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하나님께서 내 귀를 열어주셨으므로”(이사야서 50:5)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서 50:4-9a)
4. 주 하나님께서 나를 학자처럼 말할 수 있게 하셔서, 지친 사람을 말로 격려할 수 있게 하신다. 아침마다 나를 깨우쳐 주신다. 내 귀를 깨우치시어 학자처럼 알아듣게 하신다.
5. 주 하나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셨으므로, 나는 주님께 거역하지도 않았고, 등을 돌리지도 않았다.
6. 나는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겼고, 내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뺨을 맡겼다. 내게 침을 뱉고 나를 모욕하여도 내가 그것을 피하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7. 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니, 그들이 나를 모욕하여도 마음 상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각오하고 모든 어려움을 견디어 냈다.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겠다는 것을 내가 아는 까닭은,
8. 나를 의롭다 하신 분이 가까이에 계시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나와 다투겠는가! 함께 법정에 나서 보자. 나를 고소할 자가 누구냐? 나를 고발할 자가 있으면 하게 하여라.
9. 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실 것이니, 그 누가 나에게 죄가 있다 하겠느냐? 그들이 모두 옷처럼 해어지고, 좀에게 먹힐 것이다.
(시편 31:9-16)
9. 주님,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나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울다 지쳐, 내 눈이 시력조차 잃었습니다. 내 몸과 마음도 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10. 나는 슬픔으로 힘이 소진되었습니다. 햇수가 탄식 속에서 흘러갔습니다. 근력은 고통 속에서 말라 버렸고, 뼈마저 녹아 버렸습니다.
11. 나를 대적하는 자들이 한결같이 나를 비난합니다. 이웃 사람들도 나를 혐오하고, 친구들마저도 나를 끔찍한 것 보듯 합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마다 나를 피하여 지나갑니다.
12. 내가 죽은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으며, 깨진 그릇과 같이 되었습니다.
13. 많은 사람이 나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사방에서 협박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나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내 생명을 빼앗으려고 음모를 꾸밉니다.
14.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15. 내 앞날은 주님의 손에 달렸으니, 내 원수에게서, 내 원수와 나를 박해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16.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 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빌립보서 2:5-11)
5.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6.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8.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11.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5:1-47)
1. 새벽에 곧 대제사장들이 장로들과 율법학자들과 더불어 회의를 열었는데 그것은 전체 의회였다. 그들은 예수를 결박하고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
2. 그래서 빌라도가 예수께 물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그러자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대답하셨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였소.”
3. 대제사장들은 여러 가지로 예수를 고발하였다.
4. 빌라도는 다시 예수께 물었다. “당신은 아무 답변도 하지 않소? 사람들이 얼마나 여러 가지로 당신을 고발하는지 보시오.”
5. 그러나 예수께서는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빌라도는 이상하게 여겼다.
6. 그런데 빌라도는 명절 때마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죄수 하나를 놓아 주곤 하였다.
7. 그런데 폭동 때에 살인을 한 폭도들과 함께 바라바라고 하는 사람이 갇혀 있었다.
8. 그래서 무리가 올라가서, 자기들에게 해주던 관례대로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다.
9. 빌라도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내가 그 유대인의 왕을 여러분에게 놓아주기를 바라는 거요?”
10. 그는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시기하여 넘겨주었음을 알았던 것이다.
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무리를 선동하여, 차라리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청하게 하였다.
12. 빌라도는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러면, 당신들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그 사람을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요?”
13. 그들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14.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정말 이 사람이 무슨 나쁜 일을 하였소?” 그들은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15. 그리하여 빌라도는 무리를 만족시켜 주려고,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한 다음에 십자가에 처형당하게 넘겨주었다.
16. 병사들이 예수를 뜰 안으로 끌고 갔다. 그 곳은 총독 공관이었다. 그들은 온 부대를 집합시켰다.
17. 그런 다음에 그들은 예수께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서 머리에 씌운 뒤에,
18. “유대인의 왕 만세!” 하면서, 저마다 인사하였다.
19. 또 갈대로 예수의 머리를 치고, 침을 뱉고, 무릎을 꿇어서 그에게 경배하였다.
20. 이렇게 예수를 희롱한 다음에, 그들은 자색 옷을 벗기고, 그의 옷을 도로 입혔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나갔다.
21. 그런데 어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길에, 그 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로서, 구레네 사람 시몬이었다. 그들은 그에게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다.
22. 그들은 예수를 골고다라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골고다는 번역하면 '해골 곳'이다.)
23. 그들은 몰약을 탄 포도주를 예수께 드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받지 않으셨다.
24.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졌는데, 제비를 뽑아서, 누가 무엇을 차지할지를 결정하였다.
25.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때는, 아침 아홉 시였다.
26. 그의 죄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혀 있었다.
27. 그들은 예수와 함께 강도 두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았는데, 하나는 그의 오른쪽에, 하나는 그의 왼쪽에 달았다.
28.(없음) 29. 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면서, 예수를 모욕하며 말하였다. “아하!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짓겠다던 사람아,
30. 자기나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려무나!”
31. 대제사장들도 율법학자들과 함께 그렇게 조롱하면서 말하였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구나!
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는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보고 믿게 하여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사람도 그를 욕하였다.
33. 낮 열두 시가 되었을 때에, 어둠이 온 땅을 덮어서,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34. 세 시에 예수께서 큰소리로 부르짖으셨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다니?” 그것은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하는 뜻이다.
35.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몇이, 이 말을 듣고서 말하였다. “보시오, 그가 엘리야를 부르고 있소.”
36. 어떤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을 신 포도주에 푹 적셔서 갈대에 꿰어, 그에게 마시게 하며 말하였다. “어디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두고 봅시다.”
37. 예수께서는 큰 소리를 지르시고서 숨지셨다.
38.(그 때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다.)
39. 예수를 마주 보고 서 있는 백부장이, 예수께서 이와 같이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서 말하였다.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40. 여자들도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는 막달라 출신 마리아도 있고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도 있고 살로메도 있었다.
41. 이들은 예수가 갈릴리에 계실 때에, 예수를 따라다니며 섬기던 여자들이었다. 그 밖에도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이 많이 있었다.
42. 이미 날이 저물었는데, 그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었다. 아리마대 사람인 요셉이 왔다.
43. 그는 명망 있는 의회 의원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대담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내어 달라고 청하였다.
44. 빌라도는 예수가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여, 백부장을 불러서, 예수가 죽은 지 오래되었는지를 물어 보았다.
45. 빌라도는 백부장에게 알아보고 나서, 시신을 요셉에게 내어주었다.
46. 요셉은 삼베를 사 가지고 와서, 예수의 시신을 내려다가 그 삼베로 싸서, 바위를 깎아서 만든 무덤에 그를 모시고, 무덤 어귀에 돌을 굴려 막아 놓았다.
47.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는, 어디에 예수의 시신이 안장되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귀가 열린 사람들’입니다.
구약, “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실 것이니”(이사야서 50:9)
시편,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주님만 의지하며”(시편 31:14)
서신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였으니”(빌립보서 2:8)
복음서, “예수께서 이와 같이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서 말하였다”(마가복음 15:39)
오늘 요절은, “주 하나님께서 내 귀를 열어주셨으므로”입니다.(이사야서 50:5)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이사야서 50:4-9a, 시편 31:9-16)]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주님 종의 순종’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의 종 예언자는 스스로를 학자로 묘사합니다.
학자는 말로 힘을 줍니다, 바빌론 포로로 사는 지친 동포들에게!(4)
그런데 예언자는 먼저 들을 귀가 필요한데
그 귀를 열어주는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종이 아무런 자기변호 없이 고난을 감수하는 것이(6)
스스로 불의함을 인정하는 것으로 세상은 오해할지라도,
들을 귀가 열린 주님의 종은 결국 진실이 승리할 것을 압니다.(8-9)
6-9절은 오늘 복음서본문 예수님의 침묵 속의 소리 없는 메아리처럼 느껴집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보호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시인은 곤경 가운데서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며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시인의 저 감당 못할 불행이 천벌 받은 것이라고 세상은 손가락질하지만(9-13)
시인은 곤경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확신하므로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깁니다.(14-15)
하나님만 의지하려는 시인의 마음이(14)
오늘 복음서본문 예수님의 침묵 속에서도 느껴집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빌립보서 2:5-11, 마가복음 15:1-47)]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그리스도의 겸손’입니다.
6-11절은 초대교회의 <그리스도 찬가>입니다.
그 내용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의 삶,
그리고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즉 죄와 죽음의 세력을 꺾으신 승리자로서 만유의 주가 되게 하심입니다.(9-11)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빌라도 법정, 판결과 조롱, 십자가 죽음과 무덤’입니다.
마가복음은 유달리 예수님의 침묵에 초점을 둡니다.(시 38:12-15)
예수님의 침묵은 다른 이들의 와글거림과 대조를 이룹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도 무리의 소음이 진동했으나(13-14, 18)
십자가에 달리신 뒤 그 소음은 배가됩니다.(29-32)
예수님의 긴 침묵이 긴 어둠과 함께 이어지다가(33)
마침내 34절의 외침과 함께 기나긴 침묵과 어둠이 동시에 깨집니다.
이 극적인 외침은 시편 22:1절을 빌려 기도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탄식으로 시작해서 감사로 마무르는 유일한 시편인 22편을
십자가에서 다 부르시지 않았을까 추측해보는 것은,
백부장의 놀라운 고백 때문입니다.(39)
마태복음 27:54절과 달리 오늘 본문의 백부장은
오직 십자가 예수님을 정면에서 마주보고 몰두하고 있습니다.(39)
오후 3시 이후 예수님의 첫 음성(34)을 시작으로 운명하시는 순간의 큰 음성(37)까지,
그리고 그 사이의 세미한 음성까지 들을 만큼 백부장의 귀가 열려 있었으리라,
그래서 그런 놀라운 고백이 가능했으리라 추측해 봅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참조)
[정리]
사순절 마지막 고개인 여섯 번째 주일은 수난주일입니다.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묵상하면서 가장 눈에 띈 부분은
복음서의 백부장, 그 고백의 전말입니다.
십자가 예수님의 정면에 서서 예수님의 마지막을 주시하던 그가
참으로 느닷없는 고백을 합니다.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39)
두 차례(34, 37) 큰소리로 외치신 것만 묘사할 뿐인 본문의 행간에서
백부장의 열린 귀로 예수님의 소리를 더듬어 찾다보니
시편 22편이 떠오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로 시작하는 시편 22편은
시편 150편 가운데 유일하게 탄식과 감사 찬양이 어울린 노래입니다.
오늘 구약본문 이사야서 50:5절의 “주 하나님께서 내 귀를 열어주셨으므로”에서
죽음의 고통을 참고 받아들이시는 어린 양 예수님,
하늘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시는 예수님의 거룩하신 귀를 느꼈고,
그처럼 민감한 귀를 가진 또 한 사람, 백부장이 보입니다.
거짓이 강물처럼 흐르는 빌라도의 법정은
거짓말투성이 대한민국의 언론과 법정을 보는듯합니다.
비록 예수님 십자가처형 그 악한 임무를 맡았으나 진리를 보고 듣고 고백한 백부장처럼,
온갖 세상 욕 다 먹고 있는 우리 언론과 법정, 그리고 교회의 어두운 현장 구석구석에서
빛과 진리, 그 생명의 소리, 그 세미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기를,
그런 열린 사람들이 하나 둘 셋 넷 계속해서 일어나기를,
그래서 대한민국에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리기를 빕니다.
[나머지]
* 예수님의 침묵
불의한 빌라도 앞에서도, 무례한 병사들 앞에서도, 부정한 종교인들 앞에서도, 부패한 관리들 앞에서도, 어리석은 군중들과, 심지어 함께 달린 죄수들 가운데서도 아무 말씀 없으신 예수님! 예수님의 그 침묵이 태산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서본문의 예수님을 뵙기가 더 힘듭니다. 다른 복음서(누가복음, 요한복음)에 비해 말씀이 없으셔서 더 그런가 봅니다.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돕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예수님 십자가를 대신 진 구레네 시몬과(21) 대담하게 나서서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한 아리마대 요셉(42-46)! 저들의 행동이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되고 또 도전이 됩니다.
** 미친 존재감, 씬 스틸러(Scene Stealer), 아리마대 요셉!
“아리마대 사람인 요셉이 왔다”(마가 15:42)
무언가 심상치 않은 묘사입니다. 피비린내 나는 중원에 어느 날 갑자기, 초절정 고수의 등장처럼 느껴집니다.
“이 사람이 대담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내어 달라고 청하였다”(43)
말 그대로 정말 대담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손하지만, 강렬한 포스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나를 돌아봅니다. 아리마대 요셉의 거울에 저를 비춰봅니다. 꼭 필요할 때에, 우리 주님께서 정말 나를 필요로 하실 때에 나는 저런 용기를 낼 수 있었던가? 대사 한 마디 없는 요셉! 그럼에도 대단한 존재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전에 올린 것을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 백부장의 고백, 그 전말(顚末)
빌라보를 비롯해서 와글거리던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저 시끄러운 구정물 가운데서 샘솟은, 유일한 생명수 같은 백부장의 고백이 참 느닷없어 보입니다. 십자가 정면에서 오랜 시간 “예수를 마주보고 서”서 주시하던 백부장이 “예수께서 이와 같이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서”(39) 저 놀라운 고백을 한 것입니다. 과연 “이와 같이 숨을 거두시는 것”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아침 9시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뒤 3시간 동안 와글거리던 소음은(29-32) 12시부터 3시간 동안 계속된 암흑 속에서 잦아들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잔뜩 가라앉고 긴장감과 집중력이 높아졌을 상황에서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순간 예수님의 저 외침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22편을 모르는 이들의 느낌과 정반대로, 이것은 원망과 절망의 절규가 아니라, <어둠과 거짓세상을 깨뜨리고 빛과 진리세상이 열리는> 승리의 선포, 그 시작으로 본 것입니다.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로 시작한 시 22편은 이렇게 마칩니다. “땅 속에서 잠자는 자가 어떻게 주님을 경배하겠는가? 무덤으로 내려가는 자가 어떻게 주님 앞에 무릎 꿇겠는가? 그러나 나는 주님의 능력으로 살겠다. 내 자손이 주님을 섬기고 후세의 자손도 주님이 누구신지 들어 알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도 주님께서 하실 일을 말하면서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셨다' 하고 선포할 것이다.”(시편 22:29-31)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그 어떤 고통도 넘어설 극심한 고통입니다. 기도조차 나오지 않을 저 단말마(斷末魔) 가운데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이 외침이 절망적 외침이었다 해도, 물론 예수님의 부활의 신비, 부활의 능력이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오늘 본문 저 짧은 39절을 근거로 저 느닷없고 신기한 백부장의 고백, 그 전말을 상상해 본 것입니다. 하나 더, 극심한 고통으로 기도조차 나오지 않을 상황에서, 평소 외워 부르시던 시편의 기도문이 튀어나온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노래(시 22편)의 끝이 어떠한지 이미 아시기에, 예수님의 깨진 몸과 마음 그 고통 속에는, 마치 구정물 속에서 피어오늘 연꽃처럼, 그리고 며칠 전 부어드린 베다니 마을의 향유처럼 은은한 향이 배어났을 것입니다.
[말씀동시] 사람들 (이소현 지음. 성실교회 고등부. 「성실문화」 106호)
어리석음에 눈먼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죽음으로 몰아넣네
부당함을 알아챈 이도 등을 돌려
억울하신 예수님 죽어가는 모습을 방관하네
예수님 하늘 향해 울부짖어도
이미 귀 막힌 저들에겐 들리지 않네
그저 저 멀리 한편에서
낮고 낮은 이들만이 떠나가는 예수님 곁을
조용히 지키고 있네
[서신서 말씀시조] 이 마음 품으시라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06호)
이 마음 품으시라 그리스도 예수 마음
모든 것 가졌으나 다 비우고 사람되신
죽도록 순종하신 분 십자가의 예수님
[서신서 말씀서예] 빌립보서 2:8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 106호)
[시편노래] 시편 31, ‘오 주여 이 고통을 살펴주소서’ (이정훈 편사. 주원남 작곡. 「성실문화」 106호)
[본문] (시편 31:9-16)
[노랫말]
1. 오 주여 이 고통을 살펴주소서, 울다 지쳐 시력조차 잃었나이다
슬픔으로 탄식으로 지친 나날들, 뼈마저 기진하여 녹았나이다
2. 대적들은 한결같이 비난합니다, 이웃들도 친구들도 날 피합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갑니다, 깨진 그릇 내버리듯 버려집니다
3. 와글와글 비난하고 협박합니다, 호시탐탐 죽이려고 모여듭니다
나는 오직 주님만 의지하오니, 내 하나님 주의 이름 부르나이다
4. 오 주여 날 긍휼히 여겨주소서, 내 원수의 손에서 건져주소서
주님의 환한 얼굴 날 비추소서, 한결같은 사랑으로 날 구하소서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주원남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31 (오 주여 이 고통을 살펴주소서) (이정훈 편사, 주원남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31:9-16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06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9. 여호와여--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내--게-- 은혜-를--,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10.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내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11.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12. 내가 잊어버린바 됨이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진 그릇 같으니이다
13.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14.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하였나이다))∼
15.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다함께]
16.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 (구원)하∼소∿서∼∥
[말씀동화] 삼각산이 ‘춤의 왕’이 된 비결
옛날옛날 한옛날에, 이것은 백두산 호랑이가 고양이 탈 쓰고 탈춤 추던 시절 이야기란다.
세상에서 귀가 가장 밝은 이명산(耳明山)산이 말했어.
“난 세상 모든 소리를 다 듣지. 저기 아랫마을 지렁이 하품하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어.”
그러자 맏형 백두산이 물었어.
“그럼 백두산 토끼들이 종알거리는 소리의 뜻도 아느냐?”
“아니, 소리는 듣는데 말뜻은 몰라.”
금강산도 설악산도 저 멀리 한라산까지 까르르 웃었겠지?
이번엔 천마산(天摩山)이 으쓱으쓱 중얼거렸어.
“나는 하늘을 나는 온 세상 새들의 소리를 알아듣지. 뜻까지 알아. 하늘이 어루만지는 산, 내가 바로 천마산이거든!”
지리산도 도봉산도 저 위의 묘향산까지 신나게 박수를 쳤단다.
나도 질세라 이번엔 칠읍산(七邑山)이 불쑥 나서네?
“나는 사방 일곱 개 읍에 사는 동물들, 심지어 벌벌벌 기어 다니는 그리마 소리까지 알아 듣지.”
그러자 이웃마을 용문산이 물었어.
“그리마가 뭐라 그러든?”
“그리마가 그랬어. ‘내 방귀가 코로나에 특효약인데. 내 방귀냄새만 맡으면 코로나 다 달아나는데. 사람들이 그걸 모르고 나만 보면 잡아 없애려 해. 코로나백신 만들려 애쓸 시간에 우리 그리마들 모셔다가 맛있는 거 먹여주면 방귀 뿡뿡 잔뜩 뿜어줄 텐데.’라고.”
백두산이 의젓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지.
“작은 소리도 크게 듣고, 희미한 소리도 밝게 들으며, 벌레소리의 뜻을 알아듣는 것도 귀하지만, 정말 귀한 귀가 뭔지 아느냐? 그건 바로 우리들이 춤을 추게 할 소리, 그 기쁜 소리 알아들을 귀란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그날이 오면’ 심훈) 삼각산이 춤을 출 만큼 멋진 소리가 뭔지 아느냐? 그게 바로 기쁜 소식, 광복(光復)의 소리야. 해방의 소리, 빛이 오신 소리지!”
칠보산도 구룡산도 청계산까지 박수를 쳤겠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한반도의 모든 산들이 삼각산을 바라보았단다.
삼각산이 겸손한 목소리로 말했어.
“구월산이 탈춤을 추고, 학가산이 오금춤을 추며, 지리산이 굽이굽이 어깨춤을 추게 하는 소리, 온 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추게 할 소리는 바로 빛나는 노래, 시편이란다. 늘 삼각산을 오르며 시편을 읊조리던 어느 소녀 덕분에 내 귀가 열렸지. 예수님도 덩실덩실 춤추며 부르셨다는 그 시편!”
그러자 저 멀리 시온산이 신명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였단다.
“맞아요, 그날 십자가 예수님의 시편가를 듣던 백부장도 귀가 열려 춤을 추었고, 그날 시온산도 갈멜산도 시룐산도 덩달아 춤을 추었죠.”
온 세상 산들이 노래를 하네?
덤바위산, 관악산을 넘어 태산과 에베레스트까지,
온 누리 일백오십 구비가 시편가를 부르더니
이윽고 빛나고 촉촉한 목소리로 춤의 왕 삼각산이 이렇게 노래했단다.
“1.이 세상이 창조되던 그 아침에, 나는 아버지와 함께 춤을 추었다, 내가 베들레헴에 태어났을 때도, 하늘의 춤을 추었다(후렴)춤춰라 어디서든지 힘차게 멋있게 춤춰라, 나는 춤의 왕 너 어디 있든지, 나는 춤 속에 너 인도하련다∼ 2.높은 양반들 위해 춤을 추었을 때, 그들 천하다 흉보고 비웃었지만, 어부 위해서 춤을 추었을 때에는, 날 따라 춤을 추었다(후렴)∼ 3.안식일에도 쉬지 않고 춤췄더니, 높고 거룩한 양반들 화를 내면서, 나를 때리고 옷을 벗겨 매달았다, 십자가에 못 박았다(후렴)∼ 4.높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면서, 춤을 계속해 추기란 힘이 들지만, 끝내 땅 속에 깊이 묻힌 이후에도, 난 아직 계속 춤춘다(후렴)∼ 5.어리석게도 그들 좋아 날뛰지만, 나는 생명이다 결코 죽지 않는다, 네가 내 안에 살면 나도 네 안에서, 영원히 함께 살련다(후렴)∼”(춤의 왕, Copland 작곡)
[이정훈 지음. 2021년 3월 27일 토요일 아침]
'성실문화 응용하기 > 본문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활절 2주(2021년 4월 11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0) | 2021.04.09 |
---|---|
부활절(1주)(2021년 4월 4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0) | 2021.04.01 |
사순절 5주(2021년 3월 21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0) | 2021.03.19 |
사순절 4주(2021년 3월 14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0) | 2021.03.12 |
사순절 3주(2021년 3월 7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0) | 2021.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