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 오늘 청년회 여름수련회가 있어서 토요일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 성령강림 후 13주 설교준비노트는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주 설교준비 일지를 올립니다.
2.
제목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정했습니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것을 이르는 한자성어입니다. 어찌 보면 한 마디로 최선을 다하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고, 또 어찌 보면 겸손하라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본래는 삼국지에 나오는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말입니다. 신약 본문은 히브리서 11: 1 - 3, 8 - 16절입니다. 흔히 '믿음장'이라는 부르는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알 것 같기도 모를 것 같기도 한 명제로 시작합니다.
3.
보이는 것은 보면 되고, 잡히는 것은 잡으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 잡히지 않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더 나은 세상을 꿈굽니다. 꿈꾼다는 말은 '꾸어온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자신 너머에 있는 더 나은 세상에서 꾸어와야 합니다. 아무것도 꾸어오지 않는 사람은 낡은 사람입니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는 간디학교 교가의 가사가 떠오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땅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땅에서 시작해서 하늘에서 마치(려)는 사람입니다. 땅에서 시작해서 땅에서 마치지 않습니다. 어떤 때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지만 말씀에 순종하여 길을 떠났던 아브라함처럼 아득한 미래로 나아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불확실한 발을 떼는 사람이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그 불확실한 걸음을 떼게 하는 어떠한 확신도 없는 사람이 불행한 사람입니다.
4.
시편 본문은 시편 50: 1 - 8, 22 - 23절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사 중에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만 받으십니다. 그 때문에 가인은 화가 났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올바른 일을 했다면, 어찌하여 얼굴빛이 달라지느냐? 너는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 그러나 결국 가인은 아우 아벨을 죽여 최초의 살인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증인이 되십니다. 가인을 불러 말씀하십니다. "너의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 하늘을 저버린 자는 심판을 받은 자입니다. 진리를 등진 자는 하늘도 등집니다. 세상은 의로운 자를 미워하고 죽입니다. 그리고 하늘은 의로운 자의 희생을 변호합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입니다(마 5: 10).
5.
구약 본문은 이사야 1: 1, 10 - 20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기가 지겹고, 나는 이제 숫송아지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싫다"고 하십니다(11). 입맛이 변하고, 취향이 변한 것일까요? 하나님의 변심입니까? 모든 종교 행위에 진정성이 없음을 폭로하시면서 한 가지 지적하십니다.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해도 나는 듣지 않겠다. 너희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다"(15) 그리고 "너희는 씻어라. 스스로 정결하게 하여라. 악한 일을 그치고, 옳은 일을 해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16 - 17)
손을 씻어야 합니다. 스스로 씻지 않는 자는 하늘의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데 우리의 결단과 의지가 필요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회심이라는 것은 인생에게 어청난 가능성입니다. 악한 길에서 돌이키는 자에게 하늘이 두 번째 인생을 허락한다는 약속이 바로 회심, 거듭남, 중생입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인간이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의심할 바 없는 능력을 지녔다는 사실보다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은 내가 아는 한 없다." <월든> 123. 땅에사 매는 것은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푸는 것은 하늘에서도 풀릴 것입니다(마 18: 18).
6.
복음서 본문은 12: 32 - 40절입니다. 예수는 "너희 보물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34). 믿음의 사람은 하늘에 소망을 두는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손님이고, 나그네입니다. 땅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늘을 고향을 동경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땅에 붙잡아 두려는 옛 삶의 인력에서 벗어나고, 꿈틀대는 욕망을 다스려야 합니다.
예수가 궁극적으로 요청하는 것은 "깨어 있음"입니다. 하늘을 꿈꾸는 사람은 오늘 깨어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자는 사람이 도둑을 잡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깨어 있는 것은 내 몫입니다. 기독교에는 믿음을 강조하는 '이신칭의' 교리가 있습니다. 자력구원을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은 행동을 하찮게 생각하고, 될 수 있는 대로 얕잡아 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처한 암담한 상황을 이겨내려면 교리에 묶인 삶에서 깨어 나야 합니다. 구원은 교리에서 삶으로 이끕니다.
7.
스스로를 도우라는 말은 자칫 부담스런 말로 들립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노력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노력해도 안 된다고 생각할 때 절망스럽습니다. 하늘이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확신만 가질 수만 있다면 우리는 정말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막 9: 23)
"구하여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구하는 사람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마 7: 7 - 8)
꿈꾸는 사람, 땅에서 시작해서 하늘에서 마치려는 사람, 그래서 의롭게 사는 오늘 깨어 있는 사람은 세상이 미워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의 희생을 증언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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