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주인이 허리를 동이고”(누가복음 12:37)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서 1:1, 10-20) 하나님께서 백성을 꾸짖으시다
1. 이것은,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다.
10. 너희 소돔의 통치자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여라.
11.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기가 지겹고, 나는 이제 수송아지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싫다.
12. 너희가 나의 앞에 보이러 오지만, 누가 너희에게 그것을 요구하였느냐? 나의 뜰만 밟을 뿐이다!
13. 다시는 헛된 제물을 가져 오지 말아라. 다 쓸모없는 것들이다. 분향하는 것도 나에게는 역겹고, 초하루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으며, 거룩한 집회를 열어 놓고 못된 짓도 함께 하는 것을,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14. 나는 정말로 너희의 초하루 행사와 정한 절기들이 싫다. 그것들은 오히려 나에게 짐이 될 뿐이다. 그것들을 짊어지기에는 내가 너무 지쳤다.
15. 너희가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를 한다 하여도 나는 듣지 않겠다. 너희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다.
16. 너희는 씻어라. 스스로 정결하게 하여라. 내가 보는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려라. 악한 일을 그치고,
17.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
18.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오너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빛과 같다 하여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며, 진홍빛과 같이 붉어도 양털과 같이 희어질 것이다.
19. 너희가 기꺼이 하려는 마음으로 순종하면, 땅에서 나는 가장 좋은 소산을 먹을 것이다.
20. 그러나 너희가 거절하고 배반하면, 칼날이 너희를 삼킬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다.
(시편 50:1-8, 22-23)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1. 전능하신 분,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어, 해가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온 세상을 불러모으신다.
2. 더없이 아름다운 시온으로부터 하나님께서 눈부시게 나타나신다.
3. 우리 하나님은 오실 때에, 조용조용 오시지 않고, 삼키는 불길을 앞세우시고, 사방에서 무서운 돌풍을 일으키면서 오신다.
4. 당신의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위의 하늘과 아래의 땅을 증인으로 부르신다.
5. “나를 믿는 성도들을 나에게로 불러모아라. 희생제물로 나와 언약을 세운 사람들을 나에게로 불러모아라.”
6. 하늘이 주님의 공의를 선포함은, 하나님, 그분만이 재판장이시기 때문이다. (셀라)
7. “내 백성아, 들어라. 내가 말한다. 이스라엘아, 내가 너희에게 경고하겠다. 나는 하나님, 너희의 하나님이다.
8. 나는 너희가 바친 제물을 두고 너희를 탓하지는 않는다. 너희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나에게 늘 번제를 바쳤다.
22. 하나님을 잊은 자들아, 이 모든 것을 깨달아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을 때에 구하여 줄 자가 없을까 두렵구나.
23.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 나에게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니, 올바른 길을 걷는 사람에게, 내가 나의 구원을 보여 주겠다.”
(히브리서 11:1-16) 믿음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2. 선조들은 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으로 증언되었습니다.
3.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나 있는 것에서 된 것이 아닙니다.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런 제물을 드림으로써 그는 의인이라는 증언을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는 죽었지만,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직도 말하고 있습니다.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지 않고 하늘로 옮겨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으므로, 우리는 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옮겨가기 전에 그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렸다는 증언을 받은 것입니다.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7. 믿음으로 노아는, 하나님께서 아직 보이지 않는 일들에 대하여 경고하셨을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방주를 마련하여 자기 가족을 구원하였습니다. 이 믿음을 통하여 그는 세상을 단죄하고, 믿음을 따라 얻는 의를 물려받는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고, 장차 자기 몫으로 받을 땅을 향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했지만, 떠난 것입니다.
9. 믿음으로 그는, 약속하신 땅에서 타국에 몸 붙여 사는 나그네처럼 거류하였으며, 같은 약속을 함께 물려받을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장막에서 살았습니다.
10. 그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세우실 튼튼한 기초를 가진 도시를 바랐던 것입니다.
11. 믿음으로 사라는, 나이가 지나서 수태할 수 없는 몸이었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그가 약속하신 분을 신실하신 분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2. 그래서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한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과 같이 많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는, 많은 자손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13.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반겼으며, 땅에서는 길손과 나그네 신세임을 고백하였습니다.
14.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네가 고향을 찾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15. 그들이 만일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16. 그러나 사실은 그들은 더 좋은 곳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늘의 고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도시를 마련해 두셨습니다.
(누가복음 12:32-40) ... 염려하지 말아라, 깨어 기다려야 한다
32. 두려워하지 말아라. 적은 무리여, 너희 아버지께서 그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33. 너희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고, 하늘에다가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도둑이나 좀의 피해가 없다.
34.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놓고 있어라.
36. 마치 주인이 혼인 잔치에서 돌아와서 문을 두드릴 때에, 곧 열어 주려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되어라.
37. 주인이 와서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이 허리를 동이고, 그들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 와서 시중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나 새벽에 오더라도,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다.
39. 너희는 이것을 알아라. 집주인이 언제 도둑이 들지 알았더라면, 그는 도둑이 그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40.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인자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알맹이는 ‘섬김의 도’입니다.
구약, “악한 일을 그치고,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이사 1:16-17)
시편,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 나에게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니”(시편 50:23)
서신서,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고”(히브 11:8)
복음서, “너희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풀어라”(누가 12:33)
오늘 요절은, “그 주인이 허리를 동이고, 그들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 와서 시중들 것이다”입니다.(누가복음 12:37)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이사야서 1:1, 10-20 / 시편 50:1-8, 22-23)]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배신한 백성을 하나님이 고발하시다’입니다.
그 이름의 뜻 <야훼께서 도움을(구원을) 베푸셨다>처럼,
이사야는 환상 가운데 받은 하나님말씀을,
하나님을 배신한 유다백성을 위하여 선포합니다.
오늘 본문에 비친, 소돔과 고모라처럼 타락한 백성과 그 지도자들은,
제사로써 그 악행들이 무마되는 줄 아는지, 또는 아예 악행의 통증을 잃은 것인지
제사와 악행을 병행하며 삽니다.
예언자는 그런 제사와 기도는
하나님께서 역겨워하신다고 분명히 밝힙니다.(11-15)
제사와 기도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게 하려면 순종이 필요하고(19)
그러려면 하나님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18)
말씀을 다시 찾아 하나님 뜻을 바로 알고서,
악행을 멈추고 씻고(16) 오히려 약자를 도와야 합니다.(17)
그런 순종이 바로 올바른 제사의 첫 걸음이고,
그 길은 우리가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대접을 받는 길입니다.(19)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바른 예배’입니다.
이 시는 기도형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형식의 노래로서,
성전예언자가 절기예배 때 낭송하는 것인 듯합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백성의 타락에 침묵하지 않으시고
강력하게 반복해서 책임을 따지십니다.
특히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부르시는 장면은(4)
오늘 구약본문의 생략된 부분과 통합니다.(사1:2)
오늘 시편은 오늘 구약본문의 헛된 제물 문제를 좀 더 깊이 들여다봅니다.(8)
헛된 제물, 잘못된 예배를 바로잡으려면, 예배의 중심이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22)
구체적으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말씀을 기억해냄으로써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23)
예배와 제물은 그 <감사의 마음>을 드러내는 표현이요, 즉 예배의 핵심은 감사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그 역사,
우리가 하나님과 맺은 그 언약을 끊임없이 기억할 때, 우리 안에 <감사>가 회복되고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참 예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히브리서 11:1-16 / 누가복음 12:32-40)]
오늘 서신서본문의 소제목은 ‘옛 언약에 나타난 믿음의 길’입니다.
오늘 서신서 기자는 (바로 앞, 10:38-39절에 이어서)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열쇠로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구약의 다섯 인물을 믿음의 모범으로 소개함으로써,
믿음은 나와 하나님 사이의 깊은 신뢰와 신실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고(순종하고)(8)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그 생명을 살며 하나님과 동거할 집을 주시리라 확신합니다.(16)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염려하지 말아라, 깨어 기다려야 한다’입니다.
예수님은 지난주 본문 <탐욕에 대한 경고>에 이어서
의식주(衣食住)문제로 근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나라를 구하라>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의식주문제는 다 알아서 해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22-31)
그리고 하나님은 그 나라를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고!!(32)
이상 예수님말씀을 종합해볼 때, <하나님나라를 구하는 삶>이란,
물질을 움켜쥐는 삶이 아니라 정반대로 나누는 삶입니다.(33)
그런데 그런 삶은 종종 춥고 배고프고 불편합니다.(35-36)
그럼에도 주님말씀을 믿고 평생 순종하면서 주의 재림을 성실하게 기다리는 이들을
그 주인은 기뻐하십니다.(37, 38)
얼마나 기쁘신지, 내내 내 것을 움켜쥐지 않고 나누며 사느라 늘 배고프고 불편했을 종들을
마치 귀한 손님처럼 대접해주십니다.(37)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오히려 종의 모습으로 종들을 섬기시는 모습이 매우 강렬합니다.
이 말씀(37) 안에 성찬의 도, 예배의 알짜, 하나님나라 잔치가 담겨 있습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오늘 구약과 시편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예배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언자 이사야와 시편 시인은 이구동성으로 어서 정신 차리라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바른 예배를 회복하라고 촉구합니다.
그 길은 늘 하나님을, 하나님의 공의를 기억하며
약자들을 억누르지 않고 오히려 돕고 나누는 일입니다.
오늘 서신서본문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살아낸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복음서본문에서 예수님은
더 구체적으로 약자들과 내 것을 나누는 삶을,
더 적극적으로, 돈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을,
더 근본적으로 하나님나라를 구하는 삶을 역설하십니다.
그 나라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허리를 동이고 시중 들며
종들을 식탁에 앉히고 대접하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그러니 우리도 허리를 동이고 누구라도 섬기고
시중 들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아주 나중에 이루어질 나라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부터, 지금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나, 나의 회개로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나라입니다.
[나머지]
*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놓고 있어라”(누가복음 12:35)
오늘 구약과 시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예배>가 관심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예배를 위하여 구약은, 예배의 기초인 ‘정결’을 강조합니다. 손에 피를 묻히는 불의한 짓을 멈추고 의로운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정결이요, 바른 예배의 시작입니다. 시편은, 예배의 기초인 ‘감사’를 강조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의로운 길을 가는 정결한 삶에서 진정한 감사가 우러나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물이 아니라 그 안의 진정한 감사를 보며 기뻐하십니다. 서신서와 복음서에서는 하나님을, 믿음의 길을 가는 제자들에게 <그의 나라>를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서신서 끝 절과 복음서 첫 절이 그렇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돈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나라를 구하는 믿음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노아처럼 말씀에 순종하여 쾌락세상을 떠나 100년 방주를 짓는 믿음! 아브라함처럼 말씀에 순종하여 내 의식주의 터전을 떠날 수 있는 믿음! 그렇게 온전히 하나님나라를,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 나라를 구할 때, 한국교회는 더 이상 “하나님을 잊은 자들”처럼 살지 않고(시 50:22) 갑자기 닥치실 인자를 기쁘게 맞이하는 참 제자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누가 12:40) 심판의 주 인자께서 오십니다...어느 날 갑자기 상상도 못한 때에 우리 삶의 터전을, 삶의 관성을 송두리째 심판하러 오십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놓고 있어”야 할 때입니다.(누가복음 12:35)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 하늘고향을 그리는 나그네, 깨어있는 종들이여! 너희 안에 천국이 이루어진다!
오늘 서신서와 복음서 본문의 알맹이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천향(天鄕), 즉 천국(하나님나라)이다. 이것이 믿음의 길을 가는 이들의 꿈이다. 그래서 믿는 자, 예배하는 자들은 스스로를 나그네라 인식한다.(히브 11:13c) 나그네란 가벼운 봇짐과 남루한 행색이 떠올려지는 고단함의 대명사다. 한마디로, 편리, 편안함을 추구하는 물욕(物慾)의 길과 정반대의 길이라는 말이다. 오늘 복음서 본문은 히브리서의 “나그네 신세”를 “종”으로 바꾸어 비유한다. 종 역시 나그네의 느낌과 비슷하다. 늘 주인의 명을 기다리느라 노심초사하며 대기해 있는 불편한 인생의 대명사다. (아무튼 오늘 서신서와 복음서 말씀은, 우리의 ‘안주’와 ‘편리’ 욕구가 얼마나 반(反)예배적인가를 반복해서 보여주시는 불편한 말씀이다.)
오늘 복음서 본문의 알맹이는, 본문 바로 앞, 12장 13절 이하(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과 연이어서 철저히 물욕(物慾)을 경계하는 말씀이다. 내가 번 돈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고, 아낌없이 나누는 순간 천국 곳간이 풍성해진다는 말씀이다.(누가 12:33)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를 ‘깨어있는 종’으로 비유하셨다.(누가 12:37) 그 종은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놓고” 있다.(누가 12:35) 허리에 띠를 띤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먼저 배고픔을 이기려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 연상된다. 그만큼 근검절약하여 모은 내 물질을 이웃과 나누려고, 가장 어려운 이웃들을 쉼 없이 찾아다니느라 늘 등불을 켜고 사는 환한 인생이다. 그렇게 허리띠는 주인의 식탁을 차리는 종의 상징이요, 배고픈 이들에게 음식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초대교회 집사의 상징이다. 그렇게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놓고” 있는 인생에게 어느 날 갑자기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진다. 주인이 온 것이다. 그런데 그 주인이 이상하다. 갑자기 종으로 변신하여 그 깨어있는 종들을 먹이시는 것이다.(누가 12:37b) 그 종들을 “식탁에 앉히”는 것은, 우리 머리에 쉽게 떠오르는 고아원 식당에 질서정연하고도 엄숙하게 앉아 음식을 먹는 자세가 아닐 것이다. 중동지역 특유의 느슨하게 기대어 앉는,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풀어진 바로 그 자세일 것이다. 늘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온 종들에게 허리띠를 풀게 하는, 이런 호사를 누리게 하시는 주인의 마음이 느껴지는가? 이건 마치 오랜 나그네 길을 마치고 귀가한 자식을 위로하며 차려먹이는 외할머니 마음, 엄마의 마음이라 할 것이다.
(※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준비 (이소현 지음. 성실교회 고등부. 「성실문화」 111호)
사랑은 갑자기 찾아온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사랑을
언제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사랑이 기뻐할 수 있도록
[말씀시조] 믿음의 선조들이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11호)
믿음의 선조들이 모범을 보였듯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거라
믿음의 나그네들은 하늘고향 바라니
[시편노래] 시편 50,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거기까지 (이정훈 편사, 김광수 작곡(엄마야누나야 가락). 「성실문화」 111호)
[본문] (시편 50:1-8, 22-23)
[노랫말]
1.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거기까지, 전능하신 주 하나님 온 세상 부르신다
더 없이 아름다운 시온에서 나오신다, 눈부시게 나오신다 하나님 나오신다
2. 하나님 오실 때에 불길이 일어나고, 무서운 돌개바람 사방에서 일어난다
백성을 심판하려 증인을 부르신다, 위의 하늘 아래의 땅 증인들 부르신다
3. 나를 믿는 성도들을 나에게로 불러오라, 나와 언약 세운 사람 나에게로 불러오라
하늘이 선포한다 주의 공의 선포한다, 하나님 그 분만이 재판장이시로다
4. 한 번도 안 거르고 나에게 바친 번제, 그 제물로 너희들을 탓하지는 않으리라
들어라 내 백성아 명심하라 나의 경고,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경고한다
5. 하나님을 잊은 자들 이 모든 것 깨달아라, 내가 너희 찢기 전에 내 경고를 깨달아라
감사하는 그 마음이 내 영광 드높이니, 정의로운 그의 길에 내 구원을 보이리라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엄마야 누나야’(김광수 작곡) 가락에 얹었다.
[악보] 시편 50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거기까지) (이정훈 편사, ‘엄마야 누나야’ 가락)
[시편송서(誦書)] 시편 50:1-8, 22-23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11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전-능하신 이 여호-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2.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비추셨도다
3. 우-리 하나님 (하-나-님)이 오사-, 잠잠하지--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삼키는 불이 있-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4.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판결하시려고 위 하늘과 아래 땅에 선포하여
5. 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
6. 하늘이 그-의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 (셀라)
7.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8.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다함께]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말씀동화] 무명(無名)집사의 신비한 무명수건
옛날옛날 한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뒷동산에서 세수수건 목에 감고 나무 심던 시절 이야기예요.
기다란 무명수건을 허리에 질끈 동여맨 수염 덥수룩한 아저씨가
골목길에 쭈그리고 앉아서 꼼지락거리는 걸 본 소구가
얼른 엄마 손 꼭 붙잡으며 종알거립니다.
“엄마 저 아저씨 알아? 우리 마을에서 유명해.”
“그래? 왜 유명해? 엄만 처음 보는데?”
소구가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로 대답했어요.
“길고양이 집사!”
사료포대랑 물병들을 찬찬히 살피던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저 아저씨 전문가네, 제대로 하네.”
소구도 고개를 까딱거리며 아저씨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마디 덧붙입니다.
“저 집사 아저씨도 길고양이 같아. 집이 없어.”
어디나 그렇듯이 소구네 마을에도 길고양이들이 많아요.
그런데 소구네 마을 길고양이들은 온몸에 윤기가 돕니다.
밥도 물도 잘 먹는 거죠.
소구는 그게 다 집사 아저씨 때문이라는 걸 압니다.
길고양이들이 밥 먹기 좋은 곳마다 그릇에 사료를 담아두고
물그릇도 매일 갈아줍니다.
물그릇에 파란 이끼가 낄 겨를도 없이 부지런히 설거지하고요.
편의점 알바, 대리운전, 공사장 일까지 뭐든지 해서 부지런히 번 돈으로
내 집 장만은커녕 맛있는 밥도 사먹지 않고 삼각김밥만 먹으면서
온 마을 길고양이 사료는 가장 좋은 걸로 장만합니다.
수입이 괜찮을 때는 고급스런 고양이 간식까지!
어느 날 하교 길에 만난 집사 아저씨 얼굴에서 빛이 났어요.
“저 아저씨 수염 깎았네!”
소구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곁에 있던 병구가 거듭니다.
“아마 또 대리운전 시작했나 보다.”
병구는 고양이 집사 아저씨에 대해서 소구보다 훨씬 더 아는 게 많아요.
언제부터 우리 마을에 들어왔는지도 알고
어디서 살다가 왔는지도 알고
심지어 집사 아저씨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 바로 무명수건이라는 비밀도 알죠.
“그런데 아직 아저씨 이름은 몰라. 언젠가 물어보니까 아재개그 하더라니까.”
“뭐랬는데? 무슨 아재개그?”
눈도 입도 동그래진 소구의 질문에 병구가 대답했어요.
“무명수건 만지작거리다가 빙그레 웃으면서 하는 말이, ‘무명(無名)집사라고 불러다오’ 그러는 거야.”
병구에게 들은 무명 집사의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진진했어요.
서울에 좋은 집도 있고 엄마아빠도 있으면서도
어느 날 무명수건을 갖게 되면서부터 길고양이 집사가 되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저 낡은 무명수건에 신비로운 힘이 숨겨져 있다는 둥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자동열쇠라는 둥
무명수건의 원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둥...
병구의 말이 점점 황당무계로 빠져들수록
소구의 눈은 점점 가늘어져 가더니
급기야 소구 입에서 우렁찬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이제 그만, 내가 직접 물어봐야겠다.”
소구는 병구를 앞세우고 위풍당당하게 무명 집사아저씨를 찾아갔어요.
무명 아저씨에 대해 척척박사인 병구 덕분에
헤매지 않고 바로 찾을 수 있었고요.
이웃마을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던 무명 아저씨는
마침 점심 먹고 낮잠 자는 시간이어서
편안하게 소구와 병구를 맞아주었어요.
“주인이 와서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이 허리를 동이고, 그들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 와서 시중들 것이다.”(누가복음 12:37)
아련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성경말씀을 줄줄 외우면서
무명 아저씨는 말했어요,
이것은 내가 참 좋아하는 예수님말씀이라고.
“우리 엄마가 교회 집사님이신데, 엄마가 그러셨어, 집사가 제일 멋지다고.”
교회에서 원래 집사는 배고픈 이들에게 빵을 나눠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데요.
그리고 아까 암송한 성경말씀에서 주인이 수건으로 허리를 동인 모습이
바로 집사의 모습이래요.
집사의 모습으로 배고픈 종들을 귀하게 대접하는 주인의 모습,
그 하나님의 모습에 감동하고
그런 하나님을 잊지 않으려고 무명수건을 장만했대요.
무명아저씨의 비밀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소구의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고
아저씨에 대한 궁금증은 더 깊어만 갑니다.
무명아저씨의 무명수건이 왜 최고로 좋은 집 자동열쇠인지 등등
궁금증으로 꽉 찬 소구의 눈에서 맑고 밝은 빛이 은하수처럼 쏟아집니다.
[이정훈 지음. 2022년 8월 6일 토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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