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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신정절 11주(왕국절 11주, 창조절 10주, 2021년 11월 7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보고 계셨다(마가복음 12:41)

 

[성서일과 4본문]

(룻기 3:1-5, 4:13-17)

1. 시어머니 나오미가 룻에게 말하였다. “얘야, 네가 행복하게 살 만한 안락한 가정을, 내가 찾아보아야 하겠다.

2. 생각하여 보렴. 우리의 친족 가운데에 보아스라는 사람이 있지 아니하냐? 네가 요즈음 그 집 여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잘 들어 보아라. 오늘 밤에 그가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까부를 것이다.

3. 너는 목욕을 하고, 향수를 바르고, 고운 옷으로 몸을 단장하고서, 타작마당으로 내려가거라.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마칠 때까지, 너는 그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4. 그가 잠자리에 들 때에, 너는 그가 눕는 자리를 잘 보아 두었다가, 다가가서 그의 발치를 들치고 누워라. 그러면 그가 너의 할 일을 일러줄 것이다.”

5. 룻이 시어머니에게 대답하였다. “어머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다 하겠습니다.”

4:13. 보아스는 룻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 여인이 자기 아내가 되자, 그는 그 여인과 동침하였다. 주님께서 그 여인을 보살피시니,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14. 그러자 이웃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말하였다. “주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이 집에 자손을 주셔서, 대가 끊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늘 기리어지기를 바랍니다.

15.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며느리, 아들 일곱보다도 더 나은 며느리가 아기를 낳아 주었으니, 그 아기가 그대에게 생기를 되찾아 줄 것이며, 늘그막에 그대를 돌보아 줄 것입니다.”

16. 나오미가 그 아기를 받아 자기 품에 안고 어머니 노릇을 하였다.

17. 이웃 여인들이 그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 주면서 나오미가 아들을 보았다!” 하고 환호하였다. 그들은 그 아기의 이름을 오벳이라고 하였다. 그가 바로 이새의 아버지요, 다윗의 할아버지이다.

 

(시편 127)

1. 주님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을 세우는 사람의 수고가 헛되며, 주님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된 일이다.

2.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는 것, 먹고 살려고 애써 수고하는 모든 일이 헛된 일이다. 진실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

3. 자식은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태 안에 들어 있는 열매는, 주님이 주신 상급이다.

4. 젊어서 낳은 자식은 용사의 손에 쥐어 있는 화살과도 같으니,

5. 그런 화살이 화살통에 가득한 용사에게는 복이 있다. 그들은 성문에서 원수들과 담판할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할 것이다.

 

(히브리서 9:24-28)

24. 그리스도께서는 참 성소의 모형에 지나지 않는,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늘 성소 그 자체에 들어가셨습니다. 이제 그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25. 대제사장은 해마다 짐승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 몸을 여러 번 바치실 필요가 없습니다.

26. 그리스도께서 그 몸을 여러 번 바치셔야 하였다면, 그는 창세 이래로 여러 번 고난을 받아야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기를 희생 제물로 드려서 죄를 없이하시기 위하여 시대의 종말에 단 한 번 나타나셨습니다.

27.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치셨고, 두 번째로는 죄와는 상관없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마가복음 12:38-44)

38. 예수께서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39.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

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41. 예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아서,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을 넣는가를 보고 계셨다. 많이 넣는 부자가 여럿 있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은 와서, 렙돈 두 닢 곧 한 고드란트를 넣었다.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곁에 불러 놓고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헌금함에 돈을 넣은 사람들 가운데, 이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

44. 모두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떼어 넣었지만, 이 과부는 가난한 가운데서 가진 것 모두 곧 자기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부지런하신 주님입니다.

 

구약, “주님께서는 오늘 이 집에 자손을 주셔서”(룻기 4:14)

시편, “주님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시편 127:1)

서신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히브리서 9:28)

복음서, “예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아서... 보고 계셨다”(마가복음 12:41)

 

오늘 요절은, “보고 계셨다입니다.(마가복음 12:41)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룻기 3:1-5, 4:13-17, 시편 127)]

오늘 구약본문 소제목은 룻이 나오미의 조언을 따르다,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다입니다.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의 대담한 명에 순종합니다.

주님께서 나오미와 룻을 도우셔서

룻이 아기를 낳고 나오미가 입양합니다.

 

약한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착한 며느리 룻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을 낳게 하신 것입니다.

이웃 아낙네들이 마치 천사처럼

아기 탄생을 축하하며 찬양하고(14, cf.2:14) 아기 이름도 지어줍니다.(17, cf.1:31)

 

오늘 시편본문 소제목은 주님만이 가정에 복을 주신다입니다.

우리의 안전하고 행복한 삶은 하나님의 보호와 복에 달렸다고 시인은 노래합니다.

주님의 도우심 없이는, 잠도 안자고 먹고 살려 애쓰는 것이 다 헛수고라고!

바로 이어서, 잠을 자는 동안에도 주님께서 복주시리라는 대구가 강렬합니다.(2b)

 

우리의 모든 것이 주님께 달렸음을

매우 간결하고 명확하게 보여주는 노래입니다.

 

특히 2절 앞부분은

먹고 살려 애쓰다 남편과 아들들 다 잃은 지난 주 본문 나오미를 떠올리고,

2절 하반부와 3절 이하는 오늘 구약본문 나오미를 떠올립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히브리서 9:24-28, 마가복음 12:38-44)]

오늘 서신서 본문 소제목은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속죄입니다.

우리의 참 대제사장 예수그리스도는 참 성소이신 하늘나라 하나님 앞에 나아가시며

땅의 제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완전한 제물인 당신의 몸을

단 한번 드리심으로 구원의 문을 여셨습니다.

 

이는 취소할 수도 반복할 수도 없는 일로서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주님의 일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 소제목은 율법학자들을 책망하시다, 과부의 헌금입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의 탐욕과 위선을 낱낱이 밝히시며

이를 반면교사로 삼으라고 하십니다.

 

이어서 헌금하는 가난한 과부를 주목하라고 하십니다.

두 렙돈 생활비 전부를 바친 가난한 과부가

(많이 헌금한 부자들보다는) 탐욕스런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대비되면서

우리에게 맑은 거울처럼 좋은 교사가 됩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해설 일부 참조)

 

 

[정리]

오늘 복음서본문의 예수님 말씀 가운데서

예수님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그 시선이 마치 매의 눈처럼 날카롭고 부지런하십니다.

 

율법학자들의 탐욕과 위선을 낱낱이 꿰뚫고 계실 뿐 아니라

성전 헌금함에 헌금하는 무리들까지 낱낱이 보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시선의 끝은 겉이 아니라 속입니다.

 

율법학자들의 속이 시커멓고 더럽습니다.

반면에 두 렙돈 과부의 속은 그들과 다릅니다.

오직 주님만 의지하는 마음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두 렙돈 가난한 과부처럼 가난한 과부 룻과 나오미가

오늘 주님께 큰 복을 받습니다.

보아스를 만나 오벳을 낳음으로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을 올립니다.(마태1:5)

하나님의 시선이 룻의 속을 보신 것입니다.(룻기1:16c)

 

오늘 성서일과 본문말씀에서 우리는

늘 우리를 살펴보시는 주님의 시선을 느낍니다.

그 시선이 날카롭고 부지런하심을 새삼 기억합니다.

 

우리가 자는 동안에도 일하시는 주님!

룻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런 사랑스런 자녀들에게는

잠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십니다.(시편127:2)

 

문득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시선과 우리 시선이 만나는 지점이 어디일지

또 그 시점이 언제일지 궁금합니다.

 

사랑의 불꽃이 튀고 주님의 은총이 단비처럼 내릴 그 시점은

우리가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찬양할 때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시선이 작은 약자를 향할 때일 것입니다.

주님과 눈 맞추기 위해 부지런한 인생이 복스럽습니다.

 

 

 

[나머지]

* 두 렙돈, 컵라면과 삼각김밥

노동자 하루 품삯인 한 데나리온의 1/16이 한 앗사리온입니다. 일용직 건설노동자 일당을 10만원으로 볼 때, 한 앗사리온은 오늘날 6,250원이고, 그게 참새 두 마리 값이었습니다.(마태 10:29) 한 앗사리온이 8 렙돈이었으니 과부의 두 렙돈은 참새 반 마리 값이요, 렙돈 한 닢은 약 800원이니, 두 렙돈이란 편의점에서 가장 싼 컵라면 한 개와 삼각김밥 한 개를 살 수 있을까말까 한 금액입니다.

 

** 주님 사랑만으로 충분한 인생

내 가정, 내 나라를 세우시고 지키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잠도 안자면서 애써 일한다고 살림살이 문제의 근본이 풀리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잠을 쿨쿨 자는 동안에도 주님께서 도우시면 문제가 술술 풀리고 살림살이가 살아납니다.(시편 127:2) 아등바등 악착같이 일하는 게 사는 길이 아닙니다. 내가 사는 길, 우리가 잘 사는 길은 주님께서 지키시고 일하셔야 활짝 열립니다. 관건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내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온전히 그분께만 의지하는 것, 이게 바로 주님 사랑을 받는 열쇠입니다.

주님께 바치는 헌금이란, 바로 이 주님 사랑을 느낀 사람의 응답입니다. 주님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사랑의 표현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그 응답에 대해 주님께서 다시 응답하십니다. 주님의 응답이란 헌금 액수(또는 헌금 정성)에 대한 물질적 보상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주님의 사랑, 다시 주님의 사랑입니다. (두 렙돈 바친 가난한 과부를 바라보시며 느끼시는 예수님의 감동 말입니다.) 그게 다고, 그거면 충분합니다.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바로 그걸 느끼며 헌금하는 사람은 복스러운 사람일 것입니다. 물질적인 복은 큰돈을 버는 데 있는 게 아닙니다. 얼마나 만족하며 살림을 사느냐에 있습니다. 나와 내 가정만 살리는 게 아니라, 약한 이웃까지 살리는 살림의 길이란 돈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게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 눈여겨보고 계시는 주님

오늘 복음서본문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께서 성전 헌금함 맞은쪽에 앉아서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을 넣는가를 보고 계시는 장면입니다.(41) 언뜻, 상당히 민망한 한편, 이렇게 은밀하고 민감한 부분까지 눈여겨보시는 주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한없는 철부지 인생들을 일일이 살피시고 고쳐주시려는 주님의 마음! 예수님께서 가난한 과부가 바치는 두 렙돈을 높이 평가하십니다. 그게 그녀의 전 재산이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먹을거리를 예언자 엘리야에게 바쳤던 사렙다 과부의 모습과 일부 겹칩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소유를 다 바치는 가난한 과부의 모습에서는 오묘한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바로 앞 40절에 나온, 종교지도자들에게 사기당한 어느 과부의 안타까운 느낌과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동화 같은 바램이지만, 두 렙돈 과부가 바로 그 사기당했던 과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자에게 사기당했음에도, 나머지를 하나님께 다 바치는 과부! 오늘 구약본문의 행복한 두 과부, 끝이 행복한 두 과부 나오미와 룻처럼 오늘 복음서본문 과부에게도 살 길이, 행복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주님께서 룻을 보살피셨듯이(룻기 4:13) 두 렙돈 과부도 눈여겨보고 계시니 말입니다.(마가 12:41)

 

**** 나를 송두리째 바치는 사랑

오늘 서신서 본문인 히브리서 9장 말씀의 알맹이는 이것입니다. 단 한 번에 송두리째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마치 무협지에서 중원의 고수들 가운데 절세 고수 한 사람이 나타나, 여러 합을 겨룰 필요도 없이 단 일합에 중원을 평정한 것처럼, 더 할 필요 없이 오직 단 한 번에 온전히, 당신 몸을 십자가에 송두리째 바치심으로, 온 인류의 구원을,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의 알맹이도 이것입니다. 단 한 번에 송두리째 바치는 과부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 과부의 헌금이 가장 크다고 하신 것이죠. 작고 작은 돈, 마침 동전이 두 개. 두 렙돈이었습니다. 딱 절반이라도 남겨두어 하루라도 더 연명할 길을 마련할 수 있었겠으나, 그 가난한 과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돌아갈 다리조차 불살라버리는 각오로, 오직 주님만 의지한다는, 이제부터 세상 그 무엇도 의지하지 않으리라는, 이제 남은 생명 순간순간을 오직 주님만 기억하며, 주님께만 매달려 살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래서 이 과부는 결코 불쌍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감히 우러러볼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이미 거룩하고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구약의 알맹이는 이것입니다. 시어머니를 위해 제 인생을 단번에, 송두리째 바친 가난한 과부 룻의 이야기입니다. 그러자 그 시어머니는 마치 하나님처럼, 한없이 며느리를 사랑합니다. 누군들 룻을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룻이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친구)라는 뜻입니다. 영적으로 참 아름다운 룻! 누구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내리신다고 오늘 시편기자는 노래하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애써 집을 짓고 새벽 일찍 일어나 돈 벌려고 수고해도 행복할 수 없다. 우리가 진정 행복하려면,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 시편 127편의 알맹이입니다. 오늘 말씀의 알맹이는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행복을 위해 눈을 부릅뜨고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의 길은, 그렇게 하나님께 사랑받는 길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마침내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인도에 따라 보아스와 재혼하여 오벳을 낳습니다. 그리고 그 오벳은 관습에 따라 시어머니의 양자처럼 자랍니다. 이방여인으로 태어나 제 인생을 외로운 시어머니를 위해 바친 룻, 자신의 첫 아기조차 시어머니께 바친 룻! 그 아기 오벳은 다윗의 할아버지이자, 먼 훗날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사랑으로 자신을 송두리째 바치신 예수님의 조상이 됩니다. 말하자면, 자신을 송두리째 바친 룻은 자신만 행복해진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행복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원조입니다.

 

***** 두 개의 등불, 성 마틴과 전태일

1111일은 성 마틴의 날입니다.

마틴은 빈자(貧者)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인생을 산 대표적인 분입니다. 해마다 이 날 저녁 어둑어둑해질 무렵이면, 독일 어린이들은 모두 등불을 들고 골목골목 행진을 합니다. 모든 초등학교 아이들, 유치원 아이들이 느릿느릿 움직입니다. 심지어 유모차를 탄 아이들도 유모차에 등불을 걸고 행진에 참여합니다. 마틴의 정신을 기리는 노래도 반복해서 부릅니다. 경찰들은 이날 아이들의 행진을 곁에서 지켜줍니다. 마치 내 가까이 작은 자, 약한 자로 오신 주님을 찾아다니는 것만 같습니다.(마태 25:40) 어린 시절부터 이런 전통을 온몸으로 익히는 나라는 참 슬기로운 나라입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어두운 골목, 후미진 곳을 등불을 들고 걷는 모습이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을 연상시킵니다.

1113일은 전태일의 날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전태일 앞에도 ()’이라는 글자를 붙이고 싶습니다. 어린 여공들이 혹사당하는 모습을 보고 버스비로 풀빵을 사서 나눠주고 자기는 통금에 걸리면서까지 그 먼 집까지 걸어 다닌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배운 성경말씀대로 살려다가, 굶더라도 정의의 편에, 약한 자의 편에 서려고 애쓰다가, 마침내 제 온몸을 기름삼아 어두운 시대의 등불이 되어버린 사람입니다. 자살을 미화할 생각은 없습니다. 22살 저 어린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이 무너진 세상을 바꿔보려고 몸부림친 역사를 기억하려는 것입니다. 작은 자들, 나보다 더 약한 자들 곁을 끝까지 지키려던 전태일, 저 작은 전태일이 숨질 때, 주님께서 그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하셨다는 사실, 전태일의 일생에, 주님은 항상 그와 함께 하시며 눈여겨보고 계셨음을 기억하려는 것입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마태복음 5:9. 공동번역)

법이 허물어진 세상, 정의의 깃발이 꺾인 세상에서 법의 주춧돌을 다시 놓으려, 꺾인 정의를 다시 세우려 애쓰는 사람이 바로 평화를 위해 일하는 주님의 자녀입니다.(마태 5:9)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녀들에게는 환한 등불과 넉넉한 기름이 있습니다.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열매 (이소현 지음. 성실교회 고등부. 성실문화108)

아이들아

저 빛깔 좋은 개살구 곁으로 가지 마라

보기엔 아름답지만 속은 새까마니

곁에 있는 너희들도 까매질 것이다

 

아이들아

저 벌레가 구멍낸 열매를 아껴줘라

보기엔 하찮지만 속은 향기로우니

곁에 있는 너희도 향기로울 것이다

 

 

 

 

[말씀시조] 우리를 위하여서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08)

우리를 위하여서 단 한 번 오신 그분

그리스도 예수께서 하늘성소 들어갔네

우리가 기다리는 분 다시 오실 예수님

 

 

 

 

[시편노래] 시편 127, 주님께서 세우지 아니하시면 (이정훈 편사, 김광수 작곡-엄마야누나야 가락. 성실문화108)

[본문] (시편 127)

[노랫말]

1. 주님께서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 짓는 자 모든 수고 헛수고되고

주님께서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있음 허무하여라

늦게 자고 일찍 깨어 수고하는 삶, 먹고 살려 애쓰는 일 부질없어라

자다가도 복 받으리 주를 바라라, 진실로 사랑의 주 주만 바라라

2. 주님께서 주시는 소중한 선물, 태 안의 열매는 주님의 상급

젊어서 낳은 자식 든든하여라, 용사의 손에 들린 화살 같아라

그 화살 화살통에 가득한 용사, 그 용사 든든하고 복스러워라

성문에서 원수들과 담판할 때에, 빛나는 그의 얼굴 당당하여라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어서 엄마야 누나야가락에 얹었다.

 

[악보] 시편 127 (주님께서 세우지 아니하시면) (이정훈 편사, ‘엄마야 누나야가락)

 

20211107_시편가 127 주님께서 세우지 아니하시면.m4a
2.10MB

 

 

 

 

[시편송서(誦書)] 시편 127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108)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여호와께서- -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

여호와께서- -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 누우---,

수고의 떡-을 먹음---, (-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 주시는도다-, (---- 주시는도다-)

 

3. ---들은 여호와-- 기업-((이요)), -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4. -은 자의- 자식---,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다함께]

5.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 당하---,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

 

20211107_시편송서 127.m4a
1.68MB

 

 

 

 

[말씀동화] 동그란 나무절구의 사랑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인형뽑기 하려고 동전 바꾸던 시절 이야기야.

 

오래 전 어느 작고 동그란 산에 동그랗고 자그마한 수도원이 있었어.

동그란 버섯처럼 생긴 수도원에는

동그란 사람들 몇 명이 모여 살았단다.

 

수도원 앞마당엔 동그란 돌절구가 하나 있었고

돌절구에 빗물이 고여 있을 때면

멧새들이 와서 물마시며 재잘재잘 수다 떨다 가곤 했지.

 

수도원 문 옆에는 작고 동그란 나무절구 하나가 있었는데

나무절구 위에는 작고 동그란 구멍이 뚫린 동그란 판자를 덮어놓았고

그 덮개 위에 동전 헌금함이라는 글자가 새겨있었어.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도 모를 만큼 아주 오래 된

나무절구 헌금함은 겉보기에는 볼품없어 보여도

실은 수도원 사람들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살필 만큼

귀하고 사랑스런 물건이었단다.

 

 

어느 날 밤 시커먼 옷을 입은 사람이 살금살금 수도원에 들어와서

나무절구 헌금함 작고 동그란 구멍에 조심조심 손을 넣었어.

그리곤 동전을 가득 움켜쥐고 손을 빼려는데 어이쿠, 손이 안 빠지네.

그렇게 밤새 낑낑거리다가 새벽기도 하러 온 수도원 사람들에게 들키고 말았지.

 

동그란 수도원 사람들이 동그랗게 둘러싸고 물었어.

 

왜 그러고 있나요?”

 

식은땀 줄줄 흘리며 시커먼 옷 입은 사람이 대답했어.

 

도와주세요. 손이 안 빠져요.”

 

동그란 수도원 사람들이 말했어.

 

주먹을 펴세요.”

 

 

그제야 와르르 동전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시커먼 옷 입은 사람의 손이 쑥 빠졌고

그는 무릎 꿇고 용서를 빌며 이렇게 말했어.

 

너무 이상해요. 주먹을 펴면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쩐 일인지 펴지지 않았어요.”

 

진심으로 뉘우친 그는 깨끗한 수도원 옷으로 갈아입고

작고 동그란 수도원 사람들과 함께 시편노래를 부르면서

진실하고 성실한 수도원 사람이 되어갔단다.

 

하루하루 진실하고 성실해져가면서 그 사람은

날마다 정성을 다해 동그란 나무절구를 닦았고

그때부터 동그란 나무절구 헌금함은

조금씩 더 사랑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어.

 

 

동그란 나무절구 헌금함이 동전헌금함인 까닭은

거스름돈으로 생긴 작은 돈을 모아

작고 배고픈 아이들에게

동그란 빵을 만들어주려는 것이었대.

 

진실하고 성실하게 동그란 나무절구 헌금함을 닦던 어느 날

어느 작고 가난한 아줌마가 수도원에 올라왔어.

떨리는 손으로 조심조심 오백원짜리 동전 두 개를

동그란 나무절구 헌금함에 넣으며 아줌마는 두 손 모아 기도했어.

 

저보다 더 배고픈 아이들이 동그란 김밥 한줄 사먹을 수 있게 해주세요.”

 

작고 가난한 아줌마가 산을 내려간 뒤

놀랍고 신비로운 일이 벌어졌단다.

그날 밤 밤하늘 대접처럼 생긴 초승달과 국자처럼 생긴 북두칠성에서

향기로운 달물 별물이 동그란 나무절구 헌금함에 쏟아져 내렸겠지.

 

 

이튿날 아침 작고 동그란 수도원 사람들이 동그랗게 모여

작고 동그란 나무절구 헌금함 동그란 뚜껑을 열었어.

작고 배고픈 아이들에게 동그란 빵을 만들어주기 위해

헌금함에 모인 동전을 꺼내기 시작했지.

 

그런데 이게 도대체 웬일이람?

아무리 동전을 꺼내도 계속 동전이 나오는 거야.

게다가 보기 드문 오백원짜리 동전만 계속 나오네.

 

작고 동그란 수도원 사람들 눈이 오백원짜리 동전만큼 동그래지고

호빵만큼 입이 떡 벌어졌어.

그때 누군가 시편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네.

 

진실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시편127:2, 새번역)

 

 

어쩐 일인지 생각이 바뀐 작고 동그란 수도원 사람들은

오백원짜리 동전들로 밀가루대신 쌀을 사고 김과 반찬을 사서

동그란 빵 대신 동그란 김밥을 말기 시작했지.

작고 배고픈 아이들이 신나게 먹을 맛있는 김밥을 말기 시작한 거야.

 

지금도 그 작고 동그란 수도원에서는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동글동글한 목소리로 시편노래를 부르는

작고 동그란 수도원 사람들이 동그란 김밥을 말고 있단다.

 

과연 언제까지 작고 동그란 수도원 사람들은 동그란 김밥을 계속 만들까?

과연 언제까지 작고 동그란 나무절구 헌금함에서는 오백원짜리 동전이

자꾸자꾸 나올까?

 

그리고 그날 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든 작고 가난한 아줌마는

이튿날 아침에도 계속 배가 고팠을까?

 

야훼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에게 잘 때에도 배불리신다.”(시편127:2, 공동번역)

 

[이정훈 지음. 2021116일 토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