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 전에]
개정된 공동 성서일과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4본문을 절기 주제에 따라 고른 경우와, 주제보다는 (성경책)차례대로 읽도록 고른 경우, 두 종류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대략, 주현절 둘째주일부터, 그리고 성령강림후 주일들과 왕국절(신정절, 창조절)이 주로 그렇습니다.
따라서 이번 주일 4본문 역시 그러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이상하게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매우 선명하게 보입니다.
여기서 잠깐, 한 가지 짚고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비록 같은 주제로 4본문을 고른, 대림절, 성탄절, 사순절, 부활절의 4본문일지라도, 반드시 그날 예배 설교에서, 그 모든 본문을 설교문에 담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지난 18년 동안 성서일과로 예배준비를 하면서, 가능하면 4본문을 연결시켜보려고 이리저리 궁리해오는 편입니다. 심지어, 주제에 따라 고른 본문들은 물론, 주제와 상관없이, 그냥 차례에 따라 고른 본문일 경우도 그렇게 해왔습니다. 물론 이런 방법에 대해 대부분 성서일과를 연구하고 활용하는 목회자, 신학자들은 반대하는 입장이십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렇게 한 번 해보고 있는 것은,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말씀 기억력'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말씀 기억력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겠습니다.(할 얘기가 좀 많기 때문입니다.)
결론으로, 4본문을 이런 저런 끈으로 연결시키다보면, 말씀을 듣고, 읽고, 새기고, 실천하는데 매우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머리로, 몸(생활)으로, 공동체로 기억나게 하는 힘이 배가 되고, 그 말씀이 나를, 우리를 움직이게 하시는 경우가 확연히 진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말씀 기억력'을 위해 노력하는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지난 주일 본문과 이음새를 만드는 것, 그리고 다음주일 본문에 대한 예감을 느끼게 하는 것 등입니다.
[시작하겠습니다]
(사 62:1-5) 1. 시온의 의가 빛처럼 드러나고,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처럼 나타날 때까지, 시온을 격려해야 하므로, 내가 잠잠하지 않겠고, 예루살렘이 구원받기까지 내가 쉬지 않겠다. 2. 이방 나라들이 네게서 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볼 것이다. 뭇 왕이 네가 받은 영광을 볼 것이다. 사람들이 너를 부를 때에, 주님께서 네게 지어 주신 새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3. 또한 너는 주님의 손에 들려 있는 아름다운 면류관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될 것이다. 4. 다시는 어느 누구도 너를 두고 '버림받은 자'라고 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너의 땅을 일컬어 '버림받은 아내'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너를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여인' 이라고 부르고, 네 땅을 '결혼한 여인' 이라고 부를 것이니, 이는 주님께서 너를 좋아하시며, 네 땅을 아내로 맞아 주는 신랑과 같이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5. 총각이 처녀와 결혼하듯이, 너의 아들들이 너와 결혼하며, 신랑이 신부를 반기듯이, 네 하나님께서 너를 반기실 것이다. (시 36:5-10) 5. 주님,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은 하늘에 가득 차 있고, 주님의 미쁘심은 궁창에 사무쳐 있습니다. 6. 주님의 의로우심은 우람한 산줄기와 같고, 주님의 공평하심은 깊고 깊은 심연과도 같습니다. 주님, 주님은 사람과 짐승을 똑같이 돌보십니다. 7. 하나님,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어찌 그리 값집니까? 사람들이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여 숨습니다. 8. 주님의 집에 있는 기름진 것으로 그들이 배불리 먹고, 주님이 그들에게 주님의 시내에서 단물을 마시게 합니다. 9. 생명의 샘이 주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빛을 받아 환히 열린 미래를 봅니다. 10.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님께서 친히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십시오. 마음이 정직한 사람에게는, 주님의 의를 변함없이 베풀어 주십시오. (고전 12:1-11) 1. 형제자매 여러분, 신령한 은사들에 대하여 여러분이 모르고 지내기를 나는 바라지 않습니다. 2. 알다시피 여러분이 이방 사람일 때에는, 여러분은, 이리저리 끄는 대로,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끌려 다녔습니다. 3.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를 받아라" 하고 말할 수 없고, 또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4.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5. 섬기는 일은 여러 가지지만, 섬김을 받으시는 분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6. 일의 성과는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에게서 모든 일을 하시는 분은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 주시는 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주십니다. 9.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주십니다. 10. 어떤 사람에게는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하는 은사를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영을 분별하는 은사를 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방언을 말하는 은사를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를 주십니다. 11. 이 모든 일은 한 분이신 같은 성령이 하시며, 그는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주십니다. (요한 2:1-11) 1. 사흘째 되는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다. 예수의 어머니가 거기에 계셨고, 2. 예수와 그의 제자들도 그 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3.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니,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말하기를 "포도주가 떨어졌다" 하였다. 4. 예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그것이 나와 당신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도 내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5. 그 어머니가 일꾼들에게 이르기를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하였다. 6. 그런데 유대 사람의 정결 예법을 따라, 거기에는 돌로 만든 물항아리 여섯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물 두세 동이들이 항아리였다. 7. 예수께서 일꾼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항아리에 물을 채워라." 그래서 그들은 항아리마다 물을 가득 채웠다. 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떠서, 잔치를 맡은 이에게 가져다주어라" 하시니, 그들이 그대로 하였다. 9. 잔치를 맡은 이는, 포도주로 변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으나, 물을 떠온 일꾼들은 알았다. 그래서 잔치를 맡은 이는 신랑을 불러서 10. 그에게 말하기를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뒤에 덜 좋은 것을 내놓는데, 그대는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 두었구려!" 하였다. 11. 예수께서 이 첫 번 표징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시니, 그의 제자들이 그를 믿게 되었다. [구약] 지난 주일 구약본문은 이사야 43장이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지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말씀이었습니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야곱아" 하고 부르는 하나님의 심정, 그리고 '이스라엘' 보다 '야곱'이라는 '그 이름'을 들었을 때의 포로지 백성들의 느낌입니다. 이어서 "너는 나의 것이다", 이 말씀이 기억나고, 그리고 이방 민족들을 다 팔아서라도 이스라엘을 다시 사려하시는 것만 같은, 다소 지나치다싶은 편애(?!!)가 느껴졌었습니다. 그리고 4본문을 꿰뚫는 제목으로, "새해 사랑 많이 받으세요"라 소개했습니다. 이번 주는 이사야 62장입니다. 상황과 분위기가 바뀝니다. 황폐한 예루살렘에 귀환한 백성들.. 희망이 다시 절망으로 바뀐 낙심한 환경 가운데 내리는 말씀입니다. 2절의 "새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라는 구절이 인상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여인(헵시바)"와 "결혼한 여인(쁄라)"이 그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새 이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마침 몇 주 전부터 '호'와 '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던 차였습니다.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주원남 목사님이 읽은 책, '파이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영어 발음과 비슷한 바람에 '오줌싸개'로 놀림받는 제 이름을 스스로 '파이'로 고치는 이야기, 심지어 나쁜 의미로서 '창씨개명'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저는 오늘 구약본문의 주제를, 원래 주제와 동떨어질지 모르지만, 혼례로 보았습니다.(사랑방 모임에서는 그것을 못느꼈는데, 어제 저녁 독경하는 중에 감동이 왔습니다.) 새 이름, 헵시바와 쁄라부터 그 느낌이 물씬 우러납니다. 4,5절에 '결혼'이라는 단어가 3번, 아내, 신랑, 신부 등이 5차례 반복해서 나오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번 주일 복음말씀의 무대와 주제가 '혼례식'이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한 가지 더하자면 - 저는 이것을 특히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 죄사함과 그 기쁨입니다. 이 내용은 뒤에 정리하겠습니다. {생각해보면... 포로지에서 귀환한 백성들, 이제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저들에게는, 왜 포로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뼈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결행하는 철저한 회개와 죄씻음의 징표가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의 전통에서, 혼례식은 회개와 죄씻음의 매우 강력한 상징입니다.} [시편]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 - 약 3차례 반복되는 중요한 구절입니다.(5, 7, 10) 원래 이 본문의 주제에서 벗어날지 몰라도, 8절과 9절에서 왠지 혼례잔치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습니다. 8. 주님의 집에 있는 기름진 것으로 그들이 배불리 먹고, 주님이 그들에게 주님의 시내에서 단물을 마시게 합니다. 9. 생명의 샘이 주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빛을 받아 환히 열린 미래를 봅니다 [서신서] 지난 주 본문의 앞뒤에 나온 마술사 시몬의 교훈과 더불어, 안수를 통해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성령의 은사에 대한 오늘 본문말씀을 읽으면서, 이런 느낌이 듭니다.(물론 이번 주일 주제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교회가, 마치 아름답고 유익한 보석으로 단장한 신부처럼 느껴집니다. 주님의 신부로서, 주님과 혼례식을 치르는 교회가, 구석구석 은사라는 진귀한 보석으로 단장한 것 같은!!! 그러고보면, 교회의 모든 교우들은 하나같이 모두 소중한 보석을 품은 소중한 지체들입니다. 지체들은 사랑으로 선물받은 이 소중한 보석들, 혼인의 징표요, 혼례식을 더욱 아름답게 빛낼 이 보석들을... 묻어두지 말고, 매일매일 닦고닦아 그 빛을 더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신부(교회)의 빛나는 아름다움을, 세상 하객들 가운데서 가장 돋보이게 해야할 것입니다. [복음서]
* 삶이란, 인생이란 고(苦)가 아니고 락(樂), 즉 '잔치'입니다. 그런데 왜 고해(苦海)라고 합니까? 포도주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주원남 목사님)
그러나 고해가 예수님 말씀을 만나니, 그 고해-바닷물이 포도주로 변한다는...(너무 많네요 ㅎㅎ) 잔치를 안하고는 배길 수 없는...
* 지금 말씀을 머금은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 안에 담긴 이러저러한 '물'들은... 주님 말씀과 더불어 지금 발효되어가는 느낌이 듭니까? 어린양 혼인잔치를 (계시록 19장) 무르익게 만들 포도주말입니다. 분노의 포도주, 진노의 포도주를 마신 탐욕세상의 유일한 희망, 저 순결하고 거룩한 성찬의 포도주말입니다. (너무 앞서가나요?)
* 물이 포도주가 되는 과정을 시인의 풍류와 상상력을 더해 노래한 주원남목사님의 말씀노래, '가나 혼인잔치에서'를 꼭 부르시길 권합니다. 우리 까페 '노래 자료실'에 있습니다. 조만간 악보도 올릴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둘째 줄에 나오는 '물 같은 나 포도주가 되게 하셨네'를 부르며, 속으로 '물은 좋은 것인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무슨 나실인 시늉인지, 금주주의자?로 포도주조차 마시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성찬식도 포도주가 아닌 '즙'으로 합니다...) 물은 좋은 것인데...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모임에서, 홍의종 목사님이 새로운 통찰을 주셨습니다. 이 때 물은, 대한민국 깊은 산속 옹달샘의 그 물이 아니라, 율법을 상징하는 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율법, 즉 정결예법에 따라 준비해둔 물 항아리에 담긴 물이라는 것이죠.
* 내 때가 아니라 하셨음에도, 예수님께서 끝내 표적을 행하신 까닭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좀 억지스런 생각도 있지만, 일단 몇 가지 기록에 남깁니다.
1) 순종하기 위해서 (지난 성탄절 1주-송년주일-본문인 누가 2:41-52절 말씀이 연상됩니다. 비교해 보세요.)
2) 책임감 때문에 (친척으로서의 책임감, 또는 엄청나게 먹고 마셔댔을 그 제자들.. 스승으로서의 책임감??)
3) 혼인잔치의 신바람, 즐거움, 기쁨이 끊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4) 혼인잔치의 깊은 영적 의미를 절감하시기에!
저는 3, 4번의 이유에 관심이 많이 갔습니다. 이에 따른 몇 가지 단상을 정리합니다.
* 지난 1993년 제 혼례식이 열렸던 감신대학교 웰치채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99% 기독교인이 아니었던 제 처가 가족들과 그 친지들이, 신학교라는 이유로 잔칫상에 술이 하나도 없었던 것에 대한 아쉬움(유감천만!)... 시간이 지날수록, 시간이 무르익을수록, 민망하고 송구한 마음이...
** 갑자기, 좀 엉뚱한 기억도 납니다. 물이 포도주가 된 것과 비교해서, 물이 피가 된 출애굽 과정에서의 그 해방의 첫 번째 전조!
***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졌도다'라던 바이런의 이야기도 기억납니다. 이 일화는 인터넷상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니, 모르시는 분은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서, 물이 그 주인의 말씀(음성)을 들을 때 포도주로 변했다면, 그 음성은 전기의 흐름, 즉 전류에서 '저항'에 해당한다는 주원남 목사님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즉, 전류가 저항을 만날 때, 빛으로, 열로, 음악으로 변화한다는...!
**** 예수님께서 지으신 그 포도주를 마신 그 때 그 사람들은 참 복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물동이의 물이 다 포도주가 되는 바람에, 나머지 정결예법 -손발씻기와 설거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좋은 것이 떠오르면 알려주세요)
***** 제가 가장 중요하게 기억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그 때 그 포도주는, 일반 식탁의, 일반 잔치의 포도주가 아니라, 혼례식의 포도주였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분은 아까 구약 단상에서 언급했던, '죄사함과 그 기쁨'으로서의 - 혼례식 잔치자리에 대한 묵상과 직통합니다. 과거 허물들을 다 덮어주는 혼례식입니다. '주님의 빛을 받아 환히 열린 미래를' 바라보는 혼례식입니다. 그 구원의 기쁨을 계속 이어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물이 포도주가 되게하셨습니다. 이 구원의 기쁨을 위해 주님께서 성육신하신 것이며, 성찬을 베푸시고 그 떡과 포도주의 의미를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제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의 몇 구절을 소개합니다.(최명덕. '최명덕교수가 새롭게 들려주는 유대인 이야기' (두란노 1997) 입니다. 저희 성실문화 편집인이었던 한종호목사님과 민영진목사님 부부, 그리고 최명덕목사님 부부와 함께 오래 전 단강의 한희철 목사님을 찾아 인우재에 가서 놀다 온 적이 있습니다. 그 인연으로 더 꼼꼼히 읽었는데, 꽤 재미있고 유익했습니다. 아래 발췌해서 옮긴 이 책의 내용이 오늘 본문들을 묵상하는데 좋은 끈이 되기를 빕니다.
(상략) ... ... ..
[유대인의 결혼식]
(중략) ... ... ...
(51쪽) <신랑 신부의 금식>
유대인의 전통에 따르면 결혼식 날은 신랑신부의 과거의 모든 죄가 용서되는 날이며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날이다. 그러므로 신랑과 신부는 결혼식 전날 저녁부터 다음날 결혼 예식이 끝나기까지 경건한 마음으로 하루를 금식한다. 일반적으로 유대인의 결혼식은 늦은 오후에 행해지는데, 이는 그들의 금식이 하루가 마감되는 해지는 시간에 끝나기 때문이기도 하다.(각주; 유대인의 하루는 저녁 해지는 시각에 시작하여 다음날 해지는 시각에 끝난다.) 신랑 신부에게 있어서 결혼식 날은, 죄를 온전히 용서받는다는 면에서 대속죄일과 마찬가지이다. 즉 결혼식은 욤 키푸르(대속죄일)와 그 성격이 유사하다. 신랑 신부는 욤 키푸르 때에 입는 '키텔'(각주; 이디쉬어로서 '가운'을 뜻한다. 탈무드 전통에 의하면 원래는 매 샤밧 때마다 입었다고 한다. Encyclopaedia Judaica vol. 10, p.1079)이라고 불리는 흰색 가운을 입는다. 흰색은 순결을 상징하며 죄의 용서를 나타낸다. 이제는 온전히 깨끗해졌으니 이후로도 깨끗하게 살 것을 다짐한다.
(중략) ... ... ...
<케투바>
유대인들으 결혼시에 신부에게 결혼증서를 준다 이 증서를 가리켜 '케투바'라 한다. 이 케투바는 바벨론 포로시대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당시 결혼한 여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결혼의 권위를 수호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중략) ... ... ...
<깨어지는 유리컵>
결혼식이 끝남과 동시에 신랑은 유리컵을 밟아 깨뜨린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유대인의 성전이 파괴된 것을 애도하기 위함이다. 인생의 절정의 순간에 민족 최대의 비극을 상기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일단 산산조각난 유리컵은 원상복구가 불가능하듯이 그들의 결혼도 이제는 되무를 수 없는 영원한 것임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중략) ... ... ...
<이후드>
결혼 예식이 끝난 후 신랑 신부는 미리 준비된 개인적인 방에 들어가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예식 후 신랑 신부가 갖는 이 시간을 가리켜 '이후드'라고 한다. 전통적으로 이 시간은 신랑 신부 두 사람의 결혼이 완성되는 신방의 시간이었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휴식과 함께 음식을 먹는 시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루 금식 후 처음 음식을 먹는, 곧 금식을 깨뜨리는 시간이며 두 사람만의 휴식을 통해 새 활력을 찾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후드가 끝나고 신랑 신부가 나타나면 음악이 울려 퍼지며, 춤과 함께 축하잔치에 들어간다. 보통 이 잔치는 일주일간 계속되는데 이는 야곱이 레아와 결혼한 후 일주일 동안 잔치를 벌인 전통에 기인한다.
(하략) ... ... ...
[덧붙임]
토요일 아침 독경 중에 문득 새로운 생각이 열립니다.
시편노래가 새로이 느껴집니다. '한결같은 사랑'이라는 구절이 6절의 '주님의 공평하심'과 연결됩니다. 그리고... '사람과 짐승을 똑같이 돌보십니다' 라는 노랫말도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8,9절이 새로이 느껴집니다.
서신서 7절이 새로이 느껴집니다. '공동의 이익'!!
모든 이들에게, 잘난 녀석 못난 녀석 가리지 않고 이러저러한 은혜의 선물을 나누어주고 싶으신 마음... 모든 자식들이 다 하나같이 잘되길 바라시는 엄마아빠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천국의 마음입니다. 천국의 원리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서, 가나 혼인잔치에서, 왜 예수께서 뜻을 바꾸어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을까???
위의 시편과 서신서 말씀에서 얻은 느낌과 더불어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바로, 천국의 마음입니다. 하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생업 때문에 동분서주하다가 ... 이런 저런 사정으로 혼인잔치에 참석하지 못하다가, 늦게라도 달려온 사람들...! 그런데 아뿔싸,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저들에게도 똑같이 포도주를 넉넉히 먹이는 것이 천국의 마음입니다. 하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어쩌면 더 좋은 포도주를 먹이고 싶으신 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부모의 마음입니다.
문뜩, 마태복음 20장 천국의 마음이 떠오릅니다.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또 문뜩, 아직 세례 받지 못해 성찬식 포도주를 먹지 못하는 교우들 때문에 고민하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생각이 자꾸 많아집니다... 그만 마무리해야겠습니다. 오늘도, 샬롬!
[말씀동화]
이번 주일 복음서 본문을 묵상하며 만든 '말씀동화' 하나 첨부합니다.
난생처음 써보는 동화이니 예쁘게 봐주세요. 아시다시피 어린이와 함께하는 저희 교회 예배 설교 때 사용하려고 만든 것인데, 너무 길어져서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좀 다듬어서 올리려했는데, 성실문화 때문에 여유가 없네요. 나중에라도 여유있을 때 좀 다듬으면 다시 수정하겠습니다. (* 제 아내가 하는 말이... 너무 어렵고 길다고 하네요. 유치원 아이들 기준으로 볼 때, 부연 설명이 너무 많고, 수식도 너무 많고... 내 딴에는 '말씀동화'답게 성경분문에 조금 더 충실해서 성경본문이 좀 더 풍성해지길 원했었고 저희 교회 아이들 연령 눈높이에 맞춘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제 아내 말이 맞는 말입니다!)
아무튼, 말씀동화에 관심있는 분들이 늘어나서 함께 만들어, 성실문화 '성서일과 너른마당'에 한꼭지로 넣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날이 속히 오길 기원하며...
행복한 돌 항아리 [2013년 1월 20일 주현절 3주 (요한 2:1-11)] ((옛날 아주 오랜 옛날, 이스라엘에 있는 어느 돌산에서 석수장이 아저씨들이 커다란 바위를 쪼개서 돌 한 덩이를 떼어냈습니다. 사람들은 땀을 흘리며 그 돌덩이의 한 가운데를 파내어 커다란 돌 항아리를 만들었어요.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 키만 한 하얗고 둥그런 잘생긴 돌 항아리였어요. 돌 항아리는 어느 집으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갈릴리 나사렛 위쪽으로 한 10리쯤 가면 있는 자그마한 마을, ‘가나’에 있는 어느 집이라고 하네요. 그 집에서 큰 혼례식이 열리는 바람에 손님들이 갑자기 많아지게 되어서 손님들이 씻을 물을 담는 물 항아리가 더 필요했던 거예요...)) 사람들이 바위산에서 떼어낼 때 수 만년의 잠에서 번쩍 깨어났던 나는 석수장이 아저씨들이 항아리를 만들기 위해 내속을 파낼 때 아주아주 아팠답니다. 한참 울다가 정신차려보니 어느새 한 가운데가 텅 비어버렸네요. 허전하긴 했지만 참 엉뚱하게 생긴 내 모습이 퍽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덜컹덜컹 마차를 타고 가나마을 어느 집에 도착해보니 그 집에는 이미 돌 항아리들이 다섯 개나 있었습니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돌 항아리들에게는 이름이 있었어요. 제일 먼저 온 건 한돌이, 두 번째 온 건 두돌이, 그렇게 삼돌이, 사돌이, 오돌이, 이리하여 자동적으로 육돌이가 된 나를 여러 아저씨들이 낑낑대며 안아다가 집안에 들여놓았습니다. 처음 만났지만 희한하게도 많이 닮은 돌 항아리들이 친형들처럼 느껴졌어요. 첫날 밤 삼돌이 형이 말했어요. “육돌아 내 이름은 삼순이야. 앞으로 삼순이 누나라고 불러줘” 그러자 큰 형 한돌이가 말했어요. “야! 너 왜 자꾸 쓸데없는 고집이야. 우린 돌이잖아 그래서 돌이라고 부르는거야. 왜 자꾸 삼순이가 되려고 해? 너는 그냥 삼돌이야!” 삼돌이, 아니 삼순이 누나가 말했어요. “흥! 저런 돌머리. 내가 어딜 봐서 삼돌이야? 난 우리 주인아가씨처럼 날씬한 삼순이라고!” 다른 형들은 그냥 마주보며 웃기만 했어요. 밤하늘에 초승달이 떠 있네요. 가운데가 푹 파인 것이 딱 나를 닮아 정다웠어요. 가만 보니 삼순이 누나 안에 가득 담긴 물 안에도 저 달그림자가 담겨 있었어요... “앗 차가워!” 깜짝 놀라 잠을 깼어요. 누군가 내 얼굴에 물을 뿌린거예요. 한 동이 두 동이 세 동이씩이나 물을 부으니 내 물배가 가득 차올랐어요. 둘러보니 온 집안이 분주한 사람들 소리로 떠들썩하네요. 드디어 혼인예식이 시작된 거예요. 손님들이 밀려들기 시작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네! 잔치 일꾼들은 손님들 손발 씻을 물을 떠 나르느라 분주했어요. 한돌이 형부터 나 육돌이까지 우리 여섯 개의 돌 항아리의 물이 거의 바닥이 날만큼 많은 손님이 오셨어요. 밝은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로 온 집안이 흥겨웠어요. 물로 깨끗이 목욕을 하고 난 것처럼 개운해진 우리 돌 항아리들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죠. 신나는 악기소리가 온 집안 가득해지니 우리 빈 항아리들도 그 음악소리에 따라 흥얼거리듯 웅웅거렸어요. 내 몸도 자그마하게 웅웅거리네요. 그 소리가 참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그 때 삼순이 누나가 가르쳐주었어요. “육돌아 참 신기하지? 저렇게 음악소리가 크게 울리면 우리 텅 빈 몸속에 그 음악소리가 들어와 춤을 춘단다. 그러면 그 춤사위에 맞추어 우리 몸이 노래를 부르지. 이게 바로 ‘공명’이라는 거야. 정말 멋지지?” 역시 삼순이 누나는 아는 것도 많고 생각도 예리하고 마음도 풍부했어요. 가만 보니까 우리 중에서 가장 날씬할 뿐 아니라 얼굴도 깨끗하고 예뻐 보이네요. 목소리도 예쁘고요. 여러 날 동안 춤추고 노래하면서 손님들은 참 많이 먹고 많이 마셨나 봐요. 악기소리도 조금씩 느릿느릿해지고 노랫소리도 점점 푸근해지던 어느 날이었어요. 잔치음식을 열심히 만들고 대접하던 아줌마 한 분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중얼거리네요. “아휴, 이걸 어쩐담? 그 많던 포도주가 다 떨어졌네. 얼마나 애써서 마련해둔 것들인데 벌써 다 떨어지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참 걱정이네” 그러고 나서 그 아줌마는 어떤 남자를 조용히 불러서 무슨 말을 했어요. 아마 포도주가 떨어져 큰일이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자 그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면서 뭐라 뭐라 말하고는 그냥 다시 잔치자리로 돌아갔어요. 포도주가 떨어진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말이었겠죠, 아마? 가만히 보니까 그 아줌마는 엄마고 그 남자는 그 아줌마의 아들인 것 같았어요. 아줌마는 잔치 일꾼들을 불렀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어요.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어요. ‘엄마가 아들을 사랑하는구나. 엄마가 아들을 믿는구나. 아주 깊이 믿고 의지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내 마음도 왠지 모르게 든든해지는 것 같았어요. 바로 그때였어요. 누군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왔어요. 깜짝 놀라 올려다보니 바로 그 남자, 그 아줌마의 아들이었어요. 우리는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돌아갔던 사람이 왜 갑자기 여기 나타난 것일까? 가까이서 보니 그 남자에게서는 아주 좋은 기운이 느껴졌어요. 너그럽고 부드러운, 그러면서도 매우 힘차고 씩씩한 기운이었어요. 그 남자는 우리를 눈여겨보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더니 잔치 일꾼들을 불러 말했어요. “이 항아리에 물을 채우세요.” 가까이서 들리는 그 음성은,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운 음악소리 같았어요. 그분 음성을 듣는 순간 가장 먼저 얼굴빛이 붉어진 것은, 물론 우리 중 가장 감수성 예민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삼순이 누나였죠. 그리고 차차 우리 여섯은 모두 두근두근 가슴이 뛰었어요. 우리 안에 담긴 그분 목소리가 계속 아름답게 공명을 하고 있는 거였어요. 일꾼들은 우리 여섯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웠어요. 그러고 나서 그분은 일꾼들에게 또 말했어요. 이제는 떠서 잔치 책임자에게 가져다주라고!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우리 안에 가득 담긴 물이 좀 이상해졌어요. 처음에는 몰랐는데, 물에서 점점 향기가 났어요. 빛깔도 변했어요. 우리 삼순이 누나 얼굴처럼 발그레하게 변한 거예요. 물도 삼순이 누나처럼 그분 음성에 가슴이 뛰고 마음이 기뻐진 것일까요? 그분 말씀에 공명한 것일까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주 많이 이상한 일이었어요. 우리 물맛을 본 잔치 책임자는 아주 난리가 났어요. 신나서 어쩔 줄을 몰랐어요. 이렇게 맛있는 고급 포도주는 생전 처음 맛본 사람처럼 신이 난거죠.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져 크게 걱정했었는데, 갑자기 아주 좋은 포도주가 생겨서 아주 신이 난거죠. 그러나 그는 모를 거예요. 지금 우리가 얼마나 신이 나고 행복한지를! 삼순이 누나 얼굴이 왜 저렇게 포도주 빛깔보다 더 붉어지고, 왜 우리 가슴이 이렇게 두근두근 공명을 하고 있는지를, 아마 그는 모를 거예요. 우리 안에 과연 무엇이 담겼기에 이렇게 기쁜지를 그는 아마 모를 거예요. 그런데 우리도 아직 모르는 게 하나 있어요. 바로 그분 이름을 아직 몰라요. 삼순이 누나만큼 나도 그분 이름이 아주아주 궁금해요. 그리고 그분 이름을 자꾸자꾸 부르고 싶어졌어요. 노래 부르듯 그 이름을 부르고 싶어졌어요. 그러면 그 신비로운 포도주의 향기가 다시 내 몸 가득 느껴질 것 같았어요. 다시 내 몸이 그분 음성을 담았을 때처럼 두근두근 공명할 것 같았어요. <삼순이의 생각...> * 그 많던 포도주가 왜 떨어진 것일까요? * 어머니 마리아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셔놓고, 왜 우리를 향해선 고개를 끄덕이셨을까? * 텅 빈 포도주 단지가 저렇게 많은데, 예수님은 왜 우리 물 항아리를 택하셨을까? [이정훈 지음, 2013년 1월 19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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