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마가복음 12:31)
[성서일과 4본문]
(룻기 1:1-18)
1. 사사 시대에 그 땅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 그 때에 유다 베들레헴 태생의 한 남자가, 모압 지방으로 가서 임시로 살려고,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2. 그 남자의 이름은 엘리멜렉이고,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이며,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다. 그들은 유다 베들레헴 태생으로서, 에브랏 가문 사람인데, 모압 지방으로 건너가 거기에서 살았다.
3. 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았다.
4. 두 아들은 다 모압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한 여자의 이름은 룻이고, 또 한 여자의 이름은 오르바였다. 그들은 거기서 십 년쯤 살았다.
5. 그러다가 아들 말론과 기룐이 죽으니, 나오미는 남편에 이어 두 아들마저 잃고, 홀로 남았다.
6. 모압 지방에서 사는 동안에, 나오미는 주님께서 백성을 돌보셔서 고향에 풍년이 들게 하셨다는 말을 듣고, 두 며느리와 함께 모압 지방을 떠날 채비를 차렸다.
7. 나오미가 살던 곳을 떠날 때에, 두 며느리도 함께 떠났다. 그들은 유다 땅으로 돌아가려고 길을 나섰다.
8. 길을 가다가,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제각기 친정으로 돌아가거라. 너희가, 죽은 너희의 남편들과 나를 한결같이 사랑하여 주었으니, 주님께서도 너희에게 그렇게 해주시기를 빈다.
9. 너희가 각각 새 남편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주님께서 돌보아 주시기를 바란다.” 나오미가 작별하려고 그들에게 입을 맞추니, 며느리들이 큰소리로 울면서
10. 말하였다. “아닙니다. 우리도 어머님과 함께 어머님의 겨레에게로 돌아가겠습니다.”
11. 그러나 나오미는 말렸다. “돌아가 다오, 내 딸들아.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려고 하느냐? 아직, 내 뱃속에 아들들이 들어 있어서, 그것들이 너희 남편이라도 될 수 있다는 말이냐?
12. 돌아가 다오, 내 딸들아. 제발 돌아가거라. 재혼을 하기에는, 내가 너무 늙었다. 설령, 나에게 어떤 희망이 있다거나, 오늘 밤 내가 남편을 맞아들여 아들들을 낳게 된다거나 하더라도,
13. 너희가, 그것들이 클 때까지 기다릴 셈이냐? 그 때까지 재혼도 하지 않고, 홀로들 지내겠다는 말이냐? 아서라, 내 딸들아. 너희들 처지를 생각하니, 내 마음이 너무나 괴롭구나. 주님께서 손으로 나를 치신 것이 분명하다.”
14. 그들은 다시 한 번 큰소리로 울었다. 마침내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맞추면서 작별 인사를 드리고 떠났다. 그러나 룻은 오히려 시어머니 곁에 더 달라붙었다.
15. 그러자 나오미가 다시 타일렀다. “보아라, 네 동서는 저의 겨레와 신에게로 돌아갔다. 너도 네 동서의 뒤를 따라 돌아가거라.”
16. 그러자 룻이 대답하였다. “나더러, 어머님 곁을 떠나라거나, 어머님을 뒤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는 강요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님이 머무르시는 곳에 나도 머무르겠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17. 어머님이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나도 죽고, 그 곳에 나도 묻히겠습니다. 죽음이 어머님과 나를 떼어놓기 전에 내가 어머님을 떠난다면, 주님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더 내리신다 하여도 달게 받겠습니다.”
18. 나오미는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마음먹은 것을 보고,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시편 146)
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2. 내가 평생토록 주님을 찬양하며 내가 살아 있는 한, 내 하나님을 찬양하겠다.
3. 너희는 힘있는 고관을 의지하지 말며, 구원할 능력이 없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라.
4. 사람은 숨 한 번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니, 그가 세운 모든 계획이 바로 그 날로 다 사라지고 만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고 자기의 하나님이신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
6. 주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시며,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을 위해 공의로 재판하시며,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감옥에 갇힌 죄수를 석방시켜 주시며
8. 눈먼 사람에게 눈을 뜨게 해주시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9. 나그네를 지켜 주시고, 고아와 과부를 도와주시지만 악인의 길은 멸망으로 이끄신다.
10. 시온아, 주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신다! 나의 하나님께서 대대로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히브리서 9:11-14)
11.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일어난 좋은 일을 주관하시는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만들지 않은 장막, 다시 말하면,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더 완전한 장막을 통과하여
12. 단 한 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는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써가 아니라, 자기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13. 염소나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더러워진 사람들에게 뿌려도, 그 육체가 깨끗하여져서, 그들이 거룩하게 되거든,
14. 하물며 영원한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야말로, 더욱더 우리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죽은 행실에서 떠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겠습니까?
(마가복음 12:28-34)
28. 율법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다가와서,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예수가 그들에게 대답을 잘 하시는 것을 보고서, 예수께 물었다.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으뜸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이신 주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사랑하여라.’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학자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옳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밖에 다른 이는 없다고 하신 그 말씀은 옳습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와 희생제보다 더 낫습니다.”
34. 예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그 뒤에는 감히 예수께 더 묻는 사람이 없었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신앙의 기본-주님께 가까이’입니다.
구약,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룻기 1:16)
시편,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시편 146:5)
서신서, “죽은 행실에서 떠나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히브리서 9:14)
복음서,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마가복음 12:34)
오늘 요절은,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입니다.(마가복음 12:31)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룻기 1:1-18, 시편 146)]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룻이 나오미와 더불어 베들레헴으로 이주하다’입니다.
과부요 이방인인 <약자 중의 약자> 신세 나오미가 귀향하려 합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따라갈 경우 자신이
<약자 중의 약자> 신세가 될 것을 알면서도 끝내 시어머니를 따릅니다.
시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그리고 아무 의지할 데 없는 <약자 중의 약자> 신세가
주님과 가까워지고 주님의 은총을 받는 지름길이 되었습니다.(16)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하나님은 영원히 신실하심’입니다.
시인은 약자들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를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보존할 권능이 있는 하나님께서
몸소 인간에게 오셔서 그리 하마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표현 “야곱의 하나님”(5) 속에 그것이 고스란히 들어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노래는
율법과 예언서와 통하고(출22:21-22, 신10:17-19, 사1:17, 58:6-7)
예수님 복음의 기초와 고스란히 이어집니다.(눅4:17-19)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히브리서 9:11-14, 마가복음 12:28-34)]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땅의 성소와 하늘의 성소’입니다.
수없이 반복된 옛 제사는 죄를 온전히 제거할 수 없으므로
우리를 하나님과 온전히 친교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늘성소에서 자기 피로써
단번에 우리 모든 죄를 속하시는 영원한 속죄(贖罪)를 이루어
하나님과의 온전한 친교,
즉 하나님께 참 예배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14)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가장 큰 계명’입니다.
사두개파와 논쟁하신 예수님께, 율법학자 한 사람이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질문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경천애인(敬天愛人)을 드러내십니다.(신6:4-5, 레19:18)
이는 성육신(成肉身)하신 예수님께서
일생동안 우리 가운데 살며 보여주신 삶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성육신의 신비 안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물론,
경천애인의 시작과 끝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31)!
이웃사랑 이 말씀 이 길을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예수님을 닮아가고 하나님과 가까워질 것입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신정절(왕국절) 10째 주일인 종교개혁주일 성서일과 말씀은
신앙의 기본에 충실할 것을 깨우치십니다.
어렵고 어지러운 시대일수록 자칫 멀어지기 쉬운 하나님께
더 바짝 다가가시라!
룻! 위기의 상황, 인생의 기로,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더더욱 시어머니께 바짝 다가간 룻을 통하여
우리는 신앙의 기본을 봅니다.
나오미! 과부요 이방인인 <약자 중의 약자> 시어머니 나오미,
룻의 선택은, 눈앞의 이익만을 쫓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고생문이 훤한 길이었습니다.
나보다 더 약한 시어머니를 끝까지 섬기기로 한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가장 큰 계명 안에
룻의 모범이 겹쳐 보입니다.
한국교회는 오늘 종교개혁 504주년을 맞이하며 신앙의 기본을 돌아봅니다.
지금 우리는 내 편안과 편리, 나의 이익만을 쫓는 길을 멈추고
세상손해 무릅쓰고
주님께로 방향을 바꾸어 바짝 다가갈 때입니다.
그 길이 바로, 지금 눈에 보이는 약자들을 찾아가서(요일4:20)
주님 섬기듯 꾸준히 섬기는 길임을
우리는 이미 압니다.
8.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룬 것입니다. 9.“간음하지 말아라. 살인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탐내지 말아라” 하는 계명과, 그밖에 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말씀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3:8-9)
16.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17.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 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속에 머물겠습니까? 18.자녀 된 이 여러분, 우리는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요한일서 3:16-18)
10.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11.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9.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20.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21.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 (요한일서 4:10-11, 19-21)
[나머지]
*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
구약의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통하여(효도하려 애쓰다가) 하나님을 알아가고 관계 맺게 됩니다. 시편의 시인은, 내 모든 계획을 내려놓고 주님께 희망을 걸면서 주님의 진면목을 알게 됩니다. 서신서는, 예수님의 피를 통하여 하나님과 관계 맺고 섬기게까지 되는 원리를 보여주고, 복음서를 통하여 우리는, 계명을 실천하면서 하나님사랑에 이어 이웃사랑까지 실천하게 되고 마침내 제 목숨까지 바칠 수 있게 됩니다. 목숨 걸고 시어머니와의 관계의 끈을 놓지 않은 룻은 마침내 하나님과의 관계로 이어지고, 그 뒤에 이런저런 복스러운 관계들을 맺게 됩니다.(보아스, 다윗, 예수님...) 하나님께 목숨을 걸고(마가12:30) 하나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시편146:5)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만큼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것이며...(마가12:33), 예수님께서 그 길을 온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 주님께 희망을 거는 공동체
“억눌린 사람”, “굶주린 사람”, “감옥에 갇힌 죄수”(시편 146:7), “눈먼 사람”, “낮은 곳에 있는 사람”(8), “나그네”, “고아와 과부”(9) 오늘 시편본문은 우리 가까이의 약자들을 이렇게 하나하나 열거하며 주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돌보시는지 자세히 묘사합니다. 그래서 오늘 시인은,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노래하는 것입니다.(5) 오늘 구약본문에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나오미는 모든 인생길이 막히자 비로소 주님께서 고향에 풍년 들게 하셨다는 소식이 귀에 들립니다.(룻기1:6) 안쓰럽고 처절한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16) 룻은 이런 시어머니 나오미가 의지하는 하나님께 희망을 겁니다. 그 안쓰럽고 처절한 희망에서 강력한 마음이, 강력한 사랑이, 강력한 공동체가 나온 것입니다. 오늘 룻이 굳게 마음먹은 그 마음은 장차 큰 사랑, 큰일을 일으킵니다. 천하의 왕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을 낳고, 룻의 그 마음, 그 사랑은 마침내 평화의 왕, 사랑의 임금 예수님(출생)으로 이어집니다.(마태1:5) 룻에게 진심(盡心, 眞心)을 주신 하나님, 절망에 빠진 시어머니를 향한 사랑의 마음, 일체감을 주신 하나님께서, 오늘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과 노인들에게, 그리고 남과 북 모두에게 서로를 향한 불신 대신, 일체감을 불러일으켜주시길 기원합니다. 서로를 향한 기대와 희망을, 서로를 향한 긍휼과 사랑의 마음을 불러일으켜주시길 빕니다.
*** 목숨을 다한 사랑
오늘 복음서본문의 알맹이 역시 사랑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정리해주신 가장 큰 계명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눈여겨 볼 것은, “네 목숨을 다하고”라는 예수님 말씀입니다.(30) 이 부분을 반복해서 확인한 율법학자의 말에는 빠져 있습니다.(33) 이야기인 즉, 예수님과 율법학자가 인용한 신명기 6:5절에는 “목숨”이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채우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사시고 죽으셨습니다. 목숨 바쳐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어디에서 여론조사를 했는데, 시어머니가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 가운데서 대한민국 며느리들이 가장 믿지 못할 말씀 1순위가 “나는 너를 내 딸처럼 여긴다”는 거였고, 반면에 시어머니들께서 가장 믿지 못하는 며느님 말씀 1순위는, 시어머니께서 전화 걸었을 때 며느리가 하는 이런 말이라고 합니다. “아유 어머니, 제가 지금 막 전화드리려던 참이었어요...” 오늘 구약말씀의 주인공은 나오미와 룻입니다. 성경에서 남녀 간의 사랑을 뛰어넘는 남자들 사이의 사랑과 우정의 상징으로 다윗과 요나단을 꼽는다면, 여자들 사이의 사랑의 대명사로는 단연 나오미와 룻 저 특별한 고부간의 사랑을 꼽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본문에서 조금 다른 것을 느낍니다. 그건, 나오미에게 룻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나오미에게 룻은 며느리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죽어도 어머니의 곁을 떠날 수 없다는 룻의 선언. 이건 마치 준엄한 선전포고 같습니다. 좀 지나친 상상인지 모르겠으나, 저는 이 문장을 읽고 묵상하면서, 룻에게서 하나님의 마음, 그 향내를 느꼈습니다.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리라는 임마누엘 하나님! 내 백성들의 실생활을 보고 싶어서 변복을 하고 궐 밖으로 나가는 조선시대 임금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아예 사람의 몸을 입고 예수라는 이름으로 아예 더불어 살러, 그리고 죽으러 세상에 오신 하나님, 아버지와 자식 관계를 넘어 친구로, 큰 형님으로 오신 바로 그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룻에게서 말입니다. 랍비의 모습으로, 친구의 모습으로 오신 싱싱한 청년 예수 하나님처럼, 딱 나 같은 과부의 모습으로, 친구보다 더 만만한 내 며느리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이랄까? 이건 너무 비약이지만, 그래도 저는 오늘 본문말씀을 읽으면서 룻에게서 그런 하나님의 기운을 느낍니다. 사랑이란,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복음가수 이길승 목사의 노래 ‘철수엄마’ 노랫말입니다.
철수의 엄마는 듣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는 해녀랍니다. 그렇게 어렵게 5형젤 키운 엄마를 철수는 사랑합니다. 수화도 모르는 엄마이기에 온몸과 숨소리로 말했답니다. 어느날 철수는 책방에 들러 한글공부 그림책 사가지고는, 글씨와 그림을 보여드리며 신나게 하나둘 가르쳤는데, 철수가 엄마에게 하고 싶던 말, 사랑이란 단어 위에 떨렁 그려진, 하트모양 그것을 설명하려다, 너무너무 어려워 울었습니다. 너무너무 속상해 울었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성경 66권을 꽉꽉 짜서 짜낸 엑기스, 가장 큰 계명,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추상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그런데 이것조차 추상적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각별한 체험이 있는 사람조차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알쏭달쏭해지는 것이 우리네 믿음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간절함이 철철 넘치는 것만 같던 천국소망조차 시간이 지나면서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 손에 잡히는 것들에 대한 집착, 맛에 대한 집착, 그 미망(迷妄) 때문에 새벽안개처럼 허망하게 사라져버리는 것이 우리네 소망입니다. 700%리얼인 것 같았다가도 어느 순간이 지나면 맹숭맹숭 아리송해지는 남녀 간의 사랑만큼이나, 지극히 추상적인 것이 우리가 말하는, 우리가 느끼는 소위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사랑 또한 얼마나 추상적입니까? 이웃사랑은 또 어떻습니까? 도대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의지할 곳 아무데도 없는 우리 나오미, 밑바닥에 떨어진 나오미입니다. 그런 나오미를 주님께서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룻을 통해서! 말로는 단호하게 며느리 너희들 다 갈 길로 가라고 했으나, 끝끝내 시어머니 곁을 지키려는 저 단호한 룻의 말을 들으며 나오미의 속마음은 얼마나 든든했겠습니까? 나오미에게 룻은 마지막 동아줄, 한 가닥 희망이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이웃은 누구입니까? 밑바닥에서 죽지 못해 살고 있는 힘없는 이웃은 누구입니까? 눈에 불을 켜고 찾으십시오. 왜냐하면, 그 이웃이야말로, 내가 가장 큰 계명, ‘사랑’을 제대로 깨달을 수 있는, 가장 큰 계명 ‘사랑’을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룻에게 이웃은 바로 시어머니 나오미였습니다.(나오미의 모습으로 룻에게 오신 하나님 같은!) 동시에 나오미에게 룻은 며느리의 모습으로, 과부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룻이 나오미를 주님 섬기듯 섬긴 것입니다. 이웃 섬기듯 섬긴 것입니다. 어쩐지 룻에게서 예수님의 향기가 납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온몸으로 보여주신 예수님! 내 몸을 먹으라고 주시기까지 우리를 섬기신 예수님, 그 사랑의 시작을 오늘 룻에게서 느낍니다.
(※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사랑해야지 (김민서 지음. 세움교회 고등부. 「성실문화」 108호)
가장 으뜸이신 분 하나님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
내 모든 걸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지
내 맘대로 내 욕심대로 살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이 세상에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만을 사랑해야지
때때로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지만
나를 보듬어주시고 항상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지
[말씀시조] 짐승의 피가 아닌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08호)
짐승의 피가 아닌 자기 피로 이룬 구원
예수께서 이뤄주신 영원한 우리 구원
그 피로 깨끗한 우리 하나님을 섬기리
[시편노래] 146, 할렐루야 내 영혼아 (이정훈 편사, . 「성실문화」 108호)
[본문] (시편 146)
[노랫말]
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라, 평생토록 찬양하며 목숨 다해 찬양하라
사람들 덧없어라 권력자를 믿지 말라, 숨 한번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리
2. 복스러운 사람들은 주님만 바라보네, 천지를 지으신 분 주의 신실 의지하네
공정하게 재판하고 굶주린 자 먹이시고, 갇힌 자 풀어주는 주님만 바라보네
3. 눈먼 사람 보게 하고 낮은 사람 일으키고, 의인을 사랑하고 악인의 길 막으신 분
나그네를 지키시고 고아과부 도우시는, 영원하신 주의 통치 찬양하라 할렐루야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인 이석훈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46 (할렐루야 내 영혼아)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146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08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2.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3. 귀인들을-- (귀인- 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6.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8.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9.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다함께]
10.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말씀동화] 줄 없는 거문고가 노래하는 날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다람쥐랑 손잡고 백두대간 종주하던 시절 이야기예요.
“리∼ 리∼ 리∼자로 끝나는 말은,
너구리 개구리 소쿠리 광주리, 우리 도토리∼”
호랑이가 으쓱으쓱 어깨춤을 춥니다.
다람쥐는 그런 호랑이를 가재미눈으로 바라보며
속으로 종알거립니다.
‘네가 도토리를 알아?’
다람쥐의 가재미눈에 아랑곳하지 않고
호랑이가 다람쥐에게 새로 운을 띄웁니다.
“이번엔 락이야, 즐거울 락(樂)!”
‘요건 어려울 거다’라는 표정으로
호랑이가 꼴깍꼴깍 군침을 삼키며 심술쟁이 미소를 짓습니다.
다람쥐의 가재미눈이 점점 도끼눈으로 변하더니
이내 입꼬리가 초승달처럼 올라가네요.
“락락락자로 끝나는 말은, 바지락 도시락 도투락 꼼지락, 오락 좋아락!”
다람쥐가 후다닥 순식간에 락(樂)자 시를 읊조리자
호랑이 눈이 등잔만큼 커지고 입은 항아리 뚜껑만큼 커집니다.
“엉터리! 그런 억지가 어딨어, 좋아락이 뭐야 좋아락이!”
“어디 있긴 어딨어 여기, 여기 있지롱!”
다람쥐는 얼마나 재미있는지
까르르 까르르 대굴대굴 구르며 좋아합니다.
다람쥐와 호랑이는 즐거울 락 오락시간을 마치고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백두산 천지에서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가
어느덧 저어기 지리산이 가깝습니다.
백두산 낙락장송 나뭇가지에서 잠자던 다람쥐가 어느날 이상한 꿈을 꾸었죠.
꽁꽁 얼어붙었던 백두산 천지가, 녹기도 전에 온통
펄펄 끓어오르는 꿈이었어요.
그리곤 얼른 잠자던 호랑이를 깨운 겁니다.
“호랑아 우리 함께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걸으면서 기도하자.”
“언니, 왜 무슨 일 있어요? 무슨 기도를 하려고?”
“무슨 일이긴, 지금 우리나라가, 우리 지구가 죽어가잖아.”
“맞아, 백두산 천지도 예전이랑 달라. 얼음 녹는 철도, 녹는 모양도 달라졌어요.”
백두대간을 걸으며 다람쥐와 호랑이는 기도합니다.
낮은 골짜기에선 소리 높여 부르짖고
높은 봉우리에선 귀 기울이기를 반복합니다.
“사람들이 백두산 오를 때 도토리 주워가지 않게 해주세요.”
“사람들이 백두산에 호텔도 케이블카도 짓지 않게 해주세요.”
“삼각산 도토리도 주워가지 말고, 산마다 호텔도 케이블카도 못 짓게 해주세요.”
어느덧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다람쥐와 호랑이가 눈을 감습니다.
신새벽 맑은 이슬을 핥아먹으며
쫑긋쫑긋 작은 귀를 세우고 하늘을 경청합니다.
푸른 바람결에 어디선가 작고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주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시며,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며” (시편146:6)
다람쥐와 호랑이의 마음이 하나님과 한 뼘 더 가까워집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산이니, 하나님이 돌봐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다람쥐와 호랑이가 눈을 떠보니 안 보이던 것이 보이네.
말라죽은 구상나무 아래 거문고 하나가 누워있는데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줄이 하나도 없는 죽은 거문고입니다.
“하나님이 왜 줄 없는 거문고를 내려주셨을까?”
다람쥐와 호랑이는 죽은 거문고를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약속이나 한 듯이 눈을 감습니다.
아까 그 작고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다시 들립니다.
“마음을 정했습니다, 하느님. 마음을 정했습니다. 노래하리이다. 거문고 타며 노래하리이다. 나의 마음아, 눈을 떠라. 비파야, 거문고야, 눈을 떠라. 새벽을 흔들어 깨우리라.” (시편108:1-2, 공동번역)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하늘노래에 화답하듯이 줄도 없는 거문고가 아름다운 노래를 자아내는 겁니다.
누에가 자아낸 명주실처럼 아름다운 가락입니다.
“억눌린 사람을 위해 공의로 재판하시며,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감옥에 갇힌 죄수를 석방시켜 주시며 눈먼 사람에게 눈을 뜨게 해주시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나그네를 지켜 주시고, 고아와 과부를 도와주시지만 악인의 길은 멸망으로 이끄신다.”(시편146:7-9)
다람쥐와 호랑이의 몸과 마음이 하나님과 한 뼘 더 가까워집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이니, 하나님이 돌봐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에게 먹을거리를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다람쥐와 호랑이가 눈을 떠보니 또 안 보이던 것이 보이네.
줄 없는 거문고에 어느새 줄 하나가 생긴 겁니다.
푸른 거미 한 마리가 새벽빛 영롱한 거미줄 하나를 매어준 겁니다.
건드리면 끊어질 듯 손댈 수 없는 거문고 줄이라니.
오직 푸른 바람결로만 탈 수 있는 거문고라니.
다람쥐와 호랑이는 말라죽은 구상나무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 한줄 거문고를 바라보며 다시 눈을 감습니다.
푸른 바람 다시 부는 날
거미줄 거문고는 과연 어떤 노래 어떤 가락을 자아낼지
그 노랫소리 듣고 지리산은 말라죽은 구상나무는 백두대간은
우리나라는 우리지구는 얼마나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렙니다.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08호」 ‘예배마당’에서 가져옴]
(※조지 프레더릭 와츠의 그림 ‘희망’을 소개한 「햇순」 305호 홍소윤 목사님의 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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