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을 다하고”(마가복음 12:30)
[성서일과 4본문]
(룻기 1:1-18)
1. 사사 시대에 그 땅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 그 때에 유다 베들레헴 태생의 한 남자가, 모압 지방으로 가서 임시로 살려고,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2. 그 남자의 이름은 엘리멜렉이고,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이며,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다. 그들은 유다 베들레헴 태생으로서, 에브랏 가문 사람인데, 모압 지방으로 건너가 거기에서 살았다.
3. 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았다.
4. 두 아들은 다 모압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한 여자의 이름은 룻이고, 또 한 여자의 이름은 오르바였다. 그들은 거기서 십 년쯤 살았다.
5. 그러다가 아들 말론과 기룐이 죽으니, 나오미는 남편에 이어 두 아들마저 잃고, 홀로 남았다.
6. 모압 지방에서 사는 동안에, 나오미는 주님께서 백성을 돌보셔서 고향에 풍년이 들게 하셨다는 말을 듣고, 두 며느리와 함께 모압 지방을 떠날 채비를 차렸다.
7. 나오미가 살던 곳을 떠날 때에, 두 며느리도 함께 떠났다. 그들은 유다 땅으로 돌아가려고 길을 나섰다.
8. 길을 가다가,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제각기 친정으로 돌아가거라. 너희가, 죽은 너희의 남편들과 나를 한결같이 사랑하여 주었으니, 주님께서도 너희에게 그렇게 해주시기를 빈다.
9. 너희가 각각 새 남편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주님께서 돌보아 주시기를 바란다." 나오미가 작별하려고 그들에게 입을 맞추니, 며느리들이 큰소리로 울면서
10. 말하였다. "아닙니다. 우리도 어머님과 함께 어머님의 겨레에게로 돌아가겠습니다."
11. 그러나 나오미는 말렸다. "돌아가 다오, 내 딸들아.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려고 하느냐? 아직, 내 뱃속에 아들들이 들어 있어서, 그것들이 너희 남편이라도 될 수 있다는 말이냐?
12. 돌아가 다오, 내 딸들아. 제발 돌아가거라. 재혼을 하기에는, 내가 너무 늙었다. 설령, 나에게 어떤 희망이 있다거나, 오늘 밤 내가 남편을 맞아들여 아들들을 낳게 된다거나 하더라도,
13. 너희가, 그것들이 클 때까지 기다릴 셈이냐? 그 때까지 재혼도 하지 않고, 홀로들 지내겠다는 말이냐? 아서라, 내 딸들아. 너희들 처지를 생각하니, 내 마음이 너무나 괴롭구나. 주님께서 손으로 나를 치신 것이 분명하다."
14. 그들은 다시 한 번 큰소리로 울었다. 마침내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맞추면서 작별 인사를 드리고 떠났다. 그러나 룻은 오히려 시어머니 곁에 더 달라붙었다.
15. 그러자 나오미가 다시 타일렀다. "보아라, 네 동서는 저의 겨레와 신에게로 돌아갔다. 너도 네 동서의 뒤를 따라 돌아가거라."
16. 그러자 룻이 대답하였다. "나더러, 어머님 곁을 떠나라거나, 어머님을 뒤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는 강요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님이 머무르시는 곳에 나도 머무르겠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17. 어머님이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나도 죽고, 그 곳에 나도 묻히겠습니다. 죽음이 어머님과 나를 떼어놓기 전에 내가 어머님을 떠난다면, 주님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더 내리신다 하여도 달게 받겠습니다."
18. 나오미는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마음먹은 것을 보고,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시편 146)
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2. 내가 평생토록 주님을 찬양하며 내가 살아 있는 한, 내 하나님을 찬양하겠다.
3. 너희는 힘있는 고관을 의지하지 말며, 구원할 능력이 없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라.
4. 사람은 숨 한 번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니, 그가 세운 모든 계획이 바로 그 날로 다 사라지고 만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고 자기의 하나님이신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
6. 주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시며,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을 위해 공의로 재판하시며,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감옥에 갇힌 죄수를 석방시켜 주시며
8. 눈먼 사람에게 눈을 뜨게 해주시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9. 나그네를 지켜 주시고, 고아와 과부를 도와주시지만 악인의 길은 멸망으로 이끄신다.
10. 시온아, 주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신다! 나의 하나님께서 대대로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히브리서 9:11-14)
11.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일어난 좋은 일을 주관하시는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만들지 않은 장막, 다시 말하면,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더 완전한 장막을 통과하여
12. 단 한 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는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써가 아니라, 자기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13. 염소나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더러워진 사람들에게 뿌려도, 그 육체가 깨끗하여져서, 그들이 거룩하게 되거든,
14. 하물며 영원한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야말로, 더욱더 우리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죽은 행실에서 떠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겠습니까?
(마가복음 12:28-34)
28. 율법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다가와서,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예수가 그들에게 대답을 잘 하시는 것을 보고서, 예수께 물었다.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으뜸 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이신 주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사랑하여라.'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학자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옳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밖에 다른 이는 없다고 하신 그 말씀은 옳습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와 희생제보다 더 낫습니다."
34. 예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그 뒤에는 감히 예수께 더 묻는 사람이 없었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마음’입니다.
구약,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마음먹은 것을 보고”(룻기 1:18)
시편,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시편 146:5)
서신서, “우리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히브리서 9:14)
복음서,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마가복음 12:30)
오늘 요절은, “네 마음을 다하고”입니다.(마가복음 12:30)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룻기 1:1-18, 시편 146)]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룻이 나오미와 더불어 베들레헴으로 이주하다’입니다.
나오미는 이방 땅에서 나그네 되고 과부가 된 약자 중의 약자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 나오미의 뜻은 ‘기쁨’입니다.
아무데도 의지할 것 없게 된 나오미가 고향으로 되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오미가 이름처럼 살 수 있게 하시려고
세상을 의지하는 문들을 하나하나 닫아 걸어
오직 하나님께로 향하는 문만 열어 주시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때 며느리 룻이 시어미 나오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동행합니다.
그러고 보니 룻의 이름 뜻은 ‘친구’입니다.
한없이 가여운 약자 나오미의 곁을 지키는 참 친구가 바로 룻입니다.
부모와 고향을 등지고 떠나는 룻의 마음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연상됩니다.
절망 가운데 있는 나오미를 끝까지 지키려는 마음에서
참 좋은 친구 예수님의 사랑이 연상됩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하나님은 영원히 신실하심’입니다.
“야곱의 하나님”(5)은, <백성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
즉, 신실하신 하나님을 떠올리는 관용어입니다.
“주님은...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며”(6)
특히 약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강렬히 묘사한 9절은
구약본문의 나오미와 룻을 떠오르게 합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히브리서 9:11-14, 마가복음 12:28-34)]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그리스도의 일회적 희생’입니다.
과거 성전시대의 정결예식과 달리, 진정한 정결은
육체가 아닌 마음, “양심” 안에서 일어납니다.(14)
단순히 죄책만 씻어 없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참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우리 존재가 완전히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즉, 죽은 행실 (죽음을 가져오는 행실) 말고 새롭게 된 마음으로 드리는 산 예배,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참 예배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최고의 계명에 대한 물음’입니다.
가장 큰 계명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지킴이
그 어떤 성전제사, 희생제사보다 하나님께 영광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정의와 공평을 지키며 사는 것을 제사를 드리는 일보다 더 반기신다.(잠언 21:3)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호세아 6:6)
그런데 이때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에서 “마음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심(盡心)이 곧 진심(眞心)입니다.
진심을 다할 때 비로소 내가 사랑할 그분,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하는 법입니다.
눈에 보이는 하나님, 바로 이웃, 내 곁의 약자들 말입니다.(마태 25:40, 45)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억눌린 사람”, “굶주린 사람”, “감옥에 갇힌 죄수”(시편 146:7)
“눈먼 사람”, “낮은 곳에 있는 사람”(8)
“나그네”, “고아와 과부”(9)
오늘 시편본문은 우리 가까이의 약자들을 이렇게 하나하나 열거하며
주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돌보시는지 자세히 묘사합니다.
그래서 오늘 시인은,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노래하는 것입니다.(5)
오늘 구약본문에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나오미는 모든 인생길이 막히자 비로소
주님께서 고향에 풍년 들게 하셨다는 소식이 귀에 들립니다.(룻기 1:6)
안쓰럽고 처절한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16)
룻은 이런 시어머니 나오미가 의지하는 하나님께 희망을 겁니다.
그 안쓰럽고 처절한 희망에서 강력한 마음이, 강력한 사랑이,
강력한 공동체가 나온 것입니다.
오늘 룻이 굳게 마음먹은 그 마음은 장차 큰 사랑, 큰일을 일으킵니다.
천하의 왕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을 낳고,
룻의 그 마음, 그 사랑은 마침내 예수님(출생)으로 이어집니다.(마태 1:5)
룻에게 진심(盡心, 眞心)을 주신 하나님,
절망에 빠진 시어머니를 향한 사랑의 마음, 일체감을 주신 하나님께서,
오늘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과 노인들에게, 그리고 남과 북 모두에게
서로를 향한 불신 대신, 일체감을 불러일으켜주시길 기원합니다.
서로를 향한 기대와 희망을,
서로를 향한 긍휼과 사랑의 마음을 불러일으켜주시길 빕니다.
[나머지]
* 목숨을 다한 사랑
오늘 복음서본문의 알맹이 역시 사랑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정리해주신 가장 큰 계명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눈여겨 볼 것은, “네 목숨을 다하고”라는 예수님 말씀입니다.(30) 이 부분을 반복해서 확인한 율법학자의 말에는 빠져 있습니다.(33) 이야기인 즉, 예수님과 율법학자가 인용한 신명기 6:5절에는 “목숨”이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채우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사시고 죽으셨습니다. 목숨 바쳐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어디에서 여론조사를 했는데, 시어머니가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 가운데서 대한민국 며느리들이 가장 믿지 못할 말씀 1순위가 “나는 너를 내 딸처럼 여긴다”는 거였고, 반면에 시어머니들께서 가장 믿지 못하는 며느님 말씀 1순위는, 시어머니께서 전화 걸었을 때 며느리가 하는 이런 말이라고 합니다. “아유 어머니, 제가 지금 막 전화드리려던 참이었어요...” 오늘 구약말씀의 주인공은 나오미와 룻입니다. 성경에서 남녀 간의 사랑을 뛰어넘는 남자들 사이의 사랑과 우정의 상징으로 다윗과 요나단을 꼽는다면, 여자들 사이의 사랑의 대명사로는 단연 나오미와 룻 사이의 저 특별한 고부간의 사랑을 꼽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본문에서 조금 다른 느낌, 어떤 좀 더 큰 것을 느낍니다. 그건, 나오미에게 룻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나오미에게 룻은 며느리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죽어도 어머니의 곁을 떠날 수 없다는 룻의 선언. 이건 마치 준엄한 선전포고 같습니다. 좀 오지랖 넘치는 상상인지 모르겠으나, 저는 이 문장을 읽고 묵상하면서, 룻에게서 하나님의 마음, 그 향내를 느꼈습니다. 끝까지 당신과 함께 하리라는 임마누엘 하나님! 내 백성들의 실생활을 보고 싶어서 변복을 하고 궐 밖으로 나가는 조선시대 임금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사람의 몸을 입고 예수라는 이름으로 아예 더불어 살러, 그리고 죽으러 세상에 오신 하나님, 아버지와 자식 관계가 아니라,, 친구로, 큰 형님으로 오신 바로 그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룻에게서 말입니다. 랍비의 모습으로, 친구의 모습으로 오신 싱싱한 청년 예수 하나님처럼, 딱 나 같은 과부의 모습으로, 친구보다 더 만만한 내 며느리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이랄까? 이건 너무 비약이지만, 그래도 저는 오늘 본문말씀을 읽으면서 룻에게서 그런 하나님의 기운을 느꼈습니다. 사랑이란,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복음가수 이길승 형제 노래 ‘철수엄마’ 노랫말입니다.
철수의 엄마는 듣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는 해녀랍니다. 그렇게 어렵게 5형젤 키운 엄마를 철수는 사랑합니다. 수화도 모르는 엄마이기에 온몸과 숨소리로 말했답니다. 어느날 철수는 책방에 들러 한글공부 그림책 사가지고는, 글씨와 그림을 보여드리며 신나게 하나둘 가르쳤는데, 철수가 엄마에게 하고 싶던 말, 사랑이란 단어 위에 떨렁 그려진, 하트모양 그것을 설명하려다, 너무너무 어려워 울었습니다. 너무너무 속상해 울었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성경 66권을 꽉꽉 짜서 짜낸 엑기스, 가장 큰 계명,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추상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다 구체적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그런데 이것조차 매우 추상적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각별한 체험이 있는 사람조차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알쏭달쏭해지는 것이 우리 믿음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간절함이 철철 넘치는 것만 같던 천국소망조차 시간이 지나면서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 손에 잡히는 것들에 대한 집착, 그 미망(迷妄) 때문에 새벽안개처럼 허망하게 사라져버리는 것이 우리가 가진 소망입니다. 700%리얼인 것 같았다가도 어느 순간이 지나면서부터 맹숭맹숭 아리송해지는 남녀 간의 사랑만큼이나, 지극히 추상적인 것이 우리가 말하는, 우리가 느끼는 소위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사랑 또한 얼마나 추상적입니까? 이웃사랑은 또 어떻습니까? 도대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의지할 곳 아무데도 없는 우리 나오미, 밑바닥에 떨어진 나오미입니다. 그런 나오미를 주님께서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룻을 통해서! 말로는 단호하게 며느리 너희들 다 갈 길로 가라고 했으나, 끝끝내 시어머니 곁을 지키려는 저 단호한 룻의 말을 들으며 나오미의 속마음은 얼마나 든든했겠습니까? 나오미에게 룻은 한 가닥 희망이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이웃은 누구입니까? 밑바닥에서 힘없이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이웃은 누구입니까? 눈에 불을 켜고 찾으십시오. 왜냐하면, 그 이웃이야말로, 내가 가장 큰 계명, ‘사랑’을 제대로 깨달을 수 있는, 가장 큰 계명 ‘사랑’을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룻에게 이웃은 바로 시어머니 나오미였습니다. 마치 우리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셨던 예수님처럼, 또한 나오미에게 룻은 며느리의 모습으로, 과부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룻이 나오미를 주님 섬기듯 섬긴 것입니다. 이웃 섬기듯 섬긴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온몸으로 보여주신 예수님! 내 몸을 먹으라고 주시기까지 우리를 섬기신 예수님 그 사랑의 단편을 오늘 룻에게서 느낍니다.
(※ 3년 전 올린 것을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 내 마음에 찾아오신 주 예수님
통일찬송가 218장 ‘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에는 ‘마음(맘)’이라는 노랫말이 가득합니다. 1절부터 4절까지, 첫줄부터 끝줄까지, 딱 한 줄, 4절, 둘째 줄(“이 세상을 심판할 때에 날 흠없게 합소서”)만 빼고 모든 줄에 ‘마음’이 들었습니다. 후렴구는 “사랑의 주 사랑의 주 내 맘속에 찾아오사, 내 모든 죄 사하시고 내 상한 맘 고치소서”를 반복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마음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한편, 성경의 “추수”에 감사와 회개의 두 정신이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곤 합니다. 그래서 지금 추수철, 추수감사절기에 안성맞춤인 찬송가라는 생각입니다. 4절 둘째 줄이 절정을 이루며, 마지막 추수, 마지막 심판 때 내가 쭉정이가 아닌 흠 없는 알곡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기를, 늘 내 상한 마음 고쳐주시기를 빌며, 오늘도 마음 모읍니다. (새찬송가 286장은 바로 이 부분 가사가 바뀌어 아쉽습니다.)
[말씀동시] 소행성 B612 (이선구 지음. 성실교회 청년부. 「성실문화」96호)
우주에 홀로 떠 있는 작은 소행성
하늘은 별 한 점 없이 어둡기만 하네
무성히 자라있는 바오밥나무와
덮개도 없는 장미 몇 송이 뿐인 곳
이제 어린 왕자가 집으로 돌아온다
바오밥 나무뿌리가 별을 부수는 걸 막고
하늘을 가려버린 무성한 가지를 정리하기 위해서
[말씀시조] 나오미 강권하니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96호)
나오미 강권하니 오르바 떠나는데
나머지 며느리는 고집불통 안 떠나네
네 마음 이제 알겠다 함께 가자 룻이여
[말씀서예]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96호)
[말씀노래] 가장 큰 계명 (이정훈 작사, 박승원 작곡. 「성실문화」96호)
[본문] (마가복음 12:28-34)
[노랫말]
1. 내 백성아 들어라 새겨들어라 / 첫 계명 으뜸계명 새겨들어라 /
우리 주 하나님은 오로지 한 분 / 애오라지 그 나라의 주인이시다
2.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 다해 / 네 뜻을 다하고 네 힘 다하여 /
네 하나님 네 주님을 사랑하여라 /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해설]
마가복음 12:28-34절 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7.5조로 다듬었고, 성실문화원 동인이며 월드뮤직그룹 ‘공명’ 단원이신 박승원 선생이 가락을 붙였다.
[악보] ‘가장 큰 계명’ (이정훈 작사, 박승원 작곡)
[시편 송서(誦書)] 시편 146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96호)
(※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즉 전래자장가 가락으로)
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2.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6.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8.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9.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다함께]
10.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신정절(왕국절 11주, 창조절 10주) 2018년 11월 4일 주일 (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룻기 1:1-18, 시편 146, 히브리서 9:11-14, 마가복음 12:28-34
|
① |
|
|
|
|
|
② |
|
|
|
|
|
|
|
|
|
|
|
|
|
|
|
|
|
|
|
|
|
|
|
|
|
|
|
③ |
④ |
|
|
|
⑤ |
|
|
|
|
|
|
|
|
|
|
|
|
|
|
|
|
|
|
|
|
⑥ |
|
|
가로열쇠
①이름 뜻은 ‘나의 기쁨’, ‘나의 기뻐하는 자’이다. 룻기의 중심인물 중 하나로서 엘리멜렉의 아내이며 말론과 기룐의 어머니이고, 모압 여자 룻의 시어머니다. 어려운 가운데서 끝까지 자신을 봉양하는 며느리 룻을 엘리멜렉 가문의 먼 친척 보아스와 결혼시켜 손자 오벳을 보는 기쁨을 얻고 죽은 남편의 대를 잇는 복을 누렸다(룻 4:13-17). (룻기)
②‘하나님이 다스리시기를!’, 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신다’는 뜻이며, 창세기의 야곱이 하나님께 받은 새 이름이다. 그래서 야곱의 12아들의 후손들이 세운 유대나라를 흔히 이 이름으로도 부른다.(마가복음)
③이 직분은 모세의 형 ‘아론’으로부터 시작되어 그 후손, 특히 ‘사독’의 후손들이 맡았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 역할을 했다. 이들의 종교적인 역할 중 가장 큰 일을 꼽으라면, 일 년에 한 번 있는 ‘대 속죄일’(욤 키프르)에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의식을 거행하는 일이었다.(히브리서)
⑥하나님이 임금님이 되어 다스리시는 나라. 다른 말로 하늘나라, 즉 천국(天國)이라고도 한다. 물론 이 나라의 위치는 하늘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 그 어디일 수도 있다. 즉 이 나라는 어떤 장소라는 개념 보다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통치를 뜻한다. 그런데 이 나라는 다른 나라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강하고 부드러운 나라, 즉 사랑의 힘이 센 나라다. 이는 예수님 복음의 핵심으로서, 예수님은 늘 이 나라가 우리에게 가까이 왔다고(마가 1:15), 또는 이미 왔다고 말씀하셨다.(누가 11:20) (마가복음)
세로열쇠
①이름 뜻은 ‘목’, ‘목덜미’이다. 모압 출신으로, 흉년을 피해 유다 땅에서 모압으로 갔던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아들인 기룐과 결혼한 여자인데, 그의 남편이 죽고 시어머니가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을 때 나오미의 권유로 모압에 남았다.(룻기)
②이름 뜻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는 뜻으로서, 유다 지파 베들레헴 사람이다. 사사 시대 유다 땅에 기근이 들었을 때 모압 땅으로 이주해 갔다가 그곳에서 사망한 나오미의 남편이자 룻의 시아버지다.(룻기)
③제물을 불에 태워 그 향기(연기)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제사. 즉 성전마당의 ‘○○단’ 위에서 희생이 되는 짐승은 그 가죽과 내장을 제외한 모든 것을 거룩한 불에 완전히 태워 그 향기(연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말한다(레 1:2-9) (가죽은 제사장의 몫이었다, 레 7:8). 이스라엘의 5대 제사(○○,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레 1:1-7:38) 중에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또 예배자의 전 인격이 하나님께 바쳐짐을 상징하는 중요한 제사 방법이었다.(마가복음)
④이스라엘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은 뒤부터 이스라엘의 첫 왕 사울의 등장 때까지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이스라엘의 지도자. 원래 ‘○○’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쇼페트’나 헬라어 ‘크리테스’는 ‘재판하다’, ‘다스리다’는 뜻으로서 소송과 분쟁을 해결하는 ‘재판관’으로서의 성격이 강했으나 점차 그 범위와 영향력이 정치나 군사 등으로 확대되었다(삿 2:16). 특히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하는 구원자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기에 기록된 ○○는 열두 명인데, 예언자의 성격이 강했던 사무엘은 ○○기에 언급되지 않지만 마지막 ○○로 간주되며(삼상 7:15), 사무엘의 두 아들도 ○○로 불린다(삼상 8:1-2). (룻기)
⑤‘곡물’, ‘열매를 많이 맺음’, ‘곡물의 땅’이란 뜻. ‘○○○○’의 축약형이다. ○○○○는 ‘곡물의 땅’이란 뜻이며 이곳 땅이 비옥했음을 암시하는 지명이다. ‘베들레헴’의 옛 이름이거나 혹은 원래 두 성이 가까이 있었는데 후에 ○○○○가 베들레헴에 합쳐졌다고 보기도 한다(룻 4:11; 시 132:6). ‘베들레헴 ○○○○’로도 일컬어진다(미 5:2). 라헬이 매장된 곳이며(창 35:19; 48:7), 예수님이 이곳에서 탄생할 것이 예언되었다(미 5:2). 한편, 성경에는 기럇여아림 근처의 또 다른 ‘○○○○’가 소개되고 있다(대상 2:50-52; 시 132:6). (룻기)
⑥히브리어 ‘체다카’를 번역한 말로서, 개역개정판에서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거나 하나님의 백성들의 올바른 마음 자세나 삶의 태도를 강조할 때 주로 사용되며, 사회나 국가 제도적 차원에서 언급될 때는 주로 ‘정의’란 표현으로 구분하여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국어사전에는, 선악의 제재를 공평하고 의롭게 하는 하느님의 적극적인 품성이라 정의 하는데, 정리하자면, ○○란 공평과 정의를 뜻하는 말로서, 하나님의 품성 중 하나이다(창 18:25, 욥 8:3, 37:23, 사 30:18). (시편)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대한성서공회), 「성경낱말사전」(성도출판사), 인터넷 사전 등을 참고하고 부분 인용했습니다.)
[말씀동화] 훈이와 감나무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감나무 밑에서 입 딱 벌리고 누워있던 시절 이야기예요.
“세상에! 감나무에 감이 열리다니!”
난생처음 주렁주렁 바알간 단감을 본걸까?
훈이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감나무에 감이 열리는 게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지는 몰라도
훈이에겐 참 신비로운 일입니다.
‘도대체 감나무에 어떤 비료를 주고 무슨 보약을 뿌려야 저렇게 감이 열리는 걸까?’
엄마아빠가 헤어지는 바람에 경기도 양평 외가에 던져지듯 홀로 남은 훈이는
혼자사시는 외할머니 댁에서 오늘도 외롭습니다.
타박타박 고개 넘어 윗마을까지 돌아다니던 훈이 눈에
탐스럽게 익어가는 단감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훈이는 매일매일 감나무를 구경하러 갑니다.
하나 둘 셋 넷, 오늘도 감을 헤아리며 훈이는 생각합니다.
‘너흰 하나도 안 외롭지?’
낯선 외갓집보다 더 낯선 윗마을이지만, 그래도 감나무 단감들은 늘 반갑습니다.
손에 닿을 정도로 낮은 곳에 달린 감을 냉큼 따오고 싶지만,
언제 나왔는지 욕쟁이 할머니의 사나운 눈매를 보고
훈이는 얼른 고개를 돌립니다.
담장 안팎으로 두 그루 감나무에 주렁주렁 감 풍년이지만,
동네 아이들 그 누구도 감을 딸 엄두를 못 냅니다.
언젠가 우리 마을에서 제일 키 큰 아이가 몰래 감을 따다 욕쟁이 할머니한테 들켜서
얼마나 혼쭐났는지 모른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윗마을에 가면 유독 감나무 앞에서는 걸음이 느려지지만,
훈이는 군침을 꿀꺽 삼키며 바라만 볼 뿐입니다.
그래도 바라만 보아도 참 예쁜 감나무입니다.
느릿느릿 지나가는 훈이의 흐뭇한 표정을
욕쟁이 할머니가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늦은 비가 그친 어느 날, 훈이는 며칠 만에 이웃마을로 달려갑니다.
예쁜 감나무가 잘 있을까?
혹시 무르익어 똑 떨어진 감은 없을까?
그런데 이게 웬일이람? 감나무에 감이 없네?
감나무 꼭대기 까치밥 몇 개 조랑조랑 달렸을 뿐
담장 밖 감나무엔 어느새 감이 하나도 없습니다.
담장 안에서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 살짝 들여다보니
혼자 사는 욕쟁이 할머니가 동네 사람들이랑 김장을 하나봅니다.
조심조심 대문 안쪽을 살피니, 저기 툇마루에
주렁주렁 단감들이 올망졸망 줄지어 앉아있네?
가지 째 토막토막 자른 가지마다 단감들이 서너 개씩 달려 있습니다.
풀이 팍 죽은 훈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뒤돌아섭니다.
바로 그때였어요. 뒤에서 누군가 다가오나 봐요.
“옛다, 이거 가져가렴.”
고개를 돌려보니 욕쟁이 할머니였습니다.
한아름 가지가지 단감 무더기를 훈이에게 안겨줍니다.
“익지도 않은 걸 따면 맛없다. 집에 며칠 더 두었다가 하나하나 따서 먹으렴.”
욕쟁이 할머니가 씩 웃으며 집에 들어가자마자
얼떨떨한 훈이가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갑니다.
‘욕쟁이 할머니는 욕심쟁이가 아니었어!’
단감처럼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두리번두리번 동네 아이들을 찾습니다.
몇 안 되는 동네아이들이랑 단감을 나눠먹으면서
친해지고 싶습니다.
하나 둘 셋 넷, 올망졸망 단감들처럼 어울리고 싶습니다.
감나무 꼭대기에 앉은 까치 한 마리가
친구들을 부르며 신나게 깍깍거립니다.
까치밥처럼 발갛게 물든 저녁노을에
온 마을이 따뜻합니다.
[이정훈 지음. 2018년 11월 4일 주일 오후]
[※ 외로운 가운데 서로 의지하는 나오미와 룻 이야기(룻기 1:1-18), 그리고 시편 146:9절을 묵상하며 지었습니다.]
'성실문화 응용하기 > 본문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정절(왕국절 12주, 창조절 11주, 2018년 11월 11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0) | 2018.11.11 |
---|---|
신정절(왕국절 12주, 창조절 11주, 2018년 11월 11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0) | 2018.11.09 |
신정절(왕국절 10주, 창조절 9주, 종교개혁주일, 2018년 10월 28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0) | 2018.10.27 |
신정절(왕국절 9주, 창조절 8주, 2018년 10월 21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0) | 2018.10.20 |
신정절(왕국절 8주, 창조절 7주, 2018년 10월 14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0) | 2018.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