섯 형제는 191012월 말 서간도로 이주하여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쳤습니다. 그리고 모두 다 하루 한 끼 먹기도 힘겨운 세월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다섯째 이시영 선생을 제외한 모든 형제가 영양실조로 죽거나 일제에게 고문사하였습니다. 기독교신앙으로 그 많던 집안의 노비들까지 다 면천하였던 분, 남의 집 노비들에게까지 존대하였던 우당 이회영 선생님을 90주기 추모일을 맞이하며 다시 기억합니다.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세상의 끝으로 (김현서 지음. 세움교회 청년부. 성실문화112)

진리의 말씀대로 걸어가고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때가 있지

 

어떤 핍박과

어떤 거짓이 가로막고

수많은 막힘 있어도

 

우리는 끝까지 선포하며 나아간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내함으로

담대함으로

 

 

 

 

[말씀시조] 주의 종 나 바울은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12)

주의 종 나 바울은 밤낮으로 일하였다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지니라

우리를 본받으시라 절제하며 살지니

 

 

 

 

[시편노래] 시편 98, 새 노래로 찬송하라 구원의 주 찬송하라 (이정훈 편사, 이천진 작곡. 성실문화112)

[본문] (시편 98)

[노랫말]

1. 새 노래로 찬송하라 구원의 주 찬송하라, 거룩하신 오른팔로 구원을 베푸셨다

주의 기적 주의 구원 주의 의를 보이셨다, 주의 인자 주의 성실 땅 끝까지 보이셨다

2. 온 땅아 소리 높여 주님을 찬양하라, 함성을 터뜨리며 즐거웁게 찬양하라

수금과 뿔 나팔로 주님을 찬양하라, 왕이신 주님 앞에 큰 소리로 환호하라

3. 바다와 온 땅이여 뇌성치듯 환호하라, 강들도 손뼉치고 산들도 환호하라

온 땅 백성 심판하고 공정하게 다스리실, 주님께서 오시노라 온 누리여 환호하라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한양대 교목실장인 이천진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98 (새 노래로 찬송하라 구원의 주 찬송하라) (이정훈 편사, 이천진 작곡)

 

20221113_시편가 98 새노래로 찬송하라.m4a
1.98MB

 

 

 

 

[시편송서(誦書)] 시편 98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112)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

2. 여호와께서 그의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의 공의를 뭇 나라의 목전에서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3. 그가 이스라엘의 집에 베푸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 끝까지 이르는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4. --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칠지어---,

-리 내어- 즐겁---,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

 

5. 수금으로 여호와를 노래하라 수금과 음성으로 노래할지어다

6. 나팔과 호각 소리로 왕이신 여호와 앞에 즐겁게 소리칠지어다

7.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주하는 자는 다 외칠지어다

 

8. 여호--- 앞에---, 큰 물은 박수할지어---,

산악이 함-께 즐겁---, (즐겁게) 노래할지어---

 

[다함께]

9. -가 땅-을 심판-하러-, 임하--- 것임이로다-,

-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으로 그의 백성을- 심판하--∼∥

 

20221113_시편송서 98.m4a
1.82MB

 

 

 

 

[말씀동화] 풀빵 30개와 어린양 30번의 비밀

 

옛날옛날 한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고기 끊고 풀 뜯어먹다가 날씬해지던 시절 이야기예요.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일이야.

하나님이 처음 하늘을 여신 바로 다음 날...”

 

천사가 있으라하고 천사를 지으셨다는 거죠?”

 

소구의 순발력에 아빠가 계면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입니다.

하늘이 처음 열린 날(103일 개천절開天節) 바로 다음날인

104(1004)이 바로 아빠 생일이거든요.

 

나는 천사(1004)태생이다!’라며 종종 으스대는 아빠의 아제개그가

이젠 소구에게도 익숙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빠의 얼굴빛이 진지해집니다.

또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는 걸까요?

 

예수님이 목자면서 동시에 어린양인 거, 이상하지 않으냐?”

 

주인과 종처럼 정반대처럼 보이는 목자와 어린양이라?

아빠는 또 무슨 아제개그를 시작하려는 걸까?

소구는 초승달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아빠의 입꼬리를 살핍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빠의 입꼬리가 살짝 오르는가 싶더니

얼른 말씀하십니다.

 

우리 소구의 아이큐정도라면 금세 알겠지?

예수님이 목자면서 동시에 어린양인 까닭을?”

 

 

아빠는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며 또 다른 어린양을 소개합니다.

 

성경말씀에 나오는 어린양을 두루 살펴보면 그 까닭을 알 수 있을 거야.”

 

어느새 초롱초롱해진 소구의 눈빛을 따라

아빠의 이야기도 점점 반짝반짝 아기자기해집니다.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풀을 먹으며...(이사야서65:25)”

 

보름달처럼 동그래진 소구의 눈을 바라보며

아빠의 어린양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이리와 어린양 이야기는 이사야서 65장과 11장에도 반복해서 나올 만큼 뜻 깊은 상징이란다.

그런데 이리(裡里)는 전라북도 익산의 옛 이름인데...”

 

잠시도 참지 못하는 아빠의 아제개그가 다시 시작되는 순간

순식간에 소구의 눈꼬리가 올라가며 도끼눈이 되자

아빠는 얼른 이야기를 수습합니다.

 

이리의 다른 이름이 늑대인 건 알지?”

 

 

이사야서의 어린양은 약자의 상징이야.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 어린양과 이리를 함께 지으셨을 때는 어린양이 이리의 먹잇감이 아니었지. 그러나 인류의 죄로 창조질서가 망가지면서부터 약한 어린양이 이리의 먹이가 되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상이 되고 말았단다.”

 

점점 진지해지는 아빠의 어린양이야기에 빠져드는 소구를 바라보며

아빠의 어린양이야기는 점점 더 신이 납니다.

 

예수님이 어린양이신 것은 요한계시록에 자주 나오는데, 자그마치 30번이나 나온단다.”

 

성경박사 아빠의 어린양이야기가 점점 속도를 냅니다.

예수님이 어린양이신 것이 십자가 희생과 관련 있음은

이젠 어린 소구도 다 아는 상식중의 상식입니다.

 

그런데 아빠의 어린양이야기 속에서

이사야서의 약자상징 어린양과, 예수님의 십자가 어린양이

하나로 통하기 시작했어요.

 

마태복음 2540절과 45절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라는 말씀이 나와. 예수님은 바로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와 당신을 일치시키셨지.”

 

그제야 소구의 머릿속에서도

약자의 상징 어린양과 어린양 예수님이 조금조금 통하기 시작합니다.

 

 

시냇물처럼 졸졸졸 흐르는 맑디맑은 아빠의 어린양이야기가

또 한 구비를 돌면서 세차게 흐르기 시작합니다.

 

아까 요한계시록에 딱 30번 나오는 어린양처럼, 풀빵 30개를 어린양들에게 먹인 사람이 있단다.”

 

틈만 나면 스며드는 아빠의 아제개그 본능이 또 발동하려는 걸까?

소구의 눈꼬리와 입꼬리가 꿈틀거리는 순간

아빠의 어린양이야기는 속도를 더합니다.

 

어린양처럼 약하디 약한 10대 어린 여공들을 위해서, 매일매일 자기 버스비 30원으로 풀빵 30개를 사 먹인 아저씨 이야기야.”

 

뭐지뭐지?

어린양이야기에 ‘30’이야기를 비빔밥처럼 섞어버리는 이 묘한 레시피는?

소구의 몽롱한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빠의 어린양이야기는 시냇물처럼 쉬지 않고 흐릅니다.

 

“<아름다운청년 전태일!> 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단다.

33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신 예수님처럼,

22살 꽃 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분을!”

 

1113일 오늘이 바로 전태일 아저씨의 52주기 추모일이라고,

스마트폰에서 전태일을 검색해서 꼭 읽어보라고...

어느덧 시냇물 같은 아빠의 어린양이야기는 인터넷의 바다로 흘러듭니다.

 

교회학교 선생님이셨던 기독청년 전태일이 애창했을 것이라면서

아빠는 시편노래 한 소절을 흥얼흥얼 읊조리기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오신다. 그가 땅을 심판하러 오시니, 주님 앞에 환호성을 올려라. 그가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며, 뭇 백성을 공정하게 다스리실 것이다.”(시편98:9)

 

[이정훈 지음. 20221112일 토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