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마디 말씀으로 그들을 고쳐주셨고”(시편 107:20)
[성서일과 4본문]
(민수기 21:4-9)
4. 그들은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호르 산에서부터 홍해 길을 따라 나아갔다. 길을 걷는 동안에 백성들은 마음이 몹시 조급하였다.
5. 그래서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다. “어찌하여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왔습니까? 이 광야에서 우리를 죽이려고 합니까? 먹을 것도 없습니다. 마실 것도 없습니다. 이 보잘것없는 음식은 이제 진저리가 납니다.”
6.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사람을 무니, 이스라엘 백성이 많이 죽었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구하였다. “주님과 어른을 원망함으로써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이 우리에게서 물러가게 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모세가 백성들을 살려 달라고 기도하였다.
8.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사람은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 것이다.”
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로 뱀을 만들어서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에, 물린 사람은 구리로 만든 그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시편 107:1-3, 17-22)
1. 주님께 감사드려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2. 주님께 구원받은 사람들아, 대적의 손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아, 모두 주님께 감사드려라.
3. 동서남북 사방에서, 주님께서 모아들이신 사람들아, 모두 주님께 감사드려라.
17. 어리석은 자들은, 반역의 길을 걷고 죄악을 저지르다가 고난을 받아
18. 밥맛까지 잃었으니, 이미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렀다.
19. 그 때에 그들이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그들을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다.
20. 단 한 마디 말씀으로 그들을 고쳐 주셨고, 그들을 멸망의 구렁에서 끌어내어 주셨다.
21. 주님의 인자하심을 감사하여라. 사람에게 베푸신 주님의 놀라운 구원을 감사하여라.
22.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주님이 이루신 일을 즐거운 노래로 널리 퍼뜨려라.
(에베소서 2:1-10)
1. 여러분도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2. 그 때에 여러분은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3. 우리도 모두 전에는, 그들 가운데에서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했으며,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4.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5. 범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6.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함께 앉게 하셨습니다.
7.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로 베풀어주신 그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장차 올 모든 세대에게 드러내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10.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14-21)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
15.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7.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심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빛이 세상에 들어왔지만,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20.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누구나 빛을 미워하며, 빛으로 나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행위가 드러날까 보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빛으로 나아온다. 그것은 자기의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구약, “구리로 만든 그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민수기 21:9)
시편, “주님의 놀라운 구원을 감사하여라”(시편 107:21)
서신서, “범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주셨습니다”(에베소서 2:5)
복음서,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요한복음 3:17)
오늘 요절은, “단 한마디 말씀으로 그들을 고쳐주셨고”입니다.(시편 107:20)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민수기 21:4-9, 시편 107:1-3, 17-22)]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구리 뱀으로 백성을 구하다’입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죽고(20장) 혼자 남은 모세가 백성을 이끄는데
에돔 족속의 방해로 지름길을 포기하고 돌아서 가게 되니
백성의 마음이 조급해집니다.(4)
조급한 마음은 또다시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게 만듭니다.
백성은 음식을 불평하고(5) 하나님은 불뱀으로 백성을 치십니다.(6)
그러자 백성은 다시 뉘우치며 애원하고
모세는 백성을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둥에 매달린 구리 뱀을 쳐다보게 하십니다.
단 한마디 말씀으로도 백성을 다 살리실 수 있으셨음에도,
백성을 물어 죽인 불뱀의 모양을 바라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자신의 죄를 묻어두지 말고 <직면하여 철저히 회개하기>가 아니었을까요?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구속받은 자들의 감사시’입니다.
이 시편은 큰 감사축제 예배의식의 서문으로 보이는데,
감사제물과 함께 기쁜 노래를 부르도록 회중을 이끕니다.(22)
회중은 다양한 무리들로 구성되는데, 그 가운데 오늘 본문은,
오늘 구약본문의 백성을 연상시킵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벼이 여겨 반역하다가(17) 밥맛 잃고 죽음에 이르는 벌을 받습니다.
이는 마치 오늘 구약 5절 뒷부분 상황을 극대화시킨 것처럼 보입니다.
(“이 보잘것없는 음식은 이제 진저리가 납니다.”)
벌 받는 백성이 뉘우치고 회개하니
하나님께서 단 한 마디 말씀으로 고쳐주시고(20)
백성은 감사 찬양합니다.(21-22)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고쳐주시니, 그 감사 그 찬양 참으로 높고 깊을 것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에베소서 2:1-10, 요한복음 3:14-21)]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은혜의 선물인 새로운 삶’입니다.
악마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 우리의 이기심, 즉
“육체의 욕심(육신의 정욕)”을 이용하는데(3)
이것은 인간에게 매우 보편적인 본능이어서 악마에게 아주 좋은 도구입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과 분리된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나
은혜로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관계를 회복하여 친교하십니다.
심지어 우리를 하늘에 함께 앉히기까지 하십니다.(6)
이렇게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회복되고 우리의 친교가 깊어짐으로써
악마의 필살기인 <육체에 속한 이기심>이 점점 사라지니
우리는 나날이 영에 속한 이타적인 삶,
선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10)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예수와 니고데모’입니다.
니고데모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시려고 예수님께서
오늘 구약본문의 구리 뱀 이야기로 다가오는 십자가 사건을 암시하십니다.(14)
“인자도 들려야 한다”는 말씀 속에는(14)
십자가에 달리시는 사건 뿐 아니라, 부활 승천까지 내다보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1:4절에 드러난 생명과 빛의 관계가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의 빛이었다.”)
오늘 본문 15-16절(영생)과, 19-21절(빛)로 발전합니다.
오늘 본문의 알맹이는, 오늘 서신서본문과 연이어서,
그리스도를 통한(예수 이름을 통한, 16-18)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즉 친교입니다.
1:9절의 빛이신 그분을 피하지 않고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그 이름을 믿고 따르는 자는 진리를 행하기 마련입니다.(21)
그것은 하나님과 친교하는 자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는 것입니다.(21)
이는 오늘 서신서본문 10절과 통합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참조)
[정리]
사순절 넷째 주일에 주신 하나님 말씀들은
어둡고 암담한 현실에서 시작하여
밝은 희망, 기쁜 찬양으로 나아갑니다.
조급, 원망, 죄, 반역, 죽음, 멸망, 곤경, 불순종, 범죄, 악한 일, 두려움, 심판...
기도, 자비, 은혜, 구원, 감사제물, 즐거운 노래, 선한 일, 영생, 빛, 진리...
(시편) “죽음의 문턱”(18), “멸망의 구렁”(20)에서 오히려
“놀라운 구원”(21)과 “즐거운 노래”(22)가 빛을 발합니다.
(서신서) “허물과 죄”(1,2), “세상의 풍조”(2), “육신의 정욕”, “진노의 자식”이(3)
“그 크신 사랑”(4), “하나님의 선물”(8), “하나님의 작품”(10)으로 변화합니다.
누나와 형을 다 잃어 힘들고 외로운 모세에게 설상가상 백성의 원망은
오히려 모세와 이스라엘에게 새 출발, 새 희망의 기회가 됩니다.
백성을 많이 물어 죽인(6) 불뱀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던 옛 뱀 악마를 떠올립니다.
하나님께서 불뱀을 구리로 만들어 기둥에 달아 쳐다보게 하심으로
그 뿌리 깊은 불순종과 이간의 역사(뿌리)를 직면하게 하십니다.
에덴의 첫 사람부터 광야 백성에 이르기까지
<먹을거리>로 하나님과 자녀 사이를 갈라놓았던 악마의 이간계(離間計)는
지금 우리 가운데서도 상당히 잘 통합니다.
그럼에도 은혜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깎고 다듬어 작품을 만드십니다.(엡2:10)
육체의 욕심을 넘어서 “진리를 행하는”(요3:21) 빛나는 사람,
주님과 하늘에 함께 앉을 만큼(6) 주님과 가까운 절친으로 만드십니다.
오늘 죽음의 그늘골짜기 코로나19 사태의 근원인
우리 육체의 욕심(육신의 정욕), 그 세상 풍조들을 직시하고 회개한다면,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작품”으로, “진리를 행하는 사람”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단 한 마디 말씀으로 그들을 고쳐”주신(시107:20)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실 것입니다.
[나머지]
* ‘구리뱀과 예수님’
①첫뱀이 첫사람을 유혹하여서, 먹어서는 안될것을 먹게하였다,
첫뱀으로 첫사람이 죽어갔듯이, 불뱀에게 물린사람 죽어가누나
②불뱀에게 물린사람 살아나려면, 높이들린 구리뱀을 보아야한다,
먹을거리 욕심부린 탐욕의상징, 구리뱀은 나를보는 거울이로다.
③구리뱀이 들리듯이 들리신예수, 십자가의 예수님만 바라보아라,
먹을거리 욕심일랑 내려놓아라, 일용할 양식만 바라보아라.
④하늘에서 내려오신 생명의양식, 예수는 나를살린 참된떡이라,(요 6:51)
하늘에서 내려오신 하나님보라, 참 나를 보여주는 거울이로다.
[이정훈 지음]
** 아스클레피오스의 뱀지팡이와 모세의 구리뱀
세계보건기구(WHO), 대한의사협회, 그리고 구급차의 상징 마크로 쓰이는 ‘막대기와 뱀’은 그리스 신화의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뱀지팡이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아스클레피오스는 죽은 뱀을 살리는 동료 뱀의 행동을 우연히 봅니다. 그 뱀이 어떤 이파리를 물어다 죽은 뱀에게 갖다 대니 살아나더라는 것입니다. 그 뒤로 그는 자기가 짚고 다니는 지팡이에 그 뱀의 형상을 만들어 달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스 신화와 구약 민수기 구리뱀, 둘 중 어느 것이 먼저였는지, 그리고 서로 상관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아스클레피오스의 이야기는 논리적인데 반하여, 민수기 21장의 구리뱀 사건은 대단한 역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날 광야의 불뱀은 살림의 상징이 아니라 죽임의 상징이었으니 말입니다. 그 죽임의 상징을 구리로 만들어 바라보면 살아난다니 말입니다. 바로 이것을 가리켜 예수님은 십자가 구원과 통하는 예언적 지표로 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역시 지독한 죽음의 상징임에도 살림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모세의 구리뱀이 뒤에 느후스단으로 타락했듯이(왕하 18:4), 예수님의 십자가도 자칫 또 하나의 느후스단이 되고 있는 오늘 한국교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느후스단과 같은 우상이 되지 않으려면, 본질을 직시해야 합니다. 구리뱀이 초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라 명하신 하나님의 사랑, 노예의 근성을 벗기고 자녀 되게 하시려는 그 사랑이 본질이듯이, 십자가의 본질은 벗을 살리려고 나를 죽이는 사랑이요, 빛이요, 생명입니다. 그렇게 십자가의 본질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내 십자가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호의호식, 무병장수와 같은 길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 근본에 닿아 내 십자가를 발견하려면, 진리의 말씀으로 내 모든 가식을 벗어야 합니다. 진리의 빛과 거리가 먼, “하나님 작품”(에베 2:10)과 거리가 먼, 내 모든 권력욕과 탐욕, 그 어둠의 기운이 극대화된 온갖 갑질을 그쳐야 합니다. 그동안 은폐해둔 온갖 갑질들을 주님 앞에 다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게 빛과 생명, 사랑의 기운으로 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분노하신 예수님 (장유진 지음. 시냇물교회 고등부. 「성실문화」 106호)
이스라엘의 성전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외에
한 가지 제사가 더 있었다
권력을 위한 제사
사람이 율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만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낱말들로 사람들의 피를 흘렸다
소와 양과 비둘기와 함께
사람들은 유대 지도자들의 권력을 위해 희생되었다
이 모습에 주님은 분노하셨다
[말씀시조] 범죄로 죽은 우리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06호)
범죄로 죽은 우리 주와 함께 살리셨네
대자대비 하나님의 큰 은혜로 살아났네
우리는 하나님 작품 선한 일을 하리니
[말씀서예] 에베소서 2:10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 106호)
[시편노래] 시편 107, 영원무궁 인자하신 (이정훈 편사, 박승원 작곡. 「성실문화」 106호)
[본문] (시편 107:1-3, 17-22)
[노랫말]
1. 영원무궁 인자하신 주님께 감사하세, 구원받은 사람들아 모두 주께 감사하세
동서남북 사방에서 주님께서 모아들인, 우리 모두 감사하세 선하신 주 노래하세
2.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악으로 고통 받는, 어리석은 사람들아 죽음이 코앞이다
주님께 부르짖어 주님께 돌아오라, 고통스런 곤경에서 주님 구원하시리라
3. 단 한 마디 말씀으로 고치시고 세우시니, 놀라우신 주의 구원 소리높여 감사하라
주님이 이루신 일 노래지어 퍼뜨려라, 감사노래 기쁜 제물 널리널리 퍼뜨려라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월드뮤직그룹 ‘공명’ 단원이신 박승원 선생이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07 (영원무궁 인자하신) (이정훈 편사, 박승원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107:1-3, 17-22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06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3.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17.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
18.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
19.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20.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다함께]
21.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22.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
[말씀동화] 불뱀 구리뱀 옛뱀 그리고 용용 죽겠지
옛날옛날 한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백두산 꼭대기에서 용이랑 팔씨름하던 시절 이야기예요.
오늘도 교회학교 선생님이랑 재미난 성경공부를 했어요.
비록 영상으로 하는 거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는
조그마한 모니터 안에 오순도순 모여앉아 늘 재미나게 공부하죠.
“옛날에 우리나라에 처음 오신 미국 선교사님들이 깜짝 놀란 것은, 남자 어른들마다 머리에 하나님을 쓰고 다니더라는 거야.”
“하나님이 모자도 아닌데 어떻게 머리에 하나님을 써요?”
“그건 바로 머리에 쓰는 <갓>이 영어로 하나님(God)을 뜻하기 때문이지”
“어휴,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른들 아재개그는 못 말려!”
우리는 선생님의 <갓>타령에 너도나도 한바탕 놀려댔어요.
빙그레 웃으시며 선생님 말씀은 이어집니다.
“그런데 또 하나 선교사님들이 놀란 사실은, 임금님이 사탄이랑 친하다는 사실이었단다.”
“그건 또 무슨 소리죠?”
“요한계시록 공부한 거 기억 안 나느냐? 거기 사탄을 용이라고 묘사한 거 말이야.”
“그런데 그게 임금님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좋은 질문이야. 우리 옛 어른들은 임금님을 용에 비유했단다. 그래서 임금님이 입는 옷도 용포(龍袍)라고 하고 임금님 얼굴도 용안(龍顏)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그건 우리 옛 어른들이 용을 꽤 좋은 동물이라고 생각했다는 건데, 성경에서는 용이 사탄의 상징이니... 고민이 많았겠네요?”
“그랬겠지? 그래도 처음 교회는 성경의 진리를 우리 것으로 소화할 때 우리 전통문화와 조화를 잘 이루었단다. 예를 들면, 천주교 첫 신자이신 광암 이벽선생님이 기록한 성교요지(聖敎要旨)라는 책에 보면, 거기서 예수님을 용으로 묘사했단다. 왜냐하면 우리 문화에서는 용이 임금님의 상징이니까, 평화의 임금님이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당연히 용으로 묘사한 거지.”
작은 모니터 안에 옹기종기 모인 우리 열두 개의 입이 모두 딱 벌어졌어요.
선생님은 흐뭇한 표정으로 계속 말씀하셨죠.
“그뿐 아니야. 성경말씀을 번역한 우리 한글 성경을 보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어주는 단어에 용이 들어있단다.”
우리 모두 휘둥그레 눈이 보름달처럼 커지자
선생님은 늠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죠.
“아까 미국 사람들 발음으로 하나님을 뜻하는 갓 이야기 했지? 그런데 갓을 용이 쓰면 뭐가 되는지 아느냐? 그게 바로 용이 갓을 쓴 모양인 총(寵)이라는 글자야. <하나님의 은총(恩寵)> 바로 그 글자지.”
너도나도 고개를 주억거리는 우리를 바라보시는 선생님의 표정이
점점 더 흐뭇해지십니다.
그때 우리 가운데서 가장 똘똘한 동영이가 기습질문을 했어요.
“그럼 성경말씀의 용이랑 우리 옛 어른들이 생각한 용이랑 다른 걸까요, 아니면 같은 걸까요?“
느닷없는 질문에 선생님은 조금 당황하는 표정이셨죠.
“오, 좋은 질문이다. 그것까지는 선생님도 생각 못했는데, 음∼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을 거야.”
“그럼 성경의 용과 우리 옛 문화 속 용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려주세요.”
이어지는 동영이의 요구에 우리는 너도나도 추임새를 넣으며 응원했겠죠?
선생님이 더듬더듬 대답하십니다.
“일단 하늘을 나는 상상의 동물이라는 점이 공통점이겠지? 그런데 차이점은, 서양의 용은 날개가 있는데 우리 용은 날개가 없이도 날 수 있다는 점이야. 우리네 용이 서양 용보다 좀 더 신비롭다고나 할까?”
우리들 눈과 입이 동그래지는 것을 보면서
선생님은 무언가 한마디 더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그리고, 그리고, 음∼ 서양 사람들의 용은 어디 사는지 잘 모르겠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우리 옛 어른들은 용이 하늘에도 바다에도 어디서든 산다고 생각했단다. 바다 속 나라 임금님을 용왕(龍王)이라고 하지? 심지어 그 커다란 용이 작고 작은 우물에도 내려온다고 생각했는지 대보름날 이른 새벽 용알을 뜬다며 우물물을 떠서 밥을 지었지. 그리고 우리나라가 워낙 산이 많기 때문인지,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의 능선조차 용(龍)이라고 보았단다.”
우리들 눈과 입이 더 크고 동그래지는 것을 보시며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상식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이제 오늘 말씀 이야기 해야지?”
“네∼!”
우리의 씩씩한 대답을 들으며 선생님은 오늘의 말씀을 풀어주십니다.
“오늘 구약 말씀에 뱀이 나오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 은혜에도 불구하고, 또 백성은 반찬투정을 했어. 일용할 양식인 만나가 지겹다나 뭐라나?(민수기 21:5) 그러자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셔서 백성이 물려죽게 벌을 내리셨지. 자, 여기서 첫 번째 퀴즈! 뱀에 물려 죽어가는 백성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으로 구리뱀을 바라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그게 바로, 이열치열(以熱治熱) 권법이죠.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아이들이 모두 감탄하는 것을 바라보시며 선생님이 대답하셨죠.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 이열치열이야? 그건 아니지! 우리 철수의 엉뚱함은 하늘을 찌르는 구나. 그리고 그건 이열치열의 차원이 아니고, 범죄한 백성이 제대로 회개하고 개과천선하려면 뭐니뭐니해도 첫 번째로 자기 죄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였어.”
선생님 말씀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영희가 말했어요.
“선생님! 예전에 요한계시록 말씀 가르쳐주실 때, 사탄이 용이면서 또 옛 뱀이라고 하셨잖아요?(계12:9, 20:2) 그 옛 뱀이 아담과 하와를 선악과 먹고 싶도록 유혹한 그 뱀이라면, 옛 뱀이나 불 뱀이나 모두 먹는 거 못 참는 거랑 관계가 있네요? 그렇다면 뱀은 바로 사람들의 먹을거리 욕심과 하나님 무시하는 거랑 관련이 있는 거 아닐까요? 그러니까 구리뱀을 바라보면서 우리 죄의 뿌리를 송두리째 기억나게 하는 거 아닐까요?”
쏜살 같이, 기관총 같이 순식간에 쏟아붓는 영희의 말에
선생님과 아이들은 모두모두 해물탕 큰 조개처럼 입이 딱 벌어졌어요.
우리는 옛 뱀이랑 구리 뱀이랑 불 뱀이랑 도무지 정리도 안 되는데
영희는 이 모든 것을 환히 꿰고 있나 봐요.
어리벙벙하던 선생님이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말씀하셨어요.
“우리 영희 대단하다. 성경공부 기억력도 좋고 응용력도 최고야! 네 덕분에 선생님 생각도 단번에 정리 되었다. 고마워 영희야!”
우린 모두 영희를 향해 엄지 척! 그리고 크고 작은 하트 뿅뿅!
이윽고 선생님께서 오늘 성경공부의 마무리 말씀을 하셨어요.
“오늘도 너희와 함께 영상으로 성경공부 할 수 있어서 선생님은 기쁘다. 끝으로 용에 관한 이야기 하나만 더할게. 오늘 성경말씀에 뱀 종류도 많았던 것처럼, 용 이야기 참 많이 했지? 그런데 한자로 절(𪚥)이라는 글자가 있단다. 글자 쓰기도 복잡한 용(龍)이라는 글자, 그 용이 자그마치 네 마리나 들어 있는 글자야. 이름하야 <말 많을 절, 수다스러울 절>이란다. 용이 몹쓸 사탄이냐 아니면 멋진 우리 전통문화냐 갑론을박 말도 많지만, 그런 상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탄의 거짓투성이 유혹에 빠져 죽어갈 때 되살아날 수 있는 길이 무엇이냐, 바로 그거 아니겠어? 그게 바로 하나님 말씀이란다. 하나님께서는 단 한 마디 말씀으로도 우리를 되살리시는 은혜로우신 분이라는 사실! 잊지 말자. 그럼 다함께 오늘의 요절말씀, 시편 20절 암송하며, 모두 안녕!”
신기하고 재미있는 다음 성경공부 시간을 기약하며
우린 우렁찬 목소리로 오늘 요절을 암송합니다.
“단 한 마디 말씀으로 그들을 고쳐주셨고, 그들을 멸망의 구렁에서 끌어내어 주셨다.”(시편 107:20)
[이정훈 지음. 2021년 3월 13일 토요일 아침]
'성실문화 응용하기 > 본문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순절 6주(수난주일, 2021년 3월 28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0) | 2021.03.26 |
---|---|
사순절 5주(2021년 3월 21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0) | 2021.03.19 |
사순절 3주(2021년 3월 7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0) | 2021.03.05 |
사순절 2주(2021년 2월 28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0) | 2021.02.26 |
사순절 1주(2021년 2월 21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0) | 2021.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