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시편 139:3, 23-24)
[성서일과 4본문]
(창세기 28:10-19a)
10.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서, 하란으로 가다가,
11. 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었으므로, 거기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돌 하나를 주워서 베개로 삼고, 거기에 누워서 자다가,
12.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있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13. 주님께서 그 층계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나는 주,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요, 너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다. 네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14. 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며, 동서남북 사방으로 퍼질 것이다. 이 땅 위의 모든 백성이 너와 너의 자손 덕에 복을 받게 될 것이다.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16. 야곱은 잠에서 깨어서, 혼자 생각하였다. ‘주님께서 분명히 이 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17. 그는 두려워하면서 중얼거렸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 곳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
18. 야곱은 다음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베개 삼아 벤 그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베델이라고 하였다...
(시편 139:1-12, 23-24)
1. 주님, 주님께서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2.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3. 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 내 모든 행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4.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내가 하려는 말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5. 주님께서 나의 앞뒤를 두루 감싸 주시고, 내게 주님의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
6.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조차 없습니다.
7. 내가 주님의 영을 피해서 어디로 가며, 주님의 얼굴을 피해서 어디로 도망치겠습니까?
8. 내가 하늘로 올라가더라도 주님께서는 거기에 계시고, 스올에다 자리를 펴더라도 주님은 거기에도 계십니다.
9. 내가 저 동녘 너머로 날아가거나,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거기에 머무를지라도,
10. 거기에서도 주님의 손이 나를 인도하여 주시고, 주님의 오른손이 나를 힘있게 붙들어 주십니다.
11. 내가 말하기를 “아, 어둠이 와락 나에게 달려들어서, 나를 비추던 빛이 밤처럼 되어라” 해도,
12. 주님 앞에서는 어둠도 어둠이 아니며, 밤도 대낮처럼 밝으니, 주님 앞에서는 어둠과 빛이 다 같습니다.
23. 하나님, 나를 샅샅이 살펴보시고, 내 마음을 알아주십시오. 나를 철저히 시험해 보시고, 내가 걱정하는 바를 알아주십시오.
24.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로마서 8:12-25)
12.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빚을 지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육신에 빚을 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아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13. 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14.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15.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16. 바로 그 때에 그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17.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입니다.
18.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19.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0. 피조물이 허무에 굴복했지만, 그것은 자의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굴복하게 하신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은 남아 있습니다.
21. 그것은 곧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를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22.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3. 그뿐만 아니라, 첫 열매로서 성령을 받은 우리도 자녀로 삼아 주실 것을, 곧 우리 몸을 속량하여 주실 것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24. 우리는 이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25.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마태복음 13:24-30, 36-43)
24.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자기 밭에다가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과 같다.
25.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에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
26. 밀이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도 보였다.
27. 그래서 주인의 종들이 와서, 그에게 말하였다. ‘주인 어른, 어른께서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에서 생겼습니까?’
28. 주인이 종들에게 말하기를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였다. 종들이 주인에게 말하기를 ‘그러면 우리가 가서, 그것들을 뽑아 버릴까요?’ 하였다.
29. 그러나 주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가라지와 함께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30.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추수할 때에, 내가 추수꾼에게, 먼저 가라지를 뽑아 단으로 묶어서 불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에 거두어들이라고 하겠다.’”
36. 그 뒤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서, 집으로 들어가셨다. 제자들이 그에게 다가와서 말하였다. “밭의 가라지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십시오.”
37.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 밭은 세상이다. 좋은 씨는 그 나라의 자녀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자녀들이다.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요, 추수 때는 세상 끝 날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다.
40. 가라지를 모아다가 불에 태워 버리는 것과 같이, 세상 끝 날에도 그렇게 할 것이다.
41. 인자가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죄짓게 하는 모든 일들과 불법을 행하는 모든 사람들을 자기 나라에서 모조리 끌어 모아다가,
42. 불 아궁이에 쳐 넣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43. 그 때에 의인들은 그들의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알맹이(주제어)는 ‘보디가드보다 더 나를 잘 보호하려 애쓰시는 주님’입니다.
구약,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주며”(창세기 28:15)
시편,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시편 139:24)
서신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로마서 8:14)
복음서, “가라지를 뽑다가, 가라지와 함께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마태복음 13:29)
오늘 요절은, “주님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입니다.(시편 139:3)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창세기 28:10-19a / 시편 139:1-12, 23-24)]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야곱이 하늘 사닥다리를 보다’입니다.
위기상황 중에 야곱은 거룩한 경험을 합니다.
종종 위기상황은 하나님과 우리를 더 가까워지게 합니다.
세상 의지할 곳이 줄어들수록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 눈을 열어 당신의 동행하심을 보여주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층계를 오르내리는 천사들의 모습은,
①하늘과 땅이 이어지는 상징이요,
②(요한복음 1:51절과 이어서 볼 때)
그 가장 강렬한 증거(실제)를 예수님께서 보이셨음을 기억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꿈을 통하여 야곱에게
한 번 더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되새겨 주시고
너와 늘 동행하리라는 약속도 주십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주님은 늘 가까이 계심’입니다.
오늘 시인 역시 야곱처럼, 인생의 위기 중에 이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 시의 뒷부분을 보면, 어떤 의심, 혐의를 받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내 결백을 하나님은 아시리라고 여러모로 노래합니다.
나에 과한 모든 것을 누구보다 하나님께서 환히 아신다는 여러 증거를
이 노래 구석구석에서 드러내려 애씁니다.(1-4, 7-12)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로마서 8:12-25 / 마태복음 13:24-30, 36-43)]
오늘 서신서본문의 소제목은 ‘... 모든 피조물이 구원을 갈망하다’입니다.
인생의 위기는 대부분 탐욕에서 시작합니다.
탐욕, 즉 “육신을 따라 사는”, “몸의 행실”(13)은
늘 우리네 갈등과 위기의 근간입니다.
이 위기, 이 고난의 과정을 로마서 8장은 크게 셋으로 정리합니다.
<피조물의 탄식(19-22), 하나님 자녀들의 탄식(23-25), 성령의 탄식(26-27)>!
그런데 인생의 위기는(“고난”은, 17-18) 오히려 우리를 인내로써
“영광”(18),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24)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만큼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합니다.(15)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 비유를 설명하시다’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종들이 가라지라는 뜻밖의 위기상황에 잠시 당황합니다.(27-28)
그러나 이내 주인의 말씀을 듣고서 안정을 되찾습니다.
자녀들을 아끼고 사랑하시는 주인의 마음을 알게 되고(29)
마지막 추수 때 벌이실 저 든든하고 정의로운 주인의 계획을 알게 된 것입니다.(30)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오늘날 교회 안팎의 가라지투성이 세상에 깜짝 놀란 우리에게
오늘 복음서본문의 예수님 말씀은 위로와 희망을 주십니다.
위기가 기회,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작은 나조차 눈여기시며 아끼신다니요!(마태복음 13:29)
이 본문에서 노아시대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아무 죄 없는 피조물들까지 모두 진멸했던 아픔을 주님은 기억하신 듯합니다.
오늘 서신서본문 사도바울의 섬세하고 든든한 정리와
오늘 시편 시인의 노래, 이미 나를 다 살피고 계시는 주님(3, 23-24)! 이 노래가
오늘 큰 위로와 희망이 됩니다.
지금 온 세상 거짓과 탐욕이 기승을 부리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마태복음 13:40-42)
우리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때가 점점 가까운 것입니다.(43)
그날이 오기까지 교회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위기가 커갈수록, 고난이 심할수록 오히려 머리를 높이 들고,
교회가 바로 천국의 문이라는 사실을 더욱 강하게 붙들고(창 28:17, 12, 요 1:51),
작은 나를 눈여기시는 주님처럼, 지금 우는 자들, 약한 자들을 보살피는 일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나를 살펴봐주시기를,
나쁜 길로 접어들지 않도록 살펴주시기를,
하나님 말씀과 더불어 거룩한 길에 설 수 있기를 기도하는 일입니다.(시 139:24)
[나머지]
* 오늘 본문들을 통째로 아우르는 결론은 ‘천국’입니다.
구약의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가던 중에 하늘문, 하나님의 집, 벧엘(베델)을 만납니다. 시편의 시인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 끝까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서신서의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천국의) 상속자가 된다고 선포합니다. 복음서의 예수님은 가라지의 비유로써 천국을 설명하십니다.
오늘 성서일과 4본문을 통하여, 천국을 다시 그려봅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에서 만난 천국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마태 13:24, 37)
내가 어떠한 고난을 겪더라도, 나와 함께 그분이 계시는 지금 여기,(창세 28:15-17, 시편 139:7-12)
주님이 나를 심어주시고 끝까지 함께 하시는 이 세상이 천국이었습니다.(마태 13:37-38)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로마 8:12), 성령을 따라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꺼이 함께 당하며(로마 8;13,17)
피조물과 함께(21) 천국의 소망으로 참으며 기다리는(24-25) 지금 여기!
** 브엘세바와 하란
브엘세바는 약속의 우물, 일곱 우물이라는 뜻으로서 야곱의 아빠와 할아버지로부터 이어진 상징적인 터전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든든한 곳, 물이 풍성한 생명력 넘치는 곳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하란은 ‘마르다, 햇빛에 바싹 마르다’는 뜻으로, 정 반대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아무튼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던 야곱이 중간에 벧엘을 만납니다. 어느 날 내 인생이 느닷없이 낯설고 불편한 곳으로 떠나게 되었는데, 그 중간에 벧엘이 있었던 것입니다. 안락하고 행복한 브엘세바 시절에도 못 보던 벧엘, 그 귀한 하나님의 집, 천국문을 이 위기의 때에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예전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시조] 성령을 받사오니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03호)
성령을 받사오니 생명 얻고 자유 얻어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이 벅찬 구원의 소망 모든 고난 참으며
[말씀서예] 로마서 8:13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 103호)
[시편노래] ‘시편 139, 나를 환히 아는 주님’ (이정훈 작사, 홍의종 작곡. 「성실문화」 103호)
[본문] (시편 139:1-12, 23-24)
[노랫말]
1. 나를 환히 아는 주님 샅샅이 살피시네, 앉아 있고 서 있는 것 멀리서도 다 아시네,
길 가거나 누웠거나 하나하나 살피시니, 혀를 놀려 말 안 해도 내 생각을 다 아시네
2. 주의 얼굴 피하여서 나 어디로 갈 수 있나, 하늘에도 스올에도 어디에나 계시는 주,
나의 앞뒤 두루 감싸 주님의 손 얹으시니, 나를 아는 그 경계를 측량할 수 없나이다
3. 어둠을 불러 모아 나를 숨겨보려 해도, 우리 주님 앞에서는 어둔 밤도 대낮같네,
나를 환히 아는 주여 샅샅이 살피소서, 나쁜 길 막으시고 영생 길로 이끄소서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전일교회 홍의종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39 (나를 환히 아시는 주) (이정훈 작사, 홍의종 작곡)
[시편 송서(誦書)] 시편 139:1-12, 23-24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03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어디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11.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12.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23.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다함께]
24. 내게- 무슨- 악-한 행위-,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 시편송서 한 뼘 더 알기]
7월 5일 주일 자료에 송서(誦書)의 역사를 짧게 언급했습니다. 송서란 책(글)을 외우기 위한 목적으로 노래를(가락과 장단을) 사용한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인데, 이웃나라인 중국이나 일본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노래를 좋아하는 우리 토양에서 자연스레 자라난 문화입니다. 우리는 장례식 때 상여가 나가면서도 노래를 부르고 무덤을 다지면서도 노래를 부르는 민족이고, 가라오케를 개발한 것은 일본이지만 노래방으로 돈을 버는 것은 한국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노래를 좋아합니다. 실제로 유불선을 통틀어 우리나라에 들어온 모든 종교들은 그 예식에 노래가 가득합니다. 찬송은 물론, 교회의 기도나 성경봉독에 해당하는 순서 역시 노래로 읊조려 왔습니다.
이렇게 노래를 좋아하는 한국, 한국의 교회임에도, 선교역사 130년이 넘는 한국교회에 시편가집이 없다는 사실을 반성하면서 시편가(시편노래) 짓기를 시작한 지난 20년 동안, 저는 최대한 본문을 다 담으려는 노력으로 <시편송서>라는 형식까지 궁리하게 된 것입니다. 10년 전인 2010년 성령강림절기에 펴낸 「성실문화」63호 103쪽 <예배마당>에 시편송서를 처음 지어 소개했으며, 「성실문화」65호부터 본격적으로 <성서일과 ‘시편송서’>라는 이름으로 시편송서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탄식시와 참회시에 ‘새야 새야’ 가락을 쓰고, 특별한 날 ‘아리랑’ 가락을 쓰지만, 오늘 시편송서를 비롯해서 대부분은 전래자장가가락(천자문독송 가락)을 씁니다. 그런데 자장가도 지역마다 다양한 가락이 있으나, 시편송서에서는 전국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가락(천자문독송 가락)을 사용하는데, 이 가락은 굿거리장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간혹 아직 굿거리장단을 교회음악에 사용하기를 꺼리는 교회에서는 ‘중중모리장단’이라고 소개할 수도 있습니다.) 굿거리장단의 맛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긴 이야기가 필요하나, 우선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굿거리장단은 비슷한 장단인 중모리(중중모리)나 타령장단에 비해서 매우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의 장단으로서, 한 장단이 3박 4묶음입니다. 즉 굿거리 한 장단의 1/4에 해당하는 3박을 3음절로 이해하면 되는데, 이 경우 서양음악의 왈츠처럼 매 음절을 짚어 “하나, 둘, 셋” 하지 않고, “둥(길게;장長)∼둥(짧게;단短)”, 이런 식으로 짚습니다. 즉 굿거리 한 장단을 무릎장단으로 짚을 때, “둥∼둥, 둥∼둥, 둥∼둥, 둥∼둥” 이렇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게 기본입니다. 가끔씩 마지막 네 번째 묶음을 “둥-두두둥-” 식으로 조금 변화를 주기도 합니다. 지난주에 소개해드린 대로, 밑줄 친 부분은 3음절이 넘는 구절을 운율을 위해서 3음절(3박) 안에 바삐 읊조리도록 묶은 것입니다. 그러나 메트로놈 박자에 딱 맞추려는 듯 너무 급하게 읽지 말고 자연스레 읊조리는 것이 좋습니다.
시편송서를 지어온 지 이제 10년이니, 앞으로 10년 정도 더 다듬어서 한국교회에 익숙한 시편송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처럼 교독식으로도 짓지만, 시편 23편처럼 짧은 경우는 교독식으로도 짓고, 모두 자장가가락으로도 짓기도 했습니다. 또 한 가지, 가락과 장단에 매이지 않고 읊조리는 부분이 중요한데, 이 부분은 우리가락이 익숙한 훈련된 인도자가 없을 경우에는 그냥 교독문 읽듯이 할 수도 있습니다.
[말씀동화] 가라지 바이러스를 막아내는 말씀마스크
옛날옛날 한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타이거마스크 쓰고 레슬링 하던 시절 이야기예요.
간밤 꿈에 소구는 하나님을 만났어요.
무엇 때문인지 나쁜 놈들에게 쫓기던 소구가
젖은 솜처럼 지친 몸을 동구 밖 정자나무에 기대어 잠이 들었는데
아뿔싸! 소구가 기댄 나무가 갑자기 무럭무럭 자라 하늘 꼭대기에 닿네?
그게 다가 아니에요,
그 나무 곁가지 두 개가 갑자기 에스컬레이터로 변신하네?
오르내리는 나무 에스컬레이터에는 수많은 천사들이 앉거나 서서
아름다운 악기를 연주하며 멋진 노래를 부르고 있었죠.
해물탕 큰 조개처럼 입이 떡 벌어진 소구가
겨우 큰 숨을 쉬려는 순간
갑자기 천사들의 음악소리가 조용히 잦아들더니
하늘 하나님께서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소구야 얼마 안 있으면 악마가 온 세상에 <가라지 바이러스>를 뿌릴 거다. 그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악마의 졸개가 되거나 최소한 좀비처럼 변한단다. 그러나 너무 걱정 말아라.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니 내가 늘 지켜주마.”
소구는 너무 기뻐서 얼른 일어나 하나님께 큰 절을 올렸어요.
그러고는 갑자기 말문이 터진 듯 종알종알
이렇게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하나님, 저희 집에 가보가 있는데요, 그건 바로 특별한 마스크예요. 울 할머니 어린 시절 <코로나 바이러스>를 꼼꼼히 막아준 마스크인데요, 할머니와 친구 분들이 머리를 맞대고 개발하신거레요. 바이러스가 전혀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게 꽉 막혔는데도 숨쉬기는 너무 편해요. 심지어 마스크를 쓰면 얼굴이 두 배나 더 아름다워 보이는 건 기본이고요, 노란 나비나 빨간 동백꽃 같은 뜻 깊은 메시지도 담을 수 있도록 특별히 디자인한 마스크예요. 그런데 이 마스크로 <가라지 바이러스>도 막을 수 있을까요?”
소구의 재잘재잘 마스크 이야기에
하나님의 눈이 샛별처럼 반짝이고
나무 에스컬레이터에 가득한 천사들은 꼴깍꼴깍 군침을 삼킵니다.
“너의 가보 마스크가 <가라지 바이러스>까지 막아줄 수 있도록 내가 업그레이드 시켜주마. 내가 써주는 성경말씀들 가운데 하나씩 골라서 마스크에 수를 놓으면 된다.”
천사들이 벼루에 먹을 갈고 하나님께서 손수 붓으로 말씀서예를 하십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주며’(창세기 28:15)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시편 139:24)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아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로마서 8:12)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로마서 8:14)
말씀서예를 쓴 하늘 종이가 마법의 양탄자처럼 너울너울 날아오더니
소구의 어깨에 비단수건처럼 사뿐히 내려앉습니다.
소구는 얼른 하나님의 귀한 선물을 펼쳐 종알종알 읽으며
사각사각 온 마음에 새깁니다.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너무너무 생생한 그 말씀을 흥얼흥얼 암송하며
솜씨 좋은 엄마랑 둘이서 마스크에 수를 놓습니다.
더 많은 <말씀마스크>를 만들려고
할머니의 비밀설계도대로 특제 마스크를 많이 만들어 그 말씀을 수놓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소구가 말씀마스크를 쓰고 다니자
학교친구들이 부러워하겠죠?
몸이 약한 친구들부터 하나씩하나씩 말씀마스크를 나눠주니
친구들과 선생님들까지 너도나도 말씀마스크를 만드는 붐이 일어나네?
말씀마스크는 쓰는 사람보다 보는 사람,
즉 말씀마스크에 수놓은 하늘말씀을 읽는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가라지 바이러스>가 언제 뿌려진다 해도
하늘말씀이 내 마스크에 새겨지고 네 마음에 새겨지니 걱정 없습니다.
오늘도 교문을 나서며 소구가 노래합니다.
말씀마스크를 쓴 친구들과 함께
소구가 흥얼흥얼 말씀노래를 읊조립니다.
“주님, 주님께서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 내 모든 행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내가 하려는 말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나의 앞뒤를 두루 감싸 주시고, 내게 주님의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를 샅샅이 살펴보시고, 내 마음을 알아주십시오. 나를 철저히 시험해 보시고, 내가 걱정하는 바를 알아주십시오.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시편 139:1-5, 23-24)”
[이정훈 지음. 2020년 7월 18일 토요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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