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마태복음 10:31)
[성서일과 4본문]
(창세기 21:8-21)
8. 아기가 자라서, 젖을 떼게 되었다.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벌였다.
9. 그런데 사라가 보니, 이집트 여인 하갈과 아브라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이삭을 놀리고 있었다.
10.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저 여종과 그 아들을 내보내십시오. 저 여종의 아들은 나의 아들 이삭과 유산을 나누어 가질 수 없습니다.”
11.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아들도 자기 아들이므로, 이 일로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12.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 아들과 그 어머니인 여종의 일로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이삭에게서 태어나는 사람이 너의 씨가 될 것이니, 사라가 너에게 말한 대로 다 들어 주어라.
13. 그러나 여종에게서 난 아들도 너의 씨니, 그 아들은 그 아들대로, 내가 한 민족이 되게 하겠다.”
14. 다음날 아침에 일찍, 아브라함은 먹거리 얼마와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에게 주었다. 그는 먹거리와 마실 물을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서, 그를 아이와 함께 내보냈다. 하갈은 길을 나서서, 브엘세바 빈들에서 정처없이 헤매고 다녔다.
15. 가죽부대에 담아 온 물이 다 떨어지니, 하갈은 아이를 덤불 아래에 뉘어 놓고서
16. “아이가 죽어 가는 꼴을 차마 볼 수가 없구나!” 하면서, 화살 한 바탕 거리만큼 떨어져서, 주저앉았다. 그 여인은 아이 쪽을 바라보고 앉아서, 소리를 내어 울었다.
17. 하나님이 그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들으셨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천사가 하갈을 부르며 말하였다. “하갈아, 어찌 된 일이냐? 무서워하지 말아라. 아이가 저기에 누워서 우는 저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셨다.
18. 아이를 안아 일으키고, 달래어라. 내가 저 아이에게서 큰 민족이 나오게 하겠다.”
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니, 하갈이 샘을 발견하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담아다가 아이에게 먹였다.
20. 그 아이가 자라는 동안에, 하나님이 그 아이와 늘 함께 계시면서 돌보셨다. 그는 광야에 살면서, 활을 쏘는 사람이 되었다.
21. 그가 바란 광야에서 살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이집트 땅에 사는 여인을 데려가서, 아내로 삼게 하였다.
(시편 86:1-10, 16-17)
1. 주님,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여 주십시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입니다.
2. 그러나 나는 신실하오니, 나의 생명을 지켜 주십시오.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니, 주님을 신뢰하는 주님의 종을 구원하여 주십시오.
3. 내가 온종일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주님,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4. 주님, 내가 진심으로 주님을 우러러봅니다. 주님의 종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 주십시오.
5. 주님, 주님은 선하시며 기꺼이 용서하시는 분, 누구든지 주님께 부르짖는 사람에게는, 사랑을 한없이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6. 주님,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나의 애원하는 소리를 들어 주십시오.
7. 주님은 나에게 응답해 주실 분이시기에, 제가 고난을 당할 때마다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8. 주님, 신들 가운데 주님과 같은 신이 어디에 또 있습니까? 주님이 하신 일을 어느 신이 하겠습니까?
9. 주님께서 지으신 뭇 나라가 모두 와서, 주님께 경배하며 주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립니다.
10. 주님은 위대하셔서 놀라운 일을 하시니, 주님만이 홀로 하나님이십니다.
16. 내게로 얼굴을 돌려주시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님께서 거느리신 여종의 아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십시오.
17. 은총을 베풀어 주실 징표를 보여 주십시오.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 보고,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주님, 주님께서 친히 나를 돕고 위로하셨습니다.
(로마서 6:1b-11)
1...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하겠습니까?
2.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에는 죽은 사람인데, 어떻게 죄 가운데서 그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3.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모두 세례를 받을 때에 그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4.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의 죽으심과 연합함으로써 그와 함께 묻혔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안에서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5.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죽음을 죽어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우리는 부활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6.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서, 우리가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7. 죽은 사람은 이미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었습니다.
8.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그와 함께 우리도 또한 살아날 것임을 믿습니다.
9. 우리가 알기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다시는 죽지 않으시며, 다시는 죽음이 그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10.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죽음은 죄에 대해서 단번에 죽으신 것이요, 그분이 사시는 삶은 하나님을 위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11. 이와 같이 여러분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요,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0:24-39)
24. 제자가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다.
25. 제자가 제 스승만큼 되고, 종이 제 주인만큼 되면, 충분하다. 그들이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고 불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겠느냐!”
26.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덮어 둔 것이라고 해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라 해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
28. 그리고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도 몸도 둘 다 지옥에 던져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30.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신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시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부인할 것이다.”
34.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
35. 나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맞서게 하고, 딸이 자기 어머니와 맞서게 하고, 며느리가 자기 시어머니와 맞서게 하려고 왔다.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일 것이다.
37.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적합하지 않고, 나보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39.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알맹이는 ‘지독한 갈등의 끝에서 주님을 만나다’입니다.
구약, “하나님이 그 아이와 늘 함께 계시면서 돌보셨다”(창세기 21:20)
시편, “주님께서 친히 나를 돕고 위로하셨습니다”(시편 86:17)
서신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로마서 6:5)
복음서,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놓고 계신다”(마태복음 10:30)
오늘 요절은,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입니다.(마태복음 10:31)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창세기 21:8-21 / 시편 86:1-10, 16-17)]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하갈과 이스마엘이 쫓겨나다’입니다.
열네 살이나 많은 청소년 이스마엘이
코흘리개 아우 이삭을 놀리는 것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마는
사라는 눈엣가시요 앓던 이였던 이스마엘과 그 엄마를 쫓아냅니다.
남의 집 아이였으면 그렇게까지 밉지 않았을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한집안 식구이니 유산상속 문제가 얽혀 있고,
사라와 하갈의 불화까지 뒤섞여 있던 차였습니다.
본문은 쫓겨난 약자, 하갈과 이스마엘의 울음소리로 가득합니다.
아마 기진한 이스마엘의 울음소리는 모기소리처럼 작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들으시고
살려주시고, 복주시고, 늘 동행하며 돌보아주십니다.(20)
인생 최대 위기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을,(17)
내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친 그 순간을,
하갈은 평생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환난 날의 기도’입니다.
이 시편은 핍박받는 약한 자의 기도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온종일 주님께 부르짖는 것뿐인 자의 기도입니다.(3)
그래서 마치 오늘 구약본문에서 울음 울던 이스마엘의 노래처럼 보입니다.
아비에게 쫓겨나 집도 없고 먹을거리도 없고 마실 물조차 없어서 우는 것만 남은,
그 고통의 중심을 귀 기울여 들으시고 끝까지 돌보아주신 나의 하나님! (창21:20, 시86:17)
그러니 나는 두고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하리라!(7)
이런 믿음이 느껴지는 시입니다.
스스로를 여종의 아들이라 하는 고백은(16), (하갈이 여종이어서가 아니라)
결코 면천할 수 없이 완전히 주인에게 속하는 씨종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속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리라는 강한 표현입니다.
이 시편은 그런 자의 기도, 그 기도에 응답받은 자의 노래입니다.(17)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로마서 6:1b-11 / 마태복음 10:24-39)]
오늘 서신서본문의 소제목은 ‘세례와 새 삶’입니다.
오늘 본문을 요약하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산다’일 것입니다.
오늘 시편기자의 “여종의 아들”(16) 같은 <벗어날 수 없는 완전한 귀속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이 바로 세례,
즉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또한 그와 함께 완전히 다시 사는 세례입니다.
즉 세례는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부활 사건과 결합하여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우리 삶은 완전히 변화합니다.
더 이상 사사로운 삶이 아니라 완전히 하나님을 위한 새로운 삶,(10-11)
즉 예수님을 제대로 만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11)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마땅히 하나님을 두려워함, 예수 때문에 생기는 분열’입니다.
예수께서 12제자를 세우시고 파송하시면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전도자가 겪을 작고 큰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그럼에도 두려워하지 말 것은(26)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29, 31)
오늘 본문 직전에도 거듭 예고하신 대로(21)
예수 이름 때문에(32, 37, 39) 가족 간에 갈라지는 극심한 갈등과
그 죽음조차 두려워말고(38-39), 그 고통을 직면하고 그 중심을 직시하고
거기서 삼라만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온전히 속하여 그분만 의지해야 합니다.
[정리]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의 알맹이는 ‘생명’입니다.
그런데 내 생명을 가장 가까이에서 끝까지 보호해줄 가족이
오히려 내 생명을 위태롭게 만드는 경우를 구약과 복음서에서 봅니다.
그리고 내 생명을 끝까지 지켜주실 내 생명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서신서본문은 내 생명이 주님의 죽으심, 부활하심과 결합할 때,
즉 세례 받음으로 “새 생명”(4)을 살게 된다는 사실을 환하게 보여줍니다.
그런데 “새 생명”이란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삶>(10),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는 삶임을 깨닫게 합니다.(11)
그러한 삶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고통이 따릅니다.
세상의 모든 관계와 갈등하고,
특히 내 가장 안전한 울타리인 가족과 갈등하게 될 것임을
오늘 복음서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예고하십니다.
오늘 구약과 복음서본문에서 본 죽음에 이르게 하는 혈육 간의 갈등에서
6.25 한국전쟁을 느낍니다.
70년 전의 그 뼈와 살을 가르는 고통은 70년 내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구약본문의 이복형제가 갈라지는 고통이,
얼마 뒤 동복쌍둥이가 갈라지는 고통으로 자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압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이 갈라지고 에서와 야곱이 갈라지듯
남과 북이 갈라져 70년을 다투고 있습니다.
남북만 갈라진 게 아니라, 남남갈등은 또 얼마입니까?
선거철만 되면 온 나라를 뒤덮는 종북타령 공산화타령이 얼마나 기막힙니까!
이 끊임없이 반복하는 골육상잔(骨肉相殘)의 사슬은
과연 언제 끊어낼 수 있을까요?
그 칼자루, 아니 도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개가 정권을 잡으면 우리나라가 공산화된다는 허탄한 말의 진앙지도 교회요,
삼천리금수강산에 공평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도록,
막힌 담을 허물고 화해와 용서의 길이 열리도록
굳센 믿음으로 기도해야 할 곳도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마태복음 10:31)
간절함, 간절함조차 꺾어지는 절망의 임계점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신(창21:17)
이 귀한 사실을 아는 한국교회가,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시는 아버지하나님을(마 10:30)
누구보다 의지하는 한국교회가 기도할 일입니다.
절망의 끝에서도, 기도자는 주님과 나, 그 관계의 끈을 놓치지 않는 법입니다.
인간의 끈 다 끊어지고 남은 그 마지막 끈이
주님과 직통하는 동아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한 한반도 사람들,
아직도 구석구석 6.25의 상처 아물지 않은 허리 잘린 한반도에
성령님 치유의 숨결, 따뜻하게 불어주시기를,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님의 손길, 한없이 어루만져 주시기를!
[나머지]
* 이스마엘의 울음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시다
... 드디어 물은 떨어지고 이스마엘이 죽어갑니다.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아들을 살릴 길 없는 하갈은 멀찍이 떨어져서 아들을 바라만보고서 엉엉 웁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갈이 우는 소리’가 아니라 ‘이스마엘이 우는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표현입니다. 본문은 이스마엘이 우는 장면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17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들으셨다”고 묘사합니다. 그리고 반복해서 천사 역시 그렇게 말합니다. “아이가 저기에 누워서 우는 저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셨다. 아이를 안아 일으키고 달래어라...”(17∼18) 이스마엘을 향한 어미 하갈의 통곡! 이 울음에 비하면 기진해서 다 죽어가는 아이의 울음소리는 병든 병아리 소리처럼 작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울음소리를 들으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스마엘’ 이름 뜻이 바로 ‘하나님께서 들으심’이었습니다.
** 내 인생의 우선순위가 주님이어야 하는 이유
이스마엘이 어떻게 생명을 얻었습니까? 그 아이를 살린 것은 어미아비의 사랑이 아니라, 알고 보니 하나님의 사랑, 아빠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참 생명을 얻는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내 인생의 우선순위를 예수님께 두는 길임을, 예수님(을) 사랑이 살 길임을 선포하십니다. 내 부모자식 사랑보다 내 예수님 사랑에 우선순위를 두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내 부모자식 사랑은 나보다 먼저 주님의 몫이었습니다. 이 사랑, 우리 주님의 사랑에 몰두할 때, 주님 사랑만 바라볼 때 내겐 이미 어떤 두려움도 없습니다... 지금 내 시선은 오로지 우리 주 예수님만을 향하고 있나요? 늘 내 시선이 그분께 가 있는 사람은 압니다. 내가 아무리 효도하려 애써도, 내가 아무리 내 자식 사랑한다 호들갑 떨어도, 주님의 사랑에는 미칠 수 없음을! 주님께서 내 부모, 내 자식들을 돌보시는 그 깊고 치밀하신 사랑, 그 한결같으신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음을! 그 사랑 조금이라도 맛본 사람은 압니다. 세상 어떤 두려움도 그 사랑을 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러고 보니, 내 부모님은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 자식들은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그분의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사랑으로 낳은 친자식들이었습니다.
(※ 여러해 전 예배준비노트에 올린 글을 다시 다듬어 올립니다.)
[말씀동시] 주님 주신 칼 (김종진 지음. 하나님의어린양교회 목사. 「성실문화」 103호)
나는 나는 싸우는 거 싫은데
나는 칼도 무서워하는데
예수님 나에게 칼을 주시네
너희 가정에 원수가 있구나
사랑하는 가족들과 서로 싸우라고
예수님 오셨다고 말씀하시니…
진리보다 부모자식 더 사랑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네
물보다 진한 가지를 칼로 잘라내거라
하늘이 주신 자기 숙제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들
예수님 따름이 되기 어려워
십자가 가로막는
물보다 진한 핏줄이나 내 목숨까지도
주님 주신 칼로 잘라내어야
(시를 쓰고 나서 : 마태복음 10:34-39의 말씀을 배경으로 ‘주님 주신 칼’이란 제목의 시를 써 보았습니다. 때로는 하나님나라와 물보다 진한 가족사랑(피)과 갈등을 겪을 때가 있지요. 물론 뿌리 깊은 자기애는 십자가를 내려놓게 할 때도 있지요. 주님께서 주신 칼을 이때 써야 하는가 봅니다. 서툴러서 가까운 사람들 많이 다치게 했던 생각도 납니다.
[말씀시조] 주 예수와 죽음으로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03호)
주 예수와 죽음으로 죄의 세력 죽었으니
주와 함께 살아나서 새 생명을 누리도다
우리 주 예수 안에서 주를 위해 살리니
[말씀서예] 로마서 6:5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 103호)
[시편노래] ‘시편 86,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입니다’ (이정훈 작사, 주원남 작곡. 「성실문화」 103호)
[본문] (시편 86:1-10, 16-17)
[노랫말]
1.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입니다, 저에게 귀 기울여 응답하소서,
신실한 종의 생명 지켜주소서, 나의 주 내 하나님 구원하소서
2. 온종일 주님께 부르짖으니, 저에게 은혜를 베푸옵소서
진실로 주님을 우러릅니다, 종의 마음 기쁨으로 채워주소서
3. 사랑많고 눈물많은 나의 하나님, 애원하는 제 기도를 들어주소서
주님과 같으신 분 없사옵니다, 선하신 나의 주여 응답하소서
4. 단 한 분 위대하신 나의 하나님, 온 나라가 주님 앞에 경배합니다
얼굴을 돌리시어 힘을 주소서, 나의 주 내 하나님 구원하소서.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주원남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86(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입니다) (이정훈 작사, 주원남 작곡)
[시편 송서(誦書)] 시편 86:1-10, 16-17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03호)
(※‘새야새야’ 가락에 맞추어, ‘쉼표’까지가 중모리 한 장단)
1. 여호와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2.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3.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4.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5.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6.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7.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 하시리-이- 다==∼
8.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주의 행하심과 같은 일도 없나이다
9. 주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이다
10. 무릇 주는== 위대하사==, 기이한일들-을== 행하시-오-니==,
주=만이== 하=나님==, (하=나님==)이시니-이-다==∼
16. 내게로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17.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다함께]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
※ 가락은 ‘새야새야, 파랑새야’로, 장단은 중모리로 (또는 중중모리로) 읊는다.
※ 쉼표(‘,’)까지 한마디가 12박이다.
※ 한 박(‘=’)은 편의상 2분박(‘--’)으로 쪼개어 짚을 수도 있다. 원래는 17절 둘째 줄처럼 3분박으로 쪼갠다.
(‘-’와 ‘=’가 헛갈릴 때 그런 식으로 확인하면 좋다.)
※ 밑줄(‘ ’)친 부분은 글자 수가 4∼6개여도 3박으로 읊으면 된다.
※ 크고 굵은 글자는 찬양대가 송서(誦書, 새야새야)로 읊조리고, 나머지 작은 글자는 회중이 낭독한다. (찬양대가 읊조릴 때 회중도 콧노래처럼 작게 따라 해도 좋다.)
※ 가락이 조금 차이가 나는 것이 오히려 어우러지는 멋이 있어 좋다.
※ 마지막 절은 다함께 읊조린다.
[말씀동화] 아빠의 가족사진
옛날옛날 한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가족사진 보며 눈물 흘리던 시절 이야기예요.
라이온 킹이 큰 소리로 어흥 하자마자
온 세상 동물들이 꽁무니 빠지게 도망하네.
기린도 코끼리도 코뿔소도 도망가고 호랑이까지 도망갑니다.
하이에나는 도망가다 도랑이 빠지고 여우는 아예 거품물고 기절해버렸어요.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바람이 휘리릭 불어오더니
라이온 킹의 탐스러운 머리카락이 우수수 낙엽처럼 떨어지고
순식간에 대머리가 되어버린 라이온 킹이 되게 당황하면서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동물들을 향해 다시 어흥 하고 소리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지?
이제 동물들이 하나도 안 도망가네?
라이온 킹이 애써 소리쳐도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기절했던 여우도, 물에 빠진 하이에나도 비실비실 비웃으며 다가옵니다.
어느새 도망칠 수도 없이 동물들에게 포위되어버린 라이온 킹은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해 소리칩니다.
“야옹!”
라이온 킹의 포효가 고양이 소리로 변하자
온 세상 동물들이 깔깔거리고
누구보다 놀란 라이온 킹은 잠에서 번쩍 깨어납니다.
아빠의 꿈 이야기를 들은 막내딸 영희가 꿈동이 요셉처럼 꿈풀이를 합니다.
“그거 탈모 스트레스예요. 아빠, 너무 걱정마시고 이젠 멋진 모자를 쓰세요.”
하이에나랑 여우한테까지 무시당하는 불쌍한 라이온 킹처럼
언제부턴가 아빠는 우수수 떨어지는 머리카락 때문에
마음도 표정도 목소리에도 기운이 없어요.
우울한 아빠를 향해 영희가 낭랑한 목소리로 성경말씀을 낭송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신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마태복음 10:30-31)
시무룩한 표정으로 영희를 바라보던 아빠 얼굴에 작은 미소가 떠오르자
막내 영희는 신나는 목소리로 한바탕 노래를 부릅니다.
“아빠 힘내세요, 말씀이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주님이 있잖아요!”
환갑이 다 된 아빠는 원래 머리카락이 풍성했습니다.
반 곱슬에 숱도 많은 머리카락이 스스로 멋있다고 흐뭇해하셨죠.
그러나 언제부턴가 점점 검은머리 하얘지고 머리카락이 가늘어지더니
매일매일 셀 수도 없이 우수수 머리카락이 빠지고 있는 겁니다.
머리가 빠지면 기운도 빠지는 걸까?
그런데 요사이 아빠 기운이 빠진 것은 머리카락 때문만이 아니라는 걸
영희는 얼마 뒤 알게 되었어요.
어느 날 가족사진을 보고 있는 아빠 표정이 되게 이상했거든요.
그런데 그건 영희네 가족사진이 아니라 아빠네 가족사진,
아빠 어렸을 때 사진이었어요.
할머니가 저렇게 젊고 예쁘시고,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저렇게 멋진 시절 사진입니다.
아빠가 초등학생이고, 고모들도 아주 어린 시절입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아빠 얼굴이 더 어둡고 어깨는 축 처져 보이네?
영희도 이제 고등학생이니 아빠의 마음을 조금 압니다.
선거 때만 되면 덧나는 오랜 고질병,
할머니와 아빠의 갈등을 영희는 압니다.
누구보다 할머니를 사랑하는 아빠는 선거철만 되면 할머니와 멀어집니다.
할머니가 시도 때도 없이 보내시는 카톡 문자도 아예 안 열어보십니다.
보나마나 거짓말뉴스 복사해서 보내신 거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렇게 아빠와 할머니 사이가 점점 멀어져가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육이오 한국전쟁 때 피난살이하시면서 큰 고통을 겪으셨단다. 그 상처가 아직도 낫지 않아서 저렇게 아프신 거란다.”
아빠는 가끔 그렇게 할머니를 변호하십니다.
그러면서도 할머니가 수시로 보내시는 카톡 문자는 여전히 안 열어보십니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서 남과 북이 화해하고 협력하는 일은
한반도를 몽땅 공산화하려는 짓이라는 글이나 동영상이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누구보다 애국자신데, 거짓말뉴스들이 할머니의 전쟁 상처를 자꾸 덧나게 하는구나.”
아빠는 한반도의 남과 북이 화해하고 어깨동무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거짓말뉴스 만드는 짓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하셔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친일파와 신친일파들의 거짓말은
한반도의 역사를 기억하는 우리 모두의 기억조차 조작할 지경입니다.
“신약성경 요한계시록에 보면 거짓말쟁이에 관한 기록이 곳곳에 나오는데, 특히 21:8절과 22:15절에 보면 거짓말쟁이들이 우상숭배자들과 짝을 이루지. 그들은 결코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불지옥에 떨어지게 된단다. 왜냐하면 거짓말의 뿌리는 탐욕이고 악마이기 때문이지.”
아빠는 오랫동안 거짓말뉴스와 싸우며 신문기사들을 스크랩하면서 팩트 체크를 거듭하고
애써 역사를 다시 공부하면서까지 할머니께 진실을 정리해드려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제 아빠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온 세상 거짓말뉴스를 뿌리 뽑는 일은 주님께서 손수 하실 것이고,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안에 진실의 힘이 점점 차오르도록 매사에 성실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 명령대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을 어떤 식으로든 널리 전해야 한다!
두려워 말고!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덮어 둔 것이라고 해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라 해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마태복음 10:26-27)
아빠가 할머니의 카톡 문자를 매일매일 열기 시작한 것은
뒤늦게 할머니의 애정 어린 축복기도문을 발견하고부터입니다.
그 뒤로 아빠는 할머니의 카톡 문자가 비록 아빠마음에 고통을 주는 거짓말뉴스일지라도
매일 열어서, 예수님의 말씀 한 구절과 작은 꽃 그림 하나씩 보내드리기 시작했어요.
“할머니는 예수님과 꽃을 정말 사랑하신단다.”
그리고 흥얼흥얼 아빠는 노래합니다.
‘가족사진’이라는 노래입니다.
“바쁘게 살아온 당신의 젊음에, 의미를 더해줄 아이가 생기고, 그날에 찍었던 가족사진 속에, 설레는 웃음은 빛바래 가지만, 어른이 되어서 현실에 던져진, 나는 철이 없는 아들이 되어서, 이곳저곳에서 깨지고 또 일어서다, 외로운 어느 날 꺼내본 사진 속, 아빠를 닮아있네∼”(‘가족사진’, 김진호 작사작곡)
아빠가 영희에게 말합니다.
“영희야, 아빠도 할아버지를 닮았지만, 너는 정말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참 많이 닮았구나!”
빙그레 웃는 영희와 함께 아빠는 계속 노래합니다.
영희는 아빠의 마음에 흐르는 따뜻한 눈물을 느낍니다.
아빠의 가족사진 속 젊은 할아버지보다 더 머리가 하얀 우리 아빠,
아빠의 노래가 점점 밝아집니다.
“내 젊음 어느새 기울어 갈 때 쯤,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날들이, 가족사진 속에 미소 띈 젊은 우리 엄마, 꽃피던 시절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당신의 웃음 꽃 피우길, 피우길 피우길, 피우길 피우길∼“ (‘가족사진’, 김진호 작사작곡)
[이정훈 지음. 2020년 5월. 「성실문화」 103호 예배마당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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