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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신정절(왕국절 10주, 창조절 9주, 종교개혁주일, 2018년 10월 28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마가복음 10:47)

 

[성서일과 4본문]

(욥기 42:1-6,10-17)

1. 욥이 주님께 대답하였다.

2. 주님께서는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다는 것을,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주님의 계획은 어김없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저는 깨달았습니다.

3.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주님의 뜻을 흐려 놓으려 한 자가 바로 저입니다.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었습니다.

4.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물을 터이니, 내게 대답하여라" 하셨습니다.

5.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6. 그러므로 저는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

10. 욥이 주님께, 자기 친구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를 드리고 난 다음에, 주님께서 욥의 재산을 회복시켜 주셨는데, 욥이 이전에 가졌던 모든 것보다 배나 더 돌려주셨다.

11. 그러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전부터 그를 아는 친구들이 다 그를 찾아와,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기뻐하면서, 먹고 마셨다. 그들은 주님께서 그에게 내리신 그 모든 재앙을 생각하면서, 그를 동정하기도 하고, 또 위로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저마다, 그에게 돈을 주기도 하고, 금반지를 끼워 주기도 하였다.

12. 주님께서 욥의 말년에 이전보다 더 많은 복을 주셔서, 욥이, 양을 만 사천 마리, 낙타를 육천 마리, 소를 천 겨리, 나귀를 천 마리나 거느리게 하셨다.

13. 그리고 그는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다.

14. 첫째 딸은 여미마, 둘째 딸은 긋시아,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고 불렀다.

15. 땅 위의 어디에서도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더욱이 그들의 아버지는, 오라비들에게 준 것과 똑같이, 딸들에게도 유산을 물려주었다.

16. 그 뒤에 욥은 백사십 년을 살면서, 그의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다.

17. 욥은 이렇게 오래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시편 34:1-8(19-22))

1. 내가 주님을 늘 찬양할 것이니, 주님을 찬양하는 노랫소리, 내 입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2. 나 오직 주님만을 자랑할 것이니, 비천한 사람들아, 듣고서 기뻐하여라.

3. 나와 함께 주님을 높이자. 모두 함께 그 이름을 기리자.

4. 내가 주님을 간절히 찾았더니,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져내셨다.

5. 주님을 우러러보아라. 네 얼굴에 기쁨이 넘치고 너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6. 이 비천한 몸도 부르짖었더니, 주님께서 들으시고, 온갖 재난에서 구원해 주셨다.

7. 주님의 천사가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둘러 진을 치고, 그들을 건져 주신다.

8. 너희는 주님의 신실하심을 깨달아라. 주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은 큰 복을 받는다.

19. 의로운 사람에게는 고난이 많지만, 주님께서는 그 모든 고난에서 그를 건져 주신다.

20. 뼈마디 하나하나 모두 지켜 주시니, 어느 것 하나도 부러지지 않는다.

21. 악인은 그 악함 때문에 끝내 죽음을 맞고, 의인을 미워하는 사람은, 반드시 마땅한 벌을 받을 것이다.

22. 주님은 주님의 종들의 목숨을 건져 주시니, 그를 피난처로 삼는 사람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다.

 

(히브리서 7:23-28)

23. 또한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음 때문에 그 직무를 계속할 수 없어서, 그 수가 많아졌습니다.

24. 그러나 예수는 영원히 계시는 분이므로, 제사장직을 영구히 간직하십니다.

25. 따라서 그는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완전하게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늘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중재의 간구를 하십니다.

26. 예수는 이러한 제사장으로 우리에게 적격이십니다. 그는 거룩하시고, 순진하시고, 순결하시고, 죄인들과 구별되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입니다.

27. 그는 다른 대제사장들처럼 날마다 먼저 자기 죄를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리고, 그 다음에 백성을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바치셔서 단 한 번에 이 일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28. 사람들에게 약점이 있어도 율법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대제사장으로 세우지만, 율법이 생긴 이후에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아들을 대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마가복음 10:46-52)

46. 그들은 여리고에 갔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큰 무리와 함께 여리고를 떠나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 가에 앉아 있다가

47. 나사렛 사람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하고 외치며 말하기 시작하였다.

48. 그래서 많은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으나, 그는 더욱더 큰소리로 외쳤다. “다윗의 자손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49.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눈먼 사람을 불러서 그에게 말하였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시오. 예수께서 당신을 부르시오."

50. 그는 자기의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서 예수께로 왔다.

51.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 그 눈먼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5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러자 그 눈먼 사람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섰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간구와 응답입니다.

 

구약, “기도를 드리고 난 다음에”(욥기 42:10)

시편,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시고”(시편 34:4)

서신서, “그들을 위하여 중재의 간구를 하십니다”(히브리서 7:25)

복음서,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라고 말씀하셨다”(마가복음 10:49)

 

오늘 요절은,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입니다.(마가복음 10:47)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욥기 42:1-6, 10-17, 시편 34:1-8(19-22)]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여호와에 대한 욥의 대답과 축복받은 종말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론과 편견들이,

욥의 희망대로(19:26-27), 하나님을 뵈면서 전부 무의미해집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관계가 정리되면서 세 친구들과의 관계도 정리되고,

다른 모든 인간관계들이 회복되고,(11)

재산도 회복됩니다.(10, 12)

 

지금까지 욥의 고난과 좌충우돌 토로(吐露)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간구(懇求)가 절절했습니다.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당신의 본질을 드러내실 만큼 상세하고 강력했습니다.(4, 5)

그 결과 오늘 욥은 철저히 회개하고 급기야 모든 것을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서입니다.

이 시편은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로 지은 정교한 시입니다.

이 다윗의 노래, 특히 4절은 마치 오늘 욥의 노래처럼 들립니다.

 

내가 주님을 간절히 찾았더니,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져내셨다.”(시편 34:4)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간구에 늘 귀 기울이시고,

정확하게 응답하는 분이십니다.

 

너희는 주님의 신실하심을 깨달아라. 주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은 큰 복을 받는다.”(시편 34:8)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히브리서 7:23-28, 마가복음 10:46-52)]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그리스도,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은 레위계통의 대제사장들과 근본적으로 다르십니다.

단 한 번 자기희생으로 영원히 유효한 (-새 희생제물이 필요 없는) 제사를 완성하신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 언약)으로 영원하고 완전하신 대제사장이 되시어(28)

영원히, 그리고 지금도 늘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고 응답받으심으로써

완전한 구원을 이루시는 것입니다.(25)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여리고 바디매오를 치유하시다입니다.

맹인 걸인 바디매오의 믿음이 돋보입니다.(52)

제자들조차 눈 뜨고도 예수님을 제대로 못 보는데

눈먼 걸인이 굳센 믿음으로 간구하고 또 간구합니다.(47, 48)

그리고 우리 예수님의 응답이 속 시원합니다.

 

그런데 49절과 50절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바디매오가 예수님 만나 눈을 뜨기까지, 오작교(烏鵲橋) 역할을 한 사람들!

간구와 응답 사이의 오작교, 그들이 바디매오에게 말합니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시오. 예수께서 당신을 부르시오.”(49)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해설 일부 참조)

 

 

[정리]

오늘 구약의 주인공 욥이 눈으로 주님을 뵌 것처럼(욥기 42:5)

오늘 복음서 주인공 바디매오도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마가복음 10:51-52)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눈으로 뵙게 되는 과정이 얼마나 강렬한지,

다른 눈뜬 제자들은 예수님을 못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진리는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디매오 같은 간절한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52)

 

욥이 주님을 눈으로 뵙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바디매오가 주님을 눈으로 뵙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욥과 바디매오가 낮아질 대로 낮아진 뒤에 이렇게 외칩니다.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욥기 42:6)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마가복음 10:47,48)

 

고난 가운데 지극히 낮아질 때,

그래서 오직 주님께만 집중하며 간구할 때,

주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믿음의 눈>은 그렇게 열리는 것입니다.

 

 

 

[나머지]

* , 다윗, 바디매오, 그리고 루터

주님을 만나기까지 치열하고 간절했던 욥의 모습과 시편기자의 모습은 종교개혁가 루터를 연상시킵니다. 끝까지 고통스런 논쟁을 멈추지 않았던 욥처럼, 끊임없는 고통과 번민 끝에 말씀으로 하나님의 진면목을 보게 된 루터! 말씀에 눈을 뜬 루터는 믿음으로 목숨을 건 개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루터가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논쟁하고 막강한 권력을 가진 기성교회, 그리고 공권력과의 논쟁을 피하지 않았던 것은, 부와 명예 권력보다는, 진실 진리를 향한 열망이 컸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눈 뜨기 위한 루터의 열망은, 마치 오직 눈을 뜨기 위한 일념으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 부르짖은 바디매오의 그것과 같습니다. 바디매오가 눈을 뜨고 예수님을 뵌 것처럼 루터는 마침내 성경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만납니다. 그리고 바디매오가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서”(50) 예수님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섰던 것처럼 루터는 오직 말씀, 오직 믿음, 오직 은혜로 완전한 회복을 위한 교회개혁의 길을 나섭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완전한 회복, 완전한 개혁을 위해 가장 먼저 훌훌 벗어버려야 할, 철저히 회개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 바디매오의 믿음, 루터의 성경

오늘 복음서본문에서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멈춰 세우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바디매오는 필사적이었습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눈 먼 바디매오가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자 사람들이 나사렛 사람 예수가지나가는 길이라고(47) 알려주었나 봅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나사렛 예수님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표현은 아주 위험한 금기어였기 때문입니다. 로마 통치하에 있는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시리라고 식민지 백성들이 굳게 믿으며 기다리던 그 메시야를 가리키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바디매오는 그 이름을 두 번이나 부르짖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굳센 믿음입니다. 그분이라면 나를 구원하실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내가 당장 로마 군인들에게 붙잡혀 가는 한이 있어도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멈춰 세웁니다. 길 가시는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춰 세웁니다. 나를 지나쳐 가시는, 나를 지나쳐버리시는 그분을 멈춰 세우는 굳센 믿음입니다. 그분을 만나야 한다는, 어떤 곤경이 닥쳐도 그분 만나야 내가 산다는, 세상에 아무 다른 것 말고 오직 그분 만나야 내가 산다는 필사적인 부르짖음, 바디매오의 믿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러자 그 눈먼 사람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섰다.(마가 10:52)

 

종교개혁가 마틴루터의 목숨 건 외침은, ‘오직 믿음, 오직 성경이었습니다. ‘믿음은 필사적으로 그분 만나야 내가 산다는 것이고, 지금 이 시대에 그분 만난다는 것은 말씀이신 그분, 바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이기에, 믿음과 성경, 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다른 수많은 교리와 수많은 할 일들이 있지만, 여기 저기 다니며 해야 할 일 많지만,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티끌과 잿더미 위에 주저앉아 말씀으로 돌아가는 일이라는 것! 이게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의 일성입니다. 오늘은 종교개혁 501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오백년 전 종교개혁가의 외침을 기억하며, 오늘 나의 개혁을 위해 다시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지금 내 곁을 지나치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멈춰 세웁니다. 그리고 눈을 떠 눈으로 주님을 보며 그분 가시는 길 따라나섭니다.

(3년 전 올린 것을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이소현 지음. 성실교회 중등부 2학년. 성실문화96)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어도

끊임없는 믿음으로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아 헤매던 길을

환한 빛 한줄기로

 

길을 찾았다

 

 

 

 

[말씀시조] 진실한 욥의 회개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96)

진실한 욥의 회개 주께서 들으시네

친구들 허물까지 사죄하는 욥의 기도

주께서 베푸신 사랑 이전보다 크셔라

 

 

 

 

[말씀서예] 욥기 42:6 ( 지음. 성실문화96)

 

 

 

 

 

[말씀노래]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96)

[본문] (마가복음 10:46-52)

[노랫말]

1) 여리고 눈먼거지 바디매오가, 예수님 지나실때 소리지르네

       다윗의 자손이여 날좀보소서,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이여

2) 수많은 사람들이 야단치지만, 바디매오 더욱더 부르짖으니

       예수님 바디매오 부르시누나, 바디매오 더듬더듬 달려가누나

3) 무엇을 원하느냐 바디매오야, 선생님 다시보길 원하나이다

       가거라 네믿음이 널구원했다, 눈을뜬 바디매오 주만따르리

 

[해설]

마가복음 10:46-52절 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7.5조로 다듬었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이석훈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바디매오의 길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시편 송서(誦書)] 시편 34:1-8(19-22)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96)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즉 전래자장가 가락으로)

 

1. ---- 여호와를--, -상 송-축함이---,

   내 입술로-- ----, (-) -찬양하--이다-

 

2.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4. ---- 여호와께--, -구하-(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5.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8. 너희--- 여호와의--, --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 피하는 자는-, -(-) 있도---

 

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20.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21.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벌을 받으리로다

 

[다함께]

22. 여호와께서- -의 종들의, 영혼을 속-량하시-나니-,

    그에--- 피하는 자는-, -- 벌을 받- 아니하리∼∥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신정절(왕국절 10, 창조절 9) 20181028일 주일 (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욥기 42:1-6, 10-17, 시편 104:1-8(19-22), 히브리서 7:23-28, 마가복음 10:46-52

 

 

 

 

 

 

 

 

 

 

 

 

 

 

 

 

 

 

 

 

 

 

 

 

 

 

 

 

 

 

 

 

 

 

 

 

 

 

 

 

 

 

 

 

 

 

 

 

 

 

 

 

 

 

 

 

 

 

 

 

 

가로열쇠

이름 뜻은 작은 비둘기로서, 욥이 환란 후에 얻은 첫째 딸 이름이다. 매우 아리따웠으며,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오라비들과 똑같이 유산을 물려받았다.(욥기)

레아와 야곱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 아들이다(29:34). 이름 뜻은 친함’, ‘연합된 자이다. 남편 사랑을 받지 못하던 레아가 이 아들로 남편과 친해지기를(연합되기를) 원하는 소망이 담긴 이름이다. 세겜 인근에서 여동생 디나가 하몰의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자, ○○는 형 시므온과 함께 세겜 부족을 몰살시켰다. 이 일로 ○○는 자손들이 가나안 온 땅에 흩어져 살게 될 것이라는 저주를 받았다.(34:25-31) 게르손, 고핫(그핫), 므라리를 낳았다. 이들 세 아들을 통해 형성된 자손들은 훗날 출애굽 후 광야 생활 도중 금송아지 사건 때 유일하게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32:26-29) 요단 동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브올 우상을 섬기며 음행할 때 ○○지파의 비느하스가 우상 숭배자들을 죽임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냈다(25:11-33). 그 결과 비록 세겜 사건으로 인하여 그 자손들이 뿔뿔이 흩어질지언정 흩어진 곳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백성에게 가르치는 복을 받게 되었다. ○○는 아버지 야곱을 따라 애굽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137세로 죽었다(46:8-11; 6:16). 동명이인으로, 알패오의 아들이 있다(마가 2:14, 가버나움 출신 세리 마태와 동일인물로 추측한다. 5:27-29). (히브리서)

남에게 빌어먹고 사는 사람.(마가복음)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거나 받은 사람이라는 뜻. 성경에서는 주로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그분을 좇는 모든 성도(6:1, 7; 9:19)를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거해야 하고(8:31), 또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13:35). 그리고 ○○ 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하고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할 수 있어야 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이라고 강조하셨다(14:26-27). 이러한 맥락에서 초대교회 당시 안디옥의 주교 이그나티우스(Ignatius, A.D. 35-107년경)○○라는 말과 순교자를 동의어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의 도란 생명을 내어 놓는 일임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마가복음)

이스라엘 북쪽의 갈릴리 지역에 있는 해발 375미터의 산꼭대기 마을로서 예수님이 유년기를 보내신 고향이다. 그때는 인구 200명도 안 되는 벽촌이었으나, 지금은 6만여 명이나 산다고 한다. 예수님 고향이어서인지, 이스라엘임에도 지금도 기독교인이 많이 사는 곳이다. (무슬림 69%에 기독교인 약 30%) (마가복음)

 

세로열쇠

평균 해면 아래 259미터에 있는 낮은 지역으로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오래된 성읍이다. 가장 오래된 성벽은 이미 BC.7,000년 경 세워졌다. 바로 아래 있는 사해(死海)에서 나는 소금, 역청, 유황 장사로 부유했다. 이 성읍 언덕 기슭에서 솟아나는 샘 덕분에 종려나무가 우거진 오아시스도 있어서 종려나무의 성읍이라고도 불렸다. (마가복음)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줌.(욥기)

성스럽고 위대하는 뜻으로서, 성경에서 이 단어의 기본 의미는 구별하다’, ‘분리(구분)하다’, ‘깨끗하게 하다는 뜻이다. 세상의 속되고 부패한 행실이나 풍습에서 구별된, 즉 죄악과 더러움으로부터 철저히 자신을 분리시키고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가는 것을 가리킨다. ○○은 하나님의 속성 중에서 가장 중심 되는 성품이요, 하나님의 백성에게 첫 번째로 요구되는 조건이기도 하다(19:2; 벧전 1:15-16). (히브리서)

이 직분은 모세의 형 아론으로부터 시작되어 그 후손, 특히 사독의 후손들이 맡았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 역할을 했다. 이들의 종교적인 역할 중 가장 큰 일을 꼽으라면, 일 년에 한 번 있는 대 속죄일’(욤 키프르)에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의식을 거행하는 일이었다.(히브리서)

히브리어로 보냄 받은 자’, ‘심부름꾼’, ‘사자를 의미하는 말을 우리말(한자)로 번역한 것인데, 주로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심부름꾼을 가리킨다. 때때로 이 심부름꾼이 하나님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이 경우 마치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드러내시려는 듯한 느낌을 준다.(시편)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대한성서공회), 성경낱말사전(성도출판사), 인터넷 사전 등을 참고하고 부분 인용했습니다.)

 

 

 

 

 

[말씀동화] 착한 원님이 맹인이 되었다가 다시 눈을 뜨게 된 이야기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심청이 아빠처럼 지팡이를 짚고 다니던 시절 이야기예요.

 

옛날 어느 고을에 원님이 살았어요.

성품이 어질고 총명해서 고을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원님이었죠.

어진 원님이라는 소문에 암행어사도 궁금해서 한밤중에 몰래 와서 지켜보다가

큰 절을 하고 갈 정도였다죠?

 

고을에서 가장 가난하고 자식 없는 노인들을 어버이처럼 섬기고,

부모를 잃은 고아들은 자식처럼 돌봐주고,

낙심하고 절망한 약한 젊은이들에게는

온갖 슬기로운 말로 격려해주고 힘을 북돋워주는 원님이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원님에게 큰 어려움이 닥쳤어요.

그 총명하고 사랑 가득하던 원님의 눈매가 점점 어두워져갔습니다.

하루하루 눈앞이 어두워지더니 마침내 완전 맹인이 되어 버린 겁니다.

 

너무 급작스런 일이라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원님은 스스로 마을 밖 외딴집으로 가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원님이 맹인이 되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우울하게 지내는 날이 계속되자

종종 놀러 와서 위로해주던 친구들 발길도 뜸해집니다.

 

 

그렇게 외롭게 지내던 어느 날 밤 꿈에 원님이 귀한 사람을 만났어요.

꿈속에서 원님은 맹인에다가 걸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꿈에서도 자기 신세가 하도 불쌍해서 한숨이 절로 나왔죠.

 

그런데 갑자기 원님은 온 몸이 따뜻해지는 온기를 느꼈어요.

무언가 해처럼 뜨거운 기운이 근처를 지나치는 중이었던 거예요.

웅성거리는 사람들 소리를 들어보니

하늘님처럼 신비롭게 빛나는 분이 지나가고 계시네?

 

걸인이 된 원님은 힘을 다해 외쳤어요.

 

하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그러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원님을 야단칩니다.

그래도 원님은 더 크게 소리쳤어요.

아무 것도 먹지 못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쥐어짜내듯 소리쳤어요.

 

하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바로 그때였어요.

원님의 온몸이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한 거예요.

아마 그 하늘님이 원님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었겠죠?

 

 

그 순간 원님은 꿈에서 번쩍 깨어났어요.

마치 한증막에서 막 나오기라도 한 듯이 온 몸에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죠.

그리고 웬일인지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고

마음을 온통 짓누르고 있던 우울한 마음도 안개처럼 사라져버렸답니다.

 

그리고는 신비로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하루하루 원님의 마음이 밝아짐에 따라 눈도 밝아지기 시작한 겁니다.

 

신비로운 꿈을 꾼 첫날엔 얼른 더듬더듬 지팡이를 짚고 마을로 들어가 보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나무가 움직이는 것처럼 희미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엔 통나무가 아니라

희미하게나마 손발이 달린 사람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또 다음날엔 눈코입이 달린 사람 얼굴이 어슴푸레 보입니다.

그리고 또 다음날엔

어느 집 사는 누구인지도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합니다.

원님은 얼른 엎드려 하늘님께 큰절 기도를 합니다.

 

하늘님 감사합니다.”

 

 

고을이 온통 난리가 났겠죠?

새로 온 젊은 원님도 찾아와 절을 올리며 축하하고

눈먼 원님 눈 뜨게 하려고 여기저기 높은 산에 올라가 기도하던

부인과 딸도 돌아왔습니다.

 

원님에게 은혜를 입었던 노인들과 고아들도 찾아와 절을 합니다.

젊은이들도 찾아와 절을 합니다.

그리고 발길을 끊었던 벗들도 찾아와 축하하고 덕담을 해줍니다.

친구들 가운데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합니다.

 

참 잘되었네. 어서 저 젊은 원님 내보내고 자네가 다시 원님자리에 앉을 일만 남았네 그려.”

 

그러자 원님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합니다.

 

예끼 이 사람아. 그런 말 말게. 하늘님께서 내 눈을 이렇게 뜨게 하신 것이 고작 원님행세나 다시 하게 하시려는 것이었겠나? 아닐세. 마침 어젯밤 꿈에 나는 내 눈을 뜨게 해주신 하늘님을 만나 뵈었다네. 하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 ‘얘야, 너는 이제부터 감투 욕심 벗어버리고 눈뜬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거라.’”

 

그 뒤로 눈뜬 원님은 젊은 원님을 남모르게 도우며

고을의 어려운 사람들을 더 열심히 찾아다녔어요.

눈 닫혔다가 다시 열리고 나니까 눈

어둡기 전보다 더 많은 게 보였던 거겠죠?

 

[이정훈 지음. 20181028일 주일 오후]

(청파교회 고 박정오 목사님께 들은 목사님의 일화를 바탕으로 새로 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