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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성령강림절 10주(성령강림후 9주, 2018년 7월 22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마가복음 6:34)

 

[성서일과 4본문]

(사무엘하 7:1-14a) 나단의 예언

1 주님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원수에게서 다윗 왕을 안전하게 지켜 주셨으므로, 왕은 이제 자기의 왕궁에서 살게 되었다.

2 하루는, 왕이 예언자 나단에게 말하였다. "나는 백향목 왕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휘장 안에 있습니다."

3 나단이 왕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니, 가셔서, 무슨 일이든지 계획하신 대로 하십시오."

4 그러나 바로 그 날 밤에 주님께서 나단에게 말씀하셨다.

5 "너는 내 종 다윗에게 가서 전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지으려고 하느냐?

6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집에서도 살지 않고, 오직 장막이나 성막에 있으면서, 옮겨 다니며 지냈다.

7 내가 이스라엘 온 자손과 함께 옮겨 다닌 모든 곳에서,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라고 명한 이스라엘 그 어느 지파에게라도, 나에게 백향목 집을 지어 주지 않은 것을 두고 말한 적이 있느냐?'

8 그러므로 이제 너는 나의 종 다윗에게 전하여라.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삼은 것은, 바로 나다.

9 나는, 네가 어디로 가든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어서,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물리쳐 주었다. 나는 이제 네 이름을,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들의 이름과 같이, 빛나게 해주겠다.

10 이제 내가 한 곳을 정하여, 거기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심어, 그들이 자기의 땅에서 자리 잡고 살면서, 다시는 옮겨 다닐 필요가 없도록 하고, 이전과 같이 악한 사람들에게 억압을 받는 일도 없도록 하겠다.

11 이전에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사사들을 세워 준 때와는 달리, 내가 너를 너의 모든 원수로부터 보호하여서, 평안히 살게 하겠다. 그뿐만 아니라, 나 주가 너의 집안을 한 왕조로 만들겠다는 것을 이제 나 주가 너에게 선언한다.

12 너의 생애가 다하여서, 네가 너의 조상들과 함께 묻히면, 내가 네 몸에서 나올 자식을 후계자로 세워서,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3 바로 그가 나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집을 지을 것이며, 나는 그의 나라의 왕위를 영원토록 튼튼하게 하여 주겠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가 죄를 지으면, 사람들이 저의 자식을 매로 때리거나 채찍으로 치듯이, 나도 그를 징계하겠다.

 

(시편 89:20-37) 주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맹세 [에스라 사람 에단의 마스길]

20 나는 내 종 다윗을 찾아서, 내 거룩한 기름을 부어 주었다.

21 내 손이 그를 붙들어 주고, 내 팔이 그를 강하게 할 것이다.

22 원수들이 그를 이겨 내지 못하며, 악한 무리가 그를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23 내가 오히려 그의 대적들을 그의 앞에서 격파하고, 그를 미워하는 자들을 쳐부수겠다.

24 나는 그를 사랑하고, 내 약속을 성실하게 지킬 것이며, 내가 그에게 승리를 안겨 주겠다.

25 그의 손은 바다를 치며 그의 오른손은 강을 정복하게 하겠다.

26 그는 나를 일컬어 '주님은 나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내 구원의 반석입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27 나도 그를 맏아들로 삼아서, 세상의 왕들 가운데서 가장 높은 왕으로 삼겠다.

28 그에게 내 신의를 영원토록 지키며, 그와 맺은 나의 언약을 성실히 지키겠다.

29 그의 자손을 길이길이 이어 주며, 그의 왕위를 하늘이 다할 때까지 지켜 주겠다.

30 그러나 그의 자손이 내 법을 내버리고 내 규례를 따라서 살지 않고,

31 내 율례를 깨뜨리고 내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32 나는 그 죄를 물어 채찍으로 치고 그 죄악을 물어 매질할 것이다.

33 그러나 그에게 약속한 나의 진실함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34 나는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않으며, 내 입으로 말한 것은 결코 번복하지 않는다.

35 내가 나의 거룩함을 두고 한 번 맹세하였는데, 어찌 다윗을 속이겠느냐?

36 그 자손이 영원토록 이어지고, 그 왕위는 내 앞에서 태양처럼 있을 것이니,

37 저 달처럼, 구름 속에 있는 진실한 증인처럼, 영원토록 견고하게 서 있을 것이다." (셀라)

 

(에베소서 2:11-22) 하나가 되게 하신 그리스도

11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난날에 육신으로는 이방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뽐내는 이른바 할례자들에게 여러분은 무할례자들이라고 불리며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12 그 때에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제외되어서, 약속의 언약과 무관한 외인으로서, 세상에서 아무 소망이 없이, 하나님도 없이 살았습니다.

13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

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15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고,

16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

17 그분은 오셔서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분에게 평화를 전하셨으며,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평화를 전하셨습니다.

18 이방 사람과 유대 사람 양쪽 모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며, 그리스도 예수가 그 모퉁잇돌이 되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서, 주님 안에서 자라서 성전이 됩니다.

22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도 함께 세워져서 하나님이 성령으로 거하실 처소가 됩니다.

 

(마가복음 6:30-34, 53-56) 오천 명을 먹이시다

30 사도들이 예수께로 몰려와서,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일을 다 그에게 보고하였다.

31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와서, 좀 쉬어라." 거기에는 오고가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32 그래서 그들은 배를 타고, 따로 외딴 곳으로 떠나갔다.

33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것을 보고, 그들인 줄 알고, 여러 마을에서 발걸음을 재촉하여 그 곳으로 함께 달려가서, 그들보다 먼저 그 곳에 이르렀다.

34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으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게네사렛에서 병자들을 고치시다

53 그들은 바다를 건너가서,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닻을 내렸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를 알아보고,

55 그 온 지방을 뛰어다니면서, 예수가 어디에 계시든지, 병자들을 침상에 눕혀서 그 곳으로 데리고 오기 시작하였다.

56 예수께서, 마을이든 도시이든 농촌이든, 어디에 들어가시든지, 사람들이 병자들을 장터거리에 데려다 놓고, 예수께 그 옷술만에라도 손을 대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손을 댄 사람은 모두 병이 나았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그 마음, 임마누엘!’입니다.

 

구약, “내가 이스라엘 온 자손과 함께 옮겨 다닌 모든 곳에서”(삼하 7:7)

시편, “나는 내 종 다윗을 찾아서”(시편 89:20)

서신서, “그분은 오셔서”(에베 2:17)

복음서,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으므로”(마가 6:34)

 

오늘 요절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입니다.(마가복음 6:34)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사무엘기하 7:1-14a, 시편 89:20-37)]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다윗과 다윗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언약궤 옮기기도 다윗 마음대로 안 되었듯이, 성전건축 역시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집에 대한 다윗의 꿈을 바로잡아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다윗의 집에 대한 든든한 약속으로 발전합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백성 사랑이 강력하게 드러납니다.

다윗이 성전을 짓지 못한 까닭은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이지만(역대상 22:8)

그 이면(裏面)에 하나님의 백성 사랑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백성이 옮겨 다닐 수밖에 없을 때, 하나님께서도 옮겨 다니셨으며(7),

백성이 정착할 수 있을 때에야 나도 정착하겠노라는 하나님 마음이 느껴집니다.(10)

이는 역설적으로, 다윗에게 고한 우리야의 마음과도 통합니다.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모두 장막을 치고 지내며, ... 그런데 어찌, 저만 홀로 집으로 돌아가서, 먹고 마시고, 나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할 수가 있겠습니까?...”(삼하 11:11)

(이 대목에서 우리야가 예언자처럼 느껴집니다. 다윗은 이때 오늘 본문의 하나님 뜻을 기억했어야 했건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세우신 것은 백성을 위해서입니다.

다윗은 이미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삼하 5:12, 대상 14:2)

그리고 지금 다시금 깨달았을 것입니다.

백성이 정착해야 성전건축을 허락하시겠다는,

유리하는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다윗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오늘 구약본문에 대한 응답찬송답게,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을 다시 다룹니다.

구약본문의 약속 내용이 고스란히 반영된 노래입니다.

 

하나님 약속의 신실하심은

다윗의 자손들을 통해 확증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 자손을 세우시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 사랑 때문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에베소서 2:11-22, 마가복음 6:30-34, 53-56)]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이루어진 교회의 일치입니다.

옥중에서도(3:1) 바울은 교회의 일치를 위해 편지를 씁니다.

유대 그리스도인과 이방 그리스도인의 하나 됨,

하나님 백성이 하나 되어야 하는 이유를 전합니다.

 

분열된 사랑이 아니라,

하나 된 사랑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분열의 담을 허물고 하나 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14, 16)

 

20-21절은 교회를, 건축 중인 건물로 묘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렇게 하나님과 가까워진 것입니다.(13)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불완전했던 교회가 이리 하나로 완전해져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 사람”(15), “하나님의 가족”(19)이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흘리심,

목숨을 바쳐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오천 명의 급식, 게네사렛에서 병자들을 치유하시다입니다.

백성의 여윈 모습을 예수님께서 보십니다.

목자 없는 양이어서 저들은 굶주리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참 목자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말씀을 먹이시고 떡을 먹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달리고 또 달립니다.(33, 55)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목자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참 목자 예수님께서 이들의 온갖 상처를 치유하십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해설 일부 참조)

 

 

[정리]

오늘 구약과 서신서 그리고 복음서에 각각

유리하는 백성, 불안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강렬합니다.

그 이름 임마누엘, 그 마음 임마누엘을 느낍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마태 1:23)

이를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일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강렬한 사랑이,

오늘 4본문에 철철 넘쳐흐릅니다.

 

오늘 구약의 교훈은

백성이 정착하지 못하는 한 하나님의 집을 지을 수 없음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백성의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백성이 유리(流離)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집을 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서신서 본문이 이 사실을 환히 보여줍니다.

교회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유리(流離)하고, 또 유리(遊離)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하나 되어갑니다.

비로소 그리스도의 피로 완전체가 되어가니, ! 거기가 바로 성전입니다.(20-22)

 

그리스도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시고 피 흘리시기 전에

마음속 깊이 눈물을 흘리십니다.

목자 없는 양처럼 유리하는 백성 때문입니다.

 

 

지금 전 세계 곳곳에 각종 난민들이 정처 없이 떠돌고 있습니다.

저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우리는 안정될 수 있을까요?

지금 대한민국이 최저임금 문제로 매우 불안정합니다.

약자들이 불안정한데 강자는 안정될 수 있을까요?

 

교회가 대답해야 할 때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 되어 가듯이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교회라면

전혀 이질적인 것들이 하나 되어갈 길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는(에베 2:15)

평화의 임금 그리스도의 몸 교회는,

적어도 지금 예수님의 그 옷술역할을 해야 할 때입니다.(마가 6:56)

 

 

 

[나머지]

* * 예수님의 옷술(마가 6:56)

옷술을 만지기만해도 병이 나았답니다. 이건 무슨 뜻입니까? 비상상황을 가리킵니다. 보통 때와 다른 상황이라는 말입니다. 병자가 한 두 사람이었으면 예수님께서 일일이 손을 얹어주시거나, 눈을 마주보며 따스한 말씀으로 마음에 힘을 불어넣어주시고 몸과 마음을 치료해주실 텐데, 그런 상황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너무 많아서, 치료받아야 할 병자들이 너무 많아서,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들이 너무 많아서, 그래서 저들은 예수님의 옷 끝단에 달린 옷술을 만진 것입니다.

옷술은... 지난 7월 첫 주일 말씀에 나온 12년 동안 혈루증 앓던 여인이 예수님 몰래 그 옷자락을 만졌던 바로 그것입니다.(병행본문인 마 9:20절과 눅 8:44절에는 정확히 예수님의 옷술을 만졌다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옷술이 신통력을 발휘한 것입니까? 옷술이 예수님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옷술은 찌찌트라고 불리는데, 그것을 만들어 달아야 하는 까닭이 민수기 15:37-41절 말씀에 나옵니다.

 

37.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38.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그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대대손손 옷자락 끝에 술을 만들어야 하고, 그 옷자락 술에는 청색 끈을 달아야 한다. 39. 너희는 이 술을 볼 수 있게 달도록 하여라. 그래야만 너희는 주의 모든 명령을 기억하고, 그것들을 실천할 것이다. 그래야만 너희는, 마음 내키는 대로 따라가거나 너희 눈에 좋은 대로 따라가지 아니할 것이고, 스스로 색욕에 빠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40. 그리고 너희가 나의 모든 명령을 기억하고 실천할 것이며,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될 것이다. 41. 나는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었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옷을 입는 사람이나 그 옷을 보는 사람이나 모두가 옷술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내 눈에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데로 빠지지 말라는, 육체의 쾌락, 내 알량한 계산과 경험으로 꿈꾸는 그런 행복 말고, 참 행복의 길 잃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옷술의 목적은 미망(迷妄)에 사로잡히지 말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교회가 딱 옷술입니다. 예수님의 옷술! 병든 이들이 바라보기만 해도 하나님의 약속 말씀이 기억나는 그런 옷술,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낙심했던 사람들이 바라보기만 해도 참 목자가 보이고, 그 옷술만 보아도 마음에 힘이, 희망이 솟는, 그래서 그 옷술을 만지려고 가까이 다가오는... 교회는 딱, 예수님 옷술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교회는 옷술이 아니라 주님의 몸 자신입니다. 교회의 지체인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옷술과 같은 존재인 것이죠. 문제는 지금 교회 한 사람 한 사람이 과연 옷술, 예수님의 옷술과 같은 존재로 살고 있느냐 입니다. 지금 병든 이들이 보기만 해도 예수님 뵌 듯 만지고 싶은가? 나 사는 모습만 보고도 물질욕심이 사라지고 영의 말씀에 대한 욕구가 살아나는가...입니다.

(3년 전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어머니 (이진구 지음. 성실교회 고등부 1학년. 성실문화95)

많은 굶주린 가족들을

먹여살리시는 어머니

항상 아픈 저희를 따뜻한 손길로

낫게 해주시는 어머니

하나님, 당신은 그런 분입니다.

 

 

 

 

[말씀시조] 하나님의 언약궤가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95)

하나님의 언약궤가 장막 안에 있나이다

내 백성이 정착해야 나도 따라 정착한다

언제나 함께있으마 사랑하는 다윗아

 

 

 

 

[말씀서예] 사무엘기하 7:9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95)

 

 

 

 

 

 

 

[말씀노래] 구원방주 따라가요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95)

[본문] (마가복음 6:30-34, 53-56)

[노랫말]

1) 배를따라 배를따라 사람들이 달려가요, 예수님이 타신배를 너도나도 따라가요

       뒷동네 갑돌이도 옆동네 을숙이도, 예수님을 따라따라 발걸음을 재촉해요

2) 배를따라 배를따라 사람들이 달려가요, 예수님이 타신배를 너도나도 따라가요

       시골총각 병삼이도 도시처녀 미스김도, 아픈몸 아픈마음 주님만져 나았어요

3) 배를따라 배를따라 사람들이 달려가요, 예수님이 타신배를 너도나도 따라가요

       우리주님 선장되신 구원방주 따라가요, 예수님의 말씀따라 발걸음을 재촉해요

         

[해설]

마가복음 6:30-34, 53-56절 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4.4조로 다듬었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이석훈 목사가 가락을 붙였다.

 

[악보] ‘구원방주 따라가요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시편 송서(誦書)] 시편 89:20-37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95)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즉 전래자장가 가락으로)

 

20.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내어 나의 거룩한 기름을 그에게 부었도다

21. 내 손이 그와 함께 하여 견고하게 하고 내 팔이 그를 힘이 있게 하리로다

22. 원수가 그에게서 강탈하지 못하며 악한 자가 그를 곤고하게 못하리로다

23. 내가 그의 앞에서 그 대적들을 박멸하며 그를 미워하는 자들을 치려니와

 

24. -성실함-- 인자함이--, -와 함-께 하리---,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의 뿔-높아지--로다-

 

25. 내가 또 그의 손을 바다 위에 놓으며 오른손을 강들 위에 놓으리니

26. 그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27. 내가 또 그를 장자로 삼고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며

 

28. ---- 위하---, ---함을 영원히 지키고,

-와 맺-은 나의 언약을-, (언약을) -게 세우---

 

29. 또 그의 후손을 영구하게 하여 그의 왕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

30. 만일 그의 자손이 내 법을 버리며 내 규례대로 행하지 아니하며

31. 내 율례를 깨뜨리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32. ---- 회초리로--, 그들의 죄-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그들의 죄악을, (그들의 죄악을) 벌하리로다-

 

33.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는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34.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아니하고 내 입술에서 낸 것은 변하지 아니하리로다

35. 내가 나의 거룩함으로 한 번 맹세하였은즉 다윗에게 거짓말을 하지 아니할 것이라

36. 그의 후손이 장구하고 그의 왕위는 해 같이 내 앞에 항상 있으며

 

[다함께]

37. (()) 궁창의 확실한 증인인 달 같이, 영원히 --하게 되리---,

(궁창의 확실한 증인인 달 같이, 영원히 견고하게 되리) 하셨∼∥셀라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성령강림절 10(성령강림후 9) 2018722일 주일 (성서일과 낱말 맞추기)

사무엘기하 7:1-14a, 시편 89:20-37, 에베소서 2:11-22, 마가복음 6:30-34, 53-56

 

 

 

 

 

 

 

 

 

 

 

 

 

 

 

 

 

 

 

 

 

 

 

 

 

 

 

 

 

 

 

 

 

 

 

 

 

 

 

 

 

 

 

 

 

 

 

 

 

 

 

 

 

 

 

 

 

 

 

 

 

가로열쇠

양심또는 주는 자란 이름 뜻을 가진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궁정 예언자. 그는 다윗의 성전 건축 계획에 대해 다윗이 아닌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였고,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자 이 잘못을 신랄하게 지적하였다. 또 선견자 갓과 함께 성전 예배 때 악기 사용을 장려하여 성전 음악의 기초를 놓았다(대하 29:25). 다윗 말년에 아도니야 대신 솔로몬을 지지하여 솔로몬이 즉위하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하였고 그 공로로 그와 그의 아들 아사리아, 사붓은 중직에 임명되기도 하였다(왕상 4:5-6). 말년에는 다윗과 솔로몬의 역대기를 기술하였다(대상 29:29; 대하 9:29). 동명이인 중에, 다윗이 밧세바에게서 낳은 아들로 솔로몬의 형도 있다(삼하 5:14; 대상 3:5, 누가 3:31). 그 외 3명의 동명이인이 더 있다.(사무엘기하)

이스라엘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은 뒤부터 이스라엘의 첫 왕 사울의 등장 때까지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이스라엘의 지도자. 원래 ○○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쇼페트나 헬라어 크리테스재판하다’, ‘다스리다는 뜻으로서 소송과 분쟁을 해결하는 재판관으로서의 성격이 강했으나 점차 그 범위와 영향력이 정치나 군사 등으로 확대되었다(2:16). 특히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하는 구원자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기에 기록된 ○○는 열두 명인데, 예언자의 성격이 강했던 사무엘은 ○○기에 언급되지 않지만 마지막 ○○로 간주되며(삼상 7:15), 사무엘의 두 아들도 ○○로 불린다(삼상 8:1-2). (사무엘기하)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 이들의 말 가운데는 앞일을 미리 말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현재 상황을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밝히고, 교회에 주님의 지시를 전달하며 교회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이었다.(사무엘기하, 에베소서)

양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제공하고 맹수나 도둑으로부터 양을 보호하는 자. 그들은 때때로 밤을 낮 삼아 양을 지키기도 하며(2:8), 심지어 위험한 지경에서는 양들을 위해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희생적 노력을 다한다(10:11-17). 그들은 맹수의 공격을 물리치기 위해 지팡이와 막대기(11:15), 물매 등을 지니고 다녔다(삼상 17:40). ○○와 양의 이런 관계 때문에 ○○는 비유적으로 당신의 백성을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혹은 백성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지도자들을 가리키기도 했다. 그리고 그릇된 지도자의 폭정에 시달리는 백성을 일컬어 ○○ 없는 양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9:36). 신약성경에서 ○○는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택한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시며 또 그 백성을 영생의 나라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또한 그분이 세우신 교회를 돌보도록 사명을 부여받은 교회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사용되었다.(마가복음)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의 헬라어(=희랍어=그리스어)이며, 히브리어로는 메시야라고 한다. 예수님을 가리킨다.(에베소서)

 

세로열쇠

하나님 ; 만유의 창조주시며 구원자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성부, 성자, 성령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하느님이라고도 부른다. 천주교식으로 천주(天主) 즉 하늘의 주인, 즉 하늘님이 변해서 하느님이 된다. 그런데 하늘은 예전에 하날(하ᄂᆞᆯ한ᄋᆞᆯ=큰 알)’이라 불렀던 것에 비추어 하늘님보다 하날님, ○○○이 더 오랜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천주교와 개신교가 함께 보기 위한 공동번역 성경은 하느님으로 통일했다. ○○○에는 하늘이란 느낌 외에도 하나를 뜻하는 느낌도 포함되어 있다는 의견도 있다.(사무엘기하, 시편, 에베소서)

게네사렛 ; ‘열 동산이란 뜻. 갈릴리 호수 북서 해안으로부터 내륙으로 길이 6, 너비 4에 걸쳐 펼쳐진 비옥한 평원이다.(14:34; 6:53). 그래서 갈릴리 호수를 ○○○○ 호수’(5:1)라고도 부른다. 무화과, 감람나무, 종려나무 등 수종(樹種)이 다양하고 농사도 잘 되며, 수산물도 풍성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가버나움, 막달라 등은 모두 이 지역에 속하는 성읍들이다. 구약 시대에는 긴네렛’(3:17; 19:35; 왕상 15:20)으로도 불렸다.(마가복음)

십자가 ;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처형 도구. 로마시대에는 이를 노예, 도둑, 반역자(정치범)에게 집행했다. 이 처형에 앞서 채찍질이 가해졌는데 그 때문에 이 형틀에 달리기도 전에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을 만큼 가혹했다. 예수님께서 이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에베소서)

백향목 ; 구약성경에서 매우 귀한 나무. 나무의 왕이라 불릴 만큼 크고 향기로우며 2, 3천년이나 산다. 레바논의 국기에도 들어갈 만큼 레바논의 자랑이다. 예로부터 지나친 남벌(濫伐, 나무를 함부로 벰)로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사무엘기하)

사도 ;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서, 그를 보낸 사람으로부터 임무수행을 위한 모든 권리를 받는다. 성경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이 단어가 예수님의 12제자에게 쓰였고 바울서신에서는 바울을 가리키는 명칭으로도 쓰였다.(에베소서, 마가복음)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대한성서공회), 성경낱말사전(성도출판사), 인터넷 사전 등을 참고하고 부분 인용했습니다.)

 

 

 

 

[말씀동화] 목자 없는 산양(山羊)의 기도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백두산에서 산양이랑 장애물경기 하던 시절 이야기예요.

 

옹달샘처럼 깨끗하고 조용한 뉴스가 주일아침에 퐁퐁 솟았어요.

산양이 서울나들이 왔다는 소식입니다.

깊은 산 깎아지른 절벽 같은 곳에 사는 산양이,

멸종위기 1급인 산양이 서울 중랑구 용마산에 나타났다네?

 

백두산에서 여기까지 애써서 왔는데, 사람들 눈을 피해서 철조망도 넘고, 고속도로도 넘고 넘어 왔는데, 서울에서 딱 걸렸네? 역시 서울엔 사람이 많구나!”

 

남북정상회담도 잘 치르고,

남북연합 남남북녀 탁구팀이 우승도 했으니,

남쪽에 사는 산양 친척들께 인사도 할 겸 온 겁니다.

산 넘고 물 건너, 철조망 넘고 고속도로 건너서 먼 길을 온 겁니다.

 

원래 우리 산양들은 이사 다니지 않고 자기 동네에서만 평생 사는 동물이지만, 큰맘 먹고 여행 왔으니 어서 우리 남녘 친척들 두루 찾아 인사를 해야겠다.”

 

그런데 아무리 다녀도 산양의 친척들을 만날 길이 없습니다.

밤이고 낮이고 험한 산을 넘고 또 넘어도 산양의 흔적이 없습니다.

 

그 소문이 사실이었나? 남쪽에선 호랑이보다 무서운 게 곶감, 곶감보다 더 무서운 게 올무라던데, 그 올무란 놈이 우리 친척들을 다 잡아먹어버린 건가?”

 

 

좀 더 험한 산을 찾아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을 넘다가

뜻밖에도 양떼를 만납니다.

그것도 양떼목장, 삼양목장, 하늘목장 세 차례나 만납니다.

 

얘들아, 반가워. 난 북쪽에서 온 백두산 산양이라고 해. 난 얼굴이 가무잡잡한 편인데, 너흰 모두 인물이 훤하구나! 그런데 울타리에 갇혀 사느라 갑갑하진 않니?”

 

산양의 인사에 양떼목장 양떼들이 매헤헤인사합니다.

산양은 왠지 한결 같이 미소 짓는 양떼들의 표정이 마음에 듭니다.

감은 듯 뜬 듯 가늘게 웃는 눈매가 정답습니다.

 

양떼목장을 떠나 삼양목장을 거처서 하늘목장에 다다릅니다.

산양이 양떼들에게 인사하며 묻습니다.

 

얘들아, 너흰 어딜 가나 낯빛도 훤하고 눈도 늘 웃는 눈이로구나. 도대체 뭘 먹어서 그런 거냐?”

 

하늘목장 양떼 가운데 우두머리 양이 말합니다.

 

그건 바로 우리 목자님 때문이지!”

 

산양은 동그란 눈을 더 똥그랗게 뜨고 묻습니다.

 

목자님? 그게 누구지?”

 

산양의 의아한 표정에 양떼들이 모두 매헤헤웃습니다.

 

그것도 몰라? 목자님은 우리 양떼를 돌보는 분이야. 먹이도 주고 물도 주고 아픈 상처 감싸주는 분이지! 우린 그분 발걸음소리만 들어도 힘이 솟고, 그분 옷자락만 스쳐도 행복하단다!”

 

산양은 난생 처음 듣는 목자라는 이름에 가슴이 설렙니다.

올무라는 괴물 이름만 들었지, 목자라는 선녀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겁니다.

하늘목장을 나서며 산양이 하늘을 바라봅니다.

백두산 천지에서 바라보던 바로 그 하늘, 같은 하늘 입니다.

 

하늘님, 저에게도, 남쪽에 사는 우리 친척들에게도 목자를 보내주세요. 백두산 천지에 두레박타고 내려오신 선녀님처럼 목자님을 보내주세요. 그래서 마귀 같은 올무에도 걸리지 않게 해주시고, 맛있는 밥이랑 깨끗한 물도 먹게 해주세요.”

 

 

대관령을 떠난 산양은 이리저리 살피며 달립니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목자도 안 보이고 두레박도 안 보입니다.

그런데 경기도 포천 어느 야산에 이르렀을 때 처음으로 귀에 익은 소리가 들립니다.

저게 뭐지? 귀에 익은 소리에 산양이 귀를 쫑긋 세웁니다.

 

조심조심 다가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나랑 똑 닮은 산양, 남쪽 산양입니다.

드디어 만났구나!

반가운 마음에 백두산 산양이 얼른 묻습니다.

 

안녕? 아니 그런데 넌 왜 누워있어?”

 

누워있던 남쪽 산양이 모기만한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올무에 걸려버렸어.”

 

올무라는 말에 백두산 산양은 온몸이 얼어붙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올무는 곰처럼 커다란 괴물이 아니라

눈에 보일 듯 말 듯 작고 작은 올가미였습니다.

 

올무에 걸린 남쪽 산양은 물도 못 먹고 밥도 못 먹었습니다.

올무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다 생긴 상처가 썩어가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남쪽 산양을 바라보며 백두산 산양이 하늘님께 다시 기도합니다.

 

하늘님, 도와주세요. 올무에 걸린 친구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바로 그때였어요!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옵니다.

그 옛날 호랑이에게 쫓기던 오누이에게 내려온 그 동아줄입니다.

동그란 산양의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동아줄 끝을 자세히 보니 파란색 끈이 섞인 옷술이 달려있습니다.(민수기 15:38)

 

날아가는 파랑새가 노래합니다.

 

파란색 옷술을 잡아도 좋다. 우리 예수님이 옷술을 잡아도 좋다고 하셨다.”(마가복음 6:56)

 

백두산 산양이 얼른 동아줄의 옷술을

죽어가는 남쪽 산양의 다친 발목에 닿게 합니다.

그러자 피에 젖은 올무가 마치 죽은 뱀처럼 스르르 풀어집니다.

그리고 다친 발목이 깨끗이 낫습니다.

 

그리고 동아줄 옷술이 땅에 닿자마자 땅에서 옹달샘이 퐁퐁 솟아납니다.

남쪽 산양은 얼른 샘물을 마십니다.

꿀맛 같은 샘물을 먹고 나자 드디어 눈이 열립니다.

멀리 숨겨진 올무까지 싹 다 보입니다.

옹달샘이 졸졸 흘러가는 땅에서 금세 맛있는 풀과 보리수가 자라납니다.

 

백두산 산양과 남쪽 산양은 하늘님께 머리 조아려 절을 올립니다.

원래 목자 없이 사는 산양들이 참 좋은 목자를 알게 된 것입니다.

뜻밖의 하늘 동아줄 옷술에 닿아 그 옷술의 주인을 만난 겁니다.

저 악한 올무도 순식간에 다 없애버리시는 목자,

늘 맛있게 먹이시고 깨끗하게 고쳐주시는 참 좋은 목자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백두산 산양이 남쪽 산양과 볼을 비비며 작별인사를 합니다.

백두대간을 따라 힘차게 북쪽 고향을 향해 달립니다.

백두산 가족들을 얼른 만나서 하늘 동아줄을 내려주신 참 목자,

참 목자를 만난 경기도 포천 어느 신비로운 산속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이정훈 지음. 2018722일 주일 오후]

[마침 2018. 7. 22. 주일 아침 인터넷 신문-연합뉴스-에서 산양 이야기를 읽고, 오늘 구약본문의 양떼(사무엘기하 7:8), 복음서본문의 목자 없는 양”(마가복음 6:34)을 떠올리며 지었습니다.]