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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2013년 1월 13일, 주님의 수세일 예배준비 노트

본문말씀부터 올립니다.

 

 

(사 43:1-7)

1. 그러나 이제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속량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2. 네가 물 가운데로 건너갈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네가 강을 건널 때에도 물이 너를 침몰시키지 못할 것이다. 네가 불 속을 걸어가도, 그을리지 않을 것이며,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할 것이다.

3.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이다. 너의 구원자다. 내가 이집트를 속량물로 내주어 너를 구속하겠고, 너를 구속하려고, 너 대신에 에티오피아와 쓰바를 내주겠다.

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 너를 사랑하였으므로, 너를 대신하여 다른 사람들을 내주고, 너의 생명을 대신하여 다른 민족들을 내주겠다.

5.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동쪽에서 너의 자손을 오게 하며, 서쪽에서 너희를 모으겠다.

6. 북쪽에다가 이르기를 '그들을 놓아 보내어라' 하고, 남쪽에다가도 '그들을 붙들어 두지 말아라. 나의 아들들을 먼 곳에서부터 오게 하고, 나의 딸들을 땅 끝에서부터 오게 하여라.

7. 나의 이름을 부르는 나의 백성, 나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창조한 사람들, 내가 빚어 만든 사람들을 모두 오게 하여라' 하고 말하겠다."

 

(시 29)

1. 하나님을 모시는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권능을 주님께 돌려드리고 또 돌려드려라.

2. 그 이름에 어울리는 영광을 주님께 돌려드려라. 거룩한 옷을 입고 주님 앞에 꿇어 엎드려라.

3. 주님의 목소리가 물 위로 울려 퍼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로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큰물을 치신다.

4. 주님의 목소리는 힘이 있고, 주님의 목소리는 위엄이 넘친다.

5. 주님께서 목소리로 백향목을 쩌개고, 레바논의 백향목을 쩌개신다.

6. 레바논 산맥을 송아지처럼 뛰놀게 하시고, 시룐 산을 들송아지처럼 날뛰게 하신다.

7. 주님의 목소리에 불꽃이 튀긴다.

8. 주님의 목소리가 광야를 흔드시고, 주님께서 가데스 광야를 뒤흔드신다.

9. 주님의 목소리가, 암사슴을 놀래켜 낙태하게 하고, 우거진 숲조차 벌거숭이로 만드시니, 그분의 성전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영광!" 하고 외치는구나.

10. 주님께서 범람하는 홍수를 정복하신다. 주님께서 영원토록 왕으로 다스리신다.

11.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백성에게 힘을 주신다.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백성에게 평화의 복을 내리신다.

 

(행 8:14-17)

14.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듣고서, 베드로와 요한을 그들에게로 보냈다.

15. 두 사람은 내려가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을 받을 수 있게 하려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16. 사마리아 사람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을 뿐이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아직 성령이 내리시지 않았던 것이었다.

17.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손을 얹으니,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

 

(눅 3:15-17,21-22)

15. 백성이 그리스도를 고대하고 있던 터에, 모두들 마음속으로 요한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그가 그리스도가 아닐까 하였다.

16.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나보다 더 능력 있는 분이 오실 터인데,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소. 그는 여러분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오.

17. 그는 자기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려고, 손에 키를 들었으니,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오."

21. 백성이 모두 세례를 받았다. 예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는데, 하늘이 열리고,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 위에 내려오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울려 왔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

 

 

[구약]

1절에서,

"야곱아"하고 부르시는, 예언자의 입을 통해 부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바로 뒤에 이어지는 "이스라엘아"와 대를 이루며 느낌에 차이가 납니다.(야곱과 이스라엘은 그 이름풀이만 보더라도 느낌의 차이가 큽니다)

왠지 눈물나는 이름입니다. 이스라엘이라 부르지 않고 야곱이라 부르는 것은, 다른 예언서에서 찾기 어려운 이사야서의 특징 같은데... 아무튼 왠지 짠한 느낌이 듭니다.

특히 이사야 43장의 자리에 비추어, 야곱이 이스라엘로 개명하기 전까지 겪었던 속임과 도망, 속임당함 기나긴 타향살이,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의 불안과 초조...

아마도, 포로지에서 '야곱'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집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 마음 같은 걸 느끼지 않았을까요?

특히 1절 끝의 "너는 나의 것이다"에서 그 큰 사랑의 기운이, 그 애절함이 힘차게 뿜어나옵니다.

 

3-4절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이집트와 에티오피아, 쓰바(에리트리아)등 다른 사람들, 다른 민족들을 이스라엘의 속량물로 내주시겠다는 말씀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말씀에 대한 당당한 근거가 되는 말씀을 아직 못찾았습니다. 먼저 찾으신 분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와는 다른 경우로,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가나안 부족들을 내쫓는 것에 대한 성경적 명분을 '성실문화 68호 예배마당(종교개혁주일 예배를 준비하며), 95-96쪽에 자세히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간단히 일부만 옮깁니다. 참고하세요.

  

※ 땅에 대하여 (땅을 재산으로만, 소유물로만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땅은 하나님의 것

(레 25:23)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다만 나그네이며, 나에게 와서 사는 임시 거주자일 뿐이다.

(시 49:6-11) (공동번역) 6. 한갓 돈 많음을 자랑하며 재물을 믿는 그들이거늘, 7. 하느님께 돈을 바친다고 죽을 목숨을 살려주시랴? 8. 목숨값은 엄청난 것, 그 값을 치르기는 감히 생각도 못할 일 9. 저승길을 가지 않고 영원히 살리라고는 생각도 마라. 10. 지혜로운 사람도 죽고 어리석은 자 우둔한 자 모두 죽는 법이다. 두고 가는 재산은 결국 남의 것, 11. 그들이 땅에다가 제 이름 매겼더라도 그들의 영원한 집, 언제나 머물 곳은 무덤뿐이다. (새번역 11. 사람들이 땅을 차지하여 제 이름으로 등기를 해 두었어도 그들의 영원한 집, 그들이 영원히 머물 곳은 오직 무덤뿐이다.)

 

가나안 땅 점령 과정에 대한 성경의 눈

하나님의 땅을 오염시킬 때, 창조질서를 무너뜨리고, 탐욕으로 오염시킬 때 땅은 그게 어느 민족이건 모두 토해버린다.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니었고 우리 대한민국도 예외일 수 없다. 탐욕은, 돈을 추구하는 과정, 즉 그 당시 풍요의 신을 숭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온갖 음란한 행위들로 표현되었었다.(이는 성행위와 출산의 상관성, 그 유감주술적인 목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창6:12-13 ) 12. 하나님이 땅을 보시니, 썩어 있었다. 살과 피를 지니고 땅 위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속속들이 썩어 있었다.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땅은 사람들 때문에 무법천지가 되었고, 그 끝날이 이르렀으니, 내가 반드시 사람과 땅을 함께 멸하겠다.

(레 18:24, 25, 28) 24. 위에서 말한 것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저지르면, 이것은 너희가 스스로를 더럽히는 일이니, 그런 일이 없도록 하여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낼 민족들이, 바로 그런 짓들을 하다가 스스로 자신을 더럽혔다. 25. 따라서 그들이 사는 땅까지 더럽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악한 땅을 벌하였고, 그 땅은 그 거주자들을 토해 내게 되었다. 28. 너희가 그 땅을 더럽히면, 마치, 너희보다 앞서 그 땅에 살던 민족을 그 땅이 토해 냈듯이, 너희를 토해 낼 것이다.

(레 26:34) 34. 그 때에야 비로소, 땅은 안식을 누릴 것이다. 땅이 그렇게 폐허로 버려져 있는 동안, 곧 너희가 원수들의 나라로 잡혀가 있는 동안에, 비로소 땅은 쉴 것이며, 제 몫의 안식을 누릴 것이다.

(민35:34) 34. 너희가 사는 땅, 곧 내가 머물러 있는 이 땅을 더럽히지 말아라. 나 주가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함께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 본문의 상황은 경우가 다릅니다. 이집트나 에티오피아, 쓰바(에리트리아) 사람들이 이 성경말씀을 읽을 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오늘 본문 안에서만 본다면, 그 유일한 근거는, 4절의 "너를 사랑하였으므로"입니다. 참으로 지독한 사랑? 지독한 편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의 맹목적인 사랑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결론으로, 이번주일 구약본문 말씀을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사랑하니까'입니다.("너를 사랑하였으므로"...4절)

 

[시편]

"(주님의) 목소리"가 7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거기다 우렛소리라는 표현까지 나옵니다. 그 어마어마한 하나님 목소리에 그 장대한 레바논의 백향목이 쩌개집니다.(5절), 산맥과 산들이 꿈틀꿈틀 요동칠 정도입니다(6절) ... ...

이 시편 29편에 대한 묵상은 성실문화 73호 시편묵상(이민재목사님)을 참조하세요. 여기 성서일과 사랑방에도 올라와 있습니다.

저는, 이 시편에서 딱 한 가지를 느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사랑하니까'입니다. (구약과 같네요... 늘 그렇듯이 성서일과 본문에서 시편은 구약의 응답찬양입니다.)

좀 엉뚱한 비약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오늘 구약은 물론, 특히 복음서 말씀에 비추어 그렇게 느낌이 왔습니다.

"얘들아 사랑한다" 아무리 말씀하셔도, 귀에 차지 않는 청맹과니같은 백성들, 자녀들에게, 있는 힘을 다하여 소리소리 지르시는, "나 너 되게 사랑해!!!" 하고 소리지르시는 하나님의 애절한 심정이 느껴지십니까?

한 편, "내 말 좀 귀담아 들어라" 하고 외치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말씀 듣기를 이상하리만치 거부하는, 저 도저히 이해불능상태의 백성들을 향하신 답답한 마음도 느껴집니다. 문득 잠언 28잘 9절 말씀이 기억납니다.

(9. 귀를 돌리고 율법을 듣지 않으면, 그의 기도마저도 역겹게 된다.(새번역))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시편 노래를 부르면서 왠지 힘이 납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우리 옛 어른들의 정신 ; 활연관통

(豁然貫通)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활豁은 '뚫린골 활'입니다. 마치 설악산 울산바위, 병풍바위 한 가운데가 뻥 뚫리듯이, 꽉막혔던 산이 갑자기 뻥뚫린 골짜기가 되어 시원한 바람이 폭풍처럼 통과(관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 어렵고 깜깜하던 말씀이 통째로 내 안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깨달아지는 깨치는 경지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암만 들려줘도 들은 척도 안 하던 이들이, 혹은, 이해하려 아무리 애써도 깨달아지지, 느껴지지 않아 애태우던 교우들이, 어느날 갑자기 말씀을 듣는 족족, 읽는 족족 느껴지고 깨달아지게 되어버린 경우입니다.

저는 왠지, 이 시편노래의 6-8절에서 그런 전조가 느껴집니다.

우레와 같은 주님 목소리 듣고 우리 모두가 활연관통하게 되는 전조 말입니다. 우리 꽉 막힌 귓구멍과 눈과 마음문이 흔들흔들흔들 하다가 와르르 무너지기 일보직전의!!

이어서, 이민재 목사님의 시편묵상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그 끝부분만 여기 인용합니다.

"당신의 소리에 암사슴 새끼 쑥 태어나듯 저희 역시 당신의 아이로 불쑥 태어나게 하소서!"

 

아무튼 오늘 시편본문에서, 저는,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크게 외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느낍니다.

 

[서신서]

저는 서신서 본문을 묵상하면서, 동시에 이 앞뒤의 본문들을 읽으며 감동했습니다. 마술사 시몬의 이야기입니다.

시몬이 빌립의 영향을 받아 말씀도 듣고 세례받고 꽤 열심히 따릅니다.

[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개역개정)]
그러다가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기도하고 안수할 때 성령이 내리시는 것을 보고, 마술사 시몬이 사도들에게 돈을 주며 자기도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성령받을 수 있는 능력을 구합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아주 심하게 시몬을 저주 합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안수하여 사람들 성령받게 하겠다는데... 그 좋은 일을 하겠다는 사람을 왜 저주할까?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가 돈으로 하나님의 선물을 사려했다는 사실입니다.

20.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이 대목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우리가 교우들을 안수할 때 어떤 자세로 하고 있는지...

안수할 때마다, 혹시라도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하나님의 선물을 이용해서, 내 돈주머니, 내 권력, 내 명예를 채우려고 한 적은 없었는지? 눈꼽만큼도...???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십니까? 역시 '사랑하니까'!!!

 

이 대목에서, 지난 월요일 성서일과 사랑방 모임 가운데서 많은 은혜로운 감동이 나누어졌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나누어주신 이야기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특별히 감동적인 것은, 사마리아인과 유대인, 특히 베드로의 경우입니다.

간략히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원래 교회에서 물세례를 받으면 성령세례는 자연히 따라오는 법입니다. 이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야 성령의 은사가 주어지게 되고, 그래야 교회의 지체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니까 말이죠.

그래야 한 몸의 구석구석 지체 가운데 죽은듯 멈춰있는 구석 없이 모두 동시에 살아서 운동할 수 있는 이치입니다.

그런 원리로 본다면, 이번 사도행전 본문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라 할 것입니다.

물세례를 받았는데 아직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다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이례적인 상황으로, 주님께서는 몰아가신 것일까?

그 대답이 바로,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입니다. 특히 고지식한 베드로의 경우입니다.

그리고, 성령세례에서, 바로 '성령'님의 역할입니다.

악성 전염병이라도 옮을 것처럼 접촉하기 싫은 사마리아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몸 교회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당연히 접촉해야 합니다. 이건 마치 통과의례와도 같습니다.

하물며, 성령님, 그분이 '하나되게 하시는 분' 아닙니까!

 

왜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까? 사랑하니까!

왜 세례 이후에 다시 베드로로 하여금 안수를 해서 성령을 받게 하셨습니까?

사랑하니까! 유대와 사마리아가 서로 사랑해야 하니까!

 

 

[복음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 수세 순간 성령이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성부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성경에서 유일하게 성부성자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한 순간 눈으로 보이시고 귀로 들리시는 장면입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 인식의 눈높이로 내려오시면서까지 일심동체를 이루시는 순간의 느낌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저는 그것을 '사랑'이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독생자를 보내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번 주일 설교제목을 임시로 이렇게 붙여봅니다.

 

"새해 사랑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